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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on Poverty of the Middle Aged Men Living in Chokbang Area

쪽방거주 중고령 남성의 빈곤 사례연구

  • 김동선 (조인케어.우송대 사회복지아동학부 초빙교수) ;
  • 모선희 (공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Received : 2020.03.11
  • Accepted : 2020.04.09
  • Published : 2020.05.28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poverty progress and its factors which drove the lives of the middle-aged men in Chokbang area. The observed examples are the retired government officials and the self-employed who have been classified as the ones in the economically-middle class but currently as the welfare recipients. According to the results of in-depth interview and observation, the poverty of the observed has undergone the progress of trigger, worsening, breakup, desperation and stabilizing stages. The poverty factors found in this study could be categorized into two factors; circumstantial factors(bankruptcy after IMF, debt guarantee for relatives) and inner factors(the participants' behavior and characteristics). The circumstantial factors worked mainly in the trigger stage and the inner factors contributed to worsening economic crisis and facilitating the progress. According to the result, this study suggests not only individual-scale measures such as encouragement of familial bond or medical treatment of the alcoholism but also social measures including proper regulation of shark loan and opportunity supply to exit from poverty.

본 연구는 사례연구를 통해 현재 도시빈민으로 살아가는 중고령 남성들의 빈곤화 과정과 빈곤 요인을 살펴보았다. 본 연구의 참여자들은 정규직이나 종업원을 둔 자영업자 출신이지만 현재 수급자 신분으로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였다. 이들의 빈곤화 과정은 1) 부도, 빚보증, 사기 등 경제적 위기가 되는 촉발과정, 2) 이를 극복하기 위한 주식투자, 고리의 사금융 이용 등으로 악화과정, 3) 이혼, 가족 및 사회적 지지망이 사라지는 해체과정으로 이루어지며, 4) 이후 알코올중독, 건강악화 등의 절망과정, 수급자로 선정됨으로써 빈곤계층에 편입되는 안정화단계가 뒤따르게 된다. 한편 사례들의 빈곤화 과정에서 나타난 빈곤요인들을 살펴보면 IMF, 사기, 빚보증 등 외적 요인과 개인의 행동 및 성격 특성 등 내적 요인으로 구분된다. 빈곤화 과정에서 외적 요인은 촉발요인이 되지만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의 잘못된 대처, 자발적 관계단절, 낙담, 무계획적 생활 등 내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향후 가족 유대 강화, 알코올중독 개입 등 예방적 관점에서의 위기관리와 함께 사회구조적으로 고금리 사금융에 대한 적절한 제재, 사회관계망 회복, 빈곤탈출 기회 제공 등 적극적 대응을 제언하는 바이다.

Keywords

I. 서론

인구고령화와 함께 가장 우려되는 문제 중의 하나가 노인빈곤과 소득불평등의 심화이다.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빈곤율이 14.6%인데 비해 노인인구의 빈곤율은 49.6%로 매우 높은 편이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인 12.1%의 4배에 해당하는 것으로[1] 노인빈곤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지만 고령화율이 높아질수록 빈곤의 정도와 범위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특히 예비 노인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에서 빈곤의 문턱을 넘어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 경제성장의 궤도를 함께 한 세대로 성장과 하락의 과정을 개별적 삶 속에서 살아내고 있는 세대이다. 이들은 현재 노인세대에 비해 교육수준, 노동경력이 좋았던 점, 전 국민연금 제도의 도입으로 노후전망이 낫다고 예측돼 왔지만 실제로 이들은 부모부양과 자녀양육이라는 이중의 경제적 부담을 진 채 정작 본인들의 노후를 충실하게 준비하지 못한 세대이다[2][3]. 또 이들은 노후준비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중장년기에 구조조정에 따른 실직, 자영업의 실패 등을 경험함으로써 빈곤의 문턱에 도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준비현황을 살펴보더라도 사정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국민연금 가입률은 30%에 불과하며, 은퇴준비가 미흡하다고 답변한 베이비부머는 53% 이상이었다[4].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중장년 남성들은 그 동안 경제활동의 주체로, 여성가구주나 여성노인에 집중돼 왔던 빈곤연구의 대상에서 비껴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빈곤 진입 추세에 따라 이들에 대한 조망 역시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노년기의 빈곤을 설명하는데 아동기 또는 성인기에 이미 고착화된 사적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로부터 유발한 것으로 바라보는 생애과정이론 관점[5]이나 생애노동기회가 노년기 빈곤 불평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누적 유리/불리가설[6][7]이 지배적이다. 두 관점 모두 노년기의 가난은 구조적이고 개인이 속한 계층에 의해 고착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중간계층에서 빈곤계층으로 떨어진 사례들을 살펴보면 빈곤이 고착화된 것이 아니라 매우 역동적이며 빈곤계층을 형성하는 사람들의 인적 구성이 또한 이질적임을 알 수 있다[8]. 퇴직 전 정규직에 종사했거나 중산층에 속했던 사람들은 노후에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실직, 퇴직, 이혼 등 특정 사건을 계기로 가난의 극한점까지 떨어지는 하락빈곤의 사례들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빈곤현상과 관련하여, 빈곤의 요인, 빈곤 경로에 대해 기존의 계층론적 관점과는 다른 신빈곤론의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이후 실업과 불안정 노동의 증가, 이혼과 한부모가구 증가 등 생애과정의 불확실성은 누구나 빈곤에 처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면서 빈곤 논의에서 신빈곤론이 등장하게 됐다. 신빈곤론은 현대사회에서의 생애과정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개인이 속한 집단의 특성과는 별개로 누구나 빈곤위험을 경험할 수 있다고 본다[9]. 즉 빈곤위험은 소속계층에 따라오는 속성이 아니라 개인화된 사건으로 바라보며 빈곤의 사회구조적 요인보다 누구나 빈곤에 처할 수 있는 빈곤의 수평적 구조[10]에 주목하고 있다. 빈곤의 발생에는 사회구조 및 사회제도적 차원뿐 아니라 빈곤층의 특성 및 경험에서 나타난 개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므로 특정 이론만으로 빈곤 결정의 전체적 양상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빈곤은 환경적 요인과 개인의 선택적 행위가 중첩하여 발생하는 것이며 생애 경험이 누적돼 형성되는 것이다[11]. 이런 점에서 빈곤요인의 작동기제를 살펴보기 위해 개인들의 빈곤 경험을 시계열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필요하다.

본 연구의 목적은 첫째, 중간계층에서 극빈 계층으로 추락한 중고령 남성들의 사례를 통해 베이비붐 세대가 직면한 빈곤화 과정을 유추해보는 것과, 둘째, 사회 구조적 요인 이외에 개인적 차원을 포함한 빈곤 결정 요인을 찾아보는 데 있다.

본 연구의 사례들은 대전의 쪽방지역과 노숙인 쉼터에서 생활하는 중·고령 남성들이다. 이들은 전통적 도시빈민의 특성으로 여겨졌던 저학력, 저숙련 단순노동자이거나 초기 빈곤계층 출신이 아니라 고학력, 정규직이었거나 종업원을 둔 자영업에 20년 이상 종사했던 경력을 갖고 있다. 또 이들은 연령적으로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거나 베이비붐 세대의 특성을 갖고 있어 이들의 빈곤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본 연구가 목적으로 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빈곤화 과정 이해 및 위기 요인 연구에 적합하다.

본 연구는 그 동안 빈곤연구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였다. 또 그 동안 많은 빈곤연구가 구조적 측면에 주목해 왔다면 본 연구는 개인요인을 빈곤결정 요인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다른 연구와의 차별성이 있다.

II. 이론적 배경 및 선행연구

다양한 관점 가운데 한국사회에서 빈곤의 원인을 바라보는 지배적 관점으로 사회구조적 설명에 해당하는 계층론을 들 수 있다. 계층론적 설명은 특정한 사회지위 구조 하에서 성, 교육수준, 인종, 직업 등 개인이 소속된 계층의 특성에 따라 집단 간에 패턴화된 불평등이 나타나는 현상[12]에 주목하며 특정 계층이 빈곤 위험에 더 취약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계층론적 관점은 빈곤이 누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생애과정이론과도 연결되어 있다.

노년기 불평등과 빈곤의 원인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가설 중 하나인 누적유리/불리가설에 따르면, 생애주기 동안 경제적으로 유리/불리한 조건이 누적됨에 따라 노년기 불평등 및 빈곤이 심화된다[6][7]. 즉 청년기, 중년기의 근로생애 기간 동안 축적된 경제적 유리함이 노년기의 경제적 복지수준을 결정한다[13-16]. Crystal과 Waehrer[17]에 의하면 중년기에 고소득의 수입을 가졌던 고령자는 비교적 고연령까지 근로를 유지함으로써 근로소득을 가지게 되고, 개인연금 등으로 고소득을 유지함으로써 그렇지 못한 고령자와의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고령 남성의 소득불평등을 조사한 이미진 등[18] 연구에 따르면 중년기 경제적 지위는 노년기 근로소득과 자산소득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사적 연금과 공적 연금 수급 및 연금액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노년기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이러한 연구들은 생애 과정을 통해서 빈곤노인으로 가는 노선은 정해져 있다는 차원에서, 계층론적 설명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들은 최근 관찰되는 빈곤 유입의 다양한 경로나 중산층으로 확산된 빈곤위험 등 빈곤의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대 내 계층이동의 동태성을 분석한 조사에 따르면 중간계층에 해당하는 준전문 사무계층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계층이 하향 이동하는 비율이 크게 증가하였다. 준전문 사무계층은 영세/농업/기술계층과 육체근로계층으로 하향 이동하는 추세가 강하게 나타났으며 이러한 경향은 베이비붐 세대에서 두드러진다[19].

중산층 몰락 신호는 지난 1992년부터 2012년까지 통계청 가계 동향 조사결과에서도 나타난다. 2인 이상 도시 가구 중 중산층(OECD 기준인 중위 소득의 50~150%)은 75.4%에서 65.5%로 줄은 반면 저소득층(중위 소득의 50% 미만) 비중은 1992년 7.4%에서 2012년 14.4%로 두 배가 되었다. 이는 매년 평균 4만4900여 가구가 중산층에서 이탈해 빈곤층으로 편입한 것을 의미한다[20].

빈곤위험이 전통적으로 비위기 계층으로까지 확산되면서 빈곤의 원인을 새롭게 분석한 것이 신빈곤론인데, 여기서는 개인의 생애위험사건이 빈곤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점에 주목한다. 신빈곤론은 1990년대 후반부터 노동빈곤, 사회적 배제 등 빈곤의 새로운 측면이 부각되면서 이를 설명하기 위한 노력으로 한국사회에 소개됐다. 신빈곤론에서는 현대사회에서의 생애과정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개인이 속한 집단의 특성과는 별개로 누구나 빈곤위험을 경험할 수 있다고 본다[9]. 즉 빈곤 위험은 소속계층에 따라오는 속성으로서가 아니라 개인화된 사건인데 대표적인 위기사건으로 이혼, 중독, 금전관리 실패, 빚보증 등을 들 수 있다. 신빈곤론에서는 빈곤이 영속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시화, 생애과정에서 빈곤이 발생한다는 의미에서 생애과정화, 누구에게나 빈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민주화로 표현되기도 한다[21].

한편 빈곤층의 심층 면접을 기반으로 빈곤화 과정을 살펴본 미시적 연구[22]에서는 생애 초기 한계상황, 누적된 실패경험, 가족으로 확산된 위험, 중첩된 사회위기를 빈곤 과정의 주요한 계기로 보고 빈곤화 메커니즘을 초기 빈곤 이후 일생에 걸쳐 빈곤이 누적되어 형성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성호[23]는 빈곤상황이 고착화되는 주요 요인으로 빈곤층 거주 지역 파괴, 가족 친지 관계의 해체에 따른 사회적 네트워크의 파괴를 들고 있다.

노인 빈곤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여성노인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여성노인의 빈곤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여성노인빈곤은 원가족, 결혼으로 형성된 가족의 빈곤으로 인한 만성적 빈곤, 노동시장에서의 주변적 위치, 가족 내 성역할 부담 등이 누적된 빈곤[24][25]으로 특징지어지며 다차원적 사회적 배제로 인해 빈곤이 확대되고 재생산되고 있다[26][27]. 쪽방거주 노인의 경험을 살펴본 질적 연구들[28][29]에서는 빈곤의 원인에 대한 분석 보다는 절망적 위기, 자책, 편견과 차별 등 현재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본 연구는 쪽방거주 중고령 남성들을 대상으로 하여 빈곤화 과정을 밝혀보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신빈곤론을 이론적 출발점으로 삼지만 빈곤의 개인적 요인 뿐 아니라 제도, 사회적 상황 등 사회구조적 맥락 속에서 개인의 빈곤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III. 연구방법

1. 연구대상자 및 연구절차

본 연구는 중고령 남성의 빈곤화 과정을 살펴보기 위한 사례연구로 대전시 쪽방지역에 거주하는 중·고령 남성 6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50대 후반∼70대인 연구 참여자들은 1956∼1963년생인 베이비부머세대에 속하거나 이들보다 연령이 높은 경우에 해당한다. 베이비붐 세대는 이전 세대에 비해 높은 교육수준을 바탕으로 고도경제성장시기에 안정된 소득활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 있지만 퇴직이후 사회보장제도의 미흡, 부족한 노후준비로 빈곤위기에 노출되는 등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세대이다. 본 연구의 사례들은 고졸이상의 학력, 정규직이나 종업원을 고용한 자영업자 출신으로 중산층이나 서민계층이었지만 현재는 수급권자이거나 노령연금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등 극빈층에 속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연구자는 2016년 6∼12월 매주 1∼2회 쪽방지역 생태계에 대한 참여관찰연구를 하면서 연구대상자들과 서서히 친해졌으며 그 과정에서 관찰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였다. 또 연구주제에 대한 예비적 지식을 얻은 뒤,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요청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러므로 표본선정은 의도적 표본선정 또는 준거기반선정에 해당한다[30]. 인터뷰는 2016년 9월∼2017년 2월까지 2∼3차례 매번 1시간∼1시간30분에 걸쳐 실시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인터뷰와 함께 참여관찰 방법을 병행하였다. 연구자가 관찰한 내용은 대상자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전체 상황 속에서 대상자들의 의견을 해석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는데 도움이 되었다. 연구 참여자에게서는 개인정보 제공과 인터뷰 내용의 사적 이용 금지 및 인터뷰 내용의 진실성을 약속하는 내용의 연구서약서에 동의를 받았다. 인터뷰 내용은 경제활동을 하다가 위기에 처하게 된 상황, 이후의 과정, 가족과의 관계, 가난에 대한 생각 및 어려움 등 비구조화된 설문지를 토대로 진행하였으며 이야기를 피하거나 구체성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 질문을 통해 빈곤화 과정 및 현재 상태에 대한 자료를 획득하였다. 연구 참여자의 일반적 특성은 [표 1]과 같다.

표 1. 연구 참여자의 일반적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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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구방법

본 연구는 주제의 형성, 자료 수집 및 자료분석에 이르기까지 사례연구 방법론을 따랐다. 사례연구는 연구방법론이라기 보다는 무엇이 연구되어져야 하는가 하는 선택과 연관된다고 말한다. 즉 사례연구는 사례를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며 사례연구에서의 사례는 구체적이고 복합적이며 기능적이다[31] 본 연구의 사례들 역시 자신들의 비전형적인 삶의 경험들을 구체적 서술과 암시, 부정 등 복합적 방식으로 드러냈으며, 또 긴 시간에 걸쳐 빈곤이라는 조건에서 스스로 기능하는 방식을 보여 주었다. 사례연구에는 정량적 연구나 다른 정성적 연구에서는 파악하기 힘든 내재된 의미, 미묘한 암시 등을 낚아챌 수 있는데[32] 이는 한 사례의 내면에 깊이 침투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본 연구는 지속적인 만남과 관찰을 토대로 풍부하고 자세한 기술을 목적으로 하였다는 점에서도 사례연구 방법을 따랐다.

사례연구는 이론의 검증보다는 이론의 발견에 기여한다. 사례연구는 연구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포괄적 이해에 도달한 뒤, 이를 통해 사회적 구조와 과정에 있는 규칙성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적 진술을 개발한다[33]. 본 연구 역시 통합적이고 맥락적 관점에서 사례들을 분석함으로써 개별성을 이해함과 동시에 이들을 통해 중년에서 시작되는 빈곤의 위험을 단계화하고 빈곤 요인을 추출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 자료분석은 인터뷰녹취록에서 연구 참여자들의 경험을 최소의 이야기 단위로 분해한 뒤 이를 기호화하는 코딩작업으로 시작하였다. 자료분석은 Stake[31]의 4가지 유형에 따라 첫째, 이슈와 관련된 범주 혹은 의미들을 집합하였으며, 둘째 개별적인 예에서 의미를 추출해내는 직접적 해석을 실시하고 셋째, 두 개 이상의 범주들에서 패턴을 만드는 과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이러한 패턴이 모집단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일반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빈곤화의 5단계를 구조화하였다. 삶의 과정은 이전 단계에서의 경험이 누적되며 새로운 전망에 의해 이전 경험이 해석되는 등 시간에 종속된다. 따라서 5단계는 시간적 순서이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빈곤요인들이 인과를 이루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편 관찰일지는 사례들의 이야기를 통해 의미구성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증거보강의 역할을 했다. 사례들이 쪽방이웃들과 나누는 대화, 관계의 형태, 소비행태, 연구자와의 관계 등을 통해 사례들이 갖고 있는 세계관을 구성하며, 방어적이거나 무모하거나 회피하는 속성들을 확인하였다. 관찰일지는 사례들의 삶의 경험을 해석하고 구성하는데 보완역할을 하였다.

3. 연구의 윤리성 및 신뢰성

다른 정성연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례 연구 역시 연구결과물이 연구자의 인식구성물이라는 측면에서 연구자의 관점에서 분리시키기가 어렵다. 이러한 사례연구가 타당성과 신뢰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현상, 관찰, 가설검증, 참여자의 인식에 관한 삼각검증, 해석 등이 일어나는 본문에서 관찰자의 비평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즉 사례연구에서 연구자의 관점은 배제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연구의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빈곤의 원인을 특정하는 점에 있어 연구 참여자와 연구자의 이해가 다를 수 있다. 빈곤의 위기 및 심화에 대한 연구 참여자들의 진술, 즉 ‘상황이 나빴다’거나 ‘내 팔자가 그렇다’ 등 얼버무리는 해석에 대해 연구자는 이들의 말 속에 묻힌 빈곤요인을 읽어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사례들의 개별적인 체험을 보다 일반적인 관점으로 끌어오기 위해 연구 참여자의 체험에 입각한 연구자의 관점이 필요했다. 또 사례해석에 있어서 일반화보다는 참여자들의 특수한 상황이 고려된 관점있는 해석을 추구하였다. Patton[30]의 주장대로 정성연구는 진리보다는 관점을, 일반화보다는 맥락이 고려된 예견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34].

한편 본 연구에서는 연구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삼각검증법과 동료검토법을 활용하였다. 삼각검증법이란 질적 연구의 타당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Denzin[35]은 자료, 연구자, 이론, 방법론적 삼각화로 유형을 구분하는데, 본 연구에서는 본인의 진술과 사례관리기록, 연구 참여자들의 일기나 메모 등 자료의 삼각화를 통해 연구의 타당성과 신뢰성을 높였다. 또한 연구 참여자들과 오래 접촉해 온 쪽방상담소의 사례관리사들에게 각각의 인터뷰에 대한 신뢰성을 검토하게 했으며 질적 연구 경험이 있는 동료 2명에게 범주화, 해석, 일반화 등 연구의 전반적 과정에서의 신뢰성 검토를 의뢰하였다.

진술의 신뢰성을 위하여 본 연구에서는 공식적인 인터뷰를 시작할 때 개인적 의견이나 해석과 함께 상황에 대한 명백하고 사실적인 진술을 부탁하였고,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추가적 혹은 세부적 질문으로 사실을 확인하였고, 맥락적 듣기를 하였다. 한편, 본 연구에서는 연구 참여자가 회피하고 싶은 삶에 대한 회상을 요구함으로써 이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 배려가 필요하였다. 연구자는 대상자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렸으며 몇 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얼굴을 마주 한 후에 연구의 의도를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연구에 협조할 의사를 밝혔을 때 비로소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또한 인터뷰가 끝난 뒤 연구와 상관없는 일상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연구자가 그들 삶의 평가자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켰다.

본 연구의 분석틀을 정리하면 [그림 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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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자료 조사 및 분석틀

IV. 연구결과

1. 빈곤화 과정

1.1 촉발 단계: 치명적인 한방, 여력 없는 삶은 휘청

본 연구의 사례들은 공무원, 교사, 자영업 등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계층으로 살아왔지만 40∼50대에 빈곤의 계기가 되는 사건들을 경험한다. 중년기에 경험한 IMF로 인한 부도, 빚보증에 의한 압류, 사기 등은 이들의 삶에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이다. 하지만 하나의 위기였을 수 있는 사건들은 중년까지의 삶의 방향성을 바꾸는 변곡점이 됐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생애주기에 있어서 중년기를 일의 위기, 관계의 위기 등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관계나 일에서의 소진, 삶의 의미에 대한 성숙한 관점, 가장으로서의 책임, 신체적으로 활력이 떨어지는 등 삶의 정점을 지난 시기에 외적인 충격을 맞닥뜨린 것이다.

갑자기 닥친 사건들은 이후 경제적 하락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촉발 요인들은 IMF로 인한 연쇄부도, 실업과 같이 사회적인 요인도 있지만 빚보증에 의한 압류나 사기 피해 등과 같이 개인적 요인도 작용했다. 사회적 요인으로 빈곤을 경험하게 된 경우로는 사례A와 B, C를 들 수 있다.

사례A의 경우는 IMF당시 목재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IMF로 인해 대금을 받지 못하고 연속부도로 도산하게 됐다. 채무로 인해 법정에 섰으며 결국 2년의 실형을 살고 나왔다. 사례B의 경우, 인테리어 업을 했으며 5명의 직원을 두고 시내에서 큰 사무실을 운영하였으나 공사 도중 사고로 다리를 다친 이후로 사업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 역시 IMF때 부도를 맞아 사업을 정리했다.

인쇄업을 운영했던 사례C는 1980년대 이후 사업이 내리막길을 가는 가운데 설비투자로 상황을 타개하려 했으나 IMF가 터지면서 부도를 당한 경우이다. IMF는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이 되었지만 특히 이들은 IMF라는 철퇴에 가장 취약한, 한계 자영업자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인테리어 업은 경쟁이 심하고 자금압박이 심한 업종이며, 수입목재를 취급하는 목재소의 경우 당시 환율급등으로 타격이 심했다.

“인쇄업을 했는데 PC가 나오고 프린트기가 보급되면서 인쇄업이 사양길인 거요. 신용보증기금에서 돈을 빌려서 2천 만 원이 넘는 기계를 샀어요. 그런데 그때가 하필이면 IMF 직전이었어요. 중소기업이랑 주로 거래를 했는데 IMF 터지니까 멀쩡한 중소기업들도 일감을 안 주고 대금도 제때 안주는 거요. 이자 내기도 힘들고 종이값 못 내고 그냥 부도가 났죠. 그때 한 2억을 날린 겁니다.”(사례C)

사례D와 E, F의 경우 직원 신원보증과 친인척 빚보증, 사기 등이 경제적 위기의 촉발요인이 됐다. 사례D는 건축업을 하는 매제가 자신을 보증인으로 삼았다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됐다. 그는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예퇴직을 하고 연금을 일시불로 받아 빚을 갚았다. 전자제품 대리점을 운영했던 사례E의 경우 직원의 부탁으로 보증을 서게 됐는데 그 직원이 자신의 인감을 훔쳐서 거액을 대출받아 도망치는 바람에 빚을 떠안게 된 경우이다. 도청의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사례F의 경우는 친구의 빚보증을 섰다가 그 친구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거액의 채무를 떠안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였다가 갑자기 닥친 시련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그다지 구체적이지 않았다. 젊은 시절이나 잘 나가던 시절에 대한 세세한 설명과는 달리 이들은 이 과정에 대해서 ’운이 나빴다’는 말로 덮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사례 D와 E의 경우는 복잡한 회계, 빚보증에 대한 법적 책임정도, 채무관계 등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했음을 시인하기도 했다.

한편 경제적 위기의 단초가 된 촉발요인만으로 바로 빈곤상태로 가지는 않는다. 이들에게는 예기치 않았던 위기에 대해 나름의 방법으로 대응을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더 큰 위기를 불러들이는 악화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2 악화단계: 궤도를 돌려놓으려는 노력, 성급하고 잘못된 판단과 선택

살다보면 누구나 위기에 부딪히게 된다.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서 위태롭게 버티다가 재기에 성공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벼랑 밑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위기에 처했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들은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임으로써 사태를 악화시키게 된다. 공무원, 교사로 명예 퇴직한 사례 D와 F는 연금대신 상당한 액수의 퇴직금을 받는 것을 선택하지만 이를 빚을 갚거나 단순 생활비에 쓰거나 주식투자로 날리게 되며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어떻게든 빚을 청산하고 재기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주식에 손을 댔지. 갖고 있는 돈 조금하고 대출을 받은 돈으로 주식을 했는데, 처음에는 버는 듯 싶더니 그 다음에는 어이없이 잃는 거예요. 결국 빚만 늘어났지. 빨리 재기하려는 욕심 때문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꼴이 돼버린 거야.”(사례F)

사례C의 경우는 부도가 난 뒤 빨리 돈을 갚으라는 독촉에 고리의 사금융을 이용하게 됐다. 이 후 빚은 더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결국 가게와 집을 모두 처분해야 했다. 한편 사례E는 사기를 당한 뒤 분한 마음에 가게를 제대로 돌볼 수가 없게 됐다.

사례D의 경우는 명예퇴직을 한 뒤 몇 년 기간제 교사로 일했다. 수중에 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평소 씀씀이가 컸던 습성이 지속되면서 돈을 풍덩풍덩 썼고 결국 수중에 한 푼도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됐다.

“아들들한테 잘 해 주고 싶었어요.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지고 엄마 아빠사이가 나빠지니까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받을 것 같았거든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 해 주었지요. 대학생인 아들에게 차도 사 줬습니다. 그때는 왜 그런 만용을 부렸는지 모르겠고요. 제 씀씀이는 지금도 그래요. 기간제로 일할 때도 돈은 꼬박고박 벌었지만 그거 한 사람 쓰기도 힘든 돈이잖아요.”(사례D)

삶에서 회복은 점진적이며 고통스러운 과정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에게 닥친 위험을 인정하지 않고 빠르고 체면이 서는 방식으로 제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한편 사례C의 경우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수발하는 일이 악화 요인이 됐다는 점에서 다른 사례들과 다를 수 있다.

“처가 어머니와 갈등이 심해서 이혼을 했었거든요. 혼자서 어머니를 모셨는데 치매에 걸린 뒤로는 어머니가 저만 따라다녔어요. 제가 어디를 가면 굉장히 불안해하고. 그러니 일을 구하러 다닐 수도 없고 하루 종일 지키고 있어야지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서.”(사례C)

어머니가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는 단계가 돼서야 요양병원에 모실 수 있었는데 그 때까지 8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에게는 두 명의 동생이 있어 어머니 수발 부담을 나누어 질 수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빨리 어머니를 시설에 모시고 경제활동을 하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계속 장남의 입장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평소의 대화를 통해서도 자신을 희생양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중년에 부도를 맞고 재기할 여력도 시간도 모두 어머니에게 쏟으면서 빈곤한 상태로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1.3 해체단계: 가족의 해체, 사회로부터의 고립

가장이 경제적 어려움에 이러저러한 대응을 해가는 동안에 아내들은 경제적 고통과 함께 가장에 대한 실망이 맞물리면서 이혼을 요구하거나 별거에 이르게 된다. 사례 A, D와 F의 경우는 이혼 당시 학령기 자녀들의 양육을 처에게 맡기면서 집과 남은 돈을 전부 가족에게 주고 집을 나오며 사례 E의 경우는 별거를 하게 된다. 보통 여성가구주를 대상으로 한 빈곤화 과정에서 이혼은 중요한 계기가 된다. 가족해체는 여성에게는 빈곤의 원인으로 작용하지만 본 연구 사례인 중고령 남성들에게는 빈곤의 결과가 가족해체로 귀결되며 가족해체는 빈곤을 한 단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도청에 근무하다가 2007년부터 지방근무를 했거든요. 계속 떨어져 사는데 한 번도 내가 있는 데로 안 찾아오더라고요. 집에 와도 아이들 교육 문제로 늘 싸웠지요. 그러다가 돈 사고가 터졌지. 그리고도 주식투자를 한다고 본청 복귀를 안 하고 계속 지방에 근무했습니다. 그러니 집 사람이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이혼하자는 데 몇 년을 버텼죠. 그런데 돈 사정이 더 나빠지니까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사례F)

이들은 이혼을 경제적 실패, 가장역할 실패의 결과로 받아들인다. 또는 이혼결심은 더 이상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나름대로의 책임의식 표현이기도 하다. ‘돈이 없으면 가장노릇을 할 수 없다’는 관념을 갖고 있다. 이들이 이혼을 한 데는 경제적 위기가 큰 작용을 했지만 평소의 부부갈등도 작용했다고 한다.

“내가 목재소 부도내고 재판받을 때 500만원 벌금만 내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는데 그 돈을 안 해주더라고. 재판 받으러 다니느라고 속이 타는데도 집에 들어오면 밥도 안 차려주고. 남남이나 마찬가지였지. 감옥 있을 때 면회를 딱 한 번 왔는데 이혼청구서를 들고 왔대. 그 자리에서 바로 사인하고 갈라섰어. 감옥 나온 뒤 처제나 주변에서 재결합하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재결합을) 꿈에도 생각 안 해.”(사례A)

위의 사례들은 이혼과 함께 자녀들이나 형제들과의 관계도 단절됐다. 여성의 경우 이혼 이후에도 자녀양육의 주체로서 새로운 가정을 형성해가지만 본 연구 참여자들은 가족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 점에 대한 연구 참여자들의 심적인 타격은 예상보다 컸다고 말한다. 이들의 경우는 이혼 이후 삶의 의미를 빼앗기는 상실감을 겪으며 급격히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아이들이 궁금해서 가족관계부를 떼러가도, 본인이 아니면 떼 주지를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어떻게 보게 됐어요. 아들이 둘 있었는데 모두 가정을 이뤘더라고요. 첫째는 아들 딸 낳고, 둘째는 아들만 둘이더라고. 길에서 만나도 이제 얼굴도 기억 못하겠지만.”(사례D)

빈곤촉발단계에서 해체단계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재기를 위해 이런 저런 시도를 하며, 이혼을 할 때만 해도 혼자라면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해체는 이들에게서 재기의 에너지를 앗아가며 빈곤을 결정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그때만 해도 자신이 있었으니까 빈털터리로 집을 나왔지요. 내가 어디 가더라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니까.”(사례F)

“혼자가 되면 어쨌든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더 힘들어지더라고요. 방세도 내야하고 식사도 사 먹어야 하고. 나중에는 돈이 다 떨어지고 노숙을 했지. 한 며칠 하다가 노숙인 쉼터에 들어갔지.” (사례D)

중고령 세대에게는 이혼은 여전히 지우기 힘든 낙인이 된다. 가족부양이란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인식 때문에 자의, 타의로 원가족이나 친지들과의 관계마저 단절된다.

“이혼하고 신용불량자가 되니까 더 이상 사람구실을 못하는 거예요. 가끔 고향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만나면 모두 자식얘기, 가족얘기 하는데 전 할 말이 없더라고요. 얘기가 한참 무르익다가도 친구들이 제 눈치를 보는 거예요. 더 이상 모임에 나가기가 힘들더라고요.” (사례C)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사적 복지 제공의 주체로서 실직이나 질병 등 위기의 순간에 개인을 지탱해주는 안전망 구실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급격한 가족해체는 이러한 안전망을 완전히 제거해 버린 결과가 됐다. 게다가 가족관계의 단절은 친인척, 동료들과의 관계단절로 이어지면서 사적 지지망의 완전한 해체로 이어지고 있다.

최후의 안전망이었던 가족이 사라짐에 따라 개인은 빈곤에 더욱 취약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위기에 처한 남성노인들에게 가족해체 및 사회적 관계 단절은 본인이 딛고 있는 삶의 존재근거를 해체하는 단계에 해당한다.

1.4 절망단계: 자신을 괴롭히기

경제적 위기가 심화되고 가족과 헤어지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는 단계에 접어든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그러한 노력이 계속 실패로 돌아가면서 연구 참여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불가항력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불가항력에 대한 이들의 반응은 자포자기이다. 또 이의 결과로 알코올중독 및 건강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이 시기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절망 단계에 해당한다.

“이혼하고 알코올 중독이 됐지. 식사고 뭐고 술만 마셔대니까 몸도 완전히 망가지고. 몇 년 알코올중독병원에 들어가 있다 나왔어요. 더 이상 나 자신을 제어하기가 힘들더라니까.“ (사례B)

사례A은 실형을 살고 나온 뒤,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실제로 십장을 맡아 하도급공사를 하는 등 재기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공사장에서 사고가 나 인부가 사망하자 더 이상 어떤 노력도 할 수가 없게 됐다. 거듭된 실패로 정신적 타격을 받았고 알코올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면서 건강마저 잃게 됐다.

“잠깐 아는 사람 소개로 공기업에서 수위로 일했어요. 그때도 위암 수술하고 당뇨까지 겹쳐서 건강이 아주 안 좋았거든요. 그러다가 더울 때 쓰러졌지요. 병원에 실려 갔더니 영양실조라고. 그 뒤로는 일하는 것도 포기했어요.” (사례F)

“어머니 모시고 어려운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제 정신이 아니게 됐죠. 술과 담배로 생활하다 보니 건강도 망가지고. 대상포진에 걸려 몇 년 고생했습니다.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고 약으로만 치료했죠. 나중에는 제대로 서 있을 힘도 없더라고요. 동사무소에 가서 서 있을 힘이 없어 앉겠다고 하니까 담당자가 사정을 묻고 수급자 신청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 (사례C)

알코올중독은 사례F와 G를 제외하고는 모든 연구대상자들에게서 나타나는데, 알코올은 절망단계에 이른 이들에게 유일한 위안이자 빈곤을 고착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폐해는 노동력의 완전한 상실, 자기통제와 회복의 기회 상실 등이다. 현행 제도에서 알코올병원에 3개월 이상 입원한 경우는 수급자가 될 수 있는 요건에 해당한다.

1.5 안정화 단계: 적응과 우울 사이, 그래도 미래는 있다

본 연구 참여자 가운데 4명은 기초생활수급자이며 2명은 노령연금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이 빈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수급자의 신분을 얻은 것이 주효했다. 수급자가 된다는 것은 누추하지만 집이 생기며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고 의료보호자의 신분으로 병원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에게는 가족 대신 국가가 보호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가장 큰 걱정은 수급자의 신분에서 탈락하는 것이다. 자영업을 하는 동안 국민연금에 가입해 17년 동안 보험료를 불입한 사례C의 경우 결국 그는 국민연금 수급을 연기함으로써 수급자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내년이면 연금수급연령이 돼서 연금이 나온다고 하네요. 연금이 나오면 수급자 신분에서 떨어지는데, 이게 사실 굉장히 고민입니다. 연금을 포기할 수도 없고 지금 수급자 신분에서 탈락하면 수급비 보다 적은 돈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고민되고요..”(사례C)

수급으로 생활하게 되면서 이들은 ‘빈곤’이 하나의 신분이 됐음을 인정한다.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했던 옛날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과거와의 단절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쪽방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들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아, 현재와 거리를 두고 있다.

과거는 회한과 고통, 불면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현재’의 삶에 대해서는 갑갑함을 느끼며 오히려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이들은 가난한 삶에 대해 ‘선택이 없는 삶’이라고 말한다.

“식사만 해도 그래요. 돈이 있으면 중국요리도 먹고 고기도 먹겠죠. 하지만 무료급식으로 살아야 하니까 나오는 대로 먹습니다. 우리 생활에는 선택이라는 게 없지요.”(사례A)

현재와 거리두기에는 ‘주변 사람들과 담을 쌓고 사는 것’도 포함된다. 연구대상자들의 공통적 특징은 가족 및 동료 등 과거의 인적 연결망을 끊고 지낸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피하기 때문에, 또는 상대방과의 접촉이 현재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에 관계를 단절하고 고립을 원하여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의 정신건강은 매우 나쁜 편이다.

나이가 많고 빈곤생활이 오래된 사례들은 ‘자포자기’라는 입장이 된다.

“재기하기에는 너무 바닥에 왔죠. 어느 정도 가난하면 노력해서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심한 가난은 헤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포기하게 됩니다.”(사례D)

“나이가 일흔을 넘었어요. 정상적인 사람도 이 나이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데 건강도 잃고 가족도 없는데 사는 게 나아질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사례A)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지난 일들을 되새김하고 주변 사람들을 원망해 봐도 궁극적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더군요. 요즘은 우울증 약을 처방해 먹으면서 어떻게든 잊으려고 합니다.”(사례E)

하지만 이들이 매일 우울과 절망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인도 출신의 경제학자 Sen[36]이 ‘희생자들은 끊임없는 역경과 결핍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항상 슬퍼하거나 불평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 것처럼 이들은 빈곤의 밑바닥에서 정착하면서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고 병원을 다니고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게 된다. 때로는 소소한 즐거움들을 얘기한다.

“수급통장에 돈 들어올 때가 제일 즐겁죠. 만두도 사먹고, 고기도 사와서 요리를 하죠.”(사례D),

“가끔 문화카드로 영화 한 편을 보고 와요. 뭘 봤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래도 영화 한편 보고 오면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요.”(사례G)

한편 미래에 대해서는 다들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연령에 따라, 그리고 빈곤에 처한 기간에 따라 조금씩 다른 전망을 갖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빈곤해진 사례 B, F의 경우와 가족과의 교류를 유지하고 있는 E의 경우, 삶의 정상화를 위해 비교적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이를 실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보험료가 많이 밀렸어요. 나이가 들면 병원 갈 일이 많아지는데,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으면 병원을 못 가잖아요. 언제까지나 무료진료를 받을 수는 없어요. 밀린 보험료를 조금씩 납부하고 있습니다. 이제 240만 원 정도 밀렸는데, 계속 갚을 겁니다. (사례E)

“제가 빚이 많았는데 ‘개인파산’ 제도가 있다는 걸 들었어요. 파산신청을 하면 불이익이 많다고 하던데 제가 알아보니까 그렇지 않더라고요, 저 같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제도이죠. 그거 신청하는 데 서류만 30가지가 넘어요. 그걸 대행해주는 변호사가 있다는데 저는 돈이 없으니 발로 뛰면서 서류 만들어서 신청했죠.”(사례F)

“건강이 좋아지고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시골로 가서 빈 집 하나 얻어서 사는 것이 미래 계획입니다. 시골에서는 생활비가 적게 드니까, 어쨌든 살아질 것 같아요. 텃밭에 야채를 기르면 돈도 절약할 수 있겠고요. 봉침 자격증도 땄습니다. 시골에 가서 살려면 시골 어르신들과 잘 지내야 하니까, 봉침으로 봉사하면서, 그렇게 사는 게 희망입니다.”(사례F)

빈곤은 삶의 조건이 됐지만 이들의 삶은 절망을 벗어난 우울 상태, 내일에 대한 작은 준비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자리를 잡는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2. 빈곤 요인

빈곤요인은 매우 다양하지만 크게 사회 구조적 요인과 개인적 요인으로 나누며, 개인적 요인으로 도덕적, 신체적, 가족, 환경, 교육, 문화적 요인 등을, 사회 구조적 요인으로는 시장구조, 경기순환, 자원의 유무 등을 꼽는다. 빈곤은 이러한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면서 구체적 형태를 띠는데 사회 구조적 요인 또는 개인적 요인에 대한 강조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IMF이후 한국 사회에서 심화되는 빈곤위험과 소득불평등에 대해 사회 구조적 요인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크다.

본 연구에서는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개인의 구체적 삶에서 빈곤요인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연구 참여자들은 중년기 이후 빈곤 위험에 처하게 됐으며 이후 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사례들로 교육수준, 빈곤문화, 장애 노동시장에서의 지위 등 기존의 빈곤요인과는 다른 요인들이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연구 참여자들은 자신이 빈곤한 상황에 처하게 된 원인에 대해 ‘운이 나빴다’고 상황을 탓하거나 ‘모두 내 잘못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구 참여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빈곤요인은 외적 요인(운이 나빴다)과 내적 요인(내 잘못)으로 나눠진다. 외적 요인은 IMF로 인해 부도를 맞거나, 빚보증을 서거나 사기를 당하는 것 등 사회구조적 문제와 타인요인으로 다시 나눠지며, 개인의 성향과 선택 등에 해당하는 내적 요인은 통제할 수 있는 요인과 통제 불가한 요인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37].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식투자를 한다든지 사업 확장을 위해 받은 대출을 고리의 사금융으로 전환한 것, 이혼을 하면서 최소한의 살 궁리를 하지 않았던 점, 알코올 중독 등은 선의에 의해서이든, 정보의 제한에 의해서이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빈곤 요인이기 때문에 내적 요인이며 통제할 수 있는 요인으로 보았다.

본 연구에서는 심리적 요인 역시 내적 요인이며 통제 가능 요인으로 분류하였다. 빈곤의 요인으로 자아존중감이나 자아효능감 같은 사회심리적 요인이 지적되기도 한다[38]. 본 연구의 빈곤화 과정 중 악화단계에서도 심리적 요인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주위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에서 강한 자존심과 내성적인 성향 때문에 스스로를 단절시키고 사회복귀의 가능성을 잡지 못하거나, 가족관계의 해체와 이혼이라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사례A의 경우 비교적 형편이 좋은 형제들이 자신에게 방을 구해주고 쪽방에서 나오라고 하지만, 그는 형제들에게 신세를 질 수 없어 수급자로 사는 것이 편하다고 말한다. 신세지기 싫다는 표현은 사례B와 사례C에게서도 나타났다.

또한 개인적 특성으로 발견되는 ‘무모함’과 ‘비현실적 낙관’ 등도 빈곤요인으로 작용했다. 사례 D와 F는 이혼 당시 아내에게 집과 통장 등 남은 재산을 주고 몸만 나왔다. 그들은 “나는 벌어서 먹고 살 수 있어 앞으로의 일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허세 있는 무모함은 연구자가 이들의 생활을 관찰하는 과정에서도 발견될 수 있었는데 쪽방이웃이 권유하는 ‘투자’에 돈을 쉽게 건네는 모습이나 예전 생활에 대한 설명에서 엿볼 수 있었다.

한편 내인이면서도 통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연령’을 들 수 있다. 중년층에 시작된 빈곤의 경로에서 어느 틈엔가 ‘연령’ 요인이 발목을 잡는다. 나이가 들어 건강을 잃거나 이빨이 빠져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경우(사례 A, B, E, F)이다. 사례E의 경우 경비원 일자리에 지원했으나 60대 이후여서 제외됐다.

본 연구 참여자들의 빈곤화 과정에서 빈곤요인들이 작동하는 기제를 살펴보면 사회구조적 요인이든 타인으로 비롯됐든 외적 요인으로 출발하지만 이후 빈곤한 삶으로 귀착되는 데에는 그 사람의 상황에 대한 해석, 인식오류, 대처방법, 성격 등 내적 요인이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V. 결론

빈곤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중년기에 경제적 위기를 겪은 뒤 빈곤으로 떨어진 사례들을 통해 베이비붐 세대가 처하게 될지 모르는 빈곤위험에 대해 유추해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참여자 6명은 공무원이었거나 자영업에 종사하는 등 중년기까지는 경제적으로 중간계층에 속했으나 중년기에 경제적 위기를 경험하고 급격한 계층하락을 경험하였다. 이들은 현재 대전시 노숙인 쉼터와 쪽방 지역에서 극빈층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의 경험은 기존의 계층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생애위기사건의 계기성을 강조한 신빈곤론 관점에서 빈곤 요인과 빈곤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장세훈[39]의 연구에서는 빈곤 경로를 세습형, 정체형, 순환형, 일과성 진입형으로 나누는데, 본 연구 참여자들은 청장년 이후 빈곤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는 정체형에 해당한다.

분석결과, 이들의 빈곤화 과정은 촉발, 악화, 해체, 절망단계를 거쳐 빈곤의 안정화 단계로 접어드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이들은 빈곤의 계기가 되는 사건을 경험했으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기적 주식투자를 하거나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등 문제를 악화시키며 위기의 심화구조를 경험하게 된다. 또 이러한 과정에서 마지막 동아줄이 되어줄 가족과의 관계가 무너짐으로써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받게 된다. 해체 단계에서는 가족 뿐 아니라 친지, 동료 등 사회적 지지가 되어줄 사적 관계 전반으로 관계의 단절이 확산되며 이러한 관계단절은 경제적 곤궁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들은 이후 수급자가 되거나 노숙을 거쳐 쪽방이나 노숙인 쉼터에서 거주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연속적, 일 방향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전 단계로 돌아가기도 하며, 절망단계에서도 친지의 도움으로 재생의 기회를 모색하는 모멘텀이 존재하기도 한다. 따라서 빈곤화 초기 단계에서 적절한 개입은 매우 중요하며, 단계별 효과적 개입을 위해 계속되는 추락을 멈출 수 있음을 유추해보게 된다.

한편, 본 연구에서는 빈곤요인을 외인과 내인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외적 요인은 IMF로 인한 부도 등 사회구조적 요인과 빚보증, 사기 등 타인으로 비롯되는 요인이 있는데, 주로 촉발 및 심화 과정에서 나타났다. 자기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위기에 대해 대처하는 과정에서 위기는 심화되고 빈곤은 확실한 현실로 다가오는데, 이러한 과정에서는 내적 요인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삶의 위기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지만 이를 극복하느냐 굴복하느냐는 개인의 역량과 주위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편 경제적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의 잘못된 선택, 가족 및 사회와의 단절, 알코올 중독 등 내적 요인들이 빈곤화 과정에 일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개인차원에서 빈곤의 위기관리가 새삼 주목된다. 특히 타격이 큰 알코올 중독의 경우, 개인의 문제로 방기하기 보다는 사회의 적극적 관리가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 알코올중독을 경험한 참여자들은 노숙 경험도 가지고 있는데 노숙인 지원 사업에서 중독관리가 좀 더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내적 요인 이외에도 IMF로 인한 부도나 가족 및 사회적 네트워크의 부재 등 외적 요인 또한 중요하게 작용함이 드러났다. 특히 외적 요인으로서 고금리 대출이나 연대책임을 지게 하는 보증제도는 사회 구조적인 면에서 중고령 남성의 빈곤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본 연구의 참여자들이 경험한 빚보증, 연대책임 등의 금융관행은 현재 많이 개선되었지만 고금리 사금융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본 연구에서는 자녀 및 노부모에 대한 책임 역시 중고령 남성의 빈곤 요인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개인적 요인이자 사회적 부양 지지체계의 부재라는 측면에서 외적 요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지금이라도 도움을 청할 자원이 주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이나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관계를 단절하고 빈곤의 고통을 감수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가족적 유대나 친인척, 사회적 지지망이 심각하게 훼손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노년기 소득구조는 자식이나 친지 등 사적부조에 크게 의존함으로써[40] 노인빈곤에 가족과의 동거여부, 가족의 지원여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또 노인가구의 빈곤 경감은 사회보장에 의한 공적소득이전 보다는 사적소득이전에 크게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41][42]. 이러한 측면에서 본 연구의 사례처럼 가족 부재는 경제적 지지망의 부재를 의미하며 절망적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정부의 빈곤대책이 아무리 완전하다고 해도 가족유대, 사적 안전망을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하므로 빈곤대책에 가족유지와 사회적 지지망의 회복도 포함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 연구를 통해 연구자가 가난한 삶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발견이 있다면 ‘답답함’과 ‘지루함’이다. 이는 연구 참여자들이 이야기한 ‘선택이 없는 삶’ ‘과거와의 비교’에서 유래한 부분일 수 있다. 가난은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감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미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빈곤으로 가는 여정이 있다면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정부의 빈곤정책은 대부분 빈곤이라는 현상에 대해 경제적 지원을 하거나 빈곤화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수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주가 되고 있다. 향후 빈곤층의 확산이 예상되는 가운데 본 연구는 빈곤에 대해 예방적 관점에서의 접근을 강조하고자 한다. 특히 빈곤 초기 단계에서의 개입을 통해 이들이 빈곤상황에 고착되지 않도록 지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베이비붐 세대의 빈곤위험을 선행경험을 통해 살펴보고자 했지만, 베이비붐 세대의 인적성이나 경험은 본 연구의 사례들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6명의 사례를 통해 베이비붐 세대의 빈곤화 과정을 일반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향후 연구에서는 저학력, 저소득 계층도 대상자로 포함하여 중고령층의 빈곤 문제가 좀 더 포괄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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