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Enlightenment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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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과부개가 담론분석 -신문과 신소설을 중심으로- (A study of discourses on remarriage of the widows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Based on newspapers and Shinsoseol-)

  • 전미경
    • 가정과삶의질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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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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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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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This paper serves to analyze discourses on remarriage of the widows at the beginning of the modernization era or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of Korea (1860-1910). The discourses of newspapers and Shinsoseol which are the text of this study have been analyzed with the qualitative research technique. The major conclusions that are derived from the study are as follows: First, intellectuals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claimed the unfairness of the prohibition from remarriage of the widows with especially focusing on financial difficulty and life-long loneliness of the young widows. Second, permission of remarriage of the widows was explained not with the point of vies of individual life of widow, but with the point of vies of strengthening the 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Third, the discourse claimed that the widow should hold the power of decision of remarriage. Forth, the discourse emphasized the etiquette of the wedding ceremony in remarriage of widows. Fifth, the point that the faithfulness was not easy for a usual widow to obey made the faithfulness noble ethical principle of Korea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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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1876~1910) 서양음식에 대한 인식과 수용 (Study on Cognition and Acceptance of Western Food in Joseon Enlightenment Period (1876~1910))

  • 이규진
    •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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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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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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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This research investigated changes in Joseon food culture mainly focusing on acceptance of Western food in the enlightenment period. Joseon intended to learn the advanced technology of the West. Through an exchange with various Western countries, the royal family and upper class of Joseon rapidly accepted foreign food and food culture. As hotels were built in Incheon and Seoul, foreign food became more widely provided, which spread to the public, accordingly, and Western style restaurants were built and spread to the Busan area besides Seoul. As Western food rapidly spread, concerns arose. Particularly, after an attempt to assassinate Gojong by inserting poison into his coffee in 1898, appeals were made concerning Western food "that should not be consumed, because it is not proper for Korean people's intestines and stomach".

개화기 소설과 신문 사설에 나타난 담화방식 (The Ways of Discourses in the Novels and Editorials During the Period of Korean Enlightenment)

  • 음영철
    • 한국컴퓨터정보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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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컴퓨터정보학회 2015년도 제52차 하계학술대회논문집 2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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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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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논문에서는 개화기 소설과 신문사설에 나타난 담화방식을 연구한 것이다. 개화기 소설과 신문 사설은 당시 대표적인 담론 매체였다.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담화방식은 개화기소설의 경우 대화체 토론체 연설체 담화방식으로 나타났다. 이는 신문 사설이 갖고 있는 한계인 설명 추상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당대의 시대정신을 잘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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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기·근대시조 DB의 개선 및 콘텐츠화 방안 연구 (A study on the improving and constructing the content for the Sijo database in the Period of Modern Enlightenment)

  • 장정수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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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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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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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최근 검색 기능을 갖춘 "계몽기 근대시조의 XML 데이터베이스 문서화"라는 자료가 기초학문자료센터(http://www.krm.or.kr)를 통해 제공되고 있어 근대시조의 문화콘텐츠화를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계몽기 근대시조 DB의 특성 및 문제점을 검토해 보고 개선 방향을 탐색함으로써 이 자료의 콘텐츠화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계몽기 근대시조 DB는 12,500여 수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근대시조를 한자리에서 일별할 수 있도록 집성해 놓았다는 점과 문헌 및 작가명 작품명 검색, 원문 검색, 시기별 검색 등의 검색 기능을 갖춘 최초의 시조 DB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이 DB는 현대어 정규화 텍스트가 형성되지 않아 제목이나 원문이 고어나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 검색이 되지 않으며, 1945년 이후에 발표된 작품과 개인 시조집에 수록된 작품이 대거 누락되어 있어 계몽기 근대시조의 총체적 모습을 확인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작자 표시가 실명, 호, 필명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어 있어 작가별 자료 추출에 불편함이 따르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DB 활용을 제고(提高)하는 방안으로 본고에서는 현대어 정규화 텍스트 마련, 작품 별 내용소(內容素) 색인어 부여, 고시조 DB와의 통합, 작품 형식에 대한 정보 제공 등을 제시하였다. 나아가 '시조문화정보시스템'의 성격을 갖춘 복합적인 성격의 계몽기 근대시조 DB가 형성된다면 이를 연구 및 교육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음을 피력하였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근대사 학습 및 근대기 국토 인식 등에 대한 보조 자료, 고유의 동식물 캐릭터 학습 및 상업적 캐릭터 생성을 위한 원천 자료, 시조놀이 등의 시조학습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음을 제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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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조혼 담론의 가족윤리의식의 함의 (An Implied Meaning of Family Ethics Consciousness of Early Marriage Discourse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of Korea)

  • 전미경
    • 대한가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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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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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9-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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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ore an implied meaning of family ethics consciousness from the interpretation of early marriage discourse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of Korea. For the analysis, the estimated time frame of the enlightenment period wile be from 1860 to 1910 that was the time when the Japanese annexed Korea. The discourse of newspapers, Shinsoseols and magazines which are the text of the study have been analysed with the qualitative research technique. The major findings were as follows: 1. The intellects stated that the traditional practice of early marriage should be abolished, and should be replaced by a marriage that the groom and the bride dually agree upon. This argument meant that marriage was not an event for the parents or the family, but a life event for the couples themselves. 2. The practice of early marriage was criticized as it was one of the main reason of making marital relationship miserable. Also it was stated that the children could not follow the role of husband and wife. The importance of marital relationship was emphasized with the recognition that the marital relationship was the basic relationship within family and society. 3. The discourse, criticizing the parents'behavior that enforced the early marriage of children, stated that the children should not be the possession of parents but the public being of society. 4. The discourse also stated that the society and the parents should recognize their children as the human being to be protected from the early marriage which would result in physical damage of their children. Also the discourse asserted the rights of the children including their rights of education. The childhood were being formed in these discour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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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역관(譯官)의 과학교육 활동: 현채(玄采)를 중심으로 (The Activity of an interpreter on science education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in Korea: Focus on Hyun Chae)

  • 박종석
    • 한국과학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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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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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4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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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개화기는 우리나라에서 과학교육이 도입되고 전개되던 시기이다. 당시 발간된 과학 교과서는 한국 근대 학교 과학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교과서를 저술하였거나, 발행한 이들은 개화기 한국의 과학 교육을 주도한 중심인물들이었다고 여겨지는데, 이들 중에 역관이었던 현채와 그의 아들 현공염이 있다. 현채는 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역과에 급제하였고, 역관 관련 관직을 거쳤으며, 외국어학교, 한성사범학교 부교관으로 있었다. 학부에서는 번역 및 저술 업무를 수행하였다. 현채가 저역술 또는 출판한 순수과학도서로 26종이 된다. 그 중 이과교과서는 자연과학의 전 분야를 다루어 학생들이 반드시 알아야할 지식을 적절한 방법으로 제시하였으며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였다. 또한 실험을 제시하여 오늘날 과학교과서와 비교할 때 전혀 손색이 없었다. 과학교과서를 저역술한 현채의 과학교육활동은 그를 사학계에서 이중적으로 평가하는 것과는 달리, 개화기 과학교육이 정립되는 시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당시 과학교과서가 부족했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보급에 있어 과학교과서의 저역술과 출판 활동은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과학교과서의 편저자나 발행자 중 외국어를 알고, 외국과의 교류 주체 중 중요 인물이었던 역관 현채의 역할과 그의 과학교육 활동은 우리나라 과학 교육의 역사 중 일부분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답 대한 신지지 내용분석- 자연지리를 중심으로 (A Study of Contents Analysis on Questioning Daehan- Sin- Gygi - Focusing on the Contents of Physical Geography -)

  • 강철성
    • 한국지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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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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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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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연구는 20세기 초 개화기 때, 이태국이 편찬한 '문답 대한신지지' 내용 중에서 서문과, 내용 목차, 내용 체계, 주요 내용(자연지리 부분) 순으로 내용을 분석하여 당시의 지리관을 고찰하였다.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문답 대한신지지 교과서 서술 내용은 대체로 전통적 지리관을 극복하고, 실학사상에 근거하여 과학적 지식을 도입한 계몽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자연지리 내용을 중시하고, 총론은 계통적 접근 방법으로, 각론은 지지적 접근 방법으로 행정 구역에 따라 조선의 각 지방을 서술하였다. 백과사전적인 현상 사실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조직화, 구조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내용체계와 자연지리 내용 분석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한문으로 기술되어 한문을 해석하는 고충을 어느 정도 덜게 하였다. 둘째, 간명하면서도 명료하여 기억하기 쉽도록 구성되어 배우기가 쉽다. 셋째, 산세, 지세, 기후, 하천, 도서, 해만 순으로 서술하였는데, 과학적인 자연지리 서술내용은 적으나, 최초로 질문-응답의 방법을 취하여 서술한 점이 높이 평가된다고 사료된다.

Literature as a Strange Body: Modernity, Literariness and Dislocation

  • Lee, Alex Taek-Gwang
    • 영어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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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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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7-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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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The aim of this essay is to discuss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n literature and Korean intellectual scenes. Since its first introduction to the local context, literature as a genre has served as a field in which colonial and post-colonial intellectuals have attempted to win the accreditation of Western enlightenment. Literature has been regarded as a crucial instrument of liberal arts and education in Korea. Literature has functioned as a social movement in Korea since its inception. During the colonial period, radical intellectuals and literary writers published essays and articles in literary journals. This status as a social movement is still a distinctive characteristic of Korean literature. From the outset, Korean literature has functioned as an enlightenment project for cultural development. As such, Korean literature retains a political meaning of "literariness," which reshuffles the hierarchy of the sensible and creates novelty against given aesthetic regimes. As a result, in the process these regimes are thereby de-purified of their status as purely aesthetic movements; their perspectives thereby come into contact with other discourses and practices outside the art world. This essay argues that as a genre, Korean literature always functions as "world literature" in Korean intellectual scenes.

개화기부터 광복이전까지 신문, 잡지에 기록된 외래어 복식명칭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Naturalized Costume Terminologies Appearing in Korean Newspapers and Magazines, from the Age of Enlightenment to the Time of Independence(1876-1945))

  • 김은정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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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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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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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This study is intended to suggest the characteristic of dress and its ornament introduced in terms of naturalized words on Korean newspapers and magazines published from the age of enlightenment to the Independence(1876-1945). First of all, naturalized words in that period(1876-1945) can be classified into words originated in Japanese, words originated in western countries and borrowed words came from Japan. Borrowed words which came from Japan are almost related to Japan's traditional dress like Gudu, Gabang, Kimono, Nemaki, Ebijahagama, Hagama, Sirusibanden, Doriachi, Dombi, Sarumada, Sseumeeri, Doriachi, and Mombbe. Borrowed words originated in western countries are like Frock coat, Bonnet, Necktie, Chapeau, Scotch, Homespun, Chamois, Skirt, Spring Coat, Ribbon, Silk hat, Panama hat, Handbag, Pajama, Shawl, Apron, Cuffs, Pocket, Handkerchief, Morning coat, Combination-one piece, Rain Coat, Burberry, and Permanent, etc. Borrowed words came from Japan is Lasa[raxa], jokki[jaket], Les[lace], Veludo[velvet], Bbanss[pants], Oba[overcoat], Meliyas[medias], Shass[shirt], Manto[manteau], and Sebiro[civil clothes]. As we can see from the result of research, borrowed words from the age of enlightenment to the Independence was because of its special social situation, Japanese imperialism, they are divided into real western words and words came from Japan or Japanese. In terms of items, a lot of words related to men's suit and women's dress, accessory, etc. It confirms that men's dress was westernized in the whole part compared to partially westernized women's one. A lot of words used at that period are now adapted to Korean language and became the foundation of words used in the current dress and its ornament area.

The Study of Children's Costumes Historical in Enlightment Period of Korea

  • Kim, Jin;Sohn, Hee-Soon
    • 패션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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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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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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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This study was aimed at reviewing kinds and characteristics of children's costumes in consideration of their social and cultural backgrounds and particularly, those of children's costumes during the period of Enlightenment following Chosun dynasty and thereafter. Namely, this study focused on children's costume history in view of not adults' costume miniatures but their own concept. It is deemed very significant to review the history of our traditional costumes and thereby, express their decorative features with our contemporary sense. It is results can be summed up as follows; Strictly speaking, the period of Enlightenment can be defined as the one from Gwangwhado treaty in 1876 through annexation of Korea by Japan in 1910, but it may well extend until our emancipation from Japan in 1945. By 1890's, children's costumes remained almost traditional, but since then, the Chimas as well as Jeogori and breast tie began to be narrower. Particularly, Children's Jeogori began to be narrower with their breast tie disappearing gradually. By 1910's, children's costumes had changed much, with the breast tie replaced by the buttons and the longer Jeogo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