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영화와 함께 등장한 애니메이션은 모더니즘이라는 예술사적 양식을 자양분으로 삼아 등장한 매체였다. 하지만 애니메이션과 모더니즘의 관계 설정은 주로 애니메이션의 형상들, 즉 그려진 이미지에 집중되어 왔다. 이는 애니메이션과 회화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기인한 것이었는데, 이 때문에 애니메이션에서의 움직임의 논의는 머이브릿지와 쥘 마레의 연속사진술(chromophotograph)의 전통, 또는 실사영화(live-action film)가 가진 몇 가지의 특질 속에서만 이해하였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영화나 포토그램의 지표기호적 양식(indexical style)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재현의 대상도 달랐다. 애니메이션이 재현하는 움직임은 일상적인 움직임이 아닌, 추상화 되거나 압축된 움직임의 표현이자, 상당히 체계화된 움직임이다. 때문이 이러한 움직임은 실사영화의 포토그램적 재현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애니메이션에서 재현하는 움직임의 논리는 신체를 각 부분을 분할한 후, 그것들의 가동범위와 시간, 거리 등으로 통제하는 것에 가깝다. 이것은 인간 신체를 교환가능한 기계로 구성하고 파악하려 하였던 - 데카르트와 라메트리로 대표되는 - 근대 기계론의 입장으로 귀결된다. 근대사회로부터 산업사회, 그리고 모더니즘의 시기에 까지 이르는 근대 기계론의 기획은 자연으로서의 움직임이 아닌, 자연 법칙으로서의 움직임으로 파악하면서 효율적인 움직임의 구성이라는 근대 산업사회의 신체 움직임 분석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19세기 말, 테일러(Taylor, F. W.)와 길브레스(Gilbreth, Frank Bunker)의 노동자 작업 시간 연구와 '동작연구'(motion study)는 기계-인간의 틀을 구성하는 근대적 방식이었는데, 이는 근대 기계론의 전통이 산업사회를 지나 모더니즘 전반에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이 진행한 동작연구들은 이후 애니메이션이 '타이밍'이라는 이름으로 연구하였던 행동분석(action analysis)과 거의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