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CH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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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re l' espace sculptural et, l' espace architectural (조각공간과 건축공간의 관계)

  • Lee Bong-Soon
    • Journal of Science of Art and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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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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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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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시각이 아닌 오감체계에 관계하는 때문에 현대미술은 외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곧 예술 작품들은 하나의 장소를 관객에게 제공하여, 심리적, 물리적, 또는 예술이 존재여부에 관한 갖가지 질문들을 제기한다. 모든 예술 작품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념 또는 아이디어에 우선하는 현대미술은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우리의 사회적 배경과 보편성을 간과할 수 없다. 우리의 물체 인식은 결국 우리의 경험체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간주하면, 현대미술의 새로운 형태는 보편적 특질들이 그 특질들 이상의 상태로 보여지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창조 행위의 시작은 현대인간의 문화 읽기이며 문화는 인간과 자연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역사는 지나간 시간을 기록한 것이며, 이 또한 우리의 지식과 정보 체계에 속한다. 회화가 평면에 입체감을 표현하는 것과는 달리 조각은 자연 속, 즉 실재공간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하기 때문에 시각(visible) 이외에도 촉각(tangible)이 관여하게 된다. 조각의 특수성은 촉각(tangible)이 우선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각과 촉각은 매우 적극적으로 미학적 경험에 참여하는 감각으로 이들을 서로 분리하여 생각하기가 무척 힘들다. 왜냐하면 어떤 경험에 있어서 기억연합 또는 감각 연합에 의해 하나의 감각이 다른 여러 감각을 촉발하여 연쇄반응 혹은 '형태 Gestalt'를 이루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근대 조각 작품들은 조각대 위에 고정되어 있는 구상 형태를 지녔기 때문에 조각작품 자체가 지닌 외적 형태와 그 자체내의 공간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미로의 비너스 조각은 대리석과 비너스 형태의 결합이다. 때문에 관객은 그 주변을 돌면서 우리 신체의 내적 공간과 시각에 의존하면서 그 작품의 중량감, 양감, 형태 등의 특질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현대 추상조각과 개념조각은 이보다 좀 더 확장된 공간을 제시한다. 이것은 현대조각이 건축개념을 수용한 때문이며, 그것이 때로는 안 쪽에서 때로는 바깥 쪽에서 그 형태를 결정하며, 보고 듣고 느끼고 만져지고 왕래하는 등의 인식 영역인 관객의 오감체계에 직접적으로 관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축 공간에서, 시각 외에도 청각이나 촉각을 통해 지각한다. 대강 요약하자면 공간은 객관적 상태이기보다는 인식영역의 주관성을 통해 받아들여진 우리가 지나쳐온 것들이나 체험된 공간이다. 여기서 '받아들여지는' 일은 과거 경험들의 주체들, 언어와 문화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건물, 즉 둘러싸고 있는 공간은 중앙이 아니다. 중앙은 바로 나, 둘러싸여진 나이다 나는 나의 동작에 따라 그 공간의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동적인 중심이다 (이때의 나는 위치의 축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탐색하는 것이다). 작품이 대형화되면서 이러한 건축공간개념이 현대 조각가들의 작품개념에 이용되었다고 본다. 현대미술에서 In situ작업과 특정한 장소를 위한 기획되어진 최근의 프로젝트 작업들은 대형화되어있으며, 건축에서처럼 특정한 장소를 만들어낸다.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는 또한 '조각영역의 확장 (La sculpture dans le champ elargi)'에서 현대조각이 건축과 환경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녀에 의하면, 1960년대 이후의 현대조각은 이러한 탈 귀속성과 조각의 자율성을 획득함으로써 조각은 건축물이 아니면서 건축물 주변에 위치하거나 풍경이 아니면서 풍경 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와 같이 현대의 대형조각 작품들 - 예를 들어 대형화된 미니별 조각이나 개념미술, 또는 대지예술 등 -은 풍경의 실재가 아니기 때문에 환경으로부터 구분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들 조각은 더 이상 만져지는 실체이거나 점유하는 공간의 상징언어를 지닌 조각의 범주에 한정되지 않게 된다. 조각과 건축의 공간인식을 인체의 크기와 관련하여 보면, 메를로 퐁티(Merleau-Ponty)의 '지각의 현상학' 은 우리가 논하는 작품의 공간체계를 분석하는데 지침표가 되어준다. 메를로 퐁티가 말하는 지각은 정신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몸과 함께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지각은 우리가 부단히 눈을 움직이고 만지고 냄새를 맡고 주변을 돌아 다니면서 세계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이루어 진다. 몸의 움직임을 통하여 나타나는 신체적 표현은 몸 자체가 원천적으로 지향적 활동의 주체로서 파악되는 한 이미 항상(恒常, constant) 의미 현상을 지니다. 우리의 지각이 움직이는 몸의 지향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우리의 몸의 지향활동이 의식에 선행함을 의미한다. 몸의 움직임은 의식의 의도를 표현할 때에만 의미를 나타내는 기호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자체가 살아있는 표현이다. 우리의 몸짓, 표정은 우리 의식이 의도하기 전에 이미 의미가 담겨있다. 몸은 그 자체가 기호(Signe)적이다. 결국. 메를로 퐁티에게서 세상(le monde entier)은 그 자신이 주체가 되어 인식한다, 그리고 이 인식 구조에는 우리의 몸이 구심점(le point centripete)이 된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메를로 퐁티의 개념을 염두에 둔다면, 예술작품의 특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재료와 크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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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rison of Rice Growth under Subtropical and Temperate Environments (아열대와 온대 기후 하에서 벼 생육 비교)

  • Park H.K.;Xu Migging;Lee K.B.;Choil W.Y.;Choil M.G.;Kim S.S.;Kim C.K.
    • Korean Journal of Agricultural and Forest Meteor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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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8 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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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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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The objectives of this study are to determine the primary yield components responsible for yield differences in a subtropical environment of the Hunan province China and in a temperature environment of Honam province Korea. Field experiments were conducted in a subtropical environment in Hunan province China during 2002 and in a temperate environment in Honam province Korea during 2003. Seven rice cultivars were grown under optimum crop management in each experiment field. Yield, yield components and plant dry matter were determined at maturation. The highest yield (567 kg/10a) was produced at Honam province by Jinyou 207, a Chinese cultivar, The maximum yield at Hunan province was 453 kg/10a by Sanyou 63. On the average across cultivars, Honam produced 23% greater yields than Hunan. Sink size (spikelets per $m^2$) was responsible far these yield differences. Panicle number per $m^2$ was much greater at Honam.

A Comparative Study of Diverging Citation Patterns in the Disciplines of Physics and Sociology in Korea Differential Preferences according to Employment Status and Ph. D. Diploma Area (한국의 물리학과 사회학의 인용패턴 비교연구 - 전임 여부와 박사학위 취득지역을 중심으로)

  • Kang Min-Gu
    • Journal of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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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4 no.2 s.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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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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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Although the study of citation patterns is an important theme within the sociology of science, due to the fact that it is intimately related to the production, reproduction, and evaluation of knowledge, only sustained theoretical research outlining the differences of citation patterns between the hard and soft sciences has been conducted, and empirical studies nevertheless remain few and far between. The perspectives of institutionalism and constructivism have to attempted to explain different citation patterns between the hard and soft sciences as a contrast between 'what one says' and 'who one is'. Therefore, against this background this study examines the 'theoretical' controversy empirically by comparing the contrasting citation patterns of physics, as a representative of hard science, and sociology, as a representative of soft science. The results, in brief, are as follows: the citaton patterns in physics, as in sociology, vary according to the author's status within the hierarchical employment structure, i. e. whether s/he is a full-time lecturer or not, but diversity of citation patterns according to Ph. D. diploma area is unique to sociology. These results would suggest that the explanation of constructivism is more relevant in explaining variance according to the author's status in the employment hierarchy, but the approach of institutionalism is more appropriate to understanding variance due to Ph. D. diploma area. Furthermore, this implies the complex diversity of the citation patterns between the hard and soft sciences, pointing us to the more qualified conclusion that rather than having to choose between institutionalism and constructivism according to a mutually exclusive either/or logic, these two approaches can in fact be mutually complementary, and these approaches should also be applied piecemeal to different levels of phenomena. In conclusion, this comparative research enables us to assert the following two claims: firstly that physics, as a 'science in society', produces knowledge dependent on social context, and secondly that it also possesses a characteristic that transcends locality from the view of a sociology of 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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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sphère de G. Bachelard et les rêveries de langue (바슐라르의 Logosphère와 언어적 몽상)

  • HONG, Myung-Hee
    • Cross-Cultural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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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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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9-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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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La langue est un des ${\acute{e}}l{\acute{e}}ments$ $privil{\acute{e}}gi{\acute{e}}s$ de la $r{\hat{e}}verie$ chez Bachelard. La langue est une force fondamentale de l'imagination. D'une part, elle garde son propre valeur dans le processus de l'imagination, et d'autre part elle forme sa propre image. La $priorit{\acute{e}}$ de langue chez Bachelard a, en effet, quelque liaison avec la notion de Logos qui avait ${\acute{e}}t{\acute{e}}$ $trait{\acute{e}}$ depuis longtemps comme $v{\acute{e}}rit{\acute{e}}$ ${\acute{e}}ternelle$ dans la $m{\acute{e}}taphysique$ occidentale. Cependant, la notion de logos de Bachelard se $diff{\grave{e}}re$ de celle de $m{\acute{e}}taphysique$ occidentale. Tandis que la $m{\acute{e}}taphysique$ traditionnelle traite le logos comme un but ${\acute{e}}ternel$ de sa $m{\acute{e}}ditation$, Bachelard donne l'importance sur la $capacit{\acute{e}}$ linguistique et imaginaire du logos. Le $logosph{\grave{e}}re$ est un des exemples qui montre bien la $diff{\acute{e}}rence$ entre la notion de logos de Bachelard et celle de $m{\acute{e}}taphysique$ traditionnelle. Le $logosph{\grave{e}}re$ est un $n{\acute{e}}ologisme$ de Bachelard qui est fait pour $d{\acute{e}}signer$ $l^{\prime}atmosph{\grave{e}}re$ verbal de la $soci{\acute{e}}t{\acute{e}}$ contemporaine $gr{\hat{a}}ce$ ${\grave{a}}$ l'emission de radio. Bachelard comprend le $ph{\acute{e}}nom{\grave{e}}ne$ de radio en tant que $r{\acute{e}}alisation$ de $Psych{\acute{e}}$ dans la vie quotidienne. C'est $gr{\hat{a}}ce$ ${\grave{a}}$ la technologie moderne que nous pouvons avoir l'univers de langue plus facilement par rapport aux $si{\grave{e}}cles$ $pr{\acute{e}}c{\acute{e}}dents$. Selon Bachelard, la radio n'est pas un simple instrument de communication. C'est une porte pour entrer dans la $r{\hat{e}}verie$ universelle. La radio est une voix du monde qui exprime notre inconscient. Quand un $r{\hat{e}}veur$ $r{\hat{e}}ve$, son $r{\hat{e}}verie$ se $d{\acute{e}}veloppe$ en se discutant avec le monde. Alors, quand nous $r{\hat{e}}vons$, nous parlons au monde et nous ${\acute{e}}coutons$ du monde, de sorte que nous devenons les citoyens du $logosph{\grave{e}}re$. Dans son oeuvre Sur la Grammatologie, J. Derrida critique la $m{\acute{e}}taphysique$ occidentale en la intitulant logocentrisme. Derrida pense que la philosophie occidentale a comme le but final la $pr{\acute{e}}sence$ de logos. Cette $pr{\acute{e}}sence$ de logos ne peut ${\hat{e}}tre$ $r{\acute{e}}alis{\acute{e}}e$ que par la langue de la voix, non pas par la langue de $caract{\grave{e}}re$. $D^{\prime}o{\grave{u}}$ vient le logocentrisme ou le phonocentrisme de $m{\acute{e}}taphysique$ occidental. Mais Derrida pense que le logocentrisme n'est qu'un autre aspect de l'ethnocentrisme ${\acute{e}}troit$ de l'occident. La notion de $logosph{\grave{e}}re$ de Bachelard a quelques ressemblances avec logocentrisme par ses apparences. Cependant, elles ont une $diff{\acute{e}}rence$ fondamentale depuis leur $d{\acute{e}}part$. Tandis que logocentrisme $tra{\hat{i}}te$ la parole en tant que $mani{\grave{e}}re$ d'expression de raison qui est une puissance fondamentale de l'homme, Bachelard pense que la parole est un $r{\acute{e}}sultat$ d'une opposition et fusion de notre raisons et parole. Bachelard pense que la parole est une $r{\acute{e}}alisation$ de l'image qui est l'essence de notre $psych{\acute{e}}$. Pour lui, la parole, la quintessence de $logosph{\grave{e}}re$, est le champ de l'imagination $d^{\prime}o{\grave{u}}$ jaillissent les images. C'est pour cela que $logosph{\grave{e}}re$ se situe ${\grave{a}}$ l'antipode de logocentrisme. $Logosph{\grave{e}}re$ nous fournit un espace de $r{\hat{e}}verie$ de langue. Notre $soci{\acute{e}}t{\acute{e}}$ contemporaine $fourr{\acute{e}}e$ des images visuelles creuses est $d{\acute{e}}pouill{\acute{e}}e$ de plus en plus des espaces de $r{\hat{e}}veries$. C'est une des raisons que le $logosph{\grave{e}}re$ de Bachelard doit ${\hat{e}}tre$ $r{\acute{e}}activ{\acute{e}}$ aujourd'hui.

Une étude pour la critique de théâtre avec la sémiotique ouverte -avec par Jean Genet- (열린 기호학을 활용한 연극비평 연구 -장 주네의 <하녀들> 공연을 중심으로-)

  • LIM, Seon-Ok
    • Journal of Korean Theatre Studies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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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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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9-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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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Cette ${\acute{e}}tude$ a pour but de proposer une $m{\acute{e}}thodologie$ de critique avec la $s{\acute{e}}miotique$ ouverte. La critique de $th{\acute{e}}{\hat{a}}tre$ commence ${\grave{a}}$ lire le $th{\acute{e}}{\hat{a}}tre$, l'analyse et juge son valeur. Il arrive souvent qu'on juge avec intutition. On dit que c'est une critique d'impressionnisme. Cette critique est subjective, mais pas objective. La $s{\acute{e}}miotique$ de Saussure offre la $m{\acute{e}}thodologie$ scientifique ${\grave{a}}$ la critique. A $c{\hat{o}}t{\acute{e}}$ de la critique d'impressionnisme qui est subjective, la $s{\acute{e}}miotique$ peut expliciter la raison objective. On ${\acute{e}}tait$ admiratif devant sa scientisme, pourtant $apr{\grave{e}}s$ quoi on critique sa non-$subjectivit{\acute{e}}$ et sa non-$historicit{\acute{e}}$. Dans l'opposition de $l^{\prime}objectivit{\acute{e}}$ et de la $subjectivit{\acute{e}}$, on tente de rechercher un model $int{\acute{e}}gr{\acute{e}}$ dialectiquement entre l'impressionisme(subjective) et la scientisme(objective). Pour cela, on doit aux Ecrits de linguistique $g{\acute{e}}n{\acute{e}}rale$ ($publi{\acute{e}}$ en 2002 chez Gallimard). Ces Ecrits nous aident ${\grave{a}}$ amener la $s{\acute{e}}miotique$ $ferm{\acute{e}}e$ sur la $s{\acute{e}}miotique$ ouverte et ${\grave{a}}$ $red{\acute{e}}couvrir$ la $pens{\acute{e}}e$ de Saussure. Ils nous font ouvrir un nouveau champ de recherche pour la $s{\acute{e}}miotique$ ouverte. L'essentiel de la $th{\acute{e}}orie$ saussurienne du signe $d{\acute{e}}pend$ de l'arbitraire et du circulaire du signe. On $red{\acute{e}}couvre$ la notion ${\acute{e}}largie$ du signe, dans Ecrits de linguistique $g{\acute{e}}n{\acute{e}}rale$, contre le courant majeur de linguistique et de structuralisme. Cette notion s'y focalise, ${\grave{a}}$ la valeur, ${\grave{a}}$ la $relativit{\acute{e}}$, ${\grave{a}}$ la $diff{\acute{e}}rence$ et au $syst{\grave{e}}me$. Avec elle, on tente d'adopter la $s{\acute{e}}miotique$ ouverte pour rechercher une $m{\acute{e}}thodologie$ de critique qui se veut objective et ${\grave{a}}$ la fois subjective. Il s'agit d'une difficile combinaison de l'impressionisme et de la scienticisme. Pour cela, la $m{\acute{e}}thodologie$ se $d{\acute{e}}veloppera$ en trois ${\acute{e}}tapes$. $1{\grave{e}}re$ ${\acute{e}}tape$: c'est lire le $th{\acute{e}}{\hat{a}}tre$ comme un signe total pour 1er jugement d'impressionnisme. $2{\grave{e}}me$ ${\acute{e}}tape$: c'est retrouver sa structure invisible dans la $relativit{\acute{e}}$ des signes. $3{\grave{e}}me$ ${\acute{e}}tape$: c'est juger, dans leur $relativit{\acute{e}}$, comment les $d{\acute{e}}tails$ de signes se fonctionnent. C'est lire les $d{\acute{e}}tails$ de signes et puis $r{\acute{e}}affirmer$ le jugement en $1{\grave{e}}re$ ${\acute{e}}tape$. Selon les $derni{\grave{e}}res$ deux ${\acute{e}}tapes$, on pourra comparer le premier jugement (impressif) et le dernier jugement (objectif), et enfin s'assumer comme critique. Selon la $m{\acute{e}}thodologie$ $propos{\acute{e}}e$, on pratique la critique sur ${\acute{e}}crit$ par Jean Genet, et mise en $sc{\grave{e}}ne$ par Lee Youn-Taek et par Park Jung-Hee. Pour la critique intertextuelle, on la fera en comparant les deux spectacles avec la $pi{\grave{e}}ce$ de Jean Genet. $D^{\prime}apr{\grave{e}}s$ la comparaison, Lee Youn-Taek met en $sc{\grave{e}}ne$ avec $fid{\acute{e}}lit{\acute{e}}$ la structre et les signes de $d{\acute{e}}tail$ de l'auteur, Park Jung-Hee change sa structre et ses signes pour mettre en $sc{\grave{e}}ne$ la $pi{\grave{e}}ce$ de Genet. Ils se $diff{\grave{e}}rent$ l'un et l'autre: Lee incite le discours de la classe sociale dans le spectacle, et Park y incite le discours du $d{\acute{e}}sir$. La $diff{\acute{e}}rence$ des signes dans la $relativit{\acute{e}}$ apporte la $diff{\acute{e}}rence$ de la signification de discours $th{\acute{e}}{\hat{a}}tral$, et enfin se font changer les significations de deux specta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