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집권 노론의 낙학파는 성리학의 이념으로 국정을 이끌면서 종래의 '정신적' 측면에 급급했던 데서 벗어나 '물질'에 대한 관심으로 정계와 학계의 분위기를 전환했다. 이런 움직임을 주도했던 세력이 김원행(金元行)을 중심으로 한 석실서원(石室書院) 계통의 학인들이었다. 그러나 소수의 진보적 학자-북학론자들을 제외한 대다수 낙학파 학자들은 청나라의 실체를 내심 인정하면서도 종래의 성리학적 전통에서 벗어 나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정권의 존립 기반을 위태롭게 하는 북학론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종래의 성리학적 전통과 조선중화주의의 이념을 지키면서도 청나라의 문화 수준에 이를 방안을 모색하였고, 그 과정에서 "성리대전"에 집약된 경세학 체계의 복구를 대안으로 인식하였다. 황윤석은 낙학파의 이런 대응논리를 대변하였던 성리학자다. 그는 성리학의 범주 안에 들어 있는 상수학의 가치를 재발견하였고, "성리대전"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했다.
본고는 "입학도설"과 "천명도설"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사칠논쟁의 연원을 밝힘으로써 조선유학이 오늘의 우리에게 갖는 의미를 재확인하려는 것이다. 사칠논쟁은 조선 성리학의 대표적인 이론논쟁으로, 이로부터 파생되는 인심도심논쟁, 인물성동이논쟁, 미발심체논쟁 등 심성설 중심의 이론탐구는 조선유학의 중요한 특징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접근은 대체로 이러한 이론논쟁을 현실을 도외시한 조선성리학의 공리공론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아니면 현실을 도외시한 이론논쟁이긴 하지만 한국인이 지닌 철학적인 사고능력을 보여주는 철학논쟁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양촌의 "입학도설"에서부터 나타나는 성리학에 대한 기본이해는 성리학이란 수기치인지학으로서 결코 현실과 유리될 수 없는 것이며, 이상사회는 통치계층의 도덕성실현위에 모든 사람들의 도덕성이 실현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의 도덕성의 근거를 밝히고, 수양의 목표를 제시하며, 선악의 유래를 명확히 함으로써 현실적인 악을 극복하고 선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 된다. 이런 문제의식은 추만의 "천명도설"에서도 그대로 계승된다. 추만의 "천명도설"은 우리의 도덕성은 천명으로서 주어져 있으며 이를 근거로 천인합일이라는 이상에 도달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본격적인 심성논쟁이 의리실천을 학문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도학의 전통이 세워진 이후 도학자임을 자부하던 학자들 사이에서 계속되었다는 것은 이것이 결코 현실과 유리된 공리공론이 아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즉, 조선유학이 가진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신뢰와 도덕성의 실현을 통해 인간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인간에 대한 가치론적 이해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큰 철학적인 의미를 갖는다.
Objectives : This thesis analyzes how Song Dynasty(宋代) Confucianism(儒學) has influenced the Oriental Medicine during Geumwon Dynasty(金元代). Methods : This paper will compare with the literature of Zhuxi and the Oriental Medicine scholars of Jin(金) Yuan(元), and search for the correlation of the Confucianism(儒學) and the Oriental Medicine(東洋醫學). Results : During the era of Jin(金) Yuan(元), Confucian physicians(儒醫) were met a new phase of Medicine(醫學) by systematizing the clinical medicine and theory based on the Neo-Confucianism. Conclusions : This study recognizes how the era of Jin(金) Yuan(元) Confucian physicians(儒醫) medically perceived and reinterpreted the aspect of Zhuxi's Neo-Confucianism and theory of Changes.
This article aims to explore how Confucian knowledge and concepts were adapted, consolidated, and negotiated in the translation of Islam in China. Translation has always played a key role in producing and disseminating knowledge across cultures and languages, but little has been discussed to identify "the intimate connection between translation and the mediation of knowledge" (Baker 2018). Drawing on the studies of Chinese Confucian scholars on Islam, such as Wang Daiyu, Liu Zhi, and Ma Dexin, this article argues that Islam in China features many aspects of Neo-Confucianism that highly appreciate secular morality resulting in Confucian Islam, and that this was rationalized based on the similarities between Confucianism and Islam, placing Islam on a par with Confucianism for indigenization.
Ijidang(二止堂) is a private village school (seodang, 書堂) established in Okcheon, north Chungcheong province where Jungbong Jo, Heon(重峯 趙憲, 1544-1592 AD) had trained for his sound mind and body(yusangcheo, 遊賞處). Jo, Heon was a notable Neo-Confucian scholar of the Kiho School and also a righteous general leading soldiers in Joseon Dynasty. According to Ijidanggi(二止堂記), Ijidang was constructed to honor Jo, Heon and to train local talents in 1647 with the support of Song, Si-yeol(宋時烈, 1607-1689 AD),a representative scholar belong to Kiho School and other local Confucian scholars. Ijidang currently consists of Main Body(本體) in the middle along with the East(Dong-lu 東樓) and the West Pavilions(Seo-lu 西樓) attached to each side. The Main Body and the Dong-lu firstly constructed were to give lectures and to rest within. Ijidang has undergone several changes in its form so far. The surrounding nearby Ijidang shows characteristics of the Confucian architecture for training(J eong-sa, 精舍) and the building itself was to be built in a scenic place apart from the secular world in which scholars stayed, cultivated their body and mind or taught disciples within. The lecture space of Ijidang is positioned next to the main hall(Dae-cheong 大廳) unlike other typical forms of a three-bay building(samganjije 三間之制) at that period. West lu, a two-story building added afterwards in the early 18th century representing characteristics of the Gate Pavilion(Mullu, 門樓) of Neo-Confucian Academies(Seo-won, 書院) in Joseon Dynasty was typically located where the entrance and the ground floor of the main building are visible simultaneously.
이 글에서는 정재 남대년(1887~1958)의 학문과 사상을 리기심성론에 관한 견해, 유교경전해석, 역대인물평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리기 심성론에 대한 정재의 견해를 살펴보면, 정재는 리무위(理無爲), 기유위(氣有爲)의 주장을 평생 견지하였다. 다음으로 스승 간재의 성사심제설(性師心弟說)에 대한 정재의 입장을 살펴보면, 그것이 공자와 맹자의 도통을 이은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심의 주재성이라는 측면은 잘 드러내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심즉리설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정재의 유교경전해석을 살펴보면, "논어"와 "맹자"를 중심으로 하여 사서에 대한 해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는 사서를 중시했던 주자 이래의 성리학의 전통을 이은 것이라고 하겠다. 정재는 "논어"의 해석을 통해서는 인과 효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맹자"의 해석을 통해서는 사단과 사덕의 관계를 정밀하게 규명하고, 사(士)로서의 자의식을 보여주었다. 또한 "대학"의 자기설(自欺說), "중용"의 계구설(戒懼說)을 분석하기도 하였다. 또한 정재는 그의 "정재집"에서 중국과 우리나라의 여러 인물에 대한 평가도 진행하였는데, 그 평가의 기준은 절의와 식견이었다. 정재는 굴원과 노중련의 충성과 절의를 높이 평가하였으며, 진덕수는 학문적으로 뛰어난 분이었지만 출처에는 문제가 있었다고 평가하였다. 청의 육롱기와 장리상을 비교하면서, 육롱기가 이적의 나라인 청나라에서 벼슬을 한 것은 절의를 저버린 것이었다고 평가하였다. 정재는 우리나라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평가를 진행하였는데, 포은은 우리나라에서 리학을 연 분으로, 정암은 지치를 회복하려 한 분으로, 퇴계는 해외 주자의 적전(嫡傳)으로, 율곡은 내성외왕을 실천한 유학의 표준으로, 스승 간재는 당대의 진실한 학문을 지닌 분으로 평가하였다.
본 논문의 목적은 고려후기 급변하는 시대상황에서 삶을 영위한 백문보의 역사의식을 재조명하여 그 속에 함의되어 있는 사상적 특성을 고찰하는데 있다. 백문보는 권부와 백이정의 영향으로 유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유교의 경전에 입각하여 나라를 근심하고 백성을 구휼하려는 자세로 낡은 제도를 개선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백문보는 공리와 화복의 학설을 따르지 않고 유교경전으로 돌아갈 것과 불교에 대한 교단적 비판을 통해 배불숭유론을 전개하며, 토지제도를 비롯한 제 모순을 척결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 유교사회로의 전환을 시도하였다. 또한 그는 당시 정책의 문제점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개선방안을 제시함으로써 민생안정을 도모하였다. 백문보의 변통적 시무정책론은 무엇보다 유교적 사회구조 속에서 근본이 되는 백성의 삶을 시대적 적합성에 따라 가장 효율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사회변화의 방법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백문보는 당시 백성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려 하였고, 백성들을 고통과 도탄에 빠뜨리고 있는 권세가들의 전횡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그의 태도는 고려후기 신진사류들의 사상적 입장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추만(秋巒) 정지운(鄭之雲)(1509-1561)은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사칠논변(四七論辨)의 단초가 된 "천명도설(天命圖說)"를 그린 당사자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추만 정지운이라고 하는 인물에 대해서 학계는 물론 일반대중들도 깊이 있는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정지운에 대한 선행연구도 "천명도설(天命圖說)"의 내용 분석을 위주로 하는 미시적 방식을 취하는 데 머물러 있다. 정지운의 삶과 학문이 그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맥락에서의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지운은 "천명도설(天命圖說)"를 지어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논리적 정당성을 이론적으로 밝혀 기묘사림(己卯士林)을 신원하고, 그들의 유지를 정연하게 체계화함으로써 조선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성숙시키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사림파의 성리학설이 정국을 주도하는 정치사상으로 자리 잡는다는 점을 볼 때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를 두고 이황과 기대승 간에 벌어진 논변은 조선 성리학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요컨대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는 "소학(小學)"과 "근사록(近思錄)"의 이해 수준에 머물러 있던 당시 상황에서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을 본격화함으로써 조선 전기 성리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황과 기대승은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를 중심으로 논변함으로써 조선 성리학을 이론적으로 심화시키는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이때 정착된 사림파의 심학화(心學化) 경향은 명종과 선조대를 거치면서, 완전히 조선 정치사상사를 주도하는 정치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는 그러한 정치사상사의 흐름을 견인한 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가 지니고 있는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확인하게 된다.
본 연구의 목적은 고려 말과 조선초기라는 역사적 전환기에 삶을 영위한 원천석의 역사의식과 유불도 삼교관을 탐구하는데 있다. 원천석은 당시 백성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려 하였다. 백성들을 고통과 도탄에 빠뜨리고 있는 권세가들의 전횡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그의 태도는 고려 말 신진사류들의 입장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는 요동정벌이 시행되자 고려의 기상을 떨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겼으나 현실상황은 자신의 기대와는 다르게 전개되어 나갔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말을 돌려 회군을 함으로써 국가적 위기상황을 맞이하게 되자 원천석은 이성계의 행위에 대한 강한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였다. 원천석은 유학자로서 불교와 도교를 부정하지 않는 자세를 견지하였다. 그는 유불도가 하나의 이치로 통하는 것이라 파악하였다. 유학에 학문적 토대를 둔 그가 유교 그 자체뿐만 아니라 불교와 도교적 세계관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도모하여 유교적 사유체계에서 오는 현실적 갈등과 대립의식을 승화시키고 있었다. 열린사회와 글로벌화를 지향하며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현대는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고 점차 민족 간 문화적 교류 빈도가 증대해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적 변화과정으로 볼 때, 타자에 대한 넓은 이해와 소통, 그리고 상호존중의 교섭적 특성을 갖는 원천석의 유불도 삼교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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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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