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미술전시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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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적 회로로서의 예술 미디어: 폴 라이언의 비디오아트 (A medium of Art as the Relational Circuit: Paul Ryan's Video Art)

  • 임산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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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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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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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고는 비디오아트의 초기 역사에서 비디오가 내재하고 있는 사회 변형적 가치를 문화적 실천으로 구체화하고 학제 융합적인 학습과 연구의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의 관계적 회로의 심미화를 고안한 폴 라이언(1943-2013)의 예술 세계의 역사성과 미학적 함의를 검토한다. 이를 위하여 제2장에서는 1969년에 폴 라이언이 처음으로 참여했던 미술갤러리 전시 "창조적 미디어로서의 텔레비전"에 출품한 작품을 분석한다. 이 비디오설치 작품에서 라이언은 비디오를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으로서 제안하며 사이버네틱스의 '피드백' 개념을 실험한다. 이어서 제3장에서는 예술가 콜렉티브 '레인댄스 코퍼레이션'과 잡지 "래디컬 소프트웨어"에 참여한 라이언의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에 대한 담론적 활동에 주목하였다. 이 시기 라이언은 비디오를 사이버네틱스의 확장을 위한 도구로 간주하였다. 마지막으로 제4장에서는 '환경적 현실에 대한 공유된 지각'에 기초한 생태적 접근법의 개발을 주로 다루었으며, 비디오 미디어가 사회의 변화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라이언의 인식을 확인하였다.

6.25 전쟁기 국립박물관 소장품의 국외반출 과정에 대한 신고찰 (Reevaluating the National Museum of Korea's Evacuation and Exhibition Projects in the 1950s)

  • 김현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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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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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8-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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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1950년대 국립박물관의 대표적 성과는 6.25전쟁기 소장품의 부산 피난과 1957년 미국순회전시인 '한국국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연구에서는 이 두 사건을 개별적 사안으로 다루었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사료들이 발굴되면서, 이 두 사건은 1950년대 국립박물관을 관통하는 하나의 사안이라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도 두 사건이 어떤 전개 과정을 통해 하나의 사안으로 이어지는지를 고찰하고자 했다. 국립박물관의 피난을 1950년 12월부터 1951년 5월 사이에 단행된 4차례의 소장품 이전으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부산 피난은 국립박물관 전체 피난사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부산 피난 이후 전개된 미국 본토로의 반출 계획과 뒤이은 하와이 호놀룰루로 반출 추진이 문화재 피난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1950년 12월의 부산 피난은 중국군 개입으로 인한 긴급대피이면서 미국으로 이송하기 위한 선행 조치였다. 부산 도착 직후 미국반출 논의가 상당히 진척되었으나, 미국 정부의 반대로 중단되었다. 그렇지만 1951년 3월부터는 미국 본토가 아닌 하와이 호놀룰루로 반출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피난 문화재의 국외 반출 문제는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정부가 하와이의 사립 기관인 호놀룰루미술관으로 피난 문화재 반출을 도모하면서부터 문화재 피난의 성격은 모호해졌다. 처음에는 피난 문화재 전량을 호놀룰루미술관에 보관 즉 소개(疏開)하려 했다. 그러나 여론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게 되자, 소개 개념을 완전히 제거하고 국가 홍보를 위한 미국 순회전시로 반출목적을 변경해가며 3차례에 걸쳐 국회에 동의를 요청했다. 정부는 호놀룰루미술관으로 반출이 '국보파동'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중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렵게 국회의 승인을 받은 이후 문화재 국외 반출 성격이 급변하였다. 그동안은 문화재 국외 반출 문제의 중심에는 늘 호놀룰루미술관장 그리핑이 있었다. 그런데 제 3차 국회동의요청안이 통과된 피난 문화재 국외반출은 그리핑이 아닌 미 국무부가 주도하는 미국의 대한문화정책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이때부터는 국외반출의 목적에서 '소개' 개념이 완전히 지워지고 오로지 전시로서 개념화된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1957년 개최된 한국국보전이었다. 지금까지는 호놀룰루로의 반출문제가 거의 연구되지 않아 1950년 부산 피난과 1957년 한국국보전 사이에는 오랜 시간적 공백 혹은 단절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두 사건은 마치 별개의 사건으로 인식되어 왔다. 호놀룰루로 반출 문제는 국립박물관의 문화재 피난사 전모를 보여주는 사건이면서, 국립박물관의 부산 피난이 한국국보전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핵심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