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do castle located in Namdong-ri, Imhoi-myon, Chindo-kun Cholla South Province is 610 meters long 5.3 meters high, and 20,000 square meters wide. This castle hasn't an accurate built year record. But there is still a great possibility of its having been built in the Sam-kuk (Three Kingdoms) era (around A.D. 300∼700). This castle seems to have been enlarged after 1438 because Manho-pu (lower unit of government office in Chosun dynasty) in Namdopo first appeared in the 20th year of King Sejong's reign. The main office, guest rooms, official residency of the castle were remov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and the land of the castle was sold separately for housing in the name of liquidation of Korean history. Thus, the Namdo castle that served as a naval base to defeat the Japan-based pirates' invasions throughout the Chosun period disappeared. As of Oct. 2000. 28 houses including a town hall occupy the site of the castle and are expected to be removed according to the restoration program of the castle. In this thesis, I'd like to study about the characteristics of housing in the site of the castle. To figure out the direction of the restoration program. I interviewed a few relating public officials in Chindo County Office.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housing, I surveyed the residents for the surrounding of housing.
This article studies that Korean literature has been renewed to World literature-oriented in the history of Modern Korean literary criticism from early modern period to present for reflecting the slogan, "globalization of Korean Literature" as well as contextualizing the necessity, "new relationship between Korean literature and World literature". Some writers, such as Lee Gwangsoo a pioneer of Modern Korean literature and the group for foreign literature[haioei-munhak-pa] introducing World literature to Korea and Lim hwa a prominent critic of proletarian literary theory under Japanese Colonial period, have understood European literature as World literature Korean literature had to reach. Inevitably the hierarchical relation between Korean literature and European literature as World literature had been interiorized to them. Meanwhile Jo Dong-il and Paik Nak-chung who have been representative researchers of Korean literature had tried to broken down the hierarchical relation between Korean literature and European literature interiorized to Korean writers until the 1980s, with Korean literature could be accomplished to World literature meaning. Since the late 1990s Park Sung-chang and Park Sang-jin who are leading researchers of comparative literature in Korea these days, have emphasized the methodology of new comparative literature for 'universality of literature' between Korean literature and World literature, which have been the renewal way of Korean literature in today's age of globalization.
Seokgojeon(石鼓殿) is a protective pavilion that protects stone drums made in 1902 during the Korean Empire in connection with Emperor Gojong's Mangyuksun (51'st birthday) and the commemoration of the 40th anniversary of his reig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eokgojeon was dismantled and transformed into the bell pavilion of Bakmunsa Temple, which was a memorial temple for Ito Hirobumi in 1935. In November 1945, just after liberation, Bakmunsa Temple was burned down, and the Seokgojeon Hall, which was transformed into Jonggak(鐘閣), was relocated to the Changgyeongwon(昌慶苑). Outdoor Stage in 1966, and was dismantled in 1984 due to the Changgyeonggung(昌慶宮) Palace restoration project, and only the members are currently stored. Therefore, this paper intends to use it as a basic research data to examine the style of monumental buildings during the Korean Empire through literature surveys, absence surveys, and case studies of similar buildings during the same period.
본 연구에서는 세계체제론적 시각에서 연변지역의 역사적 변화 시기를 세계체제 주변부로 편입한 일제시기, 세계체제로부터 이탈한 사회주의 시기, 세계체제로 재편입한 개혁개방 이후시기 등의 세 개 시기로 구분하고 각 시기별 문화적 특성을 살펴보았다. 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세계체제 주변부로의 편입 시기 연변지역은 조선인이 집중된 지역으로서 한반도 문화가 우세하였지만 일제와 중국의 동화정책의 이중적인 영향을 받았다. 세계체제로부터 이탈 시기는 획일적인 사회주의 문화에 동화되도록 강요당하여 전통 문화의 보존이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체제로의 재편입시기는 중국정부의 민족정책의 완화로 전통적인 민족 문화가 부활하는 한편, 중국 내륙지역과 한국과의 교류가 확대됨에 따라 중국과 한국문화의 충격을 받아 조선족 문화의 보존과 발전이 어려움을 겪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 조선족 사회에서는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세방화(golcalization)시대에 부합되는 지역적 특색이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조선족 문화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최근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북한 문화유적에 대한 남한 고고학자들의 관심과 조사 열망이 고무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 있는 문화유적,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 DMZ)와 남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문화유적에 대하여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태봉국 철원성은 남북 분단이라는 상황에서 고고학적 조사가 진행되기에는 한계가 있어 일제강점기 조사 자료를 중심으로 철원성에 대한 조사 상황을 살펴보았다. 세키노 다다시(關野貞), 도리이 류조(鳥居龍藏), 오가와 케이키치(小川敬吉) 등이 진행한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궁성 남쪽에 석등 1기, 외성 남벽 동쪽에 치우친 부분에 고려 태조가 창건한 봉선사와 관련된 석등 1기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석등의 위치 비정은 가능하지만 철원성(궁성, 내성, 외성)의 구체적인 양상은 파악하기 어렵다. 향후 실질적인 조사가 진행되기 전에 태봉국 철원성의 전체 경관을 파악하기 위하여 남방한계선 이남에 분포하고 있는 관방유적, 생활유적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급속한 개발과 경작지에 대한 대구획정리는 철원성과 도성 방어 체제에 대한 경관 복원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경원선이 복원되는 과정에서 철원성 또는 봉선사지의 심각한 훼손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면에서 철원성과 도성의 경관을 복원하기 위하여 관계기관의 유기적인 협조와 고고학적 양상에 대한 사전 자료 축적이 선행되어야 한다.
"Jonkyongkak" which King, Sungjong of Yi dynasty established within Sungkyunkwan in 1475 is regarded as the first university library in Korea. On the basis of modern librarianship, however, it is desirable to recognize the fact that Keijo Imperial University Library is really the first university library in Korea. In this thesis, an attempt to study the Korean university libraries under the period of Japanese control is provided. Keijo Imperial University Library is the key institution in this study. This study will focus to review the following facts: 1)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Keijo. Imperial University Library; 2) the organization and staffing pattern, and budget of this library; 3) the acquisition policy and basic collection development plan of this library; 4) the library and other services of this library including readers services; 5) the relationship with other private college libraries; and 6) the impact of this library on the present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The followings are the outlined conclusions: 1. Japanese Government had established Keijo Imperial University Library in order to perform the colonial education policy of Korean peninsula. Furthermore, it was one of the import supporting agencies for the research activities which were necessary for Japan to govern the Southeast Asia including Korean Peninsula 2. The organization and staffing size and pattern of this library are much below to those of modern university libraries. They are somewhat below to the level which is necessary to perform the minimum basic library functions. 3. The priorities of book collection of this library are 1)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especially, materials on Law are much emphasized; 2) pure sciences and 3) technologies and agriculture. Therefore, the quantity of the materials on the field of technology and agriculture is very small. 4. The acquisition policies of this library are deeply influenced by the Japanese Government's colonial policy of Korean peninsula and her aggressive policy of Chinese Continent. 5. The major contribution of this library to the present Seoul National University Library is the transfer of 550,000 volumes of books and library building, but this building is now removed according to the transfer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Campus. 6. The staffing pattern of this library was, however, much ahead of that times. Especially, the facts that professional librarians were eligible to be appointed as the director of this library, and they had the faculty membership including faculty rank should be highly appreciated.
우리는 수많은 지리 오개념들로써 우리나라나 세계를 잘 못 이해하고 그릇된 관점으로 보고 있는지 모른다. 사회적으로 한번 구성된(만들어진) 그러한 오개념들은 세대를 거치며 반복적으로 재생산되거나 학습됨으로써 지속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대구 산간분지라는 오개념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지리학자 타무라(1933)와 타다(1940)에 의해 만들어지고, 식민지 이후에는 많은 한국의 지리학자들(교수와 교사)과 언론인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고 확산돼 온 것이다. 국제지형학회에서 편찬한 지형학 백과사전에서 산간분지 정의에 의하면, 대구의 예전의 역사적 관할구역뿐 아니라 오늘날 광역시역에서도 중심 평야지역은 주위 사방팔방 중에서 북과 남쪽 방향(북쪽, 북동쪽, 북서쪽 일부, 남쪽, 남동쪽)만 산지와 구릉지로 둘러싸여 있어 산간분지지형이라고 볼 수 없다. 대구는 남과 북 방향에 산지가 잘 발달해 있지만 동서로는 금호강 하류에 위치한 덕에 외려 평야 지형이 잘 발달한 개방적인 평야 혹은 평원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연구는 대구 산간분지 도시라는 지형 인식이 하루빨리 교정되고, 또한 한국과 세계에 관한 수많은 지리 오개념들에 대해 학계의 관심과 더불어 연구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본 연구에서는 경주읍성의 성벽과 성곽시설을 대상으로 그 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고 구체적인 규모와 구조를 밝히기 위하여 원형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확인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경주읍성의 위치와 규모를 고증하기 위하여 일제강점기 지적도 현재 지적도 현재 수지형도 발굴조사 유구 현황도를 도면중첩(over-lay) 한 결과 정확한 성곽유적의 위치와 규모를 확증할 수 있었다. 둘째, 문헌적 고증과 근현대의 연구사료 일제강점기의 유적조사 기록 보수정비 기록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 고증한 결과 체성과 치의 규모 및 구조를 고증할 수 있었다. 셋째, 조선시대의 여장규식과 관련 문헌기록을 통하여 여장의 원형을 고증한 결과 문종원년(1451)의 초기 경주읍성의 여장과 임진란 전후(16세기 경)의 경주읍성 여장의 원형을 추정할 수 있었다. 넷째, 성곽 유적 대부분이 멸실된 상태이나 경주읍성의 문헌적 고증과 근현대 연구 사료(발굴조사 보수 수리기록 현장조사)의 조사내용을 토대로 규모를 산정하고 구조를 추정하였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향후 복원정비의 기초자료로서 개별 유적의 원형복원도를 작성 제시하였다.
일제는 그들의 통치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우리 문화재에 대한 조사와 제도화를 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일본인 관료와 학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몇 번의 변화를 거쳐 체계화 되었고, 1916년에 제정된 "고적 및 유물 보존규칙"과 1934년에 지정된 문화재들은 현재 우리나라 문화재 정책의 시작점이 되었다. 이 글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주도로 진행된 문화재 정책을 문화재에 관한 전반을 심의하던 '위원회'의 인원 구성과 '문화재 목록'의 변화상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러한 사항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조선총독부는 문화재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기 위한 심의기구로 '위원회(보존회)'를 두었는데, 제도와 인적 구성 면에서 조선총독부 관료를 과반 이상 두도록 하여 조선총독부의 정책이 관철되도록 하였다. 이 속에서 조선인은 극소수가 참여하였는데, 그들마저 형식적인 구색 맞추기였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조선총독부가 조사하여 목록화한 문화재는 목록화 계기에 따라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첫 번째 목록(1909~1916)은 등 급제로 대표되는 세키노타다시에 의해 주도되었고, 두 번째 목록(1917~1933)은 대장법으로 대표되는 구로이타가쓰미에 의해 주도되었다. 구로이타가쓰미는 문화재 제도를 입안하고 목록을 공식화 하면서 세키노타다시의 영향에서 멀어지려 하였는데, 이러한 정황이 제도와 실제 목록 내용에서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세 번째 목록(1934~1945)은 1934년 지정문화재 목록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단계에서는 세키노타다시의 조사 성과도 반영이 되었으며, 종전의 규정에서 제외되었던 현존사찰의 중요 문화재도 포함이 되었다. 이렇게 1934년을 기점으로 현재 우리나라 문화재 목록의 기본적 체계가 만들어졌다.
파주목은 경기 서부의 행정 및 교통의 중심지로서 조선시대 지방행정처로, 왕의 능행 시 행궁의 역할을 하던 장소이다. 조선시대 한양과 의주를 잇는 의주로에 인접한 파주목 관아는 경기 북부 지역의 중요 장소로서 왕이 황해북도 지역에 위치한 제릉과 후릉, 파주 영릉과 장릉을 능행할 때 머물던 장소이다. 파주목 관아는 1900년대 이전까지 유지되어 오다 일제강점기 이후 관아 건물이 다른 용도로 사용되며 행궁으로서의 기능이 훼손된 것으로 보이며, 한국 전쟁에 의해 대부분의 건축물이 사라지며 현재는 파주목 관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소실된 파주목 관아의 복원을 위해서는 파주목 관아가 위치한 위치와 주요 건축물 등 관아 공간구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파주목 관아와 관련된 고문헌과 고서화의 조사 및 분석, 일제강점기 시절 지형도와 지적도, 토지조사부 등을 분석하여 파주목 관아의 위치를 추정하고 공간구성, 규모 등을 밝혀낸다면 파주목 관아 복원 시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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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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