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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Intertextual Approach to Narcissa Benbow in Sanctuary, Sartoris and "There Was a Queen"

나시서 벤보우에 관한 상호텍스트적 연구

  • 신영헌 (한성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
  • 강지현 (한성대학교 교양교육원 조교수)
  • Received : 2019.11.07
  • Accepted : 2019.12.05
  • Published : 2020.02.28

Abstract

Recent studies on William Faulkner's female characters have overcome much of the stereotyped and dichotomous approaches of the past by uncovering their subversive characteristics. Nevertheless, they still present some limitations in regards to analyzing the characters based on individual texts. This paper attempts an inter-textual approach to Narcissa Benbow, the central character of Sanctuary, Sartoris and "There Was a Queen." In Sanctuary, Narcissa, a young widow of a Southern aristocratic family, harshly accuses her brother Horace, a lawyer of taking a murder suspect's wife and her infant child to their old house. She is afraid that their existence could harm the reputation of her family and herself. Eventually, she kicks them out of the house. In contrast, she is described as being friendly and calm in Sartoris. In addition, in "There Was a Queen," Narcissa makes an attempt to get an obscene letter back from an FBI agent in exchange for a sexual favor in order to prevent the letter from being disclosed. This paper takes into account the possibility of seeing these incoherent or even contradictory aspects of her characterization with a consistent view. This confirms that an inter-textual approach is needed to properly understand those round female characters created by Faulkner.

윌리엄 포크너의 여성 인물들에 대한 최근 연구들은 그들이 지닌 전복적 특성을 밝혀냄으로써 과거의 정형화되고 이분법적인 접근을 상당 부분 극복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별 텍스트에 국한해서 인물들을 분석한다는 한계를 보인다. 본 논문은 『성소』와 『사토리스』 및 단편 「여왕이 있었네」의 중심인물인 나시서 벤보우에 대한 상호텍스트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성소』에서 남부 명문가의 젊은 미망인인 나시서는 변호사 오빠 호러스가 살인 피의자의 아내와 젖먹이 아이를 자신들의 고향집에 데려다 놓은 것을 격렬히 비난한다. 창녀이자 살인범의 아내를 고향집에 들임으로써 자신과 가문의 평판이 깎일 것을 염려한 것이다. 결국 그녀는 그 모자를 집에서 내쫓는다. 반면 『사토리스』에서의 친절하고 차분한 나시서의 모습은 이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또한 「여왕이 있었네」에서 나시서는 자신이 과거에 없애버리지 못한 익명의 편지가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성을 대가로 거래를 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변화무쌍한 나시서의 변모를 일관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따져본다. 이를 통해 포크너가 창조한 여성인물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작품에 대한 상호텍스트적 접근이 필요함을 확인한다.

Keywords

I. 서론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의 여성관은 그의 작품 활동 초기부터 평단의 주목을 받아 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그가 그려낸, 강렬한 개성을 지닌 여성 인물들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 인물로는 초기작의 캐디 콤슨(Caddie Compson)이나 애디 번드런(Addie Bundren)을 비롯해 후기에 등장하는 리나 그로브(Lena Grove)와 율라 바너(Eula Varner) 등이 포함된다. 그러다보니 포크너의 여성 인물들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은 포크너의 여성관을 규명하는 데에 집중했으며, 이 중 많은 연구는 정형화되고 이분법적 대립 항으로 이루어졌다고 그윈(Minrose Gwin)은 지적한다[1]. 예컨대, 더글러스(Ellen Douglas)는 포크너를 여성혐오론자라고 보는 반면, 왜그너(Linda Wagner)는 여성해방론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내린다[2].

그윈은 이와 같은 이분법적 접근을 비판하면서, 포크너는 가부장제 구조를 전복시키고 때로 파괴하는 여성 주체를 창조해 낸다고 주장한다[1].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듀발(John N. Duvall) 역시 “여성혐오는 여성을 객체로만 인식한다는 측면에서 여성의 이상화와 마찬가지로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3]이라고 주장한다. 포크너는 성차별주의와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경고와 기소를 행하고 있으며, 남성/여성, 흑/백이 화해불가능의 대립항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체의 양단일 뿐임을 보여준다는 파울러(Doreen Fowler)의 주장 역시 맥락을 같이 한다[4].

이처럼 최근의 연구들은 기존의 이분법적 연구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저자나 작품이 지닌 전복적 특성을 밝혀내는데 있어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크게 보아 인물들에 대한 공시적인 연구에 머문다는 한계를 보인다. 즉, 개별 작품에 나타나는 모습에 국한해서 인물들을 평가한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럴 경우 포크너가 공들여 묘사한 인물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 채, 평면적인 평가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 포크너는 주요 여성 인물들을 여러 작품에 재등장시키며, 많은 경우 인물들의 모습은 작품마다 상당히 다르게 그려진다. 따라서 포크너가 공들여 창조해 낸 인물들의 변화를 긴 호흡으로 따라가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하 본론에서는 초기작인『성소』(Sanctuary)와 『사토리스』(Sartoris) 및 단편 「여왕이 있었네」(“There Was aQueen” 이하 「여왕」으로 표기)의 중심인물인 나시서 벤보우(Narcissa Benbow)의 모습을 상호텍스트적으로 비교해 봄으로써 그녀의 변화 내지는 성장 여부를 살펴보고자 한다.

II. 본론

블라트너(Joseph Blotner)는 포크너의 여성 인물을 여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 바 있다[2].1 그러나 개별 텍스트에 묘사된 모습에 그치지 않고 이를 확대해서 상호텍스트적으로 살펴볼 경우 이 중 어느 하나의 유형에도 속하지 않거나, 두 가지 이상의 유형에 걸쳐 있는 여성 인물들이 있다. 나시서 벤보우가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나시서는 『성소』에서 템플(Temple Drake)과 함께 또 다른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는 호러스 벤보우(Horace Benbow)의 여동생이다. 호러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성소』의 플롯을 이끌어 가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인물이다. 『성소』에서 나시서는 남부 명문가 자제인 베이어드 사토리스(Young BayardSartoris)의 미망인으로 외아들이자 유복자 보리(Bory, or Benbow Sartoris)를 키우면서 제니 고모(Aunt Jenny)와 함께 사토리스 가를 꾸려가고 있다.

사실 『성소』는 템플의 강간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와 살인죄 누명을 쓴 굿윈(Lee Goodwin)을 변호하는 호러스의 이야기가 교대로 서술되는 대위법적인 구도를 가진 소설이다. 표면적으로 나시서는 호러스의 이야기에 주로 등장하지만, 나중에 호러스가 굿윈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굿윈의 아내 루비(Ruby Lamar)의 거취 문제로 호러스와 맞서면서 템플 사건과 연결된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나시서는 이보다 훨씬 직접적인 의미에서 템플 사건의 관련 당사자이다. 작중 시간으로 5월 8일 가원(Gowan Stevens)은 교제 중이던 나시서를 방문하지만 그녀와 다툰 후 금방 자리를 뜬다. 그리고 그날 밤 가원은 템플과 무도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네 청년들과 만나 폭음을 한다. 아놀드(E. T.Arnold)는 템플 문제로 가원과 나시서가 다툼을 벌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5]. 그렇다면 가원이 동네 청년들과의 음주 시합에서 기를 쓰고 이기려고 한 이유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나시서에게 무시당한 자신의 남성다움을 입증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템플이 겪은 끔찍한 고통에 대한 최초의 원인 제공자가 바로 나시서라는 주장도 충분히 가능하다. 굿윈의 변호사인 호러스는 남편인 굿윈의 수감 이후 오갈 데가 없어진 루비(Ruby Lamar) 모자를 비어 있는 자신들의 고향집에 데려다 놓는다[6]. 자신을 찾아온 오빠에게 나시서는 다음과 같이 퍼붓는다.

“오빤 간섭하는 것일 뿐이야.” 그의 누이가 평온한 얼굴과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가 다른 남자의 아내와 아이를 그에게서 빼앗아 갔을 때, 난 그게 끔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적어도 여기로 다시 돌아올 낯짝은 없을 거라고 말했어. 오빠가 검둥이처럼 그 집에서 나와 그 여자를 떠났을 때 난 그것도 끔찍하다고 생각했지만 오빠가 그 여자를 영원히 떠날 의도는 아닐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오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여기를 떠나서는 온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 고향집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 집을 청소하고 부랑자처럼 거기서 살겠다고 고집했지. 누구나 오빠가 기거하게 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오빠가 그러지 않으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데도 말이야. 그런데 이제 오빠 입으로 창녀이자 살인범의 여자라고 말한 여인과 일부러 어울리겠다는 거야?”

“You’re just meddling!” his sister said, her serene face, her voice, furious. “When you took another man’s wife and child away from him I thought it was dreadful, but I said At least he will not have the face to ever come back here again. And when you just walked out of the house like a nigger and left her I thought that was dreadful too, but I would not let myself believe you meant to leave her for good. And then when you insisted without any reason at all on leaving here and opening the house, scrubbing it yourself and all the town looking on and living there like a tramp, refusing to stay here where everybody would expect you to stay and think it funny when you wouldn’t; and now to deliberately mix yourself up with a woman you said yourself was a street-walker, a murderer’s woman.” (93)

여기서 나시서는 오빠가 유부녀인 벨 미첼(Belle Mitchell)과 사랑에 빠져서 그녀와 그녀의 딸 리틀 벨(Little Belle)과 같이 사는 것을 비난하면서, 위 행동도 사람들의 비난거리인데 하물며 창녀 출신이자 살인자의 아내와 얽히려고 하느냐고 힐난한다. 대화 도중에 호러스가 루비 모자를 자신들의 고향집에 들인 것을 알게 된 나시서는 “창녀이자 살인범의 여자를 내가 태어난 집에 데려오다니!”(94)라고 반발한다. 나시서는 “이들이 오빠의 사람들은 아니잖아? 그런데 왜 이런 일들을 해야 돼?”(94)라고 분노한다. 이에 대해 호러스는 “자신이 누이한테 기대한 것이라곤 서른 여섯 해나 그녀가 지녀온 둔감함 바로 그것뿐이었다”(95)고 생각한다. 즉, 평소에 나시서가 보여주던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이번에도 그대로 보여줄 것을 기대했다는 뜻이다. 애초에 호러스는 나시서에게 이해나 공감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시서의 강력한 반발 앞에서 결국 호러스는 고향 집으로 돌아가서 루비 모자를 설득해서 호텔로 거처를 옮기게 만든다(97). 그러나 자신이 외출한 틈에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서 루비 모자를 호텔에서 내쫓은 것을 알게 된 호러스는 다시 한번 모자를 자신들의 고향집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나시서에게 선언한다(141). 그러자 나시서는 부모님까지 들먹이면서 결사반대한다.

“이 곳은 내가 여생을 보내야 하는 내 집이라는 걸 모르겠어? 난 오빠가 어느 딴 곳에 가든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어. 여자가 몇이 있든 어떤 여자든 내가 아랑곳할 일은 아니야. 그렇지만 난 오빠가 사람들이 수군대는 여자랑 어울리게 놔둘 순 없어. 오빠가 내 입장을 고려해 달라는 말이 아니야. 다만 우리의 부모님을 좀 생각해 달라는 것뿐이야. 그 여자를 멤피스로 데리고 가. 사람들 말로는 오빠도 그 남자가 보석금을 내고 감옥에서 나오는 걸 거부했다며? 그러니 그 여자를 멤피스로 데리고 가 버려. 그 일에 대해서는 그 남자한테 거짓말을 할 수 있잖아.”

“Dont you see, this is my home, where I must spend the rest of my life. Where I was born. I dont care where else you go nor what you do. I dont care how many women you have nor who they are. But I cannot have my brother mixed up with a woman people are talking about. I dont expect you to have consideration for me; I ask you to have consideration for our father and mother. Take her to Memphis. They say you refused to let the man have bond to get out of jail; take her on to Memphis. You can think of a lie to tell him about that, too.” (144)

나시서에게는 죽어가는 아이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면서 치료는커녕 자기 한 몸도 제대로 건사하기 어려운 루비의 딱한 형편에 대한 공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사람들의 입소문에 오르내리는 오빠로 인해 자기와 가문의 평판이 깎일 것에 대한 걱정뿐이다. 이에 대해 이진준은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인간의 모습일 뿐”[7]이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이런 나시서의 반응은「저 저녁 해」(“That Evening Sun”)에서 남편에게 살해당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힌 낸시(Nancy)가 콤슨가에서 하룻밤을 신세질 수 있는지 물어보았을 때, “나는 흑인을 내 침실에서 자게 할 수 없어”라고 거절하는 콤슨 부인(Caroline Bascomb Compson)의 반응과 정확히 겹친다[8]. 이는 나시서의 반응이 개인으로서의 몰인정을 넘어서 당시 남부 숙녀의 평균적 의식과 태도를 보여주는 전형성을 띤 반응임을 알려 준다.

게다가, 나시서는 자신의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실에 대한 왜곡도 마다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감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시서는 제퍼슨의 고향 집이 자기가 여생을 보낼 자기 집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녀는 사토리스 가의 미망인으로 아들을 키우면서 지금까지 사토리스 가에서 살아왔으며,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루비를 쫓아내기 위한 구실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녀는 자신이 거주할 의사도 필요도 없는 집에 대한 독점적 소유권을 강변한다. 물론 그 집의 절반은 나시서의 소유이겠으나 나머지 절반의 소유권은 엄연히 호러스에게 있다. 자신의 옹색한 논리를 보완하기 위해 나시서는 돌아가신 부모님까지 끌어들인다. 결국 나시서는 도움을 구해 찾아든 루비 모자를 매몰차게 쫓아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나시서는 남부 상류 계급이 보여주는 “도덕성의 약화”[9]를 대변한다는 볼프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나시서는 위험에 빠진 템플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던 루비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템플이라는 이름은 성소, 즉 예배처소를 의미하며, 작품의 제목과 동의어라는 점에서 대단히 상징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성소는 “안전한 피난처”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성소』는 피난처를 찾는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밀주범들의 소굴인 올드 프렌치먼 플레이스(Old Frenchman Place)에 던져진 템플은 낯선 남자들의 음흉한 눈초리와 곧 닥칠지 모르는 끔찍한 폭력의 위협으로부터의 피난처를 찾아서 쉴 새 없이 움직인다. 템플은 올드 프렌치먼 플레이스의 유일한 여성인 루비에게 도움을 청한다. 템플을 경멸하고 적대시하면서도 어쨌든 루비는 템플에게 피난처를 제공한다. 루비는 템플을 헛간으로 데리고 간다. 그곳은 남자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당장이라도 폭력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거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공간이다. 물론 루비가 제공한 헛간 역시 진정한 피난처는 아니었으며, 또한 자신의 남편의 음흉한 계획을 막기 위한 조치이긴 하지만, 그래도 루비가 그녀로서는 최상의 피난처를 템플에게 제공했다는 점은 높이 사줄 만하다. 이런 의미에서 루비야말로 “『성역』에서 도덕적으로 가장 건강한 인물”[7]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나시서는 루비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나시서는 피난처를 찾아서 자기의 고향 집―실질적인 의미에서 나시서 자신에게 전혀 필요도 없는―에 온 루비 모자를 일말의 주저함 없이 냉혹하게 쫓아낸다. 이런 모습을 볼 때, 그녀는 “이름이 상징하듯 나르시스적인 성격을 지녀서 세계를 완벽하게 자기의 의지에 따라 조종하려고 한다”[7]는 이진준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2 박선부는 나시서가 교만이라는 성격적 결함을 지니고 있으며, 허위행동과 허위의식을 지닌 인물로서 비윤리적 행동양식을 보인다고 비판한다[10].

그런데 『성소』보다 2년 전에 출간되었으며, 작중 배경으로 보면 십여 년 전의 이야기를 다루는 『사토리스』에 묘사된 나시서의 모습은 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사토리스』의 주인공인 영 베이어드(Young Bayard Sartoris)는 1차 대전에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함께 참전한 쌍둥이 형제 존(John Sartoris)이 적과의 공중전 중에 전사하는 모습을 목격한 후,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베이어드는 자신의 외상적 기억을 잊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기 위해 베이어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폭음을 하거나 광적인 스피드로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것뿐이다. 그러다가 그는 결국 전복 사고를 일으켜 병상에 눕게 된다. 이것은 외상 환자들이 자주 보이는 자기 학대요 자기 처벌 행위이다. 그러나 베이어드에게 이런 정도의 처벌로 자신의 죄의식을 떨쳐 버릴 순 없다. 이는 사고 직후 병원으로 실려 가는 순간 묘사되는 그의 의식에서 분명히 나타난다[11].

숨을 쉴 때마다 그의 옆구리는 뜨거운 바늘로 쑤시는 듯했다. 그래서 그는 조심스럽게 얕은 숨을 내쉬었다. . . . 하지만 이것은,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지 몇 곳의 움푹 팬 열상일 뿐이다. 십 분 안에 가느다란 피아노 강선으로 비행기의 동체를 대충 수선하다니! 조니와는 다르다. 그놈들은 모두 존의 넓적다리 쪽으로 몰려들었다. 그 도살자 놈은 시선을 들어 올리지도 않았다.

At every breath his side stabbed him with hot needles, so he was careful to breathe shallowly. . . . And this, this wasn't anything: just a few caved slats. Patch up his fuselage with a little piano wire in ten minutes. Not like Johnny. They were all going right into his thighs. Damn butcher wouldn't even raise his sights. (인용자 강조 189)

자동차를 탄 채로 시냇물 속에 처박히는 과정에서 입은 갈비뼈 골절과, 찢긴 상처투성이로 엉망이 된 몰골로 집으로 실려 가는 영 베이어드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정서는, 자신의 고통은 존의 죽음과 비교해서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는 자기 학대의 감정이다. 이 시기에 베이어드를 돌봐 준 이가 바로 나시서이다. 그녀는 전쟁에서 돌아왔으나 여전히 외상적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베이어드를 찾아와서 그와 시간을 보낸다. 특히 자동차 사고 이후 베이어드가 집에서 요양하는 동안 그녀는 거의 매일 베이어드를 찾아와서 책을 읽어준다. 『사토리스』에서 나시서를 수식하는 전형적인 표현은 ‘흰 옷을 입은’, ‘근엄한’ 등의 형용사이다[11].

제니는 계단에 서 있었는데, 그곳에 나시서 벤 보우가 합류하면서,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근엄하고 고요한 휴식의 기운을 마치 냄새처럼 몰고 왔다. . . . 나시서 벤보우는 잿빛 옷을 입었으며, 그녀의 눈동자는 보랏빛이었고, 그녀의 얼굴에는 백합의 고요한 안식이 깃들어 있었다.

She stood at the steps, where NarcissaBenbow joined her, bringing with her like an odor that aura of grave and serene repose in which she dwelt. . . .Narcissa Benbow wore gray, and hereyes were violet, and in her face was that tranquil repose of lilies. (49)

여기서 나시서를 대변하는 ‘흰 옷’과 ‘안식’은 그녀의 청순과 순결 및 침착성과 자기 절제의 미덕을 상징하며, 이것이야말로 아무 것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방황하는 베이어드를 붙잡아 줄 수 있는 덕목들이다. 결국 나시서는 짧은 연애 끝에 베이어드와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 이후에도 베이어드는 죄책감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한 채 해외를 방황하다가 끝내는 실험 중인 비행기를 몰고 시험 비행을 하던 도중에 사고로 즉사한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그의 아들 보리가 태어난다(307).

이처럼 『사토리스』에 그려진 나시서의 모습은 『성소』의 나시서와 상당히 이질적이다. 그녀는 피난처를 찾아다니던 영 베이어드를 찾아가서 그가 평온을 되찾을 수 있는 안식을 제공해 주는 여성이다. 나시서는 외상 환자인 베이어드에게 현실로 돌아올 용기를 심어준다. 이는 그들이 결혼에 이른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물론 베이어드의 외상이 완전히 치유된 것은 아니며, 그 결과 그들의 결혼 생활 역시 비극으로 끝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시서가 보여준 헌신이 평가절하 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사토리스』에서 이렇게 헌신적이던 나시서가 『성소』에서 냉혹하고 이기적인 여성으로 변모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포크너는 “어떤 인물도 전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것은 아니”[12]라고 대답한 바 있다. 즉, 『성소』에서는 나시서의 부정적인 측면이 많이 드러난 반면, 『사토리스』에서는 그녀가 가진 긍정적 측면이 부각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전자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이 두드러지는 반면, 후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더 부각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전자가 후자보다 십 여 년 뒤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 착안해 본다면, 합리적인 설명은 이 기간의 세월 동안 나시서의 성격이 변모했다는 가설이 가능하다. 남편이 자살에 가까운 사고사로 죽고 나서 홀로 아들을 키우면서 타인에 대한 나시서의 배려심과 포용력이 점점 소진되어 갔을 것이다. 또한 명예와 평판이 중요한 남부 명문가의 귀부인인 나시서로서는 남편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남편 일만으로도 이미 이웃들의 지나친 관심의 대상이 된 나시서로서는 여기에 더해 친오빠까지 이웃들의 가십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성소』에서 나시서는 매몰차게 루비를 내쫓는다. 『성소』에서 나시서의 관심은 시종일관 가문의 평판이며, 오빠가 이웃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에 향해 있다.

이와는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남부 명문가의 자제인영 베이어드에게 나시서가 보여준 호의와 배려는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며, 이를 밀주범이자 살인범의 동거녀에게까지 보여주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토리스』의 나시서와 『성소』의 나시서 간의 거리가 생각만큼 멀지 않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편 뷰캐넌(Ron Buchanan)은 나시서의 변화의 원인을 여성성과 성욕의 재발견에서 찾는다[13]. 뷰캐넌에 따르면, 나시서의 성욕을 일깨운 두 개의 대표적인 계기는 바이런 스놉스(Byron Snopes)가 보낸 외설적인 연애 편지와 영 베이어드와의 결혼이다. 뷰캐넌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읜 후, 마치 엄마처럼 오빠를 돌봐 온 나시서가 『사토리스』에 오면 젊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성욕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고 본다[13]. 그 결과 나시서는 매력적인 젊은 여성으로서 여러 긍정적 면모를 드러내지만, 남편의 죽음과 더불어 의지적으로 자신의 성욕을 억압하게 되면서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바로 이 점이 그녀의 변화를 이해하는 열쇠라는 것이다[13]. 이러한 뷰캐넌의 설명은 나시서의 변화무쌍한 모습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러한 나시서의 변화는 『성소』에서 끝나지 않고, 「여왕」까지 이어진다. 사실 이 단편에는 명시적으로 연도가 언급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서두에 나오는 다음의 묘사를 참조해 보면, 『성소』와 거의 유사한 시간적 배경을 지님을 알 수 있다[14].

그래서 그 집에는 화단 위 창문가에 놓인 휠체어에서 살다시피 하던 구십 세 노파인 존 사토리스의 여동생 버지니아와 영 베이어드의 미망인인 나시서와 그녀의 아들만 남게 되었다.

So there were left in the house only the first John Sartoris’s sister, Virginia, who was ninety years old and who lived in awheel chair beside a window above the flower garden, and Narcissa, youngBayard’s widow, and her son. (“There Wasa Queen”727)

이를 『성소』와 비교해 보면 아래와 같다.

다음날 오후 벤보우는 누이의 집에 갔다. 그 집은 누이의 남편 집안 사람들의 고향인 제퍼슨에서 4마일 떨어진 시골에 위치해 있었다. 누이는 열 살 된 아들을 둔 과부였으며, 큰 집에서 아들과 남편의 대고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대고모는 미스 제니로 알려진 구십 세 노파였으며, 휠체어에서 살다시피 했다.

On the next afternoon Benbow was at his sister’s home. It was in the country, four miles from Jefferson; the home of her husband’s people. She was a widow, with a boy ten years old, living in a big house with her son and the great aunt of her husband: a woman of ninety, who lived in a wheel chair, who was known as Miss Jenny. (17)

이처럼 두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상호텍스트성을 염두에 두면서 두 작품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두 작품은 1929년 같은 해에 벌어진 사건을 묘사하고 있지만 선후 관계는 존재한다. 『성소』에서 템플 사건이 벌어진 것은 오월 중순 경인 반면 「여왕」의 시간적 배경은 유월이며 이는 제니의 말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13].3 『성소』에서 템플 사건이 벌어지고 오빠가 데려온 루비 모자를 나시서가 매몰차게 내쫓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서 「여왕」의 중심 사건이 발생한다.

「여왕」은 내용상 『사토리스』와 긴밀하게 얽혀 있다. 십 삼년 전 처녀 시절의 나시서는 익명의 남자에게서 외설적인 연애편지를 여러 통 받은 적이 있다. 뷰캐넌은 이 편지들이 그때까지 나시서가 억압해 왔던 여성성과 성욕을 의식하게 만들었다고 해석한다[13]. 당시 나시서는 미스 제니와 이 문제를 상의하였으며, 당장 올드 베이어드에게 이를 밝히고 범인을 색출해서 처벌하라는 제니의 충고를 무시하고 대신 그 편지를 태워 없애 버린 후 사건을 조용히 덮겠다고 고집한다[14]. 그러나 나시서는 편지를 태우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가 몇 년 후 베이어드와의 결혼식 전날 밤에 도둑이 들어 편지를 도난당한다. 같은 날 밤에 벌어진 사토리스 은행 절도사건으로 인해서 바이런 스놉스라는 예금계원이 그 연애편지를 보낸 장본인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때 도난당했던 외설적인 연애편지들이 십 삼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바이런 스놉스가 저지른 범죄를 수사하던 FBI 수사관이 우연찮게 이 편지들을 입수하게 되고, 그는 편지를 빌미로 나시서를 협박한다. 십 수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그 편지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될 것을 생각하니 거의 미칠 지경이었노라고 나시서는 제니에게 토로한다[14].

“그렇게 해서 그 편지들은 세상에 나가게 된 거에요. 어딘가에 있었던 거죠. 한동안 난 미칠 지경이었어요. 난 사람들이, 남자들이 그 편지들을 읽으면서 편지에 쓰인 내 이름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읽고 또 읽던 내 시선의 흔적들을 보게 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어요. 미칠 노릇이었어요. 베이어드와의 신혼여행 중에도 난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난 그이만을 생각할 수 없었어요. 마치 내가 동시에 온 세상 남자들과 동침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So they were out in the world. They were somewhere. I was crazy for a while. I thought of people, men, reading them, seeing not only my name on them, but the marks of my eyes where I had read them again and again. I was wild. When Bayard and I were on our honeymoon, I was wild. I couldn’t even think about him alone. It was like I was having to sleep with all the men in the world at the same time.” (739-740)

나시서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그 편지를 되찾으려한 이유는 자신이 익명의 남자에게서 받은 외설적인 편지를 버리거나 태우지 않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가문의 수치가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나시서가 ‘동시에 온 세상 남자들과 동침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는 것은 『성소』에서 자신이 비난했던 루비의 처지에 자신이 빠졌음을 의미한다. 결국 나시서는 수사관에게 몸을 허락하는 대가로 그 편지들을 되찾아 온다. 나시서는 자신의 선택을 다음과 같이 변호한다[14].

“난 그렇게 해야만 했어요. 그 편지들은 내거였어요. 내가 되찾아 와야 했어요. 그게 내가 되찾아 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하지만 난 그 이상의 일도 했을 거예요. 그래서 그것들을 찾아 왔어요. 이제 그것들은 다 태워버렸어요. 이제 아무도 그것들을 보지 못할 거예요. 아시다시피, 그 사람도 말할 수 없을 거예요. 그 편지들이 존재했다는 걸 말하면 그 사람도 파멸하게 될 거예요. 아마 교도소에 갇히게 되겠지요. 이제 그 편지들은 다 태워버렸어요.”

“I had to do it. They were mine; I had to get them back. That was the only way I could do it. But I would have done more than that. So I got them. And now they are burned up. Nobody will ever see them. Because he can’t tell, you see. It would ruin him to ever tell that they even existed. They might even put him in the penitentiary. And now they are burned up.” (741)

여기서 나시서가 성 상납을 대가로 편지를 되찾아 오는 것은 루비가 변호사에게 성 상납을 해서 굿윈을 감옥에서 빼낸 사실과 병치된다.4 이틀간의 멤피스 여행에서 급작스럽게 돌아온 나시서는 아들 보리를 데리고 개울로 가서 온종일 물속에 몸을 담근 채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온다(737).

제니에게 말해 준 것은 그 소년이었다. 그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방에 들어왔다. 소년의 머리는 깔끔해서 빗질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축축했다. 제니는 소년이 들어와 자기 의자로 오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린 개울에 있었어요. 하지만 수영을 하진 않았어요. 그냥 물속에 앉아 있었어요. 엄마는 내가 수영할만한 깊은 데를 보여 주길 원했어요. 하지만 우린 수영은 안 했어요. 엄마가 수영을 할 수 있는 것 같진 않아요. 우린 그냥 옷을 입은 채로 물속에 앉아 있었어요. 저녁 내내. 엄마가 그렇게 하고 싶어 했어요.

It was the boy who told her. He came into the room in fresh clothes, his hair still damp, though neatly combed now. She said no word as he entered and came to her chair. “We been in the creek,” he said. “Not swimming, though. Just sitting in the water. She wanted me to show her the swimming hole. But we didn’t swim. I don’t reckon she can. We just sat in the water with our clothes on. All evening. She wanted to do it.” (737)

나시서가 개울 속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던 것은 편지를 되찾는 과정에서 더렵혀진 자신의 몸을 흐르는 물로 정화하고 싶은 바람의 표현이다. 기독교적 전통에 따르면 이는 세례 의식을 상징하며, 세례는 옛 자아의 죽음과 새로운 자아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시서의 바람대로 그녀가 새로운 자아로 거듭났다든가, 앞으로 새로운 자아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어떤 보증도 작품은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성소』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슴지 않고 루비를 창녀라고 불렀던 나시서가, 자신이 비난했던 바로 그 궁핍한 처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에서, 향후 변화된 그녀의 삶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제야 나시서는 자신의 이름에 어울리는 진정한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이런 변화의 가능성이 있기에 포크너는 2008년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인간은 영혼, 즉 연민하고 희생하고 인내할 수 있는 정신을 가졌기에 불멸의 존재”라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III. 결론

지금까지 포크너의 여성인물들에 주목한 연구들은 많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비평적 관심은 저자의 여성관을 입증하는데 기울여져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여성 인물들을 독립적 주체로 인정하고 그들의 성취와 한계를 규명하기보다는 이들을 통하여 포크너가 여성 전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견해를 밝히는데 연구의 초점이 맞춰져 온 게 사실이다.

물론 이와 같은 일반적인 비평적 경향과 달리 개별 여성 주인공들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연구들은 개별 작품에 그려진 여성 인물들의 행위를 규명하는데 집중한 결과 그 인물들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성장하거나 퇴보하는 점을 입체적으로 규명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포크너는 여성 인물들의 변화된 모습을 여러 다른 작품들에서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응당 독자나 비평가는 이러한 변화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성장 혹은 퇴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본문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나시서를 포함해 포크너의 주요 여성 인물은 작품에 따라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나시서는 남부 백인 여성, 즉 숙녀가 갖춰야 할 규범을 우선시하여 도움이 필요한 여성을 외면하지만, 자신의 명예를 위협하는 일이 닥치면 숙녀가 지켜야 할 규범을 스스로 위반한다. 이런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면모 때문에 나시서는 두 편의 『성소』관련 영화에서 철저히 배제된다.5 『사토리스』에서 전쟁의 외상으로 인해 고통받는 영 베이어드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던 사려 깊은 남부 여성 나시서 벤보우는 십년 후 『성소』에서는 의지할 데 없는 루비 모자를 매몰차게 내쫓는 냉혈한이 되어 있다. 그러나 「여왕」에서는 자신이 비난했던 루비의 처지에 처한 자신을 발견한다. 나시서가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는 장면이 새로운 자아의 발견으로 이어질 지를 상상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 본 연구는 한성대학교 교내 학술연구비 지원과제임.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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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J. Blotner, "William Faulkner: Life and Art," Faulkner and Women: Faulkner and Yoknapatawpha , 1985, Edited by Doreen Fowler and Ann J. Abadie. Jackson: UP of Mississippi, 1986.
  3. J. N. Duvall, "Faulkner's Critics and Women: The Voice of the Community," Faulkner and Women: Faulkner and Yoknapatawpha, 1985, Edited by Doreen Fowler and Ann J. Abadie. Jackson: UP of Mississippi,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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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박선부, "반복미학의 소설시학적 가능성을 향하여: 복수담화와 주제의 반복, 그리고 자아의 반복(분신과 그림자)을 통해본 Sanctuary 의 의미," 인문논총, 제24권, pp.53-95,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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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W. Faulkner, "There Was a Queen," Collected Stories, New York: Random House, 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