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Korean Traditional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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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자원의 혁신성, 학습지향성, 이들의 상호작용이 혁신효과 및 사업성과에 미치는 영향 :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비교연구 (The Impact of Human Resource Innovativeness, Learning Orientation, and Their Interaction on Innovation Effect and Business Performance : Comparison of Small and Medium-Sized vs. Large-Sized Companies)

  • 여은아
    • 중소기업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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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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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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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연구의 목적은 인적자원의 혁신성과 학습지향성이 혁신효과 및 사업성과에 미치는 영향관계를 연구함에 있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차이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다양한 업종의 실무자 479명으로부터 수집한 설문자료를 t-검정, 회귀분석 등을 이용하여 분석하였다. 연구결과에서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비해 인적자원의 혁신성, 학습지향성, 혁신효과, 사업성과 면에서 더 높은 수준을 보였다. 혁신효과를 종속변인으로 한 회귀분석 결과에서 인적자원의 혁신성, 학습지향성, 인적자원의 혁신성-학습지향성의 상호 작용 변인이 혁신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고, 기업규모의 조절효과도 확인되어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에 비해 인적자원의 혁신성이 혁신효과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고, 대기업의 경우 중소기업에 비해 학습지향성이 혁신효과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업성과를 종속변인으로 한 회귀 분석 결과에서는 학습지향성, 혁신효과, 인적자원의 혁신성-학습지향성의 상호작용 변인이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기업규모의 조절효과가 확인되었다. 연구결과를 토대로 기업을 위한 시사점이 제시되었는데, 중소기업과 대기업 모두 혁신효과와 사업성과를 끌어올리기 위해 인적자원의 혁신성과 학습 지향적 문화의 확산에 고루 투자함으로서 성공적인 혁신 상품과 서비스 개발을 이루고, 궁극적으로 사업성과의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봉수당진찬(奉壽堂進饌)의 무대와 공연 요소 분석 (Analysis of the Stage and Performance Elements for Bongsudang-jinchan Banquet in Joseon Dynasty)

  • 송혜진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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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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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3-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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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에서는 1795년 화성 행궁에서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열린 봉수당진찬의 의례와 악무를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 및 "정조실록", "홍재전서(弘齋全書)"등의 봉수당진찬 의례기록과 <화성능행도병>등의 도상자료, 일기체의 한글가사 작품인 이희평(李羲平)의 <화성일기(華城日記)>등의 자료를 중심으로 분석하여 무대와 공연요소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잔치의 주인공에게 충(忠)과 효(孝)의 의미를 담은 음악과 춤, 꽃과 음식, 술과 글을 예를 갖춰 올리는 궁중연향은 예악(禮樂)의 원리에 바탕을 둔 국가의례로서 조선왕조 500년 동안 고유한 음악문화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면서 '예'라는 상징적이며 총체적인 틀 안에서 상호 유기적인 관계에 놓여있던 연례의 음악과 춤들이 개별 악곡과 춤으로 해체되어 '작품화'되었고. 궁중음악과 춤의 철학이나 원리, 시공간에 대한 이해는 현저히 축소된 채, 음악과 춤의 전통은 형식과 예술적 표현 중심으로 변화해왔다. 1990년대 이후, 궁중의례 전통의 재현(再現)을 목적에 둔 연구와 행사가 추진되면서, 이와 연관된 공연예술 활동도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특히 봉수당진찬은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무대화 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原典)의 재현(再現) 및 복원(復原) 문제, 완성도 및 예술성에 대한 문제는 과제로 남아있으며, 지금까지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수록된 의주의 외형적 재현에 관심을 두었을 뿐, 무대조건이나 공연요소에 중점을 둔 심도있는 분석은 부족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 무대구성과 공연요소 중심으로 분석해 본 결과, 조선시대 궁중연향 중에서 유일하게 '행궁'에서 개최된 봉수당진찬은 '예악의 정치'를 의례와 악무로 구현하는 궁중연향의 기본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군신동락(君臣同樂)'의 친화의 비중이 높은 연향이었음을 밝혔다. 내연과 외연의 성격이 섞인 봉수당진찬에서는 가림막을 최소화하여 신분의 차서(次序)와 남녀유별(男女有別)의 원리를 충족시키면서도 삼면에 둘러친 휘장 안에 외빈의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술과 음식, 음악과 춤을 다 같이 공유하도록 배치되었다. 또한, 연향공간의 상징성을 내포한 차일을 백관들의 공간에 치고, 임금이 솔선하여 선찬(膳饌)과 산화(散華)를 명함으로써 군신동연(君臣同宴)의 의미와 범위를 확장시킨 점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봉수당진찬이 '예악의 원리'가 강하게 드러나는 여느 궁중 연향에 비해 '정(情)'을 나누는 화친(和親)에 기반을 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봉수당진찬에서는 여느 내연에서보다 임금의 역할과 비중이 높았으며, 특히 의주 외의 기록으로 전하는 여러 가지 상황 - 7작 이후에 정조가 신하들을 가까이 불러 나눈 대화, 신하들에게 음식과 꽃을 내림, 잔치를 주제로 직접 시를 짓고, 신하들에게도 이에 화답하게 한 일 등-은 의주에 따른 단선적인 연향의 진행에 변화를 주고, 연향의 의미를 확장시키는데 한 몫 하였다. 이밖에, 봉수당진찬의 주악과 정재의 구성을 분석해 본결과 연향에서 여러 인물들의 대화와 움직임이 매우 절제된 것은 여느 궁중연향과 비슷하지만, 춤과 음악을 통해 구현된 소리와 색채감은 매우 다채로웠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봉수당진찬에서는 정조 이전에 치러진 내연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정재를 상연하였고, 이 중에는 새롭게 초연된 레퍼토리도 있었으며, 또 기존의 공연을 새롭게 재구성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선유락>이나 <검무> 등, 지방 관아 및 민간의 레퍼토리를 궁중연향으로 수용한 점, 풍류방에서 즐겨 연주되기 시작한 생황을 <학무> 와 연계한 것은 전통적인 규범과 관습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궁중연향의 '열린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샤르댕의 아동 교육 장르화 - 18세기 프랑스 부르주아의 계몽주의적 아동관 (Chardin's Genre Paintings of Child Education: The Enlightenment Views on Children of the French Bourgeois Class in the 18th Century)

  • 고유경
    • 미술이론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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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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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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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This paper examines four genre paintings on the subject of child education by Jean-Baptiste-Sim${\'{e}}$on Chardin(1699-1779). The Governess, The Diligent Mother, Saying Grace, and The Morning Toilette garnered critical attention after they were exhibited in the Salon from 1739 to 1741. After the exhibition, the paintings were made into prints and frequently sold to members of the bourgeois class in Paris. The iconographical details of Chardin's genre paintings have, thus far, been compared to Dutch genre pictures of the seventeenth century. Further, most studies conducted on Chardin's paintings focus on formal analysis rather than the historical and social contexts. Through attempting social-contextual readings of Chardin's educational series, this paper argues that the significance of Chardin's painting series of child education lies in his representation of the ideal French bourgeois family and the standard of early childhood education in the eighteenth-century French Enlightenment period. In each of the four child education paintings, Chardin depicted a mother with children in a domestic space. Even though this theme derives from traditional Dutch genre paintings in the seventeenth century, the visual motifs, the pictorial atmosphere and the painting techniques of Chardin all project the social culture of eighteenth century France. Each painting in the child education series exemplifies respectively the attire of a French gentlemen, the social view on womanhood and the education of girls, newly established table manners, and the dressing up culture in a 'toilette' in eighteenth century France. Distinct from other educational scenes in previous genre paintings, Chardin accentuated the naive and innocent characteristics of a child and exemplified the mother's warmth toward that child in her tender facial expressions and gesturing. These kinds of expressions illustrate the newly structured standard of education in the French Enlightenment period. Whereas medieval people viewed children as immature and useless, people in the eighteenth century began to recognize children for their more positive features. They compared children to a blank piece of paper (tabula rasa), which signified children's innocence, and suggested that children possess neither good nor bad virtues. This positive perspective on children slowly transformed the pedagogical methods. Teaching manuals instructed governesses and mothers to respect each child's personality rather than be strict and harsh to them. Children were also allotted more playtimes, which explains the display of various toys in the backgrounds of Chardin's series of four paintings. Concurrently, the interior, where this exemplary education was executed, alludes to the virtue of the bourgeois's moderate and thrifty daily life in eighteenth century France. While other contemporary painters preferred to depict the extravagant living space of a French bourgeoisie, Chardin portrayed a rather modest and cozy home interior. In contrast to the highly decorated living space of aristocrats, he presented the realistic, humble domestic space of a bourgeois, filled with modern household objects. In addition, the mother is exceptionally clad in working clothes instead of fashionable dresses of the moment. Fit to take care of household affairs and children, the mother represents the ideal virtues of a bourgeois family. It can be concluded that the four genre paintings of child education by Chardin articulate the new standards of juvenile education in eighteenth century France as well as the highly recognized social virtues between French bourgeois families. Thus, Chardin's series of child education would have functioned as a demonstration of the ideal living standards of the bourgeois class and their emphasis on early childhood education in the French Enlightenment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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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공연에 나타나는 '관객 참여'방식 연구 - 런던 펀치드렁크(Punchdrunk)극단의 를 중심으로 (A study on 'audience participation' of contemporary theatre in 'Sleep No More" of Punchdrunk)

  • 전윤경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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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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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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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21세기 동시대공연의 화두는 단연 '관객의 참여'이다. 런던은 2000년대부터 관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립극장에서부터 먼저 나서서 공연을 라이브로 상영하는 획기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관객 찾기를 시도하고 있다. 또 극장의 경계를 넘어서 '버추얼 시대'에 맞는 극장으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런 국립극장의 변화는 다른 극장과 공연에 영향을 주게 되고 이에 따라 다양한 장르에 관심 있는 적극적인 '관객찾기'에 열중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관객이 직접 이동하며 창의적으로 내러티브를 구성해 가는 '관객참여'형 공연의 등장을 만들어 낸다. 즉, 기존 공연의 관습적인 관람방식에서 탈피하여 일상의 모든 공간을 무대로 사용하는 환경연극(environmental theatre)이나 전통적인 무대에서 벗어나 그 공간의 '장소성'을 기반으로 하는 장소특정적 공연(site-specitic performance) 등 다양한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그에 따라 많은 실험적인 극단들이 나타났는데 본 연구에서는 그 중에서도 기존 공연의 관습적인 관람방식에서 탈피하면서 동시에 기존 공연의 관객성을 유지하며 '새로운 관객참여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펀치드렁크(Punchdrunk)극단에 주목한다. 이들의 시작은 런던의 무용학교 졸업생들이 방학기간 동안 운영되지 않는 학교를 무대로 공연한 작은 실험극에서부터이다. 그런데 초기 3명의 관람객이 7년 만에 런던의 '주류극단'이 되고 10년 만에 미국에 진출, 6년 동안 현재 뉴욕에서 장기 공연을 하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금까지도 전석매진을 기록하고 있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펀치드렁크 극단이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관객이 경험을 만들어가는 수행주체로 전환시킴으로써 공연의 극적요소를 극대화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는 펀치드렁크 극단의 극적요소의 특성이 어떻게 관객을 참여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현재 이 극단을 대표하고 있으며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를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또 구체적인 분석을 위해 관객을 총 3단계 'narrative visitor', '걸어 다니는 관객', '가면을 쓴 관객'으로 구분하고 그들이 펀치드렁크극단의 공연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변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첫 번째 단계인 'narrative visitor'에서는 Louis Marin의 디즈니테마파크의 3단계 진입론을 적용하여 분석했고 두 번째 단계인 '걸어 다니는 관객'에서는 질 들뢰즈의 노마디즘을 적용하여 분석했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인 '가면을 쓴 관객'에서는 관음자됨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조선후기 백동의 재료 구성과 변화 (Material composition and change of baekdong alloy in the late Joseon period)

  • 공상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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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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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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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백동(白銅)은 구리에 다른 금속을 섞어 녹여 만든 합금으로, 현재 구리와 니켈의 합금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학자들의 연구 대상과 시기에 따라 백동은 구리에 일정 비율 이상의 주석을 더한 금속으로 정의되기도 하고, 구리에 주석과 아연과 납을 합금한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백동은 그 정의에 차이가 있어 용어의 해석과 표기에 혼란이 있어 왔다. 본 연구는 문헌 기록을 토대로 시론적으로나마 백동의 구성 재료를 정리하고 그 흐름을 살피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먼저 백동 합금의 바탕 재료가 되는 구리의 이용과 구리 합금의 종류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문헌의 백동 기록을 통해 그 사용과 인식을 정리해 보았다. 삼국시대 문헌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는 백동은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기까지 꾸준히 보이는데 관직의 상징물부터 교역품, 생활기물, 화폐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쓰였다.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백동의 합금 재료는 현재 합금의 재료로 정의되고 있는 구리와 니켈뿐이 아닌데, 시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구리를 합금의 바탕 금속으로 이용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구리 외의 합금 재료로는 주석, 비석 및 비상, 아연, 납 등이 등장하며, 그 과정에서 합금을 의미하는 백동과, 백색의 금속을 의미하는 백동이 혼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재 정의되고 있는 백동의 합금 재료인 니켈은 비교적 발견 시기가 정확한 금속으로 현대 공업과 산업 분야의 소재로 폭넓게 쓰이고 있다. 니켈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조선 말기에서 근대기로 추정되고 있으나 그 이용과 사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근대기 신문기사와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니켈의 수용과 그 이용을 함께 살피고, 장인들의 증험을 토대로 니켈을 이용한 백동 합금이 공예품에 사용된 시기를 추정해 보았다. 재료는 기술의 발전과 퇴보에 직접적인 요인이 되며, 기술의 발달은 문명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토대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시론적으로나마 합금의 재료를 중심으로 백동을 살펴보고자 하였으며 니켈이라는 재료의 이용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정정렬제 춘향가의 전승 및 유파·바디에 따른 분화 (Jeong Jeongryeol-je Choonhyangga's full transmission and differentiation according to the pansori schools or versions)

  • 송미경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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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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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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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논문은 판소리 전승의 관점에서 정정렬제 춘향가의 정체와 범주를 명확히 하는 한편, 현대판소리에 남아있는 정정렬제 춘향가의 궤적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전하는 정정렬 창 춘향가 소리 대목은 총 44개로, 사랑가 부분을 제외하고는 결연-이별-수난-재회 단락에 해당하는 대목이 거의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다. '이도령이 동헌으로 들어가는 대목', '황릉묘 대목', '어사가 춘향집을 찾아가 위로하는 대목'은 현행 춘향가와 장단 구성을 달리하는 차이가 있고, '이도령이 춘향 집 찾은 연유를 밝히는 대목'은 현행 춘향가에서 아니리로 구사되며, '남원에서 춘향을 열녀 대우하는 대목'은 박록주 창본에만 유일하게 나타나던 것이다. '어사가 남원 사람들을 모아 잔치 배설하는 대목'은 현행 춘향가에서 발견되지 않는 새로운 부분으로 연극적 재미를 추구한 창극소리에 해당한다. 한편 본 논문에서는 조선성악연구회의 활발한 창극 공연 및 <빅타판 춘향전>, <오케판 춘향전>의 연이은 발매가 있었던 1936년~1937년이 정정렬제 춘향가의 재정립에 중요한 시기였을 뿐 아니라, 그 이전에 정정렬제 춘향가를 사사한 창자들의 소리와 그 이후에 사사한 창자들의 소리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전자에는 박록주, 김여란, 김소희, 후자에는 김연수, 정광수, 박동진, 정광수, 강도근이 속한다. 또 하나, 김소희의 경우를 제외하면, 정정렬제 춘향가의 이러한 두 전승군은 정정렬제의 학습 시기에 따른 구분이면서 정정렬제 춘향가의 전판 계승 여부에 따른 구분,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성별에 따른 구분이기도 하다. 정정렬은 제자를 가르칠 때, 즉흥적인 판 짜기를 염두에 둔 '옛날식 판소리' 교수법과 판에 박은 소리를 염두에 둔 '근대적 판소리' 교수법을 병행하여 선택적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정정렬제 춘향가의 전승에는 여성 창자 위주의 오롯한 전판 계승과 더불어 남성 창자 위주의 유파·바디에 따른 분화 두 양상이 공존하게 되었다.

토착성에 기반한 아시아 여성주의 연구 시론 (Rethinking 'the Indigenous' as a Topic of Asian Feminist Studies)

  • 윤혜린
    • 여성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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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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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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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논문은 '토착성'에 대해 여성주의적으로 재위치시키고자 하는 시론적 작업이다. 한편으로 '토착성'은 넓게는 세계를 통합적으로 의미화해 온 방식으로서 오랜 전통과 실천을 통해 특정 지역 사회가 보유해온 성질이며, 좁게는 시간의 시험을 통과한 실용성을 지닌 생활환경 지식 등 안에 보유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젠더 관점에서 본 '토착성'은 문제적이다. 특히 전통의 이름으로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를 온존해 온 사회가 표방해 온 '토착성'은 여성의 몸과 주체성을 결박하는 강한 구속력을 갖는다. 그리하여 여성주의 진영은 '토착성'을 연구주제로 취급하는데 주저함을 갖고 있다. 하지만 보수적이고 가부장제적인 토착 사회로의 회귀를 의도하는 측에서 토착성을 낭만화하거나 실체화하는 경향이 있다 해도, 사실 토착성은 "저기 밖에" 고형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지구적 상품경제를 떠받쳐온 도구적이고 분절적인 지식 체계에 대안을 모색하려고 할 때 (아시아를 비롯한) 비서구적 토착 지식은 사람과 사회, 자연을 이어왔던 통합적 인식체계의 전범이 될 수 있다. 이는 '토착 지식'을 무시간적인 인공물로서가 아니라 역동적이고 살아 있어서 문화적으로 의미있는 체계로 재구성하고자 할 때 가능하다. 또한 생태여성주의적인 토착 지식의 재개념화와 함께 토착의 르네상스 현상은 비서구 문화와 지식 체계에 힘을 실어주면서 주변화된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 성원권에 대한 의식을 증강시킬 수 있다. 그리하여 본 논문은 그간 타자화되고 저평가된 토착 지식이 생태적 시민성의 자원으로 국가 경계를 넘어 재구성될 수 있음을 논변하고자 한다.

수륙재의 구성과 연행 -진관사 수륙재를 중심으로 (The Composition and Performance of Suryukjae)

  • 홍태한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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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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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7-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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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이 글은 불교 의례 중의 하나인 수륙재의 구성 방식을 살펴보고 연행 과정을 고찰한 글이다. 수륙재는 불교에서 행하는 망자 천도 의례의 하나로 전국의 사찰에서 행해졌으나 현재는 몇몇 사찰에만 남아있다. 수륙재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먼저 수륙재의 전반부는 수륙재를 준비하고 당위성을 확보하는 단계로 관욕을 제외하고는 세부재차가 없다. 옹호게+다게로 구성되며, 소문이 없고, 요잡바라가 중심이 된다. 수륙재의 중반부는 수륙재가 본격적으로 설행되는 부분으로 수륙재의 목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부분이다. 거불+다게+소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다라니바라가 중심이 된다. 아울러 세부 재차가 있어 해당 재차의 흐름을 설명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수륙재의 중반부에서는 사자단만 봉송이라는 세부 재차가 있고, 나머지 오로단, 상단, 중단, 하단에는 봉송이라는 세부 재차가 없다. 이 부분에 봉송이 없는 것은 마지막 재차인 회향봉송에서 모든 봉송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사자단에 모셔지는 사자가 수륙재의 목적 달성의 핵심이라는 의미이다. 사자가 있어야 무주 유주 고혼들이 천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범박하게 보아서 이것은 한국의 다른 천도의례와 상통하는 부분이다. 서울의 진오기굿에도 사자를 불러들이는 거리가 따로 있는 바, 다른 저승의 여러 신령들이 연이어 들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자가 들어오는 <사재삼성거리>에서는 사자가 망자를 데리고 저승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사자타령>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준다. 곧 진오기굿에서 사자가 망자를 데리고 저승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사재삼성거리>에서 보여주듯이 수륙재에서도 사자는 고혼을 데리고 저승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사자단만큼은 봉송이라는 세부 재차가 있는 것이다. 즉 불교의 수륙재가 다른 천도재와 재차 구성에서 차이가 있으면서도, 사자라는 관념만큼은 동일하다는 의미이다.

대순진리회의 효 윤리에 나타난 종교성 연구 (A Study on the Religiosity of Filial Piety Ethics in Daesoonjinrihoe)

  • 차선근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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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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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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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 글은 전통 효(Filial Piety) 윤리와 대순진리회(Daesoonjinrihoe)의 효 윤리를 비교의 지평에서 분석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전통 효 윤리는 현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변화를 요구받아 왔고, 그 핵심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수직적·일방적인 게 아닌 수평적·상호 호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이념과 대안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거의 없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민족종교인 대순진리회가 근대화 이후에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경험하면서 성장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교리체계에서 효 윤리가 어떻게 구축되어 있는지를 관찰하는 작업은 전통 효가 현대적 감각에 맞게 어떻게 윤색될 수 있는지를 살피게 하는 하나의 좋은 사례를 제공해줄 수 있으리라 본다. 이것을 요약하면, 첫째, 유교와 대순진리회는 봉친(奉親)을 효 윤리로 삼지만, 유교는 가부장적인 봉건성에 입각하여 아랫사람의 일방적·맹목적 희생을 강조하고, 대순진리회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지양하며 부모와 자식 사이의 상생(mutual beneficence)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유교적 효가 봉건질서를 추구하는 이념 속에서, 대순진리회 효가 새로운 종교적 세계인 후천 신세계의 원리인 보은상생과 인존(Respect For Man)의 이념 속에서 구축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둘째, 불교와 도교의 효는 부모 생전에 수복(壽福)을 누릴 것을 기원하고 사후에는 천도를 위해 발원하는 소극적·수동적인 것이다. 대순진리회의 효 역시 그러한 관념을 일부 포함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부모 스스로가 죄를 벗고 앞길을 닦아나가도록 유도하는 것까지 효의 범주를 더 넓게 잡는다. 부모와 자식의 수행을 동시에 요구하는 이런 효 윤리는, 자식이 수행 끝에 종교적 목표를 이룬 연후 받게 되는 복록을 부모도 동시에 누릴 수 있게 하고자 하는 대순진리회 세계관 때문에 성립된다. 셋째, 유교와 대순진리회는 선령향화를 효 윤리로 삼지만, 무속적 사고를 배제한 본래 유교(성리학)적 세계관 속의 효는 향화의 대상을 비인격적 존재로, 대순진리회는 인격적 존재로 상정한다. 따라서 유교에 비해 대순진리회의 선령향화는 관념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적이다. 넷째, 유교와 대순진리회는 모두 조상들의 은혜를 갚고자 하나 그 은혜의 내용과 보은에 차이가 있다. 유교에서는 조상들이 생명을 준 존재이기에 그에 대한 감사로써 향화를 올리는 것만으로 효가 성립되지만, 대순진리회에서는 조상신들이 자손의 도성덕립을 목적으로 60년 적공(積功)으로써 생명을 주면서 동시에 수도를 하도록 독려하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향화를 올리는 것과 더불어 수도까지 해야 효가 성립된다. 다섯째, 유교에서는 세속에서의 출세를 의미하는 입신양명이 효이지만, 대순진리회에서는 그 보다는 수도를 성공시켜 종교적 목표를 달성시키는 것이 더 큰 효로 규정된다. 여섯째, 유불도는 모두 도덕에 기반한 가족윤리로 효를 규정한다. 대순진리회 역시 그러하지만, 그 외에도 효에 종교적 구원을 위한 필수 윤리라는 위상을 더 부여한다. 왜냐하면 효의 부재는 세상을 병들게 하고 멸망케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면서, 동시에 60년 동안 적공(積功)을 한 조상신들과 직접적으로 생명을 준 부모들의 은혜를 저버리는 배은이 개벽시대에는 용납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대순진리회는 자신의 독특한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유불도의 전통 효 윤리들을 일부는 수용하고 일부는 재해석과 재창조 과정을 거쳐 윤색해 두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즉 대순진리회의 효는 인간 존중의 이념, 구체적으로는 보은상생과 인존(Respect For Man)사상 위에서 정립된 윤리 규정이며, 인격 완성과 도통이라는 종교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나 자신의 수행이자 복록을 더불어 누리기 위한 부모의 일정한 수행까지 요구하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개벽시대에 구원을 받기 위한 필수 윤리라는 대단히 강화된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라고 크게 그려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입지와 장소 특성으로 본 암각바둑판의 의미와 문화재적 가치 (A Study on the Meaning and Cultural Properties Value of Rock-Go-Board from the Viewpoint of Site and Location Characteristics)

  • 박주성;노재현;심우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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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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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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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종합적인 현황 조사 분석을 통해 국내 돌바둑판의 위치 및 형태 그리고 입지 유형을 파악하는 한편 주변 경물과 각자 그리고 인근의 전래지명과의 관련성 분석과 해석을 통해 암각바둑판의 본질적 특성 및 장소적 의미 그리고 문화재로서의 가치 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바둑판에 나타난 '네모난 바둑판과 둥근 바둑돌'의 천원지방적(天圓地方的) 형상, 흑백 바둑돌로 표상되는 음양조화 그리고 하늘 회전을 표현한 361로 등은 '우주적 질서가 투사(投射)된 상징체'이다. 또한 영원성을 바탕으로 바둑 삼매경에 빠진 '귤중지락(橘中之樂)'과 '상산사호(商山四皓)' 그리고 '난가(爛柯)' 모티프는 속세를 벗어난 망우청락(忘憂淸樂)의 '위기선미(圍棋仙味)'를 통해 '인생과 자연'의 관계를 시공간적으로 일치하고자 했던 천인합일의 표상이자 우미와 소요를 추구한 고아한 풍류였다. 본 연구를 통해 확인된 돌바둑판은 총본 연구는 종합적인 현황 조사 분석을 통해 국내 돌바둑판의 위치 및 형태 그리고 입지 유형을 파악하는 한편 주변 경물과 각자 그리고 인근의 전래지명과의 관련성 분석과 해석을 통해 암각바둑판의 본질적 특성 및 장소적 의미 그리고 문화재로서의 가치 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바둑판에 나타난 '네모난 바둑판과 둥근 바둑돌'의 천원지방적(天圓地方的) 형상, 흑백 바둑돌로 표상되는 음양조화 그리고 하늘 회전을 표현한 361로 등은 '우주적 질서가 투사(投射)된 상징체'이다. 또한 영원성을 바탕으로 바둑 삼매경에 빠진 '귤중지락(橘中之樂)'과 '상산사호(商山四皓)' 그리고 '난가(爛柯)' 모티프는 속세를 벗어난 망우청락(忘憂淸樂)의 '위기선미(圍棋仙味)'를 통해 '인생과 자연'의 관계를 시공간적으로 일치하고자 했던 천인합일의 표상이자 우미와 소요를 추구한 고아한 풍류였다. 본 연구를 통해 확인된 돌바둑판은 총 18개로 이중 강진 월남사지 돌바둑판, 양산 소한정 돌바둑판, 반룡대 돌바둑판 등 3개소(16.1%)는 이동이 가능한 석국으로 분류된 반면 방학동 돌바둑판을 비롯한 15개소(83.9%)는 자연 암반에 새긴, 원래 장소를 이탈하지 않은 암각바둑판으로 밝혀졌다. 돌바둑판의 입지조건을 유형화한 결과, 계류형 15개소(83.9%), 암봉형 3개소(16.1%)로 나타났으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은 소백산 신선봉 암각바둑판(1,389m)이었다. 총 15개 돌바둑판은 모두 500m 이하의 저산지에 입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둑판이 새겨진 입지는 속세와 멀지 않은 생활권의 일부였으며 모두 경관성이 탁월한 계곡 및 산봉에 입지하였다. 돌바둑판은 옛 선비들의 풍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찰되는바 특히 암각바둑판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조화를 추구하며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 함께 노니는 풍류도의 정신을 전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즉 궁극적으로 바둑의 전통적인 상징성인 '은일의 매개체이자 자연귀의의 도에 다다를 수 있는 선비문화의 정수'인 동시에 유선적 취향의 도구로서 자리매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징적으로 암각바둑판이 새겨진 단양 소백산 신선봉을 비롯하여 괴산 선국암, 무주 사선암, 장수 신선바위 등은 신선과 관련된 지명의 일체감이 매우 높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선' 바위와 암각바둑판이야말로 선계에 대한 숭배와 동경의 소통방식이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된 경관대상이자 조망처로 판단된다. 한편 암각바둑판이 입지하는 장소의 입지유형 등 물리적 환경과 팔경 및 동천구곡의 설정 여부, 유학자 등의 관련 여부를 중심으로 한 '인간활동' 그리고 '상산사호' 모티프 및 '난가고사' 상징의미 등 3가지를 '장소정체성 판단을 위한 해석 틀'을 기준으로 하여 고찰한 결과, 암각바둑판 주변에 각자 되어있는 동천, 동문 등의 모티프는 주자학적 '구곡팔경'의 개념 보다는 선취적 '선유동천' 개념의 공간성 모색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계류형 암각바둑판이 조성된 공간은 유가의 은둔지향적 공간이나 선도적 은일지향적 공간으로 시대추이에 따라 습합되어 온 것으로 판단되며 산봉형의 암각바둑판은 별도로 신선 강림의 숭엄지향성이 장소정체성 지배의 중요 요인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암각바둑판이 조성된 곳을 포함하여 그 주변은 동천구곡이나 팔경의 일부로 널리 알려진 승경의 요처임이 확인되었다. 또한 선비 및 사대부 계층이 주체인 주변 각자들 중에도 신선 관련 표현어가 다수 발견됨에 따라 바둑판 조영의식의 이면에는 신선경 동경을 바탕으로 한 선도적 취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총합할 때 암각바둑판은 조선조 선비들의 은일과 운둔을 통한 자연경영의 문화 현상이 집약적으로 함축된 유산이자 전래 승경의 요처로, 명승과 같은 자연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탁월한 대상임이 확인되었다. 현재 남한내 17개의 돌바둑판 중에서 소백산 신선봉 암각바둑판을 비롯하여 방학동 암각바둑판, 충주 사로암 암각바둑판, 무주 사선암 암각바둑판, 양산 어곡동 반룡대 석국 등은 세월의 풍파와 사람들의 접촉으로 마모되면서 바위가 깨어지거나 바둑판 줄이 희미해지고 있다. 또한 언양 반구대 집청정 암각바둑판은 토사 매몰로 그 형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암각바둑판은 자연과 바람의 흐름을 그대로 투영한 예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탁월한 조형물이자 선인들의 자연 사랑의 마음과 선계동경의 문화가 만나 이루어진 문화유적으로, 이에 대한 국내 분포 현황에 대한 체계적인 정밀조사와 보존관리가 시급하다고 사료된다. 18개로 이중 강진 월남사지 돌바둑판, 양산 소한정 돌바둑판, 반룡대 돌바둑판 등 3개소(16.1%)는 이동이 가능한 석국으로 분류된 반면 방학동 돌바둑판을 비롯한 15개소(83.9%)는 자연 암반에 새긴, 원래 장소를 이탈하지 않은 암각바둑판으로 밝혀졌다. 돌바둑판의 입지조건을 유형화한 결과, 계류형 15개소(83.9%), 암봉형 3개소(16.1%)로 나타났으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은 소백산 신선봉 암각바둑판(1,389m)이었다. 총 15개 돌바둑판은 모두 500m 이하의 저산지에 입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둑판이 새겨진 입지는 속세와 멀지 않은 생활권의 일부였으며 모두 경관성이 탁월한 계곡 및 산봉에 입지하였다. 돌바둑판은 옛 선비들의 풍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찰되는바 특히 암각바둑판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조화를 추구하며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 함께 노니는 풍류도의 정신을 전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즉 궁극적으로 바둑의 전통적인 상징성인 '은일의 매개체이자 자연귀의의 도에 다다를 수 있는 선비문화의 정수'인 동시에 유선적 취향의 도구로서 자리매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징적으로 암각바둑판이 새겨진 단양 소백산 신선봉을 비롯하여 괴산 선국암, 무주 사선암, 장수 신선바위 등은 신선과 관련된 지명의 일체감이 매우 높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선' 바위와 암각바둑판이야말로 선계에 대한 숭배와 동경의 소통방식이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된 경관대상이자 조망처로 판단된다. 한편 암각바둑판이 입지하는 장소의 입지유형 등 물리적 환경과 팔경 및 동천구곡의 설정 여부, 유학자 등의 관련 여부를 중심으로 한 '인간활동' 그리고 '상산사호' 모티프 및 '난가고사' 상징의미 등 3가지를 '장소정체성 판단을 위한 해석 틀'을 기준으로 하여 고찰한 결과, 암각바둑판 주변에 각자 되어있는 동천, 동문 등의 모티프는 주자학적 '구곡팔경'의 개념 보다는 선취적 '선유동천' 개념의 공간성 모색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계류형 암각바둑판이 조성된 공간은 유가의 은둔지향적 공간이나 선도적 은일지향적 공간으로 시대추이에 따라 습합되어 온 것으로 판단되며 산봉형의 암각바둑판은 별도로 신선 강림의 숭엄지향성이 장소정체성 지배의 중요 요인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암각바둑판이 조성된 곳을 포함하여 그 주변은 동천구곡이나 팔경의 일부로 널리 알려진 승경의 요처임이 확인되었다. 또한 선비 및 사대부 계층이 주체인 주변 각자들 중에도 신선 관련 표현어가 다수 발견됨에 따라 바둑판 조영의식의 이면에는 신선경 동경을 바탕으로 한 선도적 취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총합할 때 암각바둑판은 조선조 선비들의 은일과 운둔을 통한 자연경영의 문화 현상이 집약적으로 함축된 유산이자 전래 승경의 요처로, 명승과 같은 자연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탁월한 대상임이 확인되었다. 현재 남한내 17개의 돌바둑판 중에서 소백산 신선봉 암각바둑판을 비롯하여 방학동 암각바둑판, 충주 사로암 암각바둑판, 무주 사선암 암각바둑판, 양산 어곡동 반룡대 석국 등은 세월의 풍파와 사람들의 접촉으로 마모되면서 바위가 깨어지거나 바둑판 줄이 희미해지고 있다. 또한 언양 반구대 집청정 암각바둑판은 토사 매몰로 그 형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암각바둑판은 자연과 바람의 흐름을 그대로 투영한 예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탁월한 조형물이자 선인들의 자연 사랑의 마음과 선계동경의 문화가 만나 이루어진 문화유적으로, 이에 대한 국내 분포 현황에 대한 체계적인 정밀조사와 보존관리가 시급하다고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