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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seon Confucian Ruling Class's Records and Visual Media of Suryukjae (Water and Land Ceremony) during the Fif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조선 15~17세기 수륙재(水陸齋)에 대한 유신(儒臣)의 기록과 시각 매체

  • Received : 2019.12.31
  • Accepted : 2020.02.10
  • Published : 2020.03.30

Abstract

The Confucian ruling class of the Joseon Dynasty regarded Buddhist rituals as "dangerous festivals." However, these Buddhist ceremonies facilitated transitions between phases of life from birth till death and strengthened communal unity through their joint practice of the rites. Ritual spaces were decorated with various utensils and objects that transformed them into wondrous arenas. Of these ornaments, Buddhist paintings served as the most effective visual medium for educating the common people. As an example, a painting of the Ten Kings of the Underworld (siwangdo) could be hung as a means to illustrate the Buddhist view of the afterlife, embedded in images not only inside a Buddhist temple hall, but in any space where a Buddhist ritual was being held. Demand for Buddhist paintings rose considerably with their use in ritual spaces. Nectar ritual paintings (gamnodo), including scenes of appeasement rites for the souls of the deceased, emphasized depictions of royal family members and their royal relatives. In Chinese paintings of the water and land ceremony (suryukjae), these figures referred to one of several sacred groups who invited deities to a ritual. However, in Korean paintings of a nectar ritual, the iconography symbolized the patronage of the royal court and underlined the historicity and tradition of nationally conducted water and land ceremonies. This royal patronage implied the social and governmental sanction of Buddhist rituals. By including depictions of royal family members and their royal relatives, Joseon Buddhist paintings highlighted this approval. The Joseon ruling class outwardly feared that Buddhist rituals might undermine observance of Confucian proprieties and lead to a corruption of public morals, since monks and laymen, men and women, and people of all ranks mingled within the ritual spaces. The concern of the ruling class was also closely related to the nature of festivals, which involved deviation from the routines of daily life and violation of taboos. Since visual media such as paintings were considered to hold a special power, some members of the ruling class attempted to exploit this power, while others were apprehensive of the risks they entailed. According to Joseon wangjo sillok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the Joseon royal court burned Buddhist paintings and ordered the arrest of those who created them, while emphasizing their dangers. It further announced that so many citizens were gathering in Buddhist ritual spaces that the capital city was being left vacant. However, this record also paradoxically suggests that Buddhist rituals were widely considered festivals that people should participate in. Buddhist rituals could not be easily suppressed since they performed important religious functions reflecting the phases of the human life cycle, and had no available Confucian replacements. Their festive nature, unifying communities, expanded significantly at the time. The nectar ritual paintings of the late Joseon period realistically delineated nectar rituals and depicted the troops of traveling actors and performers that began to emerge during the seventeenth century. Such Buddhist rituals for consoling souls who encountered an unfortunate death were held annually and evolved into festivals during which the Joseon people relieved their everyday fatigue and refreshed themselves. The process of adopting Buddhist rituals-regarded as "dangerous festivals" due to political suppression of Buddhism in the Confucian nation-as seasonal customs and communal feasts is well reflected in the changes made in Buddhist paintings.

조선 개국 후 유교적 가치관으로 성장한 통치 계급에게 불교 의례는 이른바 '위험한 축제'로 인식되었다. 의례는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삶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다음 단계로의 이행을 도왔고, 제의를 통해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했다. 의례 공간에는 도량을 신비로운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다양한 공양구와 기물이 장엄되고 범음구와 범패가 어우러졌다. 그 중에서도 불교 회화는 기층민에게 강한 효력을 지닌 시각 매체로 적극 활용되었다. 생사의 인과응보를 담은 <시왕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의식이 마련된 도량에 불화를 헌괘하고 이를 생생하게 설명해주는 '관청(觀聽)'에 대한 수요로 불화의 기능은 더욱 확대되었다. 천도 의례 장면을 담은 <감로도>에는 왕실과 종친의 모습이 강조되어 표현되었다. 중국의 수륙화에서 이 도상은 수륙재에 봉청(奉請)하는 존귀한 대상 중 한 그룹이었으나 16세기 <감로도>에는 왕실의 후원을 상징하며 국행 수륙재의 역사성과 전통을 입증하는 존재로 도해된다. 왕실 후원은 불교 의례에 대한 사회적 공인과 같았고, 이러한 메시지를 드러내고 싶은 흔적이 <감로도>에 남아있다. 의례에 대한 위정자(爲政者)들의 경계는 표면적으로는 군중이 참여하는 의례 공간에 승속(僧俗), 남녀, 신분의 귀천(貴賤)이 함께 어우러지기에 예의가 무너지고 풍기가 문란해질 것이라는 우려였다. 또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 금기로 부터의 해방이라는 축제의 요소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각 매체는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인식되었기에 그 힘을 이용하고자 하는 측과 위험성을 우려하는 시선이 공존했다. 실록(實錄)의 기록에서 위험성을 강조하며 불화를 불태우고 불화를 그린 자를 잡아오도록 하는 일련의 조치나, 도성이 텅 비도록 군중들이 모여든 기록은 역설적이게도 불교 의례가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축제의 장으로 인식됐음을 반증한다. 불교 의례는 생의 순환 단계에서 유교가 대체할 수 없는 종교적 기능을 지니고 있기에 쉽게 사라질 수 없었고, 공동체를 통합하는 축제의 요소는 더욱 강화되었다. 조선 후기 <감로도>에는 17세기부터 본격화되는 사당패나 연희패가 도해되고 의례의 현장감이 생생하게 반영되었다. 불행한 죽음을 위로하던 불교 의식은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마련되어 일상의 고단함을 털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유교 국가의 정책적 탄압에 '위험한 축제'로 인식되던 불교 의례가 정례적인 세시풍속이자 공동체의 축제로 수용되는 과정을 불교 회화에 재현된 시선의 변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Key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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