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군사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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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의 축소된 공간 범위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Reduced Spatial Extent of DMZ)

  • 정규석;신현탁;김상준;안종빈;윤정원;권영한;허태임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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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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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5-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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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정전협정으로 설치된 한반도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 일대는 정치적 군사적 위상과 더불어 역사적 생태적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오늘날 국 내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DMZ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나, 정작 연구의 대상이 되는 DMZ 공간의 실제 범위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매우 미비한 실정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서쪽의 임진강 하구에서 동쪽의 고성군 명호리에 이르는 DMZ의 정확한 범위를 제시하고자 수행되었으며, 연구를 진행한 결과 DMZ의 면적은 약 $570km^2$로 기존에 알려진 $992km^2$에서 현재 43%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155마일로 대변되는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 길이의 경우 현 상황에서의 정확한 실측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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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만 연안에 축성된 성(城)의 유형과 기능에 관한 역사지리적 연구 (A Historical Geography of the Castles in the Sacheon Bay Region)

  • 이전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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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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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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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사천만은 남해안으로부터 경남 서부지역으로 들어오는 관문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군사적 요충지였다. 사천만 연안에 많은 성(城) 혹은 성지(城地)가 산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천만 연안이 군사적 요충지였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사천만 연안에서 사천읍성, 곤양읍성, 성황당산성, 이구산성, 성방리산성, 신벽동산성, 덕곡리산성, 백천동산성, 각산산성, 선진리성, 사등산성지, 금성리 토성, 월성리 토성지, 각산봉수대성지, 안점봉수대성, 침지봉수대성지, 우산봉수대성, 통양창성지, 가산창성지, 장암창성지 등 20여개의 성 혹은 성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본 논문에서는 행정적인 기능과 군사적인 기능을 복합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축조된 성을 읍성이라고 분류하였고, 주로 군사적인 기능만을 수행하기 위한 성을 유사시용성이 라고 명명하였다. 사천만 연안에서는 창성이나 봉수대성과 같이 전형적인 읍성이나 유사시용성에 속하지 않는 성도 발견되었다. 성은 축조 재료에 따라 토축성, 석축성, 목책성, 전측성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위치에 따라 평지성, 산성(산정식 포곡식), 평산성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류 기준으로 볼 때, 사천만 연안에는 매우 다양한 유형의 성이 발견되었다. 사천만 연안에 산재하는 다양한 유형의 성 혹은 성지는 지역의 문화재 발굴 보존이라는 점에서도 연구의의가 있고, 또한 관광자원으로써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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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신작로’의 건설과정과 도로교통체계 (Road Transportation System and ‘Sinjak-ro’ in Daehan Empire Period)

  • 도도로키히로시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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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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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8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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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본 논문은 구한말에 ‘신작로’의 건설과정을 시ㆍ공간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교통체계의 급변기에 그것이 어떤 계기로, 어떤 과정으로. 어떤 양태로 진행되었는지를 역사지리학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연구의 규모는 전국 스케일로 하여, 연구시기는 통감부 시정하에 있었던 1905년부터 1910년까지로 하였다.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작로의 계획 및 건설의 목적은 군사적인 목적보다 경제적, 행정적 목적에 치중하고 있었다. 노선은 중요한 두 지점간을 연결하는 단거리 노선이 많았고, 도로를 이용한 네트워크 구성은 간과되었다 둘째, 노선형태는 한일합방 이전에 일본인들이 활동 근거지로 삼은 개항장이나 철도역과 인근의 경제적으로 관심을 가진 장소 혹은 도청소재지 등 지역중심지를 연결하는 형태를 취했다. 셋째, 간선철도가 이미 존재하던 곳에서는 철도역을, 철도가 없던 지역 즉 함경도나 전라도 등지에서는 개항장 등 항구를 기점으로 한 교통체계를 보였다. 종래 서양 연구자에 의한 교통발달모델은 항구 중심으로 내륙 진입노선이 생기고, 최종단계에서 내륙 관통노선이 형성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한반도의 경우 진입노선보다 먼저 간선철도라는 내륙관통노선이 군사목적으로 생겼기 때문에, 독특한 교통발달단계가 나타났다. 이는 동시에 기존모델을 절대시하는 시각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 것이기도 하며, 국가, 지역마다 발달모델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목판본 "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의 특징과 가치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Wood Block Printed Daedongyeojijeondo)

  • 오상학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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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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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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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대동여지전도는 표기된 지명과 "대동여지도"와의 관련성으로 볼 때 1861년대에서 1866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동여지전도"는 일부에서의 주장처럼 내용이 조잡하고 오류가 많은 지도가 아니라 오히려 "대동여지도"의 표현기법을 활용하면서도 최신의 정보를 수록하고 있으며 도리(道里)의 표기에서는 19세기의 대표적인 목판본 지도인 "해좌전도"보다 훨씬 뛰어나다. "대동여지도"가 군사 행정적 목적에서 제작된 관부용(官府用)지도라면 "대동여지전도"는 군사 행정적 사항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 내용들도 많이 반영된 대중용 지도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대동여지전도"에는 당시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산천인식 체계가 잘 반영되어 있는데, 국토를 살아있는 생명체에 비유하는 유기체적 관점이 지도를 관통하고 있다. 또한 산수분합(山水分合)의 원리가 지도상에 잘 구현되어 있으며 도로망과 거리의 표시, 호수(湖水)영향권의 표시 등은 현대지도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사천만 연안의 지역 변화에 관한 연구 -교통.수산업.공업 기능의 변화를 중심으로- (The Historical Geography of Sacheon Bay Region -with Special Reference to Transportation, Fishery, and Industry-)

  • 이전;곽철홍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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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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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9-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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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경남 남해안의 사천만 연안은 경남 서부지역의 관문 역할을 수행하였고, 그로 인해 군사적 요충지로 간주되었으며, 갯벌이 넓고 각종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일직부터 양식업과 어로업이 활발하였다. 이와 같이 사천만 연안은 역사적으로 경남 서부지역에서 해상교통 및 군사적 요충지, 또한 수산업이라는 기능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그런데 오늘날 사천만 연안에는 공항과 고속도로가 확충되어 항공 육상교통의 기능이 중요하게 부상하고 있고, 공단이 조성되어 많은 제조업체들이 입지함으로써 공업기능이 새로운 기능으로 대두되고 있다. 또한 사천만 연안의 육상 및 항공교통 발달은 지역의 관광자원개발을 좀 더 구체화시키고 있다. 지역의 전통적 기능들이 쇠퇴하는 대신에 공업, 교통, 관광 등 새로운 기능들이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천만 연안 지역이 급격한 지역 변화를 경험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본 연구의 연구목적은 이 지역에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교통 군사 수산업 관광 공업 기능의 변화 과정을 동태적으로 분석 정리함으로써 지역의 특성을 구명하는 데 있다. 특히 본 논문은 이 지역의 전통적 기능들과 오늘날 부상하고 있는 다양한 기능들을 밀접한 관련하에서 이해할 수 있음을 서술적으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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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호남 의병토벌대의 진중일지(陣中日誌)에 이용된 전투약도 연구 (The Battle Maps in the Journal of Armed Forces of Japanese Army Suppressing the Honam's Patriotic Soldiers)

  • 남영우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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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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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07-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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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항일의병대를 소탕하기 위해 한국에 파견된 일본군 보병 제14연대가 작성한 "진중일지"의 전투약도를 고찰한 것이다. 분석결과, 이 일지에 기록된 전투상황보고에 의하면 일본군이 압승을 거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토벌대의 일방적인 전투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지형도 때문이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일본군이 사용한 작전지도는 군용비도라 불리는 1:5만 축척의 제1차지형도를 필사한 지도였음이 규명되었다. 토벌대가 사용한 지형도의 축척은 대부분 1:5만이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1:2만 축척의 지형도가 이용되기도 하였다. 이는 치밀한 군사작전을 위해 더 상세한 지형을 묘사하기 위해 제1차지형도를 확대한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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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지도학의 발달과 국가 형성 -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 (Development of Cartography and State-building in France from the Sixteenth Century to the Eighteenth Century)

  • 정인철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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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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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5-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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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본 연구의 목적은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기까지의 프랑스의 국가 형성과 지도학 발달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영토의 방어와 확장을 목적으로 하는 군사지도의 발달을 살펴보았다. 둘째, 식민지 확장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해외 지도의 발달과정을 고찰하였다. 세 번째로 국가 표상으로서의 국가 기본 지도의 발달과정을 살펴보았다. 네 번째로, 국민의식 함양을 목적으로 한 아틀라스의 발달과정을 고찰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지도가 프랑스의 국가형성에 미친 영향에 대해 종합적으로 논의하였다.

우리나라 신문에 나타난 미디어 지도의 성장과 특성에 관한 연구 (Characteristics and Growth of Media Maps in Korean Newspapers)

  • 장영진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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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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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7-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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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본 연구에서는 저널 지도학(journalistic cartography)의 연구 성과를 검토하고 우리나라 신문에 등장하는 미디어 지도의 양적인 성장 과정과 미디어 지도의 유형 및 내용의 변화를 고찰하고 지도 제작술의 진전에 따른 미디어 지도의 형태적 특성을 살펴보았다. 연구 결과를 정리해보면. 첫째, 우리나라 최초의 미디어 지도는 한성순보에 등장하는 '지구전도' 이며, 출현 시기는 1880년대로서 영미권 미디어 지도의 출현 시기와 유사하다. 둘째, 미디어 지도의 양적인 측면과 관련된 출현 빈도의 시계열적인 추이는 정치$.$경제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내용 면에서는 국제 분쟁 및 군사적 충돌에 집중되었던 신문 발행 초기에 비하여 점차 다양화되고 있다. 셋째, 지도의 형태는 필사 지도로부터 CTS 하에서 제작한 지도에 이르기까지 지도 제작 환경의 발전에 따라 시기별로 상이 한 특성을 나타낸다.

조선-일제강점기 동래읍성 경관변화 연구 (A Study on the Historical Landscape of Dongrae Ciy-wall in Busan)

  • 김기혁;김성희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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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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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7-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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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본 연구는 동래 읍성의 입지, 성곽 형태 및 도로망. 관아 및 가옥분포 토지이용 등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경관 복원을 시도한 후.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변화를 파악하여 이를 사회ㆍ문화적인 측면에서 설명하고자 하였다. 가야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되었던 현재의 장소에 고려말 읍성이 이전 입지한 것은 해안방어 요충지와의 접근성을 최대로 하기 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읍성이 위치한 장소는 동래부의 중심 공간으로 등장하였다. 이와 같은 입지 특성은 4대문 위치 및 성안의 도로망 분포 등에 영향을 주었다. 관아시설의 배치는 중앙 권력의 상징. 읍성 군사 방어 기능과 관련되어 배치되었다. 객사 입지는 중심공간에 지형을 이용하여 권력 질서의 위계를 반영하였으며. 좌측에 동헌. 우측에 향청 및 군사 기능이 배치되었다. 읍성내 취락은 남문을 중심으로 분포하였고. 산록부는 농경지로 이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중 1920년대 시행된 시구개정사업으로 성벽이 철거되었고, 성안에 격자상의 도로망이 신설되었다. 평지에 있던 성벽 자리는 도로용지나 주택지로 이용되었다. 객사와 동헌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성안의 공간구조가 변화되었고. 관아건물은 공공기관으로 사용되거나, 민간인에게 불하되어 다른 용도로 이용되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읍성이 위치하였던 장소의 상징적 의미는 쇠퇴되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읍성은 부산시민에게 역사적인 중심공간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일부 경관을 중심으로 복원작업이 시도되고 있다. 연구 결과는 읍성이 단순히 건축물이 아닌 당시대의 사회문화가 투영된 경관이며, 각지방에 소재한 읍성은 새로운 시각으로서 재조명되어야 할 것임을 보여준다.

인천광역시 접경지역 토지이용규제에 관한 연구 (A Study on Land Use Regulation on Border Area of Incheon Metropolitan City)

  • 정진원;윤현위;이종현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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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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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5-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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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인천시 강화군 및 옹진군은 접경지역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군사규제 등의 상이한 토지이용규제를 적용받고 있으며, 행정구역상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각종 토지이용규제를 중첩적으로 적용받으면서 경제적 낙후와 쇠퇴가 심화된 지역으로 전락하였다. 접경지역을 위한 접경지역지원특별법, 특수상황지역 개발사업 등 상이한 지원 또한 실시되고 있으나 지원사업의 비현실성, 법령의 위계 등의 문제로 여전히 규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인천시 접경지역이 갖고 있는 지역적 특성, 즉 접경지역으로서 상이한 토지이용규제에 대한 중첩규제를 이제는 완화해야할 시점이라고 판단하고 본 연구를 실시하였다. 인천시 접경지역에 대한 군사규제의 유연한 해제 및 운영, 수도권정비계획법 규제완화, 문화재 보호구역 등의 완화 등을 통한 전반적인 토지이용규제의 완화가 요구되며, 특히 인천시 접경지역은 접경지역의 특수성과 수도권과의 지역적, 문화적 여건이 상이함을 인정하여 수도권 범위에서 제외시켜 중첩규제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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