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에서는 1817년에 거행된 효명세자의 입학례 의주(儀註)와 절차별 장면을 담은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본 ${\ll}$왕세자입학도${\gg}$를 중심으로, 입학례 절차에 따라 왕세자가 착용하는 복식의 종류와 구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입학례를 구성하는 첫 번째 절차인 <출궁의(出宮儀)>는 산선시위를 비롯하여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 관원들, 그리고 의장군들이 왕세자와 함께 동궁을 출발하여 성균관을 향하는 절차이다. 산선시위를 비롯하여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 관원들이 동행하고, 이 대열 앞에 의장군이 앞장서 출궁을 알린다. 이때 왕세자는 서연복(書筵服)을 착용하였다. 서연복은 익선관(翼善冠)과 곤룡포(袞龍袍), 독옥대(禿玉帶), 흑화(黑靴)로 구성된다. 그러나 입학례 당시 효명세자는 아직 관례를 치르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익선관 대신 쌍동계(雙童?)라는 머리모양에 쌍옥도(雙玉導)를 꽂는 공정책(空頂?)을 썼다. 곤룡포는 다홍색 안감을 넣은 아청색 혹은 자적색 곤룡포를 착용하고, 허리에는 청정(靑?) 독옥대를 띠며 청색 또는 흑색 깃 장식의 흑피화를 신었다. 성균관에 이르면 <작헌의(酌獻儀)>, <왕복의(往復儀)>, <수폐의(脩弊儀)>, <입학의(入學儀)>를 치르게 되는데, 그동안 줄곧 학생복인 청금복(靑衿服)을 착용하였다. 왕세자는 학생복으로 연두건(軟頭巾)을 머리에 쓰고 아청색 도포를 입고 자적색 세조대, 흑화를 착용하였다. 도포 안에는 대창의와 중치막을 받쳐 입었다. 왕세자가 성균관에서 학생복을 착용하는 것은 왕세자가 왕위 계승자로서의 서열을 내세우는 자리가 아니라, 학문의 스승을 맞이하고 유학의 학맥을 잇는 자임을 표방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성균관에서 의식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온 후, 효명세자는 창경궁의 시민당(時敏堂)에서 입학례의 마지막 절차인 <수하의(受賀儀)>를 거행하였다. 이때 원유관복(遠遊冠服)을 착용한다고 하였으나 관례를 치르기 전이므로 원유관 대신 공정책을 사용하였다.
이 논문의 목적은 새로운 역사극의 등장과 더불어 연극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는데 있다. 통시적으로 역사극의 변화를 살펴보면 새로운 역사적 해석들이 항상 등장했지만 최근 들어 해석의 새로움을 넘어서 역사적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지점까지 확장되는 경향이 발견된다. 이 논문은 그러한 경향의 연장선에서 <왕세자 실종사건>이란 작품을 통해 최근 역사극의 새로운 흐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극의 흐름은 후기구조주의 역사관, 미시사의 등장과 더불어 더욱 잘 설명될 수 있다. 미시사에서는 작은 개인의 역할이 중요한데 <왕세자 실종사건>에서도 역시 이러한 측면이 발견되며 이 작품에서는 작은 개인이 거대 담론을 전복하기도 한다. 또한 이 작품에는 독특한 시간관이 등장하는데 이는 불연속적 시간의 재구방식을 살펴봄으로써 설명이 가능해진다. 역사극에 멜로나 추리 등의 다른 장르가 섞이는 현상은 영화나 소설에서도 드러나는 바인데 <왕세자 실종사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연극만의 특징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미지극이라는 형식의 차용은 새로운 역사극을 참신하게 부각시켜 주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Sibok of king and prince in Choson dynasty. In the first half of Choson the official uniform was not established. Sibok was worn for expediency. so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Shillok and Gukzooraeyi Sibok in Shillok but Sangbok Chobok, Myounbok in Gukzooraeyi as the costume of same ceremony. But we can recognize that king 'Sibok' in that process took the place of Gongbok of Korea dynasty and was beyond simple working uniform though it was degraded than Gongbok Chobok, Myounbok. In the latter half of Choson the number of appearance of Sibok in Shillok was largely decreased in addition to is in interpretation of Sibok it was regarded as Sangbok Especially prince Sibok in a coming-of-age ceremony was regarded as an ordinary dress.
배표의(拜表儀)는 황제에게 보내는 외교문서인 표문(表文)에 치르던 의례로, 세종 대에 행하여진 배표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직책과 그에 따른 복식을 살펴보았다. 의례 주체자인 왕은 최고 법복인 면복을 착용하였고, 면복은 구류평천관에 구장복으로 구성된다. 왕세자와 종친, 문무백관은 조복인 양관과 적라의를 착용하였다. 왕세자의 조복은 세종 10년에 오량관에서 육량관으로 바뀌었고, 문종 즉위년에 왕세자의 면복을 받아서 단종 이후에는 팔류평천관과 칠장곤복을 착용하였다. 사행원인 사자와 종사관은 상복을 착용하였다. 사자가 착용한 상복은 사모에 흑단령, 서대, 협금화이고, 종사관이 착용한 상복은 사모에 흑단령, 흑각대, 흑피화이다. 왕의 측근에서 시종하는 별감은 공복과 상복을 착용하였다. 공복은 자건에 청단령과 흑피화, 상복은 주황초립과 직령에 조아, 흑피화로 구성되었다. 의장군은 황의장과 왕의 의장이 진열되었고, 산과 개, 수정장, 금월부를 들고 있는 자는 자건에 청의를, 전도황기는 피모자에 청의를 착용하였다. 선과 금은횡과·금은입과·금은장도는 피모자에 홍의를 착용하였다. 시위군은 갑옷과 투구에 검 또는 궁시를 갖추어 착용하였다. 공인 중 악사의 복식은 복두에 비공복, 금동혁대, 비백대대, 오피리로 구성되었고, 악생은 개책에 비수란삼, 협고, 말대, 말, 오피리로 구성되었다. 이상의 결과로 세종 대에 의례복식이 의제화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배표의에 참여하는 왕 이하 왕세자, 문무백관, 사자, 별감, 시위군, 공인 모두 각 품계에 맞는 최고 등급의 예복을 착용하였다. 세종은 유교를 바탕으로 한 국가를 건설하고자 거듭된 논의를 거쳐 각 의례와 그에 따른 복식을 정비하였고, 배표의 복식도 직책별로 체계적으로 갖추어졌다. 세종 대에 정리된 의례복식은 예전에 규정화되어 조선 후기까지 이어질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
Wangeja Chulgungdo (The Painting for a Crown Prince's Outgoing for Schooling to Sungkyunkwan) for this study which is held by the Korean university Museum is a kind of documentary paintings which not only have the value of art history but also give a glimpse of the court ceremonies for a Crown Prince. This painting offers various historical clues to understand the procedure for a Crown Prince's official entrance of Sungkyunkwan participants of the ceremony and other ceremony-related items$\ulcorner$Wangseja chulgungdo$\lrcorner$ was the painting drawn for a series of court procedures of Crown Prince Munjo's official en-trance of Sungkynkwan. When he was old enough to begin learning Sohak on March 11. 1817 that is ; he held Heonjakrye(a ceremony for offering drinks to the ancestors) at Munmyo passed Iphakye(a ceremony for en-trance of school) at Myungryundang and received Suharye the next day. $\ulcorner$Wangseja Chulgungdo$\lrcorner$ had the strong char-acteristics of documentary paintings in terms of art history which was intended to leave the historical event of a Crown Prince's entrance. It reflected the traits of documentary painting style in late Chosun Dynasty; a technique that strongly relieved the ceremonial scenes against the background such as mountains and rivers; a painting that not only captured the vivid actions of personalities ar the crucial moment of the ceremony but also depicted the cer-emonial vessels and items very realistically. Authors could confirm the ceremonial think-ing of the traditional society through a Crown Prince's entrance which controlled the details of every part of the performances of the court ceremony.
As we analyzed the formalities of court dress during King Soonjo's rule through the characters depicted in $\boxDr$Wangseja Chulgungdo$\boxUl$(The Painting for a Crown Prince's Outgoing for Schooling to Sungkyunkwan) the results were as follows: People wore their appropriate full dress ac-cording to the ceremonial procedures. In the case of a Crown Prince normally the wore Gongjungchaek(a hat) (after the coming-of-age ceremony Iksunkwan) and Gonryongpo(imperial clothes) to show his status as a Crown Prince. He wore chugkumbok(a Coat) to indicate a Crown Prince as being a student. on an occasion of celebration a Crown Prince wore Wonyugwan and Gangsapo to provide him with prestige and as a sign of respect for the occasion. The teacher of a Crown Prince also wore Gongbok and Sangbok accoding to the dress requirements of the ceremonies. We can confirm that the Gongbok system of all government officials had been main-tained in the late Chosun dynasty. We know that the form of ceremonies be-came simplified in the late Chosun dynasty. it was recorded that students had to wear Chungkumbok. but we knew from the painting that students actually wore Dopo(a traditonal korean coat). We knew through this painting that the court dress rules of the late Chosun dynasty varied that previously known. As we concluded above research on the his-tory of costume by analyzing paintings both supplements our knowledge of the topic and confirms the deficiency in the study of the his-tory of costume based solely upon literature and books.
A state wedding ceremony of kings and crown princes in the Chosun Dynasty was systemically formalized in a book Five National Ceremonies (1474) as one of the five major formal events of the royal auspicious ceremonies(Ga-rae). For a state wedding, Ga-rae Protocol was made by a devision for Ga-rae temporarily established for the occasion. A total number of auspicious ceremony protocols of kings and crown princes amounts to 20 in the span of 279 years. Among the proposals, the wedding of Soon-jong in the Imo Year of 1882 is described most thoroughly. Nap-bin-ui(reception of bride) comprises six rituals which are nap-chae, nap-jing, go-gyi, chaek-bin, chin-young, and dong-ryae. A grand formal costume of the crown prince is granted based on the 'Seven Parts Formal Costume' of the first year of the king Moon-jong in 1450 together with an official costume for crown prince(Gon-myeon-chil-jang) arranged in the third year of the king Young-rak. In the royal palace of the Chosun Dynasty, the granted formal costume of the crown prince is officially recorded as a code and presented in a Gwon-ji-il section of the Formalities of the Five National Ceremonies. The formal costume and its accessory set for the crown prince recorded as a code are described in Sangbang Jeong-ryae as the formal costume of the crown prince section published by the king's request at the high senate commission in the 28th year of the king Young-jo in 1752. The aim of the study is to investigate the formal costume of the crown prince as an auspicious ceremonial costume worn at the wedding in the year of Imo.
정조는 1752년(영조 28) 9월 22일에 탄강하여, 8세에 왕세손 책봉례, 10세에 입학례와 관례를 치르고, 11세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훙서(薨逝)하자 왕세손이면서 동궁(東宮)으로 진봉(進封) 되었고, 24세에 왕위계승자의 실무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 대리청정 수행을 거쳐 25세에 등극하였다. 조선왕실의 왕위계승교육은 성장과정에 따라 기관의 명칭과 위상을 달리하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곧 보양청(보육기관)${\rightarrow}$강학청(조기교육기관)${\rightarrow}$세손강서원(왕세손교육기관)${\rightarrow}$세자시강원(왕세자교육기관)의 교육과정을 거쳐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러한 교육과정 외에도 책례 입학례 관례 등과 같은 의례를 거행하게 되는데, 이는 왕위계승자들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의 소명의식을 내면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책례는 왕위계승자를 미리 결정함으로써 정국의 혼란을 막으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일찍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예비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교양과 덕목을 쌓아 군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려는 교육적 의미가 더욱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등극 전에 이루어지는 대리청정은 왕위계승을 위한 실무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후기에 이르면 전기에 비해 왕위계승에 있어서 종법적 정통성이 상대적으로 미약하였으므로, 군왕으로서의 강력한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신료들을 제압할 수 있는 지적능력이 요구되었다. 때문에 특히 영 정조대에는 왕실교육을 확대 강화함으로써 왕실의 위상제고와 왕권강화에 주력하였으며, 의례정비를 통해 국가기강과 통치질서를 확고히 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연구는 순조28년(1828) 순원왕후(純元王后)의 40세 탄신일을 경축하여 거행된 연경당 진작(演慶堂進爵)을 중심으로 관객의 관극 체험을 논의하고 무대미학의 특성을 밝히고자 한다. 연구의 배경은 공연물로서 연경당 진작의 복원과 무대양식화를 위한 이론적 바탕을 마련하는 데 있다. 논의는 연경당의 공간 배치에 따른 관객의 위치와 시선을 점검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연경당 진작의 관객 가운데 임금이나 왕비, 왕세자는 의례의 주체로서 무대 위 작품에 편입되거나 능동적으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특별한 관객에 해당한다. 이들 관객의 위상을 통하여, 엄숙한 의례나 제의의 진정성을 온전하게 수용하면서 공연예술의 감흥과 신명을 향유할 수 있는 관객의 존재 방식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될 수 있다. 다음으로 정재 작품의 창작 동기와 연출 방식을 중심으로 관객에게 주어진 상상과 체험의 양상을 분석하였다. 정재 창작을 주도한 효명세자는 장생불사의 신화를 무대 위의 장경(場景)으로 꾸며내는 한편, 중국 역대 임금의 연악(宴樂)을 전거로 삼아 재창조한 장면을 무대 위의 장경으로 형상화하였다. 정재에 구현된 신화 세계의 이미지가 공간적 초월계에 대한 상상과 체험을 가능하게 했다면 실존했던 과거의 이미지는 시간적 초월계에 대한 상상과 체험을 가능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작품에 구현된 극중공간의 특성을 논의하였다. 신화와 역사를 재현함으로써 열리게 된 극중공간은 관객을 향하여 확장되거나 현실 속의 일상공간과 중첩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장생불사의 신화를 바탕으로 마련된 극중공간은 어좌와 보좌까지 확장되어 임금과 왕비가 신선을 만나는 체험을 가능하게 하였다. 역대 임금의 연악(宴樂)을 전거로 마련된 극중공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역사적 풍류 공간이 현실 속의 연경당에 반복되는 체험을 가능하게 하였다. 시공간적 초월계를 '지금 여기'에 중첩함으로써 '상상의 추억'이라는 미학에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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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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