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명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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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나비처럼"과 "ELIZABETH-THE GOLDEN AGE"의 영화의상 비교분석 - 명성황후와 엘리자베스 여왕1세를 중심으로 - (Comparative Analysis of the costumes in the film "The Sword With No Name" and "Elizabeth: The Golden Age" - Focusing on Empress Myeong-seong and Queen Elizabeth I -)

  • 안미화;장애란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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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1권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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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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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The movie costumes, artistic and figurative, serve to maximize the dramatic conveying effect of the movie's theme, actor's character, and the image of a dramatic situation expressed through clothing. It is considered that research would be meaningful if it studied on how the movie costumes are implied with symbols in order to present a dramatic image depending on the situation. Therefore this research compared, analyzed, and interpreted the historical plays produced on historical backgrounds, "The Sword With No Name" and 'Elizabeth - Golden Age'. In other words, five dramatic situations were extracted in order to compare and analyze the costumes of Empress Myeongseong to the costumes of Queen Elizabeth. The costumes presented according to the storyline and the personalities of the two characters with these five as the basis are compared and analyzed, and the implied symbolic meaning could be interpreted and analogized based on the results. Therefore it is suggested that symbolic meaning, along with the expression of the dramatic atmosphere, needs to be implied in the design of the movie costumes.

명성황후가 등장하는 TV사극에 나타난 의상에 관한 연구[제2보] - 주요 등장 인물의 의상 표현을 중심으로 - (A Study of The Costume in the Historical TV Drama that the Empress Myungsung Appeared - Focus on Costume of Main Character -)

  • 한은희;한자영;유송옥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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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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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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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This Study is to analyze characteristics of costume change of according to the status of character succeeding the investigation of the ceremonial costume change in historical TV dramas that The Empress Myungsung entered. For this study, the costume images among historical TV dramas, that Myungsung entered, '500 years of Chosun Dynastyv, Taewongun(1990, MBC)', 'The Glorious Dawn(1993, KBS1)', 'The Empress Myungsung(2001, KBS2)'were used: The characteristics of the costume change of main character are as follows. First, main character's costume has been increase gradually in number and item. Second, Especially in the last work,'The Empress Myungsung', the royal costume based on historical evidence in aspects of silhouette, but it didn't according to the historical costume in aspects of color and textile. Nevertheless the costume reveals the status of each person significantly. Third, the costumes of the recent historical drama appears as a optical symbol that represents historical view point and different interpretation of each drama. Therefore the costume according to the status of the character wrong from the historical point of view. Consequently, TV costume in historical drama Myungsung entered has been focused on the beauty of the screen and dramatic effect than historical viewpoint. So the costume have been to be an essential visual part by means of the symbol revealed the purpose.

Topic Maps를 이용한 MARC데이터의 FRBR모델 구현에 관한 연구 (An Implementation of FRBR Model by Using Topic Maps)

  • 이현실;한성국
    • 정보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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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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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9-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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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FRBR 모델에서는 서지 요소와 관계를 중심으로 ER 모델링 방식을 제공하고 있지만, 단지 구조적 프레임워크로서 FRBR 모델을 효율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Topic Maps를 이용하여 FRBR 모델을 구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Topic Maps 기반의 FRBR 모델 구현의 유효성을 실증적으로 보이기 위하여, 명성황후라는 주제와 관련된 MARC 데이터를 추출하여 FRBR 모델을 설계하였고, Topic Maps를 이용하여 이를 구현하였다. 연구 결과, FRBR의 entity-relation과 Topic Maps의 topic-association이 개념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FRBR 모델 개발의 적합함을 알 수 있었다. FRBR 구조는 Topic Maps 패러다임과 그대로 일치하기 때문에 FRBR 모델은 Topic Maps로 구현함이 바람직하다.

대한제국의 최초 황제릉인 금곡 홍릉의 정체성 (A Study on the Identity of Geumgok Hongneung as Origin of Imperial Tomb in Korean Empire)

  • 홍윤순;이종영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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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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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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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를 통해 대한제국 최초의 황제릉인 금곡 홍릉의 조영특성에서 발견되는 '정체성'을 해석코자하였으며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우선 정체성을 구성하는 양면적 국면 중 내적 자기인식인 '동일성' 측면에서 홍릉은 조선왕조의 번성기를 계승하면서도 명성황후의 청량리 홍릉과 연계되는 '지속성'을 보유하며, 황제 및 황제국가로서의 자존감을 드러내기 위한 다양한 '동일화'의 환경을 드러낸다. 반면 이와 반대되는 국면인 '외적 타자인식'으로서의 '개별성' 측면에 볼 때, 고종황제의 의지와 일제의 간섭이 혼재된 홍릉은 기존의 전통과 구별되는 '특이성'을 통해, 조선왕릉 5기의 양식을 탄생시키는 결과를 이루게 하였다. 아울러 홍릉의 가치는 당시의 혼란스럽고 어려웠던 시대상을 진정성 있게 투영하며, 고종의 국장과 3.1운동 촉발의 장소이라는 '수월성' 역시 보유한다. 이렇듯 금곡의 홍릉은 세계적 문화유산인 조선 왕릉 중에서도 당시의 시대상을 극명하게 반영하는 기록경관인 동시에 역사경관이며, '황제릉'이라는 독특한 특질을 드러내는 비범한 경관이라 할 수 있다.

호산(壺山) 박문호(朴文鎬)의 윤리사상과 시국관 (Hosan Park Moon Ho's Idea of Morality and Viewpoint of Social Situation)

  • 지교헌;지준호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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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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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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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호산(壺山) 박문호(朴文鎬)는 서구열강의 각축전과 일제의 침략 그리고 척사위정운동과 항일의병운동 등 참으로 다사다난한 시기를 살았다. 따라서 그의 학문과 사상은 이러한 조국의 어려운 환경과 관계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의 사상 가운데, 서구의 기독교가 전통적인 사상과 미풍양속을 파괴하는 것으로 본 점, 일제에 아부하는 역적을 토벌하고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에 대하여 복수할 것을 주장한 것, 그리고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략은 단호히 막아야 하지만 대내적으로 개물성무(開物成務)와 화민성속(化民成俗)을 이루어야 한다는 개화론(開化論)을 주장한 것은 이러한 시대적인 역사적 환경과 직접적으로 관계된다. 호산 박문호의 시국관은 전통적인 윤리사상과 교육사상을 고수하는 입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외면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적 요구라는 것도 시대적이며 사회적인 모든 여건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며, 전통 윤리사상을 고수한다고 하여 반드시 시대적 요구에 배치된다고 볼 수도 없다. 호산 박문호가 살다 간 시대는 왜양(倭洋)의 침략 앞에 정치적인 불안정은 극도에 달하였으며,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대한 국민적 또는 국가적 합의는 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당면과제는, 우선 일본과 구미 각국 즉, 왜양(倭洋)의 침략을 물리치는 일보다 더 화급한 일은 없었던 것이며, 그리함으로써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안정을 도모하고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제하여 유가적 정치이상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조선 후기 국장용 운반 상구고(喪具考) (A Consideration about the funeral Supplies for Carriage in the late of Joseon Period)

  • 박종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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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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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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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상장례 중 발인절차에서 각종 물품과 시신을 운반하는 상구를 이용하여, 상주들은 예를 원활하게 치루고자 노력한다. 이미 조선시대 초기에 "세종실록"과 "국조오례의"를 통해서, 이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일반백성들이 지켜야 할 예서의 수준을 넘어선 국가의례의 표준서이다. 조선 중후기를 넘어오면서, 국가가 정한 국장의례 규정에 따라서, 국장도감은 운반상구류를 제작하여서 사용하였다. 그 예로 대여 견여 요여 채여 연 가자 등을 제작하여서 국장에 실제로 사용하였다. 이와 관련하여서, 조선 중기 이후에 일련의 실제 국장과 그에 소요된 기물들을 기록한 책인 의궤를 살펴볼 수 있다. 본 글은 "선조국장도감의궤", "인조국장도감의궤", "정조국장도감의궤", "순조국장도감의궤",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를 참고서로 활용하여서 조선 중후기 국장에서 실제로 사용되었던 운반상구류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운반상구류의 준비와 제작과정, 활용상황, 그 변화에 이르기까지 국장도감의궤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조선시대 왕실의례는 곧 국가를 대표하는 의례이어서 개인의 기호에 따라서 좌우될 수 없었다. 조선시대 왕실이 한 국가의 상징이자, 실질적인 권력이 나오는 곳이었기 때문에, 왕실의례는 한 국가의례로서 전형을 보여주어야 했다. 운반상구류가 대행왕의 옥체를 실은 재궁, 왕실의 권위와 왕통을 상징하는 물품 등을 운반하기 때문에, 국장도감은 세심한 배려와 함께 신중을 기하였다. 이는 이러한 물품들이 살아서 이 땅을 지배하였던 왕 같은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발인 시에 단순한 운반상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왕과 동격 선상에 있는 상징적인 물품들이다. 정형성을 유지하였던 국장용 운반상구 역시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당시 현실적인 여건으로 다소의 변화가 일어났다. 왕실의례가 전례의식의 특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변화를 가져왔다면, 사대부 및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상구류 제작 또는 사용에서도 변화를 꾀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조선시대의 국장용 상구류 변화에도 관심을 기여야 한다.

조선말과 대한제국 시기 사진기록물의 성격과 생산, 유통 과정 (The Facets of Photographic Records on Korea in Modern Era)

  • 박주석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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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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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5-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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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조선의 개항 이후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대를 찍은 사진기록물은 당시의 기술적 수준이나 대외 개방의 정도를 감안하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한국 관련 사진기록은 서구 사회에 한국을 소개하기 위해 인쇄한 서적의 삽화, 화보 신문이나 잡지의 도판, 빈티지 프린트, 사진엽서, 스테레오 사진, 카드형 사진, 랜턴슬라이드(Lantern Slide) 등 다양한 형태로 보급되었고, 현재도 상당량이 남아 있다. 관련 연구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조선 사람이 처음 사진에 찍힌 1863년부터 1910년 이전에 촬영된 한국 관련 사진은 최소 3,000점에서 4,000점 이상이고, 같은 사진이 중복되기는 하지만 발행된 사진엽서의 수는 25,000점 이상이며, 그중 대부분이 현존하고 있다고 한다. 본 논문은 근대 초기인 구한말 한국 관련 사진기록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경로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고, 이를 전형적인 사진가 또는 기관의 활동 사례를 들어 분석했다. 사진에 찍힌 대상은 분명 한국 또는 한국인의 모습이지만, 사진의 생산 주체는 거의 대부분 제국주의의 부역자들인 서양인들과 일본인들이었다. 사진의 경우 생산 주체의 필요나 관점에 따라 사실 관계의 왜곡 가능성이 무척 크다. 그 왜곡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사진의 내용뿐만 아니라 생산자의 의도와 생산 및 소통 경위가 파악되어야 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 실제 경험자가 없는 시대의 사진기록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판독하는 문제는 근대 한국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한국의 근현대사를 폭넓게 연구하기 위한 초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