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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Image Aesthetics of Iwai Shunji : Focused on

이와이 �지(Iwai Shunji)의 디지털 영상미학 : <라스트 레터(Last Letter)>를 중심으로

  • 김도형 (선문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부 강사) ;
  • 오동일 (선문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부 교수)
  • Received : 2020.09.16
  • Accepted : 2020.10.26
  • Published : 2020.11.28

Abstract

Entering the 21st century, the production environment and system of film art were very rapidly implemented from analog to digital. In such a process, the development and change of imaging technology have had a profound effect on the expressive modalities of visual aesthetics. However, in-depth discussions on how the existing analog aesthetic has been implemented into the digital environment are somewhat insufficient. In this study, Iwai Shunji's latest film , which continues to carry out remarkable creative activities across the analog and digital ages, specifically examines what 'Iwai aesthetics' he has pursued since the analog era is revealing in the digital age. Methodically, Iwai Shunji's transition from analog to digital age was examined and his digital film was approached and analyzed from three aesthetic perspectives : 'Light', 'Composition', and 'Space and Point of View'.

21세기에 접어들며 영화예술의 제작환경 및 시스템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매우 급격히 이행해 갔다. 그러한 과정에서 영상기술의 발전과 변화는 영상미학의 표현적 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존 아날로그적 영상미학이 디지털 환경으로 어떻게 이행되었는지에 관한 깊이 있는 논의는 다소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주목할만한 창작활동을 계속해서 펼치고 있는 이와이 슌지의 최신 극영화 <라스트 레터>를 통해 그가 아날로그 시대에서부터 추구해온 '이와이 미학'이 디지털 시대에 있어서 어떠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방법적으로는 이와이 슌지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이행했는지를 살펴보고, 그의 디지털 영상작품 <라스트 레터>를 '빛', '구도', '공간과 시선'이라는 의 세 가지 미학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분석 하였다.

Keywords

I. 서론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 중심의 영화에 이어 TV라는 영상매체가 새롭게 출현할 당시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그것이 지닌 상업적 잠재력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이 두 영상매체의 역사적 만남은 단순한 화면 사이즈의 확장이 아니라 테크놀로지와 언어를 포함하는 미학적 깊이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또한, 두 매체는 영상이라는 미학적 본질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험적 시도와 연구를 통해 연출과 시각언어, 내러티브와 같은 차별적인 미학적 형식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1].

이와 같은 두 영상매체의 발전 과정에서 비디오를 영화로 전환하는 혁신적인 기술의 출현은 스크린을 갖춘 극장에서 TV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게 함으로써 두 매체의 공존 관계가 가능하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그러한 공존의 시대는 텔레비전 극장의 종말로 그리 오래가지 않았으며, 두 매체의 통합이 아닌 극단적인 경쟁으로 이어졌다. 1950년대 초반 영화산업은 3D(3Dimension)와 시네마스코프(Cinema Scope)와 같은 기술을 토대로 영화만의 미학적 차별성을 찾아갔으며, TV는 개인화된 작은 스크린의 ‘친밀성’을 통해 빠르게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1]. 그리고 TV를 중심으로 하는 방송영상산업의 경우 1990년대에 등장한 HD(High Definition) TV를 통해 다른 차원의 영상 언어와 미학을 새롭게 구축해나가고 있다.

일본의 영상산업도 1950년대 TV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영화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었으나, TV의 등장과 동시에 산업적 혼란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960년대에는 컬러TV의 시대가 열리며 극장 관객이 급속히 감소하는 등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였다. 그러한 현상은 영화뿐만 아니라 평행적인 발전을 지속하고 있었던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도 동시에 일어났으며,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제작자나 종사자들은 생존을 위한 새로운 모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테즈카 오사무(Tezuka Osamu)를 중심으로 ‘리미티드 애니메이션(Limited Animation)’을 적용한 일본 고유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작하며 새로운 도약을 맞기도 했다[2].

영상 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통해 1995년 SONY가 세계최초로 DV(Digital Video) 규격의 디지털 비디오카메라 VX1000을 출시하였다. 이를 통해 현장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카메라와 비슷한 성능의 카메라를 일반인들도 쉽게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TV 드라마감독이었던 이와이ㅤ슌지(Iwai Shunji)는 영화 <러브레터(Love Letter, 1995)>를 통해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1963년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태어난 이와이 슌지는 요코하마국립대학교에서 미술학을 전공하였으나, 영상 분야로 취업하기 위해 1988년부터 뮤직비디오와 CATV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인맥을 넓혀 나갔다[3]. 1995년에 발표된 <러브레터>는 국내에서도 많은 관객으로부터 관심을 받았다. 실제로,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치에 따라 1999년에 재개봉돼 140만 명의 관객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내 배급사들에 따르면, 겨울이면 가장 보고 싶은 영화 중 1위, 눈이 오면 생각나는 영화 1위에 여전히 선정되는 등 국내 관객들의 사랑을 지속해서 받는 유일한 일본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러브레터>가 개봉된 지 25년이 흐른 2020년 1월 27일 후속작이라고도 불린 <라스트 레터(Last Letter)>가 개봉하였다. <라스트 레터>에는 <러브레터>에 대한 25년 만의 답장처럼 이와이 슌지의 안정감 있는 영상미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작품에는 개성 강한 배우들이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각 등장인물의 역할이 자연스럽고 안정감 있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도서관에 근무하는 주인공, 잘못 전달된 편지 등 풍부한 아날로그적 요소는 전작 <러브레터>와<라스트 레터>를 이어주는 핵심적인 미장센(Miseenscene)이라고 할 수 있다[4].

일본의 영화잡지 《키네마준보(キネマ旬報)》를 발행하고 있는 키네마준보사가 운영하는 데이터베이스 서비스인 《KINENOTE》는 이와이 슌지를 ‘일본영화에 신풍(新風)을 불어넣는 영상작가’라고 평가한다. 이와이 슌지는 영화감독일 뿐만 아니라, 소설가·각본가·만화가·작곡가·작사가·영화 프로듀서 등 여러 직함을 겸비한 만능 아티스트이다. 이와 같은 이력으로 인해 이와이 슌지는 ‘영상작가’라고 불리고 있으며,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강한 주제성과 작가적 영감이 효과적으로 드러난다[5].

<라스트 레터>에는 시각적으로 안정적인 촬영기법과 구도, 그리고 회화적이면서도 만화적인 색채와 조명의 톤과 같이 이와이 슌지만의 독특한 영상 스토리텔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최근 이와이 슌지의 작품 경력을 살펴보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하나와 앨리스 : 살인사건(The Case of Hana & Alice, 2015)>에서 로토스코핑(Rotoscoping) 기법을 통해 실사 움직임을 디지털 영상화하는 등 주로 디지털 영상 제작에 집중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2]. 그리고 <라스트 레터>는 디지털 영상에 관한 이와이 슌지의 미학적 역량이 총체적으로 나타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본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와이 슌지의 최신작 <라스트 레터>를 대상으로 그가 추구해 온 디지털 영상의 미학적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위한 내용적 범위와 방법은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먼저, 2장에서는 디지털 영상미학을 향한 이와이 슌지의 단계적 변화를 ‘전환기’와 ‘모색기’, ‘완숙기’로 구분하고 각 시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작품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3장에서는 이와이 슌지의 <라스트 레터>를 통해 그가 추구하는 디지털 영상미학의 본질적 특징을 ‘빛’, ‘구도’, ‘공간과 시선’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 현지의 문헌 자료뿐만 아니라, 이와이 슌지와의 인터뷰 자료 등은 선행적인 문헌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특히, 일본영화의 디지털 기반 영화제작 시스템의 도입 과정에 있어서 이와이 슌지의 역할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와이 슌지는 끊임없는 노력과 실험적 시도를 통해 디지털 영상기술을 토대로 자신이 추구하는 영상미학의 세계를 확장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이와이 슌지가 직접 경험하고 활용했던 디지털 영상기술과의 미학적 연관성을 살펴보는 것은 본 연구 성과의학술 가치와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방법론이 될 수 있다.

Ⅱ. 이론적 배경:이와이 슌지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이행

1. 전환의 시대 : TV에서 영화로의 전환기

이와이 슌지는 대학 동아리에서 여러 영상작품의 제작을 경험했으며, 이후 프리랜서로서 노래방 뮤직 클립 만드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1년 이상 영상산업 현장에서 제작 경력을 쌓아가던 이와이 슌지는 자신의 연출적 영감과 의도가 작품에 쉽게 반영되지 않는 현장 환경 속에서 창작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아이돌 방송프로그램 제작을 맡게 되면서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것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기로 하였다. 아이돌 프로그램 안에서 마음대로 드라마도 만들고,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방송프로그램 사이에 넣기도 하고, 따로 제작책임자에게 부탁받지도 않은 프로그램의 광고영상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일을 계기로 뮤직비디오 제작의뢰가 들어왔고, 뮤직비디오에 호감을 느낀 드라마 제작자로부터 드라마 연출 제의를 받게 됐다.

처음 맡게 된 심야 호러물에서 이와이 슌지는 저예산 제작임에도 불구하고 VFX(Visual Effect) 효과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방송국 담당 프로듀서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다. 사전에 이미 나와 있는 대본을 그대로 제작하는 것을 싫어했던 이와이 슌지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했었고, 항상 아무도 하지 않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에 몰두했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1시간 분량의 드라마 제작의뢰를 받은 이와이 슌지는 학생 시절 만들었던 이야기 소재를 토대로 <고스트 스프(Ghost Soup, 1992)>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일어나는 판타지와도 같은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려냈으며, 이와이 슌지의 독특한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1]은 이와이 슌지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앵글의 한 장면이다. 언덕 위나 길 위에 서 있는 등장인물을 구도적으로 다소 먼 발치에 위치시키고 과하지 않은 망원 렌즈로 풀 숏(Full Shot)으로 촬영한 것이다. 인물들 간의 관계와 감정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며 내려오는 빛과 그 빛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까지 담은 이러한 영상미학은 어떠한 왜곡이나 뒤틀림이 없어 마치 빛의 화가로 불리는 인상파의 대가 모네(Claude Monet)의 그림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빛을 그리는 화가라는 모네의 별명처럼 이와이 슌지도 이 작품을 통해 프레임 속과 프레임 밖의 빛을 명확하게 발견한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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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고스트 스프>

<쏘아 올린 불꽃놀이,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Fireworks, Should We See It from the Side or the Bottom?, 1993)>는 당시 젊은 TV 드라마감독이자 각본가였던 이와이 슌지의 평가와 인지도를 단숨에 끌어 올려 영화제작 영역으로 이와이 슌지를 진출시키는 데에 계기가 되었던 작품이다. 놀라운 것은 비디오카메라 촬영으로 제작했던 TV 드라마 <쏘아 올린 불꽃놀이,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에서 보여준 그의 영상미학에 대한 욕심과 집요함이 대단했다는 것을 그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디지털에서는 영상의 정보량이 적어서 필름에서는 이쁘게 나오는 하늘의 구름이 하얗게 떠버리기거든요. 그래서 리미터(Limiter)를 제거하고 촬영하기도 했는데, 아마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처음 방송하는 당일 송출 담당자한테 방송 리미터를 좀 풀어달라고 하는, 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 해달라고 한 거죠. 그래서 당시에 다른 프로그램보다 약간은 영상이 이쁘게 나왔을지도 모릅니다[6].”

방송국에 요청해 영상적 제한을 풀면서까지 영화처럼 색보정을 하는 이른바 ‘필름 효과’로 다듬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말하면 일반적으로 방송국에서 허용하는 휘도 레벨은 0%~100%까지로 정해져 있다. 이 범위 안에 들어오도록 방송송출 단계에서 제한하는 것이다. 물론 촬영용 카메라는 이 범위를 넘어서 촬영하는 것이 가능하고, 편집 단계에서 이것을 설정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방송송출은 매우 엄격하여 허용 휘도 레벨에 들어오도록 하지 않으면 방송이 되지 않는다. [그림 2]에서처럼 예를 들어 ‘A image’의 밝은 부분의 레벨이 100%를 넘어가면 자동으로 100%~109% 안쪽으로 들어오도록 강제로 압축시키는데 이것을 보통 ‘니 클립(Knee Clip)’ 혹은 ‘화이트 클립(White Clip)’이라고 부른다[7]. 즉, 이와이 슌지는 이 부분을 풀어달라고 한 것이다. 엄연히 방송사고이고, 규율위반인 것은 분명하다. 거기에는 휘도 레벨은 색조와 색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방송규율을 어기면서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이와이 슌지의 영상미학에 대한 고집과 집념이 나타나 있는 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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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관용도와 화이트 클립[7]

이와이 슌지는 후지TV에서 방영된 드라마 <쏘아 올린 불꽃놀이,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를 통해 TV 드라마 작품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일본영화감독협회’ 신인상을 받았다. 이와이 슌지는 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색조 조정 등을 사용해 필름처럼 보이게 하는 기법인 소위 ‘필름 효과’를 사용했다[8]. 그것은 TV에 대한 기존개념을 무시하고 영화적 감수성을 TV로 가져온 혁신적인 표현양식이었으며, 이를 통해 영화와 TV가 지닌 영상미학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쏘아 올린 불꽃놀이,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는 이와이 슌지의 미학적 성숙을 도모했던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9]. 또한, 당시 다른 드라마와는 완전히 다른, 밀도 높은 영상과 정감 넘치는 이야기로 강렬한 인상을 주어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10].

이와이 슌지는 1995년 <러브레터>를 통해 실질적인 극장 개봉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본래 이 작품은 그의 10번째 TV 드라마로 기획되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적인 연출이나 촬영기법으로 인해 방송국으로부터 거절당했다. 그리고 당시 동료 프로듀서의 제안으로 영화로 제작하게 된 것이다.

필름으로 제작된 <러브레터>는 그의 영화적 영상미가 처음으로 완성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에게 잊지 못할 기억과 감동을 안겨 준 작품이고 전 세계에 이와이 슌지만의 영상미학을 마음껏 표현해 낸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2. 모색의 시대 : 필름 영화 시대

이와이 슌지의 필름 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은 단연 <러브레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스왈로우테일(Swallowtail, 1996)>, <4월 이야기(April Story, 1998)>, <릴리 슈슈의 모든 것(All About Lily Chou Chou, 2001)>, <하나와 앨리스(Hana & Alice, 2003)> 등을 발표했다. 또한, 영화감독 외에도 안노 히데아키(Anno Hideaki)의 <식일(Shikijitu, 2000)>에서는 배우로서도 출연했으며, 2002년 월드컵 무대의 뒷얘기를 그린 장편 다큐멘터리 <6월 승리의 노래를 잊지 않을 거야(Triumphal March and 30 Days of Their Own, 2002)>에서는 감독과 편집, 프로듀서를 직접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이와이 슌지 감독은 뮤직비디오,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소설, 애니메이션, 광고 등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천재 크리에이터로 다채로운 활동을 하였다. 심지어, 자신의 첫 중국영화 작품인 <라스트 레터>의 중국판<마지막 편지(Last Letter, 2018)>에서는 감독뿐만 아니라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작업에도 참여하여 직접 작곡 및 작사, 베이스연주,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감독까지도 하는 등 걷잡을 수 없는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특히, 그가 감독한 가수 이키레(Ikire)의 뮤직비디오에서도 <러브레터>와 <라스트 레터>에서 보여준 ‘빛이 엮어내는’ 이와이 슌지만의 디지털 ‘필름 룩(Film Look)’의 영상미를 한껏 뽐내기도 하였다.

8mm 필름으로 시작된 이와이 슌지의 필름에 대한 미학적 표현의 원형은 디지털 제작으로 이행하면서도 꾸준히 필름 룩을 추구해 오고 있다. 어쩌면 더욱 철저히 필름 룩을 고집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가 필름으로부터 받은 첫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왜 그토록 그가 필름 룩에 대한 집요한 표현 욕구를 ‘이와이 미학’이라는 단어로 정의하는지를 짐작하게 해 주는 듯하다. “[저는] 굉장히 거친 질감의 필름부터 학창시절에 시작했는데 당시 처음에는 후지카(Fujica)의 ‘Single-8’이라는 필름이었는데, 주변의 독립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찍는 영상들을 보니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나랑 뭐가 다른 걸까?'라고 보니 다들 ‘코닥 필름’을 쓰더라고요. 그때 ‘아, 코닥이 이렇게 예쁘구나’ 하고 감동했었던 것이 제가 필름 영화로부터 느낀 첫인상이었습니다[11].”

앞서 언급했듯이, 이와이 슌지는 뮤직비디오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예산이 부족한 현장에서 필름으로 촬영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대부분 캠코더를 이용해 제작해야만 했다. 당시에는 HD도 없어서 NTSC(National Television System Committee)의 SD(Standard Definition)로 녹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캠코더로 촬영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가능하면 필름과도 같은 느낌에 가까워지려는 창작적 욕구는 8mm 필름에 대한 첫인상에서 받았던 필름의 입자가 주는 질감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이 슌지는 이후 16mm, 그리고 35mm 필름을 사용하면서 필름 사이즈가 커질수록 필름만의 고유한 입자감도 줄어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깨달음은 필름에서 디지털로 이행해야겠다는 마음을 더욱 강하게 뒷받침했다[11].

HD가 개발되고 2000년대에 들어와 SONY가 개발한 시네알타(CineAlta : HDW-F900)라는 카메라가 등장했는데, 첫 번째 카메라가 조지 루카스(George Lucas)가 제작한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Star Wars : Episode I - The Phantom Menace, 1999)>에 쓰이고, 또 다른 한 대는 이와이 슌지의 파트너이자 촬영감독으로 유명한 시노다 노보루(Shinoda Noboru)에게 전달된다. 카메라 테스트를 한결과 상당히 좋은 인상을 받은 이와이 슌지는 시네알타를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에 도입하였다.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로 촬영을 하였지만, 당시 극장에서 상영하기 위해서는 필름으로 다시 변환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소위 ‘키네코(Kineco)’라는 방식이 주로 하던 방식이었는데, 디지털 영상의 한 프레임씩 영상을 스캔하는 ‘필름 레코딩(Film Recording)’기술도 개발되어 보다 원초적인 필름 질감에 가까운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2시간 정도의 영화를 ‘필름 레코딩’의 방식으로 변환하면 한화로 6억 원이 넘는 비용이 들었다. 즉, 영화 한 편을 찍을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기 때문에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에 있는 한 포스트 프로덕션 업체가 기존의 일반적인 ‘키네코’ 와 거의 비슷한 예산인 1억 원 정도로 작업을 해주면서 제작을 진행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완성도가 너무 높아 처음부터 필름으로 촬영한 것과 같이 쉽게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와이 슌지는 이 작품을 계기로 필름을 더는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완전히 디지털 시네마로 이행하게 되었다[11].

그의 필름 기반에서의 작업환경의 뒤떨어짐, 비싼 제작비용 및 비효율적인 배급 문제 등에 대해 가진 인식은 더욱 새롭고 혁신적인 제작환경을 갈구하게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의 제작 방식에 대한 전환은 디지털 영상의 ‘필름 룩’ 구현이 필름으로 제작한 것과 비교해 전혀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4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필름과의 동행은 막을 내렸다.

이와이 슌지는 디지털 촬영과 편집, 그리고 배급 등 디지털 제작시스템에 있어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찬양론자였고 선구자의 역할을 보여주었다. 약 20년 전 이와이 슌지는 후지TV에 출연해 즉석에서 비디오카메라를 한 손으로 들고 방송국 스튜디오 내부를 이리저리 촬영한 다음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노트북으로 손쉽게 편집해 영상을 완성하는 과정을 단숨에 보여주며 디지털 기반의 제작환경의 우수성을 어필했던 장본인이었다.

3. 완숙의 시대 : 디지털 영화 시대

이와이 슌지가 <하나와 앨리스>라는 작품을 제작하며 부딪힌 시련과 고민은 바로 비디오로 얼마나 필름 룩을 제대로 만들어 내느냐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피사계심도가 비디오카메라는 얕지 않다는 문제였다. 당시 비디오카메라는 화면 전 공간에 걸쳐 초점이 맞아 선명하게 드러나고 현실감을 강화하는 ‘팬 포커스(Pan Focus)’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필름 룩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핫셀블라드(Hasselblad)라는 중판 카메라의 포커싱 스크린(Focusing Screen)을 다시 SONY의 시네알타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해서 영화보다 더 얕은 피사계심도의 이미지를 궁여지책으로 얻어내는 방식이었다[11].

하지만, 그 방법은 결국 온전히 디지털 비디오카메라로 얻어낸 필름 룩은 아니었다. 즉,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불완전한 합작품에 불과했다. 그 후 그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카메라가 바로 2008년 11월에 출시된 캐논의 5D MarkⅡ라는 DSLR 카메라였다. 이와이 슌지는 <뱀파이어(Vampire, 2011)>를 제작하며, 일부 슬로우모션 장면을 제외한 모든 장면을 DSLR 카메라로 촬영하였다. <뱀파이어>에서 이와이 슌지는 캐논 5D MarkⅡ 카메라를 직접 들고 촬영까지 하면서 8년 만에 제작하게 된 장편 신작에서 그는 혼자서 감독, 촬영, 각본, 음악, 편집, 프로듀서까지 6가지 역할을 하며 디지털 시네마 제작에 대한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필름보다 심도 높은 영화를 얻어냈다고 이와이 슌지는 만족해했다. 그러나, 적지 않게 등장하는 슬로우모션의 경우 5D MarkⅡ에는 고속 촬영기능이 없었기에 <뱀파이어> 촬영 때의 슬로우모션에는 RED(RED Digital Cinema Camera Company)사의 초기모델로 2008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4K 해상도를 가진 ‘레드 원(RED ONE)’을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못했던 탓에 생소한 컬러감을 가진 영상 소스에 제대로 된 컬러그레이딩(Color Grading) 을 하지 못해 불만스러웠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세계최초로 무가공의 이미지인 로우 이미지 포맷(Raw image format)의 영상 기록이 가능한 최초의 시네마 카메라였기 때문이었다. ‘레드 원’이 만들어 내는 무가공의 이미지와 컬러 그레이딩이라는 색보정 기술이 만나 빚어내는 이미지의 영상적 매력에 압도된 이와이 슌지는 본격적으로 다음 작품인 <립반윙클의 신부(A Bride for Rip Van Winkle, 2016)>에 더욱 진화된 후속 카메라인 ‘레드 드래곤(RED DRAGON)’으로 촬영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시네마 카메라에서는 최초로 8K 해상도 촬영이 가능한 ‘레드 몬스트로(RED MONSTRO)’를 2018년 중국에서 촬영한 <마지막 편지>라는 작품부터 도입하면서, 디지털 시네마의 최고봉인 8K의 세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Ⅲ. <라스트 레터>에 나타나는 이와이 슌지의 디지털 영상미학

2016년 이와이 슌지는 한국에서 <장옥의 편지(Chang-ok’s Letter)>라는 단편을 제작했다. 그리고 이후 <장옥의 편지>를 장편으로 제작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구상했으며, 그것이 바로 <라스트 레터>가 탄생하게 된 토대가 됐다. 또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고 편지를 써야만 하는 상황을 설정하며, ‘편지’를 매개로 <러브 레터>와 주제와 내용적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구체화했다고 한다. 실제로 <라스트 레터>는 이와이 슌지의 과거 작품을 옛날부터 봐 왔던 사람이라면 이와이 슌지의 극장용 장편 데뷔작인 <러브레터>를 강하게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타이틀, 플롯, 캐스팅, 그리고 심지어 이와이 슌지만의 영상미까지도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25년 만의 연작이라는 느낌마저도 든다[12].

<라스트 레터>는 이와이 슌지 자신의 고향인 미야기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오해로부터 시작되는 편지 교환으로 현재와 과거가 교차해 가는 또 하나의 편지시리즈이다[13]. 섬세한 감정묘사 및 청춘 시대의 단편과 실제적인 현재와의 대비, 서정적인 빛의 표정이나 추억이 떠오를 듯한 그리운 풍경, 독특한 카메라 무빙과 드론(Drone)을 사용한 하늘에서 지켜보는 듯한 시점 등, 모든 것이 일체가 되어, 여름의 희미하고 씁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세심하게 그려져 있다.

1. 빛의 미학

이와이 슌지의 ‘빛’에 대한 집착은 전술한 바와 같이 초창기 TV 드라마감독 시절부터 보여준 그의 미학적 특징이다. 그리고 그의 대표적인 수식어인 ‘이와이 미학’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빛에 관련한 것이다. 또한, 이와이 슌지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프레임 속에 존재하는 혹은 프레임 밖에서 프레임 안으로 스며들어 오는 빛을 표현하는 미학적 양식이다. 그 빛은 때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너무 눈이 부셔 관객 혹은 카메라 렌즈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일 때도 적지 않다. 이와이 슌지 감독만의 빛에 의한 미장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과 상징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면의 의미와 설정,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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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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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라스트 레터>

특히, [그림 5]와 [그림 6]과 같이 인물이나 상황, 심리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많이 사용되는 빛의 기법 중의 하나가 ‘역광’이다. 역광은 때로는 얼굴의 밝기를 떨어뜨려 섬세한 표정 변화를 명확하게 잡아내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역광인 경우 인물에게 필 라이트(Fill Light)를 통해 얼굴의 밝기를 높여 표정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러나 이와이 슌지는 역광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얼굴 톤의 저하를 그대로 두고 역광으로 드러나는 인물의 아웃라인(Outline)과 빛이 산란하는 모습을 통해 인물을 부각시키거나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소위 ‘아름다운 역광과 청량한 공기감’을 영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고집하는 빛을 가급적이면 자연 그대로 두고자하는 미학적 관점이 철저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한 인터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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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엔딩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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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쿄시로와 아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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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아유미와 소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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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쿄시로의 역광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찍는 편이 좋다. 다른 감독들은 장면을 훨씬 더 제대로 찍을지 모르지만, 저는 생각보다 대충이랄까요? 인공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어떤 식으로 찍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해요. 촬영장에 직접 가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가 빛이 가장 좋은지를 정합니다. 어떤 장면에서 원하는 방향에서 빛이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15분 단위로 시간을 지정해 놓고 찍으러 가는 일도 가끔 있어요[13].”

특히 역광을 활용한 장면설정은 이와이 슌지의 독특한 영상미의 대명사라 할 정도로 감성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장면에 자주 나타난다. 또한, 인물이나 피사체에 옆면에서의 경사광(Plain Light)을 강하게 비추어 빛이 닿는 부분과 그림자가 생기는 부분을 풍부하게 대비시키면서 인물 자체를 부각시키는 기법 또한 이와이 슌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빛의 연출기법 중 하나이다. 이러한 빛이 만들어 내는 ‘명부’와 ‘암부’의 대비를 통해 인물이 풍기는 고귀함이나 따스함, 정겨움이나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키는 분위기, 감정을 부각시키는 촬영기법은 이와이 슌지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면서도 계속해서 고집하고 있는 미학적 특징 중 하나이다. 특히, 앞서 언급했듯이 그가 아날로그 필름에서 느꼈던 따뜻한 입자감을 디지털 시네마의 후반 작업에서도 충분히 만들어 내면서 ‘필름 룩’에서의 향수 어린 독특한 영상미를 디지털에서도 효과적으로 재현해 내는 것이다. 즉, 디지털 영상 기술의 발전에 의한 HDR(High Dynamic Range)이 표현해내는 재현력은 이와이 슌지가 아날로그 시대에서부터 추구했던 밝고 강한 빛을 압축 없이 충분히 담아내는 것에 대한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었다.

2. 구도의 미학

이와이 슌지에 대한 모리 나오토(Mori Naoto)의 분석에서 “맥 컴퓨터로 꼼꼼하게 그림 콘티를 작성하고 확실하게 비주얼적인 부분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 이와이 슌지는, 무조건 운동성에만 집착하여 ‘미적 센스’라는 시각 표현에 있어서 너무나 당연한 것을 지속적으로 망각하고 있던 일본 영화계에 있어 놀랄만한 혁명아가 된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14].

모리 나오토의 분석에서 볼 수 있듯이 이와이 슌지는 ‘비주얼’을 매우 중시하는 감독으로 평가받아왔다. TV 드라마감독 시절부터 틀이나 규정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던 이와이 슌지는 결국, TV를 떠나 영화 현장으로 들어왔지만, 그 자신은 정작 영화에 대한 집착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그는 영화제작에 있어서 영화적 관습을 따라 하기보다는 주제적으로나 표현적으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오직 화면구도에 대해서만큼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철저하게 영화예술의 전통적인 화면구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다음과 같이 네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여 분석할 수 있다. 첫 번째, [그림 9], [그림 10]과 같이 전형적인 삼등분법의 화면구성과 균형 잡힌 시각화로 안정감 있는 영상을 만들어 내고 관객이 영화에 대해 시각적으로 편안함을 줌과 동시에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아무리 아름다운 영상이라도 불안한 구도나 전형적인 틀을 크게 벗어난 구도라면 심리적으로 몰입해서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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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미사키의 영정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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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동아리활동 장면

두 번째, [그림 11]에서와 같이 프레임 속의 인물이 어딘가를 바라볼 때 인물이 보는 방향에 충분한 공간을 남겨두어 전체적으로 시각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시선 이끌기의 균형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또한 [그림 12]처럼 자전거의 이동 방향감 혹은 속도감이 있는 피사체가 화면 속에 있을 때도 향하고 있는 방향에 공간을 남겨두면 전체적으로 시각적인 균형이 유지되어 안정감 있는 화면을 만들어 내어 관객들도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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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동창회에 간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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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자전거 타는 아유미

세 번째, ‘프레임 안의 프레임’ 기법을 통해 공간과 공간을 분할하여 빛을 통해 표현되는 영상적 분위기를 달리하고, 프레임 속에서의 감정적 독립성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그림 13], [그림 14]에서와 같이 프레임 속의 인물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립하는 감정 혹은 단절되는 감정을 프레임 안의 프레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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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헤어지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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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 엿보는 아유미

이러한 프레임 안의 프레임 기법은 전통적인 사진 촬영기법에서도 자주 활용되는 것으로 피사체나 등장인물 혹은 프레임 속의 상황 등에 집중될 수 있도록 주변부의 필요 없는 정보를 프레임의 틀로 가리는 효과를 통한 것이다. <러브레터> 및 이와이 슌지가 필름으로 제작한 마지막 영화 <4월 이야기>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기법으로 디지털 시네마로 이행한 이후에도 꾸준히 활용하고 있는 기법이다. 이것은 원래 일본의 유명한 영화감독인 오즈 야스지로(Ozu Yasujiro)가 즐겨 쓰던 일본 전통 가옥의 방문인 ‘후스마(ふすま)’를 프레임 속의 프레임으로 활용한 기법이다. 그것은 빛이 은은하게 투과하는 반투명한 장지를 발라 만든 미닫이문인 ‘쇼지(しょうじ)’를 프레임 속에 배치하는 기법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그림 15], [그림 16]과 같은 로우 포지션(Low Position) 촬영기법이다. 흔히 로우 앵글(Low Angle)이라고 잘못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정확히는 로우 포지션이 맞다. 즉, 카메라가 피사체를 촬영할 때의 각도가 아니라 렌즈를 수평으로 유지한 상태에서의 카메라 자체의 높이를 지칭한다. 일본영화에서 거장 오즈 야스지로(Ozu Yasujiro)가 영화에서 자주 사용한 촬영 기법으로 일명 ‘다다미(たたみ) 앵글’이라고 부른다. 카메라의 높이를 다다미 생활의 문화에 익숙한 일본에 맞게 카메라 높이를 무릎 높이 정도에 위치시키고 삼각대로 고정하여 촬영하는 기법으로 무게감과 시선이 아래에 있어 마치 옆에 앉아서 바라보는 듯한 앵글로 매우 안정감 있고 차분한 영상을 담아낼 수가 있다. 이와이 슌지의 작품에서는 오즈 야스지로의 다다미 앵글보다는 높고 아이레벨(Eye Level)보다 낮은 허리 높이의 카메라 포지션을 자주 활용한다. 서양과 일본의 생활환경이 혼재되어 있는 일본의 문화적 배경을 반영하여 이러한 카메라 포지션을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일반적인 카메라 포지션보다는 매우 낮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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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5. 쇼조선생과 아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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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6. 우편함 앞의 쿄시로

이와이 슌지는 예전 TV 드라마감독 시절 새로운 TV 드라마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오즈 야스지로처럼 ‘흑백’ 영상에 ‘오즈 야스지로풍’의 표현양식으로 촬영하고자 하는 연출적 의도를 방송국 편성 PD에게 언급한 적이 있다. 결국, 방송국에서는 이와이 슌지가 추구하는 파격적인 영상미학을 수용하지 않으며 제작이 진행되지 않았으나, 아날로그 시대부터 오즈 야스지로의 촬영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이와이 슌지의 예술적 집념을 잘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디지털 시네마로 넘어와서도 여전히 오즈 야스지로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그대로 자신의 작품에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접근은 디지털 시네마용 카메라의 소형화, 경량화, 그리고 안정적 구도를 구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디지털 스테빌라이저(Digital Stabilizer) 기술이 중요한 토대가 된다.

3. 공간과 시선의 미학

첫 번째, 이와이 슌지의 영화 스토리텔링에서 나타나는 인물과 인물 간의 물리적 거리 및 심리적 거리는 프레임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공간 연출적 요소 중 하나이다. <러브레터>에서도 이와 같은 미학적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편지라는 매개는 지리적으로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인물 간의 소통 도구이며, 영화 속에서의 인물 간 거리는 심리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되고 있다. 그러므로 영화 속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서 이 두 가지 측면의 거리는 점차 좁혀지게 되고 어느 순간 등장인물 간의 심리적, 물리적 접점에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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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7. 25년 만에 재회하는 쿄시로와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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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8. 처음 만나는 쿄시로와 아유미, 소노카

<라스트 레터>에서도 그와 같은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중요한 표현적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간의 관계와 갈등 등으로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서 각 인물 간의 심리적, 물리적 거리는 점차 변화를 거듭하게 된다. 이와이 슌지는 그러한 변화를 프레임 속에서 간접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장면에 따라서 그 거리가 매우 먼 경우에는 프레임 속에서 그것을 대칭 구도로 심리적 공간을 두어 형성시키고 풀 숏으로 전체적인 공간감과 함께 표현하는 공간연출을 자주 한다. 더 나아가서 등장인물 간의 거리, 카메라와 등장인물 간의 거리도 함께 표현하고 있다.

특히, 이와이 슌지에게 있어서 풀 숏이 보여주는 인물 배치에 따른 상호관계는 극 중 인물이 형성하고 있는 캐릭터들 간의 위치 관계와 시선을 통해서 심리적 대비, 감정적 거리감, 친밀감의 정도 등을 드러내는 중요한 설정장면 중 하나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이와이 슌지의 필름 시대 영화나 비디오로 촬영한 드라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영상표현의 특징 중 하나이다. 또한, 이러한 기법들은 디지털 시네마로 넘어온 뒤에도 이와이 슌지가 자신의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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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9. 학생 시절의 유리와 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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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0. 성인이 된 유리와 쿄시로

두 번째, <라스트 레터>에서 나타나는 카메라 시점에 관한 것이다. [그림 22]는 <라스트 레터>의 타이틀 장면이다. 작품을 보면 이 장면의 시점이 ‘망인(亡人)’ 미사키의 시점이라는 사실을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카메라 시점은 전작 <러브레터>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림 21]에서와 같이 하늘에서의 촬영 장면, 그리고 영화 속에서의 장면들에서 망인 이츠키가 마치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점으로 처리하였다. <러브레터>에서 보여준 이와 같은 카메라 시점의 표현은 당시 크레인을 활용하여 부감촬영을 한 것이다. 미학적 맥락을 함께 하는 <라스트 레터>에서도 하늘에서 촬영한 장면들이 마치 망인 미사키가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점으로 처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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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 <러브레터> 타이틀장면 : 이츠키의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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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2. <라스트 레터> 타이틀장면 : 미사키의 시점

<라스트 레터>에서는 카메라 시점이나 1인칭 시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처음 타이틀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등장인물에는 있지만 실제로 등장하지 않는 인물인 토노 미사키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러브레터>와 <라스트 레터> 두 작품 모두 타이틀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공중에서 바라보는 듯한 부감촬영 기법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장면은 단순히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 있어 장소와 공간적 특징을 설명하기 위한 평범한 롱 숏(Long Shot)으로 비추어질 수 있으나 영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타이틀이 등장했던 장면의 시점이 다시 한번 떠오르게 되는 것은 바로 세상에 없는 보이지 않는 등장인물의 시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그림 21], [그림 22]. 그래서 실제로<라스트 레터>에서는 등장하는 인물의 주관적 시점과 그 등장인물 중 누군가가 카메라를 응시하는 시점은 나타나지 않는다. 모든 장면에서 미사키의 시점은 카메라와 동일시되고 있고 그 시점을 깨는 장면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그러한 카메라가 응시하는 장면들이 망인 미사키의 시선이라고 하는 임장감(臨場感)과 현장감을 감성적으로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짐벌(Gimbal)이라는 장비의 도움으로 더욱 부드러운 핸드헬드(Handheld) 촬영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촬영 장비로 주목받고 있는 드론 촬영 장면에서 보여주는 시점은 <라스트 레터>의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매우 상징적이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망인 토노 미사키의 시점인 인트로 장면뿐만 아니라, 공간적 배경이 바뀌는 중요한 장면에서 마치 과거 자신의 흔적들이나 추억의 장소들, 그리고 딸 아유미와 동생 유리, 학창시절의 친구 쿄시로의 모습을 조용히 내려다보는 듯한 장면을 효과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하늘에서의 부감 시점은 디지털 시대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영상 미학적 요소가 되었다.

Ⅳ. 결론

최근에 이와이 슌지는 놀랄만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것은 실사 영화 <진격의 거인(Attack on Titan : Part 1, 2015)> 등의 작품에서 주로 감독으로 활동했던 히구치 신지(Higuchi Shinji)가 기획한 릴레이 형식으로 동영상을 연결하는 ‘캡슐 괴수 계획’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히구치 신지가 동료와 함께 구상한 것이며, 자택에서 촬영한 영상들을 연결하고 구성해서 최종적으로 1개의 동영상으로 완성하는 프로젝트이다. 물론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환경 변화 속에서 탄생한 프로젝트이지만, 이와이 슌지는 이 프로젝트를 보다 확대해 장편 극장 개봉영화를 제작했다.

‘캡슐 괴수 계획’은 현재 전 세계를 고통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워 이길 수 있는 괴수를 캡슐 상태의 알에서부터 키워 다 함께 힘을 합쳐 극복하자는 다소 만화적인 모티브의 이야기다. 이와이 슌지는 이와 같은 주제적 이야기에 배우를 따로 캐스팅하여 본격적으로 영화적 스토리텔링 요소를 추가해나가며 장편 영화를 제작했다. 그리고 <8일 만에 죽은 괴수의 12일간의 이야기(The 12 Day Tale of the Monster that Died in 8, 2020)>라는 제목으로 탄생한 이 영화는 완전하게 언택트(Untact) 제작환경에서 만들어졌으며, 모든 제작진과 배우들은 어떠한 직접적만남도 없이 각자의 주거지에서 상황에 맞춰 스스로 카메라를 설치하며 나름의 촬영장을 만들어나갔다. 방법적으로 촬영한 영상을 이어 붙이거나 하나의 프레임 속에서 멀티카메라(Multi Camera)와 같은 기법으로 콜라주(Collage) 시켜 나갔다. 즉, 영화제작 과정에서 연결되어있는 것은 랜선뿐이었으며, 이와이 슌지는 [그림 23]에서와 같이 촬영 현장에 가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원격으로 연출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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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3. <8일 만에 죽은 괴수의 12일간의 이야기>

작품 기획이 처음 시작된 2020년 4월 27일 이후 제작진과 배우들의 첫 만남은 극장 개봉을 앞둔 8월 28일에 비로소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와이 슌지는 이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구도와 한정된 공간, 단순한 디지털 장비와 단순한 제작환경이라는 극도로 제한된 상태에서 영화라는 매체를 과연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하는 도전의 의미가 있다.”즉, 이러한 사실을 통해 이와이 슌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디지털 영상 제작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도전과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것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와이 슌지의 디지털 영상미학이라는 것은 단순히 작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 속에서 변화해가는 제작환경이나 인간적 관계 등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영상표현 기법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과 도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이 슌지는 아날로그 시대의 8mm 필름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던 ‘영화적 감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표현하기 위해 여전히 탐색의 과정을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라스트 레터>에 대한 미학적 분석을 통해 알수 있었듯이 그의 작품 속에는 디지털 기술이 제공하는 영상기술과 전통적 영화관습이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날로그와 디지털 영상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표현양식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이와이 슌지의 영상미학이 담고 있는 특징과 정체성에 관한 담론에 국한된 것이다. 즉, 본 연구에서의 논의는 디지털 영상미학의 학문적 영역을 보다 확대하는 의미를 지니며, 실제로 그와 관련된 선행적인 연구로서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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