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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Transmission and the Phases of Trauma in Vietnam War novels

베트남전쟁 소설에 나타난 기억의 전승과 트라우마 양상

  • 음영철 (삼육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부교수)
  • Received : 2020.08.05
  • Accepted : 2020.10.07
  • Published : 2020.11.28

Abstract

In this paper, the transmission and the phases of the memories in the novels dealing with Vietnam War have been studied. As a research method, Aleida Assmann's memory theory which plays a role in culturoloy theory is utilized. This study shows firstly that the others' voices excluded from the official memories of Vietnam War have emerged. Vietnam War novels released after 1990s actively reflecting the others' voices transmitted fresh the cultural memories. As the stories of civilian massacre, defoliant victims, and children of mixed bloods, Lai Daihan excluded from the official memories have emerged as a main them in the Vietnam War novels, they have become resistant memories. Existence and Formality, a Vietnam War novel by Bang Hyeonsuk brings up how to remember Vietnam War. His another novel, Time to Eat Lobster shows that without the fundamental retrospect and introspection of Vietnam War, Korea can't help but have the identity of America. Secondly, this paper shows that the tragedy of Vietnam War remains as a trauma that human bodies remember. White War by Ahn Jeonghyo shows that the memory moves back to the past in the process of struggle. In the novel, Slow Bullet by Lee Daehwan the phases of demage from defoliants lead to the family's tragedy. The Red Ao Dai by O Hyeonmi shows how a Korean-Vietnamese overcomes negation of his father and win his identity. In A Sad Song in Saigon shows that a mixed blood, Sairang who suffered from the confusion of his identity and his story fell down to a romance novel because of the weakness of narrative.

이 논문은 베트남전쟁 소설에 나타난 기억의 전승과 트라우마 양상을 연구한 것이다. 연구방법으로는 문화학 이론에 일조한 알라이다 아스만의 기억이론을 활용하였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베트남전쟁에서 배제된 타자의 목소리를 제기하였다. 1990년대 이후 발표된 베트남전쟁 소설은 타자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여 문화적 기억을 새롭게 전승하였다. 공식기억에서 배제된 민간인학살, 고엽제 피해자, 혼혈아 라이따이한 등의 이야기가 소설화되면서 대항기억으로 부상한 것이다. 방현석의 베트남전쟁 소설인 <존재와 형식>에서는 베트남전쟁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제기하였다. 방현석의 <랍스타를 먹는 시간>에서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반성 없이는 한국은 미군의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밝혔다. 둘째, 베트남전쟁의 비극성을 다룬 것으로 몸이 기억하는 트라우마 양상을 제시하였다. 안정효의 <하얀 전쟁>은 기억 투쟁의 과정에서 과거로 퇴행하였음을 밝혔다. 이대환의 <슬로우 불릿>은 고엽제로 인한 피해 양상이 가족사의 비극으로 이어짐을 밝혔다. 오현미의 <붉은 아오자이>는 한국계 베트남 혼혈인이 아비 부정을 극복하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서사임을 밝혔다. 하림의 <사이공의 슬픈 노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혼혈인 샤이랑의 이야기가 서사성의 약화로 인해 연애소설로 전락하였음을 밝혔다.

Keywords

I. 들어가기

개인은 특정 집단의 집단적 망각과 기억 과정(과거의 타자화)에 동참함으로써 그 집단에 대한 귀속감을 갖게 되고 결국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한다[1]. 그러나 그 정체성이 권력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의 허상임을 알게 된다면, 이에 대항하는 기억의 전수자들은 새로운 ‘사회적 구성틀’을 제안하게 된다. 기억문화를 전수하는 문화 창조자는 망각을 전제로 하여 제도적으로 공고화된 공식기억을 부정하기 위해 주체, 시간, 공간 등을 설정하고 대항기억을 내세운다. 그 결과 특정한 정체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집단기억이 인위적으로 구축되는 것이다.

역사가 과거의 기억을 객관화하여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가공물이라면, 기억은 역사보다 훨씬 폭넓게 과거와 대면한다. 기억은 인식주체와 인식대상, 현재와 과거를 매개할 수 있는 최적의 카테고리인 것이다. 모리스 알박스(Maurice Allbwachs)는 기억의 구성에 있어서 사회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적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2]. 알박스의 기억이론은 상상적 공간 이미지를 매개로 한 배타적 집단의식이다. 반면 알박스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얀 아스만(Jan Assmann)과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 부부는 의사소통적 기억과 대치된 ‘문화적 기억’ 이론을 제시하여 역사에서 배제된 집단기억을 연구하였다[3]. 특히 알라이다 아스만은 집단기억이 특정한 지배권력에 의해 ‘선택’되며 항상 각각의 상황에 맞게 재편되는 유동성을 특징으로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기억은 자의성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20세기 한국 역사에 있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준 역사적 사건이다. 특별히 베트남전쟁은 우리나라가 미국 주도의 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한국 전쟁사와 다른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베트남전쟁은 그간 역사라는 공적인 영역에서 은폐된 민간인 학살·혼혈아·고엽제 피해와 같은 불편한 기억들을 21세기 한국 역사의 무대에 소환했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에게는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 할 것이다.

1992년 12월에 체결된 한-베 수교와 1999년에 이루어진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폭로는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알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두 사건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베트남전쟁에 대한 기억 투쟁을 불러일으켰다. 한국군뿐만 아니라 베트남 군인을 포함한 후손들의 기억을 재구성하고 재평가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이라는 근대사의 상흔을 치유하지 못한 한국인의 가슴 속에 베트남전쟁은 여전히 뇌관이 제거되지 않은 폭탄인 것이다.

베트남전쟁은 전쟁에 참여한 나라마다 전쟁 성격이 다르게 기억된다. 베트남은 승리한 전쟁으로, 미국은 패배한 전쟁으로 인식한다. 한국은 ‘신이 한국에 내린 선물’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잊혀진 전쟁’으로 해석한다[4]. 베트남전쟁이 끝나고 반세기에 가까워진 오늘날 한국 정부와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덮어둔 채 자국의 이익을 전제로 한 상호 우호적인 관계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양국 국민이 베트남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양국관계는 과거로 회귀할 수도 있고 미래로 나갈 수도 있다. 그 첫 번째 시험대가 베트남전쟁 기억을 올바르게 정립하는 것이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기억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공식기억을 다룬 역사가 주로 ‘객관적’ 사건이나 구조의 전개를 상정했다면, 대항기억을 전제로 한 기억은 과거를 재현하는 다양한 증언이나 이야기에 주목함으로써 그간 베트남전쟁에서 소홀히 다루어진 타자의 문제를 사유의 중심으로 가져왔다[3]. 이 과정에서 그동안 역사의 무대에서 배제된 민족적 타자, 사회적 타자의 목소리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본 연구는 베트남전쟁 소설을 검토하면서 그동안 은폐되었던 타자적 존재(학살된 민간인, 혼혈아 라이따이한, 고엽제와 관련된 참전군인 및 2세)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기억의 전승과 트라우마 양상을 논의하고자 한다.

본 연구와 연관된 베트남전쟁 소설 논문으로 고명철, 윤애경, 정찬영 등을 들 수 있다. 고명철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베트남전쟁 소설에 나타난 서사적 특징을 분석하였다. 이 글은 베트남전쟁 소설이 시대를 달리 하면서 그 성격과 인식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보여준다[4]. 윤애경은 베트남전쟁 2세의 삶을 다룬 작품들을 대상으로 베트남전의 현재적 고통을 형상화한 양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논문은 한국과 베트남이 베트남전쟁 2세의 현안 문제에 관심을 갖고 갈 때 양국이 미래지향적으로 갈 수 있음을 밝혔다[5]. 정찬영은 베트남과 한국 소설에 나타난 베트남전쟁 반영양상을 연구하였다. 이 논문은 양국 소설을 비교하면서 오락성으로만 기억되는 헐리웃 전쟁영화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담론을 제공하고 있다[6].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기억의 문제를 다룬 주요 연구자로는 윤충로, 최정기 등이 있다. 윤충로의 논문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한국의 공식기억이 반공·발전 전쟁에서 민간인학살로 변화되면서 나타난 대항기억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7]. 최정기는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참전과 관련하여 1990년대에 와서 망각이 아닌 기억투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주목하였다. 그 결과 장교와 사병, 전투 참여자와 비전투원 출신 사이에 다양한 기억 투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밝혔다[8].

선행논문을 검토한 결과, 1990년대 이루에 발표된 소설의 서사 양상에 주목한 논문은 많았으나 기억의 전승 과정에 나타난 역사적 트라우마 양상을 제시한 논문을 볼 수 없었다. 또한 베트남전쟁 소설을 다룬 기존의 연구에서는 대항기억을 전제로 한 기억투쟁의 미흡함을 알 수 있다. 본 연구는 문화학 이론에 일조한 알라이드 아스만의 연구방법을 활용하여 베트남전쟁에 대한 기억의 전승방법을 고찰하고자 한다. 또한 도미니크 라 카프라(Dominick LaCapra)의 ‘역사적 트라우마’ 개념을 원용하여 역사적 사건에서 기인하는 트라우마 양상을 밝히고자 한다[9]. 베트남전쟁을 서사화한 문화 매체 중에서도 소설은 집단기억의 전승과 이에 대한 성찰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은 베트남전쟁 소설을 중심으로 기억의 전승과정과 트라 우마 양상을 연구한 것으로, 현존하는 기억문화에 내재된 대항기억과 베트남전쟁의 상흔을 밝혔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의가 있을 것이다.

본 연구의 논의는 크게 두 방향에서 진행된다. 하나는 베트남전쟁에서 잊혀진 타자의 목소리가 문화 기억으로 전승되는 양상을 밝힐 것이다. 다른 하나는 베트남전쟁에 따른 트라우마가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과정에서 가족사의 비극을 초래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 양상을 논의할 것이다.

Ⅱ. 기억 전승과 타자의 목소리

문화학에서 기억연구는 그동안 배제되고 은폐되었던 민족적 타자, 사회적 타자 등을 호명하였다. 독일문화학을 주도하고 있는 뵈메(Hartmut Böhme)에 따르면, 문화학은 사회학과는 다르게 방향성이 불투명하다는 단점이 있다[10]. 그러나 역사적 사건을 다룬 문학비평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은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문화학 관점에서 베트남전쟁을 다루는 이유는 전쟁 피해자의 목소리를 문학과 사회학이 넘나들고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기억은 시대에 따라 치환되고 변형되었으며 가치 전도가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베트남전쟁에 대한 기억이 일부 억압되었으며 베트남에서는 한국군을 미군의 일부로 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억이 무시되고 있다. 이는 베트남 사람들이 사용하는 ‘항미구국전쟁’이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배제된 것이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견하여 사실상 미국을 제외하면, 실제 전투를 수행한 유일한 국가라 할 것이다. 그러나 양국의 공식기억은 한국군의 활동상황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1995년 베트남 정부에서 발표한 민간인 희생자 수는 대략 2,000,000명 정도이고 주로 미군에 의한 학살로 기록되었지만, 베트남 남부지역의 농민들을 대상으로 베트남전쟁 당시 피해 상황을 조사해 보면, 한국군이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례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공식기억은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며, 전쟁과는 무관한 참전의 효과나 이념적 정당성이 강화되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공식기억은 한국 정부의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하거나 유지하는 데 활용될 뿐이었다[7].

1980년대 말부터 민간인 학살, 고엽제, 혼혈아 등이 거론되면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대항기억이 형성되고 있다. 다시 말해 기억하는 주체에 따라 역사적 사건의 재구성이 가능해진 것이다. 니체가 말했듯이 기억은 회 상인 동시에 망각이다. 국가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가 타인을 배제하고 피해자의 상처를 외면할 때, 공식 기억은 대항기억에 의해 도전을 받게 된다. 베트남전쟁 참전군인 중에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 이들의 목소리가 문화적 기억의 중심으로 옮겨오면서 공식기억과 대항기억의 갈등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러한 사정은 베트남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베트남정부의 공식기억과 달리 베트남 꽝응아이성 빈선현 빈호아사 꺼우이 마을의 증오비 (stone of fury)에는 이곳에서 한국군에 의해 민간인 131명이 학살되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11]. 베트남 정부의 공식기억에서 배제된 대항기억의 사례들은 마을의 추모비에서 알 수 있듯이 베트남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미국 주도하에 진행된 베트남전쟁에서 주목해야 하는 역사적 사건은 민간인 학살이다. 미국의 역사 교과서인 <미국: 현재로의 통로들>에는 베트남 주민 대량학살사건인 밀라이 학살에 대해 반인륜적 행위로 묘사하면서도 미군이 겪었을 두려움과 혼돈을 함께 보여주어 미군을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볼 것을 유도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미군의 ‘불의’가 영웅적인 미군에 의해 저지되었음을 밝히면서 미군에 의해 정의가 회복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12].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 조종사들이 부른 노래에도 민간인 학살을 연상시키는 구절을 볼 수 있다. “마을을 맹폭격하고 사람들을 죽여라, 학교에 폭탄을 투하하라. 지상 공격이 확인되면, 황금률을 명심하라[13].” 이처럼 베트남전쟁을 다룬 미국의 공식기억은 미군의 승리를 기억해야 하는 것으로 기술되고 있다.

미국이 ‘밀라이 학살’이 알려지면서 민간인 학살을 자인한 것과 달리 한국은 민간인 학살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14].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북한군의 소행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군은 베트콩을 사살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공식기억 속에 한국군은 양민학살과 관련이 없다. 그러나 베트남 빈딘(Binh Dinh) 성 빈안 마을 희생자 추모비 뒤편에 있는 벽화 속 맹호부대원 그림은 역설적으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증거하고 있다. 그것도 한국군 전투부대가 참전한지 채 몇 달이 되지 않은 1966년 초에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중 절반 이상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생존자의 기억은 구체적이며 믿을 만하다[11]. 채명신 사령관은 “대량학살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음모”라고 결론지었지만, 한국군의 재판 기록을 보면 1965년부터 1972년까지 총 1,384건의 범죄 행위가 발생하였는데 아마도 민간인 학살 사건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14]. 베트남전쟁 당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을 두고 한국군의 해석과 베트남 사람들의 해석 사이에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 베트남전쟁이 아직도 전쟁터가 아닌 기억 속에서 싸워야만 이유는 국가 정체성과 관련되기 때문이다[15]. 양국 국민의 집단기억 속에는 여전히 ‘민간인학살’이라는 문제가 화해와 용서의 문 앞에 서 있다.

문학에서의 기억투쟁은 하나의 베트남전쟁을 두고 다른 방향의 ‘기억을 위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 소설사에서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소설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1970년대에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소설을 쓴 작가는 박영한, 송영, 신상웅, 송기원, 황석영 등이 있다. 작품 형상화 측면에서 보면, 70년대 베트남전쟁 소설에 나타난 전반적인 특징은 역사 인식의 부족이다. 주로 작중 인물의 관념적 사변에 머무르거나 전쟁에 대한 혐오가 서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그러나 1980년대에 쓰여진 베트남전쟁 소설은 장편 서사 양식을 토대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제3세계적 인식이 드러난다.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이 대표적이다[16]. 이 소설은 전장의 후방인 PX에서 벌어지는 암거래 현실을 통해 베트남전쟁의 이면에 감추어진 자본주의의 탐욕을 폭로하였다미국으로 표방되는 자본주의 식민화에 대한 일국의 저항이 베트남전쟁이 라는 것이다.

1990년대에 발표된 베트남전쟁 소설은 베트남전쟁 후일담을 다루었다는 데서 특이하다[4].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타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면서 서사의 지평이 확장된 것이다. 90년대 이후 발표된 베트남전쟁 소설에는 공식기억을 대변한 영웅서사 대신에 용병으로서의 모호한 이미지가 부각된다. 소설에서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은 가해자와 피해자 중 어느 한 쪽일 수도 있고 양쪽 모두일 수 있게 그려진다. 용병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군과 베트남군 사이에 존재하는 한국군은 미군의 대리자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전후 기간에 벌어진 한국군 용병에 대한 이미지는 참전군인뿐만 아니라 2세들에게도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왔다. 그중에서도 민간인 학살은 기억의 전승 과정에서 본격적인 논쟁을 불러온 것이다. 이러한 전후 사정으로 인해 90년대 이후 발표된 베트남전쟁 소설은 베트남전쟁의 현재적 의미를 묻고 있으며, 주로 참전군인의 회상과 혼혈 2세와 참전군인 2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17].

공식기억에서 배제된 민간인 학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2000년대 이후 창작된 방현석의 베트남전쟁 소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방현석의 <존재와 형식>은 베트남전쟁을 한국인이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18]. 작중 인물인 재우는 베트남 주민인 레지투이와 시나리오를 위한 번역작업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요 갈등은 레지투이가 베트남전쟁 당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호치민 루트를 비롯한 주변 마을을 일본인이 갈만한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달라는 데서 시작된다. 레지투이는 일본의 NHJ TV측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신분이다. 반협정 인민인 그가 제작비를 담당한 NHJ의 요구를 거부한 이유는 호치민 루트로 사용된 증선산맥이 부대원 300명 중에 다섯 명이 살아남은 기억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비극의 땅으로 기억돼야 할 장소가 관광지로 기억되는 것은 “살아 있는 기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19]이다. 타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레지투이는 역사적 기억의 장소인 호치민 루트가 자본에 잠식당하는 기억의 장소가 될 수 없음을 증언한다. 기억의 전승 관점에서 레지투이가 보여준 항변은 ‘애국자’와 ‘관광객’의 시선이 길항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베트남이 처한 현실을 반영한다.

방현석의 <랍스타를 먹는 시간>은 한국군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을 위로하고 양국 시민이 학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소설이다[18]. 이 작품은 베트남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베트남 사람들의 아픈 기억을 어루만지고 있다. 작중인물인 건석은 공안에 끌려간 김부장을 석방시키기 위해 베트남 사람 보 반 러이를 찾아간다. 보 반 러이는 꽝떠이성 항전사에 이름이 나오는 전사로, 국가가 부여한 영웅 칭호 다음가는 영예를 갖고 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잠적한 보 반 러이를 만난 건석은 그로부터 에데족이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건석은 팜 반 꾹과 이라크파병을 두고 설전을 벌인다. 건석이 이라크에 파병한 한국군을 두고 “한국의 군대가 가고 싶어서 가나요.”라고 하자, 판 반 꾹은 “또 미국 핑계인가. 러이가 분노했던 것이 김부장과 같은 참전군인들 때문인 줄 아나. 결코 아닐세. 전쟁으로 파괴된 세대가 스스로를 바꾸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 몰라. 절망은 당신과 같은 다음 세대가 지난 세대를 답습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야.” 라며 대꾸한다[18]. 팜 반 꾹은 건석에게 한국군이 더 이상 미군의 대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알라이다 아스만에 의하면 저장기억은 ‘무정형의 덩어리’ 이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다. 베트남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아닌 기억의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기억의 전승이 제대로 돼야 한다. 그 첫 번째 계기가 베트남전쟁에 나타난 한국군의 이미지이다. 공식 기억 속에 나타난 한국군의 이미지는 “베트남인들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자기희생을 무릅썼다”는 영웅의 이미지였다[20]. 그러나 팜 반 꾹이 이라크에 파병한 한국 군을 두고 미군의 대리자라고 말한 것은, 타자의 시선을 통해 베트남전쟁에서 이라크전쟁에 이르기까지 달라지지 않은 한국국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그것은 미군의 용병이라는 점이다.

베트남전쟁에 관한 기억은 가해자는 가해자대로,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서로 다른 체험과 관점을 갖고 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거나 배제하기보다는 이 두 관점을 포괄할 수 있는 인식틀이 필요하다. 문화적 기억은 타자의 목소리가 그간 활성화되지 못하고 저장기억으로 머문 것을 발굴하여 세상에 알리는 장치로 볼 수 있다. 방현석의 베트남전쟁 소설은 저장기억 속에 잠재돼 있던 타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공식기억과 달리 인식되는 대항기억으로서의 한국군의 정체성이다.

방현석의 소설 <존재의 형식>은 최근 베트남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기억의 장소가 외국 자본의 개입으로 인해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기억의 장소가 다큐멘터리로 제작되면서 관광지로 전락되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또한 <랍스타를 먹는 시간>이라는 소설은 한-베 수교 이후 베트남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인과 베트남인의 갈등을 통해 민간인학살에 관계된 한국군의 정체성을 묻고 있다. 베트남 전쟁 이후 타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팜 반 꾹은 한국인에게 베트남전쟁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반성이 없으면 미군의 용병이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한국 현대사에서 베트남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아닌 기억해야 하는 전쟁으로 남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적 전승 매체가 필요하다. 방현석의 소설은 사회적 차원에서 제기된 타자의 목소리를 소설에 반영했지만, 베트남전쟁이 남긴 고통을 다룬 소설로는 미흡하다. 참전군인과 2세들의 삶을 핍진하게 그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Ⅲ. 트라우마와 몸의 기억

베트남전쟁이 남긴 후유증은 참전군인과 그 가족들의 삶을 바꾸었다. 몸이 기억하는 베트남전쟁의 트라우마는 한국·베트남·미국 군인들의 일상적 삶을 일그러지게 만든 고엽제로 인한 것이다. 고엽제 후유증으로는 선천성 구개파열, 다지증, 탈장 등의 장애와 기형을 유발한다. 고엽제는 피해자인 참전군인뿐만 아니라 살포된 지역에 거주하는 민간인과 참전군인 2세들의 정상 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고엽제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참전군인과 그 자녀들에게 정신장애와 신체 장애와 같은 질병을 낳게 하였고 지울 수 없는 전쟁 기억이 되었다.

고엽제로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베트남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은 1992년 9월 26일 경부고속도로를 점거하였고 고엽제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엽제 피해는 국가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었다. 그때까지 맹독성 다이옥신 화합물인 고엽제와 관련된 피해는 국가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할 사안임에도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베트남전쟁 참전군인들과 그 가족들, 베트남인들의 고통은 국가로부터 외면받은 것이다. 베트남전쟁에 참여했던 미군의 경우, 고엽제에 노출된 사병들 중 많은 수가 활기를 잃어갔으며 우울증에 시달렸다. 고엽제 환자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미군 병사들도 발진에 시달렸고, 암에 걸려 쓰러졌으며, 자녀들도 심각한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13]. 더 심각한 것은 연방 재향군인 병원에서 고엽제 사태의 원인이 심리적인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고엽제로 인해 수십만 명의 자녀들이 심각한 기형을 갖고 있으며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안정효는 20여 년의 개작과정을 끝내고 2009년에 개정판 <하얀 전쟁>을 발표하였다. 이 소설은 참전군인의 관점에서 베트남전쟁을 형상화한 것이다[21]. 그러나 이 작품은 1993년판 <하얀전쟁>에 나타난 탈식민주의적 시각과 대항기억의 가능성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22]. 탈식민주의적 시각에 배제된 예는 고려원에서 출간된 1989년판 <하얀전쟁> 결말부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들로서는 이유도 없고 명분도 없는 전쟁을 하느라고, 죽음의 계곡에서 나의 전우들은 죽어갔고, 이제 변수는 영혼의 가사상태에서 살아간다. 대리 전쟁에서 우리들은 죽음의 손익계산서를 낸 전쟁 시험이었다.”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는 탈식민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한국군의 실상을 폭로하였다. 그러나 세경에서 출판된 2009년판 <하얀전쟁>에는 이 부분이 삭제되었고 한병장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변진수를 권총으로 사살하면서 끝난다.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탈식민주의적 기억의 전승은 망각된 것이다.

대항기억의 가능성을 포기한 예로는 2009년 개정판<하얀전쟁>에서 더 강화된다. “누가 베트콩 포로를 잡기만 하면 그는 얼른 쫓아가서, 포로의 바지를 홀랑 벗겨놓고 “앉아!” “일어서!” 신나게 구령을 붙이고는 했었다.“라고 묘사한다[21]. 1989년판 <하얀전쟁>과 달리 2009년판 <하얀전쟁>에는 한국군이 베트남 포로를 과잉폭력이 아닌 희화화된 모습으로 그려진다[22]. 이러한 장면들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대항기억으로 대두된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과는 동떨어진 인식이며, 피해자인 베트남 민간인의 시각이 아닌 참전군인의 선택적 기억에 편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서사의 차원에서 베트남전쟁이 개정되면서 삭제되거나 선택적 기억에 따른 희화화로 묘사될 때, 베트남전쟁 소설은 ‘잊혀진 전쟁’으로 기억될 것이며 ‘반공 전사’이자 ‘경제 역군’이라는 공식기억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게 된다.

<하얀 전쟁>은 베트남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인물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변진수이다. 변진수 일병은 베트남 전쟁 당시 폭력적인 죽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다루기 힘든 두려움이나 감정 과잉의 하나인 히스테리아 증상을 보인다[23]. 말의 앞뒤가 연결이 안 되는 헛소리를 자꾸 늘어놓거나 귀찮은 모기처럼 횡설수설을 자주 한다. 제대한 변진수는 대한극장 간판을 그리는 일을 하다가 극장 선전부장과 싸우고 결국 쫒겨난다. 변진수는 전쟁에 따른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한기주를 찾아와 이야기한 부분에서 그가 외상기억에 고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날에는 대낮에 길거리를 걸어 다닐 땐, 누군가내 뒤를 따라오다가 벌목도를 꺼내 목을 휙 치려니 예상하면서, 난 늘 두개골에 소름이 끼쳐 오싹오싹했어요. 그리고 그럴 때면 정말로 누가 벌목도를 들고 쫓아올까봐, 어서 뒤를 돌아다보긴 해야 되는데, 겁이 나서 차마 뒤를 돌아다보지도 못했고요.”[21]

불안 장애에 시달리는 변진수는 한기주를 찾아와 자신을 죽여달라고 요청한다. 한기주는 과거를 못 벗어나 거나 과거에 사로잡혀 상처받은 장면을 충동적으로 수행적으로 반복한다. 정신분석학적 역사학자 도미니크라카프라(Dominick LaCapra)는 과거가 끊임없이 되돌아와 미래가 막히고 우울한 쳇바퀴 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적 과정을 일컬어 ‘반사적 행동화’라 하였다[24]. 변진수는 이와 같은 상태에 빠져 역사적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자아를 해체하고 존재에 구멍을 만드는 파괴적인 증상이다. 이는 통제하기가 어렵고 완전히 해결되지 않으면서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 작품이 비극적인 것은 작중 인물 ‘나’ 또한 변지수와 마찬가지로 반사적 행동화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그가 한기주에게 권총 방아쇠를 당긴 것은 시간의 경계가 파괴되어 과거의 상처받은 상황 속에 놓여 있는 한기주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작품의 한계는 베트남전쟁에 따른 개인적 트라우마의 심각성을 보여줄 뿐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치환하여 공동체의 시각을 제시하지 못한 점이다. 20여 년의 개작과정을 거쳤지만 이 작품은 여전히 집단의식의 공적 의미보다는 전장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 재현적 서사에 머무른 것이다[25].

이대환의 <슬로우 불릿>은 베트남전쟁의 비극이 현재진행형임을 알리고 있다[26]. 느린 총알이라는 뜻을 가진 Slow Bullet은 미국에서는 고엽제 후유증 환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은 지상군의 전투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베트남 전역에 1,800만 갤런에 해당하는 고엽제를 살포하였다. 소설은 참전군인이면서 고엽제 살포 임무를 맡았던 김익수와 그의 가족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김익수는 베트남전쟁 당시 화학병으로 복무하다가 제대하고 숙희와 신혼살림을 차린다. 그러나 귀국 후 몇 년이 지나면서 알 수 없는 병이 깊어짐에 따라 신혼의 행복은 사라진다. 가장으로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김익수는 고엽제 후유증이 심해짐에 따라 현재의 삶과 연관성이 없는 과거의 특정 순간에 고착되어 절망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 소설은 고엽제로 고통받는 참전군인의 불행이 가족에게 이어진다는 것을 밝힌 작품이다. 큰아들 영호는 하반신 마비에 시달리고, 둘째 영섭은 허벅지 안쪽에 생긴 습진으로 괴로워한다. 이 작품은 고엽제로 인한 유전 증상이 큰아들 영호의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다. 영호가“아버지, 전쟁터에서 총에 맞아 죽는 것만이 짐승처럼 삶을 마치는 겁니까? 아니지 않습니까?”[26]라며 아버지 김익수에게 분노에 차 말한 것은 고엽제에 시달리는 베트남 전쟁 2세가 처한 고통을 증언한다. 영호는 자신과 상관없는 전쟁의 야만적 폭력성에 신체가 노출되었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적 욕망의 최종 귀착점으로 볼 수 있다. 그가 자신의 병든 신체를 주체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은 베트남전쟁 참전군인 2세의 불행한 삶을 증언한 것이다. 이 작품은 베트남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고엽제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전쟁 기억의 최종 귀착지가 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90년대 이후에 발표된 베트남전쟁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베트남전쟁에 참여한 한국인과 현지 베트남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 2세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이다. 혼혈아(라이따이한)의 삶이 문화적 기억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오현미의 <붉은 아오자이>는 라이 따이한 ‘보 티 송 탄홍(송단홍)’이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다가 화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27]. 한국계 베트남 혼혈인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한국과 베트남 양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를 다루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혼혈인에 대한 인식이 다시 나타난 것은 1970년대 베트남전쟁 이후이다. 베트남에서 아버지 없이 자란 라이따이한은 1990년대에도 아버지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였으며, 사회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제도적 차별을 받고 있지 않으나 혼혈이라는 점 때문에 사회적 냉대를 받아야만 했다. 예컨대 가난한 탓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혼혈인이 일할 곳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28].

사케르(Sacer)란 건드렸을 경우 자신이나 남을 오염시키는 그런 사람 혹은 사물을 가리키는 말이다[29].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너머에 존재하는 베트남전쟁 혼혈인은 ‘신성함’이 제거된 ‘저주받은’ 존재들처럼 취급되어 고아가 되거나 입양되었다. 이들은 생명정치라는 관점에서 볼 때, 망각된 존재로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송단홍이 “한국의 아버지들은 우릴 낳아주긴 했지만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릴 잊지 않았다면 벌서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는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27] 라며 한국인 동후에게 말한 것은 아비 부정을 통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송단홍은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어린 시절부터 안고 살았다. 송단홍은 한국의 범종교인후원단체에서 마련한 기술연수생의 자격으로 한국으로 오게 되고 어머니의 부탁으로 아버지 송기준을 찾게 된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비존재이자 원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아버지와의 극적인 만남을 계기로 그녀는 원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자기 긍정을 넘어 억압된 기억에서 풀려난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한국인 가족들과의 상호 이해와 화해라는 과정이 있다. 결국 서사의 결말은 송단홍이 라이따이한으로서의 결핍을 벗어나 성숙한 자기애를 가지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난다.

송단홍은 아비 부정이라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여성이다. 그녀는 대개의 베트남 혼현인들이 바라는 아버지를 만나 신데렐라와 같은 인생역전을 꿈꾸지 않는다. 송단홍은 베트남으로 돌아가면서 자신이 경험한 것을 한국인 어머니께 편지로 쓴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며 저에게 남기신 말씀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용서하라는 것과 아버지의 부인과 자식들을 만나게 되면 어머니처럼, 친형제처럼 여기고 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허락도 받지 않고 어머니라 부른 것입니다. 아마 저희 어머니의 뜻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만으로라도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려고 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이니까요[27].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송단홍은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하면서 공감의 감정을 드러낸다. 공감을 무감각에 맞서는 힘으로 볼 수 있다면, 송단홍은 자신의 또 다른 가족에게 관심을 보임으로써 그동안 깨져 있던 가족이라는 정서적인 차원을 제한적으로나마 복구한 것이다. 그러나 송단홍은 “아마 저희 어머니의 뜻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 어려움을 내비친다. 이런 점에서 외상의 완결에는 종착지가 없으며 완성된 회복이란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23]. 보티 송 탄홍은 한국에서의 짧은 경험을 통해 새로운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 그들과의 연대는 미해결된 상태인 것이다.

하림의 <사이공의 슬픈 노래>는 베트남전쟁 2세의 삶을 다국적인 관점에서 다룬 또 다른 유형의 라이따이한 소설이다[30]. 이 소설은 베트남 참전군인인 하림의 딸 샤이랑이 미국으로 건너가 살아야 했던 이야기로, 라이따이한 문제가 다국적 차원에서 풀어야 할 숙제임을 알려준다. 양부인 군의관 미첼로부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샤이랑은 친부인 하림을 찾아 한국을 방문하고 떠나간다.

이 작품은 서사성의 약화라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혼혈여성 샤이랑의 이야기가 아버지의 회고담에 밀려나면서 전쟁터에서의 사랑을 그린 연애소설로 전락한 것이다. 작가 하림은 베트남전쟁을 체험했지만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보다 주제 형상화가 부족하다[31]. 따라서 이야기는 하림에 집중되고 샤이랑은 행간 밖의 갈등으로 처리된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현재의 대항기억은 민족주의와 역사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기존 서사에서 배제된 타자의 목소리가 소설 전면에 부각되어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알려야 하며, 대항기억을 통해 베트남의 비극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참전군인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될 뿐이다.

<사이공의 슬픈 노래>에 단편적으로 언급된 베트남 전쟁 2세 이야기는 다국적 공간과 결부된 것으로, 피지배층의 기억이자 불편한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제3세계적 시각에서 볼 때, 혼혈인 이야기는 집단기억에서 소외된 주변부적이고 반문화적인 인간군상의 이야기다. 역사가 기정질서를 변호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할 때, 베트남전쟁 2세의 삶을 다룬 베트남전쟁 소설은, 대항 기억의 입장에 서서 베트남전쟁 피해자를 애도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전승해야 한다. 가해자의 공식기억이 전승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하림의 <사이공의 슬픈 노래>는 <붉은 아오자이>의 송단홍과 달리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정서와 재현을 보여주지 못한 미숙한 대항기억 서사일 뿐이다.

안정효의 <하얀 전쟁>(개정판)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참전군인의 정신적 외상에 머무른 것에 비해, 이대환의 <슬로우 불릿>은 참전군인의 가족을 중심으로 고엽제 피해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몸의 외상을 다루었다. 이대환의 소설은 대항기억의 대표적 서사로 볼 수 있다. 베트남 혼혈인 2세를 다룬 <붉은 아오자이>는 한국과 베트남에서 이방인으로 취급받아야만 했던 혼혈여성의 자기정체성 찾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과 베트남 국민이 혼혈인 문제에 적극 나서야만 역사적 트라우마가 극복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사이공의 슬픈 노래>는 라이따이한 문제가 다국적 차원에서 서사화된다.. 그러나 플롯의 결함으로 인해 이러한 주제의식에 접근하지 못한 소설이라 할 것이다.

Ⅳ. 나오며

이 논문은 1990년대 이후 발표된 베트남전쟁 소설을 중심으로 기억의 전승에 따른 여러 문제점을 소개하였고 베트남전쟁 참전군인과 2세들의 트라우마 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베트남전쟁 당시와 다르게 오늘날 한국과 베트남 정부는 수교 이후 우호적인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공식기억에서 배제된 아래로부터의 기억은 베트남전쟁 희생자를 저버릴 수 없었다. 1992년에 발생한 고엽제에 시달리는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의 경부고속도로 점거사건과 1999년에 제기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폭로는 공식기억에 균열을 가한 사건이었다[32]. 이러한 사건을 통해 기억 투쟁은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였고 문화적 기억의 회로 속에서 대항기억은 전승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미국의 공식기억은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면서도 미군의 불의가 영웅적인 미군에 의해 저지됨을 전승하고자 한다. 반면 한국의 공식기억은 여전히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학에서의 기억투쟁은 대항기억의 편에 서서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알리고 있다.

문학에서의 기억투쟁은 공식기억에서 배제된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방현석의 베트남전쟁 소설인<존재와 형식>에서는 베트남전쟁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하였다. 베트남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아닌 기억해야 하는 전쟁이 되기 위해서는 죽음을 기억하는 장소가 자본의 위력으로 관광상품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됨을 보여준다. <랍스타를 먹는 시간>에서는 베트남 사람 보 반 러이와 팜 반 꾹을 통해 전후 세대가 베트남전쟁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제기하였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반성 없이는 한국군은 미군의 대리자로 정체성을 갖게 되고 제3세계와의 연대가 끊긴 상태에서 전쟁의 비극이 반복될 수있음을 밝히고 있다.

베트남전쟁의 비극성은 몸을 통해 재현되기도 한다. 안정효의 <하얀 전쟁>이 정신적 외상에 머무르면서 민간인 학살을 배제한 작품이라면 이대환의 <슬로우 불릿>은 고엽제에 따른 신체 외상을 다룬 것으로 가족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트라우마가 베트남전쟁의 ‘증거’는 아니지만 무언가 소중한 진실을 증언한다고 할 때, 이대환의 소설은 인간의 신체가 전쟁 고통의 최종 귀착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현미의 <붉은 아오자이>는 한국계 베트남 혼혈여성의 자기정체성 찾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 작품이다. 가족의 정서적 연대만으로 혼혈인의 트라우마가 치유될 수 없다면 한국과 베트남 양국민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치유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하림의 <사이공의 슬픈 노래>는 라이따이한 문제가 한국과 베트남이 아닌 다국적 차원에서 풀 수 있음을 보여준다. 친부와 양부를 부모로 둔 베트남 여성의 신산한 삶을 통해 베트남전쟁이 과거로 퇴행하지 않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기억은 이른바 ‘사후적 기억’으로 후대에 전해지고 심리적, 육체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문화적으로 전승된다고 한다[12]. 이 과정은 기억투쟁의 연속이다. 공식기억과 대항기억의 길항작용을 거치면서 진실은 은폐될 수도 있고 밝혀질 수도 있다. 베트남전쟁을 누가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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