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문화유적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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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큰독골 유적 출토 인골 조직 및 외부 토양의 세균 군집의 비교연구 (Comparative Study of Soil Bacterial Populations in Human Remains and Soil from Keundokgol Site at Buyeo)

  • 김윤지;김수훈;권은실;조은민;강소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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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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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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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인골과 인골 주변 토양에 분포하는 세균의 군집구조를 비교하기 위해 부여 오수리 큰독골 유적에서 발굴된 조선시대 회곽묘 인골 중 상대적으로 시료 상태가 좋지 않은 4호 인골과 상태가 양호한 5호 인골 및 주변 토양에서 DNA를 추출하였다. 추출한 DNA의 16S rDNA 염기서열 분석을 수행한 결과, 4호 인골에서 구축된 319개 클론은 ${\alpha}$, ${\beta}$, ${\gamma}$-Proteobacteria, Acidobacteria, Actinobacteria, Planctomycetes, Chloroflexi, Chlorobi, Bacteroidetes, Firmicutes 그리고 novel gene group 등 총 11개의 계통군이 확인되었다. 인골 주변 토양에서 구축된 462개 콜론은 ${\alpha}$, ${\beta}$, ${\gamma}$, ${\delta}$-Proteobacteria, Acidobacteria, Actinobacteria, Bacteroidetes, Verrucomicrobia, Planctomycetes, Chloroflexi, Chlorobi, Firmicutes, Thermodesulfobacteria, Fibrobacteres, Gemmatimonadetes, Verrucomicrobia 그리고 novel gene group 등 총 16개 계통군이 확인되었다. 5호 인골에서 구축된 271개 클론은 ${\alpha}$, ${\gamma}$-Proteobacteria, Acidobacteria, Actinobacteria, Planctomycetes, Chloroflexi, Bacteroidetes, Firmicutes 그리고 novel gene group 등 총 10개의 계통군이 확인되었으며, 인골 주변 토양에서 구축된 497개 클론은 ${\alpha}$, ${\beta}$, ${\gamma}$-Proteobacteria, Actinobacteria, Acidobacteria, Chloroflexi, Firmicutes, Gemmatimonadetes, Planctomycetes, Bacteroidetes 그리고 Verrucomicrobia 등 총 11개 계통군으로 확인되었다. 4호, 5호의 모든 시료에서 Actinobacteria 계통군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alpha}$-Proteobacteria 계통군 또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인골은 주변 토양 세균의 군집에 의해 광범위하게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본 결과는 인골의 보존과 관리를 위한 중요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아산 탕정지구 외골유적 출토 고려 기와의 재료과학적 특성과 제작기법 (Material Characteristics and Making Techniques of the Goryeo Roof Tiles from Oegol Site of Tangjeong Area in Asan, Korea)

  • 김지영;이찬희;조선영;김란희;이호형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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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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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9-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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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아산 탕정지구 외골유적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와편은 외면과 속심의 색상에 따라 회색 계열, 적황색 계열, 회색-황색 계열로 세분된다. 각 그룹별 와편들은 특징적인 가비중, 흡수율, 작열감량 및 기질의 유리질화 정도를 보이나, 혼입광물의 함량과 분포 및 화학조성은 출토유구와 색상에 관계없이 비교적 균질하게 나타났다. 또한 모든 와편의 지구화학적 거동특성과 점토화 정도는 유사하며, 유적지에서 수습된 토양과도 거의 동일한 진화경향을 보였다. 와편의 소성온도는 회색 계열은 $950{\sim}1,050^{\circ}C$, 적황색 계열은 $800{\sim}900^{\circ}C$, 회색-황색 계열은 $900{\sim}950^{\circ}C$의 범위를 갖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를 통해 와편은 유적지 일대에 분포하는 점토질 토양을 채취하여 비짐광물을 거의 첨가하지 않은 채 다양한 소성환경에서 제작되었으며, 태토의 가공과 정선 과정은 비교적 표준화된 공정이 적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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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명암리 출토 인골의 고유전학적 연구 (A Paleogenetic Analysis of Human Skeletal Remains from the Myeongam-ri Site, Asan in Korea)

  • 지상현;김윤지;정용재;서민석;박양진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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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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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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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오늘날 고대 DNA 분석을 통한 고유전학 연구는 인류학, 고고학, 생물학 분야의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본 연구는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명암리 유적 9지점에서 발굴조사 된 고려 말에서 조선시대 초기 분묘 출토 인골 20개체를 대상으로 고유전학적 연구를 수행한 결과를 보고한 것이다. DNA 추출 및 PCR 과정에서 연구자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DNA 오염을 모니터링하기 위하여 모든 실험과정은 무균작업대에서 시약과 소모품을 고온멸균 및 자외선 처리하여 진행되었으며, 음성대조군을 설정하여 결과의 신뢰성을 검증하였다. 실리카 추출 방법에 의하여 출토 인골로부터 DNA를 추출한 후, 미토콘드리아 DNA(mtDNA)의 과변이지역을 9지역으로 나누어 PCR법에 의해 부분 증폭을 실시하였다. 증폭산물에 대한 염기서열 분석을 통하여 과변이지역의 변이형을 동정하였으며, 이를 현대 한국인의 결과와 비교하였다. 아산 명암리 소규모 지역집단의 옛사람 인골 20개체를 대상으로 한 이번 연구에서 기대이상의 다양한 mtDNA haplogroup이 분석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오랜 세월 동안 생활문화 중심지로 자리 잡은 아산 명암리 유적 주변의 개방적인 지역적 조건과 이곳에 거주했던 개체군의 유전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으며, 아산 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많은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 성과가 이 결과를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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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고촌지구 문화유적지의 용도해석을 위한 지질학적 접근 (Geological Approach for Use Interpretation of a Cultural Heritage Site at Gochon-ri, Busan)

  • 이민주;한승록;백인성;김영석
    • 지질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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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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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3-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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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연구지역은 '부산 고촌 택지개발사업지구'로 지정되어 부지를 정리하던 중 '삼국시대'를 비롯한 다양한 시대의 많은 문화유적들이 발굴된 곳이다. 이 지역은 고고학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정밀조사가 실시되었다. 이를 위해 항공사진 분석과 발굴시 절취된 퇴적단면에 대한 정밀 단면분석을 실시하였다. 정밀격자분석에서는 유적지의 시대별 퇴적특성과 인위적 굴착여부 등을 중점적으로 관찰하였다. 또한 연구지역 내에서 발견되는 일정한 크기와 유사한 형태를 가지는 많은 타원체 역들은 그 특성을 파악하고, 성인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였다. 연구지역은 주변 지형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고도와 완만한 지형적 기복을 보인다. 이 지역에는 단층으로 추정되는 남-북 방향의 선형구조가 집중되어 조사지역의 지형적 특징을 좌우하는데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연구지역 내에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많은 관정의 분포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해석되었다. 단면에서 인지되는 퇴적층들은 여러 층으로 구분이 될 수 있는데 이들 중의 일부는 인위적인 작용의 흔적을 보여준다. 또한 특징적인 역들은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졌거나 수집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문화재 지역에서의 지형적, 지질학적 분석과 연구는 문화 유적지의 입지에 지형적, 지질학적 요소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보여주었고, 특징적인 석기들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이제까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지질학적 방법을 통한 고고유물에 대한 연구가 고고학의 해석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문화유산 조사와 보존관리 - 고고학 조사와 유적 보존을 중심으로 - (Research on Cultural Heritage and Its Conservation in the Process of Unification in Germany - Focusing on Archaeological Investigations and Site Conservation -)

  • 김종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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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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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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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20세기 초반까지 독일 고고학에서는 유물 유적에 대한 객관적이고 섬세한 관찰을 중시하는 연구 경향과 어느 정도의 민족주의 혹은 자민족 우월주의의 입장에서 물질문화의 연구를 통해 과거의 민족 혹은 종족의 자취를 찾아 그들의 시공간적 범위를 확정하려는 시도가 공존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동서로 분열된 이후 구 서독에서는 전통적인 독일 고고학의 전통을 계승하여 유물 유적의 관찰과 목록화, 그리고 편년과 분포의 확인에 집중하였다. 구 동독에서는 맑스주의의 사적 유물론에 입각한 역사의 합법칙적 발전 과정을 물질 자료를 통해 입증하려는 시도와 함께 과거의 문화유산이 갖고 있는 역사적 가치를 사회주의의 이념에 충실하거나 혹은 그 발전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평가하고자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 서독과 구 동독의 고고학은 분열 이전의 독일 고고학의 전통을 상당히 공유하고 있었다. 분열 이후에도 고고학자들의 교류가 어느 정도 지속되고 있었고 구 동독의 고고학이 구 서독의 고고학, 그리고 유럽 고고학 전체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의미 있는 나름의 연구 성과를 내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동 서독 고고학의 통합이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어느 한쪽에 의한 일방적인 통합이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비교적 단시일 내에 통합을 완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에도 고고학 연구와 문화유산 보존의 측면에서는 공통의 연구사적 전통을 공유하고 상호 교류(공동 조사와 학술 교류 등)에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 비록 맑시즘과 주체사상에 의거한 형식화된 해석이라 하더라도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필요한 경우 받아들이려는 열린 마음을 통해 남북한 고고학 및 문화유산 보존의 간극을 점차적으로 줄여나가는 작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사례는 이러한 작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데 나름의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창 학소리유적 토광묘내 유리구슬의 화학적 특성 - 37호 및 40호 - (Chemical Compositions of Glass Beads from Tombs of Hakso-ri Site, O'chang)

  • 정광용;강형태;고민정;김화정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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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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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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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오창 학소리I유적의 토광묘에서 유리구슬 시료 4점을 입수하고 각각 13종의 산화물을 분석하였다. 토광묘에서 출토된 유리구슬의 화학조성에 따른 유리 계통을 정리하였고 어떤 발색제가 기여하였는지를 확인하였으며 구슬을 제조하기 위한 원료의 대해서도 검토하였다. 토광묘에서 녹청색 유리 4점은 모두 $K_2O-CaOSiO_2$ 계통이며 동일한 농도범위이어서 같은 원료를 사용했을 것으로 판단되며, 이중 3점은 PbO 함량이 4% 이상으로서 포타쉬납유리 계통($K_2O-PbO-CaO-SiO_2$)으로 볼 수 있다. 유리의 녹청색은 Cu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며 일부 철의 역할도 있었을 것이다. 납동위원소비 분포는 모두 흩어져있어 동일 지역에서 가져온 납을 사용했다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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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성벽 토양의 성분 특성 연구 (Compositional Characterization Analysis of Wall Soils Excavated in Poongnatoseong Earthen Castle, Seoul)

  • 서민석;이한형;허준수;김수경;유영미;이성준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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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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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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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에서는 풍납토성 동성벽 내부토양을 대상으로 색도색차계, XRD, 입도분석기 등을 이용하여 색도, 입도, 주요화학조성, 광물결정구조 등을 분석하였다. 성벽토양은 황갈색, 회황색의 모래 또는 실트질 모래(SW~SC)로 분류되고, 입도와 화학 광물학적 특성이 유사하며, 도로나 활주로 등의 성토재료로 적합한 특성임이 확인되었다. 색도, 입도, 화학조성, 강열감량의 4인자를 기준으로 비교분석한 결과, 풍납토성이 위치한 지역의 대조군 토양(PNS)은 성벽축조에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한다. 모든 토양은 풍납토성이 위치한 지역과 지질학적으로 유사한 곳에서 채굴되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성벽 축조 이전에 분포했던 구지표면의 토양과는 다른 특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유적 주변에 대량채굴이 가능했던 토양분포지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성벽 축조재료의 여러 특성들을 비교 분석하면, 성벽 내부토양의 산지, 축조방법, 보수방법 및 시기 등을 보다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세계유산도시 경주의 유산화 과정과 지역공동체의 관계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Heritagization Process and Local Community in Gyeongju, a World Heritage City)

  • 함예림;김의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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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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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6-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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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경주는 약 1,000여 년 간 신라의 수도였으며 시내에는 월성, 대릉원, 동궁과 월지 등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유적들이 다수 분포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지역에 소재한 유적의 유산화 과정이 진행되었다. 유산화는 과거의 산물을 현재의 필요에 따라 선정하여 유산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배 정당화, 광복 이후에는 민족문화 중흥 및 국가적 정체성 형성이라는 목적 하에 국가 주도의 유산화가 이루어졌으며, 경주는 이것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경주의 유산화 과정에서 지역공동체는 주도적인 역할을 부여받지 못하고 수동적 위치에 머물렀다. 2000년 경주의 유산들은 '경주역사유적지구'라는 명칭으로 경주 시내와 남산 지역의 면 단위 세계유산 등재로 이어졌다. 세계유산 등재와 함께 유산에 대한 지역공동체의 역할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루어졌고, 이후 2004년 「고도보존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시작으로 지역공동체의 참여를 증진하는 제도적 장치가 지속적으로 정비되고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전문가 집단을 통해 진행된 경주의 유산화 과정은 경주 유산의 의미와 지역성이 이들을 통해 형성된 정체성이 부각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현재까지 지역공동체가 소극적으로 유산화 과정 또는 유산 관리에 참여하게 되는 결과를 야기하였다. 본 연구는 이러한 경주의 유산화 과정을 문헌연구를 통해 분석하고 실제 경주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지역주민의 면접조사를 실시하여 제도적 유산화 과정이 주민들에게 미친 영향과 관계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경주의 유산 관리에 지역공동체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언하였다.

천안-아산 지역 청동기시대 무문토기의 재료학적 특성과 고고과학적 의미 (Material Characteristics and Archaeological Scientific Implication of the Bronze Age Potteries from the Cheonan-Asan Area, Korea)

  • 이찬희;조선영;어언일;김란희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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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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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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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이 연구는 천안-아산 지역 출토 청동기시대 토기편과 고토양을 대상으로 재료과학적 분석을 통해 상호 동질성을 검토한 것이다. 토기편은 현미경하에서 1mm 이하의 세립질 광물에서 10mm 정도의 극조립 광물까지 분급과 원마도가 다양한 비짐들이 혼재되어 있다. 또한 대부분 토기편은 조직의 치밀도가 떨어졌으며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기공이 분포하였다. X-선 회절분석에서는 석영, 장석, 운모, 각섬석, 녹니석과 같은 주구성광물 외에 활석이 동정되었으며, 이 활석은 토양에서는 검출되지 않아 인위적으로 첨가한 물질인 것으로 판단된다. 토기편 중 녹니석이 검출되지 않는 것들은 $850^{\circ}C$ 이하에서 소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으며, 운모 및 활석이 동정된 토기는 $900^{\circ}C$ 이하에서 소성이 완료된 것으로 해석된다. 각 유적의 토기와 토양의 지구화학적 분석결과, 주성분, 미량, 희토류원소의 진화경향이 거의 일치하여 각 유적의 토기는 대부분 유적을 구성하는 고토양을 태토로 이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부여 능산리 출토 가랑비녀 용범(鎔范)의 제작과 사용 양상 (The Making and Use of the Bifid Ornamental Hairpin Stone Mold Excavated at Neungsan-ri, Buyeo)

  • 이솔언;김지영;서현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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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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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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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부여 능산리 서고분군 4차 발굴조사(2016년) 과정에서 석제용범이 1점 출토되었다. 석제용범은 초기철기시대의 동침 용범으로 보고되었지만 주형 형태로 보아 동침이 아닌 가랑비녀의 용범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고에서는 능산리 출토 석제용범에 대해 고고학적 분석을 통해 유물의 형태와 시기를 세밀하게 파악하고 자연과학적 분석을 통해 석재 재질 특성과 그 산지를 추정해 보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능산리 일대에서 가랑비녀 석제용범이 사용된 양상도 파악해 보았다. 용범은 평면 장방형(단면 장방형)에 가까운 형태로 석재의 표면에는 4줄로 나란하게 홈이 나 있다. 홈은 2줄씩 단측면 가까이에서 이어져 각각 좁은 ∩형을 이룬다. 주형 형태로 보아 용범은 각부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의 가랑비녀를 제작했던 유물로 추정된다. 한반도에서 가랑비녀는 낙랑을 포함하여 원삼국시대부터 나타나 삼국시대(백제)에 소수 나타나고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상당히 성행한다. 가랑비녀는 시대별 형태 차이가 뚜렷한 편인데, 능산리 용범은 주형 형태로 보아 고려시대에 제작되어 사용된 유물로 판단된다. 능산리 서고분군에서는 이와 관련되는 유구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수혈유구도 확인되었다. 능산리 가랑비녀 용범을 제작한 석재는 녹니석, 각섬석, 활석을 주성분 광물로하는 녹니석편암으로 녹회색의 무르고 부드러운 석재이다. 이러한 암석은 인근의 부여 외산면, 청양, 공주, 예산지역 등에서 산출되는데 현장조사를 통해 능산리 용범과 가장 비슷한 것은 부여 외산면 지선리에서 예산 예산읍 수철리 일대에 이르는 지역에 넓게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하였다. 그리고 부여 능산리와 그 주변 지역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가랑비녀는 현재까지 70점 정도인데, 그 중 능산리 용범의 주형과 가장 비슷하게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은 부여 송국리 유적 분묘 출토 청동제 가랑비녀 등이다. 그동안 남한 지역에서 출토된 가랑비녀 석제용범은 10점을 넘지 못하는데, 대부분 통일신라시대 유물이고 확실한 고려시대 유물은 매우 드물다. 능산리 석제용범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는 다양한 청동기 제작기술이 존재했겠지만 주조공정도 함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청동유물을 제작하기 위한 석제용범은 주형을 새기는 작업이 용이한 석재를 우선적으로 선택하고자 했을 것이다. 능산리 출토 가랑비녀 용범은 고려시대(전기)에 20~50km 정도 떨어진 인근 지역(부여 외산면 지선리에서 예산 예산읍 수철리 일대)에서 용범 제작이 용이한 석재를 가져다가 청동유물을 제작한 후 이를 인근 유적(부여 송국리 유적 등) 일대에 공급했던 양상과 함께 이 시기까지도 석제용범을 이용한 주조 기술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