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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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역사경관림 수목 정비 계획의 특성 (A Characteristics of Maintenance Planning of Trees in Historical Landscape Forest of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 소현수;이종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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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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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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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문화재청은 조선왕릉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2009) 이후 조선왕릉관리소를 신설(2012)하고 "세계유산 조선왕릉 보존 관리 활용중장기계획 수립 연구(2015)"를 진행하였다. 결과 보고서는 실행 방안으로서 조선왕릉 정비사업의 구체적 내용을 제공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 연구는 조선왕릉 역사경관림 수목 정비 계획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중장기계획"에서 조선왕릉 40기의 역사경관림 관련 내용을 추출하여 문헌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2016년을 기점으로 하여 단계별로 구분된 계획에서 단기 계획은 수목의 벌목과 이식 및 식재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제공하였다. 반면에 장기 계획은 왕릉마다 추상적 내용을 반복하여 제시하는 대신 개별 왕릉이 지향해야 할 식생경관을 모색해야 한다. 둘째, 왕릉의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들이 정비 계획의 대상이 되었으므로 역사경관림이라는 포괄적 개념 대신 기능별 공간을 구분하여 정비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셋째, 조선왕릉 역사경관림 수목 정비 계획은 숲을 지속시키는데 필요한 밀도 조절과 수형유지 등 일상적 관리가 기본이 된다. 또한 식생 원형경관이라고 인식한 소나무림을 보전하려는 목표로 인하여 외래 수종과 타 수목에 대한 벌목의 비중이 높다. 대규모 녹지에서 초화류가 배제된 한정된 교목을 다룸으로써 심미적 경관에 대한 지향이 미약하다는 특성을 보인다. 넷째, 능역을 기능에 따라서 진입공간, 제향공간, 능침공간, 외곽숲으로 구분하고, 영역별 수목 정비 계획 내용을 원형성, 생태성, 기능성, 심미성이라는 관리의 전제 조건으로 분석하였다. 세부 영역별 수목 관리 특성을 고찰하고, 관리 방안으로 원형경관을 만드는 수목의 다양성 이해, 생태 환경에 적응한 다양한 숲의 지속성, 조선왕릉을 특징짓는 제향 및 안전성 외에 요구되는 편의성, 조선왕릉에 대한 심미적 경관으로의 접근 필요성을 제안하였다.

문무대왕릉의 가치정립을 통한 해양문화콘텐츠 활용방안 연구

  • 안웅희
    • 한국항해항만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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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항해항만학회 2019년도 춘계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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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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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경주 문무대왕릉은 신라 30대 문무왕의 무덤이다. 한반도 동해안에서 200m떨어진 바다에 있는 수중릉으로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건조물이다. 이 수중릉은 천녕을 넘는 예부터 내려오는 찬란한 해양문화으 결정체이다. 이 위대한 해양문화유산은 그 진정한 가치를 정립해야 할 것이고, 그를 토대로 하여 보전과 활용(Conservation & Utilization)의 맥락에서 해양문화콘텐츠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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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고려왕릉의 석물 연구 (A Study on Stone Figures of the Goryo Royal Tomb Placed in Ganghwado)

  • 한나래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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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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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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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고려왕릉은 대부분 개성에 위치하여 실견할 수 없다는 현실적 제약 때문에 연구가 미흡하였다. 또한 왕릉의 구조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석물에 대한 연구도 통일신라 및 조선시대에 국한되어 왔다. 이에 본고에서는 강화도 소재 고려왕릉 5기를 대상으로 축조배경과 현황, 석실구조를 살펴본 다음, 강도시기 왕릉관련 석물의 구조적 도상적 특징을 정리해 보았다. 그 결과 강도시기 석물의 특징으로는 구조의 간소화와 규모의 축소를 들 수 있다. 난간석 및 병풍석 등의 시설은 구조적으로 간소화되고 석인상의 크기는 이후 시기에 비해 두드러지게 작다. 또한 도상에 있어서도 석양의 채용 등 일정한 변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정치 사회적으로 불안한 강도시기의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내부 미세변위 정밀모니터링을 위한 디지털 기록화 연구 (A Study on Digital Documentation of Precise Monitoring for Microscale Displacements within the Tomb of King Muryeong and the Royal Tombs in Gongju, Korea)

  • 최일규;양혜리;이찬희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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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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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6-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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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웅진백제시대(AD 475~538) 왕족의 고분군이다. 1971년 무령왕릉 발굴 이후 안전한 보존관리 체계 없이 공개됨에 따라 급격한 환경변화를 겪으며 고분 내부에 다양한 손상이 발생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왕릉원의 미시적 변위분석을 위해 각 고분 내부에 취약부를 선정하여 3차원 정밀스캐닝을 바탕으로 디지털 형상정보를 구축하였다. 5호분에서는 진행성 변위를 검출하였으며, 6호분과 무령왕릉은 향후 모니터링을 위한 기초자료를 획득하였다. 특히 5호분 남측 회벽의 편차분석 결과, 공차범위 ±18 mm와 ±2 mm에서 추가 손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인방석은 평균 0.32 mm의 처짐이 발생하였고, 벽체 사이의 거리는 평균 0.36 mm가 증가하였다. 5호분 내부는 직접적인 누수가 있어 탈락과 처짐거동 등 손상을 가중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이 연구에서 획득한 3차원 형상정보는 계속 연구를 위한 자료로 중요한 기준이 되며, 정밀 계측모니터링과 교차검증을 거쳐 왕릉원의 안정적 보존방안을 검토하는 데 활용할 것이다.

신라 황복사지(皇福寺址) 동편 폐고분지(廢古墳址)의 성격 (Analysis of Characteristics of the Abandoned Tumulus Site Located at the East Side of the Silla Era Hwang Bok Sa (皇福寺) Site)

  • 장호진;강량지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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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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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8-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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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이 글에서는 신라 황복사지(皇福寺址) 동편 폐고분지(廢古墳址)의 성격에 대한 기존의 제설(諸說)을 검토하고 최근 실시된 발굴조사 결과를 종합하여 고고학적인 접근을 시도해 보았다. 고찰 결과 다음과 같은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신라 황복사지 동편 논 경작지 지면에 노출되어 있었던 원형의 거석(巨石)들은 발굴조사 결과 모두 전면(前面)이 호형(弧形)으로 가공된 왕릉(王陵)의 호석(護石)이었다. 이 왕릉의 호석들은 대부분 후대 경작으로 인해 원위치에서 이탈되어 있었고, 일부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건물의 담장이나 기단 등의 건축부재로 재활용된 상태였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신라의 계세관념(繼世觀念)과 골품체제(骨品體制) 및 왕실의 권위를 감안할 때 인위적으로 능묘(陵墓)를 파괴한 후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 왕릉의 석재는 당시 왕의 능원(陵園)이 조영되던 중 어떠한 이유로 인해 미처 완성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오다가 후대에 자연스럽게 건물지의 부재로 재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구황동(九黃洞)왕릉지 탱석(撑石)의 규모와 암질(岩質)을 비교·분석한 결과 능지탑지(陵只塔址)에 복원되어 있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탱석들과 동일한 왕릉의 호석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로 인해 황복사지 십이지신상 호석은 또 다른 왕릉의 호석이라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황복사지 십이지신상 호석이 구황동왕릉지에서 옮겨왔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학계의 견해는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셋째, 호석의 구조와 능묘 형식으로 본 구황동왕릉지의 피장자(被葬者)는 흥덕왕보다는 늦고, 전(傳)경덕왕릉의 피장자와는 비슷하며, 전(傳)김유신묘의 피장자보다는 앞선 시기의 왕 중에서 찾아진다. 또한 능지탑지로 옮겨진 십이지신상 탱석의 미술사적 형식을 감안해 보더라도 구황동왕릉지의 피장자는 9세기대의 신라 하대 왕 중에서 비정되는 것이 합리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백제 왕릉의 조사와 정비 현황 검토 -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중심으로 - (The Status Review on Excavation and Maintenance of the Baekje Royal Tombs)

  • 김환희;이나은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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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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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0-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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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고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진행된 백제 왕릉(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부여 왕릉원, 익산 쌍릉)의 조사 현황을 종합·정리하고, 이러한 조사 내용들이 실제로 유적 정비에 반영되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정비 현황을 검토하였다. 먼저 백제 웅진~사비기 왕릉의 조사 내용을 시기별·유구별로 정리하고 조사 성과를 함께 살펴봄으로써 해당 왕릉들의 구조, 규모, 특징 등의 양상을 파악하였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진행되고 있는 재발굴 조사를 통해 일제강점기 조사 내용을 검증하고 보완하는 등의 추가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 정비 현황을 살펴보기에 앞서, 정비 기준을 정립하기 위하여 법령과 규정 등에서 명시한 정비 관련 내용을 발췌하였다. 주요 내용을 발췌한 결과 정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문화재의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는 '원형 유지'임을 확인하였다. 이에 따라 이러한 기준을 기반으로 정비 현황을 검토하였다. 고분이라는 유적의 특성상 매장 주체부가 지하에 위치해서 정비는 주로 상부 구조인 봉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다만 현재 봉분은 대부분 유실 또는 훼손되어서 원형이 어떠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부여 왕릉원에서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인 봉분의 규모 변화와 위치 이동 등이 확인되어 현재 정비된 모습이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파악하였다. 한편 쌍릉의 경우 봉분이 비교적 잘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기록상으로도 개변이 적은 편이어서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정비가 이루어졌음을 파악하였다. 정리하면 향후 고분의 정비는 '원형 유지'를 기본으로 하되 조사·연구 결과를 충분히 반영하여 원형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복원 여부 및 복원 정도를 결정한 뒤 '교육·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조선시대 왕릉 석인상(문인석, 무인석)의 크기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Size of the Stone Pillars(A Statue of confucian Official and A Statue of Military Officer) in the Royal Tomb of the Joseon Dynasty)

  • 김진명;최태월;이용선
    • 산업진흥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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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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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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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조선시대 왕릉 석인상의 크기에 관한 연구로서 분석 결과를 요약하면, 석인상의 문인석, 무인석은 1600년대에는 크기가 증가하였다가 1700년대에는 크기가 다소 감소하였으나 1800년대에는 석인상의 크기가 증가하는 것으로 평균 분석 결과 확인되었다. 조선 왕릉의 석인상은 당시 인물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그 시대 인물상의 전형을 살펴볼 수 있다. 왕릉은 일관성과 고유성을 지니고 있으며, 석인상의 크기에 관한 규범은 시대별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지배계급의 권위적 상징의 건축물로서 의식과 법제에 따라 왕릉이 축조된 국가적 공사였다. 조선시대 묘의 석인상 크기는 능의 석인상에 비하여 약 90cm의 차이로 작았으며 조선전기에 제작된 석물은 지위에 따라 석물의 크기에 차등을 두었다고 한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 왕릉 석인상의 연대별 석물 크기를 확인하는데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

세계문화유산 조선 왕릉의 능제조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Intervention of the Tomb's System in Joseon Royal Tombs, the World Cultural Heritage of UNESCO)

  • 이창환;김규연;김두규;최종희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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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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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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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고에서는 조선왕릉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진정성, 완전성을 담보하면서, 체계적인 보존 관리 활용 시 필요한 지식 정보 및 향후 추진해야 할 주요 이슈 등을 고찰 한 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능제복원의 경우 역사적 사실과 이에 근거한 실측, 분석, 평가 등을 통해 왕릉 공간의 완전성과 진정성을 높일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하여야 하며, 국제헌장 및 선언문, 국내헌장 및 역사적 건축물과 유적의 수리와 복원에 관한 일반원칙에 기초한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안전방재의 경우 문화재 보호법과 소방법 등 관련법령의 정비를 전제로, 화재전문가가 참여하여 각 왕릉의 실태 조사 후 화재발생 위험지역 구분 및 GIS 자료 구축 그리고 지형과 임상 등을 고려한 화재 발생 위험지도(Risk Map)의 작성을 포함하는 방재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활용의 경우, 왕릉이야기와 제례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적 활용, 왕릉 소재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관광적 활용,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산업적 활용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조선왕릉 조성 및 관리에 따른 식재유형 고찰 (A Study on the Type of Planting according to the Establishment and Management of the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 김은경;배준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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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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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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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의 목적은 조선왕릉의 조성 및 관리에 따른 식재 유형에 대해 문헌 기록을 분석하고, 향후 조선왕릉 수목관리를 위한 사적(史的) 자료로 활용하는데 있다. 조선왕릉 42기 중 40기를 대상으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비롯한 편년체 사료와 "능지(陵誌)" 중심으로 식재와 관련한 키워드를 분석하였다. 능역의 수목식재는 정식(定植)과 보식(補植)으로 나눌 수 있다. 정식(定植)은 능침 조성 당시 산릉도감(山陵都監)에서 진행한 식재를 말한다. 능역 조성 후 이루어지는 모든 식재는 추가 식재 즉 보식라고 할 수 있다. 조선왕릉의 조성 및 관리에 따른 식재 유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능역 조성 과정 중 조경을 위한 1차 식재가 이루어졌다. 둘째, 산릉 조성 이후 모든 식재는 추가식재로 능행 중 왕명에 의한 식재가 실행되었다. 셋째, 조선후기 산림황폐화로 인하여 능침의 수목 희소처에 추가식재가 이루어졌다. 넷째, 자연재해로 인한 수목 훼손 후 보토공사와 함께 수목식재가 행해졌다. 다섯째, 정조 22년 모든 왕실가족의 무덤에 정기적인 식재가 법으로 정해졌다. 본 연구는 조선왕릉 능제복원을 위한 역사경관림 관리의 사적고증으로서 향후 조선왕릉에 식재된 개별 수종과 능역 내 공간별 식재에 대한 문헌 고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신라왕릉 관계기사 검토(2) - 사료의 성격규명을 중심으로 - (Examination of Records related with Silla(新羅) Dynasty's Royal Tombs(2))

  • 이근직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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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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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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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본고는 $\ulcorner$삼국사기$\lrcorner$ 신라본기와 $\ulcorner$삼국유사$\lrcorner$ 왕력 및 기이편에 전하는 신라 능묘관련 기사들의 사료적 성격을 살펴 본 것이다. 그 결과 $\ulcorner$삼국사기$\lrcorner$ 신라본기의 표기방법은 당대의 장례절차를 외식하면서 기록한 것으로서 1차 자료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삼국유사 기이편은 왕릉이 조영된 후 일정기간이 지난 뒤 왕릉을 답사한 자에 의한 기록으로 2차 자료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왕력은 두 가지 방법을 혼용하고 있었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는 신라본기의 관련기사가 $\ulcorner$삼국유사$\lrcorner$의 왕력과 기이편의 경우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을 것으로 생각되나 그렇지 않았다. 또한 신라본기와 왕력 그리고 기이편은 편찬과 정에서 서로 다른 계통의 사료들을 저본으로 한 결과 같은 왕릉에 대해서도 일견 동일한 기록으로 생각되나 결과적으로는 다른 기사를 남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경명왕릉을 예로 하여, 왕력과 신라본기를 구체적으로 비교 검토한 결과 신라본기보다는 오히려 왕력의 사료적 가치가 높음을 증명하였다. 따라서 어느 특정 자료를 선택하고 나머지 관련자료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일방적인 판단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과 능묘관련 기사들은 현장조사를 통한 엄정한 사료비판을 거쳐야 함을 알 수 있었다. 즉, 능묘 발달과정 및 능묘주변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이해와 더불어 $\ulcorner$삼국사기$\lrcorner$$\ulcorner$삼국유사$\lrcorner$의 편찬과정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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