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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서명승의 개념에 대한 의미론적 해석 (A Meaningful Interpretation on Concept of Byeulseo Scenic Spot)

  • 이재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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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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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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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연구는 별서명승의 개념을 정립하기 위하여 시도된 것으로서, 별서 및 명승의 정의를 먼저 제시한 후, 별서가 별서명승으로 불릴 수 있는 근거와 이유, 당위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우리나라 명승지정 기준은 3항에 저명한 경관의 전망지점, 5항에 저명한 건물 또는 정원 및 중요한 전설지 등으로서 종교, 교육, 생활, 위락 등과 관련된 경승지를 명승으로 지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에 덧붙여 우리 선조들이 별서공간에 대한 명승개념을 정의해 놓은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향후 별서공간을 역사 및 생활명승으로서의 명승으로 지정해 나갈 수 있는 준거를 찾아보고자 한다. 첫째, 문화재법상 명승의 개념은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건물이 있는 경승지 또는 이름난 풍경을 볼 수 있는 지점으로서 경치도 중요하지만, 대상지의 담겨진 삶의 기록(Story Telling)인 역사자원을 발굴해 내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의 명승에 대한 지정 기준은 자연경관, 저명한 경치가 있는 동식물군락지, 경관조망점, 저명한 건물 또는 정원(庭苑) 및 중요한 전설지 등으로 다양화되지 못하고 있으므로 생활명승으로서의 별서명승의 지정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셋째, 외국 사례 중 일본의 경우, 별서 및 주택정원을 명승으로 196개소나 지정하여 전체 명승 355개의 55.4%에 달하고 있음에 유의하여, 우리도 이들의 제도를 우리에 맞게 원용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저명한 건물이나 중요사적 및 민속자료 등이 포함된 대단위 경관지역은 복합문화명승이나 특별명승과 같은 개념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넷째, 사적, 중요 민속자료 등으로 분류된 정원, 원지 중에서 명승으로의 가치가 더욱 부각되는 대상지의 명승으로의 문화재 지정종별 분류작업을 지속시켜야 할 것이다. 다섯째, 생활명승이면서 경치가 아름다운 별서정원의 명승지정을 확대하여야 한다. 정자들은 경승지에 선비들이 은일하며, 학문을 했던 별서의 중심공간으로서, 작정자가 분명하고 행장기록이 있어 국민들에게 이야기거리를 창출하여 홍보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경우 명승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별서정원에서 경치가 아름다운 조망점의 경우 지정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명승 지정을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별서정원의 경우 조망점이 우수한 사례가 많고, 아직 조망점이 좋은 대상지를 명승으로 지정한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논산 임리정(臨履亭)과 팔괘정(八卦亭)의 입지 및 조영 특성 - 죽림서원(竹林書院)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 (Locational and Constructional Characteristics of Imrijeong & Palgwae-jeong in Nonsan - Focused on the Relation with Jukrim-Seowon -)

  • 이현우;노재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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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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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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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논산 강경읍 소재, 죽림서원과 임리정 그리고 팔괘정의 입지 및 조형 특성을 검토하는 한편, 이들 3개 공간의 상호 관련성을 "사계연보(沙溪年譜) 죽림서원도록(竹林書院都錄) 임리정기(臨履亭記) 죽림서원묘정비(竹林書院廟庭碑) 남유록(南遊錄) 당시 상소기록" 등의 문헌을 통해, 추론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육현(六賢)을 모신 죽림서원은 강당이 배제된 채 '홍살문-외삼문-동재(헌장당(憲章堂)) 서재-내삼문(신문(神門))-사우(죽림사(竹林祠))'의 위계를 보인다. 죽림서원과 각각 50m와 100m 거리를 두고 조영된 사계 김장생의 임리정과 우암 송시열의 팔괘정은 좌향은 물론 규모 지붕 및 평면 창호 편액 등 세부 의장까지 거의 동일시되고 있음이 주목된다. 특히 임리정과 팔괘정은 죽림서원을 중심으로 암괴로 구성된 부지여건을 고려한다면 최대한의 좌우대칭을 유지하며 사우를 위요한 형상이다. 죽림서원은 인조반정 후 정치적 여건 등으로 서원건립이 재추진되면서 율곡 우계를 향사한 묘우(廟宇) 단일 건물만을 우선 영건하고, 기존 강학당으로 쓰던 임리정을 더해 황산서원이라 통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현상은 최소한 중건 이후, 양정(兩亭)을 서원의 강학당으로 존치 활용함으로써 서원 구성의 기본적 질서인 좌우대칭적 규범을 최대한 도모하기 위한 필연적 결과이다. 결국 시대차를 두고 이루어진 임리정과 사우의 영건으로 초래된 황산서원의 위계와 시각배치상의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한 고육지책이 바로 황산 몽괘벽(夢卦壁) 아래 영건된 팔괘정이다. 이와 같은 추론을 종합해 볼 때 죽림서원은 사우를 새로 건립하고, 기존 강학당으로 쓰던 임리정과 이후 중건을 통해 보완된 팔괘정을 강당의 성격을 갖춘 공간으로 통합해 완성된 '사우 중심의 서원'으로, 팔괘정의 영건과 임리정과의 조형적 일치는 죽림서원의 강당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보정할 의도 하에 이루어진 결과로 판단된다. 본 연구는 기존의 누정의 기능과 역할이 서원 강학당의 보완적 시설로서 영건되고 존립되었다는 사실을 밝힌 것으로서, 서원과 누정의 상호 보완적 기능을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

피향정(披香亭) 일원의 입지 및 공간구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Location and Spatial Composition of Pihyang-jeong Zone)

  • 이현우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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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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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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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연구는 전라북도 내 5대 정자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며 '호남제일정'이라 일컫는 정읍시 태인면에 위치한 피향정 일원의 입지 및 공간구성에 관해 고찰한 바, 집약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1. 피향정의 조영은 신라 헌강왕대 최치원이 이곳을 소요하며 풍월을 읊었다는 구전이 전할 뿐 창건기록은 전무하다. 다만 1618년 이지굉이 초라한 건물을 확장하였고, 1664년 박숭고 1715년 유근의 중수기록이 전한다. 2. 피향정의 입지는 태인면 북쪽의 성황산(189m)과 동쪽의 항가산(106m) 및 남쪽의 태산(33m)을 비롯하여, 북서쪽의 평야로 이루어진 북고남저(北高南低) 지형으로, 전형적인 배산임수 형국임을 파악하였다. 3. 피향정 일원의 공간구성은 하연지(下蓮池)를 향해 피향정이 남남서(SSW)향으로 세워졌으며, 피향정 누상으로의 진입은 동서(좌우)의 석계(石階)로 접근토록 계획되었다. 4. 피향정 일원의 건축물은 '객관의 누정인 피향정 연지의 함벽루 관리인 시설' 등이다. 피향정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장방형 건물이며, 함벽루는 1918년 목조 2층 단청누각으로 초창 후 1971년 장방형 목조와즙 단층 5칸 팔작지붕집으로 개조하였다. 이후 2010년 육각정으로 신축되어 원형과는 전혀 다른 외관임을 파악하였다. 5. 피향정 일원의 점경물은 피향정 경내의 총 21기의 비석군과 피향정을 둘러싼 160m 전통한식 막돌담장을 확인하였고, 맞배지붕 일각문으로 3문 형식을 띤 3개의 출입문과 피향정일곽 외부의 동편에서는 하마석이 확인되었다. 6. 피향정 일원의 수경관은 관아인근의 자연못의 물을 끌어들이고 그 주변에 누정을 건립한 대표적 예이다. 7. 피향정 일원의 식생은 일곽경계에서는 느티나무, 남측 소공원에서는 느티나무 배롱나무 반송 소나무 영산홍 자산홍 잔디 등이, 하연지 상의 함벽루에서는 느릅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등이 양호한 생육상태로 확인되었다.

부여 팔경으로 본 백제 사비시대 장소와 경물의 회고(懷古) 관성(慣性) (Retrospective Inertia of Historic Spots and Spectacles of Baekje's Sabi Period, Represented in Buyeo's Palkyung)

  • 노재현;이규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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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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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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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연구는 고도 부여의 경관이미지를 가장 잘 함축한다고 판단되는 '부여 팔경'을 문헌 역사지리학적 방법에 입각해 분해, 재구성함으로써 부여 명소에 대한 장소적 회고 관성이 일종의 지리코드로서 전승되고 있음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백제 패망 이후 부여의 찬란했던 문화유산은 대부분 사라지고 몰락한 역사와 회한의 흔적이 잔영처럼 남아 있듯 부여 팔경에 등장하는 장소와 경물 또한 대부분 '백제'라는 몰락과 상실의 표상으로 전형화 되며 유전되고 있다. 부여 팔경은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구팔경'과 '전팔경'을 모본으로 한 것으로 보이며, 누정 건립 및 숭현사상 고취 등의 여건 변화로, '수북정팔경'과 '부여회고팔영'은 경물 선정에 약간의 변모를 보였다. 유독 회고적 장소 관성에서 비켜서 있는 '후팔경'은 기존 팔경 요소를 의도적으로 제척함으로써 부여 명소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한 별도의 목적이 읽혀진다.1900년대 작정된 '신팔경'과 '고적팔경'에서도 재차 회고되는 낙화암, 고란사, 조룡대, 평제탑 등은 모두 부여의 궁성 반월성을 중심으로 1km 범위 내에 위치한다. 또한 대왕포, 부산를 비롯하여 거의 동일 시점장으로 인식되는 자온대와 수북정 그리고 규암진과 의열사는 반월성을 중심으로 한 3km범위에 포치되고, 유일하게 4km 포치권내 분포하고 있는 천정대조차도 모두 백마강이라는 하상의 연계경관을 중심으로 배열되고 있다. 이러한 시공간적 경관회고의 재발 현상은 부여 팔경이 일시적이거나 즉흥적인 것이 아닌 백제 사비시대의 역사 회고와 경관 윤회의 관성에 의해 구축되고 재생되어온 풍경임을 환기시켜 준다. 부여문화와 문명조차도 백제 폐망과 관련된 장소관성에 지배받고 있으며 과거 몰락한 장소 및 경물의 기억 또한 부여 경관이미지의 미래가 될 수밖에 없음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폐망한 고도'라는 시간 및 장소 메시지를 바탕으로, 되풀이되며 강한 회귀성을 보이는 '부여팔경'이야말로 사비시대 부여의 경관 및 장소 특성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매우 유용하고 효과적인 지리코드이다.

한정우기(閑情偶寄)를 통해 본 이어(李漁)의 조원(造園) 이론 (A Study on Gardening Theories of Li, Yu in 'Xian Qing Ou Ji')

  • 장림;정우진;성종상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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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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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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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어(李漁)의 "한정우기"는 명말청초(明末淸初) 상업경제의 발달로 물질문화가 성행했던 시기에 저술된 작품으로, 당대의 사회풍조를 반영하여 물질문화의 향유방법을 자세히 풀이한 저작이다. 본 연구는 "한정우기" 거실부(居室部) 와 종식부(種植部) 를 텍스트로 하여 이어의 원림조영 이론을 고찰한 것으로, 도출된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이어는 인지제의(因地制宜) 이론을 통해 지세에 따른 원림의 배치를 설명하였다. 그가 강조한 것은 땅의 지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모든 조영이론의 출발점이라는 점이다. 그는 전저후고(前低後高)의 이상적 형태를 만들기 위해 지형의 고저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가옥, 누대, 가산, 물길 등의 성공적 배치가 지세의 정확한 판독에 의해 달성될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둘째, 취경재차(取景在借)는 바깥 경치를 잡아두는 장치로 창을 이용한 기법을 말한다. 이것은 동관(動觀)과 정관(靜觀)이라는 색다른 이론으로 전개된다. 동관은 배의 움직임에 따라 창을 통해 바라보는 경치도 바뀌게 되며, 하루에도 수천 폭의 산수화를 창문을 통해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적극적 경관향유의 방법론으로 규정된다. 정관의 경우, 원림 또는 실내에서 외부의 경관을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창문을 이용할 때의 경관으로 설명된다. 셋째, 이어는 제체의견(制體宜堅)의 논설에서 재료와 디자인을 통해 견고함을 유지하는 것이 정교함에 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넷째, 창이표신(創異標新)은 다름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형식적 측면을 중시하는 말로서, 이어의 조원이론을 성격을 잘 나타낸 말이다. 본 연구는 한정우기에서 '청벽(廳壁)', '활첨(活?)', '대련 편액(聯?)', '죽병부식법(竹屛扶植法)'의 네 가지를 선별하여 창이표신의 이론과 실제를 고찰하였다.

조선후기 회화식 고지도를 통해 본 평양성의 인문경관 특성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Humanistic Landscape in Pyongyang Castle through Pictorial Maps in the Late Joseon Dynasty)

  • 김미정;소현수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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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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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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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조선후기 회화식 고지도가 제작 당시 선조들이 인지했던 장소명이 표기된 개념도라는 점에 착안하였다. 이에 평양성(平壤城)의 회화식 고지도 다섯 점을 대상으로 하여 역사적 고도(古都), 상업 도시, 풍류 도시라는 문화적 정체성을 지닌 평양성의 인문경관 특성을 다음과 같이 도출하였다. 첫째, 평양성의 역사적 정통성은 제례·종교시설이 대표하였는데, 국가의 시조와 관련된 '단군전(檀君殿)'과 '기자궁(箕子宮)', 고구려 유적인 '문무정(文武井)', 그리고 '사직단(社㮨壇)', '평양강단(平壤江壇)' 등 국가 제사를 지내던 곳, 교육과 제례 기능을 담당한 향교와 서원, 불교 사찰과 도교 시설들, '용신당(龍神堂)', '산신당(山神堂)', '제신단(諸神壇)'과 같은 민간신앙 공간이 포함되었다. 소중화(小中華) 의식과 기자 존숭 풍조로 평양성의 상징이 된 기자 관련 시설이 평양성 전체 영역에 분포된 반면, 북성에는 고구려 동명왕 관련 시설, 대동강 변에는 기복신앙 공간이 분포한다. 둘째, 평안도 경제 중심도시 평양의 상업 경관은 물류·교통시설로 드러났는데, 운수 기능을 담당한 대동강에 '양명포(揚命浦)', '청룡포(靑龍浦)', '왜성진(倭城津)' 등 포구와 주요 교통로를 연결하는 '영제교(永濟橋)', '강동교(江東橋)' 등 많은 다리가 있었다. 외성 영역에 물류 운반과 관리에 편리하도록 '정전도로'가 펼쳐지고, 주요 성문의 도로변과 감영 근처에 평양부 관할 읍의 이름이 붙여진 많은 창고들이 분포하였다. 또한 위계를 가진 도로로 질서정연하게 구획된 시가지와 평양성 주요 진입 도로변에 조성된 버드나무의 '북장림(北長林)'과 느릅나무가 포함된 혼합림으로 구성된 '십리장림(十里長林)'이 만든 선형 경관이 특징적이었다. 셋째, 풍류 도시는 위락시설의 분포로 가시화되었다. 내성에 인접한 대동강변은 성 안쪽으로 연결되는 운하와 축대를 쌓은 접안시설, 화물선이 정박한 포구 등 인공경관 특성을 보이지만, 자연스러운 하안을 가진 북성 주변은 '부벽루(浮碧樓)', '을밀대(乙密臺)', '최승대(最勝臺)', '함벽정(涵碧亭)' 등 다수의 누·정·대와 '청류벽(淸流壁)', '장방호(長房壺)'라는 바위글씨가 있었다. 대동강이 보이지 않는 내성에는 '오순정(五詢亭)'과 '벽월지(壁月池)', '사창(司倉)' 인근 반월지, 방지 내 섬에 조성된 '애련당(愛蓮堂)'이 수경관을 연출하고, 중성 서쪽 성곽에는 실용적 목적으로 지당들이 배치되었으며, 기자와 관련된 버드나무 식생 경관이 반복되었다. 또한 칠성문(七星門) 부근에 입지한 기생들의 장지 '선연동(嬋娟洞)'은 문인들의 시제로 사용되며 평양성의 풍류 이미지를 만드는데 기여하였다.

금선정의 명승적 가치에 관한 연구 (A Study on Value of Geumseonjeong as a Scenic Spot)

  • 최지영;이진향;이재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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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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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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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별서정원은 동양적 자연관과 유교적 정치상황이 맞물려 조선시대 사대부 사이에 성행하였던 우리나라의 독특한 조경양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경상도에는 경관이 수려한 낙동강과 그 지천의 주변에 주자학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다간 선비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별서정원과 별서를 경영하고 즐겼던 사대부들의 행장, 그들의 시문과 정자기 등이 전해진다. 경상북도 풍기에 위치한 금선정 일원은 퇴계 이황의 대표적 제자이자 목민관이었던 금계 황준량(1517-1563)의 별서지다. 금양정사는 황준량의 수양처였으며 금선정은 일찍 세상을 떠난 황준량을 위해 스승과 제자가 지은 정자이다. 금선정이 위치한 금선계곡은 풍광이 아름다우며 금선계곡을 따라 펼쳐진 소나무숲은 금선정 일원의 풍광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금선정은 빼어난 자연풍경뿐 아니라 황준량과 관련된 문헌과 이야기가 전해진다. 본 연구는 금선정의 명승적 가치를 규명하고자 금선정의 주변현황, 지형 식생 수계 조사를 통하여 자연환경과 황준량과 이황의 '금계집', 류운룡의 '금계집', 홍경렴의 '금계정사중수기' 등 인문환경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경관적으로 금선계곡(금계계곡) 일원은 금선정의 정자와 전면의 맑은 계류와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뛰어난 경관미를 지니고 있으며 '금계집'과 같은 문집의 시문에서 '아름답다'와 '명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과 계곡 주변에 모임의 장소였던 역사문화경관을 살펴볼 때 명승자원으로써 가치가 충분하다. 최근 들어 별서명승의 문화재지정 사례가 증가되고 별서정원의 명승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를 통해 금선정 일원이 별서명승으로 지정할 수 있는 준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창덕궁 옥류천의 수경(修景) 특성과 변천과정 (Studies on the Characteristics of Modified Landscape and the Transformational Processes of Ongnyucheon in Changdeok Palace)

  • 정우진;김형석;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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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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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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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창덕궁 후정에 위치한 옥류천 영역의 핵심경물인 위이암의 조영특성과 사용된 경관 설계기법을 구명하는 것으로서, 대상지의 조영기법, 공간 구성 및 변천과정과 이용실태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에 대한 집약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옥류천 위이암은 큰 암반을 뫼산(山)자의 형상으로 다듬은 경물로 조성되었으며, 유배거에는 물을 공급하기 위해 바위 한 틈에 석수로를 파고 어구의 물을 끌어들였다. 위이암의 폭포는 본래 물이 바닥을 타고 흐르는 급류로 조성되었으나, 고종 연간에 암반을 네모지게 깎아서 이낙[현폭]의 효과를 주도록 개축되었다. 둘째, 동궐도에 나타난 위이암의 주요한 특징으로는 위이암 배후에 방형의 지당과 흙으로 쌓은 언덕이 나타나는 것이며, 위이암 측면에도 계류를 만들어 그윽한 산천(山川)의 풍경을 연출하였다. 또한 옥류천에 건립된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은 모두 위이암을 감상하기 위한 조망지로 건립된 것으로 판단되며, 이들 조망지에서는 청의정지, 태극정지와 같은 별도의 수계를 조성하여 조망처의 기능에 구속되지 않고, 각 지점에서 색다른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경관 설계기법이 돋보였다. 한편, 옥류천에 내재된 공간구성 요소인 위이암의 석경, 입체적 물소리, 독특한 수계와 화사한 식물소재는 감상자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고 심신을 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판단하였다. 셋째, 옥류천의 공간구성이 파격적으로 변형된 고종 21년(1884년)의 변화상은 소요정 앞의 배수를 개선하기 위해 계류와 소요정의 담장을 없애고 소요정의 양 측면에 배수시설을 설치한 것이 확인되는바, 기존의 불리한 배수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자구책에 의한 것이었다고 판단하였다.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를 통해 본 조선시대 중앙관아의 공간구조와 조경기법 (A Study on the Spatial Structure and landscape techniques of the Central Government Office(中央官衙) reviewed through the 'Sukchunjeado(宿踐諸衙圖)')

  • 신상섭;김현욱;박영관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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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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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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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조선시대 후기 고위관료였던 한필교(1807~1878)의 화첩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를 통해본 중앙관아의 공간구조와 조경기법에 관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사방전도묘법(四方顚倒描法)'으로 그려진 "숙천제아도"는 조선시대 중앙 및 지방관아의 공간구조와 문화경관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독보적 실증사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조선의 정궁(경복궁) 광화문 밖 육조(六曹)거리에 자리 잡은 중앙관아는 장방형 부지에 중심시설(당상대청)과 부속 건물이 서열에 따라 상 하 또는 좌 우로 분산되는 구조인데, 주 건물은 남향으로 배치되었으며, 행정편의와 환경성, 그리고 유교적 규범성의 실천 등 위계적 토지이용 체계를 반영하고 있다. 관리들의 직무공간인 당상대청과 향청 등 주요건물은 너른 네모꼴 앞마당을 두어 실용성 위주의 중정(中庭)을 구축하였고, 중심건물(당상대청)은 연못과 정자 등 의미경관을 반영한 후원을 가꾸었다. 특히, 토지이용에 있어서 적극적 공간과 소극적 공간이 교차 반복<동(動)과 정(靜), 채(棟)와 마당(庭), 정(庭)과 원(園)>되는 중용적 사유체계를 보여준다. 중앙관아조경의 특징은 실용적 성격의 앞마당과 경관적 측면이 강조된 뒤뜰을 연계시킨 외부공간의 확장성(前庭+棟+後園), 그리고 환경쾌적성, 경관성, 상징성, 방화용수 목적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된 수경시설(方池)의 도입을 들 수 있다. 또한 휴양과 심신수양을 도모하기 위한 정자의 도입 및 후원의 발달, 정심수(庭心樹 : 연, 버드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등)로서의 의미부여와 제한적인 식물도입, 그리고 심미성, 관념성, 실용적 가치 등을 중시한 환경설계기법이 추출된다. 이러한 중앙관아의 조경기법은 우리나라 궁궐, 사찰, 서원, 상류주택 등 전통공간에서 유사하게 추출되는 보편성이자 특수성이라 하겠다.

아산 외암마을 토속경관의 문화유산적 가치 (The Landscape Value of Asan Oeam-ri's Folk Village as Cultural Heritage)

  • 신상섭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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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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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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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수많은 농촌마을은 문화경관적 건전성을 상실한 채 변질이나 해체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충청남도 아산에 위치하는 외암마을(국가지정 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236호,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은 신전통주의 부흥을 추구하며 지속성을 유지한 채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마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외암마을은 예안이씨 동족마을로 500여년의 긴 역사 동안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지속성과 건전성을 지켜온 민속마을로서 문화유산적 가치 측면에서 'Outstanding Universal Value'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토속경관 사례이다. 유교적 문화경관 지표물(종가, 사당과 묘역, 신도비, 정려와 송덕비, 정자 등)과 다양한 민간신앙 요소(장승과 솟대, 당산목, 산신당, 마을숲 등), 그리고 유 무형의 생활문화(활발한 문중활동과 엄정한 조상숭배 의례, 가계계승의식, 공동체 농경문화 및 생태환경의 보존 등)를 지속성있게 전승함으로써 전통시대 양반촌을 상징하는 보편성과 완전성, 그리고 진정성을 유지한 채 정체성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의 독특한 환경설계원리인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마을을 자리 잡기하여 환경적으로 건전한 정주공간(nature + economy + environment + community)을 구축함으로서 토속성 짙은 문화경관을 완성한 사례가 되는데, 외암오산(광덕, 설아, 송악, 월라, 면잠)과 외암오수(용추, 인곡, 반계, 역천, 온정)와 같은 광역 생태문화경관의 보전과 같은 자연환경의 절제, 그리고 생태환경의 질서와 문화적 가치를 중시하는 환경관(capacity + healthy + sustain-ability)을 결합하여 지속성과 진정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외암마을 토속문화경관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기준 IV(인류역사의 발달단계를 보여주는 뛰어난 유형의 건축물이나 건조물 집합체 또는 조경유산)와 V(뛰어난 유형의 전통 인간 거주지 또는 급격한 변화로 파괴의 위험에 직면한 문화의 대표적 유산으로서 토지에 기반을 둔 유산)의 범주에 포함되는 우리나라 공동체 사회의 대표적 사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