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고증학(考證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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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석학(金石學)의 성취에 대한 재평가 - 박선수(朴瑄壽)의 금석학을 중심으로 - (A Revaluation of the Korean Epigraphy's Achievement-Focused on Park Seon-su's Epigraphy)

  • 문준혜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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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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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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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고는 금석학의 관점에서 박선수의 "설문해자익징(說文解字翼徵)"을 소개하고, 그것을 한국 금석학의 연구 성과에 포함시키려는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한국의 금석학은 19세기 초 추사 김정희(金正喜)에 의해 하나의 학문 분야로 발전되었다. 이 때문에 한국의 금석학은 대체로 김정희를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시기를 구분한 뒤, 중요한 저작이나 연구자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기술되었다. 기존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한국의 금석학은 금석문을 수집하고 한 데 묶어 편찬한 자료집 성격의 서적이 금석문을 해독하고 고증한 연구서 성격의 서적보다 많다는 특징이 있다. 또 저자의 국적에 관계없이 한국의 금석문을 수록한 책은 모두 한국 금석학의 범위에 포함시켰고, 종교적 이유로 편찬된 책도 금석문을 수록하고 있다면 금석학의 범위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이는 한국 금석학의 범위가 매우 넓게 설정되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 후기에 금석학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선수의 연구 성과가 누락된 것은 "설문해자익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선수의 "설문해자익징"은 금석문을 이용하여 "설문해자"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는 목적으로 편찬된 문자학 저작이다. 박선수는 금석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이를 문자 연구에 활용하는 방법론을 개척했으며, 금석문을 분석하고 해독하는 등의 금석학적 연구를 수행하였다. 따라서 박선수의 "설문해자익징"은 한국 금석학의 연구 성과에 포함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잘 알려지지 않은 연구자와 연구 성과를 발굴하여 한국 금석학의 성취에 대한 새로운 기술과 평가가 필요하다.

조선조에서의 선진(先秦) 제자학(諸子學) 수용 양상 - 순자(荀子)에 대한 비판과 이해를 중심으로 - (The Aspect to Receive Pre-Chin Study of One Hundred Schools in Cho Sun Dynasty-Centered on the criticism and understanding of Hsün Tzu)

  • 윤무학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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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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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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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에서는 한국사상사에 있어서 선진 제자학을 위상을 검토하고 아울러 순자사상의 한국적 수용과 전개 양상을 살펴보았다. 나아가 여말선초부터 18-19세기에 이르는 지식인들의 문집을 통하여 순자에 대한 이해양상과 시대별 흐름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즉 삼국시대부터 고려 중엽까지는 지식인들이 선진 제자학 가운데 다른 학파나 사상가를 이단으로 간주하여 비판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여말선초 이래 "맹자"가 유가의 정통 경전으로 확립되면서부터 순자를 비롯한 선진 제가를 이단으로 간주하여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고려부터 선초에 이르는 지식인들의 순자의 성악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으며, 다만 순자에 대한 이해의 심도가 점차 깊어짐을 알 수 있다. 성리학 전성기에 이르면 선초에 비해 순자에 대한 지식인들의 비판 강도가 오히려 줄어드는 경향을 엿볼 수 있는데, 이것은 맹자의 성선설을 토대로 한 성리학적 세계관이 이미 확립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성악설을 비판하는 지식인들도 대체로 순자의 다른 사상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원용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17세기에 이르면 순자를 법가로 귀결시키는 논의도 일부 보이지만, 주자학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실학적 토대 위에서 제자학을 적극 수용하는 경향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 18세기에 이르면 순자에 대한 이해 범위가 보다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특히 글자 고증에 있어서 순자의 원문 및 주석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요컨대 조선조 지식인들의 순자 비판은 시종일관 그의 성악설에 근거하며 나아가 분서갱유를 주도한 이사(李斯) 등의 법가와 연계시키는 데 집중되어 있다. 반면에 이를 제외한 순자의 기타 사상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수용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순자를 비판하고 있는 지식인들은 제자서를 쉽게 접하거나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학문태도를 지녔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과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추론한 근대 궁궐의 수목관리 판단 연구 (A Study on the Types of Tree Management in Modern Palace Using Photographs and Expert Interviews)

  • 최진서;김충식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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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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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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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1981년 ICOMOS-IFLA 국제 역사 정원 위원회에서 제정한 플로렌스 헌장에서는 역사정원을 식물이 주를 이루는 건축적 구성으로 이를 영원히 변하지 않도록 유지하고자 하는 예술가와 장인의 욕구사이에 존재하는 끊임없는 균형으로 보았다. 이처럼 정원의 주된 구성요소인 수목은 계절의 순환에 따라 생성과 소명을 반복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궁궐에서도 수목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관리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을 것이다. 다만 과거 궁궐의 수목관리 기법을 고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역사적 기록 부재와 일제강점기로 인해 명맥이 단절됨에 따라 연구가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궁궐의 수목은 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견해에 따라 궁궐 수목 관리 기법에 관한 연구는 지금까지 수행되지 않았다. 본 연구는 근대에 촬영된 사진을 토대로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과거 궁궐의 수목관리 판단 여부를 밝히는데 목적을 두었다. 근대기에 촬영된 사진을 활용하여 전문가에게 심층 인터뷰를 통해 수종의 식별과 전정여부를 파악한 내용을 토대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진을 통해 수목의 수형과 잎 형태 식별이 가능함을 확인하였으며 정지·전정 등에 의해서 생기는 현상을 관찰함으로써 근대기 궁궐의 수목관리 시행 여부를 추정할 수 있었다. 둘째, 4개 분야에서 8명의 전문가들에게 심층 인터뷰를 한 결과 수종 식별, 전정여부 및 목적, 방법 등의 관리여부의 판별이 가능하였으며 집단별 의견의 차이가 크게 발생하지 않고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셋째, 궁궐 수목의 관리 유형은 수형관리, 수목의 위해 요인 제거, 하층식생관리가 주된 것으로 판단하였으며 존덕정, 관람정 등의 사진을 통해 촬영 시점인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수목의 관리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 촬영된 사진을 토대로 전문가 인터뷰를 거쳐 일제강점기 이전 수목관리 여부 추정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당시 시대 상황에 따라 자체적으로 수행된 것인지 일제에 의해 수행된 것인지는 사료의 부족으로 규명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과거 궁궐의 수목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견해를 수집된 자료를 통해 반박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마련하였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여 여부를 판단하였다. 또한 일반적인 정지·전정 이론을 토대로 전문가 의견에 대한 실증적인 검토를 실시하여 연구결과에 신뢰성을 확보하였다.

조선시대 강화지역 관방림(關防林)의 특성 연구 (A Study on the Gwanbang forest of Ganghwa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 심순희;이재용;김충식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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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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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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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 연구는 조선시대 군사적인 방어를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된 관방림의 유형과 식재 배경 및 조성 과정 등에 관한 고문헌 기록을 조사·분석하여 관방림의 조성 목적과 입지 특성 그리고 식재 수종을 구명(究明)하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에는 읍성을 비롯한 주요 치소(治所), 진(鎭), 보(堡) 등 여러 관방시설(關防施設) 주변에 적을 방어할 목적으로 관방림을 조성하였다. 관방림은 전략상 중요한 고갯마루에 조성한 영액림(嶺阨林)과 군사적 목적으로 조성된 군사림(軍事林)을 포함한다. 영액림은 대부분 금산(禁山)으로 지정되어 보호·관리되었으며 관방림은 외적 방어는 물론 차폐, 수해 및 강둑의 침식 방지 등 다양한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또한 선박·건축·농기구 등의 재료인 목재를 지속적,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넓은 면적에 혼효림(混淆林)으로 조성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관방림을 구성하는 수종으로는 가시가 있어 방어에 효과적인 탱자나무의 기록이 가장 많이 나타났고 느티나무, 느릅나무, 버드나무류, 시무나무, 참나무류 등 낙엽활엽교목의 활용사례도 등장하였다. 조선시대 수도 방위와 왕실의 보장지 역할을 했던 강화도 지역의 경우 외성의 방어력 보강을 위해 탱자나무를 밀식하여 조성된 관방림 관련 기록이 여러 문헌에서 확인되었다. 문헌 고증을 통해 볼 때, 천연기념물 '강화도 갑곶리 탱자나무'는 강화도의 최초 탱자나무 식재 기록인 숙종 30년(1704)에 식재되었다고 가정할 경우, 최대 수령은 319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한국사상사에서의 묵가(墨家) 비판 - 벽리단론(闢異端論)의 전개 양상을 중심으로 - (The Critic on Mohism in the History of Korean Thoughts Centered on the Theory of Rejecting Heterodoxy)

  • 윤무학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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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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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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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이 글은 선유(先儒)들의 묵가에 대한 비판을 개괄하고, 이를 전제로 하여 고려말부터 시작하여 조선조 후기에 이르는 묵가 비판의 전개 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우리나라 고려 이전의 문헌에서는 묵가나 묵자를 비롯한 제자백가를 명시적으로 배척한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 여말선초에 이르면 성리학의 수용과 더불어 맹자의 벽이단론의 관점이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양주와 묵적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불교와 노자를 배척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조 지식인들의 묵가에 대한 이해와 비판 양상의 특징은 묵가의 이념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주로 다른 이념이나 부조리에 대한 비판의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말선초의 불교와 노자, 중후기의 문장학(과거학), 서학(천주교), 나아가 관료들의 부패 등이 포괄된다. 내용면에서 본다면, 묵가의 십대 주장 가운데 「겸애」와 「절용」(절장, 비악)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 중후기에 이르면서 「명귀(明鬼)」와 「천지(天志)」에 대한 비판이 포함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중국사상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평화 이념이 반영된 「비공(非攻)」이나 운명론을 부정하는 「비명(非命)」에 대한 비판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가의 인문주의적이고 현실주의적 측면에서 볼 때 적극적으로 비판할 여지가 없었던 데 연유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묵가 이념과는 별도로 묵자 개인의 묵수(墨守)와 관련된 행위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또한 후기에 이르면서 묵자서는 이념서가 아니라 유교 경전 내용을 고증하기 위한 사료로서 활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성락원 영벽지의 원형 파악을 위한 3D 스캔기술 연구 (A Study on 3D Scan Technology for Find Archetype of Youngbeokji in Seongnagwon Garden)

  • 이원호;김동현;김재웅;박동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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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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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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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는 성락원(명승 제35호) 영벽지 공간의 원형 파악을 목적으로 주변지형을 포함한 3D 정밀데이터 취득을 통해 연못부 지반의 원형 추정을 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영벽지 석구조물에 대한 용도 및 구조를 살피는 것은 이전의 형태를 밝히는데 단서가 될 것이라 판단되며, 3D 스캔방법의 적용은 주변지형을 포함한 전체적 구조를 살피는데 용이하였다. 둘째, 실측결과, 조사대상 암반부는 남북으로 7,665mm 동서로 7,326mm의 규모를 지니며, 석구조물은 $1,665mm{\times}1,721mm$의 정방형을 이루고, 그 내부에는 지름이1,664mm 반구형이며, 기단 아랫부분에는 암석이 남북 $1,006mm{\times}328mm$규모로 떨어져 나간 흔적이 발견되었다. 셋째, 영벽지 내부의 지형을 기록함에 있어 다중해상도 방식을 사용하여 광대역스캐너를 이용한 스캔작업 후 스캔데이터를 정합하여 Polygon Data로의 변환과정을 거친 후, 이를 정밀스캔데이터와 병합하여 메쉬데이터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해상도 사진과 3차원 지형데이터를 오버랩하여 작성하였다. 넷째, 이 작업의 결과로 석구조물 서측에 회유하는 경사진 암반부 물길이를 확인되었으며, 방지원도형의 석지로 추정되는 수경시설물의 하부구조가 확인되어 암반부에 인공적으로 음각한 것임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1960년대 이전의 지형과 상황을 비교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생성하였다. 더불어 입체적 정밀실측데이터의 취득과 함께 발굴 당시의 원형을 디지털상에서 영구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향후, 이 데이터는 다양한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영벽지 석구조물의 용도 및 보존관리방안을 수립할 기초자료로 사용될 것이다. 또한 금번 연구에서 밝혀진 3D 실측의 용이성이 정원연구에 다양하게 활용되어지길 기대한다.

상주지역의 불천위제사 제수문화에 관한 연구 (Study on Sacrifice Food of Bulchunwi Sacrificial Ceremony in Sangju Area)

  • 김귀영;김보람;박모라
    • 동아시아식생활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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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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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9-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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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최근 6차 산업이 부각되면서 종가문화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종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불천위제례에 대한 연구가 보고되고 있다. 불천위를 모시는 종가는 안동지역을 중심으로 봉화, 영주, 예천, 상주, 영덕, 영양 등 주로 경북 북부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경상북도 상주에서도 불천위를 모시는 종가가 14위나 되어 이들 종가를 대상으로 불천위 진설도와 제수 실태를 현장 조사하였다. 조사기간은 2014년에서 2015년 동안 진행되었고, 소재 노수신, 월간 이석, 우복 정경세, 조당 이목수의 불천위 제례를 조사하였다. 조사내용은 불천위 제수의 진설과 제수 품목, 조리법에 국한하였고, 심층인터뷰와 더불어 문헌을 비교 검토하였다. 1. 진설의 열은 월간이 4열이고, 다른 종가에서는 5열로 진설하였다. 열에 따른 진설 품목은 5열이 실과류, 4열이 나물류, 3열이 탕류, 2열이 적, 편류 1열이 메, 갱, 면으로 구성되었다, 진설품목은 메, 갱, 면, 장, 포, 침재, 대추, 밤, 배, 감, 사과, 호두, 고사리, 도라지, 조기, 편, 쌈은 공통적이나, 적, 탕, 전, 나물류는 종가별로 차이가 있었다. 특히 탕은 우복종가가 7탕으로 가장 많고, 소재와 입재종가는 5탕, 월간은 3탕을 진설하였다. 2. 적은 월간종가가 계적, 어적, 육적을 쌓아 올려 하나의 제기에 담아 도적으로 진설하였고, 우복종가는 계적, 어적, 육적을 각각의 제기에 담아 진설하였다. 그리고 소재종가와 입재종가는 계적을 별도로 진설하고, 육적과 어적은 하나의 틀에 담아 도적으로 진설하였고, 어적을 별도로 진설하여 이중으로 진설하였다. 포는 대구포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진설의 위치가 월간종가에서는 우포(右脯)로 진설되고, 다른 종가에서는 좌포(左脯)로 진설하였다. 3. 제수품으로 생고기 사용 여부는 우복종가에서 생고등어, 입재종가에서 생조기, 소재종가에서 육회를 사용하는 정도였다. 즉,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조기와 같은 육어고기는 대부분 익혀 사용하였다. 그 외 대부분 제수는 무침이나 데치는 조리법을 많이 사용하였다. 갱은 미역국이 2종가, 탕국이 2종가였는데, 탕국은 탕의 식재를 삶고 남은 육수를 활용한 것이다. 특히 월간종가는 미역탕국을 갱으로 사용하였다. 4. 제수품목 중 종가에서 주문하는 음식은 유과, 약과, 본편(시루떡, 찰떡, 증편, 경단), 술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제수는 당일 종가에서 준비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불천위 제례의 음식문화는 의례적 요소가 강하다. 이러한 식문화는 종가의 권위를 상징하고, 대외적으로 표명하고자 했던 조선중기에 비교적 정착되었다. 하지만 조선후기 일제 강점기와 전쟁, 산업화 등 역사적 격동기를 함께 하면서 종가의 불천위 제례 문화가 많은 변화를 거듭하였다. 문화는 그 자체만으로 한 시대를 파악하는데 의미가 있다. 종가의 통과의례 중 핵심적 문화행위인 제례, 그 중에서도 종가의 존재와 정체성에 직결되는 불천위 제례에 대한 현장조사와 그에 대한 고증연구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백제정원을 주제로 한 리조트 외부 공간 계획 (Outdoor Landscape Design Proposal for a Resort using the Baekje Traditional Garden as a Theme)

  • 김연금;김해경;김영모;진양교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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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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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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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롯데 부여리조트의 외부공간 중 백제 테마정원을 대상으로 한다. 리조트는 백제역사재현단지 내에 있으며, 이 사업은 '백제문화권 특정지역 종합개발 계획' 중의 하나이다. 백제정원은 역사적으로 유구할 뿐만 아니라 고대 일본에 영향을 주었을 정도로 양식에서도 뛰어났다고 할 수 있는데,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백제정원의 재현 방식을 공간적으로 구현했다. 구체적 내용으로는 첫째, 백제정원을 롯데 부여리조트에 조성하게 된 배경과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백제정원의 공간적 구현 방식을 설정하는 것이다. 둘째, 백제 정원의 조경사적 의미와 함께 현재까지 문헌연구와 발굴을 통해 밝혀진 백제 정원의 양식적 특성에 대한 것이다. 셋째, 리조트 외부공간에서 백제정원 재현의 공간적 실현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본 연구의 내용에서 재현은 구조 적용과 구성요소 차용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구조 적용에서는 임류각 공간을 주진입공간으로 하여 관북리 백제 유적을 재현한 월선정 공간을 인접하여 배치하였다. 이 두 공간을 통해서는 건축과 정원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주력했다. 후면에는 후원 성격을 지닌 익산 왕궁리 정원의 곡수로와 석조원, 비폭원을 재현하였다. 구성요소 차용은 식재계획과 건축물을 비롯한 시설물 계획에서 이루어졌다. 이외 정원주변으로는 금동대향로와 산수문전에서 표현되는 대표적 경관인 신선계의 모습과 삼산오봉(三山五峰)형 봉우리, 산 사이 맑은 시냇물, 소나무 숲(송림(松林)) 경관을 형상화하였다. 본 연구의 의의는 먼저 백제정원이라는 주제 자체가 새로운 시도라는 것이다. 백제정원에 대한 선행연구와 실제적인 공간에 구현된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 백제시대에 대한 심도 있는 고증을 토대로 백제정원을 개념적 차원뿐만 아니라 계획적 설계적 차원에서 적용 재현하고자 시도했다는 것이다. 전통의 적용이나 재현을 다루는 기존 연구가 사례 중심으로 분석과 평가에 치중해왔던 것과 차별성을 갖는다. 한계는 백제정원의 사실에 대한 선행 연구가 많지 않고, 현재 관련 유적에 대한 발굴 및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에서 진행된 연구이기 때문에 추후에 새로운 사실이 발견된다면 본 연구에서 제시한 재현에 대한 진정성의 문제와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지 못했다는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전통의 재현과 계승의 화두는 어느 시점에서의 완결성보다는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시도가 요구되는 진행형이라는 측면에서 본 연구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발굴된 유적을 그 자리에 '원형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리조트의 외부공간에 '재현'하다 보니 그 자체로 체험의 다양성과 완결성까지 부여되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남한산성 종(鐘)과 종각(鐘閣) 복원을 위한 연구 (A Study on the Representations of an Bell Chamber in Namhansansung)

  • 이진향;김대호;이재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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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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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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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역사지역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재, 남한산성의 종각 건립은 역사적 교육적 문화적 의의가 매우 크다. 본 연구는 남한산성 종각에 관한 연구로 문헌조사, 현지조사, 고지도 분석을 통해서 종각의 위치를 추정하고, 종과 종각의 규모와 형태를 밝혀냄으로써 현대에 종각을 재현할 때 자료로 삼고자 한다. 문헌조사, 5회에 걸친 현지조사, 고지도 분석 결과, 종각의 위치는 행궁권역의 초입인 로터리 내 지금의 오로지 찻집 부근 혹은 백제장 주차장 부근인 것으로 추정된다. 교통체계는 남문과 동문을 연결하는 308번 지방도와 종각지에서 북쪽으로 연결되는 도로의 Y 혹은 T형 교통체계의 옛 길이 있었으며, 종각에서 행궁으로 진입하는 관아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종각의 모양은 팔작지붕이나 우진각 지붕이며, 5개의 지도 모두 사모지붕은 보이지 않았다. 종각의 방향은 동향이 3곳, 남향이 2곳인 것으로 보아 가로 세로의 크기는 별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가로 3칸, 세로 2칸, 총 6칸의 건물이며, 종각의 방향은 행궁의 방향과 같은 동향이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종은 천안 성거산 천흥사에 있었던 종이 천흥사가 폐사되면서 남한산성의 종으로 쓰였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천흥사 종의 역사성 예술성을 고려하여 남한산성의 종의 제원으로 사용할 것을 제언한다. 본 연구는 2009년 남한산성 종과 종각의 복원을 위한 기초연구이다. 그러나 문화재는 철저한 고증에 의한 복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보다 정밀한 연구는 지표조사에 의해 추후 과제로 남겨두기로 한다.

조선왕릉 태릉(泰陵)의 역사경관림 변화와 관리방안 (A Study on the Change and Management of Historical Landscape Forest of Taeneung, Joseon Dynasty Royal Tomb, Seoul, Korea)

  • 김명신;이경재;김종엽;허지연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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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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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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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는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중 태릉을 대상으로 능침공간, 제향공간, 전이공간, 진입공간으로 공간을 구분하고, 과거 문헌고증을 통해 능 조영 당시 능의 좌우 및 후면에 식재된 원식생을 파악하였다. 태릉의 공간별 원식생 경관 중 능침공간의 능선 주변, 제향공간, 전이공간은 소나무로 추정하였고, 진입공간은 오리나무로 추정하였다. 태릉의 현존식생은 소나무림이 50.3%로 가장 넓게 분포하였고, 낙엽활엽수림은 33.7%로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가 주요 출현종이었다. 식재지는 7.9%로 주요 수종은 소나무와 잔디 등이었다. 태릉 식물군집구조는 총 108개 조사구를 설정하여 총 4개의 공간으로 구분하였다. 공간별로 조사구의 상대우점치를 분석한 결과, 능침공간 현재 우점종은 소나무이었지만, 소나무는 도태되고, 상수리나무의 세력이 확대되고 있었으며, 소나무림이 갈참나무로 천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제향공간, 전이공간은 소나무가 도태되고 있었으며, 참나무류의 세력이 확대되고 있었다. 진입공간 우점종은 소나무, 갈참나무이었으며, 원식생인 오리나무가 사라지고, 소나무와 갈참나무로 변화되었는데, 이 지역은 점토질 토양으로 장기적으로 소나무는 도태될 것으로 판단되었다. 태릉의 과거식생(추론)과 현존식생을 비교 분석하여 식생경관관리 목표와 방안을 제시하였다. 식생경관관리 목표는 생태적 특성 및 식생변화를 분석하여 공간별 역사경관림에 부합하는 경관유지 및 복원을 목표로 하였다. 능침공간은 소나무림과 소나무식재지로 유지 관리하고, 기타 참나무류림을 소나무림으로 복원, 제향공간은소나무림과 소나무식재지로 유지관리하고, 참나무류림을 소나무림으로순차적 복원, 전이공간의 소나무림은 유지 관리하고, 참나무류림은 소나무림으로 복원, 진입공간은 순차적으로 오리나무림으로 복원하는 것으로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