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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Pinson Hall, Yonsei University, focused on Usage as University Dormitory from 1922 to 1944

연세대학교 핀슨홀(Pinson Hall)의 건축적 특징 -1922년~1944년 기숙사로의 사용을 중심으로-

  • 김기주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
  • 이연경 (인천대학교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 Received : 2019.04.15
  • Accepted : 2019.06.17
  • Published : 2019.06.30

Abstract

Pinson Hall is a dormitory building of Chosen Christian College, built in 1922, and it still remains comparatively well preserved as original form. This building is worthy in that it shows the living space of western style college in Korea, as well as characteristics of collegiate gothic style and building technology, designed by western architect in 1920s. At first, based on literate review and field survey, this study aims to trace the construction background and process of Pinson Hall, and find out its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with the original form when it is used as dormitory. Additionally, it deals with historic meaning and value of Pinson Hall as a modern western style college dormitory, through comparison with other dormitories in the same era. In conclusion, Pinson Hall is a Western style dormitory which allows students to accustom themselves to Western life style, using bed and desk, as well as it shows the new building technology in the early 1920s which has mixture of masonry and reinforced concrete structure.

Keywords

1. 서론

연세대학교 핀슨홀(Pinson Hall)은 1922년 연희전문 기숙사로 건축된 석조 2층 건물로, 연세대학교 법인사무처로 사용하다 현재는 윤동주기념관으로 전용(轉用)을 준비 중이다. 이 건물은 현존하는 연희전문 시절의 건축물 중 스팀슨관(Stimson Hall)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건물1)로 내부공간의 일부 변형이 있으나 기숙사로 건축될 당시의 모습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어 1920년대 서양 건축가에 의하여 건축된 대학고딕2) 양식과 건축기술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핀슨홀은 일제강점기 기독교 사립전문학교에 지어진 기숙사로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 캠퍼스의 생활공간을 알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그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세대학교의 중심영역에서 벗어나 있고 법인사무처로 사용되고 있던 까닭에 그동안 문화재로 지정된 주요 건축물들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다양한 종류의 문헌과 실측조사를 바탕으로 연희전문학교의 기숙사로 사용할 당시 핀슨홀의 건축적 특징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우선 연희전문학교 신촌캠퍼스의 조성 및 배치계획과 연계하여 당시의 건축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핀슨홀의 건립목적과 배경을 구명하고, 문헌 및 현장조사를 통해 핀슨홀의 원형을 복원하고 건축적 특징을 밝히고자 하였다. 더불어 동시기에 지어진 연희전문학교의 교사(校舍) 건축물들과 국내외 다른 학교 기숙사들과의 비교를 통해 기숙사로서 핀슨홀이 가지고 있던 특징을 찾고자 하였다.

2. 연희전문학교 신촌캠퍼스와 핀슨홀

2-1. 연희전문 캠퍼스 마스터플랜

연희전문학교는 1915년 (전문학교규칙) 및 (개정사립학교규칙)의 공포에 따라 1917년 설립 인가를 받은 사립전문학교였다. 1915년 종로2가 조선중앙기독교 청년회관(YMCA) 내에서 조선기독대학(Chosen Christian College)이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연희전문학교는 1917년 4월 전문학교로 정식인가3)를 받은 이후 현재의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동 134번지로 이전하였다.4)

연희전문학교의 캠퍼스마스터플랜은 1917년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중국과 일본 등에서 캠퍼스 계획을 다수 수행한 머피 앤 다나 건축사무소(Murphy & Dana Architects)에 설계를 의뢰하여 완성되었다. 1917년 12월 27일 작성된 초기 마스터플랜은 남북으로 뻗은 백양로를 중심으로 백양로의 북쪽으로 학교의 중심 영역인 교사(校舍)와 교회, 기숙사, 강당 등을 배치하고, 남쪽으로는 백양로 서측에 운동시설들과 일본인과 한국인 교사들의 주택, 백양로 동측에 수경원 및 교수 사택들을 배치하였다. ((그림 1))

그림 1. 1917년 캠퍼스 마스터플랜 및 중심영역 건물 배치 (원안의 기숙사 영역 - 8번 4개 동과 증축예정 9번 4개 동)

1917년의 마스터플랜에서 기숙사는 중앙 교사군의 북측에 남북으로 긴 장방향의 4개 동(棟)으로 계획되고 각 건물의 뒤편으로 장래 증축할 4개 동이 계획되어 있으며, 이들 기숙사 북쪽 중앙에 큰 식당 건물을 배치하였다. 이러한 중심영역 건물의 배치형식은 머피가 연희전문학교에 앞서 설계한 평지에 입지한 일본의 릿교(入敎)대학의 마스터플랜 배치와 유사한 것으로 경사지에 입지한 지형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지 않았다.

연희전문 캠퍼스의 설계자인 헨리 킬리암 머피(Henry Killiam Murphy)는 1918년 5월 연희전문을 방문하였고, 숲속에 위치한 연희전문의 경사진 지형을 고려하여 대칭적이면서도 픽처레스크한 긴 조망축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5)

1925년의 배치도((그림2, 3))는 변경된 계획을 보여주는 도면으로, 의 중심영역 교사군 뒤편에 자리 잡고 있었던 식당(I)과 기숙사 건물(J)을 서쪽으로 옮겨 식당을 중심으로 4동의 기숙사 건물과 1동의 클럽하우스(L)를 환상형으로 배치하였다. 그리고 이들 중 1922년 가장 먼저 건축된 핀슨홀은 향후 클럽하우스로 전용(轉用)하여 사용할 계획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기존의 기숙사 영역에는 용도를 정하지 않은 건물 4동을 배치하였는데, 기능적으로 중심영역을 교육공간으로 구분하고 향후 교육 관련공간의 확장을 고려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1925년의 배치도는 1920년대 이후 건축된 스팀슨관, 아펜젤러관, 언더우드관, 핀슨홀 및 일부 교수 사택 등의 실제 건물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안산 자락의 두 갈래 능선으로 둘러싸인 캠퍼스를 북쪽의 중심영역에 교육공간을, 그 주변부로 학생기숙사와 교수사택으로 된 생활공간을 배치하고, 남쪽의 진입공간에 운동공간과 기타 보조공간을 배치한 개념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2. 1925년 연희전문학교 배치도

그림 3. 1925년 연희전문 배치도 상세 (점선안 기숙사영역)

그러나 1936년의 배치도((그림4))를 살펴보면 핀슨홀은 여전히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으며, 북측에는 식당이 계획되어 있어 핀슨홀을 클럽하우스로 전용하고 4개의 기숙사동을 신축하고자 했던 계획은 실제로는 시행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도서관과 대강당, 체육관 등은 미완성 상태이기는 하지만 백양로를 중심으로 북측 중앙부는 교사(校舍)군으로, 서측 숲은 기숙사와 식당으로 이루어진 생활공간으로 영역별 배치가 나타나는 것은 1925년 배치도에서와 동일하다. 한편 핀슨홀의 서쪽 숲에는 언더우드 사택이 건축되어 동측 숲의 교수사택들과 함께 캠퍼스의 주변부는 사택지로 이용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후 1940년에는 식당 건물인 한경관이 건축되었으며, 핀슨홀은 1944년 연희전문 폐교까지 기숙사로 사용되었다.

그림 4. 1936년 연희전문 배치도 상세

2-2. 핀슨홀(Pinson Hall)의 건축 배경

1918년 목조2층 건물인 치원관을 임시교사로 신촌캠퍼스에서의 수업을 시작한 연희전문학교는 1920년 석조 2층 건물인 스팀슨관을 준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캠퍼스 건축을 시작하였다. 스팀슨관이 준공된 1920년에는 기숙사를 설치해달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있었으며6) 이에 따라 학교는 스팀슨관을 교사로 사용하고, 1918년 건립하여 임시교사로 사용하던 치원관을 우선적으로 기숙사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본격적인 기숙사 건축이 이루어진 것은 1921년 연희전문의 교장인 에비슨(Oliver R. Avison)이 미국에서 40여만 원의 기부금을 모아오면서부터였다. 에비슨이 모아온 기부금으로 연희전문학교는 언더우드관과 아펜젤러관을 비롯하여 학생기숙사와 교수사택들을 건축하였다. 당시 신문기사들에는 학교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하여 모범적인 기숙사와 교원의 사택건축을 추구하였다는 언급이 있어7) 연희전문학교가 학습공간으로서뿐 아니라 생활공간으로서의 캠퍼스 건축을 추구하였음을 알 수 있다.8)

1921년 건축을 시작한 기숙사인 핀슨홀은 서쪽 언덕 숲 사이 3층의 석조 건물로 1922년 4월 준공했으며,9) 건평 84.09평, 연건평 224.15평의 규모로 현재와 거의 같은 규모이다.10) 1931∼32년에 발행된 연희전문학교의 연례보고서(Chosen Christian College Bulletin)에 따르면 기부자인 남감리교회 핀슨(W. W. Pinson) 박사를 기념하여 핀슨홀로 명명하였다.

핀슨홀의 설계자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다만, 머피 앤 다나 건축사무소에서 계획한 초창기 마스터플랜에 따라 1920년대 초반 연희전문학교의 중심영역에 위치한 스팀슨관(1921), 아펜젤러관(1922), 언더우드관(1925)이 차례대로 건축되었고, 핀슨홀 역시 머피가 설계하였던 건물들과 동시기인 1922년에 건축되었다는 점에서 머피 앤 다나 건축사무소에서 설계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핀슨홀의 건축 양식과 외장 재료, 창호, 구조 등 건축 전반적인 특징이 스팀슨관, 아펜젤러관, 언더우드관과 유사하다는 점11)에서도 이들 중심건물의 설계자와 핀슨홀 설계자가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의 위치와 1925년 배치도를 비교해 보면 클럽하우스(L) 위치에 핀슨홀이 우선 건축되었고, 향후 식당(I) 건물과 추가로 몇 동의 기숙사(J)를 추가로 건축하여 기숙사 클러스터를 이룰 계획12)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앞 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는 결국 실행되지 못하였고, 1940년 건축된 식당인 한경관과 함께 서쪽 숲의 학생생활공간 영역을 이루었다. 핀슨홀은 캠퍼스의 북측 중앙부에서 살짝 서측으로 치우친 언덕 위에 위치하였으며, (그림6)에서 볼 수 있듯이, 백양로 방향으로 난 계단을 통해 중앙 현관부로 진입하게 되어 있다.

그림 5. 건축 중인 핀슨홀

그림 6. 핀슨홀 전경 (출처: 1932년 연희전문졸업앨범

2-3. 해방 이후 핀슨홀의 변화와 변용

1922년 건축된 핀슨홀은 일제에 의해 연희전문이 폐교되는 1944년까지 기숙사로 사용되었다. 1944년 이후에는 잠시 경성공업전문학교으로 개편되었으며 캠퍼스는 연병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13) 한국전쟁 당시 스팀슨관, 언더우드관, 아펜젤러관, 한경관 등 주요 건축물들의 지붕과 외벽이 소실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으나 핀슨홀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14) 이후 기숙사 제도가 폐지되고 핀슨홀은 신학과 및 음악대학에서 사용하는 교사(校舍)로 전용되어 사용되었고, 1975년 음악대학이 신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한 이후에는 연세춘추 및 법인사무처 등에서 사용하였다. 그렇지만 당시의 사진을 통해 확인해 보면 이러한 수차례의 변화과정에서도 핀슨홀은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핀슨홀에 변화가 온 것은 1992년 핀슨홀이 연세대학교 법인사무처 전용 건물이 되면서 대대적인 내부공사를 시행함에 따른 것이었다. 1992년 보수공사에서 외관은 거의 그대로 보존하였으나, 창호의 안쪽에 알루미늄 창호를 추가하여 이중창으로 하고, 굴뚝을 철거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내부공간의 경우 1층은 내부 칸막이벽의 철거 정도의 변화가 있었으나, 2층의 경우 대회의실 등을 만들기 위해 내부 칸막이벽을 철거함과 동시에 복도에는 기둥만 남기고 한쪽 복도벽을 대부분 철거하였다. 3층은 재료 등의 변화 정도만 있었을 뿐 공간 및 구조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따라서 핀슨홀은 외관의 경우 굴뚝이 철거된 것을 제외하고는 신축 당시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부 공간의 경우에도 일부 벽의 철거 및 내부 재료의 변화가 있었으나 주요 구조부 및 현관홀, 계단실 등 전체적인 공간구조에 있어서는 기숙사로 사용될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 연희전문의 건축 사업은 한국전쟁기에 피해를 입은 건물들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핀슨홀은 그 대상이 아니었다는 측면에서도 핀슨홀은 신학관, 종교음악관으로 사용되던 1950년대에도 해방 이전의 모습을 거의 유지하였다.

그림 7. 신학대학으로 사용할 당시의 핀슨홀(출처: 1958년 졸업앨범)

그림 8. 음악관으로 사용할 당시의 핀슨홀(출처: 1966년 졸업앨범)

3. 핀슨홀의 건축과 공간

3-1. 양식 및 외관

1922년 4월 준공된 핀슨홀은 동시기 건축된 연희전문학교의 스팀슨관, 아펜젤러관, 언더우드관과 마찬가지로 대학고딕(Collegiate Gothic) 양식15)으로 처마의 코니스와 층간 돌출부 등으로 수평성을 강조하고 정면 중앙의 출입구에는 결원형 아치를 사용하였으며, 직사각형 창호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특징을 보인다.

수평성을 강조하며 직사각형 창문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외관상의 특징은 같은 시기 건축된 캠퍼스의 중앙 영역을 형성하는 교사(校舍)군에 속하는 스팀슨관, 아펜젤러관, 언더우드관과 마찬가지이나 돌출된 베이윈도우, 튜더 아치, 지면보다 높게 처리된 출입구 등은 나타나지 않으나, 대신하여 지붕층에 도머창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핀슨홀은 중앙 교사군의 서측 숲에 배치된 기숙사 공간으로서, 지하층이 없고, 지붕 하부를 기숙사방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나타난 특징이다.

하지만 중앙부에 위치한 현관홀을 전면으로 조금 돌출시키고 높임으로써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중심성을 강조하고 있다. 외벽 재료로는 인근 안산에서 채취한 운모편암을 사용하여 암갈색을 띠고 있으며, 밝은 흰색의 화강석을 창대석과 인방석으로 사용함으로써 단조로움을 피하면서 연속되는 창대석과 인방석으로 인해 수평성을 강조하는 의장적인 특징을 보인다.16) 외벽재료로 운모편암을 사용한 것은 당시 한국에서 제작되던 벽돌의 내구성 문제로 인해 외장 재료를 고민하던 머피 앤 다나 건축사무소의 머피(Henry,K.Murphy)가 1918년 5월 현장 방문 이후 외장재료로 주변의 산에서 나는 운모편암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17)

그림 9. 핀슨홀의 정면(동측)

그림 10. 2층 창호 및 3층 도머창  그림 11. 중앙출입구

3-2. 핀슨홀의 평면과 내부공간

1922년 기숙사로 신축되었을 당시 핀슨홀의 도면은 남아 있지 않지만, 해방 이후 핀슨홀을 신학관 및 종교음악관으로 사용할 당시의 평면과 1992년 보수공사 당시 작성된 도면, 그리고 1922년 『개벽』의 기사, 졸업생들의 회고 등을 통해 기숙사로 사용 당시 핀슨홀의 내부 공간의 원형을 추정할 수 있다.

먼저, 1922년 12월 『개벽』 제30호의 기사에 따르면 신축 당시인 1922년의 핀슨홀은 기숙사 사감, 수위를 비롯한 학생 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상 중 하 3개 층에 각각 화장실, 세면장 갖추고 있는 서양식 설비를 갖춘 건물이었다. 층별로는 1층은 2인 1실, 2층은 개방된 형태로 10-20인이 거주 가능하였으며, 침대, 옷장, 책상, 책장, 의자가 구비되어 있어 서양식 생활이 가능한 공간이었다.18)

이와 같은 내용에 근거하여 층별 현황을 살펴보면, 우선 1층은 건물의 중앙에 주출입구 현관을 두고 장변 방향으로 중복도를 설치한 평면구성으로, 전체 크기는 정면 약 27m× 측면 10m(약 3:1 비례) 규모로 계획되었다. 현재 1층 천정(2층 바닥슬래브) 구조와 1950년대 작성된 도면에 근거해 볼 때, 기숙사로 사용할 당시 1층은 전면 4.5m의 중앙 현관 좌우에 1.7m의 중복도를 기준으로 약 3.3 × 4.1m 규모의 실을 대칭으로 8개 배치하고 남북의 양 단부에는 약 4.5 × 4.0m 규모의 실을 각각 2개씩 4개를 배치한 형식으로 공간을 구획하고 있다. 다만, 중복도의 남쪽 단부에는 공용공간으로서의 홀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대칭구조에서 벗어나 있다. 즉, 1층은 남북방향의 중복도를 중심으로 12개의 실이 동서방향의 칸막이벽으로 나뉘어 배치된 개실형 구조였다.

그림 12. 기숙사로 사용 당시의 핀슨홀 1층 추정 평면 (종교음악관으로 사용할 당시의 평면을 수정하여 표시)

개실 내부 모습은 1935년 연희전문학교 졸업앨범에 실린 내부 사진((그림 15))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창가에 개인용 책상을 배치하고 그 옆으로 침대를 배치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침대와 책상의 형태로 미루어보아 기숙사 내 생활은 입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19)

그림 15. 핀슨홀 내부 (출처: 1935년 연희전문학교 졸업앨범)

2층의 경우 1922년 개벽기사에서는 오픈형으로 되어 있다는 설명이 있으나 1950년대 현황도면 및 1930년대 말 핀슨홀에 머물렀던 정병욱의 회고20)로 미루어보아 2층은 적어도 1930년대 중반 이후 개실형으로 변형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림 13>은 1950년대 종교음악관으로 사용 당시의 평면도인데, 이 도면에서 2층은 1층과 마찬가지로 남북방향의 중복도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약 3.0 × 4.1m 규모의 실이 12개 배치되어 있으며, 남북 끝에는 약 2.1 × 4.1m 크기의 실이 4개 배치되어 있다. 그렇지만 2층은 1층과 달리 중복도를 구성하는 벽체가 아닌 기둥이 상부하중을 담당하고 있어 개방형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신축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개벽』 제30호의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공간은 개방형으로 사용하였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개실형으로 사용할 당시의 2층 내부 모습은 사진 등의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개벽』의 기사에서 기숙사 입사생에게 각자의 책장과 책상, 침대, 옷장 등이 제공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또한 비슷한 시기 건축된 중국예일대학(Yale in China)의 기숙사 내부 사진([그림 16])를 참조할 수 있다.

그림 13. 개실형으로 변경 이후의 핀슨홀 2층 추정 평면 (종교음악관으로 사용 당시의 평면을 수정하여 표시)

그림 14. 신축 당시의 핀슨홀 2층 추정 평면 (종교음악관으로 사용 당시의 평면을 수정하여 표시)

그림 16. Yale in China 기숙사(출처: Building in China, p.39)

3층은 현재 원형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공간으로 건립 이후 큰 변화가 없었던 공간이다. 중앙의 계단실 좌우로 2개의 큰 공간을 배치하고 각 공간의 전·후면과 측면의 지붕 경사면에 도머창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도머창과 지붕경사면 사이 삼각의 빈 공간에는 창고를 두었다. 3층 공간은 지붕 하부의 공간을 활용한 것으로 외부에서 2층으로 보이는 핀슨홀이 실제로는 3층으로 사용되는 특징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졸업생들의 회고에 따르면 윤동주가 송몽규, 강처중 등과 함께 1학년 때 거주했던 공간으로 알려져 있으며21) 2층과 마찬가지로 개방형으로 사용하였으며, 신학관, 종교음악관, 법인사무처로 용도가 변화하는 과정을 겪으면서도 계속하여 같은 공간구조를 유지하였다.22)

그림 17. 기숙사로 사용 당시의 핀슨홀 3층 추정 평면 (종교음악관으로 사용 당시의 평면을 수정하여 표시)

이처럼 핀슨홀은 각 층의 평면 형태와 내부공간이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곧 구조적 특징과 연관되는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3-3. 구조 및 설비

핀슨홀의 구조는 비슷한 시기 건축된 스팀슨관, 아펜젤러관 등과 마찬가지로 외부는 석조로, 내부는 벽돌조를 사용하면서 석재와 벽돌 사이는 콘크리트로 채운 혼합구조이다. 또한 철근콘크리트보와 기둥을 부분적으로 사용하였다. 외벽체의 두께는 600㎜∼650㎜ 정도로 기단부에 해당하는 곳을 더 두텁게 처리하였고, 내벽체는 미장마감을 포함 280㎜정도로 재래식 벽돌 1.0B 쌓기로 되어 있다.

1층의 경우 (그림18)에서와 같이 외벽 전체에 콘크리트 테두리보를 설치하고 조적조의 중복도 내벽 상부에도 역시 콘크리트 인방보를 설치한 후 그 사이에 약1.4m∼1.9m 간격으로 거더를 걸치는 형식으로 2층 바닥 슬라브를 지지하고 있다. 2층의 경우는 1층과 마찬가지로 외벽 전체에 콘크리트 테두리보를 설치하되 1층과는 달리 내력벽이 아니라 중심 코어 좌우의 큰 공간에 각각 4개씩의 철근콘크리트조 기둥을 설치하여 건물 전후를 가로지르는 철근콘크리트 보를 지지하고 있다. 또한 거더의 중간에 작은보(Beam)를 남북으로 길게 걸쳐 큰 공간을 형성하고자 하였다.

그림 18. 2층 바닥 구조개념도

그림 19. 3층 바닥 구조개념도

그림 20. 지붕 구조개념도

이상에서와 같이 핀슨홀은 각 층별로 구조를 조금씩 달리 하여 1층은 내력벽식으로, 2층은 기둥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2층을 지지하고 있는 12개의 기둥 중 에서 6개는 1층에도 같은 위치에 기둥이 있으나, 나머지 6개의 기둥은 2층에만 있다. 이는 핀슨홀의 독특한 구조 형식으로 건물 전체에 라멘구조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하중이 크게 걸리는 1층은 전체적으로 내력벽으로 처리하고, 상대적으로 하중이 작은 2층은 기둥을 내력벽 위에 설치한 것으로 각 층별 구조를 다르게 사용한 적층식 구조로 볼 수 있다.

지붕 속 다락층인 3층은 일반적으로 2"× 4" 로 알려져 있는 경량목구조로 되어 있는데, 2“× 6”규격의 서까래가 약 600㎜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3층 지붕구조를 경량목구조를 사용함으로써 거주가능한 대형공간을 형성하였으며, 지붕면에 도머창을 설치하여 공간 내부의 채광 및 환기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핀슨홀은 전체적으로 재래식 붉은 벽돌과 자연석재를 사용한 조적구조에 매 층 다른 구조형식의 공간이 적층되어 만들어진 구조적 특징을 가진다. 즉, 1층은 테두리보와 내력벽, 거더를 활용하고, 2층은 테두리보와 철근콘크리트조 기둥 및 보와 거더를 활용하고, 3층은 2"× 4" 경량목구조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층별로 각각 다른 구조형식을 사용한 것은 각 층별로 공간사용을 달리하고자 하였던 건축가의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층을 1층과 다른 구조 형식으로 처리한 것은 2층을 더 많은 수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개방형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내력벽과 복도 대신 기둥을 설치하였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3층 역시 기숙사로서 활용하기 위하여 대공간 확보에 좋은 2"× 4" 경량목구조 형식을 취하였다.

그림 21. 2층 구조체 

그림 22. 3층 지붕구조

한편 『개벽』의 기사에 따르면 각 층 내부에 화장실과 세면실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며, 1950년대 도면에서도 1층부터 3층까지 같은 위치에 화장실이 배치되어 있다. 이로 보아 핀슨홀 신축 당시부터 중앙계단실 건너편 공간은 화장실과 세면실로 사용되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난방은 증기난방을 사용하였으며, 당시 사용하던 난방시설은 건물 외부에 위치한 지하 보일러실에 있었고, 높은 굴뚝이 보일러실 상부에 있었으나 현재는 철거된 상태이다.

4. 동시기 건물들과의 비교를 통해 본 핀슨홀 의 특징

4-1. 연희전문의 교사(校舍)건축과의 비교

핀슨홀이 지어지기 2년 전인 1920년에는 스팀슨관이, 핀슨홀이 지어진 같은 해인 1922년 10월에는 아펜젤러관이 건축되었다. 이 두 건물은 모두 연희전문학교의 마스터플랜을 계획한 머피 앤 다나 건축사무소의 작업으로 양식과 외관, 구조, 평면적 특징 등에서 핀슨홀과 매우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선, 양식과 외관부터 살펴보면 스팀슨관과 아펜젤러관 모두 핀슨홀과 같은 대학고딕(Collegiate Gothic)양식23)으로 모두 안산에서 채취한 운모편암을 막돌쌓기로 쌓아 외벽을 구성하고, 화강석을 다듬어 창호의 창대석과 인방석으로 사용하며 수평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이 두 건물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6분할 오르내리창의 크기와 그 비례에 있어 핀슨홀 2층 창호와 거의 유사하다. 다만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스팀슨관과 아펜젤러관에서는 베이윈도우나 태국문양장식 등은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핀슨홀은 교사(校舍)인 스팀슨관과 아펜젤러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징성보다는 실용성이 중요한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평면적 특징을 살펴보면, 스팀슨관과 아펜젤러관은 중앙에 주출입구를 두고 그 반대편에 계단실을 두었으며, 중복도를 중심으로 각 실로 진입하게 되어 있는 형태가 기본적인 평면 형태인 데에 반해, 핀슨홀의 경우 계단실이 주출입구의 남측에 위치하고 주출입구의 반대편에는 화장실 및 세면실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2층은 내력벽체가 아닌 기둥을 사용하여 개방형으로 구성하였다는 점에서도 차이점을 가진다. 이는 학습공간인 두 건물과 달리 핀슨홀은 생활공간으로서 화장실 및 세면실의 완비와 많은 기숙사생을 수용하기 위한 대공간의 필요라는 이유로 인해 다른 평면 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세 건물 모두 석조는 외벽에만 사용하였고, 내부에서는 조적조 및 철근콘크리트구조를 혼합하여 사용하였다. 특히 슬라브, 보, 계단은 공통적으로 모두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취하고 있다. 다만 핀슨홀의 경우 2층에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기둥을 사용함으로써 특이점을 보인다. 지붕 구조는 세 건물 모두 2"× 4" 경량목구조를 사용하여 지붕 속 공간을 내부 공간으로 활용하는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핀슨홀은 3층 지붕공간을 거실(居室)로 사용하기 때문에 도머창을 설치하여 채광 및 환기를 담당하게 하였다. 난방은 모두 증기난방을 사용하였으며, 증기난방장치를 두기 위한 지하 보일러실과 연기 배출을 위한 굴뚝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이같은 특징으로 미루어볼 때, 핀슨홀은 동시기 지어진 교사(校舍)건축인 스팀슨관, 아펜젤러관과 의장적, 구조적 특징에 있어 유사한 특징을 다수 가지고 있으나, 학습공간이 아닌 생활공간이기 때문에 평면적, 공간적인 특징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점을 보였다. 그러나 창문의 형태나 구조적인 특징 등에 있어서 세 건물은 거의 일치하는 특징을 보이므로 핀슨홀 역시 스팀슨관과 아펜젤러관의 건축가인 머피 앤 다나건축사무소에서 건축을 담당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4-2. 머피 앤 다나 건축사무소 설계의 외국대학 기숙사와의 비교

머피 앤 다나 건축사무소는 연희전문학교를 설계하기 이전 중국 창사(長沙)의 중국예일대학(Yale in China, 1913)과 일본 도쿄의 릿교대학 이케부쿠로 캠퍼스(St. Paul University, 1914) 마스터플랜을 계획하였고, 각 학교에 기숙사를 건축하였다.

연희전문학교와 마찬가지로 대학고딕(Collegiate Gothic) 양식으로 건축된 릿교대학의 기숙사는 2층의 붉은 벽돌 건물로 식당을 상단에 두고 2개 동이 서로 마주보도록 배치되어 있다. ((그림 23)) 기숙사의 평면 공간구성은 남측의 단부에 주출입구를 두고, 전체적으로는 중앙홀을 중심으로 20개의 실이 중복도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의 양쪽 끝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남측 단부에는 계단실 맞은편에 화장실 및 세면실이 구비되어 있다. 기숙사로 사용될 당시 개실의 내부를 촬영한 를 통해 릿교대학의 기숙사 역시 입식, 즉 서양식 생활을 하는 공간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1918년부터 1932년까지 기숙사로 이용되고 이후에는 교실로 전용되어 사용되었는데, (그림 25)은 교실로 전용하기 위한 공사를 마친 직후의 모습이다. 이 사진을 통해 기둥과 보로 이루어진 내부 구조를 확인해볼 수 있는데, 이 같은 구조적 특징 역시 핀슨홀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그림 23. 릿교대학 기숙사(5, 6)와 기숙사 증축 예정공간(14) 및 식당(7) (출처: 立教の学び舎-キャンパスと校舍の移り変わり, 52쪽)

그림 24. 릿교대학 기숙사 내부  (출처: 立教学院資料センタ) 

그림 25. 릿교대학 기숙사 내부 복도(출처: “立敎大学新聞”1933년 5월 15일)

한편 중국예일대학(Yale in China) 역시 머피 앤 다나 건축사무소에서 계획하였지만, 릿교대학이나 연희전문학교와는 달리 서양식과 중국식을 혼합한 절충식으로 계획되었다. 따라서 이 학교의 기숙사는 중국식 지붕을 가진 절충식 건축양식으로 외관에 있어서는 릿교대학 기숙사나 핀슨홀과 큰 차이를 보였으나, 지붕도머창을 설치하여 다락방을 기숙사로 활용한 점에서 핀슨홀과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4-1절에서는 핀슨홀의 의장 및 구조적 특징 등이 동시기 머피 앤 다나 건축사무소에 의해 지어진 교사 건축물들과 공통점을 가진다는 측면에서 설계자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은 핀슨홀의 설계자 역시 머피 앤 다나 건축사무소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어서 이 절에서는 머피 앤 다나 건축사무소가 비슷한 시기 일본과 중국에 지은 기숙사 건축물들의 내부 공간 및 구조 등의 비교를 통해 기숙사로 사용 당시의 핀슨홀과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었다.

4-3. 동시기 국내 관립학교 기숙사와의 비교

핀슨홀이 건립된 1920년대 초에는 고등교육의 확산과 기숙사 생활의 필요 등에 따라 기숙사 건립이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었다.24) 이에 연희전문학교를 비롯한 많은 학교에 기숙사가 건축되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중·고등교육기관의 기숙사로는 관립전문학교인 경성고등상업학교 기숙사(1920), 경성사범학교 기숙사(1922) 및 경성제국대학 예과 기숙사(1922)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대부분의 관립학교 기숙사는 장방형의 일식 목조 1층 혹은 2층 건축물로 교사 뒤편에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경성사범학교 기숙사(1922)의 경우 모두 목조 건축물로 <그림 26,27>에서 볼 수 있듯이 회랑으로 기숙사동과 식당, 취사장, 변소 등이 연결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기숙사동은 자습실과 침실 2개가 하나의 유닛을 이루며, 자습실을 통해 양 옆의 각 5개의 수납공간을 갖춘 침실로 진입하는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습실과 침실은 분리된 구조가 아니라 침실 부분의 바닥을 높여 침상을 만든 것으로 1개의 실에 10명을 수용한 구조로 볼 수 있다.

그림 26. 경성제국대학 예과 배치도(출처: 일제시기 건축도면, 국가기록원)

그림 27. 경성사범학교 배치도(출처: 일제시기 건축도면, 국가기록원)

경성사범학교 기숙사는 핀슨홀과 같은 해인 1922년 건축된 고등교육기관의 기숙사 건물이지만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핀슨홀과 차이점이 있다. 즉, 경성사범학교 기숙사는 일식 목조의 건축물로 조적조와 철근콘크리트구조의 혼합구조인 핀슨홀과 형태적, 양식적인 차이가 있다. 그리고 공간구성 측면에서도 핀슨홀에서는 1층 남측 단부의 홀 공간과 같은 커뮤니티 공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화장실 역시 외부에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난방방식의 경우 경성사범학교 기숙사는 다다미방으로 별도의 난방설비를 발견할 수 없으나, 핀슨홀은 라디에이터를 사용하여 증기 난방을 시행하였다. 또한 핀슨홀에서는 화장실과 세면실을 매 층마다 내부에 설치한 데 비해 경성사범학교에서는 1층에서만 목조 화장실이 복도로 연결되었다.

그림 28. 경성사범학교 기숙사 (출처: 朝鮮と建築 7권 3호 (1928년 3월호), 126쪽)

그림 29. 경성사범학교 기숙사 유닛 상세(출처: 일제시기 건축도면, 국가기록원)

한편, 핀슨홀이 책상과 침대를 사용하는 입식 생활 공간을 갖추고 2인 1실과 공동실 등 다양한 유형의 거주공간을 갖추고 있었던 것에 반하여 경성사범학교 기숙사는 침상을 사용한 좌식 생활공간으로 10명이 사용하는 공동실을 균일하게 배치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각 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의 목적과 교육공간의 분위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핀슨홀의 경우 서양식 학교기숙사로서 기독교정신 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개인의 생활공간을 중시하고, 서양식 입식생활 및 증기난방 및 화장실 설비를 도입한 평면으로 계획되었다는 알 수 있다.

비록 시행되지는 못하였으나, 핀슨홀을 비롯한 기숙사 건물 5개동이 식당건물(한경관)을 중심으로 하나의 클러스터를 형성하며 캠퍼스의 서쪽 숲 속에 위치한 별도의 생활공간을 구성하고자 한 것 역시 당시 관립학교의 기숙사 계획과 큰 차이를 보이는 특징이다. 경성사범학교,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비롯한 대다수의 관립학교에서 기숙사 및 식당 공간은 회랑을 따라 병렬형으로 연결되는 구조였으며 대부분 교사군 후면에 위치해 있었다. 이에 비해 연희전문학교의 기숙사 및 식당 공간은 식당을 중심으로 클러스터를 형성하며 별도의 영역을 구축하였는데, 이는 식사공간을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만드는 기독교적 공간의 특성 보여주는 공간인 동시에 중앙의 교사군과는 독립적으로 구축된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 결론

핀슨홀은 1922년 건립된 연희전문학교의 기숙사 건축물로서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기숙사 건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희소성을 가지는 건축물이다. 핀슨홀은 1922년부터 1944년까지 약 23년간 기숙사로 사용되었으나, 해방 이후 기숙사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신학관 및 종교음악관의 교사(校舍)로 사용되었고 이후 학내신문사인 연세춘추사 및 재단법인사무실로 사용되었다. 1992년 법인건물로 전용되면서 내부 보수 공사가 크게 시행되었으나, 여전히 외관은 원형을 거의 유지하고 있으며, 내부 공간 역시 칸막이벽의 철거 및 재료의 변화 등을 제외하고는 원형을 상당히 보존하고 있어 기숙사로 사용될 당시의 원형 추적이 가능하며 또한 기숙사 건축으로서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우선적으로 핀슨홀이 건축되는 배경, 즉 연희전문의 마스터플랜 변화와 핀슨홀 건축 배경, 그리고 핀슨홀의 변화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핀슨홀의 건축적 특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또한 연희전문학교 교사건축물들과의 비교, 머피 앤 다나건축사무소의 타 기숙사들과의 비교, 당시 관립기숙사들과의 비교를 통해 핀슨홀만의 특징을 찾아내고자 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연희전문학교의 전체 마스터플랜과 연계하여 핀슨홀 건축의 특징을 찾아보면, 핀슨홀은 연희전문학교의 북측 중앙 교사군의 서쪽 숲에 위치한 생활 공간 영역에 속하는 건축물로, 원래 계획에 따르면 식당을 중심으로 한 기숙사동 5개로 이루어진 클러스터의 일부였다. 그러나 식당을 제외한 다른 기숙사동의 건축이 결국 시행되지 못함에 따라 핀슨홀과 식당인 한경관만 현재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기숙사의 배치는 1920년대 초중반 지어진 다른 관립학교 기숙사처럼 회랑에 의해 연결되는 구성이 아니라 기숙사동과 식당동이 각각 독립성을 가지면서도 외부공간(숲)에 의해 연결되며 하나의 영역을 형성하는 특징을 보인다.

건축적 측면에서는 핀슨홀은 19세기 이후 미국 대학 건축 양식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대학고딕양식을 취하고 있었으며, 구조적으로는 1920년대 초반 초기 라멘형식이 정착되기 이전 조적조와 철근콘크리트조가 복합적으로 사용하며, 테두리보를 적절히 활용하는 특징을 보였다. 이는 동시기 지어진 연희전문학교의 교사동인 스팀슨관과 아펜젤러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성격으로, 이를 근거로 설계자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핀슨홀 역시 스팀슨관과 아펜젤러관을 설계한 머피 앤 다나 건축사무소에서 설계했을 것임을 추정할 수 있었다. 특히 기숙사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1층은 내력벽을 활용한 중복도 개실형 구조, 2층은 기둥과 보를 활용한 개방형 구조, 3층은 경량목구조를 활용한 개방형 구조를 만드는 등 각 층이 각각 다른 성격의 내부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특징을 보였다.

내부공간구성에 있어서는 핀슨홀은 내부에 화장실과 세면실을 갖추고 있었으며, 증기난방으로 난방을 하는 서양식 설비를 갖춘 건물로, 침대와 책상을 사용하는 서양식 생활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또한 1층 남측 복도 끝에는 홀 공간이 있어 기숙사 내 커뮤니티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이 같은 성격은 당시 관공립학교 기숙사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특징으로, 핀슨홀이 지향하던 서양식 대학 기숙사로서의 이상을 보여주는 공간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즉, 핀슨홀은 단순히 기숙을 위한 공간이 아닌 서양식 생활을 몸에 익히게 하는 기숙형 교육의 장으로서의 거주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학교들은 대부분 기숙사를 갖추고 있었으며 관립학교의 경우 대부분 목조 건축물 여러 동이 회랑으로 연결된 구조의 기숙사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핀슨홀의 경우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사립학교인 연희전문학교의 기숙사로 서양식 기독교 교육을 시행하며 서양식 생활을 학생들의 몸에 익히게 하는 중요한 장소였다. 또한 1920년대 초반에 철근콘크리트구조의 보와 슬라브, 기둥 등을 사용하였으며, 증기난방을 설치한 것은 당시 다른 관립기숙사들과 비교했을 때 구조적, 설비적으로도 차이점을 보인다. 내부공간에 있어서도 침대와 책상을 사용하는 입식 생활을 하는 특징을 보였다. 즉, 핀슨홀은 관립학교가 대부분이었던 일제강점기에 서양식 교육뿐 아니라 서양식 생활방식을 도입한 캠퍼스 내 생활공간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1920년대에는 기숙사 건축에 대한 수요가 많았으며, 이에 따라 많은 학교들에서 기숙사를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기숙사가 거의 없으며 교사동의 부속시설로 그 중요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까지 연구대상으로 적극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기숙사 건축은 근대적 교육이 실행되는 학교건축으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각 교육기관의 성격에 따른 각기 다른 생활방식을 습득하게 되는 공간으로서 중요성을 가진다는 측면에서 향후 개항 이후 설립된 기숙사 건축 전반에 대한 연구가 이어질 필요가 있다. 기숙사 건축의 역사적 변천과정에 대한 후속 연구를 통해 기숙사 건축으로서의 핀슨홀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도 재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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