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Chinese cela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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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세기 고려청자와 중국청자의 장식디자인 비교 연구 (A Comparative Study on the Decoration of Korean Celadon and Chinese Celadon in the 12th and 13th Centuries)

  • 악쿤;임천;김혜진
    • 디지털융복합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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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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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7-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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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12~13세기는 청자의 전성기였다. 고려청자는 중국청자에 영향을 받아 제작 및 소성기술을 습득한 이후 독자적인 청자 발전의 절정기에 들어가게 된다. 특히 상감기법이라는 독자적인 장식기법을 발전시켰고 문양의 종류나 배치도 추상적인 문양으로 나아간 중국과 달리 자연물의 모습 그대로를 청자에 담아 그 아름다움을 널리 떨치게 되었다. 비록 고려청자와 중국청자가 같은 발원지에서 나타났지만, 각자의 지리적 특성과 민족적 미감에 따라 다르게 변화 발전함을 알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12~13세기 중 한 양국의 청자 나타나는 유약의 사용을 비롯한 소성기법 및 장식에 사용되는 문양을 비교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展示(전시)를 위한 토기(土器)와 청자(靑磁)의 복원(復元) - 토기기대(土器器臺), 노형기대(爐形器臺), 청자사이호(靑磁四耳壺)를 중심(中心)으로 - (Restoration of Pottery and Celadon for Exhibition)

  • 강희숙;안병찬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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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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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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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국립김해박물관 개관전시 유물인 가야시대 토기(土器) 기대(器臺) 2점과 중앙박물관의 특별전 "고대국가의 형성" 전시회 출품 유물인 청자사이호(靑磁四耳壺)에 대한 보존처리를 수행하였다. 육안 및 실체현미경 관찰을 통하여 처리전 상태, 문양(文樣)과 제작기법(製作技法) 등을 파악하였고 이를 토대로 각 유물의 특성에 맞는 보존처리를 실시하였다. 기대는 결실부분이 커 에폭시계(系) 복원재료를 이용해 파손된 토기 면(面)과 직접 접착시켜 형태를 복원하고 문양과 색, 질감을 유사(類似)하게 처리하였다 청자는 토기와 같은 복원재를 이용했지만 파손된 청자 면과 분리(分離)시켜 형태를 복원하여 해체가 가능하도록 조치한 다음 색과 질감도 구분이 되도록 처리하였다.

한국 전통 도자기의 화학 조성에 대한 연구 (I): 고려청자와 고려백자 (A Study of the Chemical Composition of Korean Traditional Ceramics (I): Celadon and Kory$\v{o}$ Whiteware)

  • 고경신;주웅길;안상두;이영은;김규호;이연숙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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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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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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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중국 도자기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화학적 성분분석을 중심으로 18세기부터 구라파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중국내에서는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반면에 한국도자기의 경우는 1980년대에 미국과 독일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한국내에서 체계적 연구는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도자기 연구는 많은 분석 결과들이 축적됨에 따라 여러 도요지들을 서로 비교하고 중국의 분석 결과와도 비교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고려청자와 고려백자를 생산도요지와 발굴층위 등에 따라 각각 21그룹과 10그룹으로 나누어서, 성분결과들을 비교 관찰하였다. 각 그룹의 태토와 유약의 성분은 일반적으로 3~5편을 분석하고 그들의 분석값을 평균하였다. 비교 결과에서 한국도자기의 태토는 월주요와 경덕진요와 같은 중국 남방에서 사용되고 있는 운모-석영계의 도석으로 만든 것으로 나타나며, 유약도 중국과 유사하게 점토와 나무재, 그리고 석회석 종류의 용융재를 혼합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석회석은 처음에 태워서 사용하다가 고려말기에 이르러 분말상태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월주요에서 사용한 유약은 몸체를 만든 태토를 섞은 것에 비하여 강진 청자의 유약은 백자를 만들 수 있는 점토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산화 티타늄의 함량이 현저하게 적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논문의 방법과 결과들을 토대로 앞으로 이루어질 많은 발굴과 분석 자료들이 계속 축적될 수 있다면 더욱 좋은 비교 연구가 가능 할 것이다.

한(韓)·중(中) 화금자기(畵金磁器) 금채기법(金彩技法)에 대한 비교(比較) 조사(調査) 및 가채(加彩) 실험(實驗) (Comparative Study and Coloring Test for the Technique of Korean and Chinese Gold-painted porcelain)

  • 황현성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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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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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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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미술부에서는 "한·중 도자교류전" 연구집에 개제할 목적으로 소장품 중 한·중 금채자기의 금채기법을 보존과학팀에 조사의뢰하였다. 대상 소장품은 금을 사용하여 도자기 유약 층을 장식한 개성 106 청자상감수하원문금채편호 고려청자 1점과 중국 송나라시기에 제작된 본관 10011 천목다완, 본관2027 시유초화접문화금완, 덕수3322시유완이다. 조사 결과, 금채장식의 안정화 방법은 고운 금분에다 매용제 성분을 혼합하여 채식을 한 후 저온에서 번조한 것은 유사하였지만, 채식처리방법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즉, 고려 화금청자는 화려한 상감기법 위에 세필로 일일이 금채장식을 하였다면 중국 화금자기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도자기 유약면에 나비나 당초문을 스텐실 기법으로 장식한 것이 큰 차이이다. 이런 조사결과에 따라 일부 박락된 금채 부분을 새롭게 복원한 결과, 제작 당시 화금자기가 얼마나 화려한 자기이었는지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고려 후기 범자 진언명 상감청자의 해석과 의미 (Interpretation and Meaning of Celadon Inlaid with Sanskrit Mantras in the late Goryeo Dynasty)

  • 이준광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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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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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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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청자에는 불교문화의 여러 단면이 담겨 있다. 그중 범자(梵字)가 새겨진 상감청자는 불교 중에서도 밀교와 밀접한 영향 관계에 있을 것이란 점은 익히 알려져 왔으나 판독을 통한 구체적인 연구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는 전하고 있는 자료의 수가 적은 데다 잔존 범자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강진 사당리 23호 요지에서 이루어진 4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새로운 자료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 자료들을 판독하여 기존 자료들도 몇 가지 유형에 편입시킬 수 있었다. 범자 판독과 해석을 통해 얻은 연구 성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청자에 상감된 범자는 진언(眞言)을 이루는 글자들이었다. 범자 한 자만 남아 있는 경우 해석을 유보해야 했지만, 그 밖의 범자들은 동심원 구조인 자륜진언(字輪眞言) 방식 속에서 '정법계진언', '육자대명진언', '감로수진언', '보루각진언', '구보살원주', '무량수여래심주', '멸악취진언'을 표기하고 있었음을 판독했다. 각 진언은 실담(悉曇, Siddham) 범자로 표기되어 있었다. 둘째, 제작 시기는 범자 배치 방식과 '감로수진언'이 40수 진언에 포함되는 양상을 근거로 13~14세기에 걸친 것으로 보았다. 특히 진언이 있는 동심원 구조의 상감청자 자료들은 제작 특징을 보아 13세기 말~14세기 전반으로 편년했다. 셋째, 상감된 진언들의 해석을 통해 모두 파지옥(破地獄)과 정토왕생(淨土往生)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를 근거로 범자 진언명 상감청자들 중 일부는 시아귀회(施餓鬼會)와 같은 망자(亡者)를 위한 불교 의례에 사용했으리라 판단했다. 또한 사당리 23호 요지와 '가'구역이 왕실용 자기 생산지로 추정되기 때문에 의례 또한 왕실 혹은 그 영향력 안에 있는 사찰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넷째, 범자 진언명 상감청자들은 원대 자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원의 불교문화와 고려가 이미 품고 있던 밀교적 요소가 더해져 나타난 것으로 보았다. 다섯째, 범자 진언명 상감청자들은 고려 후기 사회에 퍼져 있던 개인적 밀교 의례의 한 측면을 보여 주는 자료였다. 당장의 불안을 해소해 주길 바라는 데서 촉발된 밀교의 변화는 묘지(墓誌), 관등에서도 찾을 수 있었는데 파지옥과 극락왕생에 대한 염원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여섯째, 다른 공예품과 비교할 때 공통점으로 실담 범자를 사용했다는 점, '육자대명진언'을 중심적으로 활용했다는 점, 기와와 배치 방법이 유사하다는 점, 범종·목관·묘지의 진언과 의미상 상통한다는 점이 있었다. 차이점으로는 '멸악취진언'과 '감로수진언'은 다른 공예품에서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또한 상감청자 특유의 경제성과 제작의 용이성은 다른 공예품과 차별되는 장점으로, 바로 이 점 때문에 범자 진언을 새길 기명으로 청자가 채택되었던 것으로 보았다. 본 연구에서 판독하지 못한 자료들은 추후 잔존 상태가 양호한 자료가 보고된다면 새로운 유형을 수립하여 편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전통 도자기의 화학 조성에 대한 연구 (II): 조선백자 (Study of the Chemical Composition of Korean Traditional Ceramics (II): Chos$\breve{o}$n Whiteware)

  • 고경신;주웅길;안상두;이영은;김규호;이연숙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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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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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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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조선백자에 사용된 재료들에 대한 특성을 연구하기 위하여, 광주관요, 충효동과 다른 4곳의 지방가마에서 출토된 도편들의 태토와 유약의 성분을 분석하고 비교하였다. 조선초기의 백자기술은 고려의 청자기술을 기본적으로 계승하면서, 중국 명대의 백자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광주관요에서 사용한 태토원료는 청자에 사용되었던 도석과 같은데, 다만 철산화물과 티타늄산화물의 함량이 상대적으로 적고, 칼륨산화물의 함량이 높다. 한국과 중국 남부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이러한 원료로 중국의 경질백자와 같은 좋은 질의 백자를 개발할 수 있었다. 반면, 충효동에서는 중국 북부의 요지들에서 사용되었던 고령토를 발견하고 사용함으로써 질이 좋은 경질백자를 개발하였다. 유약에 사용된 용융재는 대체로 석회석이며, 처음에는 태워서 사용하였으나, 점점 빻아서 사용되는 경향이 증가하였다. 유약을 만들 때 용융재와 혼합하는 점토는 글래이즈 스톤이라고 불리는 기본적으로 도석과 같은 광물이다. 태토를 만들 때 사용하는 도석보다, 일반적으로 입자가 더 곱고, 장석함량이 더 높다. 이 논문의 조선백자에 대한 과학기술적인 연구와 비교는 최근에 빠른 속도로 발굴되고 있는 18~19세기의 가마터에도 넓혀져야 할 것이다.

한국 전통 도자기의 화학 조성에 대한 연구 (III): 분청에 대한 고려자기와 조선백자와의 비교 (A Study of the Chemical Composition of Korean Traditional Ceramics (III): Comparison of Punch'$\breve{o}$ng with Kory$\breve{o}$ Ware and Chos$\breve{o}$n Whiteware)

  • 고경신;주웅길;안상두;이영은;김규호;이연숙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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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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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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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분청사기는 조선초기에 고려상감청자의 무늬가 간소화 된 상태로 시작되었다. 그 후 200여 년 동안에 다양하고 활달한 문양의 민속공예로 발달하였고, 점점 백자를 닮아가는 방향으로 변해가다가, 임진왜란이후에 생산이 중단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분청의 태토와 유약에 대한 화학조성을 분석하고, 여러 도요지들의 결과들을 서로 비교하였다. 또한 다른 논문들에서 중국의 경우와 비교 관찰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들에 대한 결과들과 비교 하였다. 생산도요지와 고고학적인 특성에 의하여 28 그룹으로 나누었으며, 각 각의 그룹에서 셋에서 다섯편의 도편을 분석하고, 그들의 평균값을 비교자료로 사용하였다. 분청태토는 한국청자와 백자와 같이 중국 남쪽의 월주요, 경덕진요에서 사용된 운모-석영계의 도석으로 만들어졌다. 유약은 점토질의 원료에 나무재, 태운 석회석과 곱게 빻은 석회가루를 다양한 비율로 혼합되었다. 분청유약의 특성은 조선백자보다는 고려청자와 고려백자에 더 가깝다. 다만 티타늄산화물의 함량은 조선백자와 같이 낮은데, 그 이유는 글래이즈 스톤으로 알려진 도석계의 점토가 분청유약을 제조 하는데 혼합 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 연구의 체계적인 비교방법과 물질적 특성에 대한 내용들은 현재 빠른 속도로 발굴되고 있는 도요지들에 대해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 청화백자의 출현과 전개 (The Appearance and Its Development of Vietnamese Blue and White Porcelain)

  • 김인규
    • 수완나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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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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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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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Vietnamese Blue and White Porcelain is famous for its unique form and colour of cobalt. It is said to be producted from the late of 14th Century to now. Vietnamese Blue and White Porcelain of 14th Century has a Mum design similar to that of Blue and White Porcelain of 14th Century in China. The Vietnamese Blue and White Porcelain of 15th, 16th Century was trade Ceramics which were shipped overseas. A base, having a dated inscription corresponding to 1450 and kept in the Topkapi Saray Museum is the best example of Vietnamese trade ceramics. The Vietnamese Blue and White Porcelain of 15th, 16th Century was a substitute for Chinese trade ceramics in these times when China had a police of the closure of China borderers to sea trade to protect China and was exported to the western Asia and the Southeast Asia. In recent, Fustat relics of Egypt was excavated the Vietnamese Blue and White Porcelain. It means that Vietnamese Ceramics of 15th, 16th Century was substitute for Chinese trade ceramics. In addition, Thai Blue celadon of 15th Century was exported to the western Asia as like Vietnamese Blue and White Porcelain. But when a police of the closure of China borderers to sea trade in China was stopped in the late of 16th Century and Chinese Ceramics were reborn in the same time, the Vietnamese Blue and White Porcelain was declined as trade it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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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대외교류국의 고분벽화에 나타난 차구(茶具) (Tea Utensils Represented on the Tomb Mural Paintings of Foreign Exchange Countries with Koryo Dynasty)

  • 고경희
    •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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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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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6-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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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The present study addresses the tea utensils and tea drinking methods seen in tomb mural paintings of Song, Liao, Jin, and Yuan, which were Koryo's foreign exchange countries. The paintings illustrate the pointing tea method, which was popular during dynasty times. Tea utensils observed in the paintings include a tea mill, mill stone, and tea pestle necessary for making cake tea into powder. The tea stove and boiling bottle are depicted as being required to boil water. Some mural works vividly depict how a tea drinker pours hot water from a boiling bottle into a cup with a stand, mixes it with a tea spoon, and whisks tea powder for foaming with a tea whisk. The tea drinking method of the Southern race Han is also similarly described in the tomb mural paintings of Liao, Jin, and Yuan from Northern nomads. The distribution of tea culture had an enormous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tea utensil manufacturing methods.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is that these findings can be used as basic data to provide food culture insights into Koryo celadon tea utensils.

고려시대 금채자기의 채색기법 재현실험 연구 (Research on Re-creational Experiment and Technique of Gold Powder Painting for Goryeo Gold-painted Porcelain)

  • 황현성;이다혜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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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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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03-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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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2007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유물인 고려시대 화금청자 2점과 중국 북송시기 화금도자 3점의 금 잔존여부 및 금채의 채색기법 연구를 바탕으로 고려시대 금채장식을 재현 실험하였다. 도자기 시편 위에 4개의 교착제와 금분을 섞어 금채 후 $100^{\circ}C{\sim}1200^{\circ}C$까지 단계별 번조하여 표면의 교착상태와 발색력을 현미경과 색도를 관찰하였다. 이를 통해 각 교착제에 따른 시각적 효과와 적정온도를 파악하였고, 그 중 기름과 아교가 가장 뛰어난 교착력과 발색력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완형의 현대 재현 고려 상감청자의 유약 표면에 기름과 아교를 각각 금채한 후 적정온도인 $700^{\circ}C{\sim}800^{\circ}C$에서 번조하였으며, 두 교착제가 유약 위에 교착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금채의 단면을 SEM으로 관찰하였다. 그 결과, 교착력은 차이가 없었으나, 발색력, 밀도 등은 아교가 다소 떨어지는 차이가 있었다. 또한 기름은 실온에서 건조되지 않는 반면, 아교는 건조되는 장점으로 작업성이 좋은 편이었다. 이에 반해, 아교는 작업성 측면에서는 기름에 비해 매우 뛰어난 장점을 보였으나 발색력에서는 기름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것을 이번 실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