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연행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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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문화의 '바보' 캐릭터에 대하여 (A Study on Fool Characters in a Culture of Laughter)

  • 김경섭;한승진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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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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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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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근대화 이후 부정적으로 낙인이 찍힌 바보와 어리석음이 똑똑함과 진지함보다 더 심오하고 대안적일 수 있다는 지적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코미디나 개그에서 바보 캐릭터는 세계 여러 문화에서 웃음을 낳는 기본 도구로 이용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그동안 우리를 스쳐갔던 바보 캐릭터의 유형을 정리하여 그것이 웃음문화에서 어떤 방식으로 유형화될 수 있는지를 정리하고 연행예술로서의 특징도 밝히고자 한다. 바보들의 우스운 행동과 말이 일반적인 이분법인 지혜와 어리석음의 밖에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바보들이 드러내는 인식과 행동은 경험세계에서 진리라고 여기는 가치들을 뒤집으며, 일반적인 지식을 뛰어넘는 재치와 조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TV쇼에 등장한 수많은 바보들이 다 같은 바보가 아니었다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바보도 바보 나름인 것이다. 바보 역시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리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연행예술에서 바보는 등장인물과 관객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 성격이 드러난다. 등장인물 스스로가 자신을 바보라고 인정하는 경우와 바보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있고, 관객들이 등장인물을 바보로 여기거나 바보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토대로 연행예술에 나타나는 바보 캐릭터를 4가지로 유형화하여 각각의 특징들에 대해 논의하였다.

양주별산대놀이 상좌·옴중춤의 전승양상 고찰 (A review on the transmission aspect of Sangjwa chum and Omjung chum in Yangju Byeolsandae Nori)

  • 박인수;김지훈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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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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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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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고는 양주별산대놀이의 주요배역 중 하나인 상좌와 옴중의 '춤'을 중심으로 전승양상을 살펴본 연구이다. 먼저 1929년부터 1942년까지 조종순, 정한규, 박준섭, 김성태 연희자를 토대로 조사된 자료들을 살펴본 결과, 현재 거드름춤으로 유명한 두 배역 모두 타령장단의 깨끼춤만 연행하였다. 상좌의 경우 다섯 종류의 깨끼사위를 중심으로 연희자의 재량에 맞춰 자유롭게 연행되었다. 제2과장에서 연행된 옴중은 춤보다는 재담이 주가 되는 배역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연행을 살펴본 결과 두 배역은 물론 다른 배역의 춤에도 큰 변화가 보이진 않았다. 이는 당시 일제의 억압으로 인해 제한된 환경 속에서 탈놀이의 명맥만을 유지해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해방이후부터는 김성대를 중심으로 탈놀이의 복원에 많은 힘을 쓰게 된다. 한국전쟁 중에도 연희자들은 탈놀이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연희자들을 길러내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 종전 이후 살아남은 연희자는 박준섭, 박상환, 김성태, 이장순이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탈놀이 복원을 꾸준히 이어갔다. 이시기부터 두 배역에 거드름춤의 연행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상좌는 그간 타령장단에 행하던 벽사의식무가 염불장단에 연행되었고, 의식무였던 깨끼춤은 매우 활발한 춤으로 변모된다. 옴중도 용트림이라 불리는 거드름춤의 연행이 추가되어, 춤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이때까지 거드름춤의 연행을 사위로 구분하지 않고, 행위만을 서술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춤사위가 완벽하게 정립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 지정이후, 상좌춤의 연희자가 박상환에서 이병권으로 넘어가면서 이전의 연행을 중심으로 한층 더 정리된다. 당시 상좌가 연행한 거드름춤은 연잎이 연행하는 거드름춤의 구조와 같았으며, 본 구조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춤의 순서를 정립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옴중춤은 박준섭 이후의 연행부터 기존에 비해 장삼을 쓰는 전개가 조금 더 순차적으로 정리되었다. 정리된 옴중춤의 연행구조도 노장춤의 연행구조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였다. 두 배역 모두 연잎춤과 노장춤의 구조를 직접 분석하여 안무하였다기 보다는 연희자가 춤을 연행해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구조가 차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두 배역 모두 오랜 기간 보존해오는 과정에서 연행되는 장단과 춤사위가 늘어났으며, 사위가 장단에 맞게 정리가 이루어져 춤이 더욱 깔끔해졌다. 여러 연희자들의 노력 덕분에 상좌춤은 '상당한 경지에 오른 연희자만이 출 수 있는 춤'으로 옴중춤은 '양주별산대놀이를 대표하는 춤'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1920년대 마술의 유행과 그 여파 (New Trend called 'Magic' and its aftereffects in 1920)

  • 신근영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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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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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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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근대를 맞아 외국의 공연예술이 조선에 소개되었을 때, 조선의 연희자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자국화하기 위해 노력한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일제 강점기에 발행된 여러 자료 속에는 우리 공연예술의 일정 부분을 담당했던 마술 공연과 이를 현재화하기 위해 애썼던 조선인 연희자의 흔적을 다수 찾을 수 있다. 본고에서는 각종 자료 속에 편린처럼 남아있는 조선인 마술사들의 등장을 알리고 그들의 연행양상을 밝히는 것에 일차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 외래의 공연예술 중 마술은 그간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공연예술로 소개되었으며, 많은 호기심과 관심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마술의 옛 용어는 환술(幻術) 혹은 환희(幻戱)인데, 우리 공연문화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분야였다.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때 초빙된 일본인 마술단 쇼쿄쿠사이 덴카쓰(松旭齋天勝) 일행은 경성협찬회의 후원과 ≪매일신보≫의 선전으로 마술의 대명사로 등장했다. 이들이 연행하는 마술은 신문물의 상징이면서 대중오락의 전성기를 알리는 예비신호와도 같았다. '마술'을 연행하는 '배우'의 위치는 전통연희 담당자들에 큰 자극이 되기도 했다. 당시엔 마술을 기술(奇術)이라고 불렀는데, 다동기생조합의 기생들이며 무명의 조선인 연희자들이 이 기예를 배워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이후 1920년대 중반이 되면 자기 이름을 걸고 마술단을 조직해 공연에 나선 조선인들이 여럿 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러시아 유학 출신의 김문필과 천도교의 후원을 받은 박창순, 김완실 등이 있다. 이들은 조선인 마술사로서 이름을 알렸고 전국 순회 공연에 나서서 조선 관객의 갈채를 받았으나, 극단 운영이 오래가지 못했다는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한편 마술을 일종의 사기수법에 연결시켜 사회문제로 비화되는 사건도 종종 나타난 것이 1920년대이다. 다만 조선인 마술사의 등장이 새로운 공연물에 대해 적극 임하는 조선인 연희자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불교의식무용 챰의 제의적 연행 관념과 구조 -헤미스 쩨츄 챰을 중심으로- (The Ritualistic Concept and Structure of Cham in Hemis Tsechu)

  • 허동성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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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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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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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라마교 사원축제 시에 연행되는 챰(cham)은 티벳은 물론 인도, 네팔, 부탄, 몽골에 전승되어 온 불교 의식무용이다. 챰의 유형과 양식, 제차는 지역과 종파에 따라 변별되나 공통적으로 불법(佛法)에 거스르는 악을 응징함으로써 불법의 승리와 세상의 안과태평을 경축하기 위해 연행된다. 본고는 인도 북단의 라닥(Ladakh)의 헤미스(Hemis)사원에서 라마교의 개조 빠드마삼바바($Padm{\bar{a}}sambhava$; 연화생(蓮華生))의 탄신을 경축하기 위해 행해지는 쩨츄 챰을 대상으로 그 제의적 연행 관념과 구조를 고찰하였다. 그를 통해 신성현현과 제의적 공양, 시각화 명상, 만달라로서의 제의적 공간, 양식화된 연행의 제의적 함의, 점강적 공연 구조, 공연 동기의 대승성 등의 특성을 확인하였다.

해외 한인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 읽기 - 하와이 한인농악단 활동을 중심으로 (Exploring the Cultural Identity of Korean Community Abroad Focusing on the Activities of Korean Farmer's Bands in Hawaii)

  • 김묘신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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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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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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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이 논문은 미국 하와이주에 거주하는 한인공동체를 중심으로 1970년대 이래 나타난 세 개의 한인농악단을 통해 표현되는 이민 1세의 세대별 특징과 정체성이 농악이라는 공연예술 매개체를 통해 어떻게 발현되고 변화되었는가에 주목한다. 와히아와 한인농악단(Wahiawa Korean Farmer's Music Band), 칼리히-팔라마 한인농악단(Korean Farmer's Music Band at Kalihi-Palama Immigrant Service Center), 하와이 한인농악단(Hawaii Korean Farmer's Music Association)은 각각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에 형성된 농악단으로 각 농악 단체의 형성과 연행의 역사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시대적 특성을 반영한다. 오랜 기간 활발히 활동했던 와히아와 한인농악단과 칼리히-팔라마 한인농악단은 더이상 운영되고 있지 않으며, 현재는 1990년대에 만들어진 하와이 한인농악단이 활동하고 있다. 세 단체를 비교해보면 전체적인 변화의 흐름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친목이 목적인 음악연행 단체에서 음악이 목적인 단체로의 변화이다. 둘째 서로의 음악적 차이를 조절하여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단체에서, 음악적 위계질서를 따르는 단체로, 나아가 음악적 향상을 추구하는 단체로의 변화이다. 셋째 각 단체는 무속적 원형(prototype)과 관련이 있는 단체, 농악만을 연행하는 단체, 농악과 사물놀이를 겸하여 연행하는 단체라는 특징을 보여준다. 세 단체의 차이는 구성원 모두가 이민 1세이기는 하지만 모국에서의 농악에 대한 경험이 다른 것과 사물놀이라는 음악 장르에 대한 인식과 수용이 다른 것에 근거한다. 농악을 연행하는 것이 단체의 친목에 중점을 두는 반면 사물놀이의 연행은 음악적 성취에 목표를 둔다. 나아가 이러한 변화는 농악이라는 문화적 매개체를 통해 나타나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이상 외부에 알리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즐거움을 통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으로 변화되었음을 시사한다.

황해도굿 군웅거리의 예술치료적 분석 (Art Therapeutic Analysis of Gunung-geori of Hwanghaedo-gut)

  • 이지홍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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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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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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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한국의 굿은 한국인의 원형적 심성을 매우 예술적으로 그리고 치료적으로 잘 풀어낸 한국 고유의 예술치료의 원형이다. 이에 연구자는 황해도굿 군웅거리와 예술치료적 이론과의 상관관계를 비교 분석하였다. 첫째 한국의 굿이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행위 된다는 점에서 보웬의 가족치료 이론과 비교했으며, 한국의 굿이 가진 집단적 치료방식이 한 개인의 심리·정서적 문제를 가족관계체계,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치료하고자 한 보웬의 이론과 맞닿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둘째, 연구자는 만신이 망자의 혼을 입고 군웅을 노는, 굿의 연행방식이 갖는 치료적 의미에 대해 분석하였다. 굿 현장을 연구하는 많은 연구자들이 조상거리가 주는 치료적 효과에 대해 직접 경험했으나 그 치료적 효과를 이론적으로 입증하는 연구는 부족하였다. 이에 연구자는 프로이트의 전이 개념과 연극치료의 역할입기, 에릭슨과 고프만의 극적 놀이 개념을 접목시켜 황해도굿 군웅거리를 분석하였다. 만신의 망자로의 극적 전이는 황해도 군웅거리의 치료성을 입증하는 핵심 개념이다. 연구자는 이번 연구를 통해 한국의 굿의 한국 예술치료의 원형으로서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한국의 굿이 갖는 치료성에 대한 보다 심도 있고 폭넓은 연구가 절실함을 깨닫게 되었다.

경북 동해안별신굿 맞굿의 전승 양상과 의미 (Transmission Pattern and Meaning of Gyeongbuk East Sea coast Byeolsingut matgut - Focusing on changes in social perception of gut and shaman)

  • 마소연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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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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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9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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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맞굿은 주로 10년 두리로 굿을 거행하는 영덕과 울진의 해안 마을에서 연행된다. 맞굿은 1)무당 맞이, 2)당신(堂神)에게 고함, 3)무당소개와 패기 보기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맞굿이 연행되는 이유는 마을에 따라서 당주가 없거나, 당주가 있더라도 큰굿을 연행할 능력이 부족할 경우 굿을 연행할 무당을 섭외해 맞이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당주무의 역량에 충분하더라도 별신굿은 많은 수의 무당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 무당을 섭외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항상 맞이해야 할 무당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일부 경북 해안 마을에서는 그 무당들을 대상으로 하는 맞굿이 연행된다. 별신굿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듯이 맞굿 역시도 변화하고 있는데, 2000년대 이후 맞굿은 별신굿의 전체 일정이 갈수록 짧아지면서 2)당신에게 고함 3)무당소개와 패기보기 절차가 사라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맞굿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맞굿 연행 담당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연행의 주체로서 부족하나마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마을에서 점차적으로 농협 풍물단 등 외부에서 사물놀이패를 초청하여 맞굿을 연행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맞굿은 속(俗)의 영역에 있는 무당들을 성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일종의 통과의례로써 연행하게 된다. 또, 맞굿은 무당패의 능력을 확인하는 절차로도 활용되었다. 그러나 굿에 대한 인식이 전통 예술로 변화하고, '굿박사' 어르신들도 얼마 남아 있지 않다보니 점차 맞굿은 마을 외부의 존재인 풍물단과 무당패가 흥겨운 분위기를 만드는 정도의 절차로 변화하고 있다. 또 굿의 주관을 대부분 무집단에게 일임하고, 굿의 의미와 목적을 모른 채 연행되다보니 굿거리의 형식조차도 온전히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경북 동해안 별신굿의 주요한 특징으로 거론되어 오던 맞굿은 이제 과거의 그 목적과 기능을 점차 잃어가고 있으며, 이제는 한바탕 신나는 놀이판을 형성하는 굿거리로 변화하고 있다.

경산자인단오제 연행의 분야별 문제와 종합적 개선방안 (Problems of Each Category of Gyeongsanjain Dano Festival and Solutions)

  • 이병옥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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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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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8-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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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경산자인단오제는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 '한장군놀이'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경산자인단오제'로 명칭이 확대 변경된 영남지방의 지역축제이다. 그러나 처음에 일부분만 지정함으로 말미암아 각 분야별로 연결성이 없는 혼합체처럼 전승되었고, 고증에서도 소외되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경산자인단오제의 주된 분류는 큰굿, 여원무, 호장굿, 한묘제, 자인팔광대 등 5분야로 나뉘어지는데, 이제 분야별로 문제를 살피고자 한다. 1. 큰굿 1) 큰굿의 절차와 내용의 문제 : 대구·경산지역 굿의 특성 2) 현재의 굿연행자 외에 지역 전통굿을 연행할 수 있는 무녀의 유무 3) '큰굿'의 명칭의 문제 : 예, '한장군굿' 아니면 그대로 '큰굿' 4) 큰굿 전후에 영신과정과 송신과정이 없는 단오제의 문제와 복원방안 2. 여원무 1) 여원무와 여원화의 본질 2) 여고생 수백명이 하는 매스게임의 문제 3) 여원무의 기원과 전승에 대한 고형논의 3. 호장굿 1) 호장굿의 배역구성의 변천과정 2) 호장굿의 동선구조와 성격 3) 호장굿의 명칭과 성격의 문제 4. 자인팔광대놀이 1) 창작한 마당극과 유사성 문제 2) '팔광대'라는 명칭 문제 3) 일반적인 탈놀이의 진행구조와 다른 점 4) 춤사위와 몸짓이 영남지방 탈춤과 다른 특성 이상과 같은 경산자인단오제 연행의 종합적인 개선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산자인단오제의 복원은 전통성이 확실한 인접 단오제와 별신제의 연행방식을 벤치막킹(bench-marking)하자는 것이다. 둘째, 경산자인단오제의 중심 콘텐츠(contents)는 '한 장군굿'으로 축제의 주도 역할은 굿이 담당해야 한다. 셋째, 한국 축제의 구조적 원리를 수용하고, 연행방식과 연행원리를 전통 연행물과 일치시켜야 한다. 넷째, 경산자인단오제는 예술과 민속과 축제가 종합적이고 총체성을 띤 문화제인 만큼, 각 분야를 연계하고 유기적으로 연행 시나리오(scenario)를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다섯째, 올바른 전승과 책임있는 연행을 위해서는 분야별 예능보유자와 전수교육조교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 여섯째, 전통축제의 재현과 더불어 다양한 축제 레퍼토리(repertory)를 찾아내고 개발하고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관광상품 개발과 체험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의 스펙터클(spectacle)화해야 한다.

동해안굿 전승자 학습 변화의 의미 (The Implications of Changes in Learning of East Coast Gut Successors)

  • 정연락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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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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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4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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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동해안굿은 대한민국의 동해안 일대 해안선을 따라 강원도 고성 일대에서 부터 부산지역에 이르기까지 어촌마을에서 행해지는 굿이다. 동해안굿은 거의 세습무를 중심으로 연행되는데, 이 논문은 동해안굿의 세습무 집단 중 김석출 무계의 학습 양상을 세습무와 학습무로 구분하여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변화하고 있는 동해안굿 학습 양상이 가진 의미를 규명하는 데 의의가 있다. 세습무는 집이 곧 교육 현장이었다. 어릴 때부터 굿판에 따라다니며 소리며 춤을 연행하게 해보아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를 이어 무업을 계승해오던 세습무 가계에서 더 이상 자손들이 무업을 이어받지 않게 되면서 무업의 계승과 학습 방식에 변화가 발생했다. 1980년대 이후부터 굿이 가, 무, 악이 어우러진 종합예술로 인정받아 국가 및 각 시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고, 예술대학 등에서 전공교육과정으로 편성되어 무속을 전공한 새로운 학습무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들 학습무는 대학, 동해안별신굿보존회, 굿이 진행되는 현장 등에서 동해안별신굿의 연희 능력을 체계적으로 전승받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세습무가 학습무들을 받아들여 무업을 계승해나가며 굿의 연행 집단과 굿을 수용하는 마을 사람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과거와 달리 굿이 한국전통예술의 원형으로 가무악 총체적 학습의 산물로 인정받으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게 됨으로써 무당의 사회적 지위와 개인적 자존감이 매우 높아지게 되었다. 과거 천시 당하던 무당이 아닌 대내외적으로 인정받는 전통예술인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굿 현장이나 마을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 지위나 대우가 많이 달라졌다. 마을 구성원들도 무집단의 세대가 변화함에 따라 과거와 달리 새로운 학습적인 요소들이 첨가된 것에 대해 인정하고 수용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마을단위에서도 전통적인 굿의 형식이나 제의만을 주장하기보다 마을 주민 모두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축제 형식이나 다양한 굿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다. 변화하는 굿의 흐름과 신진 세대의 적응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굿판이 점점 축소되는 현실 속에서 동해안굿은 다른 지역 굿에 비해 아직까지는 활발히 연행되고 있다. 힘겹게 동해안굿을 보존해 온 세습무의 뒤를 이어 학습무들이 활발히 유입되고, 연행 집단이 굿의 전통을 보존하는 한편, 굿을 예술 콘텐츠로 활용하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습무들은 세습무로부터 배워 온 무속의 학습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후대에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전승하고자 준비하고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동해안굿은 마지막 세습무의 대를 이어 학습무들이 전통을 계승하고 시대에 맞춰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무당굿의 축제 가능성과 방향 모색 (Seeking for a Festival Possibility and Direction of Mudang Gut)

  • 홍태한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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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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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9-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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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이글은 무당굿이 가지고 있는 축제적인 본질에 주목하여 무당굿의 현대 축제화의 가능성을 모색한 글이다. 무당굿의 여러 구성요소나 마을굿의 연행 과정을 볼 때 무당굿이 축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굿판의 사정을 고려할 때 무당굿이 진정한 축제가 되는 데에는 다소 문제가 있는데, 무엇보다도 무당굿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 무당굿이 가지고 있는 축제성을 외면하게 한다. 아울러 무당굿이 개인의 기복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자신은 무당굿을 하면서도 그를 감추려는 이중적인 시선이 무당굿의 축제성을 약화시킨다. 마을굿에서도 잘못된 행정관청의 지원과 무형문화재 제도의 편중된 지원 등이 겹쳐 점점 일회적 행사굿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무당굿이 진정한 축제가 되는 길은 요원하다. 하지만 무당굿을 종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 현상 내지는 놀이문화로 바라보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축제에서 구색 맞추기로 무당굿을 연행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는 공연물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공연물은 여느 공연물과는 성격이 다른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무당굿은 관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무당의 반응에 공감하면서 직접 참여하는 연행인을 필요로 한다. 구경꺼리로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배우로 참여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할 때 무당굿의 축제화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