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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Song Festivals and Musicians' Sense of the World -Inter-Asian Perspective and Eurasian Imagination in the Study of Korean Popular Song during the Cold War

국제가요제와 세계 감각 -냉전 시기 대중음악사 연구의 인터아시아적 관점과 유라시아적 상상력

  • 김성희 (북한대학원대학교 심연북한연구소)
  • Received : 2021.01.08
  • Accepted : 2021.02.15
  • Published : 2021.02.28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how international song festivals shaped Korean musicians' sense of the world in the 1970s and early 1980s. After the Korean composer, Yi Pongjo, won a top-10 prize at the Yamaha World Popular Song Festival in 1970, an astonishing number of Korean musicians participated in international song festivals held in Japan. Meanwhile, Korean broadcasting companies strengthened their cooperative relationship with Japanese television stations and initiated their own international song festivals in the late 1970s: Munhwa Broadcasting Corporation (MBC)'s Seoul International Song Festival in 1978 and Tongyang Broadcasting Corporation (TBC)'s World Song Festival in 1979. During the first two years of its festival, MBC organized its song contest by collaborating with television stations in Hong Kong, Taiwan, Japan, and the ASEAN countries. However, the World Song Festival was more critically acclaimed because TBC invited renowned musicians from America and European countries, including Yugoslavia, in collaboration with the International Federation of Festival Organizations (FIDOF). Thus, from 1980, FIDOF helped MBC attract composers and singers from Europe and America to their Seoul International Song Festival. This paper sheds light on connections within the popular music arena between South Korea and the outside world during the Cold War-a subject that has been poorly examined.

이 연구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국제가요제가 어떻게 한국 대중음악가들의 세계 감각을 형성하게 했는가에 대해 살펴본다. 1970년 이봉조가 일본 야마하 세계가요제에서 입상한 이후, 한국의 작곡가와 가수들은 일본의 국제가요제에 참가하였다. 일본 국제가요제는 한국과 일본 간의 대중음악 교류를 활발하게 하였다. 단순히 교류에 그치지 않고, 일본 국제가요제의 자극을 받아, 1978년에는 문화방송이 MBC 서울국제가요제를 1979년에는 동양방송이 TBC 세계가요제를 개최하였다. MBC는 1978년과 1979년 가요제를 아시아 국가 중심으로 치렀다. 반면, TBC는 국제가요제연맹(FIDOF)의 도움으로 미주와 유럽, 특히 유고슬라비아의 가수들까지 참여시켰다. 이에 MBC도 1980년부터는 국제가요제연맹의 협력을 얻어 유럽의 유명 작곡가들을 유치했다. 이 논문은 한국 대중음악 연구의 공백이었던 국제가요제를 중심으로 냉전 시대 한국 대중음악과 세계 대중음악의 연결망을 재발견한다.

Keywords

Acknowledgement

이 논문은 2017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7S1A3A2065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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