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한국철학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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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 권상하의 심성론 (Gwon Sangha's Theory of Mind-Nature)

  • 송종화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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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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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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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호락논쟁(湖洛論爭)에 관한 선행 연구는 오상논변 미발논변 등을 중심으로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 성과 속에서 권상하의 철학사상은 비교의 차원으로 함께 다루어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그의 철학사상의 면모는 거의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를 중심으로 하는 개별연구가 아닌 관계로, 어떤 점이 호학(湖學)[호론(湖論)]의 선하(先河)로서의 그의 철학사상의 한국유학사상사적 위상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에 본고에서는 "한수재집(?水齋集)"에 나타난 심성(心性)의 개념 이해를 중심으로 권상하(權尙夏)의 심성론(心性論)을 검토하면서, 호학[호론] 형성의 선하(先河)로서의 그 사상사적 위치를 짚어보았다. 권상하는 호락논쟁이 본격화된 1709년 이전에, 기질지성(氣質之性) 내에서 본연지성(本然之性)[성선(性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일성(一性) 이해를 바탕으로 한, 오상편전(五常偏全)의 인물성상이(人物性相異)로 그의 입장을 이미 정리하고 있었으며, 호학[호론]의 학자들은 이러한 영향아래 자신들의 사유를 형성하고 호락논쟁 과정에서 오상편전(五常偏全)[인물성상이(人物性相異)]을 주장하였다. 권상하는 성(性)을 중심으로 한 심성일물(心性一物)의 관점에서 허령(虛靈)한 심(心)의 주재성(主宰性)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제자 한원진(韓元震)과 윤봉구(尹鳳九)가 말한 '심성이기(心性二岐)의 의논과 의혹을 종식시키고 평정한 공(功)'이며, 한원진이 말한 '성선(性善)의 필연을 밝힌 공(功)'이다. 이 논리 역시 호락논쟁이 본격화되기 전에 이미 정립되어 있었으며, 호학[호론]의 학자들은 이러한 영향아래 자신들의 사유를 형성하고 호락논쟁 과정에서 기부용사(氣不用事)[미발기질유선악(未發氣質有善惡)]를 주장하였다.

안확의 '조선' 연구와 문명의 발견 (An Hwak's Study on Joseon and the Discovery of Civilization)

  • 이행훈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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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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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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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1920년대 조선사편수회를 비롯해 조직적으로 진행된 일제의 조선사 연구는 조선의 식민화를 영구화하려는 획책이었다. 3 1운동 이후 일제가 내건 문화정치 3대 방안 가운데 하나인 '민족성 개조'도 조선의 역사성을 외래성과 식민성, 당파성과 미개성으로 낙인찍은 식민주의의 소산이었다. 이에 저항하는 조선인의 연구는 조선의 고유성과 독자성을 증명하는 전통의 창조로 나아갔다. 1920년대 들어 활발해진 고대사 연구는 식민 현실을 외면하고 관념화된 과거의 역사 기억으로 도피하는 게 아니라 한민족의 역사를 새롭게 구성하는 일이었다. 이때 단군은 민족 공동의 시원으로서 문화적 동일화를 이끌며, 발명된 민족의 정체성은 상처 입은 주체를 치유하는 것이었다. 신화를 역사의 일부로 이끌어 오는 일련의 시도는 안확에서도 발견된다. 조선의 민족성을 서구 문명국가와 비교해도 우수한 장점을 지닌 것으로 표명하였고, 조선 문화의 특수성과 정체성을 보편 문명사로 정립하는 방대한 기획은 "조선문명사"로 나타났다. 조선 민족의 특수성과 정체성을 규명하는 문화 연구와 조선 민족의 저력을 드러낸 통사 기술은 과거 역사 속에 명멸했던 다양한 주체들을 동일한 역사를 공유하는 단일한 민족으로 상상하게 했다. 안확의 조선 연구는 일제의 식민사관에 대한 저항이자 민족적 자각을 통한 웅비를 염원하는 것이었다. 그는 민족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자유와 자치, 자율과 이성 위에 선 개인을 문명과 문화를 만드는 주체로 설정함으로써 국가이데올로기로 고착된 일본의 문화사와 길을 달리 했다.

상박초간 『주역』 감괘(欽卦) 연구 (A Study on Gan hexagram 感卦 in the Shanghai Museum Zhou Yi manuscript)

  • 원용준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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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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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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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논문은 상박초간 "주역" 감괘(欽卦)를 중심으로 중국고대 점복문화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점서였던 "주역"의 경문을 유가가 어떻게 유가 윤리로 만들어갔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상박초간 "주역" 감괘는 현행본의 함괘(咸卦)에 해당하며 '감(感)'의 뜻으로, 괘 전체의 주제는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과 결혼이다. 청화간(淸華簡) "서법(筮法)" 등 고대의 점술에 남녀 간의 결혼을 점친 예는 상당히 많은데 이런 자료들도 감괘가 단순히 사랑과 결혼에 대한 점술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상박초간 "주역"과 마왕퇴백서 "주역"의 감괘 효사 및 현행본 함괘 효사를 비교분석해보면 상박초간본 ${\rightarrow}$ 마왕퇴본 ${\rightarrow}$ 현행본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주역" 텍스트가 많은 변화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한편 "순자" "대략(大略)"편, 현행본 "주역" "단전(彖傳)"은 함괘의 주제를 남녀 간의 사랑과 결혼에서 추상화하여 부부의 도, 나아가 음양 '이기(二氣)'의 철학으로 확대한다. 이러한 확대는 결국 자연철학 방면으로는 세계, 우주를 구성하는 '이기'의 감응에 의한 만물생성론을, 인간사회 방면으로는 성인의 감화를 통한 천하화평을 주장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서괘전"도 함괘를 '부부의 도리'로 보고 이에 기초하여 부자, 군신, 상하, 예의로까지 확대시킨다. "서괘전"이 함괘를 서술할 때 '남녀'가 아닌 '하늘과 땅'으로 시작하고 있는 것은 "단전"의 논의를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주적 질서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예의로 귀결을 맺는 것은 철저한 유가적 사유로, 따라서 "서괘전"이 만들어진 시점에서 "주역"의 유교경전화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남헌(南軒)장식(張?)의 수양론 연구 - 호상학과 주자학의 상호 영향을 중심으로 - (A study of Nan xian(南軒) Zhangshi(張?)'s cultivation - Focusing on the mutual influence of Huxiangxue and Zhuzixue)

  • 이연정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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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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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7-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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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학술교류가 활발하던 남송(南宋)시대에 장식은 수양론 형성과정에서 그만의 독자적 사상체계를 정립한다. 수양론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사상적 전향을 보이는 것이 특징적인데, 이 과정에서 장식은 당대 주류와의 학술적 교류를 통해 그들의 사상정립에 상당한 영향을 주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사상을 체계화시켜 나간다. 그러나 당대 주류학파에 대한 연구는 상당부분 이루어진 것에 비해, 주류학맥이 이어져 오기까지의 당대의 사상적 흐름과 동향에 대한 연구는 미비한 상태이다. 이에 논자는 장식의 수양 공부론의 형성 과정을 통해 당대의 사상흐름 전반을 이해하고, 아울러 주류학파와의 교류 과정을 수양공부라는 영역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송 대 철학 전반을 이해하고, 그 흐름을 객관적으로 살피는 데 있어서 유의미한 과정이 될 것이다. 본 논고는 장식 공부론의 형성과정을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여 검토하는 방식을 취한다. 우선은 장식사상의 연원에 대한 기술을 시작으로 영향을 주었던 학파의 사상적 영향을 언급하고, 수양 공부론의 변천과정을 검토하여 그의 철학사상적 전향(轉向)을 고찰한다. 이 작업은 장식만의 독자적 사상에 대한 전반을 이해하고, 사상교류를 이루었던 주희의 사상정립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배위의 숭유론 고찰 (Study on Chongyoulun of Peiwei)

  • 김태용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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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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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9-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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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이 글은 배위의 "숭유론"을 문제의식과 철학사상 두 부분으로 나누어, 그것이 갖는 목적과 의미를 고찰한다. "숭유론"의 문제의식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노자의 중심사상을 '허무'로 규정하는 것은 오해이다. 둘째, 과거의 사상가들이 '허무론'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여 그것의 확산을 억제하지 못했다. 셋째, 귀무론의 유행은 생활풍속의 문란과 사회질서의 붕괴를 초래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배위는 '유'를 천지만물의 존재와 운동의 근거로 하는 다음과 같은 철학사상을 건립한다. 첫째, '도'는 '만유'의 종합일 뿐이고, '만유' 밖에 있는 추상적 실체가 아니다. 둘째, '무'는 '유'가 없어진 상태일 뿐이고, '유'는 오로지 '유'로부터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셋째, '유'는 독립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외재의 '유'에 의존해 생존한다. 그러므로 외재의 '유'를 파악하는 것이 존망의 관건이다. 넷째, '만유'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만유'는 함께 있어도 서로 해하지 않는다. 인류도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존재론적으로 사회제도와 윤리는 인간세계에 반드시 필요하다. 이처럼 배위는 '만유'의 '상호의존'이라는 존재론적 특성을 기초로 '도덕질서'의 정당성을 확보하여 무너진 생활풍속과 사회질서를 다시 세우려한다.

양웅(揚雄)과 갈홍(葛洪)의 '현(玄)' 개념 비교 연구(1) - 우주생성론을 중심으로 - (A comparative study on the 'Xuan'in the view of Yangxiong & Gehong(1))

  • 이진용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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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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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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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이 글의 목표는 양웅(揚雄)과 갈홍(葛洪)의 '현(玄)' 개념을 우주생성에 대한 담론을 중심으로 비교 고찰하는 것이다. '현' 개념의 연원은 선진시기 "노자(老子)"와 "주역(周易)"으로, 선진이후에 철학개념으로 확립되어 다양한 함의를 담게 되었다. 이 글은 다양한 철학적 함의를 지니는 '현' 개념을 양웅과 갈홍의 우주생성론을 중심으로 한정지어, 생성의 근원의 특징, 그로부터 만물로의 전개과정, 만물의 존재의 원리 등을 논의한다. 첫째, 양웅의 생성의 근원으로 서의 '현'은 최초의 원물질 상태에서 생성을 이끄는 원동력이자 생성의 각 단계에 적용하는 원리이고, 갈홍의 '현'은 생성의 근원이자 존재의 원리의 성격을 공유한다. 따라서 두 학자의 '현'은 '기일원론'의 사유방식과는 차별성을 지닌다. 둘째, 양웅과 갈홍의 '현' 개념은 우주생성론과 본체론의 논의를 일정부분 공유하고 있다. 양웅은 우주생성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초보적으로 본체론적 사유를 펼치고, 갈홍은 우주생성론보다는 본체론적 사유를 전개한다. 셋째, 갈홍의 '현'은 양웅의 '현'을 수용 발전시킨 것이다. 갈홍은 양웅이 제시한 생성의 근원이자 생성의 각 단계에 적용되는 원리로서의 '현'의 의미를 수용하는 동시에, 존재의 원리의 측면을 부각시켰다. 넷째, 양웅과 갈홍의 '현' 개념은 두 학자의 전체 이론체계의 근간을 이룬다. 양웅은 '현' 개념을 우주와 인간 및 사회의 근원으로 삼아 현실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고, 갈홍은 '현'의 체득을 통해 신선과 장생불사의 근거로 삼는다.

원굉(袁宏)과 갈홍(葛洪)의 유도(儒道)관계론 연구 (A study on the perspective of relationship between Confucianism and Taoism of Yuan-hong & Ge-hong)

  • 李溱鎔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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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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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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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중국철학을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학파는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이다. 두 학파는 각기 다른 방식을 통해 현실의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상이한 이론체계를 세운다. 다만 중국철학의 발전을 살펴보면 이러한 상이한 이론을 하나의 체계 속에 엮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전개되었다. 대표적으로 위진(魏晋)시기 현학(玄學)에서는 자연(自然)과 각수(名敎)의 관계를 토론하며 유도(儒道) 두 학파의 관계 설정에 골몰한다. 동진(東晋)시기의 지식인들은 바로 전대(前代)의 이러한 정신을 이어서, 직접적 방식으로 유도(儒道) 두 학파의 관계 설정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펼친다. 본 논문은 동진(東晋)시기 유도(儒道)관계론의 대표적 학자로 원굉(袁宏)과 갈홍(葛洪)의 이론을 살펴본다. 원굉(袁宏)은 명교(名敎)의 효용성과 가치를 충분히 긍정하면서, 다만 명교(名敎)의 근본과 근거 찾기에 골몰하여 전대(前代) 자연(自然)과 명교(名敎)의 관계 문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동시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도본유용(道本儒用)'의 관점을 제시한다. 갈홍(葛洪)은 신선도교(神仙道敎)의 입장에서 유도(儒道) 두 학파의 관계 및 두 학파 이론의 직접적 비교를 통해 '도본유말(道本儒末)'의 이론을 정립한다. 이들의 이론은 근본과 작용, 근본과 말단의 관계 설정으로 유가와 도가 두 학파의 관계를 설정하는 동시에, 자연(自然)과 명교(名敎)의 관계 문제를 보다 심층적 방식으로 이론적 접근을 꾀함으로써, 향후 중국철학에서 유가와 도가의 상호 보완이라는 문제의식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장백단(張伯端)의 저술고(著述考) (A Inquiry of Zhang Bo-duan's Writings)

  • 김경수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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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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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5-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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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도교(道敎)의 내단이론(內丹理論)을 집성한 인물을 꼽으면, 단연 장백단(張伯端)일 것이다. 그는 『오진편(悟眞篇)』과 『청화비문(靑華秘文)』 및 『금단사백자(金丹四百字)』 등 3편의 저술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연구자들은 이것을 토대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 모두가 그의 저술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확한 분석을 가하지 않은 채로 잠정적으로 인정하고 있거나, 단순하게 믿고 있는 정도일 뿐이다. 철학적 태도에서 정확성과 엄밀성은 필수적이다. 일차적 자료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없는 연구는 그야말로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본고에서는 도교 내단사상의 연구에 있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 장백단의 저술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가하여, 앞으로 그에 대한 철학적 분석의 명백한 기초를 확립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장백단은 80세가 넘은 나이에 도를 얻고서 아주 늦은 나이에 그 비결(秘訣)을 기록으로 남기고 제자에게 단법(丹法)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는 살아서가 아니라 죽은 다음 일정한 세월이 지난 후에 위상이 높아졌다. 내단도교에서 중요한 비중을 갖게 된 그의 위치로 인하여 그의 저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따라서 그의 이름에 의탁한 책들이 유포되었다고 보인다. 본 연구에서는 진위(眞僞)에 대해서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장백단의 저술에 대해서, '오진편(悟眞篇)'에 「자서(自序)」·「칠언사운(七言四韻) 16수(首)」·「칠언절구(七言絶句) 64수(首)」·「오언율시(五言律詩) 1수(首)」·「서강월(西江月) 12수(首)」 및 「후서(後序)」를 배당하고, '오진외편(悟眞外篇)'을 오진편습유(悟眞篇拾遺)라고 하여 「선종가송시곡잡언(禪宗歌頌詩曲雜言) 32수(首)」를 넣어야 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리고 '오진편(悟眞篇) 외(外)'라고 하여 『금단사백자(金丹四百字)』와 『청화비문(靑華秘文)』, 그리고 「서강월(西江月)」 1수와 칠언절구(七言絶句) 5수(首), 「독주역삼동결(讀周易參同契)」·「증백룡동유도인가(贈白龍洞劉道人歌)」·「석교가(石橋歌)」를 포함시키면 적절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몇 가지의 논거(論據)를 제시하여 『금단사백자』나 『청화비문』은 장백단의 저술일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여 후인들의 위작(僞作)일 것이라는 사실을 논증하였다.

『논어』 '학이불사장(學而不思章)' 고석(考釋) - 특히 수양방법을 중심으로 - (Interpretation of 'Hakyibulsajang (學而不思章)' on Analects of Confucius)

  • 김영호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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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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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9-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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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공자는 "논어" '학사장(學思章)'에서 '학'과 '사' 둘 모두를 강조하였으니 양자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둘 사이의 경중을 따진다면 '사'보다는 '학'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공자는 "논어"에서 주로 3단계를 말하고 있다. 즉 '학사장'에서 공자는 표면적으로 2단계를 말하였으나 실제로는 3단계로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3단계는 과연 무엇일까? 이는 공자사상의 핵심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문제이다. 공자사상의 궁극적인 목표는 일찍이 정이천이 강조한 바와 같이 '배워서 성인에 이르는 것'이니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서의 성인이다. 본 논문은 그 성인이 되기 위한 공자의 수양방법으로서의 '학사합일(學思合一)' 3단계와 그 이중 구조까지 고찰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성인의 특성을 한마디로 말하면 '통(通)'이다. 즉 배우고 생각하여 통하는 것이니 이는 학- 사- 통의 3단계인 것이다. 또한 이 단계는 그 자체로서도 한 과정이지만(知) 더 나아가 행의 실천을 통해서만(行) 진정한 완성(이중 구조)임을 강조하였다. 결국 공자의 수양방법은 경전을 배우고(學) 이를 기초로 생각하며(思) 더 나아가 이 모두를 통한 바탕으로(通) 행이란 실천을 통해서(行)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지(학- 사- 통)- 행의 3단계, 이중구조인 것이다.

신라성덕대왕신종(新羅聖德大王神鍾)의 명문(銘文) 연구(硏究) -'사상성(思想性)' 탐색을 겸하여- (Study on the Words Carved on Seongdeokdaewang-Shinjong (Divine Bell of King Seongdeok) with a New Viewpoint)

  • 최영성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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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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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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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신종은 신라 중대(中代)의 사상사, 불교사, 정치사, 공예사, 한문학사, 서예사, 금석학사 등 여러 면에서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그러나 신종에 대한 일반의 관심도에 비추어 명문(銘文)에 대한 연구는 아직 활발하지 않다. 명문에 대한 판독과 번역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체계적인 분석과 연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기초한다. 부제(副題)를 '사상성의 탐색'으로 한것은 제2차 연구를 염두에 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먼저 종래의 판독과 역주(譯註)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였다. 변려문(騈儷文)의 문체적 특성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였다. 그 결과 약 20건 정도의 문제점을 발견하였다. 특히 '工匠?模', '日月?暉' 등 중요한 문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것은, 명문 해석의 중요성을 부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신종의 명문은 사상사의 측면에서 연구할 가치가 높다. 명문에는 불교사상, 유교사상, 도가사상은 물론 우리나라 고유사상 등이 서로 걸림이 없이 무르녹아 있다. 전반적으로 철학성이 높은 글이다. '원공(圓空)'을 주제어로 신종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아울러 불교사상의 핵심과 통치철학을 제시한 것이 돋보인다. 한편 성덕왕의 정치이념, 통치원리가 우리 고유의 풍류도(風流道)에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 것은, 풍류도 전승의 맥락을 추적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다. 혜공왕 대에 유교사상에 입각한 개혁파와 민족 고유사상에 기반을 둔 보수파와의 대결을 시사한 대목도 함께 보아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