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식민지 시기 발표된 사회주의 계열의 문학 작품-특히 한설야의 작품-에 '바다'로 대표되는 매끈한 공간에 대한 지향과 더불어 사회구성체의 일원으로서 그간 일궈 왔던 '고향'-홈 패인 공간에 대한 향수(鄕愁)가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심훈의 『동방의 애인』을 비롯한 1930년대 전후 사회주의 문학작품에서는 "민족에 대한 전통적 애착심마저 버리고" 프롤레타리아 국제 연대의 '바다'로 나아갈 것을 결의했으나, '고향'에 대한 향수에 붙들려 기존 홈 패인 공간의 질서 속으로 회귀하고야 마는 사회주의자들의 면모가 드러나며,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의 면모는 식민지 말기에 이르러 다시금 대두된다. 식민지 말기는 총력전 체제의 강화 및 동아봉쇄주의로 인해 사회주의 투사들 대부분이 "구금되었거나 운동을 정지하고 어쩔 줄 모르는" 상황에 놓였으며, 이로 인해 해외 혁명 거점들로부터 단절되어 "절해고도(絶海孤島)"와 같은 위치에 놓인 사회주의자들에게 제국이 보낸 '전향'의 메시지가 도착한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고향'에 대한 향수에 붙들리는 한편, 식민지 말기 "절해고도"와 같은 경성의 '닫힌 공간'에 직면하여 제국의 전향 요구를 수취해야만 했던 조선의 사회주의자들은 위와 같은 민족·제국의 호명/향수를 뿌리치고, 다시금 '너른 바다'를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글에서는 「과도기」·「씨름」·『마음의 향촌』·「피」 등 식민지 시기 한설야 소설에 나타난 바다/고향 표상을 분석함으로써, "너른 바다"로 표상되는 매끈한 공간성을 성취하고자 했던 당대 사회주의자들의 투쟁이 제국에 의해 포획되어 홈 패인 공간으로 조직된 식민지 조선의 지형에 어떠한 변화를 초래하는지, 나아가 식민지 말기 사회주의자들이 담지했던 사상적 전망이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제국의 두터운 '홈'에 직면하여 어느 정도의 문화적 융해를 가능케 했는지 그 경합의 과정들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한설야 등 기존 식민지 말기 사회주의자들의 텍스트에 접근하기 위한 키워드가 "전향"이었다면, 이 글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좌절의 위기에 직면한 사상적 전망을 "살려 나가기" 위해 "바다"라는 매끈한 공간의 표상을 동원했으며, 이를 통해 여전히 "투쟁"의 흐름 속에 스스로를 위치시키고자 했음을 제시할 것이다. "바다"라는 공간적 표상에 입각한 이러한 문학적 상상은 비록 실현 불가능한 층위에 머무른다 할지라도, 그 자체로 당대 정치지리적 경계 너머로 나아가기 위한 문화적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시대적 의의를 지닌다.
본 논문은 해양력이 동아시아 해양공간에 미치는 지정학적 파장과 그 성격의 문제를 다룬다. 마한의 도서국가지배론에서 강조되고 있는 해양력이 갖는 의미를 분석하고, 해양력의 지정학적 성격을 파악한다. 이러한 인식과 함께, 21세기 현재 중국이 도련선 전략을 통해 태평양으로 진출하고 있는 지정전략적 성격과 그 파장의 문제를 조사한다. 지난 20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일본이 해양력에 기초해서 동아시아 해양공간에서 세력권 확장을 기획하는 대동아공영권 정책을 구체화했고, 21세기에는 중국이 도련선 개념을 구체화하면서 동아시아 해양공간을 관리하려는 지정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의 도련선 전략이 미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반발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한국외교의 해양세력 의존정책이 21세기 현재에도 유용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식민지 시기 함대훈은 러시아 문학을 자신의 소설 창작에 반복적으로 활용했다. 그 중에서 투르게네프의 소설 "그 전날 밤"은 함대훈의 첫 장편소설 "폭풍전야"에도, 1943년 발표된 "북풍의 정열"에도 반복적으로 차용되고 있다. 함대훈 문학에 차용된 러시아 문학은 지금 이곳과는 다른 문화, 다른 질서에 대한 인물들의 동경을 이끌어냈으며, 인물들의 동경은 1930년대 중반 발표된 "폭풍전야"에서는 민족운동에 뛰어든 신청년(新靑年)의 형상으로 구체화되어 당대 식민지 조선의 상황과 긴장 관계를 만들어냈다. 반면 1943년 발표된 "북풍의 정열"은 "폭풍전야"와 마찬가지로 투르게네프의 "그 전날 밤"을 차용하고 있지만, 이 소설에는 "폭풍전야"와는 변별되는 지정학적 상상력이 구현되어 있다. "북풍의 정열"에서는 '만주'를 둘러싼 당대의 정치적 역사적 맥락은 소거된 반면, '만주'와 과거 지식인 청년들의 열정을 이끌어냈던 '러시아'를 연결시키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열정이 만주에 대한 동경으로 대체되는 과정은 함대훈 문학에 나타난 '북국(北國)' 표상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1930년대 후반 함대훈의 소설에서는 '러시아'가 '북국'으로도 표상되고 있었다. 그러나 함대훈 문학에서 '북국'은 점차 '러시아'가 아니라 '만주'를 지칭하는 공간 표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북국' 표상을 통해 러시아와 만주를 연결시키는 방식은 '만주'가 시베리아 지방과 멀지 않은 지역임을 부각시키는 언술에서도 암시되어 있듯이 시베리아 지역으로까지 대동아공영권을 확대하고 싶은 제국 일본의 욕망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었다. 함대훈은 '북국' 표상을 통해 러시아에 대한 낭만적 동경을, 제국 일본의 지정학적 논리를 정당화하는 담론으로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시기 함대훈에게 '러시아'는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었지만, 그 동경은 '만주'에 대한 함대훈의 인식에서 드러나듯 언제든 세속적 욕망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는 해방 직후 발표된 함대훈 장편소설 "청춘보"에서도 확인된다. 해방 직후는 소련이 냉전질서의 한 축으로 부각되고 러시아어가 한국인의 일상적 담화공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던 시기였다. 함대훈은 "청춘보"를 통해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고 소련의 문화를 동경하던 연구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후, 그의 시선으로 해방 전후의 북조선 사회를 재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 작품은 러시아의 문화 및 '소련'과 관련된 다층적 표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재현의 양상을 만들어낸 것은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심퍼사이저(sympathizer) 의식, 즉 '동반자 의식'이다. 이러한 주인공의 동반자 의식은 식민지 후반의 조선에서 금지의 대상이었던 '소비에트' 문화의 이국성을 그가 동경하고 있었던 것에 기인한다. 그러나 러시아어가 일상에서 사용될 수 있는 언어이자 영어와 교환될 수 있는 위상을 확보하게 된 해방 직후 '러시아' 및 '소비에트'를 재현하던 주인공의 시선은 변모하게 된다. '붉은 군대'라는 상징 아래 '러시아'와 '소비에트'를 통합적으로 인식하던 시선은 점차 변모하였고, 월남(越南) 이후에는 '러시아'를 '공산주의'라는 도깨비에 의해 점령된 소굴로 간주하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와 '소비에트'는 분리되어 이해되기 시작했다. 식민지 시기 가장 핵심적인 러시아 문학 연구자이자 번역자로 규정된 함대훈의 해방 이후 행보, 그리고 해방 직후 그가 발표한 소설 "청춘보"의 러시아어 번역/통역가 곽성식의 면모는 해방직후 한국의 러시아 문학 연구가 걸어야 할 침체의 길들을 서사의 형태로 예견하고 있다. 금지된 것에 대한 열망 및 러시아의 이국적 문화에 대한 동경에 의해 수행되던 낭만적 번역, 해방 전후 함대훈 소설의 러시아 표상은 그러한 낭만적 번역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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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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