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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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변한 목관묘 문화의 성립과 전개 -월성동 유형의 검토와 함께 (The Establishment and Development of Wooden Coffin Tombs in the Jinhan and Byeonhan Confederacies: An Examination of the Wolseong-dong Type)

  • 이동관
    • 박물관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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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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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0-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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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영남지역은 대략적으로 서기전 2~1세기 무렵부터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지석묘와 석관묘, 석개 토광묘 등에서 군집 목관묘로의 교체, 와질토기와 철기의 등장이라는 획기적인 사회변혁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고고학적 물질자료의 변화는 삼한을 구성하던 '국(國)'의 형성과 관련하여 이후 시기 목곽묘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다루어져왔다. 본문에서는 이 중에서 본격적으로 철기가 공반되는 군집 목관묘의 출현을 유형화하여 설명한다. 특히 조양동 5호, 다호리 1호 등과 같이 깊은 묘광을 가지고 위세품과 와질토기가 다량 부장되는 것과는 양상이 다른 월성동 유형을 설정하여 목관묘 등장의 배경을 살펴본다. 월성동 유형은 편평편인철부, 장방형 주조철부, 철사, 철착, 철검의 철기구성과 60cm 이하의 얕은 묘광을 가진 세장방형의 소형 목관묘로 대표되며, 토기는 와질토기에 앞서는 장경호, 삼각형점토대토기 발과옹, 두형토기가 주 기종이다. 소량의 청동기가 있지만 위세품은 보이지 않는다. 월성동 유형의 관점에서 의성 탑리리, 경주 하구리, 대구 학정동을 검토하였고 특히 대구 신서동에서는 월성동유형과 이후 단계의 조양동유형이 한 유적 내에서 별도의 공간 분포를 보이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양상 또한 월성동 유형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월성동 유형의 등장은 결국 집단의 이주와 연관될 수 밖에 없다. 그 기원을 준왕의 남하로 촉발된 서남부지역 철기문화와의 관계로 볼 것인지 서북한지역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지만 어느 쪽이라 할지라도 이후 조양동 유형에 비해서는 집단의 계층적 위계가 낮았던 것으로 판단한다.

조선시대 이전의 식생 간섭사 (Vegetation Disturbance of Korea during the Pre-Chosun Dynasty Period)

  • 공우석
    • 한국제4기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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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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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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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한반도에서 구석기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자연식생 간섭사를 시공간적 관점에서 복원하였다. 자연식생 간섭은 신석기시대에 본격화되었으며, 간섭은 초기에 저지와 해안에서 이루어졌으나, 후기에는 내륙으로 확산되었다. 청동기시대에는 밭의 개간이 활발해지고, 특정 수종에 대한 선택적 이용에 따른 간섭이 있었다. 철기시대에는 밭농사를 위한 개간이 한반도 전역에서 이루어져 자연식생의 파괴가 계속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별채, 목재 가공, 철제 농기구 사용, 가축에 의한 땅 갈기 등이 도입되면서 경작지 확대를 위한 자연식생의 간섭이 계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개간이 장려되면서 다락밭이 조성되고, 땔감, 조선, 광업, 목판 인쇄, 개간 등으로 자연식생의 간섭이 심각해졌다. 자연식생 간섭을 가져온 주된 요인은 농경 및 벌채와 관련된 인간의 활동이었고, 그 외 일상생활과 산업에서도 산림 식생의 간섭은 발생했다. 신석기시대 전기의 괭이농사, 후기의 보습농사, 청동기시대의 가축에 의한 보습농사, 철기시대의 농기구를 이용한 농사와 삼림 벌채 등으로 농경에 의한 자연식생의 간섭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고구려의 밭농사, 백제의 논농사와 밭농사, 신라의 밭농사, 통일신라 때 밭의 확대 개간, 고려 때 개간 장려에 따라 다락밭이 확산되면서 전국에서 산림 훼손 피해가 심하였다 벌채는 신석기시대 초기부터 본격화되어 후기에는 섬이나 내륙으로 확산되었다. 밭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벌채는 계속되었고,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에는 목공구가 발달하면서 자연식생의 제거가 쉬워졌다. 고구려의 밭농사, 백제의 앞선 목재 가공 기술, 신라와 가야의 광물 생산, 목재 가공, 개간에 따라 식생 파괴가 심했다. 고려 때에는 연료와 개간으로 나무가 벌채되었고, 대신 산에 소나무 등을 심으면서 마을 주변에서 소나무 숲 경관이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자연식생 간섭을 가져온 기타 활동으로는 구석기 전기의 석기와 불, 신석기시대의 정착생활과 관련된 활동, 청동기시대의 제련, 철기시대 철제 생활용구 제작, 고조선의 온돌난방, 삼국시대의 아궁이·굴뚝을 갖춘 온돌방, 신라의 많은 숯 사용, 고려의 선박 건조, 전란, 목판 인쇄, 연료, 경제작물 재배, 전면적인 온돌난방 보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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