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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이언진의 비점본 「해람편」 연구 (Study on the Bijombon Haerampeon Written by Eonjin Lee)

  • 강순애
    • 한국기록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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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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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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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이 글은 새로 발굴된 우상 이언진의 비점본 "해람편(海覽篇)"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내용의 전개는 우상(虞裳) 이언진의 생애(生涯), 우상(虞裳) 이언진의 유고(遺稿)와 문집(文集), "해람편(海覽篇)", 비점본(批點本) "해람편(海覽篇)"의 비점자(批點者) 이용휴(李用休)와 남옥(南玉), 비점본(批點本) "해람편(海覽篇)"과 "송목관집(松穆館集)" "송목관신여고(松穆館燼餘稿)"의 "해람편(海覽篇)" 비교의 순서로 살펴보았다. 이언진은 영조 16년(1740)~영조 42년(1766) 사이의 인물로 역관사가(譯官四家)로 알려진 시인이자 역관이다. 우상의 유고는 유일한 필첩인 "우상잉복(虞裳剩馥)"뿐이며 "우상잉복(虞裳剩馥)"에는 이용휴(李用休)와 남옥(南玉)이 비점을 찍은 "해람편(海覽篇)"과 일본 사행시의 일기 6편, 시 3편, 편지 5편이 실려 있다. 그중 비점본 "해람편(海覽篇)"은 영조40년(1764) 5월28일부터 6월8일 사이에 일기도(壹岐島) 선상에서 기술된 오언시(五言詩)이다. 이 시에는 이언진이 영조 39년(1763) 10월 6일부터 영조 40년(1764) 6월 20일까지 통신사 조엄을 수행하고 한학역관으로 일본에 파견되어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보고 느낀 것이 생생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용휴와 남옥은 "해람편(海覽篇)"에 각각 청비(靑批) 청관주(淸貫珠) 및 주비(朱批) 주관주(朱貫珠)를 찍어서 해람편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해람편(海覽篇)"은 네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제1단계는 일본의 지리적인 위치와 그 풍물에 대한 것을, 제2단계는 대판(大阪)의 발전된 도시의 모습과 문명개화를 통해 운집한 세계의 물산(物産)들을, 제3단계는 일본인의 편향적인 민족성과 종교 및 서민들의 모습을, 제4단계는 일본과의 선린을 묘사하였다. 마지막장에는 비점본 "해람편(海覽篇)"과 "송목관집(松穆館集)" 및 "송목관신여고(松穆館燼餘稿)"에 실린 "해람편(海覽篇)"의 텍스트를 대교하고 그 차이점을 비교함으로써, 비점본 "해람편(海覽篇)"의 본문이 가장 정확하고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음을 밝혔다. 이 논문의 연구결과는 이언진의 연구는 물론 서지학계, 국어학계, 역사학계에 가장 기본적인 연구 성과로 활용될 것이다.

조선시대(朝鮮時代) 철비(鐵碑)의 조영(造營) 연구(硏究) (A Study on The Iron Monument in The era of Joseon Dynasty)

  • 홍대한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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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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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5-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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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우리사회에서 철을 자유로이 사용하게 된 것은 채 100년이 안 된다. 중세 이전 우리나라의 철 생산은 원시적인 행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태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1407년 전국적으로 대규모 철장[철광산] 증설을 시행하였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이 때 개발된 철장의 수를 전국적으로 78개 소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5세기에 편찬된 "농사직설"에 따르면 철재 농기구는 지주 등 일부만이 소유할 수 있는 중요한 재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 이었던 농기구마저 지주 등 일부에게 한정되어 사용되던 시절이었기에 다른 용도로 철을 사용한다는 것은 많은 제약이 따랐다. 이러한 상황은 16세기 말~17세기 전반기에 거듭된 전쟁으로 관영수공업이 파괴되었으며, 국가로부터 제철업경영권을 위임 받은 '별장'이 세금을 내는 조건으로 철소(鐵所)를 사적으로 경영하게 되면서 획기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철비는 크게 현감, 관찰사 등 지방수령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공덕비와 1684년 제작으로 서당을 운영하기 위하여 창립한 전남 진도 학계(學契)비 등의 사적(史蹟)비, 보부상 들이 세운 송덕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철은 과거 부의 상징이자 나무나 돌에 비해 강하고 영원하다는 믿음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중요한 공덕비 건립이나, 맹세의 상징으로 철비를 건립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철은 동양사상에서 악한 것을 물리치고, 지기(地氣)가 강한 곳을 누른다는 비보풍수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철비가 세워진 가문은 최고의 영광이었다고 한다. 철비는 17~18세기 들어 제작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을 보인다. 이것은 선정을 베푼 수령의 증가가 아닌, 역설적으로 원성을 듣던 수령이 직접 세우는 사례가 증가하며, 부를 축적한 중인계층들이 양반으로 신분을 바꾼 후 조상의 정통성을 가공하기 위해 철비를 세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떠한 이유로 철비를 제작하게 되었는지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으나, 오행(五行)사상과 관련 깊을 것으로 추정된다. 철은 곧 금(金)이다. 오행에 있어 '금'의 기운을 보면 '금'은 대지를 뜻하며, 그 색은 황금이며 황금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찬란한 휘광이다. 또한 금은 모든 쇠, 또는 철이기도 하기 때문에 음의 기운에 속한다. 금은 단단하고 변함없으며, 절대 부서지지 않는 강인한 기운을 지니고 있다. 이승이 양이라면 저승은 음이다. 이러한 오행사상과 철이 지니는 가치 때문에 철로 비를 제작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급격한 생산력의 증대가 이루어진다. 세종대 이후 농업기술의 발달에 기인한 바 크며, 17세기 이후 상업자본의 성숙과 함께 사대부와 견줄만한 재력을 모은 중인계층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사회여건 속에서 자신들의 권위와 부를 상징하기 위해 당시까지만 하여도 귀했던 철을 소재로 비를 건립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 지리학계의 카르스트 연구 (Karst Studies in the Korean Geographical Society: Achievements for the Past Fifty Years)

  • 박선엽
    • 한국지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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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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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7-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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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한국 지리학계의 카르스트 연구 성과를 논문발표 수에 근거하여 편의상 지난 50년을 초창기(1960-70년대), 도약기(1980년대), 성장기(1990년대), 발전기(2000년대)로 나누어 정리해보고자 한다. 카르스트 연구논문의 통계와 분류는 학회지별로 집계하여 연구주제별로 발표 빈도를 살펴보고, 이들 연구가 수행된 사례를 지역별로 분류했다. 카르스트 지형은 그 어떤 지형학적 주제보다도 '물'의 역할이 강조되는 연구 대상이다. 열대와 온대 기후 하의 카르스트의 형태, 경관, 생성 과정이 동일하지 않고 지역별, 고도별 카르스트의 특징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과거 기후변화 과정이 생각보다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을 하게 한다. 카르스트 지형은 지하수 사용, 토지이용과 같은 인간 활동과 연관되어 지반침하를 통한 재해 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계절적 강수현상, 석회암 분포, 표토의 특성을 함께 다룰 수 있는 자연지리 전문가의 육성이 앞으로 우리나라 재해 대응 역량을 키우는 데에 매우 중요하리라 사료된다. 또, 카르스트 지형이 갖는 특수한 경관은 그 자체로 심미적 대상이자 천연의 관광자원이므로, 이를 소개하고 탐구하며 개발하는 데에 지리학자들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

강제동원 구술자료의 관리와 활용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소장 구술자료를 중심으로- (Management and Use of Oral History Archives on Forced Mobilization -Centering on oral history archives collected by the Truth Commission on Forced Mobilization under the Japanese Imperialism Republic of Korea-)

  • 권미현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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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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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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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라 함은 만주사변 이후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시기에 일제에 의하여 강제동원 되어 군인 군속 노무자 위안부 등의 생활을 강요당한 자가 입은 생명 신체 재산 등의 피해를 말한다. 강제동원 피해 역사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피해당사자, 유족, 시민단체, 학계 등에서 이루어져왔고, 그 결과 2004년 3일 5일 ${\ll}$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등에 관한 특별법${\gg}$ (2007년 5월 17일 일부 개정)이 제정 공포되었다. 이를 근거로 2004년 11월 10일 국무총리 소속으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이하 강제동원위원회)가 발족하였고, 2005년 2월 1일부터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 업무는 강제동원 피해신고접수 및 피해신고조사(피해자 및 유족 심사 결정), 진상조사신청접수 및 진상조사, 진상조사 및 피해판정 불능에 관한 사항, 피해판정에 따른 호적정정, 강제동원 관련 국내외 자료수집 분석 및 보고서 작성, 유해발굴 및 수습 봉환, 사료관 및 추도공간 조성사업 등이다. 강제동원위원회는 피해조사 및 진상조사 업무를 위해 다양한 기록을 발굴 수집해 오고 있다. 여타 피해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이미 공개되었거나 새롭게 발굴되는 기록은 강제동원의 다양한 역사상을 확인하기 어려울 만큼 그 양이나 질에 면에서 부족하다. 피해의 역사에서 피해당사자의 이야기는 기록의 부재를 메우기도 하고, 기록 이상의 근거적 가치를 갖기도 한다. 강제동원위원회는 피해생존자와의 구술면담을 통해 다수의 구술자료를 생산하였고 조사업무에 활용하며 체계적인 관리방법을 토대로 관리하고 대중적인 활용까지 꾀하고 있다. 강제동원위원회의 구술자료는 생산 당시부터 철저한 기획에 의해 이루어졌고, 생산단계부터 관리와 활용의 편의성을 염두에 두고 디지털매체의 생산을 유도했다. 또한 조사업무 과정에서 생산되는 구술자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차례 면담자 교육을 실시하고, 면담자로 하여금 구술당시의 상황을 면담일지로 남기도록 했다. 강제동원위원회는 소장 기록을 관리하는 별도의 기록관리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피해 진상 관리시스템과 전자결재시스템을 통해 생산되어 관리되지 않는 생산 수집 기증 기록을 등록 검색하는 역할을 한다. 구술자료는 디지털 아카이브에 등록이 되어, 실물과 중복 보존되고 있다. 구술자료는 등록과 동시에 분류, 기술행위가 이루어지고 구술자료의 관리 아이디인 등록번호, 분류번호, 비치번호 등을 부여받게 된다. 강제동원위원회는 구술자료의 적극적인 활용을 위하여 구술기록집의 발간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고, 영상물 등의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강제동원위원회의 구술자료는 정부차원의 조사 업무 과정에서 생산된 것이라는 한계, 예산부족이나 기록관리시스템 등의 부재 등을 넘어서 한시조직으로서 가능한 적극적인 방법으로 생산 관리 활용되고 있다. 축적된 구술자료는 향후 특별법에 규정되어 있는 대로 사료관 등이 건립된다면 대중 이용자들을 위해 더 체계적으로 관리 활용될 것이다.

"표해록"에 나타난 조선 시대 선원 조직과 항해술 (Manning Structure and Navigation Skills of the Period of Chosun appeared in POHAE-Rok)

  • 김성준
    • 한국항해항만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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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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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87-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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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조선시대의 선원 조직과 항해술과 관련해서는 조운선의 선원 조직과 선단 편성 등만이 알려져 왔고, 일반 선박의 선원 조직이나 항해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조선 성종대 바다에서 표류한 경험담을 기록한 최부의 $\ulcorner$표해록$\lrcorner$은 그동안 국문학계에서 광범위하게 연구된 바 있지만, 정작 바다에서 조선의 선원들이 어떻게 항해하여 안전하게 중국에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연구된 바가 없었다. 이 소고에서는 최부의 $\ulcorner$표해록$\lrcorner$에 나타난 조선 시대 선원 조직과 항해술에 대해서 상세히 도출해 내고, 조선 영조대의 장한철의 $\ulcorner$표해록$\lrcorner$과 비교함으로써 두 선박이 상이한 표류 결과를 내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규명해보고자 한다.

자동차 충격흡수기의 감쇠력 시험기 개발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Development of Damping Force Tester for Vehicle Shock Absorber)

  • 박석주;이장용;손일찬;이선일
    • 한국소음진동공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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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소음진동공학회 1992년도 추계학술대회논문집; 반도아카데미, 20 Nov.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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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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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
  • 최근 우리 나라도 자동차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생산량도 급증하 고 있어 자동차 공업이 산업의 최고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자동차는 최 신 종합 기계 구조물로서 전기, 전자, 제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양의 학문적 이론과 기술을 도입하는 최첨단의 기계 장비인것이다. 따라서 그 부 가가치 또한 매우 큰 것이다. 자동차의 성능을 결정짓는 가장 커다란 요소는 주행 성능과 안정성 및 조종성이다. 주행성능이라 함은 자동차의 종방향 운 동에 관한 성능으로서 기관의 동력에 지배적인 영향을 받는 성능(동력 성능) 과 그 밖의 성능(타향 성능, 제동 성능)으로 구분된다. 또 안정성과 조종성이 라함은 자동차의 횡방향 운동에 관한 성능으로서 로울링과 요우잉을 포함시 킨 곡선 운동에 관한 성능을 일컫는다. 이러한 운동 성능을 좌우하는 것은 구조적인 설계의 양부와 스프링이나 댐퍼의 성능일 것이다. 자동차의 수많은 부품 중의 다수가 국산화 되어 있지 아니하고, 또한 이러한 부품들의 성능을 시험할 수 있는 장비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것은 업계나 학계 등에서 앞으 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점이다. 자동차의 충격 흡수기(shock absorber)의 검사기도 또한 수입 시험기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었 다. 이에 본 연구진은 이 검사기의 국산화에 착수 한 것이다. 자동차에 있어 서 충격 흡수기는 지면에서 오는 충격을 급속히 흡수하는 역할을 하여 자동 차의 주행 성능과 안정성을 높혀 주며, 승차감을 높혀 주는 중요한 부품이 다. 따라서 충격 흡수기의 양부의 판정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본 연구에 서는 충격 흡수기의 충격 흡수력(감쇠력)을 측정하여 감쇠 특성을 정도 높게 파악할 수 있는 시험기를 만드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연구는 시험기의 구동부를 제작하는 기계부와, 제어 및 계측의 하드웨어를 담당하는 전기.전 자부및 실제로 기계를 구동, 제어하고 측정 결과를 기록하고 출력하는 부분 을 담당하는 소프트웨어 개발부로 나누어서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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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管子)』 4편(篇)에 나타나는 "심(心)"개념연구(槪念硏究)

  • 윤지원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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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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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9-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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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관자(管子)" 사편(四篇)은 전국 말 직하황노도가(稷下黃老道家)의 문헌으로 중국철학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관자(管子)" 사편(四篇)은 문헌과 저자에 대한 기록이 불확실하고 제자백가의 사상을 포괄적으로 수용 복잡한 사상체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오랜시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40년대 학자들은 중국철학 사료를 다시 정리하였고 이때 곽말약(郭沫若)에 의해 "관자(管子)" 사편(四篇)의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1994년 "직하황노학파적비판(稷下黃老學派的批判)"과 "송견윤문유저고"에서 곽말약(郭沫若)이 "관자(管子)" 가운데 "심술(心術)" 상하(上下), "백심(白心)", "내업(內業)"의 사편(四篇)를 송견(宋?)과 윤문(尹文)의 저작이라고 주장한 이래 고문헌의 출토와 더불어 "관자(管子)" 사편(四篇)는 다시 학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관자(管子)" 사편(四篇)의 저작 시기는 전국말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사상의 르네상스라고 불릴 만큼 많은 학자들이 저마다의 독특한 논리들로서 당시의 사회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였던 시대였다. 농업생산력의 향상과 교통의 발달로 많은 지식인은 제(齊)나라의 직하(稷下)에 모여 전대의 역사적, 철학적 유산을 기반으로 심(心)과 도(道)에 관한 논의를 벌였고, 그 통합적 저작물이 "관자(管子)" 사편(四篇)이다. 때문에 "관자(管子)" 사편(四篇)는 전국시대 제자학(諸子學)을 총정리하는 종합서의 성격을 가진다. 본 연구의 목적은 "관자(管子)" 사편(四篇)에 나타나는 심(心)개념의 연구를 통해 전국말 직하황노도가(稷下黃老道家)의 심(心)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는데 있다. 이를 위해 먼저, "관자(管子)" 사편(四篇)의 중심철학범주인 도(道), 기(氣), 정기(精氣)와 심(心)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보고, 다음으로 "관자(管子)" 사편(四篇)에 보이는 심(心)의 개념분석을 통하여 구체적인 심(心)의 구조와 기능에 대하여 탐색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심(心)과 그 수양론(修養論)에 대하여 검토할 것이다.

연합학습의 인센티브 플랫폼으로써 이더리움 스마트 컨트랙트를 시행하는 경우의 실무적 고려사항 (Practical Concerns in Enforcing Ethereum Smart Contracts as a Rewarding Platform in Decentralized Learning)

  • ;;장설아;이경현
    • 정보처리학회논문지:컴퓨터 및 통신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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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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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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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탈중앙화 접근법은 기존 시스템의 데이터 프라이버시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산·학계에서 폭넓게 연구되고 있다. 블록체인은 기록된 데이터는 위조할 수 없으며 합의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이루고 전반적인 거래의 비용은 저렴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연합학습은 데이터 집합을 공개적으로 노출하지 않고 다수의 장치를 집합적으로 사용 함으로서 딥러닝 모델을 개선할 수 있게 한다. 모델 구축을 위해서는 자원을 사용하도록 참여자들의 동기 부여를 위한 적절하고 참여 비율에 합당한 인센티브 제도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중앙집중화된 인센티브 메커니즘은 중간 계층에 의존하고 여전히 병목현상을 유발하기 때문에 연합학습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더리움 스마트컨트랙트를 활용하여 연합학습 어플리케이션을 위한 인센티브 모델을 제안한다. 구현 결과는 설계 목표를 충족하였고, 마지막 절에서 연합학습에서 프라이버시 및 데이터 유출과 관련된 민감 데이터에 대한 본 구현을 실행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사항들을 설명한다.

매실산과 금아말감을 이용한 월지 출토 금동삼존판불의 금도금법 복원 (Restoration of gold guilding on Geumdong-samjonpanbul excavated from Walji, Gyeongju using plum acid & gold(Au)-mercury(Hg) amalgam)

  • 윤용현;조남철;이태섭
    • 한국표면공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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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표면공학회 2018년도 춘계학술대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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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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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에서는 고문헌에 기록된 도금 재료와 도금법 등을 확인하고 이를 기초자료로 활용하여 매실산을 사용한 금(Au)-수은(Hg) 아말감기법으로 고대 도금(鍍金)기술을 되살리고, 이를 토대로 경주 월지에서 출토된 금동삼존판불을 복원하였다. 먼저, 전통 도금법을 되살리기 위해서, "오주서종박물고변", "확지신편", 조선시대 각종 의궤 등에 공통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매실에 주목하고, 매실을 3~4개월 발효 숙성 후 착즙한 뒤 그것을 농축하여 만든 매실산을 도금 실험에 적용하였다. 금아말감 도금을 위하여 월지 출토 금동삼존판불의 바탕소지금속인 청동삼존판불을 구리와 주석 89:11(Cu:6kg, Su:750g)로 합금하여 주물사 주조법으로 복원하였으며, 동일한 합금비로 제작된 $2.3cm{\times}3.5cm$(가로${\times}$세로)의 시편에 사전 실험을 실시하였다. 현대적 산처리 방식에 사용되는 질산과 전통방식으로 사용되는 매실산으로 시편에 산처리 한 후 각각 비교해 보고, 금분과 금박, 상온과 가온에 따른 아말감상태를 비교하는 실험을 진행하였는데, 실험에 사용된 매실산 70%는 pH가 1.94로, 오늘날 산처리에 사용하고 있는 질산 20%와는 차이가 있지만, 청동 시편 실험을 통해 매실산에 20분 정도 담근 뒤 금아말감을 도포 후 24시간 지나 가열($380{\sim}400^{\circ}C$) 했을 때 금도금이 잘 되어, 현대적 방법인 질산처리로 도금을 한 시편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사전 실험을 통한 결과를 적용한 월지 출토 금동삼존판불 복원은 청동삼존판불 표면처리, 금-수은 합금 및 도금하기, 도금 후 표면처리의 순서로 진행되었는데, 금과 소지금속의 밀착력을 높이기 위해 표면을 숯을 이용해 탈지한 후 물로 씻어내고 매실산을 도포하여 20분 동안 두어 부식 및 세척을 시행하였다. 금도금을 위한 금-수은아말감은 가온할 때 수은이 증발하는 양을 고려하여 금1 : 수은10 비율로 합금하여 완성하였으며, 금아말감 도포 후 약 24시간 지난 다음, $380{\sim}400^{\circ}C$에 가열하여 수은을 기화시켜 도금작업을 완성하였다. 금아말감도금은 평균적으로 6~7차례 시행하여야 완벽히 도금되지만, 본 연구에서는 단 4차례의 도금만으로 금아말감도금을 완성시켰는데, 이것은 금아말감을 바탕소지인 청동에 도포한 후 24시간 동안 금아말감과 청동과의 반응 시간을 두게한 것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청동시편을 이용한 실험과 과학적 분석을 통하여 입증하였다. SEM으로 표면을 관찰한 결과 아말감 도포시간이 즉시인 경우 도금이 거의 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36시간이 넘어갈 경우 금 도금층이 불균일하게 관찰되었으므로 도금시간은 12시간~24시간 이내가 적절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EDS로 성분을 분석한 결과 산처리 시간이 20분인 시료의 경우 5 wt% 내외로 수은의 비율이 다른 시료에 비해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험 및 분석결과 산처리 시간이 20분이고 아말감 도포시간이 24시간일 때 도금이 잘 이루어지므로 이 결과를 토대로 금동삼존판불을 복원하였다. 이번 연구를 통해 도금법에 표면을 세척하고 부식시키기 위해 사용한 물질이 매실산임을 찾아내어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점 에서 이 연구의 가장 큰 의미는 전통 소재와 기술을 복원한 것으로, 앞으로 매실산을 이용한 금 도금기술은 관련 학계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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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수목원 수우(樹友)표본관(SNUA)에 소장된 채집표본을 근간으로 한 이창복교수의 채집기록 (Field records of Dr. Tchang-Bok Lee based on herbarium specimens deposited at SNUA)

  • 장진성;김휘;전정일
    • 식물분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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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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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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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수우(樹友) 이창복교수는 1946년 서울대학교에 부임하여 1984년 퇴임하기까지 우리 나라 식물분류학계의 기반을 다지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특히, 1952년부터 1984년까지 33년간 남한지역에서 약 7만여 점의 표본을 채집하여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수우(樹友)표본관(SNUA)의 근간을 확립하여 체계적인 국내 최대의 표본관으로 발전시켰다. 시기별 주요 채집 활동으로 1950년대는 소지 식별을 위한 채집과 박사학위 논문연구를 위한 채집, 1960년대는 1920-1930년에 걸쳐 일본학자인 T. Nakai가 채집한 희귀식물에 대한 분포 확인차원의 채집을 시도한 시기였고, 1970년대와 1984년까지 학술조사 목적으로 특정지역의 식물상을 조사하는 채집이 주를 이루었다. 이창복교수는 참나무속과 싸리속 표본에 대한 채집과 기타 목본, 희귀식물과 관련된 수집을 직접 현장에서 식물을 확인하고 확증 표본 확보에 주력하여 현재 SNUA의 소장표본이 전국 주요 지역 식물상의 대표성을 가지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특히 이창복교수의 1950년 후반에서 1960년 초반에 걸쳐 채집하여 연구한 아시아산 낙엽성 참나무속에 대한 결과는 많은 관련 연구에 근간이 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표본을 제외한 기타 채집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 주요 채집지와 채집 날짜 이외에 조사와 채집의 목적을 명확하게 검증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