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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祖)의 사대부(士大夫) 인식(認識)과 그 특징(特徵) (King Jeongjo's recognition on Neo-Confucian literati and it's historical meaning)

  • 박성순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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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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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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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정조는 척족이 특권세력으로 발호하던 영조대 후반의 탕평정치에서 아버지를 여읜 피해자였다. 노론의 거센 방해공작을 뚫고 왕위에 오른 정조의 목표는 왕권 강화였다. 정조는 탕평정책을 영조 50여년 치세의 대업적으로 칭송하고 척신과 탕평당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신하들에게 왕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국변인(國邊人)'이 되어줄 것을 요구하였다. 정조가 즉위 직후부터 설치 운영한 규장각(奎章閣)은 겉으로는 어제(御製)의 봉안 등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정조의 우군을 양성하기 위한 기구였다. 그만큼 정조가 외척들을 누르고 어떻게 사대부들을 포섭하는가 하는 문제는 정권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본고에서는 정조가 사대부들을 어떻게 굴복시키고 포섭하려 했는가라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하였다. 그것을 통해서 정조가 시도한 왕권강화책의 논리와 방법을 확인해 보고자 하였다. 정조는 경학(經學)의 본질은 성리학이 아니라 실생활과 절실하게 관련된 학문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사대부들의 이념적 근거를 붕괴시키고자 하였다. 정조가 사대부들의 풍기와 세도를 비판하고 그들의 학문인 주자성리학의 의미를 축소했던 것은 사대부들을 왕권에 복속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붕당론이나 성학론을 기본으로 하는 사대부들의 정치 이념과 학문적 근거를 반박함으로써 공론(公論)의 주체로서 국왕의 권위를 강조하려고 하였다. 정조가 영조의 '군사(君師)' 개념을 계승하고 왕호도 '홍재(弘齋)'에서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으로 바꾼 것은 그의 사대부 비판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했던 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남아와 아세안 2016: 기대와 혼돈 속에 커져가는 불확실성 (Southeast Asia and ASEAN in 2016: Disappointing Records and Increasing Uncertainty)

  • 신윤환
    • 동남아시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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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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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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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글은 2016년 한 해 동안 동남아 각국들과 아세안이 정치, 경제, 국제관계의 영역에서 보여 준 변화를 살펴보고, 그 변화가 민주화, 경제발전, 지역통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보고자 했다. 나아가 2016년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2017년 이후의 변화 가능성과 방향도 나름대로 가늠해 보았다. 아울러 2016년에 전개된 한-아세안관계를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한국의 대아세안외교가 드러내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2016년의 동남아 정치는 연초의 기대와 달리 대다수 나라에서 민주화 전망은 더 나빠지고 권위주의화는 더 강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태국, 말레이시아, 캄보디아는 권위주의적 집권세력이 야당을 더욱 약화시켰고, 필리핀, 베트남, 라오스에 들어선 새 지도부는 인권 상황을 되레 악화시켰다. 미얀마도 소수민족에 대한 군부의 탄압이 지속되고, 선거에 의해 들어선 민간정부는 첫해부터 내분, 부패, 무능을 드러내며 삐걱거리고 있다. 출범 이틀 째 새해를 맞은 아세안경제공동체(AEC)는 각 국의 내정에 밀려 관심과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경제는 2015년에 이어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으나, 중국과 미국 등 경제대국들에서 기인하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앞날을 점치기 힘들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한국의 대아세안외교가 경제중심, 국가주도, 비밀주의, 냉전적 경쟁외교의 덫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고, 지금이 바로 사고의 전환과 과감한 개혁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한다.

수기(修己)의 측면에서 본 『대학(大學)』에서 『성학집요(聖學輯要)』로의 학문적 심화 (Academic Enrichment beginning from the Great Learning(大學, Dae Hak, or Da Xue in Chinese) toward the Essentials of the Studies of the Sages(聖學輯要, Seong Hak Jibyo) in the respect of Cultivating Oneself(修己, sugi))

  • 신창호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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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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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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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는 "대학"의 재해석이자 학문적 심화인 율곡 이이의 "성학집요"의 특성을 고찰하여 조선시대 "대학"의 수용 양상을 탐구한 것이다. 조선의 경우, "대학"은 성학(聖學)을 지향하는 지성 사회에서 핵심 경전의 위상을 점하고 있었다. "대학"은 조선 시대 전반에 걸쳐 제왕학(帝王學)이자 성학의 기본 교재로 탐구의 대상이 되었고, 율곡의 "성학집요"는 그것의 총집결체라고 볼 수 있다. 율곡은 "성학집요"를 편찬하면서 "대학"을 기본으로 조선 성학의 모델을 제시했다. 율곡은 "성학집요"의 체제를 크게 다섯 편으로 구성하고, "대학"의 삼강령팔조목을 적절하게 배치한다. 특히 2편의 "수기"는 삼강령 중 명명덕(明明德)을 핵심으로 하되, 팔조목 가운데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의 지어지선(止於至善)을 다루었다. 수기의 이치는 명명덕, 격물-치지-성의-정심의 수신의 총론을 다룬 부분과 이를 입지, 수렴, 궁리 등 열두 가지의 구체적인 학문 양식으로 확장한다. 이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핵심으로 하는 유교의 기본 체제를 잘 보존하면서도 각 영역별로 구체적 실천 지침을 제시하여 학문의 타당성을 논리적으로 뒷받침 한다. 그것은 중국 유교와 다른 조선 유교의 특징을 검토하는 장이다. 나아가 조선 민족이 지닌 인간과 학문의 특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곤륜(昆侖) 최창대(崔昌大)의 문장론 연구 (A study about Gollyun(昆侖) Choe, Changdae(崔昌大)'s prose theory)

  • 권진옥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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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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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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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논문은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인 소론(少論) 계열 인물인 곤륜(昆侖) 최창대(崔昌大, 1669-1720)를 대상으로, 문장을 위시한 문장론을 규명한 글이다. 최창대는 다양한 저술 편력을 보이고, 공적 사적인 문헌에서 당파(黨派)를 초월하여 공히 문학성을 인정받았기에 그의 문학을 연구하는 것은 유의미한 시도이다. 이에 최창대 문학 연구의 일환이자 그 기초적인 작업으로 그의 문장론을 규명하였는데, 2장에서는 그가 주장하는 문장의 효용론을 고찰하였다. 3장에서는 논의의 범주를 예각화 하였는데, 논의를 설정함에 한문산문사에서 쟁점이 되는 주제를 부각시켰다. 문장 효용론을 실질(實質)과 소통(疏通)의 추구라고 설정하였다. 최창대의 문장 효용론의 가장 큰 명제는 당대와 후대에 전할 만한 실질[가전지실(可傳之實)]을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세상의 일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었다. '재도지문(載道之文)'이나 '유덕자필유언(有德者必有)'과 같이 도(道)와 덕(德)을 담보하거나 명시하지 않고, 동시대 사람들의 뜻과 소통하여 당대의 급선무를 설정하고 이를 쉽게 이해시키는 철저히 현실적인 효용론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한문산문사에서 '사달(辭達)'과 '수사(修辭)' 논의는 문예비평 측면에서 항상 쟁점이 되었다. 그 사이에서 최창대는 사달과 수사를 제로섬(zero-sum)으로 인식하는 상대적인 문장론을 초월하기를 주장하였다. 사달과 수사 논의 자체를 초월하여 명리(明理 이치를 밝힘), 택술(擇術 학술을 가림), 수사(修辭 말을 닦음)로 이어지는 문장론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 연장선에서 이치를 얻어 마음에 감응하는 것에 신중하며, 근본을 수립하고 학술의 취향을 올바르게 하는 문장 창작론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작가의 뜻을 우선시하여 자득(自得)을 중요시한 여타 소론계 문장가들의 창작론과 상통한다. 한문산문사에서 문장의 체제와 표현에 있어서 간명하고 요약함 그리고 험벽하고 기괴함을 논의하는 담론도 꾸준히 쟁점이 되었다. 이른바 순정한 고문(古文)이라 일컬어지는 당송(唐宋)의 문장이 전자라고 한다면, 선진양한(先秦兩漢)과 이를 내세운 이른바 명(明)나라 전후칠자(前後七子)의 문장이 후자라고 할 수 있다. 최창대는 원론적으로 간결한[간과(簡寡)] 문장을 중시하였다. 여러 자료를 통해 최창대는 철저하게 명대 전후칠자를 배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외려 그는 문장에 있어서 한유(韓愈)와 증공(曾鞏)을 전범으로 삼았으며, "고문집성(古文集成)"에 수록된 작가들만 보더라도 당송(唐宋)의 문장가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그렇다고 선진양한의 고문을 일방적으로 배제한 것은 아니었고 선진양한과 당송의 문장을 공히 적극적으로 인정하였으니, 이 점은 부친 최석정(崔錫鼎)도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최창대는 문장의 전범 설정, 문장 학습에 있어서 선진양한의 그것에 경도되어 있지 않고 당송과 선진양한을 고루 인정하되 험벽하고 기괴함보다는 간명하고 요약된 문체를 추구하였다고 할 수 있다.

가평 이천보(李天輔) 고가(古家)의 정원 현황과 원형 복원을 위한 제안 (A Study of the Current State of the Garden and Restoration Proposal for the Original Garden of Yi Cheon-bo's Historic House in Gapyeong)

  • 노재현;최승희;장혜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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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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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8-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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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우리나라 사대부 민가 정원 중 그 형태는 물론 정원의 구조와 기능 등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경기도 가평군 상면에 위치한 이천보 고가(경기도문화재자료 제55호)는 명문가로서의 내력이나 장소성 그리고 잔존하는 건물과 자연문화재 등의 측면에서 매우 가치 있는 정원 유산으로 판단되지만, 현재는 사랑채를 제외하고는 그 진가를 찾을 수 없다. 본 연구는 이천보 고가를 비롯하여 경기 북부와 가평군 관내 민가 정원의 배치 양식 등을 문헌 연구, 현장 연구, 1954년 항공사진 비교 검토 그리고 관련자 인터뷰 등을 통해 조사 분석함으로써 이천보 고가의 가치를 조명하고, 이천보 고가의 정원 원형을 추론하는 등 산림채와 정원 복원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정원의 장소성이 그나마 잘 보존된 반계천 일대의 반계동문(磻溪洞門) 암각서와 반석암의 존재를 통해 외원의 영역과 경관상을 살피고 이천보 고가의 입지 및 풍수 형국 그리고 조망축을 해석하였다. 이와 함께 사랑채에 걸린 상고당(尙古堂), 반계정사(磻溪精舍) 그리고 옥경산방(玉聲山房) 3개의 편액을 통해 사랑채의 경관성과 용도 및 상징성을 추론하였다. 더불어 내원에 현존하거나 존재했던 수목에 대해서는 실측 조사를 병행한 결과, 연하리향나무(경기도기념물 제61호)는 안내판이나 문화재 정보 등의 실제 규격보다도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을 뿐 아니라 행랑채 전면에 잔존하는 향나무 또한 제원 조사 후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원에 남아 있는 사랑채와 이전된 행랑채의 배치와 형태 그리고 사랑채 누마루와 지붕 측면부 합각 형태의 비대칭성 등을 통해 소실된 안채의 모습을 유추하였다. 또한 소실된 안채 및 사당 등의 복원을 통해 정원의 완전성을 추구할 목적으로 원래 모습을 추정한 결과, 안채는 사랑채 우측(북쪽)에 '구(口)자' 또는 '튼구(口)자'형태로 배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를 종합하여 이천보 고가에 대한 복원 대안을 제시하였다.

1922년 발행 고등보통학교 교과서를 통해 본 경주 금관총 발견에 따른 일본의 반응 - 경주의 신발굴품(濱田耕作: 하마다 코사쿠) - (Japan's excitement over the discovery of Gyeongju Geumgwanchong (Gold Crown Tomb) seen through high school textbooks published in 1922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of Joseon (Korea) - Newly Excavated Artifacts of Gyeongju (濱田耕作: Kosaku Hamada) -)

  • 유우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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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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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9-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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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일제강점기였던 1921년 9월말, 경주 노서리(盧西里)에서 우연히 발견된 고분인 금관총(金冠塚)이 발굴된 지 100년이 되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아시아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인 발견으로 알려져 있는 금관총의 발굴보고서는 발굴 3년 후인 1924년과 1928년에 조선총독부가 일본어와 영어로 출판한 경주 금관총과 그 유보(慶州金冠塚と其遺寶: A ROYAL TOMB "KINKANTSUKA" or THE GOLD CROWN TOMB at KEISHU, AND ITS TREASURES)라는 책과 도판(圖版)으로 발행된 것이 있으며 이 책들을 2011년에 경주 문화재연구소에서 우리말로 번역하여 소개한 것이 있다. 발굴보고서는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이었던 하마다 코사쿠(濱田耕作)(후일 교토제국대학 총장)와 조선총독부 고적 조사 사무촉탁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가 작성한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 보고서보다 훨씬 빠른 시기인 고분 발굴에서부터 약 반년 후인 1922년 7월에 서문이 작성된 조선의 고등보통학교(高等普通學校)의 5학년에서 교재로 사용된 '고본 고등 조선어 및 한문 독본 제5권(稿本 高等朝鮮語及漢文讀本 卷五)' 교과서를 발견하여 소개한다. 이 교과서에서 하마다 코사쿠(濱田耕作)는 '경주의 새로운 발굴품(慶州의 新發掘品)'이라는 제목과 우리말로는 조금 어색한 표현이지만 '매우 큰 발견'이라는 뜻으로 '절대의 발견(絶大의 發見)'이라는 부제목을 달아 하나의 단원으로 일본어가 아닌 우리말로 금관총 발굴의 성과와 학술적, 고고학적 발견,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그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발굴 직후에 작성된 원고이기 때문에 발굴 당시의 고고학 연구자로서 흥분된 느낌과 향후의 연구에 대한 기대를 그대로 읽을 수 있다. 본고에서는 금관총 발굴 후 조선총독부 조사책임자의 흥분된 현장의 목소리를 집필한 지 100년이 되는 2022년에 소개하고자 한다. 아울러 고분 발견부터 보고서의 작성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하나의 연표로 정리하여 일련의 흐름을 이해하기 쉽게 하였다.

중국 오대~송대 탑 내 동경 봉안 사례와 양상 (The Cases and Patterns of Bronze Mirrors Enshrined in Pagodas during the Five Dynasties and the Song Dynasty)

  • 최주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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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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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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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탑에서 발견된 동경은 단순 공양품으로 여겨져 동경 연구에서도 크게 관심 받지 못했다. 그리고 탑 내 봉안 동경 연구는 오월국 탑에서 발견된 선각불상문경에 집중되어 있어, 탑 내 봉안 동경에 대한 전반적 특징을 알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본고는 오대~송대 시기 많은 탑들에서 발견된 동경이 목적을 갖고 봉안되었을 것으로 생각했으며, 이를 파악하기 위해 봉안 위치와 방식에 중점을 두었다. 오대 오월국시기에 탑 내 동경을 봉안하는 사례가 증가했고, 동경은 단순한 공양품이 아닌 목적을 갖고 불교와 관련된 도상이나 명문이 새겨져 있는 봉안품이었다. 이는 동경의 사용 목적이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송대까지 영향을 끼친다. 송대는 오월국의 영향이 꾸준히 이어지면서도 송대 문화와 사회 분위기로 인해 동경 봉안 양상도 변화한다. 봉안된 동경의 종류는 소문경이 다수를 차지하며, 당대 동경도 꾸준히 사용되었다. 소문경은 오월국의 영향으로 선각불상문과 같은 도상과 명문을 새기기 용이했기에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또한 당대 동경은 송대 방고동기에 대한 관심과 황제의 영향으로 인해 귀하게 여겨져 탑을 조성할 때 당경을 공양품으로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대~송대 탑 내 동경 봉안은 그 방식에서 변화가 있었다. 당대 지궁 바닥이나 철함 내 놓아두던 동경은 의도적으로 벽에 붙이거나 천장에 매달아 놓았다. 이 방식을 크게 두가지로 구분하여 벽이나 천장에 감입하는 방식(감입경: 嵌入鏡)과 천장에 매달아 놓는 방식(현경: 懸鏡)으로 분류했다. 천장에 매달아 놓는 방식으로는 대표적으로 하북 정지사탑(靜志寺塔)이 있으며, 천장에 감입한 예로는 하남(河南) 복승사탑(福勝寺塔)이 있다. 이렇게 동경을 천장에 매달고 감입하는 방식은 중국 묘실과의 관련성이 높다. 송대 묘실은 넓고 높은 구조를 갖고 있어, 벽사용 동경을 이용해 묘실을 지키고자했다. 그렇기에 높은 곳에 동경을 두어 묘실을 비추게 했으며, 이는 앞서 언급한 두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탑 역시 지궁이 넓고 높아짐에 따라 지궁의 중요한 부분을 지키고, 내부를 밝게 비추고자 했다. 따라서 오대~송대 탑 내 동경 봉안방식은 당시 묘실에 동경을 봉안하던 방식을 차용했던 것으로 생각되며, 이후 섬서(陝西) 묘각사탑(妙覺寺塔)과 같이 적극적으로 설계 때부터 감입을 고려하여 동경을 놓을 자리를 마련해 놓은 예도 등장하게 된다.

텍스트 마이닝을 활용한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 보고문 분석 (An Analysis of the 20th National Congress Report through Text-mining Methods)

  • 권도경;김정수;박지현
    • 분석과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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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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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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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2022년 10월 16일부터 22일까지, 총 이레 동안 진행된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이하 '20차 당대회'로 약칭)는 개최 훨씬 이전부터 '시진핑이 3연임을 할 것인가', '3연임을 함으로써 영구 집권의 기초를 닦을 것인가'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 언론의 관심은 주로 20차 당대회가 진시황에 버금가는 '시황제의 대관식'이었다는 점에, 혹은 당대회 진행 중 전 총서기 후진타오(胡锦涛)가 강제퇴장 당하는 장면에 모아졌고, 학계도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정치국 위원과 상무위원에 대한 인사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또 시진핑의 후계 구도가 드러날 것인가 등에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이면서 오히려 언론의 우려를 강화시켰다. 본 논문은 20차 당대회에서의 시진핑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해석과는 거리를 두면서, 당대회 보고문에 대한 계량적 분석을 시도할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당대회 보고문은 향후 5년 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및 양안관계, 과학기술 등의 분야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통치 비전 및 목표, 그리고 전략적 방향을 담고 있으면서 그 자체로 높은 서사성과 논리성을 가지고 있는 문건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당대회 문건을 대상으로 텍스트 마이닝 방법론을 사용하여 주요 어휘 빈도수 조사 및 분석, 키워드 분석, 주요 표현 조사 및 분석을 진행할 것이다. 이를 통해 18차 당대회에서 20차 당대회까지, 즉 2013년부터 2027년까지 15년의 시진핑 집권기 동안 중국공산당 통치 비전의 거시적인 변화를 계량화, 시각화할 것이다.

궁중 악인(樂人)의 음악 연습과 『악장요람(樂章要覽)』 (Music practice by court musicians and Akjang yoram 『樂章要覽』)

  • 이정희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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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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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7-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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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악장요람(樂章要覽)』은 악장의 요람, 즉 악장 중에서 중요한 내용만 뽑아 간추려 놓은 책이라는 의미이다. 전반부에는 악장(樂章)이, 후반부에는 악보(樂譜)가 배치되어 있는데, 이렇게 이원화된 체재는 정조대에 구축된 것이다. 필체와 수록된 가사의 작성된 시기를 통해 『악장요람』은 1809년 즈음에 작성된 후에도 세 차례에 걸쳐 수정된 것으로 보인다. 즉, 총 네 단계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전해지게 된 것이라 하겠다. 다양한 필체와 수정한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곧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음을 의미하니, 『악장요람』의 표지 뒷면에 여러 자취가 남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전반부의 악장은 제례 절차를 기준으로 그에 수반되는 악곡명과 가사를 제시하는 방식이며, 특히 노랫말을 한문과 한글음으로 병기함으로써 가독성을 높였다. 후반부의 악보는 제례 절차를 준수하되 중복되는 선율을 과감하게 생략하여 음악을 기준으로 구성하였고, 율명·한문가사·가야금과 거문고의 격도지법·점('∙', '·')과 같은 기호를 사용하여 궁중음악을 담아냈다. 이러한 구도는 제례의 구조 이해와 제례의 의미를 글로 담아 놓은 악장을 숙지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한문과 병기된 한글음을 보면서 정확하게 노랫말을 익히게 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형태라고 하겠다. 의식 절차와 딕션을 선행한 후 전체적으로 음악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연습했던 방향성이 악장과 악보를 수록하는 방식에 투영된 셈이다. 이러한 수록 방식은 악인의 음악교육과 음악연습의 효율성을 높이는 장치였다. 수록곡들의 특징은 우방(右坊)의 향악기 전공자로써 익혀야 할 필수악곡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아울러 『악장요람』의 표지 뒷면에서 김형식(金亨植)이라는 이름이 주목되니, 순조대에 효명세자가 기획한 궁중연향에서 무동(舞童)과 대금차비(大笒差備)로 활약했던 그의 이력을 통해 우방의 향악기 전공자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악장요람』의 수록곡은 김형식과 같은 우방의 향악기 전공자들이 평소에 연습하고 현장에서 연주하던 핵심 레퍼토리로 이루어진 것이다. 『악장요람』은 궁중악인의 일상이 담긴 '음악 연습 책자'였던 셈이다. 요컨대 『악장요람』은 주요 의례에서 노랫말을 정확하게 발음하면서 가창할 수 있게 악인을 교습시키려는 목적으로 고안된 책자로, 정조의 아이디어로 '악장+가보(歌譜)'의 체계를 갖출 수 있었으며, 순조대에 효명세자가 창작한 정재를 공연했던 무동으로 맹활약한 김형식이 소장자였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우방의 향악기 전공자이기도 했던 악공 김형식의 이름이 남아있는 데에다 이후 여러 악인들이 시대의 변화를 투영하여 수정하면서 활용했다는 실용성에서, 궁중음악을 전승하기 위해 지난한 과정과 시간을 보냈던 궁중 악인의 노정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회혼례도첩>의 바탕직물과 채색 분석 (Analysis of the background fabric and coloring of The Paintings of a 60th Wedding Anniversary Ceremony in the possession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박승원;신용비;박진호;이수진;박운지;이희성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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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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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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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필자미상회혼례도(筆者未詳回婚禮圖)(덕수6375)는 회혼례의 장면을 그린 다섯 폭의 화첩이다. 회혼례는 부부의 혼인 60년을 기념하여 혼례식을 다시 행하며 주변의 축하를 받는 기념행사로, 이 화첩에는 전안례, 교배례, 헌수례, 접빈, 중뢰연의 장면을 기록하였는데 인물과 건축물, 여러 가지 기물 등을 섬세한 필치로 세밀하게 묘사한 회화 자료이다. 제작 기법 연구를 위해 현미경, 적외선, 엑스선 조사와 함께 초분광영상분석이 사용되었다. 비가시영역에 대하여 밑그림 확인, 색상에 따라 사용된 안료와 염료를 구별하고자 하였다. 엑스선형광분석으로 안료의 성분을, 자외선-가시광선분광분석으로 염료의 종류를 판별하였다. 현미경 조사를 통해 확인된 회혼례도에 사용된 직물의 재료는 섬유의 꼬임이 거의 없는 생견사이며 평직으로 제직된 평견직물로 확인되었다. 초분광영상분석과 엑스선형광분석, 자외선-가시광선분광분석으로 백색은 연백, 흑색은 먹으로 확인되었 다. 적색은 주토, 진사, 진사와 연단 혼합, 갈색은 주토 및 유기 염료, 황색은 등황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녹색은 쪽, 석록, 크롬그린과 황화바륨, 청색은 석청, 회청, 쪽으로 확인되었다. 자색은 쪽과 연지충 혼합으로 추정되었고 금색은 금분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분광영상에서 보존처리 영역을 식별하여 손상부분과 보존처리부분 등을 구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