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보성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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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암댐 유역의 민요(民謠)(I)

  • 이소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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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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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9-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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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
  • 보성군에서 수집한 민요들의 의식·노동·유희요(謠) 별(別)로 정리하였다. 의식요(儀式謠)로는 걸메당·상여·독경(讀經)소리가 실렸다. 전래(傳來) 혼인식(式)에 있어서의 가마소리인 걸메당소리는 전국의 몇 곳에서만이 가창자가 남아 있는 희요(稀謠)이다. 상여소리(처음에 운구 들어 울릴때의 긴소리, 길 갈 때의 가난보살과 어가리넘자, 비탈길 오를 때의 나무아미타불, 달구소리)는 전남지방에 널리 전파되어 있는 것과 동계(同系)이다. 노동요(謠)는 주로 농요(農謠)<광의(廣義)>가 수집되었다. 소동패전갈을 수록하였다. 모심기곡(曲)은 공(共)히 일반 농부가 쪼임에 비하여 모찌기와 논매기곡(曲)(<표2>참조)은 다양성을 띄웠다. 산아지로고나곡(曲)은 전(全) 면(面)에 두루 퍼져 있으며 논맬 때, 장원질소리, 소동패노래에도 쓰인다. 산떨이(올라간다)는 고흥군의 것과 같다. 터 다지는 노래로는 얼럴럴 상사도야를, 상량노래로는 어유아 상량이야를 부른다. 줄메고 나가는 노래의 받음구는 위야허허 또는 상사뒤여뒤여(회촌면)이다. 유희요(謠)는 남사당의 덜미 (꼭두각시극)노래인 떼루와 제나난실을 싣고 그 위에 치마·줌치·사위·강도령·이노래 등을 실었다.

주암댐 유역의 민요(民謠)(III)

  • 이소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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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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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9-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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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9
  • 화순군을 구(旧)한말까지의 행정구역을 참고로 하여 동복방면, 화순방면, 능주방면으로 나눈다면 남면의 수몰지역은 동복면, 이서면, 북면과 더불어 동복방면에 든다. 동복방면은 섬진강유역의 문화권인데 비해 화순, 능주지방은 영산강유역의 문화권이 된다. 상여소리는 위의 세방면이 서로 큰 차이가 없다. 회닫는 소리가 경기도나 강원도에 비해 현저히 미발달(未發達)된 것은 몇 년 후에 보통 이장을 하는 관계로(토질상, 관습상) 봉분을 다시 파헤쳐야 하기 때문에 회닫을 필요성이 적은 탓으로 해석된다. 북면 원리엔 정월보름에 액막이로 하는 달구질소리가 있다. 모찌는 노래가 따로 없고, 잘 부르질 않는다. 바닥풀소리가 있다. 화순군의 대표적인 논매는 노래는 논매는 양산도이다. 수몰지역의 논매는 노래로는 양산도 및 산아지로고나, 사호소리, 세월이 가 있다. 산아지로고나는 섬진강유역의 대표적인 논매는 노래이며 사호소리는 능주지방 및 화순읍, 동면녹음에선 나오지 않았다. 반면에 세월이는 화순, 능주방면에서 나왔고 동복방면 녹음때엔 안나왔다. 화순군의 논매는 노래로는 그 밖에 아리시고나 마디여, 사하뒤여, 매화타령, 매화가, 노방가, 방애, 더덜기, 난초타령 등이 있다. 아리시고나 마디여는 영산강유역(함평 무안 나주 영암군)이 본고장인 것으로 보이는 논매는 노래로 화순군에서는 북면에서만 나왔다. 장원질 노래로는 사하디여, 풍년가, 두려소리, 뚜룸마, 일반농부가, 양산도, 산아지로고나, 성주, 덩기, 얼쭝덜쭝, 사호소리 등이 쓰인다. 줄메고가는소리로는 "위야허허"가 보성군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이며 그 밖에 능주면 만인리의 어기야자자뒤여 가 있다. 기타의 노동요로는 주로 광의의 농요가 수집되었으며 작도소리, 나무내리는소리, 맷돌노래 등이 주목된다. 씨름판 노래로는 썸바타령, 개골, 논매는 양산도 곡(曲)등이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요(動物謠)로 거무, 이, 천룡와깨비 등이 수집되었다. 그 밖에 판굿노래, 팽이치기, 연날리기, 등잔가세 등이 주목된다. 논매는 노래는 매화가를 제외하곤 거의가 멕이고 받는 가창방법이며 [표 3]의 46곡(曲)중 1/4 정도만 꺾는 음의 효과(効果)가 있는 곡이다. 솔(라)도레미'의 선법인 것은 44%에 달하며 그중 7할이 기음의 4도윗음인 도에서 종지하되 이를 퇴성한다. 기타에 대해서는 [표 3, 4, 5] 참조.

판소리 패트론으로서의 대원군과 박유전 <적벽가>의 변모 (Pansori Patronage of Daewongun and His Influences on Park Yujeon's Jeokbyeokga)

  • 유민형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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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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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3-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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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이 논문은 판소리의 발달 과정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 요소 중 판소리의 '패트론'의 비중을 점검하고자 시도되었다. 문화예술의 향유계층인 동시에, 후원자로서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인 패트론은, 서양 예술의 역사를 분석함에 있어서는 그 존재가 적극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여러 장르의 예술에 있어서 패트론의 영향력은 언제나 중요하게 연구되었다. 판소리의 패트론은 좌상객으로 통칭되는 양반층이었는데, 판소리가 양반층 사이에 애호되면서 왕실 패트론도 생겨나게 된다. 흥선 대원군은 판소리 애호가로 유명했으며, 또한 판소리 명창의 패트론으로서 후원했다. 대원군은 통인청대사습을 통해 판소리를 후원함과 동시에, 판소리의 선발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패트론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운현궁을 중심으로 활동한 가객 안민영과 함께 판소리 명창으로 박유전을 후원하였다. 대원군이 아직 세도를 잡기 전 전주에서 머무를 때 전주의 토호였던 백진석에게 도움을 받았다. 대원군은 세도를 잡게 되면서 전주에 통인청대사습 운용에 관여 하였고, 백진석의 청을 들어서 전주에 판소리 감상용의 저택인 학인당(學忍堂)을 지을 수 있게 하였다. 대원군이 특히 후원했던 판소리 명창으로 박유전을 들 수 있다. 박유전은 대원군의 운현궁에서 좌상객들의 영향아래, 자신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판소리의 텍스트와 음악을 변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박유전은 순창출신의 명창으로 서편제의 비조로 불렸고, <심청가>와 <적벽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제자로는 이날치를 들 수 있고 초기 박유전의 소리는 이날치를 통하여 서편제로 전승되었다. 박유전이 한양으로 와서 운현궁에 머무르게 되면서 그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소리는 창곡과 사설에서 많은 변화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박유전의 판소리는 이원성을 띠게 된다. 대원군은 박유전 판소리의 변화과정에서 크게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박유전이 운현궁에서 다듬어 정제화한 판소리가 이른 바 강산제이다. 박유전이 한양으로 오기 전의 소리인 서편제와, 한양에서 다듬어 새롭게 완성한 강산제와는 완전히 구별될 수 있을 정도로 음악, 사설, 그리고 이념적 기반에서 차별화되어 있다. 그 변화의 모습을 동편제 및 서편제 <적벽가>와 강산제 <적벽가>의 비교분석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강산제 <적벽가>는 사상적으로는 유교적인 이데올로기를 일관적으로 띠게 되며, 조조에 대한 야유와 비하의 수위가 동·서편제 적벽가에 비하여 훨씬 약화되어 있다. <삼국지연의>에서 장수들의 전투장면을 사설에 재인용하여 포함시킨 부분과, 한시의 적극적인 인용을 늘린 것 또한 양반좌상객의 취향에 부합하여 변화한 부분이다.

벼 재배기간중 전남동부지역 농촌하천의 수질과 분포초종 (Water Quality of Streams and Riparian Vegetation at Rice Cultivation Area of Eastern Jeonnam)

  • 이도진;조주식;국용인;안호근
    • 한국환경농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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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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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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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전남 동부권에 위치하는 농경지 주변 4개 하천에 대하여 벼 재재기간을 전후한 시기에 하천수질의 특성과 분포하는 초종을 조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하천수질 특성은 다양하였으며 조사기간 중 각 하천수의 pH는 $6.5{\sim}8.3$ 범위였고, EC는 벌교천($162{\sim}4,910\;{\mu}S/cm$)에서 가장 높았으며 보성천($114.7{\sim}286.6\;{\mu}S/cm$), 송광천($74.8{\sim}147.4\;{\mu}S/cm$), 이사천($61.6{\sim}82.1\;{\mu}S/cm$)순이었다. 조사기간 중 총질소 함량은 보성천($1.9{\sim}7.4\;mg/L$), 벌교천($2.1{\sim}3.9\;mg/L$), 송광천($2.4{\sim}3.4\;mg/L$), 이사천($1.7{\sim}2.6\;mg/L$)순으로 호소수질 환경기준 1등급(0.2 mg/L)과 농업용수 수질기준(1 mg/L)을 모두 초과하였다. 그 밖의 대부분 조사항목 Ca, Mg, Na, $Cl^-$ 등)은 하천에 따른 함유량 고저 차이는 있었으나 모내기를 전후한 시기에 영양염류 함량이 가장 높게 나타나 보성천에서는 5월, 송광천과 이사천에서는 6월이었다. 4개 하천의 조사지점에서 관찰된 초종수는 모두 16과 30종이었으며 송광찬 보성찬 이사찬 벌교천에서 각각 18종, 19종, 15종 및 5종으로서 다년생은 17종, 일년생과 2년생은 13종이 출현하였다. 침수성 초종은 검정말 말즘, 물수세미, 부유성 초종은 개구리밥과 좀개구리밥, 추수성 초종은 갈대, 고마리, 미나리, 여뀌, 줄 등이 관찰되었다. 물가와 주변에서는 개구리자리, 개피, 달뿌리풀, 돌소리쟁이, 물억새, 미국가막사리, 바늘골, 방동사니대가리, 뱀딸기, 사마귀풀 삿갓사초 살갈퀴, 선피막이, 소리쟁이, 쇠방동사니, 여뀌바늘, 큰도꼬마리, 토끼풀, 환삼덩쿨, 황새냉이 등의 20종이 관찰되었으며 그 중 고마리, 소리쟁이, 환삼덩쿨은 하천의 모든 조사지점에 출현하였다.

고흥현 자기소(磁器所) 은촌(犾村)의 위치 탐색과 운대리 가마터 성격 검토 (Investigation of the location of Jagiso eunchon in Goheung-hyeon and review the characteristics of Undae-ri kiln)

  • 성윤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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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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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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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록된 고흥현 자기소 은촌은 운대리 가마터와 관련되어 연구성과가 집적되었다. 그 이유는 운대리에서 27개소의 분청사기 가마터가 확인·조사되어 그 수량이나 밀집 분포 면에서 중요 유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종실록』 지리지에 '현 서쪽(縣西)'이라는 방위와 부합되지 않아 명쾌한 해결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즉 운대리 가마터가 현(치소)의 서쪽이 아니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본 논문에서는 고흥현 자기소 은촌(犾村)에 대해 논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고흥현 치소는 『세종실록』 지리지 편찬연대인 1424~1432년 전에 이미 현 보성군 조성면 우천리 고내마을 일대로 이동되었기 때문에, 자기소 또한 보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치소의 위치는 자기소·도기소를 비정하는데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흥현 사방경계 기록 중 남쪽과 동쪽의 경우 현재 옥하리에 있는 흥양현 읍성은 『세종실록』 지리지와 부합되지 않는다. 하지만 보성 조성면 우천리의 조양현성은 영조척으로 환산하게 되면 사방경계 기록과 유사한 결과값이 나와 이곳이 『세종실록』 지리지 단계의 고흥현 치소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자기소 은촌(犾村)의 의미구조는 동물+소리인데, 이와 유사한 구조의 지명이 보성 득량면 정흥리에서 확인되었다. 바로 호음동(虎吟洞)으로, 이 마을 남쪽에서 분청사기 가마터가 조사되었고, 여기서 '내섬(內贍)'의 '섬(贍')자 중 아래 획에 해당되는 '언(言)'자가 있는 분청사기편이 확인됨에 따라, 공납자기 생산이 이루어졌다고 판단되어 고흥현 자기소 은촌은 보성 정흥리 분청사기 가마터로 추정하였다. 남은 문제는 고흥 분청사기 핵심 연구 대상인 운대리 가마터의 성격이다. 최근 운대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각종 제기(祭器)를 근거로 고흥현에서 흥양현으로 확대 개편되는 1441년 2월 이후 1450~70년대에 운대리 가마터가 자기소 기능을 하였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지방 군현(郡縣)의 수령이 주관하는 국가의례인 주현제(州縣祭)에 이용된 자기 제기가 운대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상준(象尊), 희준(犧尊)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하였던 7호 가마터 주변에서 수습된 '예(礼)'명 분청사기편 역시 달리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예(礼)'명은 관사명이기 때문에 공납자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대리 가마터가 1441년 2월 이후 1450~70년대에 흥양현의 자기소 역할을 하였다면, 이 편은 자연스럽게 운대리 가마터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