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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 아마네와 최한기의 '학역(學域)'과 근대학문의 구상 (Designs of Academic Category and Modern Learning in Nishi Amane and Choe Han-gi's Philosophy)

  • 김성근
    • 동서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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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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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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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19세기 한일 양국의 두 사상가 니시 아마네와 최한기의 '학역' 과 근대학문의 구상을 비교 검토한 것이다. 니시와 최한기는 역사상 학문이 진보해왔다는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상가는 서양의 자연과학을 자신들의 학문 체계 안에 수용하고, 새로운 근대학문을 구상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였다. 니시의 근대학문 구상에 나타난 두 가지 특징은 학문 제영역의 구분과, 학문의 연쇄를 통한 통합학문의 구축이었다. 즉, 니시는 학문을 보통학, 심리상학, 물리상학이라는 큰 범주로 구분하고, 그 안에 세부적인 학문들을 배치시켰다. 특히 심리상학과 물리상학은 오늘날의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 해당하는 것으로, 니시는 성리학의 리를 심리와 물리로 구분함으로써 그 같은 학문 영역의 분류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나아가 니시는 일단 그렇게 구분한 학문들을 다시 상호 연쇄시킴으로써 백교일치의 학으로서의 철학을 완성하고자 했다. 이 같은 니시의 학문 방법론은 자연과학의 연구를 통해 사회학(인간학)을 밝히려는 콩트 철학의 영향이 잘 드러난 것이다. 최한기도 학문 영역의 구분과 학문의 상호 연쇄를 통한 통합학문의 구축에 관심을 기울였다. 최한기는 학문 영역의 구분에 있어서 니시보다는 구체적이지 않았지만, 자신의 학문을 이른바 기학으로 총칭하고, 그 아래에 오늘날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 해당하는 학문들을 배치시켰다. 그런데, 니시가 성리학적 리의 구분을 통해 학문을 물리상학과 심리상학이라는 큰 범주로 나누었다면, 최한기는 기학의 모든 학문들이 이른바 운화기의 보편적 법칙을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니시는 학역을 통해 분류한 근대학문의 제 영역을 다시 하나로 통합시킴으로써 백학의 통일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니시에 따르면, 그것은 결국 물리와 심리를 재차 연결시킴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는데, 이 같은 학문 방법론은 그가 리의 연결에 좌절하면서 사실상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니시 이후, 일본에는 물리와 심리, 주관과 객관, 자연과 인간이라는 이항대립적 사유구조가 정착했으며, 그것은 곧 니시를 통해 근대 서양학문의 인식적 난제들이 일본에 이식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학문들을 운화기라는 보편적 법칙과 관련짓는 최한기의 학문관은 니시보다 비약적이고 모호했다. 그 같은 경향은 기학의 보편성을 다소 직관적으로 주장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최한기의 기학은 비록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었지만, 학문의 근저에 기라는 통일적 관점을 유지시킴으로써, 이원적 인식의 난제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아울러 학문의 연쇄와 통합의 가능성을 남겼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