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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의 과학의 본성 이해를 위한 과학사 롤플레잉게임(SHRPG) 개발 및 적용 -대륙이동설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Development and Application of a Science History Role-Playing Game for High School Students' Understanding of Nature of Science: Focus on Storytelling of the Continental Drift Theory)

  • 심은지;최승언;김찬종
    • 한국과학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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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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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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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맥락과 학습자의 흥미를 무시하는 기존의 과학사 교육은 과학의 본성(NOS)에 대한 이해를 방해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대륙이동설의 역사에 대한 스토리텔링의 풍부한 맥락을 통해 NOS 요소를 전달하고자 한다. 스토리텔링을 전달하는 다양한 매체 중에서 개인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매체는 바로 컴퓨터 게임이며, 그 중에서도 스토리가 주가 되는 장르는 롤플레잉게임(RPG)이므로, 본 연구에서는 대륙이동설을 중심으로 과학사 롤플레잉 게임(SHRPG)을 개발하고자 한다. 게임 개발을 위한 모델은 Kim(2017)의 4F 프로세스를 적용했으며, 이 모델은 현황 분석, 목표 설정, 게임화 설계, 마무리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목표 설정 단계에서 교육 게임화 범위는 대륙이동설의 역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4 가지의 NOS 요소(Lederman et al., 2002)를 포함하였다. 즉, 창의력과 상상력의 요구, 주관성, 사회 문화적 특성, 잠정성이다. 메커닉스와 룰은 퀘스트, 보상, 퀴즈, NOS 점수와 랭킹을 포함했다. 최종 단계에서는 4번의 테스트가 수행되었다. 마지막 4차 테스트인 베타테스트에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VNOS-C 사전 사후 설문, 만족도 조사, 면담을 통해 본 연구가 교육게임화가 추구하는 결과인 '재미도 있고 배운 것도 많은 수업'인지 확인했다. 그 결과, SHRPG에서 의도한 NOS 요소 4 가지에 대해 학생들이 게임의 스토리인 대륙이동설의 맥락을 통해 이해하고 있었으며, 4 가지 요소 중에서도 '창의력'요소에서 가장 뚜렷한 효과를 보였다. SHRPG에 대한 만족도 또한 매우 높게 나타났는데, 스토리에서 가장 큰 재미를 느꼈으며, RPG 형식의 교육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진사도(陳師道), 『후산시화(後山詩話)』의 시론(詩論) (The Research of Houshan's Comments on Poets and Poetry)

  • 김규선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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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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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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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북송의 대표적인 시화 중 하나인 진사도의 "후산시화"는 송대에 들어와 성숙하기 시작한, '시화(詩話)'라는 문학비평 양식의 초기 대표작으로 심대한 의의가 있다. 수필식의 단편적인 기록도 적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전문적인 비평과 이론 저작의 단초가 드러나 있다. 특히 "후산시화"의 시론은 송대 문학의 유행을 총체적으로 반영하면서 송대 시학의 전형적인 주장들을 깊고 정교하게 담아냈다. 시 창작주체의 인격 수양과 지식의 축적, 역대 시인들에 대한 학습과 황정견을 경유한 두보 시의 학습 그리고 '어의개공(語意皆工)'을 통한 '무공(無工)'의 지향 등은 북송 중후기 문인들의 창작 실천 및 심미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진사도는 지금까지 형식주의적 시인으로 알려져 있었고 실제로 시 창작의 법도와 전범의 학습을 중시했다. 하지만 그의 시론의 최종적인 목표는 '자유자재함'(自在)함이었지 엄격한 법도 그 자체가 아니었다. 단지 끊임없이 전범을 학습하고 법도에 맞는 엄격한 훈련을 해야만 '자유자재함' 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따라서 "후산시화"에 개진된 그의 시론은 단순히 형식주의적 견해로 간주될 수 없다. 그는 정교한 형식과 내용을 두루 갖춰 이상적인 창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유아문화예술교육의 학습원리와 교육효과를 적용한 교수학습지도방안 연구 (A study on the Convergence Learning Guidance Method for Adolescents with Disabilities Applying the Eurhythmics Rhythm Element)

  • 변기담;남상문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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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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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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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유아문화예술교육은 자신을 표현하면서 사회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유아의 삶 전반에 큰 영향을 준다. 유아마다 발달 특성이 다르기에 개별적 다양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개별화의 원리와 유아들이 놀이를 통한 즐거움으로 체험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형성하는 놀이 중심의 원리, 전인적인 발달에 밑받침이 되는 통합적 원리, 유아가 직접 만지고 조작해 보는 경험을 제공하는 직접경험의 원리를 활용하였다. 도입에서는 통한 재료의 탐색과 생각나누기, 다함께 책을 읽고 나누기를 진행하고, 전개1과 전개2에서는 문화예술영역인 미술, 음악, 신체표현, 동극, 영화, 사진 등 예술적 표현을 즐기면서 자신의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상하도록 하였다. 마무리 단계에서는 유아가 창출해낸 결과물을 함께 감상하고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과정으로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 구성한 교수학습지도안을 개발하였다. 유아문화예술교육을 통한 교육적 효과는 유아들이 자신의 흥미에 따라 탐구하는 학습이 강조되는 유아기에 개발하는 것이 효과적이므로, 이 연구에서는 유아문화예술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방안과 장르의 융합적 교육이 반영된 학습지도방안을 제시하였다.

동굴의 자연음향 효과, 그리고 음악회장 운영사례 (The Effective Resonance of Caves & Records of a Cave Concert)

  • 현행복
    •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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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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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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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태곳적부터 동굴은 인간의 주거 공간뿐만 아니라 문화공간으로까지 활용되어 왔다. 즉 동굴 내부의 어떤 장소에서 소리를 낼 경우 거기서 나오는 소리는 특별히 확대되어 거대한 메가폰처럼 작동하여 들려온다. 이른바 공명현상이다. 이럴 때 동굴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관악기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알타미라 동굴처럼 벽화가 발견 되는 동굴의 경우, 대개가 벽화가 발견되는 지점이 광장과 같은 넓은 공간이란 점과 종종 매머드 뼈로 된 피리나 북 등이 동시에 발견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그곳 동굴 속에서 선사인들이 주술의식과 더불어 예술 활동을 펼쳐왔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편 한국 전통예술 가운데 대표적 성악장르의 하나인 판소리의 경우 그 노래를 부르는 가창자의 창법수련 장소로 동굴의 활용된 예도 있다. 이른바 토굴독공(土窟獨功)이라 불리는 것이 바로 그러한데, 이는 폭포독공(瀑布獨功)과 더불어 명창이 되기 위한 창법수련자가 마지막으로 수행하는 과정으로서 흡사 철기류 제작의 마지막 담금질과 같은 공정(工程) 과정이기도 하다. 이는 이미 한국의 전통예술가들이 오래 전부터 자연 속에서 자연과 부합하는 소리감각을 터득하기 위한 선례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 주목하여 필자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성악수업 지도를 맡으며 늘 이런 생각을 지니게 되었다. 즉 "자연스런 소리내기는 동굴과 같은 자연 공간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된다!" 그래서 지난 1992년 1월, 필자는 제자들과 함께 동굴소리연구회란 일종의 동호인 모임을 결성하여 특히 방학 때와 같은 휴가철을 이용해 제주 전역의 동굴을 답사하며 동굴 탐사와 더불어 소리 탐구를 실험적으로 시도해 왔다. 그 후 5년 뒤인 1997년 9월, 마침내 우도의 해식동굴인 고래콧구멍 동굴(東岸鯨窟)에서 국내에서 첫 동굴음악회를 개최했다. 그 후 매년 한 차례 씩 동굴음악회를 개최해 왔다. 올해, 2009년까지 총 14회 째의 동굴음악회를 개최한 기록 가운데, 강원도 석회암동굴에서 2회, 용암 동굴인 만장굴에서 2회, 우도의 해식동굴 고래콧구멍에서 총 10회의 기록이 그것이다. 아울러 1999년 5월 협재동굴에서 필자는 동굴음악CD제작을 위해 녹음작업을 특별히 펼치기도 했다. 이 글은 필자가 그동안 동굴을 음악회장으로 이용한 경험을 바탕을 주요 소재로 활용하여 구성하였다. 앞으로 제주에서 해마다 개최되는 동굴음악회는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매우 독특한 체험이벤트로서 제주의 우수한 자연공간과 또한 동굴만이 지닌 우수한 자연음향의 효과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시스템의 활용 방안에 관한 연구: 설명 기능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use of a Business Intelligence system : the role of explanations)

  • 권영옥
    • 지능정보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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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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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5-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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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다양한 빅데이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기업의 전략결정에 있어서 과거에는 의사결정자의 직관이나 경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현재는 데이터를 활용한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많은 기업들이 경영정보시스템 중의 하나인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Business Intelligence) 시스템의 예측분석 기능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이 미래의 경영환경 변화를 예측하고 기업의 의사결정을 돕는 조언자 (Advisor)로서 역할을 한다고 가정할 때, 시스템에서 제공하는 분석결과가 의사결정자에게 도움을 주는 조언 (Advice) 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미래예측의 문제에 있어 의사결정자가 시스템의 조언을 따르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과 영향력에 대해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 환경을 제시하고자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예측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근거 제시가 시스템의 예측결과에 대한 의사결정자의 수용정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였다. 이를 위하여 193명의 실험자를 대상으로 영화의 개봉 주 매출액을 예측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예측에 대한 설명의 길이와 조언자의 유형(사람과 시스템의 조언 비교)뿐 아니라 의사결정자의 개인 특성이 의사결정자의 조언 수용정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시스템에서 제공하는 조언 내용인 예측결과와 설명에 대해 의사결정가가 느끼는 유용성, 신뢰성, 만족도가 조언의 수용에 미치는 영향도 분석하였다. 본 연구는 시스템의 분석결과를 조언으로 보고 조언자와 조언에 관한 의사결정학 분야의 선행연구를 접목시켜 경영정보시스템 연구 분야를 확장하였다는 점에서 연구의 의의가 있고, 실무적으로도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점들을 제시함으로써 시스템 활용을 위한 정책결정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근대 영국의 한국도자 컬렉션의 형성 과정과 그 의미 (The Formation and Significance of Korean Ceramics Collections in Modern Britain)

  • 김윤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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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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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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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유럽의 여러 나라에 소장되어 있는 한국도자는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장르로서 근대 유럽에서 일찍이 수집과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유럽 현지에서 자료 조사를 한 결과, 근대 시기에 영국에 소장된 한국도자의 구입 과정이나 경제적 가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비교적 많이 남아 있었다. 특히 근대 시기에 영국박물관과 V&A박물관이 한국도자를 소장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서류에서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구입 과정, 가격, 기준, 인식이나 평가 등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근대 영국에서 한국도자에 대한 인식, 소장 의도는 세 단계의 시기별 변화를 거치면서 컬렉션이 형성되었다. 1870년대 후반부터 1880년대 후반까지는 한국도자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환상 속에 있던 시기였다. 1880년대 후반부터 1910년대까지 영국에 유입된 한국도자는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민족지학적 자료로서의 성격이 강하였다. 1910년 이후부터 1940년대까지는 고려청자 중심의 한국도자 컬렉션이 형성된 시기로 파악되었다. 근대 영국에서 한국도자를 구입하는 기준과 과정은 20세기 초 한국을 방문하여 도자를 구입한 세 명의 영국인 사례를 통하여 살펴보았다. 1910년 이후 영국인들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나 배를 이용하여 극동아시아를 여행하면서 한국에서 도자를 구입하기 시작하였다. 한국 여행에서 전직 관료, 도굴꾼 등에게 좋고 오래된 고려자기를 비싸지 않은 가격에 구입하거나 출토되는 지역에 직접 가서 구매하는 상황을 확인하였다. 또한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카바노프 상회의 존재를 파악하여 도자를 포함한 다양한 한국 물건들이 서구인들에게 판매·운송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마지막으로 근대 영국에서 한국도자의 경제적 가치가 어느 정도로 인정되었고, 그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당시 영국에서 한국도자는 조형적 우수성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 즉 우수한 품질에 비해 가격이 낮다고 평가되었다. 특히 일본인들이 선호했던 고려청자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자기의 조형이 새롭고 우수하다는 평가자료는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다. 근대 영국에서 고려와 조선시대 도자를 아울러서 한국도자의 조형성과 제작 기술을 평가했던 관점은 다양한 종류의 한국도자 컬렉션이 형성되는 데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

석재 서병오(1862-1936)의 1889년작 난죽석도 연구 (A Study on the 1889 'Nanjukseok' (Orchid, Bamboo and Rock) Paintings of Seo Byeong-o)

  • 최경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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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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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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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서병오(徐丙五, 1862-1936)는 서구적 '미술' 개념의 도입으로 일본화 내지 서양화로 기울던 일제강점기 시서화일치의 대구 문인화단이 형성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1879년 이하응(李昰應, 1820-1898)과의 만남을 계기로 서화계에 입문하였으나, 문인화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부터이다. 그의 예술세계는 세 시기로 구분되며, 학습기인 1879년부터 1897년까지는 관직 진출을 목표로 하였던 때문인지 중국 화보를 임모하거나 이하응의 영향 아래 사군자화를 여가에 그리는 정도였다. 발전기는 1898년부터 1920년까지로 그는 애국계몽운동 등 사회적 지도자로 활동하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삶의 방향을 문인화가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중국 여행에서 다시 만난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의 운미란과 포화(蒲華, 1830-1911)의 묵죽법을 근간으로 새로운 화풍을 적극 모색함과 동시에 산수, 화훼, 기명절지 등의 화목도 다루었다. 완숙기인 1921년부터 1936년까지는 대구와 한양을 오가며 근대 한국 화단의 서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하였으며, 묵란과 묵죽에서 윤묵의 호방한 필법을 특징으로 하는 개성적 화풍을 완성하였다. 특히 학습기의 경우 관련 기록이나 현전작품이 드물어 서병오의 창작활동이나 화풍 등에 관한 것은 추론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본고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한 서병오의 1889년작 난석죽도 11점은 학습기의 화풍 연원이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1889년작 난죽석도 가운데 묵란도는, 이하응이 1882년 7월 청군에 의해 체포되기 이전에 그린 초기 군란도와 석란도에서 영향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묵죽도는 한양에 널리 알려진 양주화파 정섭(鄭燮, 1693-1765)과 김정희의 제자 허련(許鍊, 1809-1892)의 화법을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하응의 석란도 형식을 응용하여 변화를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괴석도의 경우 직접적인 관련성은 찾지 못하였으나, 19세기 후반 청나라의 괴석화가 주당(周棠, 1806-1876)과 여항화가 정학교(丁學敎, 1832-1914) 등에게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서병오의 1889년작 난죽석도는 학습기에 그려진 것으로 운현궁을 찾았던 허련과 정학교 같은 동시기 화가들이나, 한양에 작품이 유입되었던 정섭과 주당 등의 중국 작품을 실견하며 이들의 화풍을 수용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