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구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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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후기구석기시대 측면몸돌과 돌날석기문화와의 기술적 맥락에 대한 연구 (A Study of Technological Context Between Sub-wedge Shaped Core and Blade Tool Culture of Upper Paleolithic in Korea)

  • 이헌종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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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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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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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우리나라 후기구석기시대의 가장 전형적인 문화기는 돌날석기문화와 세형돌날문화와 연관이 있다. 최근 고례리유적과 진그늘유적의 발견으로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돌날석기문화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세형돌날 문화는 동북아시아의 25,000년전에 시작된 아시아적인 소형화개넘(microlism)의 전형으로서 동북아시아의 석기문화가 통합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우리나라의 전역에 널리 퍼져있는 대표적인 문화기이다. 이러한 후기구석기시대의 일련의 유적들은 크게 돌날기법과 연관이 있으며, 우리나라 후기구석기시대의 몸돌 성형과 박리기법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문화 맥락적인 연계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자갈돌석기전통의 다층위유적 가운데 후기구석기시대 문화층으로 보고된 유적과 절대연대 상 40,000-25,000년 전의 후기구석기시대 유적들에서 확인되는 측면몸돌은 기술적 측면에서 전형적인 돌날석기문화와의 상관관계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화적 변이를 설명해 주고 있다. 이 몸돌은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의 후기구석기시대에 자주 출토되는 대표적인 몸돌 중 하나이다. 측면몸돌은 몸돌의 좁은 측면에서 많은 돌날을 떼어내고 재생을 하기에도 용이한 기술적 특징을 갖고 있으며 석재의 제약을 비교적 털 받는 전략적인 몸돌이었다. 우리나리에서 출토되는 측면몸돌은 돌날기법과 연관이 있으며 후기구석기시대로 진입하는 단계에 동북아시아에 정착해 가던 돌날석기문화와의 기술적인 교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기술적 기반을 갖고 있던 한반도에 점거하며 살던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돌날석기문화와 세형돌날문화가 등장하는 시기마다 적응 해 갈 수 있었을 것이며, 다양한 돌날몸돌을 다를 때 측면몸돌을 제작하던 기술로 인한 적응력도 높여 갈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의 후기구석기시대의 이른 단계로 편년되는 자갈돌석기전통의 유적들에서 이러한 몸돌들이 함께 나라나는 것은 후기구석기시대의 자갈돌석기전통의 연속성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이며 지역적인 적응의 결과의 하나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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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노은동 구석기유적의 석기 연구 (Paleolithic industry of the Noeun-dong site in Daejeon, Korea)

  • 한창균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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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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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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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대전 월드컵경기장 건립지역에 자리를 잡은 노은동 구석기유적은 $1998\~1999$년 사이에 두 차례 발굴되었다. 노은동 유적은 해발 약 $65\~75$미터의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퇴적물 분석과 연대측정 결과에 따라, 후기 갱신세의 퇴적층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석기는 4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4기는 중기 구석기시대 말기, 3기는 중기-후기 구석기시대, 2기와 1기는 후기 구석기시대에 속하며, 그 가운데 1기에서 가장 많은 석기가 출토하였다. 노은동 1기를 대표하는 유물의 대부분은 3지점에서 출토하였다. 이곳에서 출토한 유물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15,000년부터 10,000년 사이에 속한다. 돌감은 혼펠스, 석영, 규암, 안산암, 미문상화강암, 미화강암, 응회암 등으로 구성된다 전체 유물 가운데 혼펠스가 가장 많은 양L$(70.5\%)$을 차지하고, 그 다음은 석영$(23.4\%)$이다. 3지점의 석기는 몸돌, 잔손질되지 않은 격지류, 잔손질된 석기, 찍개, 여러면석기 및 자갈돌 부스러기로 이루어진다. 돌날과 좀돌날은 기본적으로 혼펠스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잔손질된 석기는 긁개, 밀개, 새기개, 홈날과 톱니날, 뚜르개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혼펠스로 만든 다양한 형식의 새기개는 노은동 1기의 석기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비교적 잔은 기간 동안 점유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3지점의 석기는 작고 가벼운 작은일석기(light duty tool)의 비중이 높게 나타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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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피서리구석기유적의 지질.고고학적 특성 (Geoarchaeology of the Piseo-ri Paleolithic site, Muan)

  • 이헌종;정철환;박성탄
    • 한국제4기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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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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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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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무안 피서리유적은 최근 서남해안 일대에서 확인되고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들에 대한 의미 있는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무안 피서리유적에 대한 층위 및 지질학적 분석결과는 토양쐐기의 특성이 토양의 굳기나 토양내부의 성분 함량 및 고지표면의 기복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지시해주고 있다. 피서리유적에서 중기 구석기 늦은 단계 또는 후기 구석기 이른 단계의 석기들이 함께 출토되었는데 이는 이들 석기가 산출되는 문화층이 최대 빙하 발달시기 이후에 형성되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활발한 침식과 재퇴적에 의해 여러 시기의 유물이 함께 재퇴적된 결과일 가능성을 지시해 주고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 구석기 유물의 분포와 토양쐐기와 같은 토양층의 특성은 고지표면의 기복 및 기후환경과 같은 자연환경적 조건에 의해 영향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고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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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뻬리고디엥 문화의 고형석기 (L'OUTILLAGE ARCHAIQUE DANS LE PERIGORDIEN SUPERIEUR)

  • Young-Wha Chung
    • 한국제4기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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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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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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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3
  • 프랑스 후기 구석기 중에서 제일 먼저 나타나는 문화의 하나인 뻬리고디엥 문화의 발전 단계에서 후기에 속하는 후기 뻬리고디엥 문화는 프랑스 남부 DORDOGNE 지방에 있는 FLAGEOLET유적으로 대표된다. 특히 이 유적의 제 6층에서 이 시기의 구석기가 많이 출토되었으며 이 중에서도 고형석기의 비율은 상당히 큰편이다 (31,23%). 이 비율은 전기 뻬리고디엥 문화의 고형석기의 비율 (58.92%) 보다는 낮은 편이지만 역시 말기 뻬리고디엥 문화의 고형석기 비율 (17.99%) 보다는 높다. 이러한 고형석기의 잔존 비율은 바로 프랑스 구석기문화가 중기구석기 더 나아가서는 전기구석기문화 전통에서 계속 이어져 발전되어 왔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해 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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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적 맥락에 따른 북한 구석기 연구 변화 (The Socio-Political Significance of Paleolithic Studies in North Korea)

  • 이형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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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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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6-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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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1950~60년대부터 현재까지 남한과 북한의 구석기 고고학 연구는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달려왔다. 수십 년간 서로 다른 가치의 구석기 연구를 해 온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 구석기 고고학의 궤적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 궤적이 놓인 정치·사회적 지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북한 구석기 고고학을 '읽기' 위해서는 문헌의 정보를 살피는 동시에 문헌의 밖을 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북한의 구석기 고고학을 읽는다는 것은 고고학적 연구와 함께 북한의 정치·사회적 특성을 연동하여 살핀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메시지나 사회적 변혁에 따른 구석기 고고학의 변이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특히 '도서 정리 사업'이라는 정치·사회적 사건과 이에 따른 학술 자료 인용의 관계성은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정치·사회적 일정과 관련하여 북한의 구석기를 읽기 위해서는 북한의 구석기 연구를 고고학적 자료와 같이 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고학적 자료를 각각의 속성으로 구분하여 연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1950~6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북한의 구석기를 여러 속성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여러 속성, 즉 세부적인 연구 단위를 찾고 그 연구 단위의 변화를 읽어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북한 구석기 연구 단위는 편년 연구, 사회 진화, 유물 조합, 인류 진화, 지질 환경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해당 다섯 가지 연구 단위의 세부적 내용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 세부 연구 단위의 변화는 크게 1950~60년대 이후, 1970년대 이후 그리고 2000년대 이후로 나누어 관찰이 가능하다. 새로 조사된 고고 자료로써 각 연구 단위의 내용은 누적되는 방향으로 변화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일종의 대응도 관찰된다. 각 연구 단위의 표지적 내용은 대체적으로 서로 대응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편년 연구의 특정 표지 개념은 인류 진화의 특정 표지 개념 그리고 사회 진화의 특정 표지 개념과 대응이 된다. 그 대응을 살펴보면 마치 잘 짜인 오면체 구조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각각의 연구 단위가 서로 공고히 연결될 수 있게 하는 연결의 특징도 관찰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중심 주제는 핏줄로 대표되는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초기 구석기 연구를 벗어나 '조선민족' 개념의 확산 이후, 기원, 계승, 계통은 구석기 연구에서도 중요한 담론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 담론을 담는 기능으로 각 연구 단위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를 충실히 이행하는데 있어 연구 단위는 서로 공고히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주택난방 변천과정

  • 전국보일러설비협회
    • 보일러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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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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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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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
  •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한반도 각지에서 발굴됨에 따라 이 시대부터라는 것이 자명한 사실로 인정된다. 그러나 이들 구석기인들이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이 된다고 할 수 없는데, 구석기 시대를 뒤이은 중석기 시대의 유적발굴과, 연구의 부족으로 중석기문화에 대한 단절이 있으며 신석기 문화가 새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한국인의 조상으로부터 시작되는 한국주거사, 나아가 주택난방의 시작은 당연히 신석기 시대부터 고찰해야 할 것이다. 본고는 조선시대까지의 한국전통주택건축의 난방설계를 이해케하며 이를 통하여 한국전통 생활사의 일부를 밝힌 고려대학교 주남철 교수의 논고 $ulcorner$한국의 주택난방 변천과정$lrcorner$을 전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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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금파리 구석기 유적의 구덩이 유구 형성과정 연구 (Formation Process of Depressions of the Kumpari Paleolithic Site Paju central Korea)

  • 배기동
    • 한국제4기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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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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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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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파주 금파리 구석기 유적에서 드러난 구덩이 유구들은 타원형이거나 약간 불규칙하 기는 하지만 타원형 또는 불규칙한 평면모양을 하고 있고 내부에 호소성 퇴적물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내부에서 구석기 유물들이 집중 출토되어 주목된다. 이유구의 형성요인 은 현재로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흐르는 물에 의해 침식이 된 흔적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면 서 생긴 구덩이 그리고 인위적인 가공등을 들수 있는데 현재로서는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많지만 인위적인 변형이나 이용가능성을 전혀 배제 할 수는 없다. 여하간에 이러한 작업가설들 모두가 아직은 검증되지 못한 단계로 앞으로 이러한 현상에 대한 직접관 찰을 반복함으로써 설명될수 있을것으로 보이며 구덩이의 형성과정의 복원과 함께 이러한 구덩이가생길 수 있는 기후 및 지질환경의 복원은 구석기인들이 생활을 복원하는데 주용한 시사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구석기 유물 유적을 활용한 지구과학 학습자료 개발 및 활용 방안 (A Development of Earth Science Learning Materials Using Paleolithic Remains and Its Applications)

  • 조규성;이헌종;김정빈;정덕호;신민정
    • 한국지구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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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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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9-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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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본 연구에서는 학생들의 과학적 흥미와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영산강 유역에서 발굴된 구석기시대 유물 유적을 활용하여 지구과학 학습 자료를 개발하였다. 구석기 유물 유적을 활용한 학습 자료는 예비 활동 자료, 박물관에서의 활동 자료, 유적지 답사를 위한 활동 자료, 구석기 유물을 제작하는 활동 자료로 구성되었다. 개발된 학습 자료에 대해 과학교사와 학생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설문에 응답한 과학 교사들 10명 중 6명은 유물 유적을 활용한 교수 학습 자료가 탐구력 향상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본 연구에서 개발된 학습 자료는 대부분의 교사들이 정규 수업이 아닌 동아리 활동, 현장학습, 과제부여 등에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반응하였다. 구석기 유물 유적을 활용한 학습자료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질문 방향이 다양해졌으며 질문하는 횟수도 증가하였다. 유물 유적을 활용한 학습자료는 학생들이 광물과 암석의 성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본 학습 자료는 교사들의 학습 주제 선택의 폭을 넓혀줄 것이라 기대된다.

한국선사시대 석기문화에 대한 연구: 석기문화와의 진화 (A study of Stone Industries of Korea)

  • 배기동
    • 한국제4기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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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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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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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한반도의 석기문화는 전기구석기부터 시작되는데 동아시아지역에 퍼져 살던 고인류 집단의 일파가 한반도로 확산하여 온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의 석기문화는 아슐리안주먹도 끼를 공반한 정형화되지 않은 구석기공작이었다, 중기구석기는 르발르와기법의 유무에 대한 논란이 남아있으며 전기적인특성이 그대로 지속되는 시기이다. 그러나 약 3만년전의 후기구 석기시대가 되면 석인석기공작이 나타나고 석기도 대단히 정교해 지는데 이 석기 공작은 동 아시아로 확산되어 오던 현생인류의 도구이었다. 바이칼호부근에서 기원한 세석인문화는 한 반도의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 석기공작은 중석기를 거쳐 신석기에 이를 때 까지 눌러 떼 기기법과 함께 존속하였다, 신석기시대에는 마제기법이 나타나게 되고 어로용도구들이 새로 이 추가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간단한 가공으로 만든 농경구들이 추가되기 시작하는데 중후 기에 가서는 마제농경수확구가 증가하게 된다, 청동기시대에는 금속기의 영향을 받은 마제 석검등의 대단히 정교한 석기들이 훌현하고 또한 석기의 기능에 의례적인 기능이 추가되면 서 양식이 분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생산구들도 효율성이 높게 발달해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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