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Annals(Chron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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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黃喜), 그 역사적 평가와 위상에 대한 일고찰(一考察) - 실록(實錄)의 사신평(史臣評)과 관련하여 - (A Study on Evaluation and Status of Hwang Hee in History - Focused on the evaluation from authors of chronicles)

  • 최영성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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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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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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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황희(黃喜: 1363~1452)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으로 세종 시대의 찬란한 문화를 여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는 종묘(宗廟)에 배향된 공신(功臣)이며 조선시대의 대표적 청백리(淸白吏)이다. 학문상의 공로를 인정하는 팔도유생들에 의해 문묘(文廟)에 배향을 청하는 상소가 두 차례나 있었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위상은 실로 남다른 바가 있다. 그러나 "세종실록" 등 조선왕조에서 펴낸 실록(實錄)에 따르면 황희에 대한 당대(當代)의 평가가 일률적이지는 않았다. 황희의 부정과 비리 등을 비판하는 내용이 실록에 다수 실려 있다. 모두 사실로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단순히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의 내용이 있고, 고의적인 악평(惡評)에 가까운 내용도 있다. 다만, 사관(史官)이 양심에 따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한 것이기 때문에 일단 존중할 필요는 있다. 황희는 특유의 관대함[관(寬)]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관료 사회에서 인심을 얻었다. 그러나 관대함이 지나쳐 집안을 다스리는[제가(齊家)] 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사관의 평이다. 필자는 이 평이야말로 당시 일각에서 황희에 대해 제기한 비판의 근본 원인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잘못에는 저마다의 유형이 있다. 잘못을 보면 그 사람의 인간됨을 알 수 있다"고 한 공자의 말에도 잘 들어맞는다고 하겠다.

조선 왕실의료문헌과 문집에 나타난 우각구법(牛角灸法) 연구 (Study on Horn-shaped Moxa Treatment in the Annals and Anthologies of Joseon-Korea)

  • 오준호;김진희;안상우
    • 대한한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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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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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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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Objectives: Moxa treatment has outstanding effects that are frequently facilitated in a clinical setting, and it is also known to have positive effects for immunity and relief of pain through various studies. Currently, moxa treatment has become diversified in many ways. One of the moxa treatment techniques that was frequently used during the Joseon Dynasty was Woogakgubeop (牛角灸法, horn-shaped moxa treatment). This articles aims to disclose the fact that the Woogakgubeop is the technique applicable to the origin of the Large moxa treatments of today. Also, the writings of Woogakgubeop recorded in the royal medical documentations, such as the Chronicles of the Royal Families of the Joseon Dynasty, the Seungjeonwonilgi (The Daily Records of Royal Secretariat) and others, are analyzed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Woogakgubeop are cleared through it. Methods: From the royal medical documents, the Chronicles of the Royal Families of the Joseon Dynasty and the Seungjeonwonilgi, articles related Woogakgubeop were extracted and analyzed. Records of each document were facilitated for the DB search. In addition to these two documents, the records of written literature were surveyed as well. The written literature are appropriate to express the experiences of intellectuals at the time. Results and Conclusions: 1. Considering that Woogakgubeop is a single therapy, there exists relatively many records in addition to the specialized medical documents, and through them, it is known that Woogakgubeop was a widely known therapy in the middle to later parts of Joseon in general. 2. Woogakgubeop is a method that addresses problems contained within the existing moxa treatment techniques. By enlarging the size of the mugwort wick, it strengthens the heat energy of the moxa treatment to reduce the frequency of applying moxa treatment. When undertaking the method to empty the wick inside the mugwort, the pain of a fever patient will be reduced and burn damage to the skin is minimized. 3. Wind-cold type weakness and other general moxa treatment techniques have been used for various symptoms detailed, including chest pain, tinnitus, carbuncle, cellulites, cold sense of leg, colic, diarrhea and other illnesses. In addition, it may generate strong fever, and was used to implement the Yeonjebeop (煉臍法). 4. Woogakgubeop is applicable to the origin of Large moxa treatment of today and it provides important bibliographic base thereof.

미륵리 봉산석표(封山石標)에 관한 연구(硏究) - '문경읍(聞慶邑) 봉산(封山)' 및 조령봉산(鳥嶺封山)과 관련(關聯)하여 - (A Study on the Miruk-ri Bongsan Stone Landmark - With a Relevance to the 'Moonkyung County Bongsan' and Choryung Bongsan -)

  • 배재수
    • 한국산림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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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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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5-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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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본 연구는 1997년에 발견된 '미륵리 봉산석표(封山石標)'와 '문경읍(聞慶邑) 봉산(封山)' 및 조령봉산(鳥嶺封山)의 관련성을 밝혀 보고자 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본 연구를 위해 조선 후기 지리지(地理誌), 읍지(邑誌), 지도(地圖),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을 이용한 문헌분석과 현장답사를 병행하였으며 그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1)'미륵리 봉산석표(封山石標)'는 조령봉산(鳥嶺封山)의 경계표식석(境界標識石)이며, (2)지정 목적은 한양의 문호(門戶)며 남한강(南漢江)에 접속된 충주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조령관방(鳥嶺關防)의 산림을 보호하는 데 있었다. (3)미륵리에 봉산석표(封山石標)를 세웠던 이유는 그곳이 오래 전부터 조령(鳥嶺), 문경(聞慶), 충주(忠州)를 이어주는 교통상의 요지(要地)에 위치하여 왕래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산(封山)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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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 하루의 시작은 언제부터인가? (AT WHAT TIME A DAY BEGINS IN THE KOREAN HISTORY?)

  • 안상현;박종우
    • Journal of Astronomy and Space Sci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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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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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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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 ${\ll}$삼국사기${\gg},\;{\ll}$고려사${\gg},\;{\ll}$조선왕조실록${\gg},\;{\ll}$승정원일기${\gg}$ ]에 나오는 천문 관측 기록 가운데 특히 달가림(lunar occultation) 기록을 분석하여 당시의 시간제도와 하루의 시작점을 알아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일식이나 월식을 계산할 때는 백각법(百刻法)과 12진각법(十二辰刻法)이 사용되었고 하루의 시작점은 자정이었으나, 일상생활과 특히 천문관측에서는 경점법(更點法)이 사용되었는데, 하루의 시작점은, 최소한 고려시대부터는, 해 뜰 무렵임을 확인하였다. 또한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사용한 혼명(昏明)의 시간은 현대의 항해박명(nautical twilight)을 뜻함을 알아냈다. 우리의 결과는 현재 일상생활의 시간관념이 옛날 시간제도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해주며, 농경사회에서 해의 뜨고 짐에 따라 일상생활이 정해지고 또한 천문 관측상 편리하기 때문에 경점법을 쓴 것이라고 해석된다. 우리의 연구 결과는 앞으로 고대 천문 관측 기록의 시간을 정확하게 미루어 계산하고, 그것을 현대 천문학적 자료로 사용하는데 유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