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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Sophie Deraspe's (2019) as a Typical Film of 'New Quebec Cinema'

캐나다 '뉴 퀘벡 시네마(New Quebec Cinema)'의 전형(典型), 소피 데라스페 감독의 <안티고네(Antigone)>(2019) 연구

  • 강내영 (경성대학교 연극영화학부)
  • Received : 2021.12.06
  • Accepted : 2021.12.30
  • Published : 2022.01.28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ore the Canadian Film Director Sophie Deraspe's . Director Sophie Deraspe adapted a Greek Sophocles's novel to the Film in a modern way. For this study, adopt two research methodologies which are 'Author-structuralism' and 'culture studies', and explore traits of esthetics, narrative, subject and context meaning by analyzing . This study concludes that Firstly director Sophie Deraspe is a 'Quebecious writer-director' who represents cultural identity of contemporary Qubec, Secondly, express immigrants in Qubec using Greek Sophocles's novel tragedy as an allegory in narrative, Thirdly, enhances the dramatic effect in esthetics using virtual mise-en-scene as insert, fantasy, SNS, etc. And lastly, can confirm re-territorializing the cultural identity from the distinct characteristics of regional past tradition to the universal hybridity discours in subject. Therefore, Sophie Deraspe's is a work that symbolizes a new trend of 'New Quebec Cinema' in Canada.

이 글의 목적은 캐나다 퀘벡(Quebec)의 영화감독 소피 데라스페의 작품 <안티고네>(2019)에 대한 서사구조, 영화미학, 주제의식에 대한 작품분석을 통해 퀘벡사회와 맺는 사회맥락적 의미를 규명하는데 있다. 본 연구를 위해 '작가구조주의'와 '문화연구'라는 두 가지 층위의 연구방법론을 도입하였다. 이를 통해, 첫째, 소피 데라스페 감독은 퀘벡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현하는 '퀘벡성'을 가진 작가주의 감독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둘째, 서사구조에서는 소포클레스의 원작 '안티고네'를 알레고리 삼아 21세기 퀘벡의 이주민 집단과 차별문제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특징을 갖고 있으며, 셋째, 영화미학적 측면에서는 인서트, SNS, 환타지와 같은 가상의 미장센을 통해 극적 효과를 부여하고 있으며, 넷째, 주제에서는 민족에 근거한 과거의 정체성을 '개방성과 혼종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확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티고네>는 퀘벡영화의 '이주 글쓰기' 전통을 계승하면서, 글로벌 시대의 보편적 가치관인 '혼종적 정체성'을 추구하며 퀘벡영화를 재영토화해 나가는 '뉴 퀘벡 시네마(New Quebec Cinema)'의 새로운 흐름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Keywords

I. 서 론

<안티고네>는 캐나다 퀘벡(Quebec)주의 영화감독 소피 데라스페(Sophie Deraspe)가 2019년 연출한 작품이다. 퀘벡주는 캐나다 연방에서 전체 인구의 25% 정도를 차지하며,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이 주로 거주하는 독특한 문화지형을 가진 지역이다. 역사적으로 1534년 프랑스 국왕 프랑수와 1세의 지시로 카르티에(Jacques Cartier, 1491-1557) 원정대가 이 지역에 도착한 이후, 프랑스계 이주민들이 만든 식민지로 발전해왔고, 영국과의 각축 끝에 결국 영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모국인 프랑스의 문화적 전통을 견지하고 있지만, 단절과 소통을 반복하는 애증의 관계 속에 결국 영국 연방의 지배를 받는 소수민족 지역으로 남았다.

1960년대 ‘조용한 혁명(Quiet Revolution)’을 시작으로 퀘벡의 문화정체성을 바탕으로 식민성과 변방 의식을 극복하려는 자각 운동이 본격화 되었다. 21세기 이후에는 프랑스 문화권이라는 폐쇄적 정체성을 벗어나, 글로벌 이주와 문화개방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탈중심적 정체성’과 ‘혼종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특수성에서 보편성으로 문화전통을 재영토화하려는 새로운 문화적 흐름이 일고 있다. 영화 <안티고네>는 이러한 퀘벡의 새로운 문화적 변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화이다.

영화 <안티고네>는 고대 그리스의 작가 소포클레스 (Sophocles, BC496-406)의 비극 ‘안티고네’를 영화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안티고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의 딸이다. 원작 ‘안티고네’는 권력을 되찾기 위해 외세를 끌어들여 조국 테베와 전쟁을 일으키다 죽은 큰오빠 폴리네이케스의 금지된 장례를 치르다가 감옥에서 자살한 비극적 여성을 다룬 이야기이다. 안티고네는 조국을 배반한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장례를 금지한 섭정 크레온의 국가법을 거부하고, 오빠의 장례를 신성한 신의 법이라 주장하며 저항한 인물이다. 영화 <안티고네>는 퀘벡에서 발생했던 실제 사건을 그리스 비극의 서사를 빌어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알제리에서 퀘벡으로 이주해온 안티고네가 친오빠를 대신하여 감옥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통해 국가법과 가족윤리 사이의 모순과 갈등을 다룬다. <안티고네>는 퀘벡의 특수한 정체성의 문제를 이주와 혼 종성이라는 담론을 통해 인류보편적 가치관과 윤리문제를 제기하는 대담한 시도를 보여준다. 또한 <안티고네>는 토론토국제영화제 장편영화상을 수상하고 미국아카데미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퀘벡의 미래지향적 문화 정체성을 담지하는 새로운 영화로 주목받았다.

이 글의 목적은 영화 <안티고네>에 대한 서사구조, 영화미학, 주제의식에 대한 작품분석을 통해 이 영화가 퀘벡 사회와 맺는 사회맥락적(context) 의미를 규명하는데 있다. 특히 문화적 특수성을 강조해온 로컬영화에서 혼종적 보편성의 영역으로 재영토화하는 최근의 캐나다 뉴 퀘벡 시네마의 새로운 흐름을 학술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본 연구를 위해 ‘작가구조주의’와 ‘문화연구(culture studies)’라는 두 가지 층위의 연구방법론을 도입하고자 한다. 먼저 ‘작가구조주의’는 감독의 역할에 대한 숭배와 낭만성을 강조하는 단순한 작가주의를 넘어 감독이라는 존재와 역할을 해당 사회구조 속에 찾고 사회적 요인들의 조정자이자 재현자로 간주하는 시선을 의미한다. “작가를 초개인적인 약호들(신화, 도상, 장소) 의조정자로 간주”하며, 감독을 개인으로서의 예술가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구성물로 간주하려는 시도이다[1]. 한편 ‘문화연구’는 영화, TV드라마 등 미디어 담론 (discours)에 나타나는 인종, 젠더, 계급, 문화 정체성에 주목하며, 그 속에 발생하는 수용, 갈등, 타협의 문화 현상을 연구하는 연구방법론으로, 영국의 스튜어트 홀 (Stuart Hall)과 버밍엄의 현대문화연구소를 중심으로알튀세(Althusser), 그람시(Gramsci) 등 후기 마르크시즘에 착안하여 계급과 지배이데올로기에 주목하며 문화요인과 사회변혁의 문제를 유기적으로 규명해온 실천적 연구방식이다. 문화연구는 “의미가 생산되고 수용되는 사회제도적 조건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연구로서, 스튜어트 홀은 문화연구란 단순한 학술영역이 아닌 인종과 계급의 억압을 타파하는 ‘정치적 운동’이라 주장한다[2]. ‘문화연구’ 방법론은 <안티고네> 속 퀘벡 사회의 인종차별, 계급갈등, 이데올로기, 억압의 폭력 등 다층화된 문화갈등 요인을 컨텍스트적(context)으로 분석하는데 유용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따라서 ‘작가구조주의론’을 차용하여 퀘벡의 영화감독인 소피데라스페 감독의 영화세계를 분석하고, ‘문화연구론’으로 <안티고네>가 당대 퀘벡사회와 맺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규명하는 연구방법론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본 연구를 위해 퀘벡영화와 소피 데라스페 감독에 대한 다양한 문헌자료와 언론자료에 대한 선행연구를 조사하였다. 단행본으로는 김도훈의 『퀘벡영화의 클리세』, 퀘벡학연구모임의 『퀘벡, 재현된 역사 혹은 역사의 재현』 등이 있으며, 학술논문으로는 이희승의 「소포클레스비극의 영화적 각색 연구: 소피 데라스페의 <안티고네> 를 중심으로」, 김로유의 「퀘벡영화의 아토피아, 헤테로토피아 - 드니 아르캉, 자비에 돌란 영화의 공간 재현」, 이송이의 「자비에 돌란(Xavier Dolan)의 <로렌스 애니웨이(Laurence Anyways)>, <탐앳더팜(Tom à la ferme)>에 나타난 탈정체성의 공간화」, 이인숙의 「자비에 돌란 영화에 나타난 퀴어 의미 연구」 등을 통해 퀘벡 영화의 특징을 참조할 수 있었다[3-8]. 특히 퀘벡 영화의 정체성을 역사적 서술로 분석한 김도훈의 단행본, <안티고네>를 현대적 각색의 관점에서 분석한 이희승의 글은 이 글을 작성하는데 중요한 학술적 동기와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음을 밝힌다[3][5]. 해외에서 발간된 <몬트리올 가제트(montreal Gazette)>, <버라이어티지(Variety)>, <할리우드리포터(Hollywood Report)>를 비롯한 언론자료와 감독의 인터뷰 자료 또한 본 연구의 참고자료로 활용하였음을 밝힌다.

이 글은 크게 I장 서론, II장 본론, III장 결론이라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I장에서는 연구목적을 비롯하여, 연구방법론, 선행연구를 제기하였고, II장 본론에서는 첫째, 감독의 영화연혁에서의 특징, 둘째, 서사구조의 특징과 원작과의 비교분석, 셋째, 영화언어와 미학적 특징, 넷째, 주제의식과 퀘벡사회가 갖는 사회맥락적 의미에 대해 분석하였으며, III장 결론에서는 퀘벡영화사에서 차지하는 영화사적 의의와 뉴 퀘벡 시네마에 대한 전망으로 구성하였다.

II. 본론

1. 감독의 영화연혁과 ‘퀘벡성(quebecrite)’

소피 데라스페(Sophie Deraspe) 감독은 1973년생으로 캐나다 퀘벡에서 활동하는 여성 영화감독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시각예술을 공부한 후, 1995년부터 캐나다 몬트리올대학교에서 영화와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였고 1998년에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후 방송과 영화 현장에서 연출과 촬영감독으로 일했다. 2000년 필립팔라르도(Philippe Falardeau) 감독의 데뷔작 와 앙드레 투르팽 (André Turpin) 감독의 영화 연출부에서 작업하였으며, 2001년 이후에는 <나(Moi)>, <바다(La Mer)>을 비롯한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2007년부터 2년간 몬트리올의 예술가센터인 비디오촬영기구(Board of directors of Vidéographe) 대표로 일했다. 현재 사진작가, 다큐멘터리, 극영화를 오가며 각본, 촬영, 연출 등 영화 전 분야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그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은 2006년 <빅토르 펠레렝을 찾아서(Missing Victor Pellerin, Rechercher Victor Pellerin)>(캐나다, 102분)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각본, 촬영, 편집, 연출 등 일인다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미스테리한 화가 빅토르 펠레렝(Victor Pellerin) 의 실종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와 허구가 혼재한 영화로 표현한 작품으로, 2007년 몬트리올 ‘뉴시네마페스티벌 (Festival du nouveau cinéma)’에서 국제경쟁 부문심사위원 특별언급을 받았다.

두 번째 장편영화는 2009년 <바이탈 사인(Les signes vitaux, Vital Signs)>(캐나다, 88분)이다. 이 영화에서 각본과 연출을 맡았고, 몬트리올에서 열린 뉴시네마 페스티벌(the Festival of New Cinema)에서 첫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캐나다 휘슬러영화제(Whistler Film Festival)에서 최고의 뉴 캐나디언 영화상(Best New Canadian Film)을 비롯, 15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였다. 2014년에는 프랑스와 캐나다 공동제작 영화 <더 울브스(Les loups, The Wolves)>(107분)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이 영화는 퀘벡 지역의 막달렌섬 (Magdalen Islands)을 배경으로 소녀들의 정착과 성장 이야기를 실제 주민들을 기용하여 연출하였다. 2015년 토리노 국제영화제(Torino Film Festival)에서 국제비평가협회(Fipresci)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었다.

2015년에는 감독의 첫 장편다큐멘터리 영화 <아미나프로필(The Amina Profile)>(85분)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이 영화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사는 산드라 바가리아와 ‘다마스커스의 게이 소녀’라는 블로그를 시작한 시리아계 미국인 아미나 아라프를 소재로 미디어 네트워크의 문제점을 비판한 작품이다.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상영된 이후 이스라엘 텔아비브영화제, 더블린영화제 등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였다. 2019년에는 영화인 일곱명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실험 영화 <더 세븐 라스트 워즈(Les sept dernieres paroles, The Seven Last Words)>(캐나다, 74분) 의공동 연출자로 참여했다.

2019년 다섯 번째 연출작 <안티고네(Antigone)>의각본, 촬영, 편집, 연출을 맡았다. 이 영화는 2008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실제 발생했던 경찰관의 이민자 총격 사건에 착안하여 기획한 작품이다. 열여섯살 이민자의 사건을 그리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 빗대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연출하였다. 이 영화로 2020년 제31회 팜스프링스 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FIPRESCI) 각본상, 2019년 제44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캐나다 장편영화상(Best Canadian Film)’ 을 받았다.

2020년 데라스페 감독은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을 주관하는 영화예술아카데미협회(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 Sciences) 회원으로 선정되었으며, 2021에는 캐나다 퀘벡 지역에서 최고의 창작 작가에게 수여 하는 예술가(Compagne de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du Québec)에 선정되었다.

소피 데라스페 감독은 <몬트리올가제트(Montreal Gazette)>의 표현대로, “데뷔 이래 퀘벡에서 발생한 이야기에 주목해”온 감독이다. 2019년 영화 <안티고네> 를 연출하게 된 배경에 대해 감독은 “퀘벡지역 몬트리올에서 2008년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온두라스 이민자인 프레디 빌라누에바(Fredy Villanueva)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영화이다. 우리는 캐나다 시민권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이민자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안티고네는 현실에 공감하는 것에 대한 영화이다”라고 말한다[9]. 퀘벡영화인들은 1960년대 ‘조용한 혁명’ 이후 전통에 대한 자각 속에 스스로를 프랑스계 캐나다인이 아닌 ‘퀘벡인(Quebecois)’라 부르며,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해 왔다. 소피 데라스페 감독은 퀘벡영화의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5편의 영화를 연출하며, 퀘벡 지역의 문화정체성인 ‘퀘벡 성(quebecrite)’과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온 ‘뉴 퀘벡 시네마’의 선두주자이자, “퀘벡성을 보여주는 작가주의 감독 (Quebecious writer-director)”이다[10].

2. 서사구조: 알레고리(allegory)로서의 그리스 비극 구체적 작품분석

1) 서사의 분절과 특징

영화 <안티고네>의 서사구조를 시퀀스(sequence)에 기반하여 구분하면 아래와 같이 8개의 서사의 분절로 나눌 수 있다.

i)프롤로그 : 머리를 자르는 안티고네. ii)퀘벡 이주민안티고네 가족의 일상의 모습. iii)경찰의 총격에 큰오빠는 사망하고 작은오빠는 범죄혐의로 체포된다. iv) 추방될 위기에 처한 작은오빠를 구하기 위해 안티고네는 작은오빠로 위장하여 대신 감옥에 들어간다. v) 안티고네의 수감생활과 재판이 시작되고 SNS를 중심으로 ‘프리 안티고네’ 시위와 여론이 확산된다. vi) 지지여론의확산 속에 안티고네가 석방되는 시점에 작은오빠 폴리네이케스가 다시 체포되어 안티고네는 절규한다. vii) 가석방된 안티고네는 시민권이 없어 추방당하는 할머니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viii) 추방당하는 안티고네 일행은 공항에서 캐나다로 막 입국하는 이주민 어린이와 마주치며 영화는 끝난다.

<안티고네>의 서사구조를 분석할 때 시퀀스를 기준으로 구분짓는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명확하게 구분하기 쉽지 않다. 각 시퀀스는 다수의 짧은 신(scene)과 인서트(insert)로 구성되어 있어, 시퀀스별로 서사구조의 단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물의 욕망과 행동에 따라 축적되는 서사구조의 이야기 단계로 시퀀스를 재구성하면 발단단계(시퀀스i, ii), 전개 단계(시퀀스iii, iv, v), 위기 및 절정단계(시퀀스vi), 결말단계(시퀀스 vii, viii)로 재구분할 수 있다.

발단단계(시퀀스i, ii)는 비장한 표정으로 머리를 짧게 자르는 안티고네의 얼굴 클로즈업을 보여주는 프롤로그에서 시작하여, 안티고네의 가족과 고등학교 생활을 보여주는 설정단계로 이어진다. 퀘벡 몬트리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안티고네는 알제리에서 이주한 고등학생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향에서 살해당하자 할머니, 두 명의 오빠, 언니와 함께 퀘벡으로 도망치듯 이주해온 것이다. 안티고네는 학교에서 거액의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모범적이고 우수한 성적을 가진 학생이다. 이 장학금은 나중에 체포되는 할머니의 가석방 보석금으로 사용하는 서사의 복선으로 작동한다. 안티고네는 방과 후 남몰래 숲속을 찾아 자연 속 자유를 만끽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같은 반 하이몬은 이런 안티고네를 좋아하고,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진다. 발단 부에는 주인공 안티고네, 가족, 주변 인물에 대한 시공간적 설정과 몬트리올로 이주해온 과정을 보여준다.

전개단계(시퀀스iii, iv, v)는 큰오빠의 죽음과 작은오빠의 체포(전개1, 시퀀스iii), 안티고네가 작은오빠를 대신하여 감옥에 들어가는 과정(전개2, 시퀀스iv), 수감생활과 재판(전개3, 시퀀스 v)이라는 세 단계로 구성된다. ‘전개1(시퀀스iii)’은 큰오빠 에테오클레스가 경찰의 총격으로 죽고, 작은오빠 폴리네이케스가 체포되는 사건을 다룬다. 폴리네이케스를 체포하러던 경찰은 에테오클레스가 휴대폰을 만지자 총으로 오인하여 총격으로 죽이게 된 것이다. 젊은층의 SNS를 중심으로 총격으로 사망한 에테오클레스를 추모하고 경찰에 항의하는 여론이 확산된다. 한편 체포된 폴리네이케스는 시민권이 없는 데다 전과가 있어서 알제리로 강제추방당하게 된다. ‘전개2(시퀀스iv)’는 안티고네가 작은오빠를 대신하여 감옥으로 들어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큰오빠를 잃은 슬픔과 작은오빠의 추방 소식을 알게 된 안티고네는 겨우 빠져나온 알제리로 다시 강제 추방되는 작은오빠를 돕기 위해 자기가 희생하기로 결심하고, 작은오빠를 대신하여 감옥에 들어가기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변장한다. 할머니와 언니는 괴로워하고, 남자친구 하이몬은 “어떠한 모습이든 널 사랑한다”며 안티고네의 행동을 지지한다. 안티고네는 폴리네이케스를 면회한 후 대신하여 감옥에 들어가지만 곧 발각된다. ‘전개3(시퀀스 v)’은 수감된 안티고네의 재판과 시민여론의 변화를 보여준다. 작은오빠를 대신하여 수감생활을 한 범죄로 청소년구치소에 수감된 안티고네는 국선변호인 오닐의도움 속에 재판을 받는다. 법정에 선 안티고네는 판사에게 “전 언제든 법을 어길 거에요. 오빠를 도우라고 심장이 시켜요”라고 말하며 스스로 변론한다. 안티고네는 구치소 안 교도관의 편견과 폭력에 맞서며 동료들의 지지를 받고, 구치소 또한 안티고네의 헌신으로 다문화를 존중하는 민주적 수감시설로 바뀌게 된다. TV뉴스와 SNS를 통해 안티고네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게 되고, SNS를 중심으로 ‘프리 안티고네’ 지지 운동이 확산된다. 할머니는 안티고네가 갇힌 구치소 광장에서 홀로 노래를 부르며 시위를 하고, 남자친구 하이몬도 SNS 활동을 중심으로 적극 구명 활동에 나선다.

위기 및 절정단계(시퀀스vi)는 안티고네가 가석방 선고를 받으려는 순간, 폴리케이네스가 다시 체포되면서 시작한다. 좌절에 빠진 안티고네는 ‘시민권을 얻기 위해 포기하라’는 판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온몸으로 저항하다 독방에 갇힌다. 안티고네는 가족을 향한 자신의 양심과 국가법 사이에서 절규한다. 정신과 여의사가 안티고네를 찾아와 “넌 영원히 갇히게 될 것”이라 선언하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결말단계(시퀀스vii, viii)는 안티고네의 마지막 선택 장면이다. 남자친구 하이몬의 아버지이자 정치가인 크리스티앙은 안티고네를 가석방시키기 위해 후견인으로 나서고, 가석방된 안티고네는 할머니와 가족을 재회하지만 폴리네이케스는 다시 알제리로 강제 추방되어야 하고, 할머니는 작은오빠와 같이 돌아갈 것이라 선언한다. 안티고네는 남자친구 하이몬과 추억이 담긴 숲속에서 마지막 사랑을 나누며, 크리스티앙의 시민권 제안을 거절하고 할머니와 같이 알제리로 스스로 추방하는 결단을 내린다. 공항 출국장에서 안티고네는 막 입국 하는 또 다른 이민자 어린이를 쳐다보며 영화는 끝난다.

이처럼 <안티고네>의 서사구조는 전형적인 3막 구조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독립적인 시퀀스 단위로 서사구조가 축적되지 않고 안티고네의 시선과 내면의 흐름을 따라 짧게 분할된 여러 개의 씬과 인서트로 서사구조가 구축되는 독특한 양식적 특징이 있다.

2) 확장된 서사: 알레고리(allegory)로서의 그리스 비극

영화 <안티고네>의 서사구조는 고대 그리스 소포클레스(Sophocles, BC496-406)의 원작을 21세기 퀘벡을 배경으로 현대적으로 각색한 내용이다. 소포클레스의 원작 ‘안티고네’는 그의 전작 <오이디푸스왕>의 이야기에서 이어진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왕과 그의 친모인 이오카스테 사이에 딸이자 손녀라는 비극적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오이디푸스왕은 근친상간의 결혼이라는 죄를 씻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아내이자 어머니의 남동생 크레온에게 자신이 통치하던 테베를 맡기고 유랑길에 오르고 죽음을 맞이한다. 원작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왕이 죽은 후 남은 두 아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왕위를 놓고 전쟁을 일으킨 후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큰아들폴리네이케스는 동생과의 불화 속에 이웃국가인 아르고스로 도망쳐 그곳에서 공주와 결혼한 후, 아르고스 동맹국들과 연합하여 일곱 장군을 거느리고 그의 조국 테베를 공격한다. 그의 동생 에테오클레스는 이들에 맞서 테베를 방어하다가 결국 두 형제 모두 전사한다. 테베의 섭정이자 안티고네의 외삼촌인 크레온은 테베를 지키다 전사한 에테오클레스를 위해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고, 테베를 공격한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매장을 금지하며 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들판에 방치한 후 이를 어기는 자가 있으면 죽음을 내릴 것이라는 국법을 내린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큰오빠폴리네이케스의 시체를 매장하다가 체포된다. 크레온의 국가법보다 신의 법(인륜)을 우위에 두는 안티고네는 목숨을 건 불복종을 한 것이다. 결국 안티고네는 감옥에서 목을 매어 자결하고, 안티고네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이었던 하이몬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칼로 자살한다. 이 소식을 들은 크레온의 아내이자 하이몬의어머니 에우리디케 또한 칼로 자결함으로써 이 거대한 비극은 막을 내린다.

원작 ‘안티고네’의 서사구조는 서막, 삽화(5개), 종막이라는 전형적인 그리스 비극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서막은 도입부에 해당하며 인물과 극의 상황을 제시한다. 서막에서 코로스의 첫 번째 합창인 등장가가 마치면, 현대극의 막(幕)에 해당하는 삽화로 이어진다. 각 삽화의 끝에는 코로스의 합창이 배치되어 있다. 종막은 결말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코로스의 언급으로 마무리된다. 원작 ‘안티고네’에서는 종막에서 사자(使者)가 아들 하이몬과 아내 에우리디케의 사망 소식을 크레온에게 전하고, 크레온은 절규하며 막을 내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이란 시작과 중간과 끝으로 구성되고, 일정한 길이를 갖춘 완결하고 고상한 인간 행위의 모방으로서, 비극의 목적은 연민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며 카타르시스(catharsis)에 도달하는 것이라 말한다[11].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주인공 인물은 높은 신분의 인물로서, 자신의 과오나 실수로 행복에서 불행으로 추락하면서 완결된다. 원작 ‘안티고네’ 에서의 비극성은 공주라는 영광의 신분에서 비참하게 목을 매어 자결하게 되는 안티고네의 운명과 자신의 오만함으로 자식과 아내를 잃은 크레온의 운명을 대비시키며 비극을 종결한다.

원작 ‘안티고네’에서는 국법(국가법)과 인륜(인간의 윤리)의 충돌이 근원적 갈등이다. 안티고네에게는 큰오빠 폴리네이케스가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인가가 더 중요하다. 한편 크레온에게는 폴리네이케스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 더 중요하다.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명령으로 대변되는 국가법보다는 개인의 양심이라는 ‘신의 법’에 따라 행동하였지만, 사실 국가법과 인륜은 둘 다 공동체의 선을 추구하는 존립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원작의 비극성은 존립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국가법과 개인의 양심이 대립하고 충돌하는 상황에서 기인한다. 안티고네가 국가법을 따랐더라면 파멸로 치닫지 않았을 것이며, 비극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고 당당하고 고결하게 맞선다. 자신의 죽음조차 타인의 손에 맡기지 않는다. ‘개인의 양심’이라는 ‘신의 법’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고결함을 지켜낸 것이다.

원작의 안티고네는 크레온에게, “당신의 명령은 신의 명령과 다릅니다. 이 땅의 인간들을 다스리는 신의 정의는 당신의 명령이나 법과는 무관합니다. 저는 인간인 당신의 명령이, 신들의 불문율에 우선할 만큼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의 법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그 어느 누구도 말할 순 없지만, 신의 불문율은 과거나 현재의 것이 아니라 항상 살아 숨쉬는 영원한 법이지 않습니까! 인간의 뜻을 따르기 위해 신의 불문율을 범할 수는 없습니다. 오빠의 시신을 매장도 하지 않은 채 거기 방치 한다는 건 절대로 참을 수 없어요”라고 외친다. 이에 대해 크레온은 안티고네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은 조국을 공격하다 죽었고, 또한 사람은 조국을 지키다 죽지 않았느냐. 선한 자와 악한 자를 동등하게 대우해 줄 수는 없다”[12]. 한편 안티고네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 또한 아버지에게 맞선다. “안티고네와 같은 고귀한 행동으로 인해 그렇게 부당한 대접을 받고 치욕스러운 죽음을 당할 위험한 경우에 처한 적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장되지 못한 채 들판에 방치된 가엾은 오빠의 시신을 거두어 굶주린 개와 독수리로부터 오빠를 지켜준 안티고네의 행동은 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행동이 죄가 되기는커녕 상을 받을 행동이라 수군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생각과 판단만이 옳다고 고집하지 말아 주십시오. 테베 백성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13], 결국 크레온의 오만함은 안티고네와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뒤이어 아내마저 자결하게 만든다. 크레온은 뒤늦게 깨달은 자신의 오만함에 절규한다. 종막에서 크레온은 코로스장에게, “죄, 나의 잘못된 영혼의 죄가 내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소. 여기 죽은 아비와 죽은 이들을 보시오. 나의 판단에 저주가 내려라! 슬픔을 당하고 고통을 겪어서야 나 이제 깨닫게 되었소. 신은 내 머리 위에 무거운 형벌을 내렸소. 나의 사악함을 벌하시고 날 쓰리고도 고통스러운 길로 내치셔서 나의 모든 기쁨 짓밟아 버렸소. 모든 것은 고통 속으로 사라지고 인간의 삶, 헛되고도 헛되구나!”고 외친다. 코로스는 인간의 오만이 파멸을 부르는 것을 경고하며 극을 마친다. “지혜가 없으면 행복이 없고 신들을 경배할 수 없는 자 지혜를 얻을 수 없으리라! 오만방자한 인간의 건방진 큰소리 크나큰 재난과 불행을 불러들이고 늙어서야 비로써 지혜를 얻으리라(모두 퇴장, 종막 끝)”[14].

영화 <안티고네>는 원작의 이름과 가족관계를 차용하지만, 21세기 퀘벡이라는 현대적 시공간 속 사건으로 상황을 변용하고 있다. 소설이나 문학작품의 영화화는 새로운 해석이자 ‘다시 쓰기(re-writing)’가 수반된다. 영화 <안티고네>는 서사구조, 인물, 사건 등 원작의 특징적인 부분을 수용하면서도, 퀘벡사회가 직면한 당대의 공동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 <안티고네>안티고네는 원작과 유사한 총명하면서도 강인한 성격의 고등학생이다. 부모님이 알제리에서 내전으로 살해당한 후 퀘벡지역으로 이주해온 출신 배경 탓에 가족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 강하다. 이러한 가족애는 오빠를 빼돌리고 대신하여 감옥에 가는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된다. 원작과 같은 이름이지만 역할이 뒤바뀐 것은 두 오빠와 언니 캐릭터이다. 큰오빠에테오클레스는 갱스터 조직원이자 축구리그 선수이다. 남동생을 체포하러 온 경찰 앞에 휴대폰을 꺼내려다 오인 받아 총에 맞아 죽는다. 안티고네의 언니로 나오는이스메네는 미용사로서, 오빠의 죽음과 남동생의 체포에 가슴 아파하지만 캐나다 국가법을 준수하며 평범하게 정착하며 살기를 원한다. 작은오빠 폴리네이케스는마약을 밀매하는 갱스터 조직원으로 무책임하고 충동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문제로 형이 총에 맞아 죽고, 동생 안티고네마저 감옥에 들어가지만 스스로 문제해결에 나서지 못한다.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안티고네의 할머니는 모성애로 가득찬 인물로서 안티고네의 든든한 안식처이다. 아들 내외가 죽은 후 손주들을 데리고 퀘벡으로 이주해 왔지만, 복잡한 행정절차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여전한 이방인이다. 손주들을 위해 자기희생을 하는 인물로서, 추방당하는 손주와 함께 마지막까지 같이 따라간다. 한편 안티고네의 남자친구 하이몬은 이민자 출신인 안티고네를 편견없이 사랑하는 순수한 퀘벡 백인청년이다. 안티고네의 범죄행위를 끝까지 지지하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준다. 하이몬의 아버지 크리스티앙은 합리적인 성향의 정치인이다. 외아들하이몬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기에 안티고네 문제로 인한 하이몬의 방황을 걱정하고 있으며, 결국 그들의 편에 서서 선의를 베푸는 인물로 등장한다. 반면 영화 속 형사와 판사의 존재는 원작의 테베의 통치자 크레온과 같이 국가법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안티고네를 취조하는 형사는 죽은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가 캐나다 시민과 사회에 해를 끼친 마약밀매 조직원임을 강조하며 안티고네의 행위가 결국 범죄자를 도와준 행위라고 비난한다. 법정의 판사 또한 안티고네의 범죄행위를 국가법에 기초하여 냉정하게 심판하고 있으며, ‘너는 시민권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안티고네에게 국가법을 준수하는 방향의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이처럼 영화 <안티고네>에서는 원작에 등장하는 에테오클레스, 폴리네이케스, 이스메네, 하이몬과 같은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일부 역할에 변용을 준다. 문제를 일으킨 오빠 폴리네이케스는 원작과 달리 무책임한 범죄자일 뿐이다. 또한 원작에서 갈등의 한 축이었던 하이몬의 아버지이자 테베의 통치자 크레온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고, 영화 속 하이몬의 아버지 크리스티앙은 원작과 달리 합리적이고 선의를 가진 인물로 나온다. 대신 원작에서 안티고네와 대립하고 갈등을 빚었던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체포하고 재판하는 경찰과 판사로 대체되어 있다. 그러나 영화 <안티고네>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양심’과 ‘국가법’ 사이의 갈등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룬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안티고네가 강조하는 ‘개인의 양심’은 크레온의 ‘국가법’을 대체하는 경찰과 판사와의 대립하고, 이들 사이의 갈등의 축을 따라 서사구조가 구축되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영화 <안티고네>는 ‘하나의 세계 속에 두 개의 법’이 충돌하는 지점이다[15]. ‘국가법과 개인의 윤리의 충돌’이라는 국가/가족, 실정법/자연법, 인간의 법 /신의 법의 이항대립적 갈등이 빚는 비극성을 드러내는 공통점이 있는 반면, 원작의 인물을 퀘벡사회의 현실에 맞게 알레고리 형식으로 변용하여 인물 관계와 성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차이점도 있다.

‘안티고네’는 자기희생의 영웅 원형으로서 재해석과 재탄생을 거듭해 왔다. 조셉(G. Josheph)이 “문화적 시금석(cultural touchstone)이다”라고 표현한 바와 같이, 1777년 이탈리아의 극작가 비토리오 알피에리 (Vitorio Alfieri(1749-1803))의 <안티고네>를 비롯하여, 1922년 프랑스의 작가 장 콕토와 1944년 장 아누이(Jean Anouilh)의 <안티고네>, 1946년 독일의 작가 브레히트의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등 연극을 중심으로 각 시대 작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고 변형되어 왔다[16]. 자신의 운명에 도전하는 인간으로 자기희생과 자기극복을 통해 인간의 삶에 새로운 전망과 가능성을 제시하는 영웅 인물의 원형으로 해석되어져 왔다. 안티고네의 영웅성이란 조셉 캠벨이 정의한 “정복과 퇴치의 외적인 힘의 행위와 더불어 고난의 극복과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의 전환을 통한 내적인 고양”을 가진 존재이다[17]. 국가문화권, 민족, 시대를 넘어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핵심적인 인간 경험의 기본이 되면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까지 반복되고 축적되어온 인류의 근본적 이미지, 집단 무의식, 경험의 심리적 축적을 의미하며, 현대 인간의 사고와 가치관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영웅의 원형으로 표상되어 왔다 [18]. 일반적으로 영웅 서사는 개인적 차원의 ‘인정’보다는 국가적 민족적 차원의 ‘충의’를 실현하는 쪽으로 기울여져 왔다. 영웅들은 사회적 윤리를 지키고 관객들은 그 속에 깃든 지배이데올로기에 감화 받으며 자신의 가치관으로 수용한다[19].

안티고네를 철학적 명제로 부각한 것은 독일의 철학자 헤겔(F. Hegel)이다. 헤겔은 안티고네가 “지상에 나타난 인물 중 가장 고결한 인물”이라 극찬하며, 포클레스의 원작에 나오는 세계관의 충돌을 변증법적 개념으로 정리한다. 비슷한 정당성을 갖는 두 개의 명제가 서로 충돌한 후, 서로의 한계는 부정되고 극복되어 새로운 명제로 나아가게 됨으로써, 절대정신이 자기를 드러내는 과정으로 파악한다[20]. 또한 안티고네를 국가 의법에 맞서 가족의 가치를 옹호하는 신의 법을 따르는 여성으로 독해한다. 『정신현상학』에서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대립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대립은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 세계인 국가에 의해 ‘지양’된다고 본다. 이에 비해, 라캉과 버틀러는 안티고네를 헤겔의 공적 영역에 버려지는 ‘공동체의 아이러니한 존재’가 아닌 지배적 상징질서에서 벗어난 새로운 기표와 담론을 생산하는 주체로서의 당당한 해방자임을 밝히고 있다[21]. 영화 속 안티고네는 “전 언제든 법을 어길 거에요. 내 심장이 시켰어요”라고 당당히 외치며 주체적 담론의 생산자로 나아간다. 원작에 나오는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배도 운명을 거슬러 나아갈 순 없다”라는 대사처럼, 자신의 비극적 운명 속에서도 강인하고 고결하게 운명에 맞서는 숭고한 인물이다[22].

소피 데라스페 감독은 소포클레스의 비극인 ‘안티고네’를 영화 속 알레고리(allegory)로 차용하여, 현재의 퀘벡공동체의 사회문제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기존에 제작되어온 ‘안티고네’ 원작의 작품과는 차별성을 가진다. 원작 ‘안티고네’의 비극성을 캐나다 퀘벡의 이주 문제, 차별문제로 환치한 것이다. 감독은 <몬트리올 가제트(Montreal Gazette)>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퀘벡지역 몬트리올에서 2008년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온두라스 이민자 사건에 착안하여 연출했다. 만약 안티고네가 그들의 여동생이었다면 살아남은 한 오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라고 말한다[23]. 감독이 언급한 ‘프레디 빌라누에바 사건’은 2008년 8월 9일 퀘벡 몬트리올시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당시 경찰은 범죄조직원으로 추정되는 젊은이들을 향해 경고 사격을 하던 중 프레디 빌라누에바가 사망하고, 그의 친형 대니 빌라누에바는 총상을 입고 온두라스로 추방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사망한 프레디는 18살에 불과했다. 사건 직후 몬트리올 전역에서 경찰의 총격에 항의하는 시위가 크게 일어났고, 소피 데라스페 감독은 이 사건에 직접적인 영감을 받아 영화 <안티고네>를 연출한 것이다. 소피 데라스페 감독은 그리스의 ‘안티고네’를 알레고리로서 소환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퀘벡지역의 이주민 문제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되짚는 영화를 연출한 것이다. <할리우드 리포터(Hollywood Reporter)>의표 현을 빌리면, “21세기 퀘벡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을 그리스 소포클레스의 비극적 반영웅(anti-hero) 의 이야기로 각색하여, 현대판 몬트리올의 이야기로 연출한 것이다”[24].

3. 현실에 틈입한 가상의 미쟝센(mise-en-scene)

문학작품과 같은 원작의 현대적 변용은 결국 이미지와 사운드의 예술매체인 영화의 특성을 반영하여 어떠한 영화기술과 영화언어로 재창조할 것인가로 이어진다. 데라스페 감독은 <안티고네>에서 인서트(insert), 인터넷 SNS 장면, 환타지 신(scene)과 같은 가상의 미장센 장치를 활용하여 영화의 극적 효과를 부여하는 독특한 미학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주로 공연이나 문학 작품 중심으로 재창작되어온 ‘안티고네’를 영화적 미학으로 변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사적 의의가 있다.

첫째, 8개의 각 시퀀스마다 인서트(insert)를 배치하여 신과 신의 장면전환 장치, 극적 정보를 전달하는 장치, 그리고 극적 정서를 극대화하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영화 속 인서트가 등장하는 장면은 총 10개로서, 아래와 같은 장면이다. ‘insert1’: 안티고네 가족의 공항 입국 장면, ‘insert2’: 장학금을 받는 안티고네, ‘insert3’: 휴대폰으로 찍은 경찰 총에 맞아 죽는 큰오빠 장면, ‘insert4’: SNS로 보여주는 시위 장면, ‘insert5’: 알제리 고향에서 누군가가 부모님의 시신을 집 앞에 두고 떠나는 장면, ‘insert6’: 작은오빠와 큰오빠에 대한 과거 회상 장면, ‘insert7’: 고향 마을 풍경을 담은 장면, ‘insert8’: SNS 속 지지 확산 장면, ‘insert9’: SNS 속 ‘프리 안티고네’ 지지와 응원 운동, ‘insert10’: 고향 마을 장면. 이러한 인서트의 등장을 서사구조와의 관계 속에서 재배열해 보면, 먼저, 인서트1, 2, 4, 5, 8, 9는 영화 속에서 새로운 정보와 소식을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안티고네와 가족을 소개하거나(인서트 1, 2, 5), 장학금 수여 장면을 넣어 안티고네의 모범적인 면모와 함께 나중에 이 돈이 할머니의 보석금으로 사용하는 서사의 복선으로 기능하거나(인서트 2), [그림 1][그림 2]와 같이 안티고네 사건에 대한 시민여론의 동향이나 ‘프리 안티고네 운동’의 확산 소식을 전달한다(인서트4, 8, 9). 인서트3, 5, 6, 7, 10은 안티고네의 내면의 흐름을 드러내면서, 극적 정서를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죽은 큰오빠와 작은오빠의 예전 모습을 보여주며 안티고네의 애틋한 가족애를 보여주거나(인서트 3, 6), 고향에서의 부모님의 비극적인 죽음을 보여주며 다시 추방하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을 환기시켜 주거나(인서트5), [그림 3]과 같이 고향 마을 전경을 보여주면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부각하는 장치(인서트7, 10)로 활용한다. 영화 속 인서트는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chorus)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점도 특징적이다.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는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의례를 올리고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이다. 코러스는 사건을 해설하거나 관중의 의견을 대변하고, 주인공과의 대화를 통해 상황을 전달하거나 충고하는 역할을 통해 극의 분위기와 감정을 고조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스 대중들의 여론, 욕망, 정서를 집단적으로 표현하면서, 객관적인 지혜의 말이나 판단을 전달한다[25]. 특히 SNS 영상을 활용한 인서트에서는 여론동향과 사람들의 인터뷰를 재현하면서 현대판 코러스 역할을 영화적으로 표현한 장치로 분석된다. 이처럼 영화 속 인서트 장치를 배치하여 장면전환 방법으로 활용하거나, 영화 속 극적 정보와 소식을 전달하고 안티고네의 내면의 흐름이나 극적 정서를 환기시키는 영화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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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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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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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둘째, 가상현실의 환타지신(fantasy scene)을 배치하여 안티고네의 의식의 흐름과 내면의 갈등을 영화적으로 재현한다. [그림 4-6]이 들어 있는 시퀀스vii) 은서사구조의 절정단계로, ‘프리 안티고네’ 여론의 확산으로 안티고네가 석방되려는 순간에 다시 작은오빠 폴리네이케스가 체포되면서 자신의 희생과 노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안티고네의 절규와 고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법정의 판사는 안티고네에게 ‘시민권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석방해 줄테니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자신의 희생이 덧없이 끝난 것을 알고 시민권마저 거부하고 절망에 빠진다. 이때 독방에 수감된 안티고네에게 정신과 여의사 테레사가 찾아온다. 테레사는 안티고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통해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한다. “너는 왜 여기 와 있느냐?”, 안티고네는 “곤란한 선택을 해야 해서요. 가족을 책임져야 해요”라고 답한다. 잠시 대화를 나눈 후 테레사는 안티고네에게 차갑게 심판한다, “네 마음과 인간의 법 사이의 싸움은 풀 수 없다. 넌 산채로 갇힐 것이다”. 안티고네는 고통과 슬픔에 절규하며 깨어난다. 그리고 고향 마을의 전경을 떠올린다. 앞을 볼 수 없는 정신과 여의사 테레사의 방문은 안티고네의 꿈이거나 환상 체험이다. 다시 체포된 작은오빠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안티고네의 분노, 좌절, 슬픔이 복잡하게 얽힌 내면의 상태를 가상의 미쟝센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제 안티고네는 새로운 결단을 선택해야 한다. 이제라도 평범한 시민권자로 돌아가 하이몬과 사랑을 이루며 퀘벡에서 행복한 미래를 살 것인가, 아니면 작은오빠와 할머니와 함께 악몽같은 고국으로 추방되어 떠날 것인가. 정신과 여의사 테레사가 눈이 먼 의사로 등장하는 장면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저주받은 결혼으로 스스로 눈을 찌른 원작의 오이디푸스왕을 떠올리게 한다. 눈은 멀었지만 진실한 마음의 눈을 보여준 여의사 테레사가 등장하는 가상의 환타지 장면은 수감된 안티고네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과 새로운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안티고네의 내면의 흐름을 영화적 양식으로 드러낸 미장센 장치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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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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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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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셋째, 젊은층의 열정적인 저항과 다문화적 요소를 음악, 색채의 미쟝센으로 부각한다. [그림 7][그림 8]과 같이, 시위 장면에서는 유색인종계 젊은층을 전면에 내세우며, 젊은층이 선호하는 빠른 비트의 랩이나 힙합으로 구성된 감각적인 음악과 댄스장면을 빠른 편집으로 보여준다. 또한 뜨거운 열정을 상징하는 빨간색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저항운동을 부각한다.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SNS 속에서 확산되는 ‘프리 안티고네 운동’의상 징 색은 강렬한 빨강색이며, 안티고네의 구치소 수감 동료들은 머리를 빨갛게 물들이며 공감과 연대의 저항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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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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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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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기타, [그림 9]와 같이 공항에서 추방당하는 안티고네의 얼굴 클로즈업 장면으로 영화가 끝나는 장면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를 자르는 안티고네의 얼굴에서 시작하여 추방당하는 공항에서 이주민 소녀와 마주치는 클로즈업 장면으로 마무리 된다. 얼굴 클로즈업 장면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티고네가 추방당하더라도 또다른 안티고네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퀘벡 이주민들의 굴레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퀘벡의 안티고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퀘벡 사회의 이주민의 초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영화적 오브제이다. 이처럼 데라스페 감독은 인서트, SNS, 환타지 장면, 얼굴 오브제와 같은 현실세계에 틈입한 가상의 미장센 장치를 통해 영화의 극적 효과를 부여하고 정서적 분위기를 환기하는 독특한 미학적 특징을 선보인다.

4. 퀘벡영화 전통의 계승과 재영토화(Reterritorialization): ‘21세기 왕의 딸들(Filles du Roy)’ 이야기

영화 <안티고네>는 원작의 ‘국가법’ 대 ‘신의 법(인륜)’ 의 대립을 퀘벡사회의 이주문제로 환치시키며 퀘벡 지역의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사회문화적 의미가 있다. 영화 속에서 국가법은 이주민의 시민권과 사회적 차별을 놓고 충돌한다. 마약조직원인 작은오빠가 체포되어 본국으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자 안티고네는 작은오빠를 탈출시키고 스스로 수감하기로 결심한다. 부모님의 죽음을 겪으면서 겨우 탈출해온 본국으로 다시 추방당하는 가족의 고통을 자신의 희생으로 지키려 한 것이다. 범죄자인 작은오빠를 탈출시키고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는 안티고네의 희생은 가족을 위한 행위이지만, 동시에 국가가 정한 법을 정면으로 어긴 범법행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안티고네는 가족윤리를 지킨 영웅적 인물이지만, 국가법을 부정한 반 (反)영웅이기도 하다.

폴리네이케스를 체포한 경찰은 국가법의 정당한 집행자이다. 경찰은 안티고네에게 “당신이 풀어준 작은오빠는 마약범죄 조직원이다”고 비난하고, 안티고네는 “전 언제든 법을 어길 거에요. 오빠를 도우라고 심장이 시켜요”라는 가족윤리로 대응한다. 안티고네의 가족윤리와 경찰의 국가법은 정면으로 충돌하고, 퀘벡의 사회문제로 확산된다. 하이몬과 젊은 세대는 SNS를 중심으로 안티고네의 정당함과 석방을 내세우며 ‘프리 안티고네’ 운동을 지지한다. 반면 경찰과 사법부는 국가법에 근거하여 안티고네를 처벌하려 한다. 이러한 대립 과정속에 시민여론은 안티고네의 희생과 가족윤리에 동조하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사법부는 국가법의 준수를 전제로 안티고네에게 가석방을 권유한다. 하지만 폴리네이케스가 다시 체포되고, 안티고네는 자신의 희생이 무산되는 현실 앞에 좌절하고 절망한다. 재판을 거부하려는 안티고네에게 판사는 “시민권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국가법에 대한 준수를 요구하고, 안티고네는 자신의 시민권과 가족의 안위를 놓고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안티고네의 내면적 갈등과 고통은 정신과 여의사가 등장하는 환상장면으로 극대화한다. 여의사 테레자는 “너는 왜 여기 감옥에 와 있느냐?”고 묻고, 안티고네는 “곤란한 선택을 해야 해서요. 가족을 책임져야 해요”라고 답한다. 테레자는 안티고네에게 판결을 내리듯 선언한다, “네 마음과 인간의 법 사이의 싸움은 풀 수가 없다. 넌 산채로 갇힐 거야”. 안티고네는 극한의 악몽에 시달린다. 하이몬의 아버지 크리스티앙이 후견인을 자처하며 안티고네는 가석방 되지만 다시 결단의 기로에선 다. 작은오빠는 강제추방으로 결정되었고, 할머니는 작은오빠와 같이 본국으로 가려 한다. 하이몬은 안티고네에게 시민권을 받고 캐나다에서 행복하게 살자고 제안하고, 친언니마저 자신은 캐나다에서 시민권을 얻어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울부짖는다. 결국 안티고네는 시민권을 포기하고 할머니를 모시고 본국으로 강제추방 당하는 선택을 한다. 국가법 대신 가족윤리를 선택한 비극적 반(反)영웅의 길로 걸어간다.

<안티고네>의 주제의식인 ‘국가법’과 ‘가족윤리’의 대립은 이주의 역사로 만들어진 퀘벡의 역사라는 사회 맥락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대립의 근저에는 ‘퀘벡성(quebecrite)’이라는 퀘벡 사회가 지향하는 정체성을 둘러싼 이주민 집단에 대한 차별문제가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퀘벡주의 몬트리올은 전체 인구 200 만명 중 비백인계 인구는 1980년대초 5%에서 현재 25%를 넘어서고 있다. 무슬림 인구 또한 15만명을 넘어섰다[26]. 안티고네는 결손가정(부모님의 부재), 가난, 소외라는 퀘벡 이주민이 겪는 삼중적 질곡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나는 언제든 법을 어길 거에요”라고 외치는 안티고네의 행동은 이주민에 대한 국가법의 폭력성을 양심의 윤리로 저항하는 반(反)영웅의 고결한 행동이며, 비극적 카타르시스가 내포된 ‘경건한 범행’이다. 백인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이 사망한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LiverMatter)’는 반정부 시위와 유사한 저항이다. 안티고네의 저항은 아마르티아 센 이 말 한 바와 같이, “특정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어떤 전통적 생활양식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것을 사회에서 허락하지 않는다면 문화적 자유가 방해받을 수 있음을 인정하며”, 이에 맞서 싸우는 영웅적 행위이다[27].

퀘벡사회의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퀘벡공동체가 형성되어진 역사적 연원을 전제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퀘벡은 16세기 이후 프랑스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만든 지역이다. 영국계 이주민이 통치해온 캐나다연방 속에서 소수민족이자 비주류 공동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퀘벡의 역사는 16세기 누벨프랑스(Nouvelle-France)를 기원으로 한다. 1534년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재위 1515-1547)는 카르티에(Jacques Cartier, 1491-1557) 에게 신대륙 개척을 명령하고, 카르티에는 북아메리카대륙의 세인트로렌스(Saint-Laurent)강 유역에 있는 원주민들이 카나타(Kanata)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올라왔다. 원주민 언어로 ‘마을’이라는 뜻의 이 보통 명사는 훗날 고유명사인 캐나다라는 국명의 기원이 된다. 1608년 샹플랭(Samuel de Champlain)은 원주민 말로 ‘강폭이 좁아지는 지역’이라는 뜻의 퀘벡시(Ville de Quebec)를 건설한다. 당시 프랑스 국왕이었던 앙리4 세는 샹플랭이 탐험한 이 지역을 새로운 프랑스 즉, ‘누벨 프랑스’로 명명하고 프랑스의 식민지로 삼았다. 이후 퀘벡 일대는 모피 교역권을 독점적으로 다루는 ‘누벨프랑스 회사(La Compagnie de la Nouvelle-France)’ 가 설립되어 식민지 행정을 담당했고, 가톨릭의 대대적인 전도가 이루어졌다. 1665년부터 1673년에 걸쳐 프랑스 국왕은 식민지 남성들의 결혼을 위해 ‘왕의 딸들 (Filles du Roy)’이라 호칭한 900여명의 본국 여성을 보냈다. 이들 프랑스 본국 출신 여성들은 ‘퀘벡 여성 잔혹사’로 알려진 혹독한 적응 과정을 거치면서, 퀘벡 지역의 프랑스어를 통일시키고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18세기 이후 누벨 프랑스 지역은 8만명이 넘게 거주했지만, 북아메리카 13개주에 걸쳐 백만명 이상이 거주하던 영국과의 전쟁에 밀려 1759년에는 퀘벡을, 1760 년에는 몬트리올을 영국에 빼앗겼다. 영국이 퀘벡 지역을 통치하면서 프랑스 본국에서도 퀘벡의 프랑스인들을 캐나다인이라 부르며 사실상 누벨 프랑스 시대는 끝난다. 1774년 영국 국왕 조지3세(GeorgeIII)는 누벨프랑스를 해체하고 영국식 행정체계로 통치했지만, ‘퀘벡 법(Acte de Quebec)’을 제정하여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민법, 언어, 관습을 인정해 준다.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영국 식민지 13개주가 미합중국으로 독립하자, 캐나다영국연방은 ‘1791년 헌법(Acte constitutionnel de 1791)’을 제정하여, 세인트로렌스강을 경계로 온타리오 지역을 ‘상부 캐나다(Haut-Canada)’, 퀘벡 지역을 ‘하부 캐나다(Bas-Canada)’로 나눈 후 각각 독립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두었다. 그러나 1792년 캐나다 토지국이 ‘하부 캐나다’의 프랑스식 봉건제도를 폐지하자, 퀘벡에서는 1837년 ‘애국자의 반란(Rebellion des Patriotes)’이 일어났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1840 년 영국 의회는 ‘통합 조례(Acte d’Union)’를 통과시켜 ‘상부 캐나다’와 ‘하부 캐나다’를 하나로 통일한다. 1867년 ‘퀘벡, 온타리오, 뉴브런즈윅, 노바스코샤’를 캐나다 자치령(Dominion du Canada)으로 통합하고, 연방 수도를 오타와로 정한다. 연방 의회에서는 영어만을 공용어로 인정하고, 퀘벡지역은 사실상 캐나다 내 비주류 문화권으로 내몰린다.

1960년대 들어 퀘벡 지역을 중심으로 프랑스어, 가톨릭 종교, 농업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을 내건 민족주의운동이 시작되었다. 1965년 퀘벡의 집권당이 된 자유당은 ‘이제는 변화할 때’라는 모토를 내걸고 퀘벡의 현대화와 개혁을 단행하면서 소외되고 낙후된 퀘벡의 위상을 제고하였다. 이것이 1960년대의 유명한 ‘조용한 혁명’이다. ‘조용한 혁명’ 이후 퀘벡주는 단일한 민족공동체로 새롭게 변모하였고, 프랑스어는 퀘벡 정체성의 상징으로 강조되었다. 현대화와 경제발전의 성과를 바탕으로 진보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 정책, 교육, 문화 운동이 전개되었다. 1976년에는 프랑스어가 퀘벡에서 영어와 같은 공용어 위상을 갖는 ‘101조법(La Loi 101)’을 통과시키고, 퀘벡이 연방정부와 대등한 관계를 갖는 주권국가임을 선언하지만, 분리 독립 안건은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다. 1994년 퀘벡의 주권과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가 다시 실시되었고, 찬성 49.4%, 반대 50.6%로 아슬아슬하게 부결되었다. 퀘벡의 분리 독립이냐, 연방 잔류냐는 여전히 첨예한 정치문제로 남아있다.

현재까지 퀘벡인들은 캐나다 연연방 안에서 ‘퀘벡성’ 이라는 스스로의 뿌리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과거의 ‘퀘벡성’이라는 정체성 속에 글로벌 시대 이후 유입되는 이주민 집단과 다문화에 대한 혼종적 담론을 수용해야 하는 새로운 변용의 시기를 맞고 있다. 북아메리카라는 지역성에 기반한 아메리카 성(Americanite)을 내세우며 북위 55도 지역의 노르딕 지역성을 강조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확장해나가기도 했다. 또한 민족성에 기반한 정체성은 새로 구성된 이주민 집단을 통합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도 안게 되었다. 상징적인 사건이 2019년 퀘벡의 ‘101조법’ 을 둘러싼 정체성 갈등이다. ‘101조법’은 이주민 자녀를 프랑스 학교에 보내 프랑스어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던 동화정책이었지만, 이주민들의 다문화적 자율성이 결여되었다는 지적과 함께 오히려 퀘벡의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21세기 이후 퀘벡에서는 퀘벡인의 정체성 속에 이주민 집단의 다문화적 요소가 반영된 ‘혼종성’의 정체성 담론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퀘벡 문학계에서 본격화된 ‘이주 글쓰기(ecriture migrante)’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반영한문화예술의 흐름이다. 이처럼 1960년대 ‘조용한 혁명’ 이후 퀘벡의 민족주의 운동은 분리 독립문제로 이어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과거의 프랑스 정체성을 넘어 새로운 혼종성의 담론으로 퀘벡의 정체성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문화계를 중심으로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소피 데라스페 감독의 <안티고네>는 이러한 최근의 퀘벡에서 활발히 일고 있는 혼종적 정체성 담론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또한 <안티고네>는 퀘벡인의 주체적 시선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추구해온 퀘벡영화사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퀘벡 영화는 1906년 첫 영화관이 설립된 이래 자신들의 시선으로스스로의 정체성을 재현해온 전통을 가지고 있다.

퀘벡영화는 1906년 최초의 영화상영관 위메토스코프 (Ouimetoscope)에서 다큐멘터리가 상영된 이래, 1922 년 퀘벡 최초의 장편영화인 오미에(Joseph Homier) 감독의 <마들렌 드베르세르(Madeleine de Vercheres)> 가 제작되었다. 1939년에는 캐나다 정부의 요청으로 그리어슨감독이 국립영화제작소(ONF, Office National du Film)를 설립하였고, 1956년 본부를 몬트리올로 이전하며 이후 프랑스어 영화에 대한 지원은 독립된 부서로 운영되고 있다. 퀘벡영화인들은 1960년대 ‘조용한 혁명’ 이후 퀘벡인의 삶과 이미지를 담은 영화를 본격적으로 제작해 왔다. 1971년 클로드 쥐트라 감독의 <앙트완삼촌>은 퀘벡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영화이다. 이 영화는 1940년대 퀘벡 탄광촌을 배경으로 퀘벡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면서 누벨프랑스 시대 모피 사냥을 위해 집을 떠나야 했던 부재(不在)하는 아버지에 대한 퀘벡 전통의 이미지를 담아내며, 전통에 대한 자성과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정치적 열망을 알레고리로 풀어낸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영화인들이 10년마다 선정하는 ‘역대 최고의 캐나다영화 10편’에 매번 선정된 퀘벡영화를 상징하는 영화이다.

2000년대 이후 퀘벡영화는 전통을 부정하고 새로운 퀘벡 정체성을 담기 위해 과거의 표상인 아버지의 존재를 지우고 새로운 자아를 확립하려는 집단무의식을 담은 알레고리적 영화가 대거 출현했다. 특히, 해외 이주민의 시점과 역할이 영화 속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4년 프랑시스 르클레르 감독의 <알렉산더를 찾아서>는 21세기 퀘벡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으려는 영화인들의 자성이 잘 드러난 영화이다. 뺑소니 차량에 치인 후 기억상실증에 걸린 수의사 알렉산더는 흑인 의사와 레바논계 형사의 도움으로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해 나가면서 새로운 진실에 눈을 뜨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알렉산더는 이주민계 퀘벡인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살해한 어두운 과거를 기억해 내지만, 그 자신에게도 폭력적인 아버지의 성향이 들어와 있음을 자각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퀘벡 자동차 번호판의 모토 ‘나는 기억한다’ 문구는 다분히 상징적이다. 1883년 퀘벡의 건축가 타세(Tache)가 현 퀘벡 의회 건물에 붙인 이 모토는 1978년 퀘벡의 자동차판에 새겨졌고, 퀘벡의 뿌리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정치적 의미로 자주 인용된다. 영화에서 알렉산더가 이주민들인 흑인 의사코비오와 레바논계 여형사 막수드에 의해 자신의 기억을 되찾아 가는 과정은 현대 퀘벡의 정체성에 대한 상징적인 알레고리로 해석된다. 2011년 필립 팔라르도감독의 <라자르 선생님(Monsieur Lazhar)>와 2014년 <마미(Mommy)>(2014)로 칸느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퀘벡 청년문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도 이러한 새로운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 <라자르 선생님>은 알제리에서 이주해온 라자르가 몬트리올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하면서 겪는 정체성 문제를 다룬 영화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이주민 라자르가 아버지가 부재한 퀘벡 학생 알 리스를 만나 상호의지하며 유사가족으로 맺어지는 관계를 다룬 내용으로, 아버지가 부재한 퀘벡의 역사에서 이주민과 새로운 가족으로 재탄생하는 혼종성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돌란 감독의 <아이 킬드 마이 마더>(2009)와 <마미(Mommy)>(2014)는 실제 이민계 가정 출신인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아이 킬드 마이 마더>는 이혼한 어머니 샹탈과 함께 사는 16살 소년 위베르가 독립하면서 발생하는 어머니와의 애증 관계를 다룬 영화이며, <마미>는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디안과 사는 장애소년 스티브가 폭력, 자해 등 걷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수용시설에 갇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감독의 말에 의하면 ‘자신과 퀘벡 사이의 애 중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28].

이처럼 퀘벡영화의 최근 흐름은 민족성에 기반한 특수성에서 탈민족적 혼종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 담론으로 나아가고 있다. 새로운 이주 집단과 다문화적 시선은 퀘벡성의 새로운 정립이라는 시대적 요구로 나타나고, 퀘벡영화인들은 서로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혼 종적 문화공동체 담론으로 응답하고 있다. 이제 퀘벡 영화인들은 프랑스계 정체성을 영화 속에 어떻게 담을 것인지에 대한 전통적 질문에서 벗어나, 새로운 ‘혼종적 정체성’의 담지자로 스스로를 위치하고 있다.

<안티고네>는 이러한 최근 퀘벡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상징하는 영화이다. 영화는 퀘벡사회의 이주자와 다문화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보편적 가족윤리의 관점에서 정면으로 비판한다. 퀘벡지역은 프랑스계 캐나다라는 특수한 정체성을 견지하며 캐나다 안의 차별적 지위에 맞서 싸워왔지만, 민족 특수성의 강조는 역설적으로 외부세계와 고립되는 ‘퀘벡성’으로 귀결되었고, 그 결과이주민 집단에 대한 사회적 차별문제라는 ‘퀘벡성’의 정체에 대한 논란을 야기하였다.

<안티고네>는 퀘벡사회에서 원작의 안티고네와 같이 매장의 허가를 받지 못한 소수자들, 억압되어온 타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영화이다. 또한 억눌린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를 강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수잔 손택 (Susan Sontag)은 인류의 차별이 초래한 살상과 죽음의 이미지를 도상학적으로 분석하면서, “다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같이 바보는 되지 말자”고 말한다[29]. <안티고네>는 국가법이라는 이름으로 부당하게 희생되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을 돌아보자고 촉구하는 영화이며, 스피박이 말한 인식론적 폭력(epistemic violence) 의기획을 거부하는 영화이다. 스피박은 식민 주체를 타자로 구성하는 기획을 인식론적 폭력이라 말하며, 이 기획은 타자의 불안정한 주체성(subjectivity) 속에 있는 타자의 흔적을 비대칭적으로 말소할 것이며, 이 인식론적 폭력의 회로 속에서 과연 하위주체(서발턴, subaltern) 는 말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그리고 이주민 집단과 같은 하위주체 구성원과 시민권 혹은 제도성의 회로들 사이에 의사소통의 선이 확립될 때, 그 하위주체는 헤게모니로 가는 장구한 도정에 투입될 수 있다고 말한다 [30]. 그렇다면 과연 안티고네의 행동은 퀘벡사회에 아무런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그대로 추방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오빠를 대신하여 감옥으로 들어간 안티고네의 고독하고 경건한 범죄는 퀘벡사회의 국가법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법질서의 재구성이라는 정치적 효과를 수반한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위협을 무릅쓰고 공동체의 법 밖으로 추방되는 안티고네의 비극적인 행위를 통해 퀘벡 공동체는 갱생의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윤리적 행위는 상징적 법을 비틀어 예외를 만드는 주체의 해방된 힘을 예증한다”[31].

이처럼 소피 데라스페 감독은 그리스의 비극적 영웅 안티고네를 21세기의 퀘벡으로 소환하여, 국가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이주민에 대한 추방과 수감이 과연 보편적 윤리에 적합한가를 되묻고 있다. ‘혼종성 정체성’ 의 담론을 통해 퀘벡사회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퀘벡성’ 을 제시하고 있다. 현지 언론에서도 “북미 지역, 특히 퀘벡 몬트리올 지역의 이민자의 문제를 각색하였다”[32], “소포클레스의 비극적 반영웅(anti-hero)의 이야기를 21세기 퀘벡의 이주민 문제로 재현한 영화이다”고 평가한다[33]. 감독 또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몬트리올에서 2008년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온두라스 이민자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영화이다. 퀘벡에서 발생한 2019년 21헌장(Bill21)을 비롯한 불공정한 인종주의에 대한 시민불복종 운동에서도 영향을 받았다”고 제작 동기를 술회하고 있다[34]. ‘빌21(Bill21)’은 2019년 퀘벡 주정부가 종교 색채를 배제하기 위해 경찰, 교사 등 공무원은 공공장소에서 히잡, 터번 같은 특정 종교를 상징하는 장신구를 착용할 수 없게 규정한 세속주의 (secularism) 법안으로, 이주민 집단에 대한 차별적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감독은 “범죄자 오빠를 위해온 몸을 던지는 안티고네의 행위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인간이 만든 법이나 제도가 아닌 가족애와 신념을 위해 희생하고 저항하는 인물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35]. <안티고네> 속의 저항은 퀘벡 영화인들이 이주민들을 통해 내부의 타자성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사회의 이질적인 요소에 대한 새로운 정체성을 탐구하려는 시도이며, 특수한 주변적 표상에서 21세기 문화적 혼종 시대를 맞아 퀘벡인들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는 보편성의 담론이다.

결국 <안티고네>는 민족성을 기반으로 하는 퀘벡 전통의 정체성의 담론을 ‘개방성과 혼종성’이라는 글로벌시대의 보편적 가치로 재영토화하고 있는 ‘뉴 퀘벡 시네마’의 전형(典型)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화사적 의의를 가진다. 17세기 누벨프랑스 시대 프랑스에서 이주하여 퀘벡의 정체성을 형성했던 ‘왕의 딸들’ 이야기처럼, 21세기 퀘벡의 새로운 이주민 집단을 상징하는 주인공 ‘안티고네’를 통해 ‘21세기 왕의 딸들(Filles du Roy)’ 의 이야기를 연출한 것이다.

III. 결론

지금까지 캐나다 퀘벡의 영화감독인 소피 데라스페의 작품 <안티고네>를 ‘작가구조주의’와 ‘문화연구’라는 두 가지 층위의 연구방법론을 도입하여, 서사구조, 미학적 특징, 사회맥락적 의미라는 세 가지 층위에서 분석해 보았다.

이를 통해, 첫째, 소피 델라스페 감독은 자신이 거주하는 퀘벡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과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온 ‘퀘벡성’의 작가주의 감독(Quebecious writer-director)’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서사구조에서는 그리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 를 알레고리(allegory) 삼아 21세기 퀘벡의 이주민 집단과 차별문제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확장된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 몬트리올에서 실제 발생한 온두라스 이민자에 대한 경찰의 총격사건을 소포클레스의 비극적 영웅 ‘안티고네’의 서사로 환치하여, 현대판 몬트리올의 안티고네 이야기로 서사를 확장한 것이다. 셋째, 영화 미학적 측면에서는 인서트(insert), 인터넷 SNS 장면, 환타지, 얼굴 오브제와 같은 현실세계에 틈입한 가상의 미장센을 통해 영화의 극적 효과를 부여하고 정서적 분위기를 환기하는 미학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넷째, 주제 의식에서는 ‘퀘벡성’이라는 민족에 근거한 과거의 특수성 담론을 ‘개방성과 혼종성’이라는 글로벌 시대의 보편적 가치로 확장하는 퀘벡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소피 데라스페 감독은 <안티고네>를 통해 퀘벡 사회의 이주민 차별과 문화정체성에 대한 비판의식을 재현하고 있다. 데라스페 감독은 퀘벡문화예술계에서 일기 시작한 ‘이주 글쓰기’의 전통을 계승하며 ‘혼 종적 정체성’의 담론으로 퀘벡영화를 재구성해 나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안티고네>는 글로벌 시대의 보편적 가치관인 ‘혼종적 정체성’을 제기하며 퀘벡영화를 재영토화(reterritorialization) 나가는 최근 ‘뉴 퀘벡 시네마(New Quebec Cinema)’의 흐름을 상징하는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안티고네> 연구를 통해 퀘벡영화의 문화 정체성과 최근의 새로운 동향을 규명한 것은 이 연구가 갖는 조그만 성과이다. 하지만 최근 사비에 돌란 감독을 비롯한 캐나다 ‘뉴 퀘벡 시네마’의 다양한 경향과 구체적 작품을 유형별로 세부적으로 연구하는 작업은 또다른 연구영역이며 후속연구가 필요한 논제이기도 하다. 이 글이 글로벌 시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횡단하고 있는 ‘혼 종적 정체성’ 담론을 재현하는 영화연구에 새로운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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