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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개념 학습에서 물리적 비유를 사용한 학생 중심 비유 수업의 효과 (The Influences of Student-Centered Analogical Instruction Using Physical Analogies in Chemistry Concept Learning)

  • 변순화;김경순;최숙영;노태희;차정호
    • 한국과학교육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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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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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3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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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이 연구에서는 물리적 비유를 사용한 학생 중심 비유 수업의 효과를 학생들의 개념 이해와 응용, 개념 이해 및 응용의 파지, 과학 수업 환경에 대한 인식, 비유 수업에 대한 인식 측면에서 조사하였다. 서울시에 소재한 중학교에서 1학년 6학급(208명)을 선정하여 통제 집단, 교사 중심 비유(TCA) 집단, 학생 중심 비유(SCA) 집단에 배치하고, '물질의 세 가지 상태' 및 '분자의 운동'에 대해서 8차시 동안 수업을 실시하였다. 연구 결과, 개념 이해, 개념 및 응용의 파지, 과학 수업 환경에 대한 인식에서 SCA 집단의 점수는 다른 집단들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다. 개념 응용에서도 SCA 집단의 점수가 다른 집단들보다 높았으나, SCA 집단과 통제 집단 간에만 유의미한 점수 차이가 있었다. TCA 집단은 응용의 파지에서만 통제 집단보다 학생들의 점수가 높았다. 또한, SCA 집단의 학생들은 TCA 집단에서보다 비유 수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교육적 함의를 논의했다.

경복궁 인수형(鱗獸形) 서수상(瑞獸像)의 제작시기와 별간역(別看役) 연구 (A Study on the Special Technician Byeolganyeok(別看役) and the Statues of Auspicious Animals(Seosusang, 瑞獸像) : the Scale-covered animal form(鱗獸形) in Gyeongbokgung Palace(景福宮))

  • 김민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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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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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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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경복궁(景福宮)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全燒)된 뒤 폐허로 남아 있다가 고종2년인 1865년 재건이 시작된다. 이때 경복궁 재건에 대한 의궤(儀軌)는 만들어지지 않고 기초 자료인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에 1865년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 간의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내용들을 정리하면 경복궁 재건에 사용된 석재들은 강화(江華), 동대문 밖의 영풍정(映楓亭), 삼청동(三淸洞) 등지에서 채취하기도 했으며, 경복궁 터에 남아 있던 간의대(簡儀臺) 등의 옛 석물을 재사용(再使用)하기도 했다. 또 경희궁(慶熙宮)에 있던 여러 건물 및 석조물을 이전(移轉)하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로 경복궁에는 재건기 19세기 뿐만 아니라 17~18세기의 석조물이 공존하고 있다. "경복궁영건일기"에는 경회루(慶會樓) 연못에서 출토된 청동용(靑銅龍)이 별간역(別看役) 김재수(金在洙)가 1865년 궁궐의 화재를 막아달라는 의미를 담아 제작했다는 내용이 있다. 김재수 등 별간역들은 석물의 설계 및 감동(監董)을 했던 인물들로 광화문 해치상을 조각했다고 전해지던 이세옥(李世玉) 역시 화원(畵員) 출신의 별간역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의 설계를 바탕으로 실제 조각을 담당한 석장(石匠)들도 찾을 수 있었는데 근정전(勤政殿)은 장성복(張聖福), 광화문(光化門)은 김진명(金振明)이 참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들을 바탕으로 경복궁의 서수상(瑞獸像) 중 비늘이 있는 인수형(鱗獸形) 서수상의 양식 특징을 찾은 결과 돌출된 입과 큰 코, 형식적인 귀, 등 갈기 등을 꼽을 수 있었다. 이러한 양식 특징을 조선시대 능묘(陵墓) 석물들과 비교한 결과 이 작품들은 고종 재건시인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양식 계승은 별간역, 석장들이 능묘의 석조물을 제작하면서 얻은 결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