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풍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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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줄풍류와 대풍류의 사회적·공간적 연관성 (The Social-Spatial Relationship between Jeongeup Julpungryu and Daepungryu)

  • 조석연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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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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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7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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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향제줄풍류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정읍줄풍류는 풍류음악 형성에 있어 지방풍류문화의 사회적·공간적 특징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 이에 정읍 풍류음악의 줄풍류와 대풍류의 형성과 연행의 관련 기록을 통해 두 음악 간의 연관성을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살펴보았다. 또한 정읍풍류의 사회적·공간적 특수성에 따른 두 음악의 관련성을 가늠해 보았다. 시대적인 흐름은 풍류방에 변화를 가져왔다. 향제줄풍류는 경제줄풍류와 달리 가락이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전승계보나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전계문과 같은 지역 전문연주가들에 의해 재해석된 가락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재인청에 소속되어 있던 무계출신의 전계문과 같은 전문연주자들이 향제줄풍류에 참여하면서 변화무쌍한 무속 형식이 자연스럽게 줄풍류에 이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춤반주인 대풍류와 향제줄풍류의 밀접한 관계는 두 가지 관점에서 그 연관성을 유추할 수 있다. 첫째, 향제줄풍류의 태동에 음악적 주체로 참여한 전계문은 악기연주 뿐아니라 춤에도 능한 인물이다. 전계문을 포함한 세습무계 재인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된 '향제줄풍류'는 춤반주 음악으로 사용되었던 대풍류 가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는 재인들에 의해 형성된 정읍 줄풍류의 사회적·공간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초산율계 계보도>에 의하면 전계문으로부터 영산회상과 삼현육각을 배운 정형인이 향제줄풍류 피리 연주자로서 피리 계보 맨 위에 위치하고 있다. 정형인은 무계출신 춤꾼 정자선의 아들이다. 전계문과 정형인 모두 춤꾼인 동시에 전계문은 줄풍류 형성에 영향을 주었으며, 정형인은 줄풍류 수석 피리연주자로 활동하였다. 이들이 향유하던 대풍류 선율은 정읍향 제줄풍류 형성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정읍 줄풍류는 재인들의 대풍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한국 전통음악의 아속(雅俗)미학 패러다임 변화 연구 -조선시대 거문고[玄琴]의 아속적 심미를 중심으로- (Study on the Paradigm Shift of Ah-Sok(雅俗) Aesthetics in Korean Traditional Music - Focusing on the aesthetics of Ah-Sok(雅俗) of Geomungo(玄琴) in Joseon Dynasty -)

  • 강유경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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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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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0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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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는 아악과 속악의 개념과 범주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논외로 하고, 조선 전기에서부터 후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궁중음악과 풍류방 중심의 민간음악에 일관되게 투영되어 있는 전통 음악의 아속적 심미 체계에 대해 구체적 사료를 통해 밝혀보았다. 본 연구를 통해, 조선전기 아속과 관련된 음악의 심미는 주로 궁중의 제례악과 연향악에 투영되었고, 특히 거문고[玄琴]의 심미적 사유가 그 중심에 있었다.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아속과 관련된 음악의 심미는 민간으로 확장되어 풍류방 음악에 투영되어 있으며, 거문고[玄琴]의 심미적 사유가 그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금전(金錢)을 매개(媒介)로 한 사설시조(辭說時調)의 성담론(性談論) (A study on the Pecuniary mediated Sexual Discussion in Saseol Sijo)

  • 류해춘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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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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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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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인간의 삶을 반영하고 있는 사설시조에서는 애정과 관련된 재화(財貨)나 금전(金錢)이 등장하여 그 당대 사람들의 애정과 경제의 상관성을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부란 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는 가장의 아내로서 여성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설시조에 나타난 물질문제나 금전문제는 물질적 궁핍을 강요하는 사회와의 투쟁이 드러나지 않고 오락성이나 유흥성의 측면에서 재화나 금전의 과소비를 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나타난 사설시조의 성담론은 여성의 성적억압을 상상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욕망의 투사체이거나 혹은 대리 만족으로 여성의 성적 욕망을 다루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후기 우리 사회의 풍류방이나 유흥의 산물로 흥행한 사설시조에 담겨있는 주부의 모습은 유교적 질서가 확고했던 조선시대에도 여성이 가정 내에서 그 역할이 점차 변해가고 있었으며 현대 사회의 주부들 못지 않게 자유롭고 발랄한 성담론을 구사하고 있었다. 사설시조에 나타난 금전을 매개로 한 주부들의 성담론이라는 주제는 현재 무너져 가는 가족관계와 천민자본주의 그리고 성(性) 산업의 노예가 되고 있는 21세기 현대인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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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방선문(訪仙門)의 선경(仙境)적 이미지와 명승적 가치 (Study on Enchanted Image and Scenic Value of Jeju Bangseonmun)

  • 노재현;신상섭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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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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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8-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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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방선문(訪仙門)은 한라산의 옛 이름인 영주산을 신비롭게 하는 신선사상의 흔적이 가장 역력한 명소로 한천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영주십경의 하나인 '영구춘화(瀛丘春花)'의 대상장으로 널리 알려진 방선문(訪仙門)과 들렁귀(등영구(登瀛丘))는 문자 그대로 '신선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며, 신선의 산 영주산으로 이르는 통로이자 속세와 탈속의경계로 그려지고 있다. 조선조 선비들은 신선의 고향 한라산을 무대 삼아 방선문, 환선대, 우선대 그리고 등영구의 제액(題額)을 바위에 각자(刻字)함으로써 신선의 문에 들어, 신선을 부르고, 신선을 만나, 신선의 세계로 오르는 선경의 이미지를 방선문에 구축해 왔다. 이는 세속의 번거로움을 털고 한라산 신선이 되는 풍류 행위의 시적 표현이며, 도교적 이상세계에 대한 염원으로, 방선문 4승경의 장소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이다. 방선문이 갖는 선경적 장소성뿐만 아니라 계곡 및 하천경 관을 이루는 지질지형학적 특성과 식물생태학적 가치는 방선문이 '자연경관으로서 명승'으로도 부족함이 없음을 보여준 다. 고찰 결과를 종합할 때 방선문은 마애각에 새겨진 제영의 의미가 갖는 장소정체성과 선경적 의미 그리고 영주십경의 대상장이자 '영구춘화'의 시점장으로서는 물론 방선문 계곡의 자연적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선인과 자연과의 만남을 통한 교감의 장소로 유전되어 왔다. 지금도 제주민과 호흡하는 문화공간으로 지속되고 있음은 생활명승의 전형성 또한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현재 문화재보법의 명승적 가치와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제주 방선문계곡은 명승의 조건에 가장 부합되는 전형적 장소이자 공간이라 할 만하다.

중국 영남지방 여음산방 원림의 특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Yuyin ShanFang in China Lǐngnán Region)

  • 스스쥔;안계복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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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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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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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중국 영남지방의 4대 명원 가운데 하나인 여음산방에 대해 현지조사와 시문 분석 등을 수행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여음산방의 조영자는 우빈(?彬 1824~1897)이며, 원림 면적은 $1,598m^2$이다. 우빈은 원림의 이름을 '여음(餘蔭)'이라고 하였는데 그 뜻은 조상의 음덕을 의미하였다. 둘째, 조영자가 쓴 시문을 분석해 보면, 미래 이상세계를 표현한 시문, 가문에 대한 오복사상을 표현한 시문, 그리고 풍류사상에 대한 시문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셋째, 여음산방의 건축물의 배치와 공간구성의 특징을 분석해 본 결과, 부지 한가운데 사당건물(善言?公)을 중심으로 남쪽에 펼쳐진 공간은 주로 거주하는 공간이며, 북쪽에 펼쳐진 공간은 주로 제사와 관련된 공간이었다. 넷째, 여음산방의 공간구성요소를 분석해 본 결과이다. 정자부분은 원림에 지정(池亭)인 한취정(閒趣亭), 후화원(後花園)에 유상곡수연을 표현한 계상정(?賞亭), 독특한 반정(半亭) 형태인 내훈정(來熹亭) 등을 조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여음산방에는 형태가 매우 다양한 연못을 5개소 조성하였으며 기학적인 경계선을 가지는 것은 특징이다. 여섯째, 여음산방의 석가산은 괘방청산(掛榜靑山)이라고 하였는데,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서 붙이는(괘방) 곳이 곧, 이 석가산(청산)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일곱째, 여음산방의 화창은 나무로 만든 문격창(紋格?)과 격단창(隔斷?) 등이 특징이며, 색채유리창(色彩?璃?)은 쑤저우 원림과 또 다른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여덟째, 동문 양식은 쑤저우 고전원림의 동문 양식에 비해 다양하지 않은 편이지만, 동문 전면(前面)에 적혀있는 시문 장식물의 다양한 형태와 화려한 색채가 특징이다. 아홉째, 여음산방 원림에 설치된 건물장식용 조각예술품들이 표현된 주제를 분류해 보면 길상, 문자, 도교 팔선, 동식물, 설화와 기타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음산방에 식재된 수목들은 주로 아열대식물이고 이중에 상징적 의미를 가진 수목도 있으며, 날씨가 좋기 때문에 과일나무를 많이 심었다.

「제황상유인첩(題黃裳幽人帖)」에 나타난 다산(茶山)의 정원상(庭園想) (Dasan's Conceptual Thoughts on the Garden in 「Jaehwangsangyuincheop」)

  • 정수진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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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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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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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다산 정약용의 의원기(意園記)라 할 수 있는 "제황상유인첩"의 제작 경위와 글에 나타난 주거지의 입지 및 정원 조영의 특성을 분석하여 다산이 추구한 이상적 정원에 대한 생각을 이해하고자 했다. 본 논문은 "제황상유인첩"이 이상적 주거향의 설계도로 기능했을 것으로 가정하였다. 주요 연구 대상은 "제황상유인첩"에 서술된 외부 경관이며, 관련 저작의 분석을 통해 정원 요소와 공간 조영을 수묵화로 시각화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황상유인첩"은 다산이 강진에서 유배하던 1805년(순조 5) 겨울 보은산방에서 은자의 거처에 대해 물어오던 애제자 황상의 질문에 답하여 써준 글이다. 황상은 이를 참고하여 이후 강진 대구면 천개산 아래 일속산방을 조성하였다. 둘째, "제황상유인첩" 속 주거지는 배산임수의 입지를 취하였고 생활과 여가를 겸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은 은둔하고 있는 선비의 이상적 주거지였다. 셋째, "제황상유인첩"에 나타난 정원의 특성은 주거지 입지에 있어서의 자연지리의 운용, 다양한 식물재료의 실용적 이용, 정원의 물리적 경계 확장, 정원 요소 향유에 있어서 공감각적 미학 추구, 확장된 정원에서의 적극적 풍류체험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제황상유인첩"은 유배 이후 다산이 원했던 은일하는 선비의 아취 있는 삶의 모습을 담았다. 이는 일속산방으로 구현되었다. "제황상유인첩"은 다산의 정원상이 충실하게 반영된 실현가능한 주거의 이상향으로 해석되었다.

한국 전통음악 (국악)에 대한 자동 장르 분류 시스템 구현 (An Implementation of Automatic Genre Classification System for Korean Traditional Music)

  • 이강규;윤원중;박규식
    • 한국음향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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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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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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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본 논문은 한국의 전통 음악, 즉 국악 장르를 자동으로 분류하는 시스템을 제안한다. 제안된 시스템은 입력 음악의 내용기반 분석을 통하여 궁중음악, 풍류방음악, 민속성악, 민속기악, 불교음악, 무속음악 등 6가지 장르중 하나로 자동분류하여 해당 음악의 장르 결과를 보여준다. 국악 장르 분류에 사용된 내용기반 알고리즘은 크게 음악의 특징 벡터 추출 그리고 장르 분류를 위한 패턴인식 과정 2가지로 구성된다. 음악의 특징 벡터 추출은 디지탈 신호 처리기술을 이용하여 해당 음악의 spectral centroid, rolloff, flux 등 STFT (Short Time Fourier Transform) 기반의 특징 계수들과 MFCC (Mel frequency cepstral coefficient), LPC (Linear predictive coding) 등의 계수들을 구한 후 SFS (Sequential Forward Selection) 최적 특징 벡터 열을 선별하여 사용하였으며 패틴 분류 알고리즘으로는 k-NN (k -Nearest Neighbor), Gaussian, GMM (Gaussian Mixture Model), SVM (Support Vector Machine) 분류기를 사용하였다. 특히 본 연구에서는 입력 질의의 패턴 (혹은 구간) 변화에 따른 시스템의 불확실성을 개선하기 위하여 MFC (Multi Feature Clustring) 방법을 이용하여 DB를 구축하였다. 모의실험 결과 k-NN 과 SVM 분류기 모두 $97{\%}$ 이상의 장르 분류 성공률을 보였으나, SVM 이 k-NN에 비해 약 3배 이상의 빠른 분류 성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봉수당진찬(奉壽堂進饌)의 무대와 공연 요소 분석 (Analysis of the Stage and Performance Elements for Bongsudang-jinchan Banquet in Joseon Dynasty)

  • 송혜진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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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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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3-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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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에서는 1795년 화성 행궁에서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열린 봉수당진찬의 의례와 악무를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 및 "정조실록", "홍재전서(弘齋全書)"등의 봉수당진찬 의례기록과 <화성능행도병>등의 도상자료, 일기체의 한글가사 작품인 이희평(李羲平)의 <화성일기(華城日記)>등의 자료를 중심으로 분석하여 무대와 공연요소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잔치의 주인공에게 충(忠)과 효(孝)의 의미를 담은 음악과 춤, 꽃과 음식, 술과 글을 예를 갖춰 올리는 궁중연향은 예악(禮樂)의 원리에 바탕을 둔 국가의례로서 조선왕조 500년 동안 고유한 음악문화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면서 '예'라는 상징적이며 총체적인 틀 안에서 상호 유기적인 관계에 놓여있던 연례의 음악과 춤들이 개별 악곡과 춤으로 해체되어 '작품화'되었고. 궁중음악과 춤의 철학이나 원리, 시공간에 대한 이해는 현저히 축소된 채, 음악과 춤의 전통은 형식과 예술적 표현 중심으로 변화해왔다. 1990년대 이후, 궁중의례 전통의 재현(再現)을 목적에 둔 연구와 행사가 추진되면서, 이와 연관된 공연예술 활동도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특히 봉수당진찬은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무대화 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原典)의 재현(再現) 및 복원(復原) 문제, 완성도 및 예술성에 대한 문제는 과제로 남아있으며, 지금까지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수록된 의주의 외형적 재현에 관심을 두었을 뿐, 무대조건이나 공연요소에 중점을 둔 심도있는 분석은 부족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 무대구성과 공연요소 중심으로 분석해 본 결과, 조선시대 궁중연향 중에서 유일하게 '행궁'에서 개최된 봉수당진찬은 '예악의 정치'를 의례와 악무로 구현하는 궁중연향의 기본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군신동락(君臣同樂)'의 친화의 비중이 높은 연향이었음을 밝혔다. 내연과 외연의 성격이 섞인 봉수당진찬에서는 가림막을 최소화하여 신분의 차서(次序)와 남녀유별(男女有別)의 원리를 충족시키면서도 삼면에 둘러친 휘장 안에 외빈의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술과 음식, 음악과 춤을 다 같이 공유하도록 배치되었다. 또한, 연향공간의 상징성을 내포한 차일을 백관들의 공간에 치고, 임금이 솔선하여 선찬(膳饌)과 산화(散華)를 명함으로써 군신동연(君臣同宴)의 의미와 범위를 확장시킨 점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봉수당진찬이 '예악의 원리'가 강하게 드러나는 여느 궁중 연향에 비해 '정(情)'을 나누는 화친(和親)에 기반을 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봉수당진찬에서는 여느 내연에서보다 임금의 역할과 비중이 높았으며, 특히 의주 외의 기록으로 전하는 여러 가지 상황 - 7작 이후에 정조가 신하들을 가까이 불러 나눈 대화, 신하들에게 음식과 꽃을 내림, 잔치를 주제로 직접 시를 짓고, 신하들에게도 이에 화답하게 한 일 등-은 의주에 따른 단선적인 연향의 진행에 변화를 주고, 연향의 의미를 확장시키는데 한 몫 하였다. 이밖에, 봉수당진찬의 주악과 정재의 구성을 분석해 본결과 연향에서 여러 인물들의 대화와 움직임이 매우 절제된 것은 여느 궁중연향과 비슷하지만, 춤과 음악을 통해 구현된 소리와 색채감은 매우 다채로웠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봉수당진찬에서는 정조 이전에 치러진 내연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정재를 상연하였고, 이 중에는 새롭게 초연된 레퍼토리도 있었으며, 또 기존의 공연을 새롭게 재구성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선유락>이나 <검무> 등, 지방 관아 및 민간의 레퍼토리를 궁중연향으로 수용한 점, 풍류방에서 즐겨 연주되기 시작한 생황을 <학무> 와 연계한 것은 전통적인 규범과 관습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궁중연향의 '열린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