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Jo Jeongsan

검색결과 13건 처리시간 0.016초

A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Kang Jeungsan and Jo Jeongsan Described in Chapter Two of Progress of the Order

  • KO Namsik;Jason GREENBERGER
    • 대순사상과 동아시아종교
    • /
    • 제3권1호
    • /
    • pp.33-56
    • /
    • 2023
  • Although English-language academic materials on Kang Jeungsan (강증산/姜甑山 1871-1909) are steadily increasing, the same cannot be said of Jo Jeongsan (조정산/道主 趙鼎山 1895-1958) who remains under-researched as figure of profound significance to the Korean new religion Daesoon Jinrihoe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 Furthermore, in materials produced by Daesoon Jinrihoe that are later translated into English, the connections that exist between Kang Jeungsan and Jo Jeongsan are often reduced to a few representative examples, when, in fact, many additional examples could be provided for a more comprehensive understanding. Comprehending the basis for the first succession in the three-figure orthodox religious lineage of Daesoon Jinrihoe is crucial to task of properly differentiating Daesoon Jinrihoe from seemingly similar Korean new religions that enshrine Kang Jeungsan as their Supreme God. The research presented in this article, "A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Kang Jeungsan and Jo Jeongsan Described in Chapter Two of Progress of the Order," will provide readers with a thorough overview of the basis for Jo Jeongsan's successorship in the orthodox religious lineage of Daesoon Jinrihoe, through an in-depth exploration of Chapter Two of Progress of the Order from Daesoon Jinrihoe's main scripture, The Canonical Scripture. Furthermore, this article will include special explanatory notes to ensure that it can be easily read even by non-specialists.

Jo Jeongsan in Context: "Second Founders" in New Religious Movements

  • INTROVIGNE, Massimo
    • 대순사상과 동아시아종교
    • /
    • 제1권1호
    • /
    • pp.17-37
    • /
    • 2021
  • Scholars of new religious movements have emphasized the role of "second founders," such as Judge J.F. Rutherford for the Jehovah's Witnesses, Brigham Young for the Mormons, or Deguchi Onisaburo for Oomoto. They systematize and structure movements often created by the "first founders" with a minimal organization only. The paper argues that the model for the sequence first founder/second founder described by these scholars is the relationship between Jesus and Paul of Tarsus at the origins of Christianity. It proposes a comparison between Jesus of Nazareth and Kang Jeungsan, who established the tradition leading to present-day Daesoon Jinrihoe. It then summarizes the biography of Jo Jeongsan, recognized by Daesoon Jinrihoe as its "second founder" within the same tradition, and discusses the analogies between his connection to the "first founder," Kang Jeungsan, and the connection Paul of Tarsus established with Jesus Christ. The paper considers recent scholarship about Paul, often described as the "New Perspective on Pauline Scholarship." Paul never personally met Jesus Christ, except after the latter's death through a spiritual revelation, just as Jo Jeongsan never met Kang Jeungsan, except after his death, when he manifested himself to him in spirit. Nonetheless, Paul was able to decisively shape the largest branch among the followers of Jesus Christ, just as Jo Jeongsan originated the lineage leading to Daesoon Jinrihoe, currently the largest religious order among those recognizing Kang Jeungsan as the incarnated Supreme God.

종교와 항일독립운동, 그리고 쟁점 - 무극도 사례를 중심으로 - (Issues Involving the Relationship between Religion and the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A Case Study of Mugeukdo)

  • 고병철
    • 대순사상논총
    • /
    • 제35집
    • /
    • pp.39-71
    • /
    • 2020
  • 1945년 해방 이후 한국 사회는 일제강점기와 항일독립운동의 기억을 끊임없이 소환한다. 그 과정에서 소수의 신종교단체들이 항일독립운동의 주체로 호명되지만, 종교와 항일독립운동을 연결하는 논리는 미약하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이 연구의 목적은 정산과 무극도의 활동을 항일독립운동의 차원에서 조명하고, 이를 통해 종교와 항일독립운동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쟁점들을 성찰하는 데에 있다. 이와 관련해, 종래 항일독립운동과 연결된 정산과 무극도의 활동에 대해 대순진리회의 내부 자료(제II장)와 외부 자료(제III장)를 분석해 향후 과제를 제기하면서 종교와 항일독립운동 사이를 연결할 때에 성찰해야 할 부분들을 제시하였다(제IV장). 구체적으로, 제II장에서는 정산과 무극도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해 가족을 배경으로 한 정산의 항일의식과 3·1운동 참여 지시, 그리고 무극도의 산업활동으로 구분해 검토하였다. 제III장에서는 제2장의 내용에 대해 외부 자료들을 활용해 검토한 후 정산과 신자들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교단 내부와 외부 자료를 적극 발굴하는 일, 아울러 천자등극운동과 후천개벽 등을 항일독립운동 차원에서 조명하는 일을 연구 과제로 제시하였다. 정산과 무극도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해 전자는 무극도 내부와 외부 자료의 교차 검토를 가능하게 자료 내용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에, 후자는 종교적 항일독립운동의 외연을 확대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이어, 제IV장에서는 종교와 항일독립운동을 연결할 때 성찰할 부분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첫 번째는 종교 관련 활동의 포함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항일독립운동의 범주 설정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두 번째, 환원주의적 접근은 항일독립운동가들이 '신종교 형태'를 취한 이유, 그리고 종교를 가장했다고 평가한 단체들이 해방 이후에 종교적 정체성이나 성격을 유지·지향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종교와 항일독립운동 사이의 연관성을 정교하게 밝히기 위해 '부수적 차원'과 '목적적 차원'을 구분해서 '그 활동이 종교적 세계관에 근거하는지의 여부'와 '그 활동의 최종 목적이 항일독립인지 종교적 세계관의 구현인지의 여부'를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사회적 기억 장치들을 고려한다면, 종교계나 학계는 이 주제와 관련된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발굴하고 축적하는 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러한 관심은 항일독립운동의 근거를 종교적 세계관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수반해야 한다. 정산과 무극도의 여러 활동을 항일독립운동 차원에서 정교하게 조명하는 일도 이러한 관심과 노력을 통해 가능해질 수 있다.

'구세제민(救世濟民)'을 통해 본 조정산(趙鼎山)의 포교공부 일고찰 - 강증산 성사(聖師)와의 양산도(兩山道)의 원리와 관련하여 - (Jo Jeongsan's Religious Activity in the Context of the Social Role of Religion: Focusing on Propagatory Works and Soteriological Aims)

  • 고남식
    • 대순사상논총
    • /
    • 제47집
    • /
    • pp.203-239
    • /
    • 2023
  • 조정산의 '구세제민'을 중심으로 이글에서 논의한 조정산의 포교공부를 세 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정산이 구세제민을 위해 강증산 구천상제를 신앙의 대상으로 봉안하고 종단을 창설하여 강증산이 천지공사로 짜놓은 도수를 풀어 천지대도(天地大道)의 대체(大體)를 포교활동을 통해 인세에 정립한 데 있다. 이는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이라는 말과 같이 응원(應元)이며 시원(始原)인 강증산의 구세제민의 강세 목적을 따라 50년 공부를 통한 대사회적 종교활동이 조정산의 포교공부이다. 둘째, 1917년 4월에 강증산은 득도한 조정산에게 '태인에 가서 나를 찾으라'고 하였는데, 이는 구세제민과 관련해서 특별한 어떤 의미가 있음을 보여주는 계시로 강증산의 신앙대상화를 의미한다. 양산도의 원리로 보면, 대순(大巡)사상에서는 강증산이 영(靈)으로 머물렀다는 미륵전 미륵금불은 증산(甑山)을 상징하고, 미륵전 미륵금불을 받치고 있는 철 연화대 즉 솥은 정산(鼎山)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륵금불 격(格)에 해당되는 강증산이 종통계승자로 정한 인물을 미리 1917년에 득도케 하여 솥(鼎) 격에 해당되는 조정산이 다시 미륵불 격에 해당되는 강증산이 어떤 신격위인가를 인세에서 종단이라는 형태를 통해 신앙의 대상으로 정립한 행적이 된다. 양산도를 현세에 본격적으로 이루어 나가는 일이 무극도가 창도됨으로써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셋째, 조정산 자신이 직접 사회적 현장에 다가가 숭고한 강증산의 제민(濟民) 및 화민(化民)의 정신을 실천한 면에 있다. 이는 조정산이 사회에 근본이 되는 천지대도를 세워나가며 구세제민의 요체를 세운 것과 함께, 창생의 삶의 현실을 목도하고 대사회적 활동을 실현함이다.

증산과 정산의 도수(度數)사상 (The Concept of Degree Numbers in the Thought of Jeungsan and Jeongsan)

  • 김탁
    • 대순사상논총
    • /
    • 제30집
    • /
    • pp.235-270
    • /
    • 2018
  • 도수(度數)라는 용어가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에 의해 종교적으로 재해석되어 '세상을 다스리는 법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특히 도수는 새롭게 열릴 후천(後天)을 지배할 새로운 법도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이른바 그의 천지공사(天地公事)에서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그리고 증산의 계시(啓示)를 받아 무극도(無極道)와 태극도(太極道)라는 새로운 종교운동을 일으킨 정산(鼎山) 조철제(趙哲濟, 1895~1958)는 증산이 사용했던 도수에 "이상향을 이루기 위한 모든 종교적 행위"라는 보다 확대된 의미를 부여하였다. 한국종교사에서 도수라는 용어는 조선 말기에 출현한 종교적 천재였던 증산 강일순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었고, 도수사상의 맥(脈)은 정산 조철제가 창교한 무극도와 태극도에 면면히 이어졌으며, 훗날 박한경(朴漢慶, 1917~1996)이 1969년에 세운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로 발전적으로 계승되었다. 도수사상은 증산이 자신이 바로 상제(上帝)라는 종교적 자각에서 비롯되었고, "이제 선천상극(先天相克)의 도수를 후천상생(後天相生)의 도수로 바꾼다."는 종교적 선언에서 형성되었다. 증산이 강조한 것은 도수의 가변성(可變性)이다. 인간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처럼 정해지고 강요된 우주의 질서와 법칙은 없다는 것이 증산의 생각이다. 선천으로 규정된 낡고 지나간 세상에서 도수는 '정해진 법칙과 규범'으로 인정되었다면, 이제 다가오는 후천을 맞아 증산은 스스로 상제의 권위와 능력으로 선천의 도수를 후천의 도수로 뜯어고쳐 새로 결정했다고 믿어진다. 정산은 일생에 걸쳐 매우 많은 도수를 보았다. 증산이 행했던 도수는 비교적 그 수가 적은데 비해, 증산의 사상을 이어받은 정산은 거의 모든 그의 종교적 행위에 도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증산의 도수가 정산에 의해 더욱 확대되고 외연이 넓혀졌다.

韓國大巡真理會對 《大學》 思想的解釋與轉化 (The Interpretation of "The Great Learning" within the Korean New Religion Daesoon Jinrihoe)

  • 鍾雲鶯
    • 대순사상논총
    • /
    • 제34집
    • /
    • pp.141-169
    • /
    • 2020
  • 本文乃研究韓國大巡真理會對 《大學》 思想的解釋與轉化。韓國屬於漢字文化圈的一國, 受到中國科舉制度的影響, 亦以朱熹 《四書章句集註》 做為策試選才的版本。朝鮮儒者丁若鏞以實用角度注解 《大學》, 故後之儒者多以實學解讀 《大學》 思想。大巡真理會系譜創教主姜甑山, 即在此一傳統脈絡中, 以宗教修道的立場, 賦予新義。姜甑山十分重視 《大學》, 特別是「經一章」, 他認為 《大學》 兼具心性之學與實學, 尤其是誠意正心的真實修練。他將 《大學》 神聖化與神秘化, 促使 《大學》 成為宗教書籍, 《大學》 宛若道教的符籙, 具有奇異的神秘力量。再者, 只要誦讀 《大學》 經一章, 所有的疑難雜症皆可醫治, 促使 《大學》 成為醫療書籍。大巡真理會之道主趙鼎山將誠意正心的思想定位於「誠, 敬, 信」與「無自欺」, 並以誠意為自修之首。趙鼎山在姜甑山的基礎下, 以「誠, 敬, 信」結合「無自欺」的修煉, 在都典朴牛堂的闡釋與大力推廣之下, 成為現今大巡真理會的核心教義與修道工夫, 藉此可見韓國新宗教轉化 《大學》 之「誠意正心」思想, 與其所開展的現況!

The Post-Jeungsan Grassroots Movements: Charismatic Leadership in Bocheongyo and Mugeukdo in Colonial Korea

  • David W. KIM
    • 대순사상과 동아시아종교
    • /
    • 제3권1호
    • /
    • pp.57-85
    • /
    • 2023
  • The politico-economic waives of Western imperialism and colonialism, along with Christianity, affected East Asia's geopolitical landscape in the nine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While the Korean people (of the Joseon Dynasty) witnessed the incompetence of Buddhism, Confucianism, and folk religions in maintaining social cohesion with a sense of frustration, the new religious movements (NRMs) emerged to provide altrnative teachings of hope through historical figures like Choe Je-u, Kang Il-sun (or Kang Jeungsan), Na Cheol, and Pak Chungbin. In terms of popularity, colonial Korea (1910-1940) was impressed by the native groups of Cheondogyo (=Donghak), Bocheongyo, and Mugeukdo. Son Byong-hee (1861-1922) was the third leader of the first Korean NRM, but both Cha Gyeong-seok (1880-1936) and Jo Cheol-Je (= Jo Jeongsan) (1895-1958) participated in the post-Jeungsan grassroots movements. How, then, did both of these new religions originate? How did they conceptualise their deities and interpret their teachings differently? What was their policy for national independence? The article explores the socio-religious leaders, historical origin, organizational structure, deities, teaching and doctrines, patriotism, and conflicts of both NRMs in a comparative context. As such, this article argues that they both maintained patriotic characteristics, but that Cha's Bocheongyo community with its ' 60-executives' system (60 bang) failed to manage their internal conflicts effectively. Meanwhile, Jo Cheol-Je of Mugeukdo had the charismatic leadership needed to maintain Mugeukdo, despite being seen as a pseudoreligion under the colonial pressure of Shintoism.

Incarnation and Divine Essence in Daesoon Thought: A Comparative Study between Daesoon thought and Christianity

  • Rigal-Cellard, Bernadette
    • 대순사상과 동아시아종교
    • /
    • 제1권2호
    • /
    • pp.61-87
    • /
    • 2022
  • This article compares the concepts of divine incarnation as expounded in Daesoon Thought and in Christianity and questions the essence of the divinity in both traditions. In Daesoon Thought, The Supreme God, Sangje, saw major disorganization leading to extreme violence and doom and decided to incarnate on earth under the human form of Kang Jeungsan (1871-1909). Then the living God taught the solution to human suffering through the revelations he sent in 1917 to Jo Cheol-Je, or Jo Jeongsan (1895-1958) and the revelations were passed on to Dojeon Park Wudang who in 1969 founded Daesoon Thought. In Christianity, God incarnated in his son, Jesus Christ, who allowed for the radical transformation of the condition of man through his physical sacrifice. Daesoon differs in that Sangje did not offer himself as sacrifice when he came on earth but reorganized the world and taught how to apply benevolence to establish the Earthly Paradise. The affirmation that Daesoon Jinrihoe is both monotheistic and polytheistic is then analyzed. If the concept of monotheism seems to differ vastly between the two traditions, it appears that biblical monotheism is itself relatively young in the history of world religions so that Christianity has ancient roots germane to those of Daesoon Jinrihoe. The article concludes on the originality of this religion: though it is built on Daoism, Buddhism and Confucianism, it has transformed their vision of the deity and of its message in a most convincing manner.

대순진리회와 불교의 심우도 비교연구 (A Comparative Study on the Simwudo of Daesoon Jinrihoe and that of Buddhism)

  • 차선근
    • 대순사상논총
    • /
    • 제46집
    • /
    • pp.33-68
    • /
    • 2023
  • 대략 11~12세기에 등장한 심우도는 동아시아에서 특정 종교의 가르침을 안내하는 역할을 해왔다. 근대 이후 등장한 한국의 종교들도 소를 찾거나 기르는 그림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가르침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종교가 대순진리회다. 이 종교는 독창적인 6폭(또는 7폭, 9폭)의 심우도를 별도로 제작해 자신의 교리와 세계관을 설명한다. 대순진리회 심우도는 선(禪) 수행의 과정을 담은 불교 심우도와는 그 내용과 의미가 다르다. 소를 찾는다는 측면에서는 양자가 같지만, 불교 심우도의 소는 인간 본성을 상징하고, 대순진리회 심우도의 소는 증산이 펼치고 정산이 완성한 상생의 천지대도(天地大道)를 상징한다. 찾는 대상은 소지만, 그 소의 상징과 의미가 다르다. 이 때문에 불교 심우도는 오염된 인간의 본성을 청정하게 회복하여 중생제도에 나서는 그림으로, 대순진리회 심우도는 증산과 정산의 가르침을 찾아감에 따라 인간은 신선이 되고, 세상은 구제되어 지상천국으로 완성되는 그림으로 각각 설명된다. 불교 심우도의 최종 단계가 세상 구제를 위해 내딛는 수행자의 발걸음인 데 비해서, 대순진리회 심우도의 최종 단계가 인간과 세상의 구제와 완성을 동시에 성취함이라는 것은 두 그림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차이는 불교와 대순진리회가 추구하는 목적이 다른 데에서 나타난 결과다.

『전경(典經)』 「교운(敎運)」편 1장에 나타난 교운의 의미와 구절의 변이 연구 (A Study on the Meaning of 'Gyoun' and Earlier Variations of Chapter One of 'Gyoun' in The Canonical Scripture)

  • 고남식
    • 대순사상논총
    • /
    • 제36집
    • /
    • pp.153-199
    • /
    • 2020
  • 이글은 『전경(典經)』의 「교운(敎運)」편(編) 구절을 통해 교운(敎運)의 의미를 밝히고, 나아가 「교운」편 각 구절들의 변모를 『대순전경』 6판과 비교 대조하여 그 문헌학적 의미를 살펴볼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를 위해 먼저 「교운」편 1장 구절에서 교운이라는 단어가 있는 구절을 찾아 그 의미를 고찰하였다. 이어서 도출된 교운의 의미를 중심으로 모든 「교운」편 구절을 분류하여 교운 즉 가르침의 운세(運勢)를 펼치는 것과 관련해서 상제의 천지공사(天地公事, 1901~1909), 상제가 준 교법(敎法), 상제가 소유한 권능(權能)과 지혜(智慧), 상제의 제생(濟生), 상제가 재세(在世, 1871~1909)시에 미래사에 대해 미리 보여준 예시(豫示)라는 『전경』의 각 편 명이 갖고 있는 의미의 큰 범주 안에서 「교운」편 구절의 세부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교운」편 1장에 대한 연구의 의미는 기존에 진행된 「행록」, 「공사」, 「교법」편에 이은 『전경』의 각 편(編)별 연구의 지속적인 수행이라는 면과 함께, 학술적으로는 교운의 의미를 찾고 「교운」편 모든 구절들을 천지공사라는 큰 틀 위에서 『전경』각 편 명(名)과의 상관성 속에서 살펴보았다는 것과 문헌학적으로는 『전경』(1974)보다 9년 앞서 출판된 증산교단의 보편화된 경전인 『대순전경』 6판(1965)과 구절들을 비교 분석하여 「교운」편 구절들의 변이의 양상을 알아낼 수 있었다는 데 그 연구의 의의가 있다. 이상의 연구 결과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운의 의미는 「교운」편 1장에서 '교운을 보다', '교운을 펴다', '교운을 굳건히 하다'와 관계된다. 상제가 9년간(1901~1909) 천지공사를 행하여 인류에게 가르침이 전해진 후 우주에 유토피아인 후천선경(後天仙境)이 이룩되는 것은 상제가 준 가르침의 운세를 따라 연차적으로 완결된다는 것이다. 둘째, '교운을 보는 것'은 상제 가르침의 처음과 마침의 전체적인 모습을 말한다. 상제가 교운 공사를 보았기 때문에 교(敎)는 상제로부터 시작되고 전개 발전하여 종국적으로 후천선경(後天仙境)이라는 상제 천지공사의 목적이 구현된다는 것이다. 셋째, '교운을 펴는 것'은 상제로부터 단순히 천지공사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수교자(受敎者)로서의 당시의 종도(從徒)들의 참여의 시대를 지나, 이후 상제로부터 천부적으로 종통(宗統)을 전수(傳受) 받아 계승한 종통계승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는 구절의 '마음먹은 대로 왕래하고 유력(遊歷)한다'는 '두목'이라는 용어로 예시된 내용이 종통계승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상제의 화천(化天) 뒤에 교운을 펴는 역할을 한다는 신앙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이는 『전경』의 교운 편(編) 1, 2장을 통해 연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넷째, '교운을 굳건히 하는 것'은 상제의 천지공사로 도통군자가 필출(必出)하며, 또 음해(陰害)하지 말라는 것은 인간의 자기 수행에 의한 인격 완성의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이 인격의 완성은 교운을 굳건히 한다는 상제의 주장에 합치되는 인간의 수행 과정임을 보여준다. 다섯째, 『전경』 「교운」편 1장 구절들에 대해 『대순전경』 6판(1965)을 대비시켜보면, 두 문헌에서 거의 같은 구절은 10개 정도이다. 또 각 문헌의 서술이 단어 상 한글이 한문으로 축약되거나, 다른 용어로 나타나는 구절들이 있다. 내용의 서술이 몇 개의 어구 및 문장들에서 차이가 나는 구절들도 있다. 또한 각 문헌의 서술이 시기상 차이가 나는 구절들도 있으며, 『전경』 「교운」편 1장과 『대순전경』 6판 상호 간에 없는 단문(短文) 및 장문(長文)들도 교차적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