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Geonjisan

검색결과 5건 처리시간 0.02초

건지산(전주)의 식물상 (The Flora of Geonjisan, Jeonju)

  • 김계환;박준모;임성구;황영희;조성종;김상용
    • 임산에너지
    • /
    • 제20권1호
    • /
    • pp.12-27
    • /
    • 2001
  • 전주시 건지산의 관속식물상을 조사하였던 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건지산에서 조사된 식물은 94과 245속 306종 49변종 4품종으로 총 359분류군이었다. (2) 이들 식물중 목본식물은 49과 91속 125종 15변종 4품종의 총 144분류군, 초본식물은 54과 157속 181종 34변종의 총 215분류군이었으며, 귀환식물은 12과 22속 28종 1변종의 총 29분류군이었다. (3) 건지산의 현존 식생은 대부분 인공조림으로 조성된 아까시나무, 화백, 편백, 비자나무, 밤나무 및 중국단풍 등이 교목층을 형성하는 우점식생이었으며, 자연식생으로는 상수리나무와 졸참나무가 일부 교목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 PDF

19세기 후반 산형도(山形圖)로 본 왕릉도(王陵圖)의 표현방법(表現方法) -전주이씨(全州李氏) 시조(始祖) 이한(李翰)의 조경단(肇慶檀) 관련 그림을 중심으로- (The Way of Expression of Wangreungdo(王陵圖: A Kind of A Royal Mausoleum Map) Reflected on Sanhyoungdo(山形圖: A Kind of A Mountain Map)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 Centering the Drawings Relevant to Jogyoungdan(肇慶壇) of Lee Han, the Founder of Jeonju Lee Family -)

  • 김정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0권1호
    • /
    • pp.57-65
    • /
    • 2012
  • 본 연구는 대한제국기에 그려진 '완산도형(完山圖形)', '조경단비각재실도형(肇慶壇碑閣齋室圖形), '전주건지산도형(全州乾止山圖形)' 그리고 '조경묘경기전도형(肇慶廟慶基殿圖形)' 등 4매 고지도의 제작의도 및 각 도형의 경관, 조망, 시점, 경물 등의 표현내용 및 방법의 특성을 고찰하고 도형 상호간의 관련성 분석을 통해 지형표현의 특질과 조망구도 그리고 내포된 상징경관의 의미를 고찰할 목적으로 시도되었으며, 문헌조사와 병행, 지도를 통한 관찰조사를 수행하였으며 현장조사 위성사진 인터넷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전주가 조선왕실의 본향이라는 역사성을 확보하는데 중심적 공간인 경기전(1410) 조경묘(1771) 조경단(1899)은 왕조의 정통성 부여와 왕권강화의 일환으로 건립 중건되었고 조선왕조 초기부터 대한제국시기까지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유지 및 관리되었다. 4개 도형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변경한 후 황실과 황제의 위엄성과 당위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그려진 조선왕실의 시조 이한(李翰)의 묘소를 알리는 산형도(山形圖)와 그에 부속되는 보조도면으로 파악된다. 즉 완산도형은 전주부에서 조경묘, 경기전, 조경단의 존재를 알리고 그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키맵(key map)이며 건지산도형은 풍수국면도로서 시조묘의 풍수적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조경단비각재실도형은 이를 보다 세밀히 보여주기 위해 상세부분도로서 그려졌다. 전주건지산도형과 조경묘경기전도형은 공히 이원적축적과 부감법을 사용하고 주산을 건지산으로 삼고, 왕자봉과 의묘소(疑墓所)를 중심으로 중요지형을 실제 지형보다 과장해서 표현하였다. 또한 묘지에서 관찰되지 않는 중요 지형은 시점 이동을 통해 관찰하고 이를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4벌 1조의 지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완산도형'은 군현도이며 위치도의 성격을 보이는 반면 '조경묘경기전도형'은 부분상세도로서 배치도로써의 기능을 보인다. 또한 '전주건지산도형'과 '조경단비각재실도형'은 산형도로서의 기능을 갖는 풍수형국도이자 상세도인 것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특성으로 볼 때, 기존 고지도와는 달리 연계도면(serial map)으로서의 기능성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전주시 건지산 숲길 Universal Design 사업 이용후 평가 (The Post Occupancy Evaluation of the Universal Design Project on Geonjisan Forest Trail Jeonju City, South Korea)

  • 박선아;이명우
    • 한국조경학회지
    • /
    • 제40권6호
    • /
    • pp.60-69
    • /
    • 2012
  • 전주시 건지산 UD 숲길은 2008년 한국토지공사 초록사회 만들기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전북생명의 숲이 주관하여 설계 및 시공이 추진되었다. 이 연구는 이용자 만족도, 이용자 수 조사의 이용후 평가를 통해 UD 숲길 설계의 적정성을 평가하는데 목적이 있다. 연구결과, 건지산 UD 숲길의 주이용자는 60대 이상의 지역주민이 전체이용자의 37%를 차지하며, 이용목적은 산책과 휴식 51.5%, 운동 및 재활치료 40.6%로 나타났다. UD 숲길 만족도는 5점 리커트 척도에서 3.91로 나타났고, 전체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는 관리, 이용충돌, 폭과 경사에 대한 만족도 순서로 나타났다. 이용자수 조사에서 교통약자는 UD 숲길 45명, 기존 숲길 6명으로 나타났다. 연구결과를 통해 건지산 UD 숲길은 교통약자의 이용을 유도하고, 일반인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UD 숲길 주변의 높은 경관만족도는 기존지형과 수목을 가능한 보존하고, 목재 데크를 설치함으로써 기존 자연경관이 잘 유지된 점을 나타냈다. 건지산 UD 숲길의 이용후 평가는 도시숲길 조성시 장애인, 노인, 약자, 임산부, 어린이 등 다양한 신체조건의 이용자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의 도입 필요성을 나타내주고 있다.

전주팔경의 시원(始原)과 변용(變容)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Origin and Transformation of Jeonju-Palkyung)

  • 노재현;손희경;신상섭;최종희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3권3호
    • /
    • pp.1-15
    • /
    • 2015
  • 전주를 대상으로 한 11개 집경(集景)의 표제어 및 시어(詩語) 분석과 해석을 토대로 전주 팔경의 형식과 내용상의 시원 및 변용과정을 시계열분석으로 살핀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의 팔경시 이전에는 전주팔경의 골격과 유사한 형식의 집경 사례가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추재집"에 실린 여덟 편의 시를 전주팔경의 시원(始原)으로 보기에는 큰 무리가 없으며 그 시기는 1829년경으로 추정된다. 이후 19세기 말 작품인 '완산승경'과 '열녀춘향수절가에 기재된 팔경'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시인 신석정이 전하고 있는 팔경' 중 '동포귀범'만이 행정구역의 변화에 따라 동지포에서 봉동의 동촌으로 대상장이 변용되었지만 모두 조수삼의 팔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표제어 일치율 분석 결과, 전주팔경은 최소한 19C 후반에 정착(定着)된 이후 일제강점기에도 줄곧 전주를 대표하는 경관으로 지속된 것으로 확인되며 이후 '남천표모'와 '곤지망월'이 추가되어 전주십경으로써 외연(外延)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팔경 제영의 형식성에도 불구하고 "패향십영(沛鄕十詠)"이나 "견도십영(甄都十詠)" 그리고 "빈일헌십영(賓日軒十詠)" 등 조선 전기의 집경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일본인 나루시마 슈쿠시(成島淑士)의 집경 속에도 경기전 건지산 조경단 오목대 그리고 기린봉 덕진연 만경대 등 조선왕조의 발생지이자 전라감영의 수부(首府)로서의 상징성이 높고 전주십경의 연원(淵源)이 되는 명소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볼 때 전주팔경의 의미론적 태동기는 조선 전기까지로 그 전범이 소급(遡及)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시기에는 견훤도(甄萱都)와 같이 후백제 도읍지로서의 회고(懷古) 관성(慣性)이 큰 승경 뿐 아니라 만경대와 같이 고려말 정몽주와 이성계를 상기시키는 내용의 경물 또한 전주 팔경에 등장함으로써 후백제 도읍지로서의 전주의 위상을 높이고, 조선 왕조의 발흥지로의 역사적 간극을 좁히고 있음이 확인된다. 전주팔경은 후백제 이후 조선시대 역사문화를 담는 유기체적 존재로 다소 부침(浮沈)을 거듭하였지만 지역의 대표적인 승경으로 꾸준히 변용되어 왔다. 전주 팔경은 '전주 한풍경(韓風景)'을 이해할 수 있는 문화족보로, 이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노력은 오늘을 사는 전주인의 몫이라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