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Ha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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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굿의 보전과 민속전승의 의미 - 서울지역의 부군당굿을 중심으로 - (The Preservation of maul-gut and meaning of the folklore-transmission)

  • 유승훈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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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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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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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In Seoul city, The maul-gut(마을굿) called bugundang-gut(부군당굿) have been transmitted by people lived on the banks of han-river. The purpose of this document is to make a study the present meaning of bugundang-gut that have been transmitted in metropolitan city. The bugundang-gut was the official ritual in a government office during the Chosun dynasty. However, the bugundang-gut had been spread along kyunggang(경강, Han-river in Seoul) in the late Chosun period. At that times, the population kyunggang area was increased with the inflow of outside population and the commercial destrict was extended to many district along kyunggang. The main poin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ly, I investigate that bugundang-gut have been transmitted by a Seoulite to the backbone. They are the main body of bugundang-gut transmitting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Secondly, I study about nami-janggun-sadangje(남이장군사당제) appointed to seoul city immaterial cutural properties. It is a kind of bugundang-gut. So namijanggun-sadangje was appointed to seoul city immaterial cutural properties, as it was supported by a local autonomous entity. Thirdly, I investigate a plan that can be handed down an offspring in seoul city. We must revise the cultural properties system like that of Japan. Even though many bugundang-gut isn't appointed to cutural propertie except nami-janggun-sadangje, we must recognize their importance and keep a record character of bugundang-gut by investigation in detail. Fourthly, I think that bugundang-gut must be developed a regional public holiday. If it is developed a regional public holiday, many young person can be take part in bugundang-gut.

아프가니스탄 틸랴 테페의 사르마티아(Sarmathia)식 검집 패용 방식의 전개 과정으로 본 동서교섭 (Thinking in Terms of East-West Contacts through Spreading Process of Sarmathia-Pattened Scabbard on Tillya-Tepe Site in Afghanistan)

  • 이송란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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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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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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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최근 북방유목민족인 사르마티아에 관한 고고학적 자료들이 증가하면서 사르마티아인들의 활동 양상과 그 실체들이 조금씩 규명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사르마티아인들의 동서 교역의 활동 양상을 사르마티아식 검집의 확산 지역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사르마티아인들의 검은 스키타이나 페르시아인들이 사용한 아키나케스(Akinakes)의 계보를 잇는 것이지만 손잡이나 패용 방식에서 손쉽게 칼을 뺄 수 있도록 변화되었다. 즉 양 측면에 달린 4개 돌기에 끈으로 연결한 검집을 허벅지에 부착시키는 패용 구조로 변한 것이다. 사르마티아식 검은 기원전 5세기 파지리크시기 알타이 지역에서 처음 등장한 이래 사르마티아인들의 활동 중심지인 남시베리아, 박트리아, 파르티아, 로마로 확산되었다. 이 글에서는 동서 교섭의 요충지인 박트리아지역에 속하는 아프가니스탄 틸랴 테페 4호묘에서 출토된 검집에 관심을 두었다. 사르마티아식 검을 패용한 채 매장되었던 틸랴 테페 4호묘의 묘주는 당시 쿠샨왕조의 지배하에 있었던 박트리아에서 상당한 위치의 인물로 파악된다. 묘주가 2자루의 사르마티아식 검을 패용하고 있었던 것은 박트리아에 사르마티아의 영향이 상당이 수용된 사실을 의미한다. 사르마티아인들이 동서교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산 물자를 실크로드에 공급하였던 이들의 역할과도 관련이 있다. 이에 사르마티아인들이 활동한 북방 초원 루트에 중국 한대 동경, 메론형 구슬, 수정구슬 등의 장식구슬, 금환연접구슬 등 중국 특히 비단이 생산되었던 남중국의 공예품들이 출토되는 경위에 관심을 가졌다. 모자이크 구슬은 당시 남중국 그리고 사르마티아와의 관계에 의한 것으로 살펴보았다. 거리적으로 먼 사르마티아와 남중국이 교섭할 수 있었던 중간 매체로는 흉노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하여 흉노의 유적에서 남중국에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금환연접구슬이 발견되는 점을 참고하였다. 남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유행한 금환연접구슬이나 모자이크구슬이 아프카니스탄의 틸랴 테페 유적에는 없는 반면 같은 초원길로 연결되는 사르마티아 유적이나 흉노의 몽골 유적에서 등장하는 점이 흥미로운 것이다. 이는 남중국과 사르마티아, 흉노와의 연결 루트를 상정하게 한다. 한편 사르마티아인들의 중심연대인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 사이 초원루트와 남중국을 잇는 교통로로는 운남에서 미안마를 지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인도 동부로 들어가는 서남실크로드로 판단된다. 1세기 동서교섭의 루트에는 북방 초원 루트, 남해 루트, 오아시스 루트 등 다양한 루트가 존재한다. 이들 루트들은 운반, 집산되는 물자의 특성이나 당시 정치적 관계에 의해 다양하게 사용되고 형성되었다. 이 글에서는 인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남중국을 잇는 최단거리의 길인 서남루트가 북방 유목민들인 사르마티아인들에 의해 사용되고 개척된 상황을 살펴본 것이다.

조선시대 능비(陵碑)의 건립과 어필비(御筆碑)의 등장 (Formative Stages of Establishing Royal Tombs Steles and Kings' Calligraphic Tombstones in Joseon Dynasty)

  • 황정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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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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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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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논문은 조선 초 중기, 조선후기, 대한제국기 세 시기로 나누어 조선왕릉에 건립된 신도비와 표석의 시기별 건립추이와 양식적 특징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그 결과 왕실 능비(신도비와 표석)는 일반 사대부가와 달리 건립한 시기와 주체, 후계왕의 의도에 따라 시기별 차이를 보이며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15~17세기는 왕릉 신도비의 건립과 재건이 이루어진 시기, 18세기는 신도비가 표석으로 대치되어 다수 건립되었고 국왕의 어필을 직접 돌에 새긴 어필비가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이며 대한제국기는 황제국으로 격상됨에 따라 조선 개국자인 태조와 왕후, 선조들에 대한 추숭(追崇)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표석 중건이 이루어진 시기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본다면, 결국 우리나라 능비의 역사는 조선후기를 기점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왕릉 신도비의 형식은 삼국시대의 부정형한 석비의 초보적인 형태에서 벗어나'귀부이수'형의 당비(唐碑) 형식을 수용한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 말 탑비의 퇴화된 양식에서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15세기 건립 당시부터 선왕에 대한 숭모 예를 표현하고자 하는 국왕과 왕의 치적이 국사(國史)에 모두 기록되어 있으므로 신도비를 별도로 세울 필요가 없다는 신료들의 입장이 대치되면서 건원릉 제릉 헌릉 구 영릉 4곳에만 건립된 채 왕릉에는 한동안 석비가 건립되지 않았다. 신도비 건립이 중단된 이후 17세기에 이르러 왕릉에 아무런 표(表)를 해 둘 수 없다는 의견이 제기됨에 따라 형식이 간소한 표석이 건립되기 시작했으며, 1682년 작 영릉(寧陵)의 표석은 최초로 왕릉에 건립된 표석이자 장대한 규모, 섬세한 조각기법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왕릉의 능표는 영조 재위 기간인 1740년대부터 대규모로 건립되었다. 열성(列聖)에 대한 추숭과 어필간행 등을 통해 자신의 왕위 계승의 전통성을 공표하고자 했던 영조는 제릉의 신도비를 재건하는 한편, 의릉(懿陵)을 비롯하여 총 20곳에 달하는 곳에 표석을 세우는 역사(役事)를 추진했고, 처음 친필 글씨를 돌에 새긴 어필비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 어필비 제작 현상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소실된 어필을 보존하려 한 숙종의 신념을 계승한 영조에 의해 제도적으로 추진되면서 어필을 새긴 능비가 등장한 배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시대사적으로 주목할만하다. 이러한 표석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다시 한번 다량 제작된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고종은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태조의 조선 건국에 두고 태조와 그 4대 선조에 대한 추숭과 기념물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고 전면과 후면 모두 자신의 글씨로 채움으로써 역대 어느 왕보다 통치자로서 권한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었다. 이상 언급한 왕릉의 신도비와 표석의 건립 추이는 동시대 원 묘에 건립된 신도비, 표석과 비교 고찰을 통해 시대별 특징과 왕실 조각품으로서 성격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날 것으로 생각한다.

선원사지 출토 금동축수의 표면색과 제작기법에 관한 연구 (A study of the surface color and the making technique of the Gilt-bronze roller knobs excavated from the Seonwonsa temple site)

  • 백승희;한민수;김수기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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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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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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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본 연구는 사적 259호 고려 선원사지 출토 금동축수를 통하여 기존의 기술사, 야금사로 제한되어 왔던 국내연구에서 벗어나 고대에도 현대 금속공예에서와 같이 경제적, 장식적인 목적 등으로 금 합금이 이루어 졌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고대 금동유물들과 선원사지 출토유물과의 연관성과 함께 표면색에 따른 금 함량비의 차이를 밝혀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선원사지 출토유물은 금 도금층의 표면색에 따라 육안관찰에 의한 Gold, White-Gold. Red-Gold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으며, 금도금의 표면색에 따라 금 함량의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 가지의 표면 색중 금 이외의 물질인 Cu가 많게는 $43.0\%$ 정도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Red-Gold type은 Cu를 합금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금된 금동시료의 피복기술은 수은이 $0.92\~19.04\%$가 검출됨으로써 수은을 사용한 수은아말감 도금법이 적용되었으며, 금 알갱이가 관찰되고 도금피막 두께는 $2.5\~25{\mu}m$로 도금기법 및 광쇠질의 차이로 인해 부분적으로 매우 불균일한 것으로 보아 금분 아말감을 하고 광쇠질로 광택을 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소지금속은 두 가지 방법으로 제작되었는데 하나는 순수한 Cu를 주조하여 제작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의 순수한 동판을 말아 연접되는 곳에 주석땜을 하여 제작하였다. 또한 주석땜을 하는 과정에서 주석땜이 외부에 묻어있는 곳은 도금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축수의 모양을 만든 후 금도금 작업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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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고등 공공주택지구 출토 회격묘 과학적 보존처리 (Scientific Conservation Treatment of Artifacts Collected from the Lime-soil Mixture Barrier Tombs Excavated from the Site of a Public Residential Area in Godeung-dong, Seongnam)

  • 김웅신;전주연;김범준;한민수;이민혜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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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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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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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성남시 고등동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회격묘 2기는 우씨 묘역에서 발굴되어 기록을 통해 묘주와 조성 시기를 유추 할 수 있는 유구이다. 말각방형으로 합장묘인 4호묘는 수습과정 중 외곽벽에서 글씨와 그림이 확인되었으며, 보존처리 및 적외선조사 결과 만사로 판단되었다. 말각장방형 단묘인 6호묘는 파묘되면서 일부 파괴되어 수습 후 야외전시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보존처리 결과 운아삽과 역청이 확인되고 잔존하는 형태가 조선시대 회격묘의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어 자문회의를 통하여 실내전시로 보존방향이 변경되었다. 역청은 분석 결과 송진으로 추정되며 이물질의 혼입으로 순도는 높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2기의 회격묘는 조선시대 무덤 양식의 변화 양상 등 학술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암침법(舍巖鍼法)의 변형(變形)에 관(關)한 연구(硏究) (The Study on The variational Forms of Sa-Ahm's 5 Element Acupuncture Method)

  • 김달호;김중한
    • 한국한의학연구원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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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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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7-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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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
  • 'Nei Jing(內徑)' first defined the interrelationship of the true and tile false between evil factor affecting health(雅氣) and vital essence energy(精氣). According to 「'Nei Jing(內徑)', the above interrelationship is explained as 'If state of evil domination is considered as sthenia-syndrome(雅氣盛則實), if the consumption of healthy energy Is considered as asenia-syndrome(精氣尊則虛): 'Nei Jing(內徑)', proposed major features of the medicall treatment by 'regluate the vatal energy of asthenia and sthenia, treat the sthenia-syndrome by purgation, and treat the asenia-syndrome by therapy of invigoration(調其氣之虛實, 實則瀉之, 虛則補之): The above interrelationship was interpreted as 'treat the asthenia-syndrome of child organ by invigorating the mother organ(虛者補其母)'in the 69th of 'The Classic on Difficulty',(難經 六十九難). Go-Mu(高武) of Myung-dynasty describe therapy for invigoration and purgation of itself-meridian(自經 補瀉法), which locating acupuncture points according to the Therorr of Five Element in the five shu points of itself-meridian(自經 五유穴), based on the generation in the ${\ulcorner}$A Synthetical Book of Acupuncture and Moxibustion(針灸聚英)${\lrcorner}$, Sae-hyun Jang(張世賢) further extended location acupuncture points of the five shu points to the other-meridian in the ${\ulcorner}$Gyeo Jung Do Ju Nan Gyung(校正圖註難經)${\lrcorner}$ Sa-Ahm's 5 Element Acupuncture Method(舍嚴五行鍼法) was originated in 1644, the middle of the Yi-dynasty. It linked the reinforcing and reducing in acupuncture therapy which incorporated tlle asthenia-syndrome and sthenia-syndrome of the hollow organs, based on principle of the Yin Yang 5 Element Theory(陰陽五行學說), not only to the generation in the 5 element(相生關係) but also to the restriction in the 5 element(相剋關係). Furthermore it was devised for the medical treatment by comning therapy for invigoration and purgation of itself-meridian(自經 補瀉法) with that of the other-meridian. Even though many original forms(正形) of the therapy for invigoration and purgation of the Yin Yang 5 Element Theory comply with the principle of the generation and the restriction based on the principle of the Yin Yang 5 Element Theory are abailable, variational forms(變形) are also recognized by examining the nature of the Sa-Ahm's 5 Element Acupuncture Method(舍嚴五行鍼法), For this reason, it is very difficult to understand the Sa-Ahm's 5 Element Acupuncture Method(舍嚴五行鍼法) thoroughly. therefore, those variational forms are obstacles for the beginners to study the Sa-Ahm's 5 Element Acupuncture Method. In order to understand the principle of the practical clinical application of the Sa-Ahm's 5 Element Acupuncture Method, this study investigated which principle was based on the variations of the locating acupuncture points' method for the acupuncture pr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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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촌지역 조선조 원림의 위치추적을 통한 경관 해석 (The Landscape Interpretation of Joseon Era Gardens in Old West Village, Seoul through the Locational Investigation)

  • 김한배;이승희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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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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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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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조선시대 서촌에서는 많은 성시원림들이 만들어졌고 그들 중 다수가 진경산수화로 그려졌었다. 본 연구는 먼저, 서촌의 대표적 원림들의 위치를 보다 실증적 기법에 의하여 규명하려 하였다. 조선조 진경산수화에 나타난 원림경관을 ArcGIS 3차원 지형 모델링과 비교함으로써 사실에 근접한 위치를 밝혀내고 이에 근거하여 지형과 경관의 특징을 해석하려 하였다. 원림추정지 주변의 지형을 3차원 지형모델로 작성한 후, 조망점을 이동시켜 진경산수도와 근접한 3D 모델의 구도에서 대상지의 위치를 찾아내었다. 이후 모형에 지적도를 중첩시켜 원림 터의 지번을 확인하였다. 그 결과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서촌의 초기 원림인 '청풍계 원림'은 인왕산 계곡의 종단부에 위치하여 외부로부터 감추어진 '위요형 경관'을 보인다. 중기원림인 '청휘각 원림'은 옥류동 계곡과 능선 사이에 위치하여 외부로 보다 개방된 '반(半)개방형 경관'을 보인다. 후기원림인 '서원 원림'은 대상지 중 가장 높은 능선 상단에 위치하여 '조망형 경관'을 보인다. 말기원림인 '송석원 원림'은 능선과 시가지의 접점 언덕에 위치하여 '개방형 경관'을 보인다. 즉, 서촌원림의 경관과 사회적 기능은 함께 점진적으로 개방되어 온 것으로 나타난다.

비파괴 성분 분석을 통한 18세기 초상화의 채색 특성 비교 고찰 - 유언호 초상화를 중심으로 - (Comparison of Painting Characteristics on Portraits by Nondestructive Analysis of Joseon Dynasty in 18th Century - Focusing on Yu Eon-ho's Portrait -)

  • 송유나;이한형;정용재;이혜윤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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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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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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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18세기 제작된 유언호 초상화에 대한 비파괴분석 통해 채색에 사용된 안료의 종류와 채색기법을 추정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18세기의 초상화 11점과의 채색특성을 비교해보았다. 유언호 초상에 사용된 안료는 백색에 연백, 황색에 염료, 적색에 진사, 연단, 적색염료, 녹색에 석록, 청색에 석청, 갈색에 적색산화철, 갈색염료, 자주색에 청색과 분홍색의 염료 등을 사용하였다. 11점의 초상화와 채색 안료를 비교한 결과 18세기 초상화에 사용된 안료는 시기별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며, 동일 화첩에 수록된 초상화일지라도 안료의 사용은 초상화마다 개별적으로 나타났다. 채색기법에서는 유언호 초상 이후의 초상에서 얼굴에 진사를 사용하지 않고 산화철만 사용하였으며, 의복의 배채에 녹색 안료 대신 염료를 사용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18세기 전반에 걸쳐 제작된 초상화의 채색 특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연구결과가 조선 후기 초상화의 채색기법 연구에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조선후기 궁중의례에 사용된 보계(補階)의 유형과 세부 구조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Types and Detail Structures of the Stylobate(補階) used in Royal Court Ceremonies of the Late Joseon Dynasty)

  • 석진영;한동수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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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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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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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The stylobate for expanding the external stage area was the most frequently installed installment out of the installments installed for royal court ceremonies. The stylobate was installed for various ceremonies such as funeral rites, ancestral rites, customary formalities, state examination, feasts for celebrating a honored guest of the court, queen's silkworm cultivating ceremony, heir appointment, the presentation of honorary titles for the king or queen in honor of their merits, and entertainment of foreign dignitaries. The exact period stylobates came to be used for the play stage. The stylobate consists of the 紅座板, 屯太木, 竹欄間, 足木, and the 層橋. Depending on the 足木, the substructure of the stylobate, the stylobate could be divided into the 長足木, 中足木, 短足木, 平足木 type. The detail structure of the stylobate changed in form from the jokmok and duntaemok that appeared until the time of King Seonjo, into the 長屯太木, 短屯太木, and the 短短屯太木 during the time of King Heonjong. With the introduction of the 中足木, materials began to become more segmented and the structure stronger. According to existing records, while the height of the stylobate was not significantly high prior to King Seonjo's reign, the 十四層雲橋 and the 十三層層橋 introduced during the time of Emperor Gojong was designed to reflect his rank in external ceremonies while the eight story step bridge was exhibited in internal ceremonies to reflect the rank of Queen Mother Sinjeong. From here, we can deduce that the fourteen and thirteen story cloud bridges representing the king was of a higher grade than the eight story step bridge which represented the queen mother. Finishing by adding boards to the lower part of the stylobates began to appear in the time of King Seonjo. During King Heonjong's reign, the lower finish became gentrified with a thin board called 修粧板, and yeomupan 廉隅板 for decorating the edges of the stylobates were installed. Such style of finishing the lower part of the stylobate with boards mostly appeared in elaborate feasts 進饌 and celebrations 進宴 within the royal court 內宴. The stylobates appeared to have served not only practical purposes such as expanding the stage area, but also as installments which realize the authority and prestige of the royal crown. They were installed according to the purpose of the ceremony and the rank of the participant. In short, stylobates became established during King Seonjo's reign, became segmented and gentrified during King Heonjong's reign, and began to take height variations during Emperor Gojong's reign to reflect the rank and authority of the king and queen mother. As such, it can be considered another characteristic of Joseon Dynasty architecture.

조선왕릉에 분포하는 관속식물상의 특성 - 광릉을 중심으로 - (The Characteristics of Vascular Plants Distributed in Royal Tomb of the Joseon Dynasty - Focused on Gwangneung -)

  • 오현경;김은옥;유주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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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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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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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는 조선왕릉 광릉에 분포하는 관속식물상을 조사 및 분석하여 전통경관과 생태환경을 보전 및 관리하기 위한 기초 자료제공에 목적이 있다.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관속식물상은 97과 274속 384종 4아종 49변종 9품종 등 446분류군이며, 식재종은 은행나무, 잣나무, 주목 등 34분류군이다. 중국굴피나무, 일본목련과 같은 외래종은 전통경관 관리를 위해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 희귀식물은 총 7분류군으로, 멸종위기종(CR)은 2분류군, 취약종(VU)은 2분류군, 약관심종(LC)은 3분류군이다. 한국특산식물은 참개별꽃, 흰괭이눈, 고광나무, 민땅비싸리, 오동나무(식재), 병꽃나무, 벌개미취(식재), 좀비비추(식재) 등 8분류군이다. 식물구계학적 특정식물은 총 45분류군으로, V등급은 2분류군, III등급은 12분류군, II등급은 9분류군, I등급은 22분류군이다. 귀화식물은 닭의덩굴, 좀명아주, 족제비싸리, 털별꽃아재비 등 25분류군이며, 생태계교란식물은 돼지풀 1분류군이다. 기후변화 적응 대상식물은 총 9분류군으로, 특산식물은 1분류군, 북방계 식물은 8분류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