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1950s and 197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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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연륜연대기를 이용한 영동지방의 5~6월 강수량 (253년간: A.D. 1746~1998) 복원 (Reconstruction of May~June Precipitation (253 Years: A.D. 1746~1998) in East-Coastal Region (Yungdong) of Korea from Tree Rings of Pinus densiflora S. et Z.)

  • 박원규;서정욱
    • 한국제4기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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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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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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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설악산에서 작성된 8개 지역 연륜연대기 중 강수량 복원에 적합한 대승폭포 인근 2개 지역(해발고 700~900m)의 연륜연대기를 이용하여 253년간 (A.D. 1746~A.D. 1998)의 5월~6월 총강수량을 복원하였다. 1765~1800년(최장 가뭄), 1835~1845년, 1890~1910년, 1920~1940년, 1980~1995년이 건조기로 나타났으며, 1810~1830년, 1860~1890년, 1950~1970년이 습윤한 시기로 나타났다. 장기간으로 보았을 때, 18세기 후반기는 건조한 기간이었으며, 19세기의 5월~6월 총강수량이 250mm로 20세기의 231mm보다 많아 19세기가 20세기보다 상대적으로 습윤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강수량 변화폭이 19세기가 20세기보다 큰 것으로 관찰되었다. 전 기간에 걸친 주요한 건습 주기는 단기간은 3년, 장기간은 60~80년으로 조사되었다. 서울지방의 측우기 자료와는 1800년대 초를 제외하곤 대체로 일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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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수목원 수우(樹友)표본관(SNUA)에 소장된 채집표본을 근간으로 한 이창복교수의 채집기록 (Field records of Dr. Tchang-Bok Lee based on herbarium specimens deposited at SNUA)

  • 장진성;김휘;전정일
    • 식물분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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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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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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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수우(樹友) 이창복교수는 1946년 서울대학교에 부임하여 1984년 퇴임하기까지 우리 나라 식물분류학계의 기반을 다지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특히, 1952년부터 1984년까지 33년간 남한지역에서 약 7만여 점의 표본을 채집하여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수우(樹友)표본관(SNUA)의 근간을 확립하여 체계적인 국내 최대의 표본관으로 발전시켰다. 시기별 주요 채집 활동으로 1950년대는 소지 식별을 위한 채집과 박사학위 논문연구를 위한 채집, 1960년대는 1920-1930년에 걸쳐 일본학자인 T. Nakai가 채집한 희귀식물에 대한 분포 확인차원의 채집을 시도한 시기였고, 1970년대와 1984년까지 학술조사 목적으로 특정지역의 식물상을 조사하는 채집이 주를 이루었다. 이창복교수는 참나무속과 싸리속 표본에 대한 채집과 기타 목본, 희귀식물과 관련된 수집을 직접 현장에서 식물을 확인하고 확증 표본 확보에 주력하여 현재 SNUA의 소장표본이 전국 주요 지역 식물상의 대표성을 가지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특히 이창복교수의 1950년 후반에서 1960년 초반에 걸쳐 채집하여 연구한 아시아산 낙엽성 참나무속에 대한 결과는 많은 관련 연구에 근간이 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표본을 제외한 기타 채집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 주요 채집지와 채집 날짜 이외에 조사와 채집의 목적을 명확하게 검증하기 어렵다.

초음파진단기의 빔포밍 기술 (Beamforming Technology in Medical Ultrasound System)

  • 배무호
    • 비파괴검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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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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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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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초음파진단기는 195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 동안 꾸준한 기술 발전을 통해 현재 대부분의 병원에서 필수불가결한 영상진단장비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1970년대 초음파진단기에 어레이 프로브가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로 전자적 신호처리를 통한 빔포밍 기술이 초음파진단기에 적용되었고, 꾸준히 개선되어 왔다. 빔포밍 기술은 초음파진단기의 해상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신호처리 기술이다. 이 논문에서는 이 빔포밍 기술의 원리부터 최근 동향까지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어레이 프로브(array probe)를 사용하는 빔포밍의 원리, 기본적 이론, 실제 구현 등이 포함되고, 또 최근 기술 중 합성구경영상(synthetic aperture imaging: SAI), 적응형 빔포밍(adaptive beamforming), 2차원 어레이 프로브를 사용하는 2차원 빔포밍 기술 등의 주제도 소개한다. 이런 다양한 빔포밍 기술들은 다양한 다른 분야의 기술들과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적으로 융합하면서 시스템의 성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갈 것이다.

근·현대 나전도안과 공예품의 수급(需給)형태 -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송방웅 소장 나전도안을 중심으로 - (Patterns of Mother-of-Pearl Craftwork Sketches and the Way of Supply and Demand of the Works in Modern and Contemporary Times)

  • 이연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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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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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4-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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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나전도안은 작품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공정이 들어있는 것으로 기물의 종류와 형태, 크기, 장석과 나전 문양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또 일부는 제작시기와 제작자를 비롯하여 작품 제작을 주문한 수요자에 대한 정보가 남아 있다. 본고에서는 송방웅(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소장 나전도안 도안 1,700여 점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기간 동안 시대별로 유행했던 문양과 기물, 그리고 수요자와 수급형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도안의 대표적인 문양으로는 화조, 사군자, 문화재, 풍속인물, 수복자, 산수 등이 있다. 문양도안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데 근대를 대표하는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 의해 작품제작과 수급이 통제되었던 배경과 맞물려 일본의 취향을 따른 문양 도안이 많다. 수요층도 일본인을 중심으로 일본과 친분이 있는 계층이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안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시대적인 정황과 관계된 것으로 보이는데, 송주안이 일본에 거주하였던 시기와 남아있는 도안 중 가장 이른 것의 시대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일찍이 공예 도안연구가 활성화되었던 일본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본과는 소재, 제작방식, 수급체제가 달랐던 만큼 일본과 한국의 도안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해방 이후 현대로 접어든 1950년대에는 6.25 전쟁 이후 미군이 새로운 수요층으로 출현하여 이들이 선호하였던 소품을 장식하기 위한 한국적인 문양도안이 주를 이루게 된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는 외국산 자개가 수입되고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도안의 크기와 내용, 종류가 다양해지며 조각법, 부식법 등의 새로운 기법도 등장하게 된다. 1970년대에는 경제성장과 맞물려 나전공예품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수요층이 다양하였다. 나전공예품은 전적으로 주문에 의해 생산되었는데, 수요층은 각종 단체와 가구 중개상, 그리고 개인으로 분류된다. 이 시기의 수요층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도안에 '부산 좌천동'과 '점촌'으로 표기된 가구 중개상과 개인 수요자인 '진범모친'이다. 부산 좌천동은 1970년대 자개골목으로 유명했던 곳으로 이곳의 상인들은 통영으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나전공예품을 납품받아 재판매하였으며, 점촌은 문경의 탄광촌으로 이곳의 "김씨"가 광부들을 상대하던 접대부를 상대로 통영에서 만들어진 나전공예품을 조달하였다. 진범모친은 나전공예품을 소유하기 위해 개인들이 모여 만든 계의 대표로서 부산 대신동에 살았으며 통영에 삼층장을 비롯한 각종 나전공예품을 주문하였다. 1980년대에는 아파트 문화의 정착으로 붙박이장과 거실장, 주방기구, 소파 등 새로운 양식의 가구가 사용되면서 자개장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한때 통영에서는 끊음질이 크게 유행하여 나전공예품 제작이 활성화되는 듯하였으나 1980년대 말 이후, 사회 전반적으로 나전공예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져 수요자가 감소하였고, 이에 따라 나전 작품의 제작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었다. 현재는 몇몇 장인들에 의해 명맥만이 유지되고 있다.

수필의 시대: 1960년대 수기, 수상, 에세이 -김형석, 안병욱, 김태길의 수필을 중심으로 (An Age of Essays: Memoirs, Philosophical essays and Essays of the 1960s)

  • 박숙자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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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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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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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이 글에서는 '수필의 시대'로 평가되는 1960년대를 돌아보며 '수필'을 둘러싼 담론적 길항과 철학자의 글쓰기가 확장시켜낸 수필의 장르적 특성에 대해 조망하고자 하였다. 1960년대에 김형석, 안병욱, 김태길은 연세대, 숭실대, 서울대 철학 교수이자 다량의 수필집을 내는 작가로 활동했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수필 자체를 저평가하는 문학사 내부의 편견과 수필의 장르적 특성을 '문학적인 것'으로 한정하고자 하는 관행이 연동한 결과이다. 1960년대 수필이 풍미하게 된 것은 전쟁과 4.19를 거치며 개인의 경험과 사유를 객관화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적 요구가 근간에 깔려 있다. 철학자의 언어는 시민교양과 국민도덕이 부재하던 당대 독자들에게 1인칭 글쓰기의 다양한 감각으로 수용되었다. 김형석은 역사적 체험에 근거한 위로와 극복의 서사로, 안병욱은 민족주의에 근거한 자기 수양과 소명의 논리로, 그리고 김태길은 소시민의 삶을 객관화하는 성찰과 유머로 1950-60년대 공론장의 결락을 메웠다. 다만, 철학자의 수필이 당대의 공적 담론과 연동하지 못하면서 1970년대 시민교양을 촉발, 매개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1960년대 수필이 역사적으로 부상하는 지점에서 드러나 '수필' 장르의 특성과 이와 연동하며 풍미한 철학자의 언어가 지닌 문화사의 공과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했다.

남북한 산림정책의 전개과정과 북한의 산림황폐지 실태 (Developmental Process of Forest Policy Direction in Korea and Present Status of Forest Desolation in North Korea)

  • 최인화;우종춘
    • Journal of Forest and Environmental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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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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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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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본 연구는 역사적 관점에서 남북한의 분단 이전과 이후의 산림정책 방향의 전개과정과 북한의 산림황폐지 실태를 고찰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하였다. 한국은 1900년대 전반 일제의 강점 하에서 식민지 임정기를 통해 많은 산림이 황폐되었고, 1945년 국토의 분단으로 남 북한은 서로 다른 체제에서 각각의 임정이 전개되었다. 한국(남한)은 1950년대 말까지 한국동란 등 사회경제적 혼란으로 인한 임정의 정체기, 1960년대는 사회경제적 안정과 성장을 배경으로 산림법제의 정비 등 임정기반의 확립기, 1970~80년대는 국토녹화의 성공적 수행으로 녹화임정기, 그리고 1990년대 이후는 지속가능한 산림경영기반의 구축기에 있다. 북한은 분단 후 국유원칙의 사회주의적 소유제도와 계획경제 체제에서 여러 차례의 단기적 계획을 통해, 1960년까지는 녹화조림에, 그 이후는 수종갱신 조림에 주력하여 왔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경제사정의 악화와 함께 그 성과는 부진하였고, 결국 산림관리의 실패로 인하여 근래 산림의 황폐화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북한의 산림황폐지에 대한 다각적인 복구대책을 비롯하여, 남북한의 상호협력과 교류의 확대가 필요하며, 장기적으로 통일시대에 대비한 산림관리방안의 수립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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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를 통해 본 주거환경문제의 연구 ( II ) - 분뇨에서 변소의 정착과정을 중심으로 - (A Study of Housing Environment Problems through the Daily newspapers ( II ) -Centering around a excretion and fixing process of lavatory-)

  • 신경주
    • 한국주거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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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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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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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
  • We discussed the change of housing environmental problems from the early 1900s to the present in Study(I). This study(II) which secendly research of study(I) analyzed the fixing precess of a lavatory centering around a excretion which was a serious housing environmental problem in 1920 to 1940. The documentary research method was used for this study. Articles of content analysis(N=185) were published in 1920 to 1990 which were The Deng-A daily news article about a excretion and a lavatory. The main content of this study was examined the change, such as the number of whole article, the column number of article by time series. and the content of article by subject. 1. The number of whole article by time series was collected mainly in1920s-1930s. In 1940s-1960s, one-two column of article was appeared generally and three-four, five column of article was appeared in 1970-1980. 2. Contents of article was divided into two classes, excretion and lavatory. Contents of excretion was 1) a use of fertilizer 2) the method of transportation 3) a cost of gathering 4) a place of disposal 5) the problem of cleaning. Contents of lavatory was 1) a public lavatory 2) a flush toilet 3) a sanitary conditions 3. 1) A use of fertilizer was concentrated in 1920s-1930s, and problems of it was solved more or less by change of management method. Transportation of excretion developed such as \ulcornerGue\ulcorner->a coach of tank style->underground transportation->a dung car of absorption style. Disposal place of excretion was a cause of dissatisfaction in 1920s and it is serious problem Today. A duty of excretion gathering was transfered to a private worker in 1978. The accunulation problem of excretion was continued until 1940s-1950s. The management law of waste matters was proclaimed in 1986. 2) A public lavatory was planned in 1924 for the first time, and it is insufficient in these days, A settlement of public lavatory in building which has upward of 20pyung became obligation in 1973. The problem of water contamination which by poor septic tank was happened in 1970s-198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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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축 공간구성의 비정형적형태에 관한 연구 (A Study on Informal Form of Space Composition in Contemporary Architecture)

  • 김철규;천동훈
    • 한국실내디자인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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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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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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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The paradigm of contemporary times became different from paradigm of modem times. The change of paradigm is caused by the side effect of paradigm of pre-times. It could be said that contemporary paradigm is pluralism. In the forms of contemporary building and interior design, the informal form is the result of pluralism. This study is researching and analyzing the informal design tendency in the interior space composition of contemporary architecture. the 1950's free form movement, 1960's Informal movement and pluralism after 1970's affected the latest informal forms. The tendencies of contemporary informal design are organic-degital tendency and deconstructive tendency. Along this two kinds of tendencies, I studied the specific characters in expression and analyzed some natural-degital, deconstructive building.

산업디자인의 감성적 접근에 관한 연구 - 1960-80년대 디자인사를 중심으로 (A Study on Sensibility Approach in Industrial Design Focused on Industrial Design History from the 1960s to the 1980s)

  • 김동하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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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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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3-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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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20C초 바우하우스(Bauhaus)로부터 정립된 산업디자인의 엄격한 미적기준과 기계미학은 모더니즘을 한층 강화시켰으며 그 규범은 반세기 이상을 이어져 나갔다. 1950년대 후반이후부터 팝아트(Pop art)나 팝디자인(Pop Design)같은 반 모더니즘에 대한 운동이 시작되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더불어 그 당시 젊은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 등을 반영하는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디자인이 나타나게 되었다. 물리적인 요소의 완성을 초월하여 심리적인 부분을 충족시키는 시도, 즉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산업디자인에 이입시키려는 시도는 1960년대부터 비롯되었으며 여러 상황 속에서 다양하게 그 모습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그것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 디자인 스타일로써 1960년대의 반 모더니즘(Anti-Modernism)디자인 1970년대의 상업주의, 소비자 중심주의, 하이테크 등을 거쳐 1980년대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필터를 통과함으로써 산업디자인에서 정착할 수 있었다. 그것은 감정이나 감성을 디자인에 적용함과 아울러 하이 테크놀로지와 결합하여 물리적인 요건의 충족과 아울러 심리적으로 사용자들에게 만족감을 전달할 수 있는 디자인 요소가 강조된 디자인 경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의 디자인사로부터 인간의 감정과 감성이 이입된 디자인을 추출하여 그 스타일을 정의하며 현대 산업디자인의 흐름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기울였다. 이 연구는 또한 인간감정과 감성이 적용된 디자인이 오늘날 어떻게 발전되어져 왔는가의 연구로 이어지는 토대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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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uctuations of Pelagic Fish Populations in Relation to the Climate Shifts in the Far-East Regions

  • Gong, Yeong;Jeong, Hee-Dong;Suh, Young-Sang;Park, Jong-Hwa;Seong, Ki-Tack;Kim, Sang-Woo;Choi, Kwang-Ho;Han, In-Seong
    • Journal of Ecology and Enviro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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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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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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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Based on a time series of ocean climate indices and catch records for seven pelagic fish species in the Tsushima Warm Current (TWC) and Kuroshio-Oyashio Current (KOC) regions from 1910 to 2004, we detected regional synchrony in the long-term fluctuations of the fish populations and identified alternation patterns of dominant species related to climate shifts. The annual catches of Pacific herring, Japanese sardines, Japanese anchovies, jack mackerel, chub mackerel, Pacific saury and common squid in the TWC region fluctuated in phase with those in the KOC region, which suggests that they were controlled by the same basin-wide climate forcing. After the collapse of the herring fishery, the alternation sequence was: sardines (1930s), Pacific saury, jack mackerel, common squid and anchovies ($1950s{\sim}1960s$), herring ($late\;1960s{\sim}early\;1970s$), chub mackerel (1970s) and then sardines (1980s). As sardine biomass decreased in the late stages of the cool regime, catch of the other four species increased immediately during the warm period of the 1990s. Regional differences in the amplitude of long-term catch fluctuations for the seven pelagic fishes could be explained by regional differences in availability, fishing techniques and activ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