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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 청송 지역의 고전소설·가사의 향유 양상 (A Study on the Enjoyment Modes of Classic Novels·Ga-Sa in Cheongsong of the Middle of the-20th Century)

  • 권미숙
    • 고전문학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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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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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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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문학 작품은 그것을 향유하는 계층에 따라 향유 방식과 텍스트 등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문학 작품의 향유 방식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었다. 그런데 현재처럼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문학 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것과 달리 20세기 중반 즉 1950~1960년, 1970년대까지 문학 작품은 누구나 다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아는 방법은 실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을 만나서 확인하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경북 북부 내륙 지역, 영덕과 울진의 사례 조사에 이어 청송지역에서는 고전소설이 어떻게 향유되었는지를 2015년 3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청송에서의 현지 조사를 통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청송 지역은 고전소설 향유 양상에 있어 북부권과 남부권이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북부권이 반가의 양반이라는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사나 고전소설의 향유층을 형성한 반면, 남부권에서는 반가나 동성의 집성촌이라는 의식을 찾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고전소설을 향유한 계층도 거의 없었다. 이는 사회 문화적인 문제와 경제적 이유가 어느 정도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청송 지역도 경북 북부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고전소설과 가사에 대한 장르 인식에 따른 이중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경북 북부의타 지역과 달리 고전소설에 대한 거부감이나 가사에 대한 무조건적 자긍심 등이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 예로 청송 지역에서는 고전소설을 주로 향유한 계층에서는 고전소설 작품이 비교적 다양하게 읽히고 있었는데 비해 가사를 주로 향유한 계층에서는 작품의 다양성이 없었다는 점을 들수 있겠다. 가사는 겨우 <한양가> 정도만 거론되고 있었다. 고전소설의 향유에 있어서 송소고택과 찰방공종택은 같은 가문이고 동시에 이웃해 있으면서도 고전소설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하고 있었다. 송소고택에서는 어른들이 고전소설을 비교적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었기에 소설에 대해 부정적 시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찰방공종택의 경우 시어른들이 고전소설은 전혀 읽지 않았지만 가사는 직접 지어 읽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향유했다. 이 두 사례는 같은 집안이면서도 고전소설에 대해 어떻게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청송 지역의 고전소설 향유 양상에 대한 실증적 조사는 20세기 중반 고전소설이 어떻게 향유되고 있었는가를 아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아울러 현장 조사에서 일부 제보자들이 타계했거나, 혹은 나이가 많아서 기억을 잘 하지 못하는 점들을 고려해본다면 이러한 실증적 조사는 좀 더 일찍 이루어졌다면 하는 개인적 아쉬움도 없지 않다. 이제 고전소설의 향유 양상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더 이상의 제보자들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논문이 고전소설을 다양하게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휠체어 탄 인공지능: 자율적 기술에서 상호의존과 돌봄의 기술로 (Artificial Intelligence In Wheelchair: From Technology for Autonomy to Technology for Interdependence and Care)

  • 하대청
    • 과학기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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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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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9-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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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이 글은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상상을 분석하면서 기술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윤리를 모색한다. 과학기술을 돌봄물(matter of care)로 이해하는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 연구(Puig de la Bellacas, 2011)에 기댄 이 글은 우선 인공지능이 자율성을 문화적 상상으로 강력하게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스스로의 경험과 학습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된 이 자율성은 기술적 영역을 넘어 이상적인 인간상을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에 기반한 딥러닝 기법과 무장한 무인 비행기가 예증하듯, 인공지능 기술은 보이지 않는 인간노동과 복잡한 물질적 장치에 의존하고 있으며, 자율성은 허구에 가깝다. 또한 이른바 '조수 기술 (assistant technology)'이 보여주듯, 가사노동을 부불노동화하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젠더화된 노동인식에 기초해 수많은 인간의 돌봄 노동은 비가시화되는 반면, 기계의 돌봄노동은 적극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의 문화적 상상은 자율성과 행위능력을 이상적인 인간의 특질로 정의하면서 장애의 몸과 이 몸이 갖는 가치인 연약함과 의존성의 연대는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과 그 문화적 상상은 능력이 있는 몸(abled-bodies)을 이상화하고 기술의 자율성을 우선 가치로 삼으면서 서로 의존하는 인간과 기술의 현실적 관계를 삭제하고 있다. 결론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은 타자의 비정형적인 몸과 인간의 돌봄노동을 가치 없게 여기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임 있게 응답하는 기술은 주변화된 존재들에 공감하고 의존성을 긍정하고 연약성 사이의 연대를 촉진하는 것이어야 한다. 저자는 이런 대안적인 기술을 형상화하기 위해 예술가 수 오스틴의 퍼포먼스에서 영감을 얻어 '휠체어 탄 인공지능'을 제안한다. '휠체어 탄 인공지능'은 자율성을 과시하기보다는 타자의 몸과 노동을 부정하지 않고 이들의 존재론적 가능성을 함께 만들어가려 노력하는 상호의존과 돌봄의 기술이다.

맹꽁이 대체서식지 조성 평가 및 유지관리 방안 연구 - 서울시립대학교 맹꽁이 대체서식지를 사례로 - (A Study on the Evaluation and Maintenance for Alternative Habitats of the Narrow-mouth Frog (Kaloula borealis) - A Case Study on the Alternative Habitats of Kaloula borealis at the University of Seoul -)

  • 박석철;한봉호;박민진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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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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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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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는 서울시립대학교 맹꽁이 대체서식지의 2015~2017년 사후모니터링 이후 대체서식지 조성 평가 및 유지관리방안 도출을 목적으로 하였다. 연구대상지는 2014년에 조성되었으며, 면적은 $191m^2$이다. 조성 평가는 목표종의 서식환경 유지, 목표종의 개체수와 번식률 유지, 자생종 서식환경 유지, 자연생태계로의 회복력, 주변 환경과의 조화로 구분 평가하였다. 목표종의 서식환경 유지 측면에서 대체서식지 내 토양을 기존 맹꽁이 서식지에서 채취하여 토심 30cm 깊이로 조성하였다. 대체서식지 수원은 우수와 수돗물이라 자연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맹꽁이와 함께 다른 양서류 산란 및 부화시기에 인위적인 물 공급이 매년 필요하였다. 그리고 연구대상지는 대체서식지 조성 이후 산란 및 번식을 하는 시기인 6~8월의 평균 기온이 $26.2^{\circ}C$로 맹꽁이 서식에는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맹꽁이 개체수와 번식률 유지 측면에서는 맹꽁이가 점차 안정적인 서식 및 번식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자생종 서식환경 유지 측면에서는 피식자 또는 포식자 특성을 고려한 식생 종 및 식생 구조 개선이 필요하였고, 환삼덩굴, 미국가막사리 등 외래종은 자생종의 습지생태계 유지를 위해 제거가 필요하였다. 자연생태계로 회복 평가에서 물빠짐 현상의 완화를 위해 수심 변화 모니터링을 통한 진흙다짐을 실시하였다. 진흙은 대상지 주변에 위치한 하늘연못 습지 바닥에서 채취하여 이설했다. 식생 관리는 부분적인 예초관리가 필요하고, 자연적인 식생 군락 형성 유도가 필요하였다. 또한 고목, 나뭇가지 등 다공질 공간을 조성하여 소생물의 서식 공간 및 은신처, 먹이 산란처를 조성할 필요가 있었다. 주변 환경과 조화 측면에서는 차량 및 보행자에 의한 양서류 로드킬, 인공 배수로에 양서류 빠짐, 주변 이용자 접근 등 위협요인 관리가 필요하였다. 대체서식지 관리방안은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산란 및 은신할 수 있는 다양한 수변구조, 지속적인 수환경 관리, 자생종 서식환경 중심의 식생관리, 야생생물의 서식환경을 위한 주변 환경관리를 제시하였다. 창출형 대체서식지는 모니터링을 통해 대상지 변화 특성을 반영한 관리와 복원 목표종의 서식 환경 개선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일본적인 것, 혹은 금지된 '소리'의 계보 -한일국교정상화 성립기 '왜색(倭色)' 비판담론과 양의성의 정치미학 (The Genealogy of Forbidden Sound -Political Aesthetics of Ambiguity in the Criticism of Japanese Style in Korean Society of the 1960s)

  • 정창훈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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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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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9-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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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한일국교정상화를 전후하여 '일본이 또 다시 한반도로 온다'라는 막연한 불안과 공포의 정조가 조성되었으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왜색' 비판담론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다만 기존의 '왜색' 비판담론이 미처 처분하지 못한 식민지 잔재에 대한 민족적 반감을 표명하는 것이었다면, 1960년대 비판담론은 대중문화 속에서 새롭게 생성되고 있던 '왜색'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며 그것을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변함없는 악의'가 징후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으로서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국교정상화를 전후하여 대두된 '왜색' 비판담론은 기존 비판담론과는 질적인 차이를 지녔다. 이 새로운 '왜색' 비판의 논리는 "국경을 넘는 문화적 현대성의 매개", 즉 냉전체제하 지정학적 질서 속에서 유동하고 연쇄되었던 서구(미국)발 탈민족적·탈국가적 '대중문화'와 그것의 소비주체로서 성장한 '대중'에 대한 경계와 검열의 의지를 동반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1960년대 한국에서 '대중적인 것=왜색적인 것=소비적인 것'의 위상학은 그 사회 내부에 존재했던 "도덕적 요구의 역설"을 드러내 보인다. 이는 일본이라는 타자와의 직접적 접촉을 회피하도록 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한없이 이끌리며 가까이 다가가도록 만드는 분열적 순환구조를 고착화하는 계기가 된다. 그것은 자타를 엄밀하게 가르는 도덕적 절단을 통해 대상을 저편으로 밀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대상에 매료되어 다시 이편으로 끌어들이는 반복강박을 내포하는 것이다. 이 글은 그것이 구조화된 궤적을 더듬어보고 그에서 반복되어 나타난 불협화음의 의의를 정치미학적 차원에서 해명하고자 당대에 발생된 상이한 소리들에 귀를 기울여 볼 작정이다. 그것은 곧 한국사회의 내적 통제원리를 구축하려는 권력이 강력하게 발동하면 할수록, 혹은 그 권력이 지닌 억압적이고도 폭력적인 이면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되풀이하여 끌어들어야만 했던 '일본(적인 것)'이라는 대타성, 즉 완전히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도 없고 소멸시켜 버릴 수도 없는 역설에 대한 고찰이 될 것이다.

뇌성마비아 어머니의 경험 (Lived experience of mothers who have child with cerebral palsy)

  • 이화자;김이순;이지원;권수자;강인순;안혜경
    • Child Health Nursing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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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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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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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
  • 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identify the lived experience of mothers who have children with cerebral palsy in order to understand their agony. Moreover, the result of study was to find some nursing intervention for disabled children and their mothers. For this purpose, ten mothers who are willing to cooperate with this research were selected at random from those who have children with the cerebral palsy, currently using the municipal facilities for the handicapped with cerebral malfunction. Data collection was done from October 4, 1994 th December 31, 1994. The data were collected by asking the mothers mentioned above with some unstructured open-ended questions, recorded on the tapes with permission by the interviewee in order to prevent missing of the interviewed contents. These collected data have been substantiated and properly analyzed on the basis of phenomenological approach initiated by Colaizzi's method. The results and validity are proved to be credible by means of the individual checking of the interviewed mothers.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 1. When the mother is first informed of the diagnosis of cerebral palsy on her child, she usually misses the crucial timing needed for proper treatment of the child's disorder because she is notified through the doctor's indifference and his apparently inactive, matter-of-fact attitude. At first she suspects the doctor's diagnosis and tries to attribute it to the unknown cause from a certain genetic problem and then she quickly wants to deny the whole situation that her child is really suffering from the cerebral palsy. The reality is too much for her to accept as it is and she would not believe her child is abnormal. Therefore, she even attempts depend on the power of God for its solution. 2. The mother, who goes thorough this kind of uncommon experiences, is totally devoted to the treatment and care of the child and completely ignores her own life and happiness. At the same time, she feels sorry for her other normal children she believes having not enough care and concern. Also, she feels sorry for the sick child when the child's brothers or sisters show special concern for the patient out of sympathy. It is sorry and not satisfied for her that the child is growing with abnormality and neighbor other around have inappropriate attitudes. Likewise, she is discontent with her husband's lack of concern about the child's treatment. She believes that the health care system in this society isn't fulfilling its due purpose. In the state of her utmost distress and anxiety, she always feels the need of competent consultants, and is angry about that her child is treated as an abnormal being, she is trying to hide the child from other people and to make him or her disappear, if possible. Although she doesn't have harmonious relation with her husband, she id happy when he shows his affection for the child and she feels relieved and thankful when the relatives don't mention about the child's condition Since the child's overall status of health is continuously in unstable conditions, requiring her all-time readiness for an emergency, she feels guilty of her child's illness toward the fEmily members as if it was her own fault to have borne such an abnormal child and she feels responsible for the child morally and financially if necessary Because her life is centered on taking care of the child, she cannot afford to enjoy her own life and happiness. She is a lonely mother, fatigued, with no proper relationship with other people around her. With this sense of guilt and responsibility as a mother of an unusual disease, she has no choice but to grieve her destiny from which she is not allowed to escape. 3. Nevertheless, the mother with the child suffering from the cerebral palsy does not easily give up the hope of getting her child cured and she believes that in the long run, though slower than hoped, her abnormal son or daughter will be eventually cured to become a normal sibling someday. This kind of hope is sustained by the mother's strong faith coming from observing the progress of other similar children getting better. Sometimes she is encouraged to have this faith by other mothers who share the same painful experiences, believing that her child will improve even more rapidly than others with the same palsy. Full of hope, she painstakingly waits for the child's healing. Moreover, she plans to have another child. she thinks that the patient child's brothers and sisters only can truly understand and look after the patients. However, when she notices that the progress of other children under the treatment does not look so hopeful, she is distressed by the thoughts that her child may never get well. Too, she is worried that the patient's brother or sister will be born as the same invalid with the cerebral disease. She is discouraged to have another baby as much as she is encouraged to. She is also troubled by the thought that in case she has another baby, she will have to be forced. to neglect the patient child, especially when she does have an extra hand or some reliable person to help her with taking care of the pat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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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된 효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왕선영도(仁旺先塋圖)> 연구 (Showing Filial Piety: Ancestral Burial Ground on the Inwangsan Mountain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이재호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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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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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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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왕선영도(仁旺先塋圖)>(덕수5520)는 그림과 발문(跋文) 열 폭으로 이루어진 병풍으로, 작가는 조중묵(趙重黙)(1820~1894 이후), 주문자는 박경빈(朴景彬)(생몰년 미상), 발문을 쓴 사람은 홍선주(洪善疇)(생몰년 미상), 제작연대는 1868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낱장으로 보관되어 온 <인왕선영도>를 병풍으로 복원하고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서 최초로 공개하였다. <인왕선영도>에는 오늘날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과 홍은동을 아우르는 인왕산 서쪽 실경이 묘사되어있고 원경에는 북한산 연봉이 그려져 있다. 화면 속에는 인왕산(仁旺山), 추모현(追慕峴), 홍재원(弘濟院), 삼각산(三角山), 대남문(大南門), 미륵당(彌勒堂)이라는 지명이 표기되어있다. 이 지역을 나타낸 조선후기 지도와 비교해보면 지형 표현과 지명 표기에 유사성이 있다. 조중묵은 넓은 공간을 포착하기 위해 지도의 지리정보를 숙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경의 현장을 답사한 결과, 조중묵은 각각의 경물을 과장하거나 생략하였고 수평의 화면에 나열식으로 조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조중묵은 남종화풍 정형산수에 뛰어났던 화가로, <인왕선영도>의 세부 표현에서 사왕파(四王派) 화풍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19세기 도화서 화원들이 화보를 활용하여 가옥을 그리거나 토파에 호초점을 찍고 당분법(撞粉法)으로 꽃을 나타내는 등 장식적인 화풍을 구사한 경향도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인왕선영도>에는 바위를 짙은 먹으로 쓸어내리듯 붓질한 기법, 산세의 괴량감, 가로로 붓을 대어 단순하게 그린 소나무 등 18세기 정선(鄭敾)(1676~1759)의 개성적 양식도 가미되어있다. 조중묵은 인왕산 실경산수로 유명한 정선의 양식과 권위를 차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왕선영도>는 유기적 공간감과 현장의 인상이 잘 드러나지 않으며, 연폭 화면이라는 매체도 조중묵의 개인 양식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인왕선영도>는 발문의 텍스트와 화면의 이미지가 잘 조응하는 작품이다. 발문의 내용을 여섯 단락으로 나누어 보면 ①무덤의 주인공과 이장 경위, ②무덤의 입지와 풍수, ③묘제(墓祭)와 신이(神異)한 응답, ④무덤 관리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협력, ⑤병풍 제작의 동기인 박경빈의 효성과 수묘(守墓), ⑥발문을 쓴 의의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화면에서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용이한 ②의 내용은 화면에 충실하게 재현되었다. <인왕선영도> 제작의 직접적 동기인 ⑤를 보면 주문자 박경빈이 "무덤이 마치 새롭게 단장한 것 같이 눈에 완연하다."라 하여 <인왕선영도>에 만족했음을 알 수 있다. 경물 하나하나를 설명하듯 나열한 구도는 회화미는 떨어지더라도 무덤의 풍수지리를 전달하는 데는 더 적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상당수의 산도(山圖)는 18세기 이후 제작된 목판본 선영도로서, 족보와 문집에 수록된 경우가 많다. 16~17세기의 기록에서는 족자 선영도를 첨배(瞻拜)의 대상으로 삼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선영도 첨배는 현실적으로 수묘(守墓)가 곤란할 때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의례로 인정되었다. 한효원(韓效元)(1468~1534), 조실구(曺實久)(1591~1658) 등이 선영도를 제작한 후 당대의 명사에게 서문을 요청하고 효심을 과시한 사례는 <인왕선영도>의 선구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정처사유거도(石亭處士幽居圖)>(개인 소장), <화개현구장도(花開縣舊莊圖)>(국립중앙박물관) 등은 선영도는 아니지만 계회도 형식의 족자이고 풍수를 도해했다는 점에서 17세기 선영도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인왕선영도>는 첨배라는 측면에서 초상화와도 의미가 비슷했다. 발문의 "부친의 기침소리를 직접 접하는 듯하고, 그 태도와 몸가짐을 눈으로 보는 듯하다."는 표현과 부친의 초상에 조석 문안을 올린 서효숙 고사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박경빈이 일반적인 선영도 형식이었던 족자나 목판화 대신 연폭 병풍의 실경산수화를 주문한 의도는 분명히 알기 어렵다. 19세기에는 민간에서도 사례(四禮) 의식에 다수의 병풍을 배설(排設)하였는데, 의례의 성격에 따라 그림의 주제를 반드시 구분하여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인왕선영도> 또한 여러 의례에 두루 배설하거나 장식 병풍으로도 사용하기 위해서 선영 그림이라는 주제를 실경산수화 이미지 아래에 가렸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인왕선영도>의 핵심 소재인 무덤 봉분이 모호하게 처리된 것은 사산금표(四山禁標)의 금제 위반을 숨기기 위함일 가능성이 있다. <인왕선영도>에 묘사된 인왕산 서쪽 산기슭은 분묘 조성 금지구역이었다. 1832년에 금표 내에 몰래 쓴 묘를 적발하여 즉시 파내고 관련자를 엄히 처벌한 사례로 볼 때, 19세기 중엽까지도 사산금표 내의 분묘 금제는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선영도>의 발문에는 장지를 얻기 위해 쏟은 정성이 상세하게 쓰여 있다. 장지조성에 마을사람들의 협조와 묵인이 필요했던 것은 금표 구역 내에 묘지를 조성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인왕선영도>와 비교 가능한 동시대 연폭 병풍의 실경산수화로 이한철(李漢喆)(1808~1880)이 그린 <석파정도(石坡亭圖)>(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를 들 수 있다. <석파정도> 제작시기를 전후한 1861년에 이한철과 조중묵은 철종어진도사에 함께 참여하였으므로 조중묵이 이한철의 <석파정도> 제작 과정을 보았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조중묵이 몇 년 후 <인왕선영도>를 주문받았을 때 <석파정도>의 인상적인 연폭 실경산수를 본 경험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작품의 화풍 차이는 주문자의 취향과 제작 목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선영도>는 실경산수화와 선영도의 중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관람자의 지식수준과 주문자와의 친분, 관람에 들이는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의 의미로 수용되었을 것이다. <인왕선영도>의 발문에는 무덤 주인의 이름과 자호, 본관이 일체 작성되지 않은 채 '박공(朴公)'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주문자인 박경빈의 인적 사항도 파악할 수 없었으나 다만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 가계를 미루어 볼 때 재력이 있음에도 지배계층으로 올라설 수 없는 신분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음은 짐작할 수 있다. 발문을 쓴 홍선주 또한 사대부로 보기 어려우며, 『승정원일기』 기록에 나타나는 경아전 서리일 가능성이 있다. 박경빈은 상류 계층에 진입하고 싶은 욕망으로 보수적인 가치인 효(孝)를 강조하여 부친의 무덤을 명당으로 이전하고 <인왕선영도>를 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왕선영도>는 금제위반 적발에 대한 우려, 병풍의 다목적성 등의 이유로 본래의 제작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모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병풍이 제작된 지 47년 만에 각 폭이 분리된 채 미술상을 통해 이왕가미술관 소장품이 된 상황을 보더라도, 박경빈이 <인왕선영도>에서 꿈꾸었던 명당 발복과 가문의 신분상승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