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오간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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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지문 오간수문의 암석기재적 분석과 손상도 평가 및 보존처리 (Conservation Treatment, Deterioration Assessment and Petrography of the Hongjimun Ogansumun (Five-arched Floodgates) in Seoul)

  • 이명성;김지영;이찬희;김영택;한병일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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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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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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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홍지문 오간수문은 홍지문에 부속된 홍예 수문이다. 이들의 주요 구성암석은 흑운모화강암, 홍장석화강암, 화강섬록암으로서 서울 인근에 분포하는 화강암류와 암석기재적 특징이 매우 유사하다. 오간수문에 나타난 손상현상은 주로 백색, 흑색 및 황색 변색이며 백화현상이 가장 심각하다. 5기의 홍예 수문에서 공통적으로 측벽의 변색이 천장보다 심하고, 천장에서는 종유석이 성장하고 있다. 오염물 분석 결과, 백화현상을 야기하는 물질은 다양한 형태를 보이는 방해석으로 판명되었다. 보존처리는 오간수문 전면에 대한 건식세정과 표면에 피각되어 있는 백화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고압세척 및 백화제거제 등을 사용하였다. 현재는 일차적인 보존처리가 완료되어 양호한 상태를 보이고 있으나 향후 오간수문의 훼손을 저감하기 위해서는 수문 상부에 배수로를 확보하여 수분의 이동과 배출을 제어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선시대 한양 청계천 가산(假山)의 버드나무 수책(樹柵)에 관한 연구 (A Case Study on the Willow Tree Fence(樹柵) in Gasan(假山) of Cheonggyecheon, Hanyang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 심순희;김충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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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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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8-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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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본 연구는 고문헌(古文獻) 기록과 도상자료(圖像資料)를 조사·분석하여 조선시대 수해 방지를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된 한양도성(漢陽都城) 내 청계천(淸溪川) 가산(假山)에 식재된 버드나무 수책(樹柵)에 대해 고찰하였다. 그동안 버드나무에 관련된 연구 사례는 있었으나 버드나무의 구체적인 활용사례와 그 역사적 배경을 조사·분석하여 그 원형적 가치를 파악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본 연구는 조선시대 청계천에 조성된 버드나무 수책의 사례를 확인하고 조성 배경과 지역적 특징을 조명함으로써 그 가치를 재해석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의 수재(水災)는 제일 큰 위해 요소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6~18세기 조선은 홍수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였다. 영조 시기에 이르러서는 도성의 사산(四山)이 모두 민둥산이 되었는데, 이는 잦은 홍수의 원인이 되었다. 1760년(영조 36)에 영조는 준천사업(濬川事業)을 통해 장마 때마다 넘치는 청계천 바닥을 준설하고 오간수문 양안에 조성된 가산에 버드나무 수책을 조성하여 수해를 예방하고 토양의 유실을 방지하는 조치를 시행하였다. 영조 시기인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광여도(廣輿圖)》 속의 <도성도(都城圖)>에는 오간수문(五間水門) 앞에 조성된 가산이 보이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에서 1760년(영조 36)에 버들을 양쪽 가산에 심었다는 기록을 검증하였으며, 1770년(영조 46) 제작된 <한양도성도(漢陽都城圖)>를 통해 18세기 후반에는 오간수문 근처의 가산 위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어 우거졌던 사실도 확증하였다. 또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 등의 고문헌 기록을 통해 청계천 준천사업과 버드나무 수책의 조성이 조선 전기인 15세기부터 조선 후기인 19세기 말까지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는 홍수 및 수해 방지는 물론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하는데 큰 바탕이 되었던 조선시대 버드나무 수책의 조성사례와 그 활용성을 조사함으로써 버드나무가 고유한 문화유산이자 전통 경관자원이었음을 알리고, 버드나무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데 의의가 있다.

역사기록에 의한 청계천의 극한홍수 분석 및 평가 (Analysis & Evaluation of extreme flood in Cheongye-stream by the historical records)

  • 장철희;김현준;노성진;이용준
    • 한국수자원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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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수자원학회 2009년도 학술발표회 초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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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51-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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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과거에 발생한 극한홍수기록을 역사기록에서 확인하고, 재해석하는 것은 근대적 관측기록에 100년 내외의 극한홍수 자료 기간을 획기적으로 확장할 수 있으며, 장기간의 정성적, 정량적 극한홍수기록으로부터 극한홍수의 발생 경향을 파악할 수 있고, 설계에도 반영하여 극한홍수에 안전한 기준을 작성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극한홍수의 변화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청계천 유역에 대한 극한홍수 사례분석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즉, 유역홍수유출모형 및 하천수리모형을 활용하여 청계천에서 발생한 과거 극한홍수를 평가하고 역사기록을 활용하여 공간적으로 해석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과거 청계천 유역의 토지이용 현황을 역사문헌자료를 이용하여 구축하였다. 과거 청계천의 토지이용은 산림, 주거지역, 하천, 도로, 공원 및 녹지 등 총 5개로 분류하였다. 과거 청계천의 극한홍수량 산정은 HEC-HMS를 이용하였으며 사용된 강우자료는 과거 측우기 우량 중 최대강우량인 1885년 7월 16일의 392 mm와 200 mm를 넘는 최저강우량인 1828년 7월 4일의 202 mm를 이용하였다. 또한, HEC-RAS를 이용하여 최하류인 오간수문에서 최상류인 송기교까지의 본류구간에 대하여 과거 청계천 유역의 홍수량에 따른 홍수위를 계산하였다. 모형의 입력자료로는 하도구간 및 하천단면, 조도계수, 경사, 상 하류단 경계조건 등이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청계천 개수계획평면종단도(1936년, 경성부), 준천사실(1760년), 동국여지비고(1870년), 조선지형도집성(1921), 청계천 유물 발굴조사보고서(2006)의 상세 하도 구간 자료 및 종단도 자료를 이용하여 모의 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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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계천 주변의 가산(假山)에 대한 연구 (A Study on Gasan of the Cheonggyecheon in the Joseon Dynasty)

  • 김묘정;정기호;김두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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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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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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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조선시대 청계천 주변의 가산에 대하여 그 위치와 장소를 확인하고, 근대화 과정 속에서 사라졌거나 변화된 모습의 현황을 확인해 보기 위한 것이다. 청계천 준설과 관련된 고문헌자료 및 고지도를 통한 문헌조사와 가산의 실제위치 및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현장조사로 진행되었다. 연구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시대 청계천 관련 고문헌과 고지도를 통해서 청계천 주변 가산 관련 내용 및 기록을 선별하였고, 주로 세종 대에 지류 및 세류의 준설작업과 영조 대의 대규모 준설에 의해 가산이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고지도에 나타난 청계천 주변의 가산 및 수림대의 위치를 파악하였으며, 그 위치가 오간수문을 중심으로 도성 안과 밖의 청계천 양안, 그 주변의 지류 주변임을 알 수 있었다. 셋째, 가산의 위치는 수선전도의 축척지도화방안을 토대로 고지도상의 가산을 현지도상에서 파악하고, 현지조사를 통해서 가산으로 표현된 장소들의 현황을 조사하였다. 연구결과 조선시대 청계천 주변에 조성된 가산은 대부분 19세기말 이래로 진행된 도시개발로 인해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 흔적이 일부 남아있음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