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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방식의 실시간 동적 프로젝션 매핑 설계 및 동적 사물 검출 시스템 연구 (The Mirror-based real-time dynamic projection mapping design and dynamic object detection system research)

  • 안서영;서범석;홍성대
    • 사물인터넷융복합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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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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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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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본 논문에서는 테마파크, 메가 이벤트, 전시공연에 시공간을 넘어서 디지털 캔버스로 활용하고 있는 프로젝션 매핑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기존 고정된 대상에 사용하던 프로젝션 기술은 활용도에 있어서 움직이는 대상에 맵핑 하기 힘들다는 한계점이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피사체를 추적하여 매핑할 수 있는 기술과 동적으로 움직이는 대상을 기반으로 실시간 동적 프로젝션 매핑 시스템을 개발하여 공연, 전시, 테마파크 등 다양한 시장 대응이 가능하도록 관련 연구가 시급한 실정이다. 본문에서는 실시간 사물에 해당하는 요소를 추적할 수 있는 하드웨어 개발과 초고속 영상처리를 하여 딜레이 현상이 없는 시스템을 제시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실시간 오브제 영상분석 및 프로젝션 포커싱 제어부 개발, 실시간 오브제 추적 시스템을 위한 통합 운영 시스템, 프로젝션 매핑을 위한 영상처리 라이브러리 개발을 구현한다. 본 연구는 최근 실시간 비전머신 기반의 검출 기술을 활용한 기술 집약적인 산업임과 동시에 첨단의 과학기술이 융합되어 연출되는 산업으로 활용도가 다양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 도예 예술 전시 공간 디자인의 특성 연구: 경덕진 도자기 대학교 미술관을 중심으로 (A Study of the Characteristics of Contemporary Ceramic Art Exhibition Space design: Taking the Jingdezhen Ceramic University Art Museum as an Example)

  • 청동;양건석
    • 산업융합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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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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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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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현대 도예 예술은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도자기 전시 방법이 요구되는데 전시 공간의 디자인과 전시 방식을 어떻게 활용하여 관객들에게 현대 도예작품의 시각 경험과 다양한 정보를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전시공간 디자인에서의 일차적인 주요 문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현대 도예 예술 전시 공간 디자인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현대 도예작품 전시 공간 디자인에 관한 연구가 부족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현대 도예 작품에서 최고의 전시효과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한다. 첫째, 선행 연구의 내용을 요약하고 후속 연구를 위한 이론 근거를 제시하였다. 둘째, 경덕진 도자기 대학교 미술관에서 개최한 <도자기의 정신> 2021 경덕진 국제 도예 예술 비엔날레 현장과 전시자료, 그리고 전시공간자료 등과 관련하여 현장답사를 진행한 후, 인간공학 관점에서 공간의 전체적인 배치와 전시공간의 형태 등을 고찰하고 분석하여 경덕진 도자기 대학교 미술관의 전시공간의 전체적인 배치의 과학적 통일성과 전시공간의 형태적 디자인의 유연성과 지속가능성을 도출하였다. 본 연구에서 얻은 이론 지식은 현대 도예 예술 전시공간의 디자인을 위한 이론 지침에 도움을 줄 수 있어 중요한 실천적 가치를 가진다. 실내 공공 공간 디자인 실천을 위한 지침 제공은 중요한 실용적 의의가 있으며 더 나아가 중국 및 세계 현대 도예 예술 전시공간 디자인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국내 도서관·박물관 소장 고지도의 현황 및 활용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urrent Status and Utilization of Old Map in Library and Museums in Korea)

  • 김지영
    • 한국비블리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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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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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7-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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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본 연구의 목적은 고지도에 대한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나아가 고지도를 이용한 서비스 및 정보제공 등 고지도의 효율적인 활용방안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에 있다. 이를 위하여 고지도 정보를 제공하는 국내 기관의 정보검색시스템을 조사하고 해당 웹 사이트에서 고지도 자료 검색 및 정보 접근 방법을 탐색하였다. 이 외에 각 기관의 홈페이지와 도록 및 연구서, 간행물 등을 참고하여 국내 도서관 및 박물관의 고지도 소장현황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전국 국·공립 및 대학 도서관과 박물관 등 76개 기관에 약 2,200여점의 고지도가 소장되어 있었다. 고지도 소장 각 기관에서는 영인본 간행, 전시회 및 도록, 목록 및 총서 등의 연구서 편집서의 간행 등 출판사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지도의 희귀성, 유일본 등의 자료적 특성으로 원문 자료의 열람 및 이용이 제한적이다. 고지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첫째, 고지도 정보서비스 접근성 향상 및 학술정보서비스 확대가 필요하다. 둘째, 지역의 정체성을 반영한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자료로 고지도 활용을 제안한다. 셋째, 고지도 자료에 대한 지식과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정보를 선별하여 제공하는 전문인력 양성이 필요하다.

문화예술상품 소비자의 가치인식이 추구혜택과 상품속성에 미치는 영향 (The Effects of Consumer Value Cognition on Benefits and Attributes of Culture-Art Products)

  • 신은주;이영선
    • Asia Marketing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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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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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7-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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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문화예술상품은 일반 소비재와 달리 소비자의 가치인식에 따라 중요한 소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특별한 상품이다. 물질적 소비재나 서비스 상품은 상품속성이 주는 물질적 및 비물질적 혜택을 상정하여 상품을 개발하고 그에 따른 마케팅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상품 소비는 소비자의 경험과 교육 등에 의해 형성된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인식에 따라 소비추구혜택이 달라질 수 있고, 가치인식과 추구혜택은 문화예술상품의 속성을 선택하는 기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문화예술상품에 대한 가치인식과 추구혜택에 관한 질적 연구'의 후속연구로서 질적 연구에서 나타난 개념구조를 바탕으로 문화예술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가치인식 및 추구혜택과 상품속성의 하위차원을 규명하고, 수단-목적 사슬이론을 역으로 적용하여 문화예술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가치인식이 추구혜택과 상품속성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문화예술상품 생산 및 문화예술 정책기관과 문화예술을 활용하는 기업의 문화마케팅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실무적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실시되었다. 10대 이상 50대 남녀 662명을 대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요인분석과 경로분석을 실시하였다. 예술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가치인식과 추구혜택의 하위차원은 질적 연구 결과와 유사하게 나타났으며, 가치인식은 대부분 추구혜택을 매개로 하여 상품속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 질적 연구결과와 마찬가지로 수단-목적사슬을 역방향으로 적용하는 것이 타당함을 입증하였다. 즉, 문화예술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가치인식이 실제적 편익으로 구체화되고, 소비자는 이러한 추구혜택에 따라 상품속성의 중요도를 고려하여 구매의사를 결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문화예술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가치인식을 긍정적으로 형성·강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소비 촉진 요인임을 입증하였으며, 문화예술상품 생산기관에서 소비자 중심의 상품개발과 기업의 효율적인 문화예술마케팅 전략을 개발하기 위한 소비자 정보와 실무적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또한 본 연구 결과는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국가기관의 정책 수립을 위한 유용한 정보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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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낭 크노프(Fernand Khnopff)의 작품에 나타난 벨기에 상징주의와 내셔널리즘 (Fernand Khnopff's Belgian Symbolism and Nationalism in I Lock My Door upon Myself)

  • 정연심
    • 미술이론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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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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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1-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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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This paper examines Fernand Khnopff's Symbolism, focusing on the I Lock My Door upon Myself as a manifesto of his artistic credo in style and theme. Its title was originally in English, originating from the poem "Who Shall Deliver Me?" by Dante Gabriel Rossetti's sister Christina Rossetti. I use the term "Social Symbolism" which combines a nationalist perspective with traditional French Symbolism, in order to explain how the image of Bruges is represented in his oeuvre. Symbolism calls for psychological introspection evoking death, love, silence, and solitude and recluse from realty in pursuit of the Unknown and the Ideal. Although Khnopff shared this idea, he departed from symbolist tradition by incorporating a political milieu in his paintings. First, I discuss Khnopff's early stage in the formation of his artistic concept, including his family background as well as his early opportunity to visit the Exposition Universelle in Paris where he formed his early interests in aesthetics, philosophy, literature, mythology and Egyptian art. His early works, La Painture, la Musique, la Poesie(1880-1881), Le Crise(1881), and En ecoutant Schuman(1883) reveal his favorite subjects which were quite prevalent in the symbolist traditions of both Belgium and France. By looking at Khnopff's paintings, I endeavor to situate his Symbolism in the context of the development of Belgian modernity and cultural nationalism. Second, my analysis of Khnopff creates a new overview of Symbolism in Europe, especially in Belgium. In the absence of socio-political integration, the Symbolist painter adds nostalgic meaning to the landscape of Bruges. The scene of Bruges illuminates the social atmosphere in Belgium at that time. Since Belgium became an independent country, it tried to differentiate its own cultural and national identity from France. There was a powerful social movement for Belgium to claim its own identity, language, and culture. Bruges was, for Symbolists, the epitome of Belgium's past glory. This encouraged the formation of Belgian nationalism centering on Brussels, as I demonstrate in Khnopff's Bruges-la-Morte(1892). The relationship between Symbolist artist and writers is crucial for understanding this development. Khnopff, for instance, illustrated or provided frontispieces for many Symbolist writers such as Rodenbach, Peladan, Spencer and Le Roy. Khnopff did not objectify the exact meaning, but rather provided his own subjective interpretation. In this respect, I Lock My Door, inspired by Rossetti, started from the same motif, but Khnopff seeked escape into silence and death while Rossetti searched for Christian salvation. Finally my paper deals with the social context in which Khnopff worked. He was a founding member of Les XX in 1883 and later La Libre Esthethetique he also participated in the exhibition of le Salon de la Rose + Croix. Les XX was not a particular school of art and did not have a uniform manifesto, but its exhibitions focused on decorative arts by encompassing art for all people via common, everyday objects. The Periodical, L'art moderne was founded to support this ideal by Edmond Picard and Maux. Les XX declared art as independent art, detached from all official connections. Khnopff designed the 1890 catalogue cover of Les XX and the 1891 cover. These designs show decorative element of Art Nouveau in an early example of "modern poster." Les XX pursued all art including graphic arts, prints, placard, posters and book illustrations and design. These forms of art were l'art social and this movement was formed by the social atmosphere in Belgium in terms of social reforms and strikes by working class. Khnopff designed the book cover for la Maison du Peuple. The artist, however, did not share the ideal egalitarianism of the working class to a certain degree, while he was working in his villa he designed under the ideal motto, "on n'a pas que," he expressed the nihilistic emotions toward society by the theme of interiority such as solitude, silence, narcissism, introspection, and introversion. In the middle of his Symbolism, we find the "cultural nostalgia" or longing that the artist develops in the I Lock My Door upon Myself. Khnopff's longing toward the lost city of "Bruges" form the crux of his "Social Symbo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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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기술교사를 대상으로 한 사물인터넷 기반의 모형 제작 수업에 대한 인식 및 '스마트 농장' 제작 사례 분석 (A Case Study of 'Smart Farm' Model Product Manufacturing and Recognition of Model Manufacturing Lesson Based on IoT(Internet of Things) by Pre-service Technology Teachers)

  • 김성일;최운식;김기선;황선종;주은희;강현종
    • 대한공업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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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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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8-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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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연구의 목적은 예비기술교사를 대상으로 한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모형 제품 제작 수업에서 제작 절차 및 전체 수업에 대한 만족도를 분석하고, 제작한 제품 중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던 '스마트 농장' 모형 제작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하여 사물인터넷 기반 교육 프로그램 연구 및 개발에 도움이 되는 기초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만족도 분석을 위한 설문지는 모형 제품 제작 수업에 참여한 예비기술교사들에게 배포하였고, 얻어진 15명의 데이터는 통계프로그램(SPSS)을 이용하여 분석하였다. 설문 문항은 제작 절차 각각의 만족도 8개 문항, 제작 시 어려운 점, 제작 수업에 대한 만족도였다. 이 연구의 주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물인터넷 기반의 '스마트 농장' 모형 제작을 위한 프로젝트 수업 내용 및 절차에 대한 예비기술교사들의 만족도 평균은 4.22로 높은 편이다. 이러한 이유는 제품 제작 절차가 제품 제작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특허 검색 및 선행기술조사보고서 작성 교육'에 대한 만족도 평균은 4.07로 높은 편이다. 그러므로 선행기술보고서 작성 교육은 제품제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셋째, 모형 제품 제작 절차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문항은 '발명사고기법 교육'(만족도 평균 M=4.40)이었다. 따라서 예비기술교사들은 발명사고기법의 교육이 아이디어 구상에서 선정까지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 다음으로 만족도가 높은 것은 '설계 교육 및 상담', '수업 담당교수 외에 제품 제작 지도교수 선정을 통한 지도' 문항으로 평균이 4.33 이었다. 이는 예비기술교사들의 전공지식 부족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넷째, '모형 제작 결과 발표 및 전시회', '대외 발표 및 참가'에 대한 만족도는 평균(M) 4.13으로 높은 편이었으며, '스마트 농장' 모형 제품 제작을 마친 뒤 예비기술교사들의 면담 결과를 종합하면, 전공 지식의 부족으로 고생했지만,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고 제품 제작을 완성하고 성취감을 느꼈다고 한다.

국내 과학관 전시물에 반영된 과학의 본성(NOS) 특징 분석에 따른 프로그램 개발 및 이의 적용 (Development and Application of NOS Education Program according to Analyzing the Characteristics of Nature of Science(NOS) in Exhibits of Science Museum)

  • 박영신;유지연
    • 대한지구과학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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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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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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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의 목적은 대표적인 비형식 교육기관인 과학관에서의 과학의 본성에 대한 현황을 파악하여 특징을 분석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여 과학관 전시물 기반의 과학의 본성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하고 적용하는데 있다. 과학관에서의 과학의 본성 분석 도구(NOSAT_ISM)를 이용하여, 국내 과학박물관 4곳의 전시물의 과학의 본성 현황을 분석하고 국내 과학관에 과학의 본성의 특징을 알아보았다. 또한 과학관 전시물의 과학의 본성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과학관 전시물에 제한적으로 나타난 과학의 본성을 보충하기 위해 과학관 전시물 기반의 과학의 본성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및 적용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 과학관 두 곳의 전시물에 반영된 과학의 본성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암시적이었으며, 과학 기술 사회의 관계를 나타낸 과학의 본성 요소가 지배적으로 나타났다. 국내 자연사박물관 두 곳의 전시물에 반영된 과학의 본성을 분석한 결과, 역시 대부분 암시적이었으며, 관찰과 추론의 과정을 묘사한 과학의 본성 요소가 지배적으로 나타났다. 둘째, 과학관 전시물에 제한적으로 나타난 과학의 본성을 보충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 개발한 과학사를 반영한 과학관 전시물 기반의 과학의 본성 교육 프로그램을 적용 한 후 질적 연구를 통해 설문을 개발하여 투입한 결과, 사전과 사후검사에 명시적으로 반영시킨 과학이 잠정적이며, 창의력과 상상력을 필요로 하고, 사회 문화적임을 반영하고, 과학적 방법을 사용한다는 과학의 본성의 경우에만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이 연구를 통해 도출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과학관과 자연사박물관 이라는 전시관의 주제에 따른 특징별로 전시물에 나타나는 과학의 본성 요소가 달랐으며, 암시적인 접근의 과학의 본성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따라 과학관에서 과학의 본성 함양을 위해, 과학관 전시물을 활용한 교육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관람객의 과학의 본성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 명시적인 과학의 본성을 반영하였을 때 그 변화가 크다는 점에서 명시적인 과학의 본성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를 개발 및 적용할 수 있는 역량을 위한 과학관 교육자들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미국 문화, 그 기로에 서서 - NEA(국립예술진흥기금)를 둘러싼 논쟁 중심으로 (American Culture at the Crossroad : Debates over NEA(National Endowments for the Arts))

  • 김진아
    • 미술이론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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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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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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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문화 전쟁(Culture Wars)'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미국에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사이에 벌어진 문화적 논쟁을 일컫는다. 이 용어는 제임스 헌터(James Hunter)의 책 "문화 전쟁: 미국을 정의하려는 노력(Culture Wars: The Struggle to Define America)"의 출간으로 대중화되었고,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패트릭 부캐넌(Patrick Buchanan)에 의해 급부상하게 된다. 그는 "이 나라에는 지금 종교 전쟁, 즉 냉전만큼 중요한 '문화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이것은 미국의 영혼을 위한 전쟁이다." 라고 부르짖으며 급변하는 문화 정체성의 위기 속에서 미국적인 전통을 지키고자 하였다. 이 문화 전쟁은 여러 다양한 논쟁을 함의하고 있었는데, 교목제도의 폐지, 교육기관에서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커리큘럼 도입, 동성애자의 군복무, 낙태, 총기 소지 등의 허용 문제로 당시 미국의 교육계, 문화계뿐만 아니라 정치계, 입법부에서도 첨예한 대립 구도를 형성하였다. 미술계에서 가장 치열했던 문화 전쟁은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의 작품전과 ${\ll}$로버트 메플소프: 완벽한 순간(Robert Mapplethorpe: The Perfect Moment)전${\gg}$이 공공기금인 국립예술진흥기금(National Endowments for the Arts, NEA)의 지원을 받아 개최되는 것이 타당한 것이냐에 대한 논쟁에서 표출되었다. 이 두 전시를 기점으로 그 뒤로도 여러 미술 전시회와 음악회, 연극 등을 둘러싼 NEA 기금 지원과 관련한 분쟁은 한동안 계속된다. 이 글은 이러한 미술계 문화 전쟁의 발전 과정과 몇몇 논점에 초점을 맞추되, 세라노나 메플소프의 작품 자체를 분석하고 비평하는 글이 아님을 밝혀 둔다. 본 연구는 분쟁의 전개에 대한 상세한 기술적, 연대기적 조사보다는 그 발단과 전개 과정에서 몇 가지 핵심적인 사항들을 기술하고, 이 사항들이 암시하는 정치적, 미학적, 미술사적 시각의 충돌에 대해 지적하는 글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당시 이러한 논쟁이 미국 미술계에 의미하던 것, 미국 문화 전체에 의미하던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비평적 질문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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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부터 1950년대까지 한국에서 활동한 외국인이 본 한국미술 (Korean Art from the view of foreigners in Korea from the period of independence to 1950s)

  • 조은정
    • 미술이론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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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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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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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Foreigners who arrived in Korea after the age of enlightenment were Japanese, Chinese and 'Westerners' who were Europeans and Americans. The westerners were diplomats who visited Korea for colonization or for increasing their economical profits by trading after the spread of imperialism, and tourists curious of back countries, artists, explores and missionaries to perform their roles for their religious beliefs. They contacted with Korean cultural and educational people as missionaries and instructors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In 1945, the allied forces occupied Korea under the name of takeover of Japanese colony after Japan's surrender and the relation between foreigners and Korean cultured men enter upon a new phase. For 3 years, American soldiers enforced lots of systems in Korea and many pro-American people were educated. This relationship lasted even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government of Korean Republic and especially, diplomats called as pro-Korean group came again after Korean War. Among them, there were lots of foreigners interested in cultures and arts. In particular, government officials under American Forces who were influential on political circles or diplomats widened their insights toward Korean cultural assets and collected them a lot. Those who were in Korea from the period of independence to 1950s wrote their impressions about Korean cultural assets on newspapers or journals after visiting contemporary Korean exhibitions. Among them, A. J. McTaggart, Richard Hertz and the Hendersons were dominant. They thought the artists had great interests in compromising and uniting the Orient and the West based on their knowledge of Korean cultural assets and they advised. However, it was different from Korean artist's point of view that the foreigners thought Korean art adhered oriental features and contained western contents. From foreigners' point of view, it is hard to understand the attitude Korean artists chose to keep their self-respect through experiencing the Korean war. It is difficult to distinguish their thought about Korean art based on their exotic taste from the Korean artists' local and peninsular features under Japanese imperialism. We can see their thought about Korean art and their viewpoint toward the third world, after staying in Korea for a short period and being a member of the first world. The basic thing was that they could see the potentialities through the worldwide, beautiful Korean cultural assets and they thought it was important to start with traditions. It is an evidence showing Korean artists' pride in regard to the art culture through experiencing the infringement of their country. By writing about illuminating Korean art from the third party's view, foreigners represented their thoughts through it that their economical, military superiority goes with their cultural superiority. The Korean artist's thought of emphasizing Korean history and traditions, reexamining and using it as an original creation may have been inspired by westerners' writings. 'The establishment of national art' that Korean artists gave emphasis then, didn't only affect one of the reactions toward external impact, 'the adhesion of tradition'. In the process of introducing Korean contemporary art and national treasure in America, different view caused by role differences-foreigner as selector and Korean as assistant-showed the fact evidently that the standard of beauty differed between them. By emphasizing that the basis to classify Korean cultural assets is different from the neighborhood China and Japan, they tried to reflect their understanding that the feature of Korean art is on speciality other than universality. And this make us understand that even when Korean artists profess modernism, they stress that the roots are on Korean and oriental tradition. It was obviously a different thought from foreigners' view on Korean art that Korean artists' conception of modernism and traditional roots are inherent in Korean history. In 1950s, after the independence, Korea had different ideas from foreigners that abstract was to be learned from the west. Korea was enduring tough times with their artists' self-respect which made them think that they can learn the method, but the spirit of abstract is in the or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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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1966년 시기 중국 선전화 연구 - 유화와 포스터를 중심으로 (Study of Chinese Propaganda Paintings from 1949 to 1966: Focusing on Oil Paintings and Posters)

  • 전희원
    • 미술이론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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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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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7-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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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The propaganda paintings in oil colors or in forms of posters made from 1949 to 1966 have gone through some changes experiencing the influence of the Soviet Union Art and discussion of nationalization, while putting political messages of the time in the picture planes. The propaganda paintings which have been through this process became an effective means of encouraging the illiterate people in political ideologies, production, and learning. Alike other propaganda paintings in different mediums, the ones which were painted in oil colors and in the form of posters have been produced fundamentally based on Mao Zedong's intensification of the literary art on the talks on literature at Yenan. Yet, the oil paintings and posters were greatly influenced by the socialist realism and propaganda paintings of the Soviet Union, compared to other propaganda paintings in different mediums. Accordingly, they were preponderantly dealt in the discussions of nationalization of the late '50s. To devide in periods, the establishment of People's Republic of China in 1949 as a diverging point, the propaganda paintings made before and after 1949 have differences in subject matters and styles. In the former period, propaganda paintings focused on the political lines of the Communists and enlightenment of the people, but in the latter period, the period of Cultural Revolution, the most important theme was worshiping Mao Zedong. This was caused by reflection of the social atmosphere, and it is shown that the propaganda painters had reacted sensitively to the alteration of politics and the society. On the side of formalities, the oil paintings and posters made before the Cultural Revolution were under a state of unfolding several discussions including nationalization while accepting the Soviet Union styles and contents, and the paintings made afterwards show more of unique characteristics of China. In 1956, the discussion about nationalization which had effected the whole world of art, had strongly influenced the propaganda paintings in oil colors more than anything. There were two major changes in the process of making propaganda paintings in oil colors. One was to portray lives of the Chinese people truthfully, and the other was to absorb the Chinese traditional styles of expression. After this period, the oil painters usually kept these rules in creating their works, and as a result, the subject matters, characters, and backgrounds have been greatly Sinicized. For techniques came the flat colored surface of the new year prints and the traditional Chinese technique of outlining were used for expressing human figures. While the propaganda paintings in oil colors achieved high quality and depth, the posters had a very direct representation of subject matters and the techniques were unskilled compared to the oil paintings. However, after the establishment of People's Republic of China, the posters were used more than any other mediums for propagation of national policy and participation of the political movements, because it was highly effective in delivering the policies and political lines clearly to the Chinese people who were mostly illiterate. The poster painters borrowed techniques and styles from the Soviet Union through books and exhibitions on Soviet Union posters, and this relation of influences constantly appears in the posters made at the time. In this way, like the oil paintings, the posters which have been made with a direct influence of the Soviet Union had developed a new, sinicised process during the course of nationalization. The propaganda paintings in oil colors or in forms of posters, which had undergone the discussion of nationalization, had put roots deep down in the lives of the Chinese people, and this had become another foundation for the amplification of influences of political propaganda paintings in the following period of Cultural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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