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청나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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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닭의 재발견 여름 철 최고의 보양식, 닭과 오리

  • 한국오리협회
    • 오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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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2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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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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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바야흐로 복날의 계절, 여름! 대표 보양식으로 손꼽히는 것은 닭과 오리! 복날 닭 소비량은 평소보다 50% 이상 급증한다고. 또한 오리 역시 최근 보양식으로 새롭게 뜨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운 여름! 지친 체력을 위해 보양식으로 챙겨 먹는 닭과 오리, 과연 그 영양학적 가치는 어느 정도 일까? 청나라의 여황제로 중국전체를 호령했던 서태후도 오리고기를 즐겨 먹었다고... 역사가 인정한 절세 미녀 양귀비, 중국대륙을 호령한 청나라 여황제 서태후. 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들인 이 둘에게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닭과 오리 즉, 가금류를 즐겨 먹었다는 것. 양귀비가 자신의 아름다운 피부를 위해 잊지 않고 챙겨먹었던 음식이 닭고기이다. 특히 콜라겐이 풍부한 닭날개를 가장 선호했다고... 또 대단한 정력가이자 미식가로 알려진 여걸 서태후는 오리고기를 즐겨 먹었다. 이렇게 두 여인이 사랑한 닭과 오리요리. 그 비밀을 밝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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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의 우리문화와 중국의 왜곡에 관한 대응방안 연구 (A Study on Indigenous Culture of Gando and Countermeasure against China's Distorting Action)

  • 신용우;오원규
    • 지적과 국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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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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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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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1909년 우리나라가 외교권을 잃은 상황에서 맺어진 일본과 중국의 간도 협약에 의해 간도가 불법으로 중국 영토에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다 할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이나 간도에 산재해 있는 여러 가지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간도가 우리 영토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중국은 동북공정을 비롯한 영토공정을 앞세워 간도가 우리 영토라는 사실을 왜곡하여 자신들의 영토로 만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미 의미가 없는 조약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것보다는 역사와 문화를 왜곡해서 자신들의 영토로 만들려는 속셈이다. 그런 중국의 속셈을 아는 이상 우리는 그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간도에 산재한 문화가 과연 누구의 문화인가 하는 근원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주권 역시 영토에 관한 주권을 판단하는 요소 중 하나로서, 영토의 진짜 주인은 그 영토에 존재하는 문화를 향유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는 간도에 있는 문화의 주인은, 고조선 이래 형성되어 현재까지 맥을 이어온 북방문화권의 주인인 우리 민족이라는 것을 밝힌다. 고대는 물론 근대의 봉금지역해제 이후 간도에 문화를 정착한 것이 바로 우리 민족이기 때문이다. 또한 간도 문화의 주인이 우리라는 것을 알기에 그 문화에 대해 왜곡을 일삼는 중국의 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지나간 역사는 조작될 수 있지만 인간의 내면에 내재하면서 성숙하고, 밖으로 표출되어 형성된 문화는 왜곡할 수 없다. 아울러 중국이 자신들의 역사라고 하는 청나라 역사가 과연 중국의 역사인가를 재검토할 정책적 제안을 한다.

고문헌에 나타난 청국장의 유래와 역사 (Derivation and history for cheonggukjang in the Ancient Writings)

  • 정경란
    • 한국콘텐츠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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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콘텐츠학회 2018년도 춘계 종합학술대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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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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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청국장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훈몽자회(訓蒙字會)"(1527)에 '시(?)'는 젼국, 쳔국, ?국으로 청국장을 의미했으며, '장국(醬麴)'을 며주라고 하였다. 그후 '시(?)'는 전시장(煎?醬), 전국장(戰國醬)이라고 하다가 청국장(淸麴醬)이 되었으며, 1600년대 이후 시(?)는 메주, 된장의 의미로 바뀌었다. 청국장의 유래는 청나라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며, 또한 전쟁과 관련이 있는 음식도 아니다. 하룻밤새 쉽게 만들어먹는 꼭 필요한 음식으로 구황음식이었고, 22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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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나라 화병도자 기형을 적용한 옻칠 조형가구디자인 (A Design of Ottchil Molded Furniture with Chinese Qing Dynasty Ceramic Vase)

  • 추완려;김정호
    • 디지털융복합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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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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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3-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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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청나라 화병의 형태를 활용한 옻칠 조형 가구 디자인 개발 논문은 중국 도자 역사상 가장 탁월하게 발달하였던 청나라시대 화병도자 기형을 조사하고, 분석하여 그 시대 화병도자기의 기본형을 찾고 화병에서 나타난 화병 자체의 형태를 응용하여 칠기작품 디자인의 조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청나라시대의 화병에 나타난 조형요소 중 형태에 주안점을 두고, 그 형태의 종류를 분석하고, 사용된 재료의 조사와 각종 문헌을 통하여 중국 청나라시대 병도자기의 형태를 고찰한다. 중국 청나라 화병도자 기형을 실험에 의해 나온 자료를 기본으로 하여 옻칠 제작법 중에서 협저탈태칠기로 적용하여 앉는 가구를 디자인 한다. 이번 옻칠 조형가구 제작과 연구를 통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 옻칠과 가구디자인의 결합에 새로운 학문적인 체계 구축과 오늘날 옻칠가구에서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새로운 조형사고와 신 조형기술을 발전시키는데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서기8-9세기 신라와 당과의 해상교통 (A Reserch into the Sea Route Between Silla and Tang from the 8th Cent. A. D. to the CENT A. D.)

  • 선광기;허일
    • 한국항해항만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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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항해항만학회 1996년도 The Korean Institute of Navigation 1996년도 한·중 국제학술 심포지움 및 추계학술발표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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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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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
  • 중국과 한반도와의 해상교통은 기나긴 역사의 물줄기의 흘러온다. 일찍이 서기 8-9세기 당과 신라간에 있었던 우호적인 린방항해는 역사상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글은 중국 한반도와 일본의 상관 고대문헌을 고찰한 기초상에서 청해진(오늘의 한국완도) 장보고(Znang Bao-gao) 대사를 대표로한 신라인들이 당나라에 대한 항해활동 및 그활동이 남겨둔 역사의 자적을 연구함으로서 당시 당과 신라간의 주요한 해상교통선을 논증하였다 본 연구는 아래와 같이 지적하고 있다 1. 장보고는 서기 8-9세기 신라 항해역사상 아주 큰 영향력을 가진 대표인물로서 그는 이시기 동북아시아 항해활동에 역사적 공헌하였다 그가 오늘날 한국완도 및 중국 산동반도 등의 지역에 남긴 유적 들은 중국과 한국 및 전체 한반도 교통연구에 고귀한 문화재로 중시받을 가치를 지닌다. 2. 서기 8-9세기 신라와 당간 해상교통 노선을 쌍방 항해사들이 장기간의 왕래와 합작의 산물이며 이는 구체적으로 북항로 중항로와 남항로등 세갈래 중요 항로로 나누어진다 그가운데: --- 중국 요령 연해로부터 신라에 도달하는 북항로는 역사가 영구한 전통성 항로인데 항해가 안전하지만 항로가 비교적 길다 --- 중국 산동반도로부터 신라에 이르는 중하로는 당시 쌍방 해상 왕래에 매우 중요한 항로로써 장보고 등 신라 항해사들이 중국과 왕래하던 주요항로이다 ---중국 강소와 절강 연해로부터 신라에 이르는 남항로는 기본적으로 중항로가 남쪽으로서의 영신혹은 추동된 것으로서 그 왕래하던 시기는 당나라 이후 중국 송나라 시기인데 서기 10세기 이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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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어스를 이용한 연변지역의 문화.역사유적 지도화와 분포의 특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Mapping and Characteristics of Distributions in Cultural-Historic Sites of Yanbian Area using Google Earth)

  • 김석주;김남신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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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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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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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연변지역은 문화 역사적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 있어서도 관심 지역이다. 연변지역에 대한 문화 역사적 연구는 많지만 유적 지도화에 대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본 연구에서는 구글어스 영상을 이용하여 연변지역의 문화 역사 유적을 지도화하고 공간적 특징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석기시대부터 청나라까지 시기별로 문화 역사 유적 분포도를 제작하였다. 지도화 기호체계는 사기별로 색상기호와 유형별 기호를 제작하였다. 지도화 결과 연변지역에는 다른 시기와 비교해 발해와 요 금나라의 유적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특히 고구려, 발해, 요 금나라의 유적은 시 공간적 누층구조를 보였다. 분포특정은 초기에 분지지역과 하천지역에 위치해 있었고, 역사시기 이후에는 구릉과 산지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연구결과는 문화 역사 유적 관련 후속연구에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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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공간으로서 장백산의 문화경관적 해석 (Cultural Landscape Analysis of Changbai Mountain as Sacrifice Space)

  • 허종화;성종상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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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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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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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특정한 시대에 장백산 지역에 조성된 제사공간을 문화경관의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장백산의 신성성이 역사 속에서의 변화과정과 정권의 교체와 민족의 변화 속에서도 신성성이 유지된 이유에 대하여 해석했다.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청나라에서 중화민국시기로 과도하면서 겪은 정권의 교체와 민족의 다양성, 그리고 문화의 수용성으로 인하여 장백산의 제사성격과 신적대상이 변화했다. 둘째, 청나라의 황가 제사공간인 망제전(望祭殿)은 권위적인 공간으로 만족만의 유일한 제사공간과 문화를 형성했고 중화민국 시기에는 한족의 이주와 정착과정을 겪으면서 방산인 사이에서 새로운 민간신앙이 탄생했으며 따라서 제사공간인 여래사(如來寺), 산신노파두묘(山神老把頭廟)가 조성되었다. 셋째, 제사공간과 장백산을 공간적으로 보면 망제전은 수직적인 공간으로 권력적인 공간이고 여래사와 팔괘묘는 장백산과 수평적인 공간에 입지되어 순종적인 공간으로 나타났다. 넷째, 제사의례를 보면 청나라의 망제전은 만족만의 유일한 제사의례 이지만 황권의 폐지에 따라 단절되었다. 현재는 민간제사의례가 일상화 되어있고 청나라의 제사의례는 형식적으로만 진행된다. 결론적으로 보면 역사적으로 장백산에 대한 신성성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장백산 제사공간은 청나라의 단일한 제사문화에서 정권의 교체와 다민족의 문화에 대한 수용을 거쳐 변화하였다. 현재는 상호수용을 통하여 중첩된 제사공간과 문화를 형성하였다.

역사속 과학인물 - 조선에 망원경 등 전한 포르투갈 선교사 '로드리게스'

  • 박성래
    • 과학과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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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6호통권3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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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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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1631년 조선조 인조때 명나라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은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던 포르투갈 선교사 로드리게스로부터 망원경, 서포, 자명종 등을 기증받아 서양문물을 처음 들여왔다. 우리나라에 서양문물을 처음 전한 로드리게스(1561~1633년)는 포르투갈 고아출신 선교사로 일본에 파견되었으며 일본어에 능통하여 당시 일본을 방문한 교황청 주교가 지배자이던 풍신수길을 만났을 때 통역을 맡기도 했다. 로드리게스는 그 후 일본에서 금교령이 내려지자 마카오로 퇴거했는데 중국서 우리 사신에게 이러한 서양문물을 기증한 2년 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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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의 역사 (The History of Chongkukjang)

  • 정경란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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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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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47-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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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혹자는 청국장(淸麴醬)은 전시(戰時)에 단기숙성으로 단시일 내에 제조하여 먹을 수 있게 만든 장이라하여 전국장(戰國醬), 또는 청나라에서 배워온 것이라 하여 청국장(淸國醬)이라고도 하며 전시장(煎?醬)이라고도 하였다 하고, 청국장이 우리나라 문헌에 처음 보인 것은 1760년(영조 36) 유중임(柳重臨)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부터라고들 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청국장과 메주를 뜻하는 '시(?)'가 삼국사기에 나오므로, 청국장은 삼국시대부터라고도 한다. 이처럼 청국장의 역사는 청나라(1600년대)부터인지 고구려, 신라시대부터인지 분명하게 전해지지 않아, 혼란스럽고 그 틈을 타서 과학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돌고 있다. 이 글에서는 고문헌 기록을 통해 청국장의 역사를 과학적으로 재조명하였다. 문헌기록을 통해 본 결과 고구려, 신라시대에 이미 청국장(?)이 있었다. 청국장은 젼국, 쳔국, ?국으로 불리었으며, 한자로 '시(?)'로 썼고, 어느 시기부터 청국장도 된장, 간장, 고추장과 같이 장(醬)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전시장(煎?醬), 전국장(戰國醬), 청국장(靑局醬), 청국장(靑麴醬) 등으로 쓰다가 지금은 청국장(淸麴醬)으로 통일되었다. 시(?)의 의미도 1500년대까지 청국장을 의미했고, 1600년대 이후에는 청국장이 한자로 장(醬)이 붙은 전시장(煎?醬), 전국장(戰國醬), 청국장(靑局醬), 청국장(靑麴醬) 등으로 굳어지니까 시(?)의 의미도 메주, 된장을 국한지어 의미하게 되어 가는 경향이 있었다. 청국장은 전쟁과 관련이 있거나 청나라와 관련이 있는 음식이 전혀 아니며, 청국장은 문헌 기록상으로 보아 220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으나, 기록 이전에 사물이 먼저 있었을 것이므로, 이보다 훨씬 이전인 수 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역사탐구-세계를 빛낸 한국의 문화유산

  • 김광륜
    • 프린팅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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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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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6-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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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이 지난해 9월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5천년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기록문화유산 4건을 비롯 해인사대장경판 등 세계문화유산 7건, 무형유산 1건 등 12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세계유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인쇄’ 또는 이와 관련된 것들이다. 문화재청의 자료협조를 받아 세계유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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