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Government 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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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외양포의 일본군사시설에 관한 연구 -군막사 및 포대진지의 구축과정과 건축특성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Japanese Military Installations of Oiyang-po in Gadeok-do - Focused on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and Constructional Process of an Army Barracks and Artillery Position -)

  • 이지영;서치상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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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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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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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constructional background and process of the Japanese military installations of Oiyang-po(外洋浦), especially based on the military secret documents. Furthermore, it aims to analyze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mains. The results are as follow; 1) The number of the Japanese military secret documents concerning with the installations of Oiyang-po, summed up to 33s. Especially, 14 documents about the expropriation of the lands and houses, and the constructions of the artillery position are reserved in "Mildae-ilgi"(密大日記)written from 1893 to 1942. 2) Imperialist Japan constructed firstly the military installations of Oiyang-po against the Russo-Japanese War. After the moving of the artillery headquarters into Masan in 1911, these installations had been maintained for the defense of Busan and Jinhae Bays. 3) As soon as 1904, the lands and houses of Oiyang-po were forcibly expropriated according to (韓日議定書). The Korean Government payed the expropriation prices to the dwellers. But the amount of money were too small and were lately payed. Moreover the dwellers' fishery right were never recompensed. 4) In 1904, the artillery headquarters and position were constructed by the 3rd Chookseong-dan(築城團) under the command of Matsui, a military engineer officer. The executional constructions were accomplished by the Japanese construction contractors. 5) After the moving of the artillery headquarters into Masan in 1911, the 3rd Chookseong-dan had usually repaired and consolidated the explosive warehouses and artillery facilities. 6) The artillery position constructed with the thick concrete walls was located at the foot of the mountain in back. It's plan was similar to the rectangular shape. It reserved six 280㎜ howizers and several explosive warehouses. 7) The reserve funds and arsenal funds were used for the constructions. And the items of expenses such as the establishments of the electric lights and communication networks, and the repairs of the explosive warehouses were mainly recoded in "Mildae-ilgi".

한국 신변보호업의 발전과정과 개선방안 연구 (The Research of Improvement and Development Process for protection in Korea Private Security)

  • 박장규;김남중
    • 융합보안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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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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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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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한국의 민간경비 산업은 1976년 12월 31일 용역경비업법이 제정되면서 활발한 성장을 하게 되었다. 1980년대 초부터 선진국의 민간경비 기술과 자본을 도입하면서부터 급속한 성장을 하게 되었고, 86서울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등 국제적인 행사에 민간경호경비업체가 업무에 참여하면서 민간경호경비는 민생치안 대안으로서 미래 산업의 하나로 각광받게 되었다. 그리고 일반인에게도 대중화되어 양적인 수요도 증가하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경비지도사신설, 교육제도개선, 신변보호업무추가 등 15차례 경비업법이 개정되면서 질적 성장을 위해 박차를 가하여, 2012년까지 3,836개의 민간경호경비회사와 150,030명의 민간경비원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회사들은 비도덕적 경호경비업무에 투입되어 행정처분을 받거나 과잉경쟁으로 인해 덤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경비업법상 경비지도사의 선임기준은 영세한 업체들의 폐업 원인이 되고 있으며, 경호경비회사의 설립 허가기준이 미흡하여 신규로 법인이 설립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위와 같은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는 경비원들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수준 높은 서비스제공, 신변보호 업체들의 영역확대, 경비지도사 선임기준 변경, 전문마케터를 통한 특정고객 유치, 경비원 전문 자격제도 도입, 경호경비회사 설립 허가요건 강화 등을 제시하였다.

한국 민간경비 시장의 과제와 활성화 도입방안 (A Research on Extension Device of Korea Private Security Market)

  • 박준석
    • 시큐리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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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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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3-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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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한국의 민간경비산업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민간조사업법의 영역을 민간경비와 접목하여 확대해야 할 것이다. 둘째, 요인경호법, 대테러법, 대통령 경호실법에 관련하여 민간경비의 역할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셋째, 산업보안 관련법 중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됨으로써 기업보안과 민간경비산업 분야의 접목을 통한 민간경비의 다양성과 세분화, 복합화가 필요할 것이다. 넷째, 시큐리티 컨설팅 즉, 통합시스템 관리 서비스를 위해 민간경비업체의 투자와 전문분야의 양성 및 사업의 확대방안의 연구가 모색되어져야 할 것이다. 다섯째, 청원경찰법과 경비업법의 통합성에 대해서 교육과정과 목적, 의무가 큰 차이가 없으므로 정보기관의 협조를 통한 통합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여섯째, 민간경비 서비스에 대한 경찰 및 일반시민, 그리고 민간 경비원들 간의 의식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곱째, 경비협회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사료된다. 마지막으로 경찰청과 경비협회의 의사소통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도 정보수집, 대처능력이 권력의 힘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이제는 경찰청뿐만 아니라 국가기관, 국정원, 검찰, 경호실, 군 등의 기관들과의 상호협력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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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국제평화활동 발전방안 : 아프리카 지역분쟁 분석을 기반으로 (A Study on the Development of the Korean Army's International Peace Operation :Based on the analysis of African regional conflicts)

  • 이강경;설현주
    • 융합보안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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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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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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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역사적으로 국제연합(United Nations)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지원해 주었고, 한국전쟁시 평화유지군을 파병하여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수호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유엔의 정치적·군사적 지원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은 오늘날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이제는 중견국으로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기 위해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유엔의 국제평화활동은 분쟁의 예방과 평화조성, 평화강제, 평화유지, 평화건설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으로 유엔헌장(UN Charter)에 근거하여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따라 시행된다. 탈냉전 이후 국제 안보환경과 분쟁요인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유엔은 2000년 브라히미 보고서와 2015년 유엔평화활동에 관한 고위급 패널보고서를 통해 국제평화활동의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아직까지 재건지원과 인도적 지원 등 제한적 수준에서 참여하고 있는 한국군의 국제평화활동을 평가하고 향후 중견국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위한 발전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유엔 평화유지임무단이 다수 주둔하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지역분쟁의 역사와 특수성, 탈냉전 이후 변화된 갈등요인, 유엔 평화활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찰하였고, 향후 한국군이 지향해야 할 국제평화활동 발전방안을 제시하였다.

동북아지역의 안보균형을 위한 적정수준 국방비 분석에 관한 연구 (The appropriate amount of Defense budget for stabilizing National security in Northeast Asia)

  • 이월형;김형재
    • 국제지역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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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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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7-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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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한반도의 안보환경은 매우 불안정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 불안정의 요인에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실험, 특히 2016년 1월6일의 4차 핵실험과 연이은 2월7일의 장거리미사일(ICBM)발사 그리고 2월8일 NLL침범과 함께 개성공단의 폐쇄조치 등이다. 그리고 일본의 아베정권의 지나친 우경화와 영토권 분쟁, 드리고 중국의 남지나해에서 각국과의 섬 영토분쟁등과 같은 역내 갈등의 고조이다. 동북아 각국의 상호이해관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대외교전과 경제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입장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국가의 이슈로 지금까지 진행해오는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어떠한 정책도 국민의 굶주림과 행복을 빼앗아가면서 시행하고 발전시켜서는 안된다. 그것은 민본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국가이든 단체든 국가 이익의 최우선 목표가 국민행복, 국가안전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국가의 주권도 국가로서 존재가치도 상실하게 된다. 특히 주변국 상황을 볼 때 전례 없는 세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주변국들은 국방비를 높은 수준으로 증액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우리의 국방력이 현재수준에 머문다면 미래에는 군사력 격차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여 동북아 안보환경의 급격한 변화 문제를 검토하고 향후 남북통일로 가기 위한 국가의 총역량 결집을 뒷받침해주는 국방비의 수준을 검토한 것이다.

『고박영철씨기증서화류전관목록(故朴榮喆氏寄贈書畵類展觀目錄)』을 통해 본 다산(多山) 박영철(朴榮喆, 1879~1939)의 수장활동 (The Life and Art Collection Activities of Pro-Japanese Collaborator Park Yeong-cheol During Japanese Occupation)

  • 김상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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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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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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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근대 미술시장과 유통에 대한 연구는 명품대가 및 그 유파, 영향 등을 추적하고 분석하던 기존 미술사의 연구경향과 달리 미술과 사회, 미술품 유통과 소비 등 새로운 연구방식과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 글에서는 한국 근대의 주요 수장가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수장가의 하나로 꼽히는 박영철(1879~1939)의 생애와 수장활동을 살펴보았다. 박영철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대한제국의 군인이자 일본군의 고위 장교, 전역 이후에는 강원도 지사, 함경북도 지사 등을 지냈고, 관직 은퇴 이후에는 굴지의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일제의 침략정책에 호응하고 앞장 선 철저한 친일파로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문화애호가이자 수장가로서의 박영철은 가장 정확한 "연암집"을 간행하였고, 사후에 수장품을 경성제국대학에 기증하여 서울대학교 박물관의 기초를 마련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의 서화수장은 한시와 서화 등을 좋아하고 즐겼던 그의 성정에 의한 바 크지만 동양의 비서구적 원천으로서 전통미술에서 고유의 특성을 찾으려 한 일본의 시책에 적극 협조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 : NLL)관련 연구 경향 분석 및 제언 -1998년~2023년 학술논문을 중심으로- (Analysis and suggestion of research trends related to NLL -Focused on academic papers from 1998 to 2023-)

  • 김현식;이정훈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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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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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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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서해 북방한계선에 관한 논쟁은 1953년 8월 유엔군사령관이 한반도 해역에서 남북간의 우발적 무력충돌을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설정한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이다. 2022년에는 분단이후 최초로 NLL이남으로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한 바 있다. 이처럼 북한의 실질적 도발이 진행중인 NLL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확인해보고 나아갈 방향제시를 하는데 본 연구의 목적이 있다. 본 연구는 1998년부터 2023년까지 NLL에 관해 연구된 학술논문을 중심으로 RISS, 스콜라 등 총 5개의 학술정보 DB를 활용하여 연구의 경향을 살펴보았다. 연도별, 분야별, 연구 방법별 현황을 살펴본 결과 연도별로는 정부별 대북관계 기조에 따라 연구량의 유의미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연구 분야는 NLL에 대한 개념소개와 역사적 배경 등이 가장 많아 힘의 논리에 따라 변화하는 국제 환경을 고려할 때 NLL의 국제법적 당위성과 명분을 구비하기 위해 더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필요성을 확인했다. 마지막 연구방법면에서는 문헌연구가 대부분이어서 면접, 설문,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양적연구 등의 필요성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본 논문의 분석결과가 현재도 여전히 진행중인 국제정치환경의 이해관계 속에 향후 NLL의 국제적인 대응을 위한 연구방향설정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결정요인에 대한 실증분석 (An Empirical Analysis of the Determinants of Defense Cost Sharing between Korea and the U.S.)

  • 민용기;신성균;박용준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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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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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3-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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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한미 방위비분담금은 1991년 1,073억 원을 부담하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2021년 1조 1,833억 원을 부담하는 것으로 규모가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한미 방위비 분담금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 요인(경제, 안보, 국내정치, 행정, 국제정치)을 실증적으로 분석하여 방위비 분담금 결정 과정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방위비 분담금 산정과 집행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연구 범위는 1991년 ~ 2021년의 한미 방위비 분담금이다. 실증분석에 이용된 자료는 국방부, 정부 통계자료, SIPRI, 언론보도 등 다양한 2차 자료를 활용했다. 실증분석 방법으로 시계열을 활용한 다중회귀분석을 이용하고 자기회귀모형으로 데이터를 분석하였다. 다중회귀분석을 통한 실증적 연구 결과 우리는 아래와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 한국의 경제 규모, 즉 GDP와 전년도의 방위비 분담금, 그리고 주한미군의 병력 수치가 방위비 분담금 결정에 정(+)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는 한국의 경제 성장이 방위비 분담금 증가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임을 나타내며, 예산의 점진적 증가와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 특별협정(SMA) 협상 방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반면, 집권당의 정치적 성향, 북한의 군사 위협, 중국의 국방예산 등은 방위비 분담금 결정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시대 녹각성과 수중목책의 조성 및 활용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reation and Use of Nokgakseong and Underwater Wooden Fence)

  • 심순희;김충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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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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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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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방어시설로 추정되고 있는 목책(木柵)은 조선시대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까지 군사적인 방어기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城)이나 병영(兵營) 외부에 설치되는 성책(城柵), 영책(營柵)의 개념으로 정립되면서 방어를 위한 필수시설로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본 연구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문헌조사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관방시설로 이용되었던 목책을 연구한 결과로, 녹각성(鹿角城)과 수중목책(水中木柵)의 용도와 기능 그리고 설치 방법 그리고 목책의 소재 등을 집중적으로 고찰하였다.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말선초 외적의 침략이 빈번해짐에 따라 목책은 주요 성외 방어시설(防禦施設)로써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목책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관방정책, 입지 환경에 따라 목책성, 녹각성 그리고 수중목책 등 다양한 유형으로 변용(變容)되어 설치되었다. 둘째, 목책은 요충지(要衝地)의 산성(山城)이나 영(營), 진(鎭), 보(堡), 성(城) 등 군사적 목적의 관방시설(關防施設)에 설치되었으며, 유사시 방어의 시급성에 따라 농번기(農繁期)를 피해 인력의 동원이 수월한 농한기(農閑期)에 맞춰 설치되었다. 문헌 기록을 통해 확인되는 조선시대 목책의 규모는 포백척(布帛尺)으로 환산한 결과 그 둘레가 4,428척(2,066m)부터 55척(25m)까지 매우 다양한 규모였다. 또한, 목책의 재료는 소나무와 참나무류가 주로 사용되었다. 셋째, 녹각성은 일반적인 목책보다 공격성을 겸비한 효율적인 전투 지원시설로,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녹각성기록은 세종대에 20회로 가장 많은 기록이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4군 6진 지역인 평안·함길도(12) 등 변방(邊防) 험지(險地)에 주로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15세기 초반 조정에서 남해안 연해지역(沿海地域)의 해상 방어 전략을 수립하게 되면서부터 1510년 삼포왜란(三浦倭亂) 이후 본격적으로 읍성(邑城)을 비롯한 주요 치소(治所)나 진, 보 등 여러 관방시설 주변에 왜적의 병선(兵船)을 저지하기 위한 방어시설로서 수중목책의 설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다섯째, 삼포왜란을 전후한 15세기부터 17세기 사이 남해안과 강화도에 수중목책이 설치되었다. 특히 15세기에 제포와 같은 경남 해안 요해처(要害處)에 수중목책이 집중적으로 설치되었다. 수중목책의 재료는 소나무와 참나무류가 주종을 이루지만 이 밖에도 합다리나무, 서어나무류, 칠덩굴도 목책의 소재로 활용되었다.

군(軍) 정보수사기관의 대통령 경호활동 고찰: 1950년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A Study on Presidential Security Activities of Military Intelligence Investigation Agency - Since the Korean War, from 1950 to the present -)

  • 최종영;정주호
    • 시큐리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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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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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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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군(軍) 정보수사기관은 군내 정보업무와 내란 반란죄 등 특정범죄수사를 맡고 있는 국군 기무사령부가 유일하다. 기무사의 대통령 경호활동은 경호처 경찰과 함께 대통령 경호의 3대 축을 형성할 만큼 그 역할이 중요함에도 그동안 군(軍)의 특성상 일반에 알려진 내용은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이에, 핵심인물 일대기 언론보도 공개자료 등을 토대로 기무사의 모체인 특무부대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무사의 경호와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았으며, 기존 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 첫째,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대 남한 도처에 북한 무장병력과 좌익세력들이 위협하는 상황 하에서 특무부대는 공식적인 경호책임기관인 경찰보다 더 측근에서 1선 경호를 담당했다. 둘째, 1963년 경호실 출범 후에도 방첩부대, 보안부대, 보안사령부는 과거 특무부대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국가주요직위자들에 대한 경호책임활동의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 역할이 확대되어 왔다. 셋째, 1990년 기무사로 개칭이후 더욱 경호임무가 추가되고 법적 근거가 강화되었으며, 뛰어난 전문성을 바탕으로 G20 등 국가급 행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방개혁 조치로 기무사의 기능이 축소 폐지되는 가운데서도 경호분야는 오히려 조직을 보강하여 경호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경호역량 강화는 아직도 주적 북한과 정전체제로 대결하고 있는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함은 물론, 경호행사시 상시적으로 수상한 병력 움직임과 군부내 경호위해요인에 대한 감시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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