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시(詩) 세계(世界)

검색결과 6건 처리시간 0.018초

여헌(旅軒) 시(詩)에 있어서 '경(敬)'의 이념과 형상화 방식 (A study for 'Kyung(敬)' ideology and figures of Yeheon(旅軒)'s poem)

  • 박종우
    • 동양고전연구
    • /
    • 제41호
    • /
    • pp.37-59
    • /
    • 2010
  • 이 논문은 여헌(旅獻) 장현광(張顯光)의 시에 있어서 '경(敬)'의 이념이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는가에 대한 시론적(試論的) 고찰이다. 우선 예비적 고찰로서 경(敬) 개념의 사적 추이와 범주를 정리하면서 여헌이 생각한 '경(敬)' 이념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여헌이 정이(程?)에서 주희(朱熹)까지 이어지는 도학사적(道學史的) 맥락에서 실천 이념으로서 경(敬)을 강조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본고는 이러한 경(敬) 이념의 시적 형상화를 '청정(淸淨)의 추구'와 '기상(氣像)의 강조'로 나누어 해명하고자 하였다. 잔잔하고 맑은 냇물과 같은 깨끗한 덕성(德性)을 가진 사물은 여헌 시에 있어서 중요한 제재이다. 여기서 냇물의 '고요함'과 '청정함'의 이미지는 '경(敬)' 이념의 시적 형상화와 깊이 연계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깊은 산 속과 같은 속세와 분리된 무구(無垢)의 세계에 대한 희구(希求)도 그와 같은 삶의 태도를 형상화한 것으로 여헌 시의 특징적 일 국면을 이루고 있음을 밝혔다. 다음으로 혼탁한 속세를 거부하고 청정한 세계의 추구하려는 시적 화자와 더불어 고고(孤高)한 기상(氣像)의 강조도 여헌 시에 자주 보이는 특징임을 확인하였다. 대, 소나무, 학(鶴), 산 등 '고고(孤高)'의 이미지에 잘 부합하는 제재들이 여헌 시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이 고고(孤高)한 기상(氣像)의 강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와 더불어 이러한 주제의 시에 나타나는 고양된 시적(詩的) 흥취(興趣)와 그에서부터 비롯된 비약적 상상력 등은 여헌의 시 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단서임을 밝혔다. 이제 본격적인 연구와 함께 여헌의 시세계를 회재(晦齋)나 퇴계(退溪) 등 여타 도학파 문인들의 시세계와 비교하고 변별점을 고구(考究)하는 것이 남은 과제이다. 비슷한 시기의 도학자라고 하더라도 시대적 여건과 삶이 궤적이 상이했던 점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란의 시대에 고향을 떠나 이주를 거듭했던 여헌의 경우 16세기에 출사(出仕)한 사림(士林)이나 재지적(在地的) 기반(基盤)이 확고했던 사족(士族)들과는 문학적 사유나 형상화 방식에는 분명히 편차가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회와(悔窩) 안중관(安重觀)의 시(詩)에 나타난 자아(自我)와 세계(世界) (The self-consciousness and the world-recognition in Huewa Anjung-gwan's poetry)

  • 강혜규
    • 고전문학과교육
    • /
    • 제15호
    • /
    • pp.245-264
    • /
    • 2008
  • This study considers Huewa悔窩 Anjung-gwan安重觀's self-consciousness and the recognition of the world. Anjung-gwan resents that fact that Qing淸 rules over China. He insists that Chosun朝鮮 must remain faithful to Ming明. But Chosun served Qing in those days. He holds strongly to his belief until his death. So he chooses living in retirement in his life. In Anjung-gwan's poems, we can see that a certain circle of Chosun Confucianists believe in Sojunghwa小中華, which is small-Sinocentrism. In the first half of the eighteenth-century, some Chosun Confucianists feel sad about the situation that stops them from realizing their ideals. But they take pride in natural beauty and configuration of Chosun. And they pay attention to the life of Chosun masses. They recognize Chosun, which is Hwa華, has to keep self-respect to the last.

맥루한의 미디어 이론에 근거한 '이상(李箱) 시(詩)'의 재해석 (Reinterpretation of Lee-Sang's Poems based on McLuhan's Media theory)

  • 정수경;한광파;명세화;강경규;김동호
    • 한국HCI학회:학술대회논문집
    • /
    • 한국HCI학회 2008년도 학술대회 2부
    • /
    • pp.582-586
    • /
    • 2008
  • 맥루한의 사상서는 미디어의 권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가 말하는 -하나의 감각에 편중되지 않은- "촉각적 글쓰기"는 바로 이상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국 구체시의 시초로 자리 잡은 이상의 작품은 현대에 와서 재조명되고 있다. 난해하고 복잡한, 정신분열증의 결과물로 발간 이후 끊임없이 화제가 되었던 그의 시는 재조명 과정에서 시각예술의 단편으로 실험적 정신과 한국 다다이즘의 실체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이상 시의 진정한 의미는 회화적 측면 혹은 감성적 측면에 치우치지 않은 하나의 감각이 다른 감각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감각의 확장' 이라는 미디어의 관점으로 그의 세계를 재해석 하고자 한다.

  • PDF

신숙주(申叔舟) 시(詩)에 나타난 인생이상(人生理想)의 전변(轉變) (The Change of Iife's ideal in the Poetry by Shin Suk-Ju)

  • 유호진
    • 동양고전연구
    • /
    • 제36호
    • /
    • pp.163-202
    • /
    • 2009
  • 이 논문은 15세기 후반 한시의 특성을 조명하고자 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신숙주 시에 나타난 시인의 의식을 고찰한 것이다. 신숙주의 시는 작가의 문학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처신, 소위 '변절'의 문제로 인해 연구자들의 관심권 밖에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신숙주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위해서도 그의 시는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신숙주의 시는 세조의 정변이 일어났던 시기를 중심으로 양분할 수 있다. 그의 전기 시는 시인이 자족적인 세계 속에서 충만한 자긍심과 여유로운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의 경세이상은 실은 불후(不朽)의 공명(功名)을 성취하려는 영웅의식(英雄意識)의 소산이었다. 이 영웅의식(英雄意識)과 평생 그의 의식을 지배했던 순명의식(順命意識)에 의해 그는 세조의 정변에 동조하게 된다. 그러나 후기 시는 공명(功名)을 성취했던 시인의 삶이 그 자신에게 정신적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또렷이 보여준다. 그는 세조의 정변에 동조함으로 인해 배태된 양심의 괴로움을 호소하였고 자신이 성취한 공업(功業), 나아가 인생 자체가 허무함을 토로하고, 세상에서 말하는 시비(是非) 진위(眞僞) 선악(善惡) 등이 주관적이고 허망한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하였다. 더 나아가 세상 만물 자체도 환영(幻影)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이러한 인식은 불가의 공(空) 사상(思想)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러한 사유 과정을 거쳐 시인은 허명(虛明)한 마음과 한가로운 삶에 대한 지향을 노래하게 된다. 신숙주의 시에 나타난 영웅의식, 불가적 사유, 허명(虛明)한 마음에 대한 지향 등은 서거정을 비롯하여 15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주요 문인들의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사유들이다. 결국 양심의 괴로움과 인생에 대한 허무감을 넘어서려 했던 시인의 진지한 모색은 15세기 관료문인들의 인생태도와 그들의 문학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당대 주요 문인들이 신숙주 문학의 전통을 이었다는 성현(成俔)의 진술은 의례적인 수사가 아니었던 셈이다.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남종화(南宗畵)의 예술심미 고찰 (The foundation and Characteristic on the Aesthetic of EuiJae Huh BaekRyun' Namjonghwa)

  • 김도영
    • 문화기술의 융합
    • /
    • 제6권3호
    • /
    • pp.1-8
    • /
    • 2020
  • 호남 남종화의 상징적 거목이자 호남문화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의재 허백련(1891~1977)은 진도출신으로 소치 허련의 방계이며, 미산 허형의 제자이다. 전통 남종화 정신과 그 기법에 충실한 화격(畫格)을 자득(自得)·자화(自化)하였다. 의재(毅齋)는 광주에서 '연진회(鍊眞會)'를 발족시켜 후진양성을 도모하였고, 해방 후 무등산 아래 산장을 짓고 다도인으로서, 그리고 민족정신을 강조하고 실천했던 사회교육자로서의 또 다른 면모도 보였다. 그는 한시와 화론에 조예가 깊었고, 서예에 있어서 독특한 심미경지를 구현하는 등 시(詩)·서(書)·화(畵) 삼절(三絶)의 전형적 서화가였다. 의재(毅齋)는 특히 산수화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의 화풍은 예황풍(倪黃風)의 갈필(渴筆)로써 기존 화법을 준수하면서도 문기(文氣)를 중요시 여겼으며, 탈진습기(脫盡習氣)하여 새로운 실험정신으로 끊임없이 도전했다. 의재(毅齋)의 작품세계는 화풍이나 추구하는 관점의 변화를 작품에 사용한 낙관(落款)을 기준으로, 고법(古法)과 사의간원(寫意簡遠)의 숙련기였던 '의재(毅齋)'시대, 실경(實景)과 남화(南畵)의 융합 화풍으로 절정기를 보였던 '의재산인(毅齋散人)'시대, 청담평안(淸談平安)한 신품경지(神品境地) 구현으로 독자적 화풍을 이룬 '의도인(毅道人)'시대 등 총 3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의재(毅齋)의 공헌은 동양회화의 지류인 한국회화문화의 정통 남종화에 대한 한 축을 이어왔다는 미술사적인 평가를 넘어 남도화의 보편적 정신과 지역적 특성을 바탕한 실경과 정서를 살린 창의적 계승을 통하여 현대를 잇는 조종(祖宗)이었음을 인식하고, 그의 예술정신과 전통에 대한 열정과 실험정신을 계승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