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Confucian scholar's uni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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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행복장의 변천에 관한 연구 -성균관 학생복을 중심으로- (A Study of Changes in Scholar's Costume During Chosun Dynasty - Centering on Sungkyunkwan Student's Uniform-)

  • 홍나영
    • 한국의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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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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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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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This study aims to analyze Sungkyunkwan Students' uniform during Chosen dynasty through literature and paintings. Confucian scholar's coshime of Chosen dynasty was said to imitate that of Chinese counterpart's. The first Confucian scholars costume, which was officially instituded during King Taeiong's reign, was a Yugon worn on the head and a Chongkeum (blue collar). But Chinese Gukjagam students'uniform in the early Ming years was a Nansam and later became a blue Wonryong which reflected the changes in the Ming Period. Though Chosun's Chongkeum was the official Confucian scholar's costume on record, it was not worn widely. Corfucian scholars rather wore a red Jikryong or a white coat up to the mid-Chosun dynasty, and in the late Chosen period, a black Danryong or a red Danryong were more popular for Confucian scholars. Because the official Confucian scholar's uniform Chongkeum was not used widely and other costumes were worn more popularly, various attempts had been made to adopt the Nansam, like that of Ming's, as the official Costume scholar's uniform from King Snio to King Youngio. Finally, King Youngjo decided to adopt the Nansam as the official costume for those who passed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ending the controversies concerning an official costume. We cannot find the Nansam and the Aengsam of the late Chosen period from the paintings either. This conirms that Aengsam was the costume which originated from the late Chosun period. The term "Chongkeum" was used either to imply "Confucian scholar' or to indicate various 'Confucian scholar's costume rather than its original meaning of blue co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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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7년 효명세자 입학례의 왕세자 복식 고증 (A Study on the Costumes for the Crown Prince Based on the Picture for School Entrance Ceremony in 1817)

  • 손윤혜;이은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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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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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8-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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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에서는 1817년에 거행된 효명세자의 입학례 의주(儀註)와 절차별 장면을 담은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본 ${\ll}$왕세자입학도${\gg}$를 중심으로, 입학례 절차에 따라 왕세자가 착용하는 복식의 종류와 구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입학례를 구성하는 첫 번째 절차인 <출궁의(出宮儀)>는 산선시위를 비롯하여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 관원들, 그리고 의장군들이 왕세자와 함께 동궁을 출발하여 성균관을 향하는 절차이다. 산선시위를 비롯하여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 관원들이 동행하고, 이 대열 앞에 의장군이 앞장서 출궁을 알린다. 이때 왕세자는 서연복(書筵服)을 착용하였다. 서연복은 익선관(翼善冠)과 곤룡포(袞龍袍), 독옥대(禿玉帶), 흑화(黑靴)로 구성된다. 그러나 입학례 당시 효명세자는 아직 관례를 치르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익선관 대신 쌍동계(雙童?)라는 머리모양에 쌍옥도(雙玉導)를 꽂는 공정책(空頂?)을 썼다. 곤룡포는 다홍색 안감을 넣은 아청색 혹은 자적색 곤룡포를 착용하고, 허리에는 청정(靑?) 독옥대를 띠며 청색 또는 흑색 깃 장식의 흑피화를 신었다. 성균관에 이르면 <작헌의(酌獻儀)>, <왕복의(往復儀)>, <수폐의(脩弊儀)>, <입학의(入學儀)>를 치르게 되는데, 그동안 줄곧 학생복인 청금복(靑衿服)을 착용하였다. 왕세자는 학생복으로 연두건(軟頭巾)을 머리에 쓰고 아청색 도포를 입고 자적색 세조대, 흑화를 착용하였다. 도포 안에는 대창의와 중치막을 받쳐 입었다. 왕세자가 성균관에서 학생복을 착용하는 것은 왕세자가 왕위 계승자로서의 서열을 내세우는 자리가 아니라, 학문의 스승을 맞이하고 유학의 학맥을 잇는 자임을 표방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성균관에서 의식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온 후, 효명세자는 창경궁의 시민당(時敏堂)에서 입학례의 마지막 절차인 <수하의(受賀儀)>를 거행하였다. 이때 원유관복(遠遊冠服)을 착용한다고 하였으나 관례를 치르기 전이므로 원유관 대신 공정책을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