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명문전(銘文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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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무이묘 명문전 낯설게 바라보기: 중국 위진시기 명문전과의 비교를 통해 (New Perspectives on the Inscribed Bricks from the Tomb of Jang Mui: A Comparison with Chinese Inscribed Bricks from the Weijin Dynasties)

  • 김병준
    • 박물관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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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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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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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장무이묘 명문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낯설다. 첫째, 명문전이 백여 점에 육박할 정도로 많다. 둘째, 똑같은 명문이 다수 확인된다. 셋째, 소성 방식 등 제작 방식이 다양하다. 넷째, 명문이 찍힌 전돌의 형태가 일정하지 않다. 다섯째, 명문이나 문양이 찍힌 면과 아무 문양이 없는 면의 위치 및 명문의 상하 방향이 일정하지 않다. 여섯째, 명문의 대부분이 반서로 찍혀 있다. 일곱째, 명문전 표면에 흰색 석회가 칠해져 있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 중국 위진시기의 명문전과 비교하면 장무이묘의 명문전은 더 이상 낯선 물건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명문을 문자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문자가 전돌에 압인된 하나의 기물로 이해하여 그것이 무덤 속 어디에 어떻게 위치해 있었는지를 주목하고, 이를 관람자의 시선에서 바라보아야 장무이묘의 명문전이 갖는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다.

장무이묘 출토 명문전의 내용과 작성 의도 (The Content and Underlying Intentions of the Inscribed Bricks Excavated from the Tomb of Jang Mui)

  • 안정준
    • 박물관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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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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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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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4세기 중반 황해도 봉산군에서 발견된 장무이묘에서는 많은 수의 명문전들이 발견되었다. 2023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여러 차례 실견회를 가진 결과, 명문전은 총 10개의 유형으로 파악되었다. 본고에서는 장무이묘의 명문전에 기록된 내용과 그 작성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먼저 전체 문구들을 자세히 해석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명문전들의 각 문구가 갖는 상관관계와 전체 문장의 기재 순서도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명문전들은 내용상 무덤의 조영에 대한 정보를 외부 관람자에게 보이려는 의도로 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조주부(趙主簿)로 칭해진 화자가 장무이묘의 조영에 관여하였음을 전하고 있는데, 이는 서진·동진대에 묘주의 가족이 아닌, 정치·사회적 인연으로 고분 조영에 참여한 인물들이 제작한 명문전들과도 비교된다. 4세기 중반 당시 낙랑·대방군 고지 내에는 고구려의 허용 속에서 중국인 사회의 전통에 따른 장의(葬儀) 문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고분 내에 표현된 벽화·묵서, 명문전 등 외부에 공개된 다양한 전시물들은 묘주 일가가 이주민 집단과의 정서·지향을 공유하는 가운데, 서로 간의 결속을 강화하려는 목적과 관련 있다. 장무이묘에서 발견된 명문전들의 내용 역시 바로 그러한 맥락 속에서 기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장무이묘 출토 명문전(銘文塼)의 고고학적 검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An Archaeological Review of the Inscribed Bricks Excavated from the Tomb of Jang Mui: A Focus on the Collection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이나경
    • 박물관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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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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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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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황해도 봉산군에 위치한 장무이묘에서는 피장자의 이름과 직책, 축조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명문전이 출토되어 조사 초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전돌에 찍힌 '대방태수장무이(帶方太守張撫夷)'와 '무(戊)', '신(申)'과 같은 명문은 한강 지역에서 황해도 봉산군 일대로 대방군 치지가 옮겨 왔다는 이동설의 근거가 되었으며, 장무이묘는 지탑리 토성과 함께 조사 초기부터 대방군의 유적으로 소개되었다. 장무이묘 출토 명문전은 여러 지면을 통해 사진 및 탁본 자료가 공개되어 명문의 해석을 중심으로 축조 연대, 피장자의 성격에 대한 연구가 주로 이루어져 왔으나, 도쿄대학교 공학부 건축학과 소장품을 제외하고 실물 자료가 거의 공개되지 않아 명문전의 종류나 명문 내용에 대한 일관된 연구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외에 장무이묘의 구조와 축조 재료 등을 재검토한 선행 연구 이후 장무이묘의 축조 시기를 대방군 멸망 이후인 348년이라고 보는 견해가 주를 이루게 되었지만, 출토 유물의 전부를 차지하는 전돌에 대한 충분한 검토는 아직까지 부족하다. 장무이묘를 포함한 대부분의 전실묘 출토 전돌은 명문전과 문양전만 수습되었으며, 이 중에서도 측면에 찍힌 명문과 문양만 자료화되어 전돌 자체에 대한 연구는 극히 미진한 상태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장무이묘 출토 전돌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11종 61점을 중심으로 명문 내용을 재정리하고 형태를 중심으로 분류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성형과 건조, 소성에 이르는 제작기법을 검토하여 건축 부재로서의 장무이묘 전돌을 살펴보았다. 이 결과를 2~4세기에 걸친 낙랑군·대방군, 그리고 낙랑군·대방군 축출 이후 전실묘 전돌과 비교하는 구체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장무이묘 전돌에 대한 관찰 결과, 기본적인 제작기술은 낙랑 전돌 제작기술을 계승하고 있으나 크기나 석회 사용, 명문전의 수량 등에서는 4세기 중반 경 축조된 전실묘 혹은 전석혼축묘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요소가 확인되어 장무이묘 축조시기를 348년으로 본 기존의 견해가 타당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무이묘는 전실묘라는 기존의 묘제를 고수하고 있지만 천장은 석재를 사용하여 마무리하였고, 낙랑·대방군의 제작 기법을 이은 전돌을 사용하였지만 그 위를 석회로 덮어버리는 등 기존 낙랑·대방군의 전실묘 전통과 새로운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모습은 대방군 축출과 고구려의 진출이라는 당시 정치적 상황과도 맞물려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무덤의 구조나 재료, 무덤의 축조 위치와 같은 고고학적 자료로 보면 고구려와의 관련성이 높다. 그러나 명문전의 형태나 명문의 내용 등은 오히려 3~4세기대 강소성과 절강성 지역의 전실묘와 유사한 점이 많다. 향후 석회의 사용이 고구려의 영향인지 아니면 대방군 지역의 전통이 이어진 것인지에 대한 검토, 그리고 동시기 석개천장묘와의 비교 검토 등과 같은 추가 연구가 이어진다면 보다 선명하게 '장무이(張撫夷)'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진사탁(陳士鐸) 명문설(命門說)의 특징(特徵)에 대한 연구(硏究)

  • 최종필;윤창열
    •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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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3호통권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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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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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통과대진사탁명문지설특징적연구득출이하결론(通過對陳士鐸命門之說特徵的硏究得出以下結論): 1. 명문위선천지화(命門爲先天之火), 차종개념상역가위선천지수화(且從槪念上亦可爲先天之水火). 2. 명문지화가칭지위선천지화(命門之火可稱之爲先天之火), 신화(腎火), 신중지화(腎中之火), 무형지화(無形之火), 진화(眞火), 건화(乾火), 원기(原氣), 음중지화(陰中之火), 수중유양등(水中有陽等); 이명문지수가칭지위선천지수(而命門之水可稱之爲先天之水), 신수(腎水), 신중지수(腎中之水), 무형지수(無形之水), 진수(眞水), 원정(原精), 음중지수(陰中之水), 화중유음등(火中有陰等). 3. 진수가생진화(眞水可生眞火), 진화역가생진수(眞火亦可生眞水), 양자위호생적관계(兩者爲互生的關係). 강조료유형지화(强調了有形之火), 수극화(水克火), 단무형지화(但無形之火), 수생화(水生火). 4. 명문지화시일양함어이음지간적감괘상(命門之火是一陽陷於二陰之間的坎卦象). 5. 인적생명활동고수화이생, 이신중적진화진수지명문시기본원(而腎中的眞火眞水之命門是其本源). 6. 명문시운행십이경맥적주체(命門是運行十二經脈的主體), 시십이경지주(是十二經之主), 차위촉사생성십이관공능적십이관지화원(且爲促使生成十二官功能的十二官之化源), 고위십이관지주(故爲十二官之主). 7. 명문적작용가영향정개십이관(命門的作用可影響整個十二官), 우기시인화생토적관계(尤其是因火生土的關係), 대비적공능적영향갱대(對脾的功能的影響更大). 8. 인적생명지성쇠의고명문지화, 고명문지화고갈즉인적생명장종결(故命門之火枯竭則人的生命將終結). 9. 오곤(吳崑), 장개빈등계승료류하간적주장(張介賓等稽承了劉河間的主張), 기인위자하향상수지제칠절처위시명문(旣認爲自下向上數至第七節處爲是命門), 차처기위소심(此處旣爲小心). 10. 진사탁계승상술학설화조헌가지설(陣士鐸繼承上述學說和趙獻可之說), 주장칠절지방시소심(主張七節之芳是小心), 차인위차처기위명문소재(且認爲此處旣爲命門所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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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문가-철저한 교육과 나누는 마음 통해 이루어지는 부의 이전

  • 박지민
    • 주택과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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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2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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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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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존경받는 부자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금년 4월, 삼성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건희 전 회장이 상속 문제로 직접 스웨덴의 명문가 발렌베리(Wallengerg)가를 방문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철저하게 가족 중심으로 부의 승계가 이루어지고 있어 삼성과 많이 닮았다는 발렌베리 가를 비롯해 지금까지 오랫동안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는 명문가들을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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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신호 분석 기반의 신장 부항요법 효과 분석 (Effect Analysis of Kidney Cupping Therapy based on Voice Signal Analysis)

  • 조동욱;정연호;가민경;김봉현
    • 한국정보처리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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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정보처리학회 2013년도 추계학술발표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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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74-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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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부항은 열 또는 음압(陰壓)장치에 의하여 부항단지 안에 음압을 조성하여 피부에 붙임으로써 피를 뽑거나 울혈(鬱血)을 일으키며 물리적 자극을 주어 병을 치료한다. 부항으로 얻어지는 물리적인 자극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죽은피를 빼냄으로써 혈관을 자극하고 그로인해 다양한 효과를 얻는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신장에 해당하는 명문혈을 자극하여 신장과 관련된 음성분석 요소의 변화를 측정하였다. 이를 위해 신장에 이상이 없는 피실험자 10명을 선정하고 신장에 해당하는 명문혈을 자극하기 전과 후의 음성을 수집하였다. 실험은 음성분석 요소 중 신장과 관련된 1 Formant Bandwidth를 적용하여 신장 명문혈 자극 전과 후의 변화를 측정, 분석하였다. 실험 결과, 90%의 피실험자가 값이 감소하는 현상을 보였으며, 이를 통해 명문혈 자극에 따른 신장과 음성신호와의 상관성을 분석할 수 있었다.

서북한 지역 전축분(塼築墳) 연대의 하한 재검토 -기년명전(紀年銘塼)을 중심으로 (Re-examination of the Latest Dates of the Brick Chamber Tombs in the Western Region of North Korea: A Focus on Dated Inscribed Bricks)

  • 장병진
    • 박물관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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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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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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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서북한에서 출토된 명문전에서 낙랑·대방군이 완전히 축출된 314년 이후의 연호, 심지어는 5세기 초의 연호가 확인되었다. 2군 소멸 이후에 전축분 조영의 전통이 1세기 동안 이어진 셈인데, 전축분은 고구려 지배층의 묘제로 채택된 바가 없다. 348년 조영된 장무이묘나 353년에 제작된 동리묘는 전형적인 전축분 양식에서 벗어나 석실분의 요소가 가미된 사실이 지적되었고, 장무이나 동리와 비슷한 성격의 존재인 동수의 무덤(안악 3호분)은 357년 석실봉토분으로 조영되었다. 그럼에도 반세기 동안 전축분 조영이 계속되었다는 것은 다소 의문이었다. 기년명전이 중요한 근거가 되었지만, 선행 연구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했던 문제가 있었다. 357년 이후로 파악했던 일부 기년명전의 경우에는 연호 해석에 오류가 있었음이 지적되기도 했다. 전진 시기인 386년으로 파악했던 '대안(태안) 2년' 명문전은 서진 혜제 시기인 303년으로, 후연 시기인 407년으로 파악한 '건시 원년' 명문전도 301년 서진 혜제를 몰아내고 사마윤이 잠시 제위를 차지했던 시기에 사용한 연호라는 견해였다. 이들 사례를 제외하면 357년 이후에 제작되었다고 알려진 기년명전은 '원흥 3년' 명문전만 남는다. 그런데 명문전을 재검토한 결과 '원흥'은 '영흥'의 오독임을 확인했다. 영흥 3년은 서진대인 306년이나 후조대인 352년에 해당하는데, 306년의 가능성이 크다. 4세기 말, 5세기 초까지 전축분이 조영된 사실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사라진 셈이다. 결국 장무이나 동리의 무덤은 서북한 지역에서 조영된 가장 늦은 시기의 전축분으로 볼 수 있으며, 안악 3호분이 조영될 무렵을 기점으로 서북한 지역에서는 더 이상 전축분의 조영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당대의 역사적 상황에도 부합한다.

장석순(張錫純)의 심(心)의 생리(生理)에 대한 천발(闡發)

  • 박기태;윤창렬
    •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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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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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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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통과대장석순재심적생리방면적천발적연구(通過對張錫純在心的生理方面的闡發的硏究), 득출여하결론(得出如下結論). 혈내생어심화(血內生於心火), 병의뢰대기이운행. 대기이원기위본(大氣以元氣爲本), 원기생어명문혈(元氣生於命門穴), 수수곡지기적배양(受水穀之氣的培養), 류어흉중(留於胸中), 차흉중대기칭위종기(此胸中大氣稱爲宗氣). 군화내시발어심중지양중지화(君火乃是發於心中之陽中之火), 가소화비위지음식물(可消化脾胃之飮食物), 군화하행즉상화왕성(君火下行則相火旺成), 하원변득온난(下元變得溫暖). 상화원어명문혈(相火源於命門穴), 순삼초적유막(망유)여심포결상연(循三焦的油膜(網油)與心包結相連), 개속어화(皆屬於火), 진견어우수척부맥(診見於右手尺部脈). 선천지군화내단전지원양(先天之君火乃丹田之元陽), 상화내명문지화(相火乃命門之火); 후천지군화내심화(後天之君火乃心火), 상화역위명문지화(相火亦爲命門之火), 이속어담중기생지화(而屬於膽中寄生之火). 원양지화여명문상화(元陽之火與命門相火), 가소화대소장적음식(可消化大小腸的飮食), 상초지심화여중초지담화(上焦之心火與中焦之膽火), 가소화위중적음식(可消化胃中的飮食). 장석순종합료서방인제출적신명재뇌적학설(張錫純綜合了西方人提出的神明在腦的學說), 단경적원신설(丹經的元神說), 이급"두자정명지부"화"심자군주지궁(以及"頭者精明之府"和"心者君主之宮), 신명출언"지설(神明出焉"之說), 인위뇌내신명지체(認爲腦乃神明之體), 위원신소거(爲元神所居), 심내신명지용(心乃神明之用), 위식신작용지소(爲識神作用之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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