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시대복식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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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집을 통해 본 조선시대 복식명칭 연구: 유해서를 중심으로

  • 김은정;강순제
    • 한국복식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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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복식학회 2004년도 제29회 정기총회 및 춘계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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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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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복식명칭은 복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써, 이에 대한 고찰은 많은 문헌 자료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본 연구는 $\ulcorner$한자학습서에 기록된 복식용어의 시대적 의미변화에 관한 연구$\lrcorner$에 이은 후속연구로서, 조선시대에 편찬된 유해류 역학서인 <역어유해>.<동문유해>.<몽어유해>.<위어유해>.<방언유해>에 기록된 복식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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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동아시아 훈의(熏衣)문화와 향재의 교역 연구 (A Study on Perfuming Clothes and the Incense Trade of East Asia in Goryeo Dynasty)

  • 하수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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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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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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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훈의문화는 동아시아에서 공유한 문화이다. 해양 실크로드의 번영과 향재의 교역은 향 문화를 발달하게 해준 직접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향 문화의 발달 시기는 교역의 시작시기와 유사하게 나타난다. 훈의(熏衣)는 향을 태운 연기로 향을 입히는 용법이다. 중국은 한대(漢代)부터 합향을 제조하였으며, 훈롱(熏籠)을 사용한 기록이 있어 훈의향을 합향으로 제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당대(唐代)에 향료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천금요방』, 『향보』, 『향승』 등에 훈의향의 제조법과 훈의 기술이 나타나고 『계해우형지』와 『제번지』 등의 서적을 통해서도 향료의 교역국과 교역품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훈의향의 제조법과 용법이 기록된 문헌과 훈의에 필요한 도구들을 통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한국에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향이 소개되었다. 『매신라물해』의 기록을 통하여 일본과의 향 교역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훈의향이라는 교역품이 기록되어 있어 신라시대부터 훈의를 시행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향재의 교역이 융성하였던 고려시대에는 인삼과 함께 사향을 수출하였다. 왕실에서는 송(宋)으로부터 하사받은 향을 사용하였으며, 부인들은 향낭류의 패식향을 선호하였다. 패식향의 선호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조선시대에는 훈의의 기록을 찾기 어렵다. 조선시대에는 패식향의 사용, 향로에 피운 향의 냄새가 간접적으로 의복에 스며드는 방식, 그리고 옷장에 의향을 넣어두는 간접적인 방향을 선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매신라물해』의 기록을 통하여 신라를 통해 향을 교역한 사실을 알 수 있다. 헤이안 시대 궁정 소설 『겐지이야기』를 보면 당시 귀족들의 향 문화와 훈의문화, 향 교역을 추정 할 수 있다. 일본의 훈롱은 필수 혼수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그에 따라 실용적인 형태로 발달하고 장식성이 가미되었다. 베트남 남부의 점성국이 훈의를 시행한 사실은 『제번지』에 직접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베트남 북부의 교지국이 훈의를 행하였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과 복식 문화가 같다는 기록과 훈의를 행하였던 국가인 중국과 점성국에 인접하였다는 점, 그리고 향료의 원산지라는 점에서 훈의문화를 공유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한·중·일, 그리고 베트남은 훈의를 시행하는 문화를 공유하였다. 이를 통해 훈의향의 목적과 발달 시기, 훈의향의 제작, 훈의법, 훈의 도구, 훈의를 하는 사람의 성별 그리고 사용한 향재에서 공통성을 찾을 수 있다.

패션과 예술의 간계에 대한 이론적 고찰 -화가와 패션, 패션디자이너와 예술의 관계를 중심으로- (Theoretical Inquiry into the Relationship between Fashion and Art -Focusing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rtist and Fashion, and between the Fashion Designer and Art-)

  • 신주영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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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8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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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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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This study begins by establishing the theory that paintings serve as a visual documentation of a particular era and record the ideal fashions and customs about dress behavior through the costumes represented in them and examines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fashion and art, focusing on the influence of art on fashion, as well as that of fashion on art, for both painters and fashion designers. To attain the goal of the study, the selected objects of study are written references and dresses represented in paintings produced in the 19th century. Painters who were the subject of documentation created or popularized new fashion styles before the concept of 'fashion designer' was introduced in history. In order to capture and represent the ideal beauty of certain period, painters understood the important role of fashion. Their work not only included the designing of costumes or accessories for the sitters, but also the spreading of new fashion styles by showing the sitters wearing them. Study of the mutual relationship between fashion and art grew more vigorous among many intellectuals in a variety of fields beginning in the 19th century. The standing of fashion was elevated and the concept of the 'fashion designer' was introduced and the interest in the themes of a specific style or the background of a trend increased during this time period. Many contemporary fashion designers created dresses inspired by the costumes represented in paintings. The result of this study which focuses on the relationships between fashion, artist, fashion designer and art is that connection between fashion and art is closely and firmly formed. For several hundred years, painters were the creators as well as promulgators of fashion and fashion designers, from the 19th century until today, have obtained their creative inspiration from art.

기록과 실물을 통해 본 조선시대 현훈(玄纁) (A Study on Hyeonhun(玄纁) through the Records and the Excavated Relics of the Chosun Dynasty)

  • 장인우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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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6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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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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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meaning, the location, and the construction of Hyeonhun (玄纁) through the records and relics of the Chosun Dynasty. Hyeonhun means farewell gifts for the dead. Hyeonhun was very personal and was considered to be essential ritual supplies. it was newly made for not only first funeral(初葬), but also the second funeral(改葬), was individually made as well as in the couple funeral(夫婦合葬). the Hyeonhun ritual was performed while dressed in a simabok(緦麻服). The ritual started with washing of the hands(盥手) and deep bowing(再拜) twice. The Hyeonhun was placed on the lid of the inner coffin among the 3 coffins in Chosun tomb's way. The Hyeon was placed on the right side and the Hun on the left side of the lid.(玄右纁左). Hyeonhun are comprised of one, two, five of ten pieces. Most of the excavated Hyeonhun were two pieces : Hyeonhunsokbaek(玄纁束帛) consist of ten pieces, of which six were Hyeons and four were Huns. The records indicated that the materials used to make Hyeonhun was silk, but the excavated relics satin and twill, single gauze in the excavated relics advanced than the records.

기록과 실물을 통해 본 조선시대 습신(이(履)·혜(鞋)) - 김원택 일가 출토 습신 중심 - (A Study on Supsin(Shoes for dead) in 18th Centuries through the Analysis of the Historical Records and Excavated Relics)

  • 장인우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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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5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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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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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Supsin (shoes for dead) in late Chosun dynasty through records and excavated relics. The research records in this study were two types which one was official records as The Annals of The Chosean Dynasty(朝鮮王朝實錄), Dairy of the Royal Secretariat(承政院日記) ets and the other was private records as Korean literary collections of confucian scholars in classical chinese(文集) ect. as for relics use two types of materials that one is the excavated supsins and the other is Research Reports of Excavated Costumes published from museums. Through the Collections, we can notice that shoes were several types which Wunhae(雲鞋), Danghae(唐鞋) Onhae(溫鞋) Wunli(雲履), Taesahae(太史鞋) in Chosun dynasty. these were worn in different ways according to wearer's gender, the social status, daily life or rituals, inside or outside in palace. Wunhae and Wunli was the most ceremonial shoes for man and Onhae was the most ceremonial shoes for woman. the dead man worn the Wunhae or Wunli for Supsin and the dead woman worn Onhae. we could see they use the most ceremonial shoes for supsin. through the records, we could see the change that Women's Supsin was written for the first time in 18th Saraepyenram(四禮便覽). men's Supsin was recorded as '履', while Women's Supsin was recorded as '鞋' in Saraepyenram. the reason for making difference between man and woman in costumes(男女有別). and the excavated Supsin showed that the dead worn more ceremonial shoes than records. these changes mean one of the results for making korean style rituals from chinese style(國俗化).

정조대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의 관직자 복식 고증 (Features of the Costumes of Officials in the King Jeongjo Period Seojangdaeyajodo)

  • 이은주;김영선;이경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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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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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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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1795년 윤2월 12일 서장대에서 행해진 군사훈련을 그린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를 중심으로 관직자의 유형별 복식과 유형별 복식의 구성에 따른 특징을 고찰하였으며 고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서장대 안팎에서 왕 가까이에 위치한 관직자는 모두 34명인데 당상관 27명, 당하관 7명이었다. 34명 관직자의 복식 유형은 모두 3종으로 갑주·융복·군복으로 분류되었는데 그 중 갑주 착용자 12명은 모두 당상관이었고, 융복 착용자 5명은 당상관이었으며, 군복 착용자는 당상관 11명과 당하관 6명이었다. 둘째, 갑주의 형태 고증은 말 타기에 적합한 여반 장군의 갑옷 유물과 『무예도보통지』의 갑주 그림을 참조하고, 착용의 실용성을 고려하여 갑옷의 구성품을 정하였다. 갑주의 구성품은 투구, 갑의, 갑상, 호항, 호액, 비갑에 골미를 추가하였다. 갑주 색상은 <서장대야조도> 갑주에서 가장 표현 빈도가 높은 홍색과 녹색으로 고증하였다. 셋째, 당상 융복의 구성은 호수를 장식한 주립, 남색 철릭, 홍색 광다회, 정, 수화자로 고증하였다. 넷째, 군복 구성은 안을 올린 전립, 동다리, 전복, 요대, 전대, 수화자로 고증하였다. 군복에서 당상과 당하의 직물차이는 문양의 유무에 있었는데 당상관은 운보문 직물을, 당하관은 문양이 없는 직물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당상관은 장식품의 세부 재료에서 옥과 금, 은을 사용하였다. 그 외에 무기는 시복, 환도, 등편, 비구와 깍지 등을 갖추었다. 정조대 기록에는 다양한 색의 협수가 보이므로 당상관과 당하관의 동다리와 전복 색상은 다양한 배색으로 고증하였다. 이상의 고증 결과를 반영하여 콘텐츠 제작을 위한 복식의 시각화 자료로 제시하였다. <서장대야조도> 관직자 복식의 고증 결과를 반영한 시각화의 기본 원칙에서 3D 콘텐츠 제작이나 실물 제작이 가능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시대와 신분에 따른 형태·색상·재질의 견본, 각 복식과 지물을 패용한 앞·옆·뒤 모습을 제시하고 색상은 RGB와 CMYK로 제시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피갑(皮甲)의 특징에 관한 고찰 (Main Features of Leather Armor from the Joseon Dynasty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황진영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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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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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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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피갑 유물의 전시와 안전한 보호를 위한 보존처리를 진행하기에 앞서 갑옷의 특징과 종류를 파악하여 안전하고 정확한 보존처리의 기초자료를 위해 이론적 연구를 실시하였다. 연구 결과 첫째, 갑옷의 명칭은 색, 재료, 신분, 갑옷의 부위까지 함께 나열하여 세부적인 특징의 차이에 따라 기록하였다. 명칭을 표기하는 순서는 대부분 색상과 직물, 다음으로 철이나 가죽 등의 재료가 나열되며, 앞부분은 의(衣), 뒷부분은 갑찰의 재료, 또는 신분만으로 명칭을 기록하였다. 둘째, 갑옷에 사용된 재료는 직물, 가죽, 금속이며, 철갑(鐵甲), 피갑(皮甲), 지갑(紙甲), 엄심갑(淹心甲), 단갑(緞甲)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셋째, 갑옷의 구조와 착장방법에 따라 크게 4가지의 유형으로 나뉘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피갑 4점은 그 중 임진왜란 이후부터 19세기 말, 20세기 초까지 입혀진 보편적 양식인 포형(袍型) 갑옷 양식에 포함되며 보군(步軍)이 착용하였던 갑옷임을 확인할 수 있다.

1302년 아미타불복장 소화문협힐견(小花紋��纈絹) 염색기법 재현 (Reproduction of the Dyeing Technique Used for the Small Flower Pattern Clamp Resist Dyed Fine Tabby in Amitabha of 1302)

  • 최정임;심연옥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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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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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4-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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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협힐(��纈)은 직물을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조각한 목판 사이에 끼워 넣은 후 염색하여 무늬를 표현하는 방염(防染) 기법이다. 통일신라 흥덕왕 9년 복식금제(服飾禁制)에는 육두품녀(六頭品女)와 오두품녀(五頭品女)의 여러 가지 복식 품종에 협힐 사용을 금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협힐 직물이 당시 널리 사용되었으며 협힐 기법도 통일신라시대 또는 그 이전에 완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문헌 자료에는 용어만이 언급되었을 뿐 염색 기법이나 정의에 대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유물도 고려시대의 것만 극히 소량 남아 있어 협힐의 유형이나 특징을 알 수 없다. 공예 기술은 각 나라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요인에 의해 변화하며 주변국과의 교류를 통해 발전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의 문헌 및 유물을 조사 분석하여 협힐 유형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협힐은 국가별 특징보다 무늬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색의 가짓수에 따라 단색(單色)과 다색(多色)으로 나누어지며, 무늬 구조에 따라 단독(單獨) 좌우대칭(左右對稱) 상하좌우대칭(上下左右對稱)으로 분류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중국과 일본에서 전승 및 재현되고 있는 염색 기법의 사례를 연구한 결과 직물에 무늬가 잘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용하는 색의 가짓수와 무늬의 특징에 맞추어 협힐판을 양각(陽刻) 투각(透刻) 음각(陰刻)으로 각각 다르게 조각하여야 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무늬와 색이 온전히 남아 있는 유일한 유물인 1302년 아미타불복장 소화문협힐견을 실험 대상으로 삼고 염색 기법 사례 연구에서 얻어진 기초자료를 근거로 실증적 실험을 통해 협힐 기법을 재현하였다. 본 논문은 추후 계속 연구할 협힐 기법 재현에 활용될 기초자료를 구축하고, 전승되고 있지 않는 협힐 기법의 재현을 시도하여 기법의 특징을 확인한 것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 그리고 현대적인 무늬 염색 기법과 접목시켜 한국적 무늬 염색의 세계를 넓히며 재창조하는 데 보탬이 되길 기대한다.

조선시대 공신 초상(功臣肖像)의 관복(제2기) 고찰 (A Study on the Official Uniform (2nd period) of Meritorious Vassals' Portraits in the Joseon Dynasty)

  • 김미경;이은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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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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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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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조선 전기 적개공신(1467, 1476 초상 제작)과 정국(1506)·정난공신(1507), 위사공신(1545) 초상까지를 아청색 흑단령 차림이 등장하여 정착하는 '관복 제2기' 공신 초상으로 규정하고 적개공신 손소, 오자치, 장말손 초상 3점, 그리고 정국·정난공신 유순정과 홍경주, 정국공신 이우와 유홍의 초상 4점, 총 7점을 대상으로 분석하였다. '예복 흑단령' 차림의 적개공신 초상의 사모는 성종 초 높아졌던 모체가 다시 낮아졌고 모정은 둥글게 표현되었다. 너비가 넓은 타원형의 사모 양각에 무늬는 표현되지 않았다. 아청색 단령과 답호, 철릭에도 무늬가 표현되지 않았다. 단답호와 철릭의 색상이 각각 녹색과 홍색으로 통일되었으며 단령과 답호의 무는 '안팎주름무'로, 신발은 백화로 표현되었다. 적개공신 초상은 책록 시의 품계가 아닌, 초상 제작 시의 품계로 그려졌음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시복 흑단령' 차림의 정국·정난공신 초상은 사모의 경우, 적개공신 초상에서 낮아진 사모 모체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모정 부분이 조금 좁아지고 앞으로 휜 형태로 변하였으며 사모 양각은 전체적으로 너비가 균일한 타원형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사모 양각에도 무늬가 표현되지 않았다. 당하관 초상의 복식에는 무늬가 표현되지 않았으나 당상관 초상의 복식에는 운문(雲紋) 등이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또 단령은 안감 없는 홑단령으로 표현되었다. 당상관 초상에서는 홍색 답호와 녹색 철릭을, 당하관 초상에서는 녹색 답호와 남색 철릭이 표현되었다. 따라서 당상·당하 신분에 따라 받침옷의 색상이 구별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단령과 답호에는 '안팎주름무'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신발은 흑화로 표현되었으며 흉배와 품대는 공신 책록 당시의 품계가 반영되어 있었다. 한편 위사공신 초상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명종대의 기록화를 통해 중종대의 단령 제도와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이상으로 살펴 본 제2기 적개공신 공신 초상을 통해 흑단령 차림을 공신 초상의 관복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는 점, 공신 초상 제작 시기의 품계를 초상에 반영하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국공신 초상 이후 복식에 무늬가 표현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흑단령의 무늬 유무로 당상·당하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표현된 관복 모습은 당시의 관복 규정이나 관행과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조대(宣祖代) 공신초상(功臣肖像)의 복식 고찰 (A Study on the Costumes of Meritorious Vassals' Portraits in the reign of King Seonjo)

  • 이은주;김미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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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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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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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연구는 현전하고 있는 선조대 공신 초상화를 임란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초상화에 표현된 복식 양상을 초상화와 관련 유물, 문헌자료를 토대로 살펴본 것이다. 공신초상은 공신 책록 당시에 그려진 공신화상도 있었으나 후대에 그리거나 이모된 것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해당 시기의 모습을 어느 정도 보이고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연구 대상에 포함시켰다. 공신초상은 사모와 단령, 품대, 흑화로 구성되는 의례용 단령인 흑단령 차림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흑단령 관복을 분석하기 위해 사모의 높이와 모정의 형태, 양각(兩角 사모뿔)의 형태와 문양, 단령의 문양과 무의 양식, 단령의 옆선 처리방식과 흉배 품대, 단령의 받침옷인 답호(??)와 철릭[帖裏]의 색상, 흑화 등을 살펴보았다. 임란 이전 광국 평난공신 초상화는 한응인(韓應寅) 초상화(1점)가 분석 대상이었는데 사모는 조선시대 사모 중 가장 높은 높이였으며 사모뿔에서는 당상관 이상만 사용할 수 있는 운보문(雲寶紋)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흑단령은 '밖주름무'가 달린 만자운문(卍字雲紋)의 아청색 단령에 운안흉배(2품)가 달렸다. 허리에는 학정대(종2품)를 띠고 있었는데 학정대는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에 기록되어 있는 자헌대부(정2품) 품계와 일치하지 않았다. 당상관용 홍색 답호와 녹색 철릭의 단령 받침옷, 그리고 흑화 등을 확인하였다. 임란 이후 호성 선무 청난공신 초상화는 이항복(李恒福) 초상화를 포함하여 18점을 분석하였다. 사모의 높이는 이전 시기보다 낮아졌고 운보문의 사모뿔은 상대적으로 넓어 보이는 형태였다. 흑단령은 '뒤뻗침무'가 달린 만자운문의 아청색 단령이었으며 흉배와 품대는 공신 책봉 당시의 품계와 거의 일치하였으나 2점(신잡 김새신)의 예외가 있었다. 따라서 공신초상은 책봉 당시의 품계로 그리는 것임을 재확인하였다. 흑단령의 받침옷 중 녹색 답호(11점), 남색 답호(4점), 다홍색 답호(3점)가 확인되었으며 철릭은 남색(10점), 녹색(6점), 홍색(1점), 유청색(1점)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삼공신의 흑단령 받침옷으로는 임란 전과 동일한 당상관용 홍색 답호와 녹색 철릭으로 표현되는 것이 옳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