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덴탈은 대수적 위상수학과 기하학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으며, 수학사와 수학교육에도 크게 이바지한 수학자다. 많은 업적 중 가장 인정받는 것은 1970년대,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새수학으로부터 네덜란드의 수학을 보호한 것이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ICMI의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현실적 수학교육의 기초를 다졌으며, 또 세계 수학교육에 영향을 끼치는 ICME 개최로 그 위상을 높인 점이다. ICMI의 회장이었던 Bass가 프로이덴탈이 회장으로 재임하였던 기간을 프로이덴탈 시대라고 명명하였으며, 많은 수학교육학자들 역시 ICMI의 역사를 프로이덴탈 이전 시대와 프로이덴탈 후기시대로 나누는데 동의할 정도로 그가 ICMI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하다. 이 논문에서는 프로이덴탈의 생애를 돌아보고 그가 ICMI를 통하여 세계수학교육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호주 정부는 1988년이 유럽인의 호주 이민 200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여 대대적인 행사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 행사의 일환으로 1988년 7월 9일 부터 21일 까지 "제29회 국제수학경시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대회의 주최측에서는 우리나라에도 중ㆍ고등학생의 참가를 요청하였다. 필자들은 이 대회에 우리나라 대표를 파견할 경우를 대비하여 그 동안 IMO에 관한 여러가지의 정보를 조사한 바 대회 참가 여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참가의 필요성 (1) 중ㆍ고등 학생들에게 수학에 관한 관심을 높히고, 나아가서는 모든 국민에게 과학적인 사고의 향상을 기대한다. (2) 궁극적으로 수학을 위시한 기초 과학, 응용 과학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도가 높아져서 수학자 및 과학자의 저변 확대를 기대할 수 있고, 특히 수리적인 사고력이 뛰어난 사람을 조기에 찾아내어 2000년대의 과학 선진국 건설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을 인력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3) 현재 중ㆍ고등학교 수학 교육이 계산 위주, 암기 위주로 되어 있고, 학력 고사를 위시하여 많은 시험이 객관적으로 사고력 배양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 IMO 참가자를 선발하기 위하여 거국적인 경시 대회를 개최한다면 자연히 이를 대비한 주관식 문제를 접할 기회를 가지게 되고, 따라서 수학 교육의 목적중의 하나인 사고력 배양을 기대할 수 있다. (4) 우리 국민의 조직적인 사고력과 과학적인 두뇌를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5)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국제 대회의 기회를 주므로써 장차 우리나라의 수학 수준을 국제적으로 높힐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 2. 우리나라 학생이 IMO에 참가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둘수 있는지 여부 (1) 절대적으로 있다. 참가하는 첫 해부터 상위권에 들어갈 것이다. 우리의 중ㆍ고등학교 수학 수준이 세계 평균보다 약간 높다. 그리고 몇 년의 경륜을 쌓는다면 세계 1, 2위에 도전 할 수 있다. 이것은 올림픽이나 아시아 게임에 기울이는 비용의 몇 만분의 일을 가지고, 그 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국력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이다. (2)매년 그 성적이 올라가리라 생각한다. 예로서 우리와 비교하여 형편없는 국력을 가진 몽고가 8년간 꼴찌를 하다 1894년 대회에서 참가국 33개국 중에서 10위를 차지하였다. 미국은 참가 첫 해부터 2위를 하였고, 11년 동안 1위 2번, 2위 4번을 하였으며, 매번 5위 이내에 머물렀다. (3) 월남은 그 나라의 사정때문인지 자주 참가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참가할 때마다 항상 상위권에 속하였다. 이것은 월남 국민들의 수학에 관한 관심도를 나타낸다고 본다. 우리 국민도 월남 국민에 못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3. 한국수학교육학회가 주관하여 뛰어난 학생을 선발 할 수 있는지 여부 (1) 있다. (2)한국수학경시대회 (KMO) 위원회를 한국수학교육학회 산하에 구성하여 KMO를 주관하게 하고, 또 국내의 여러 수학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나타낸 학생중에서 일정한 인원(50명 정도)을 선발하여 특별히 선정된 훈련팀으로 하여금 조직적인 훈련을 시킨다면 된다. 4. 기타 (1) 과거 어떠한 형태로든 국제 대회에 참가한 경력은 전혀 없다. (2) 1960년대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생회에서 주최한 수학경시대회가 있었으나 보잘것이 없었고, 현재에도 각 시도별 또는 대학주관의 경시대회가 있으나 거국적인 호응을 받지 못했다. 물론 국제 대회에 참석시키는 것은 엄두도 내지 않았다.
2014년 8월 13일에서 21일까지 서울에서 ICM(국제수학자대회) 이 열린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ICM은 4년에 한 번씩 열린다. 클라인 (Klein) 에 의하여 ICM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칸토어 (Cantor) 가 먼저 국제수학자대회와 국제수학자연합체를 꿈꾸고 씨앗을 뿌렸다. 이 논문에서는 ICM이 시작된 계기와 ICM 초기인 1회부터 5회까지의 회의 발전 과정을 자세히 알아본다. 특히 ICM의 공식언어의 변화, 참석자들의 수의 변화, 논문발표의 수, 기조강연자의 구성, 수학 분과의 변화등을 통하여 20세기 초반 수학의 발전상을 함께 연구 한다.
20세기 초에 발생하였던 제1, 2차 세계대전들은 유럽 사회뿐만 아니라, 수학계에도 지대한 손실을 끼쳤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탄생되었던 국제 수학연맹(IMU)은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던 이유로 해체되어졌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함에 따라 모든 국제 학회모임은 중단되었다. 독일에 나치정권이 들어선 후, 많은 뛰어난 수학자들이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거나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학문의 중심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심각한 정치 경제 위기에 처한 유럽의 학자들은 수학계를 대변할 능력을 잃었다. 이에 국제적인 의무감을 갖게 된 미국의 스톤(Stone)을 비롯한 수학자들은 정치에 상관없이 모든 나라가 가입할 수 있는 새 IMU를 탄생시킨다. 이 논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IMU의 재탄생 과정과 1950년도의 ICM에서 일어난 일들을 면밀히 알아봄으로써 20세기 중반의 수학계의 발전상을 연구하고자 한다.
1914년에서 1918년까지 일어났던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사회의 모든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학술분야에서도 갈등이 나타났고 수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쟁에서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불가리아, 터어키를 비롯한 강대국이 패전한 후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며 유럽의 지도가 바뀌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들은 1919년 국제연구협의회(International Research Council) 를 창설하고 그 산하에 국제 수학연맹 (IMU) 을 만들어 은밀히 독일계의 수학자들을 배제하는 정책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그 정책은 심한 비판을 받았고 1928년 ICM에는 모든 수학자들이 초대를 받았다. 결국 그 정책을 반대하던 많은 수학자들의 노력으로 1932년에 IMU가 폐지되었고 수학자들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IMU는 1951년에 재창조 될 때까지 거의 20년간 사라졌었다. 첫 번째 IMU가 존속하던 시기는 정치가 수학회에 영향을 끼쳤던 시기로 평가되어지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1920년부터 1932년까지의 ICM과 제 1차세계대전이 수학협회와 수학자들에게 끼친 영향 등을 알아봄으로써 20세기 초반의 수학계의 발전상을 연구하고자 한다.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입상자들의 성취에 영향을 준 요인에 대해 여러가지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 중에는 자녀의 과학적 능력과 성공가능성에 부모, 교사, 사회의 믿음과 태도가 논의되었고, 이로 인한 학습경험의 기회 제공 정도, 경시대회 참가 준비 및 참가 경험 여부 등이 많이 논의되어왔다. 전세계적으로 여학생 입상자의 수가 적은 현상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있어온 바, 이 연구에서도 왜 여학생 입상자의 수가 적은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하였다. 우리나라 국제 올림피아드 남녀입상자들 모두 올림피아드 입상자 중에 여학생이 적은 현상은 사회전반에 걸친 격려 부족과 과학고의 여학생 수 부족과 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학생 올림피아드 입상자의 부모들은 여자의 수학·과학적 재능 및 과학분야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남학생 입상자의 부모보다 더 강력하게 믿었고, 수학·과학분야에서 남학생 입상자의 부모보다 더 적극적으로 딸들의 재능을 키우기 위한 교육 환경을 조성하고 학습경험을 제공했던 점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학생의 과학자적인 능력과 과학자로서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교사의 믿음과 행동에 대해서는 남녀 입상자 모두 과학고등학교의 교사들이 과학고등학교 여학생에 대해서 편견을 갖지 않고 동등한 기회를 주려고 했다고 반응했다.
미국 수학계는 하버드대학이 근대수학 교과과정을 도입 한 후 280여년(1640년)이 지나고, 미국수학회(AMS;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 창립 후 30년(1890년 뉴욕수학회, 1894년 미국수학회)이 지난 1920년대에도 아직 열악한 연구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미국수학계에 국가연구위원회(National Research Council, NRC)를 통하여 수학분야에 최초로 박사후연구원을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고, 기금을 조성하여 프린스턴대학에 당시 세계 최고수준의 수학과 건물인 파인 홀(Fine Hall)을 건축했으며, 1932년 새로 생긴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에 A. 아인스타인(Einstein), 폰 노이만(von Neumann)등을 초빙하고, Math Review 창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며 미국에서도 수학자가 순수수학 연구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미국 초창기 수학자 O. 베블런(Osward Veblen)에 대하여 분석한다. 20세기 초반 대부분의 시간을 식민지 상태에서 보낸 한국은 20세기 후반에 회원들의 적극적인 학술활동에 힘입어 2008년 현재 국제수학연맹(IMU)의 5그룹(투표 수를 뜻함) 중에 4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더구나 2014년 국제수학자대회(ICM)를 서울에서 유치하게 되었다. 한국이 21세기를 한국 수학의 빠른 발전기로 만들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수학 후진국이었던 미국이 1876년 J. 실베스터를 초빙하여 연구 수준의 수학교육을 최초로 시작한 후 궁극적으로 시카고대학의 E. H. 무어(Moore)가 미국수학회장으로 리더쉽을 발휘한 1900년부터 단 100여년 만에 세계 수학 정상에 자리한 미국수학과 미국수학회의 예를 검증하여 찾아보고자 한다. E. H. 무어가 배출한 인재와 제시한 비전은 E. H. 무어의 제자, L. E. 딕슨(Dickson), O. 베블런, R. L. 무어와 G. D. 버코프(Birkhoff)를 통하여 미국에 구현되었다. 그 중 O. 베블런은 'Princeton algebraic topology' 그룹을 리드하며 미국수학 전반에 세계적인 연구여건을 조성한 탁월한 행정능력가 이었다. G. D. 버코프의 역할은 수학에 대한 학술적 기여의 비중이 컸다. 이들은 20세기 중반 미국이 세계 수학연구의 주류에 진입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9],[10],[21]). 수학자 베블런은 당대 미국 최고수준의 학술적 경지에 도달하였고 1923년 미국수학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자신이 미국수학계에 제시한 비전과 통찰력을 실제로 구현한 수학자, 리더, 그리고 창조적인 행정가였다. 본 논문은 수학자 베블런이 미국수학계에 끼친 전반적인 영향을 연구하고, 이를 통하여 미국 수학에 실질적인 경쟁력을 부여하며 미국을 세계 수학의 주류에 진입시킨 초창기 미국 수학계 리더의 역할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본 연구는 근대수학 교과과정 도입 110여년, 2007년 대한수학회 창립 60년을 맞으며 최근 20년간 커다란 발전을 이루어 양적인 면에서는 2007년 세계 12위로 평가된 한국의 다음 단계로의 발전에 대한 논지를 제공하고, 실제로 한국이 세계 수학의 주류로 진입하는데 필요한 구체적인 할 일(Action plan)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는 빠른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국내 과학기술계의 흐름에서 수동적인 추종이 아니라 수학계 스스로 연구-교육-봉사에 균형 잡힌 비전을 제시하고 추구하는 긍정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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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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